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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온 편지
김용규 지음 / 그책 / 2012년 4월
평점 :
언제부터인가 이런 책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책들'이란, 처음부터 도시와 떨어져 살던 것이 아닌, 도시의 모든 이(利)와 해(害)를 겪으며 지친 심신을 안고 자연으로 돌아가서의 느낌을 담은 책을 말한다. 며칠 전에 읽은 고독의 권유라는 책도 그러했고, 김용규님의 이 책도 그러하다. 한편에선 계속 자기개발서를 비롯한 실용서가 쏟아지는 가운데 또 한편에선 비워내라, 혼자의 시간을 누리라는 책이 점차 권수를 더해가고 있다는 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실로 이 세상은 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시기를 살고 나면 다음의 시기를 겪게 되고, 하나의 경험은 그 결과로 다른 어떤 경험을 불러내고. 태어나면 죽는 날이 있듯이, 매운 것을 먹고 나면 시원한 것를 찾게 되듯이, 사람과 일 속에 부대끼며 바쁘게 살아내어 나름 그 생활의 단맛을 다 보고 나면, 이젠 한때 지루하고 심심하다고 할 만한 시간을 찾게 되는.
이 책의 저자 소개를 본다. 서울에서 벤처기업의 대표로 7년을 일했다. 무슨 이유인지 자세히 나와있지는 않지만 큰 충격과 상처를 입는 일이 있고 나서 충북 괴산의 산골로 혼자 내려온다. 가족과도 물론 떨어진 생활을 택한 것이다. 그러기를 오년째. 그는 과연 숲에서 스스로를 달래고 치유할 수 있었을까? '숲에게 길을 묻다'라는 이전 저서의 제목처럼 숲에서 길을 찾았을까? 이책 '숲에서 온 편지'는 후속작이라고 할수 있는데 숲에서 지내면서 그가 불특정 대상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짧은 글 50편을 모아서 만든 책이다. 고만고만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숲은 말이 없다. 어느 날 문득 찾아든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함부로 조언을 던지지 않는다. 자기를 내려놓고, 털어놓고, 물음을 던지고 답은 던지는 것은 모두 사람 스스로 하는 일일뿐. 왜 그것이 도시 한복판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외로움을 무릅쓰고 사람의 흔적 드문 숲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그들 역시 우리 사람처럼 하나의 생명체이다. 이 한 세상 살다가는 생명체라는 점에서는 같으나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묵묵히, 하지만 주어진 조건에 최대한 적응하느라 분투하면서 본분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말 없는 저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라면, 온갖 소음을 일으키며 길지 않은 인생,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하며 행복을 누리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 사람의 사는 모습이다. 같은 생을, 너무나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충격이라면 충격을,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오게 된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지만, 꽃보다 더 아름다울수 있는 사람의 본성에 때가 끼고 얼룩이 진다.
그 때와 얼룩이 나이를 먹어가며 더 늘어가는 사람이 있고, 조금씩이나마 겆혀가는 사람이 있다.
달빛 아래 푸른 빛 머금은 은빛 숲의 나목이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꽃이 필때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하지만 꽃이 지는 순간은 아무도 유심히 보지 않는다. 꽃은 그냥 지지 않는다는데. 온힘을 다해 열매를 맺은 뒤에야, 그제야 안심하고 땅으로 떨어진다는데.
저자만의 어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앞에서 워낙 글솜씨가 뛰어난 사람의 책을 읽고난 후라서 그런지 조금 어설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기가 말하고 싶은 핵심을 돌려말하기 보다는 정확하게 전달하는 힘도 좀 약한 것 같고. 나는 별 세개로 마감하지만 아마도 저자는 별 따위와 상관없는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