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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서재 - 최재천 교수와 함께 떠나는 꿈과 지식의 탐험 ㅣ 우리 시대 아이콘의 서재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과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최재천 교수. 그가 읽은 책들, 그리고 그중 권할 만한 책이 어디 한두권이랴마는 이런 저런 이유로 뽑아서 소개한 책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아니라 본인이 걸어온 길에 대한 일종의 자서전 같은 책이었다. 그래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생물학은 자연과학의 다른 분야에 비해 문과적 특성이 좀 더 들어간 분야라고 생각한다. 저자 역시 아니나 다를까 어릴 때부터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그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미술 선생님에게 지목되어 미술 공부를 계속 하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으며, 고등학교 때 이과를 택한 것도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 않은 우연에 의한 것이었고 문과로 되돌리는데 실패하여 그냥 걷게 된 길이었다니. 읽으면서 공감 백배. 그렇게 들어선 과학자로서의 길. 난관에 부딪혀 극복을 못했다면 아마 지금의 자리에 서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는 특유의 낙천성과 끈기, 조급해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된 길을 걸어왔다. 과학도 그의 적성과 전혀 다른 길은 아니었던 것이다.
솔직하고 자세하게 자신이 걸어온 길, 무엇이 어려웠었는지, 어떤 순간에 과학에 대해 신비함과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지, 어떤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생명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대학원, 유학, 그리고 교수직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결정하고 진행시켰는지, 마치 후배에게 들려주듯이, 편하게 털어놓고 있다. 아마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읽으면 더욱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올 것이라 생각된다.
다른 사람도 그리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부가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또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학교 타이틀은 무시 못하는구나 하는 것이다. 저자 역시 그렇게 인정을 하고 있다. 자기가 지도 교수로 모시고 싶던 해밀턴 교수가 있는 미시건 대학으로 박사 과정을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그 교수가 갑자기 영국의 옥스포드로 가게 되었고, 따라 가자니 미국에서 자기를 기다려온 부인에게 미안해서 안되겠고, 그래서 차선책으로 택하게 된 하버드였데 그곳에서 박사 학위를 한것이 나중에 얼마나 큰 보상이 되어 돌아왔는지 모른다고.
해밀턴 교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있게 책으로 펴내어 유명해진 것.
또 한가지는, 학문의 길에서도 누구를 스승으로 두었느냐, 누구 밑에서 공부를 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에드워드 윌슨의 계보를 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의 저서를 번역하면서 국내에 '통섭'이라는 단어를 소개하는데 한 역할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지금의 그가 있게 한 또하나의 큰 징검돌이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저자가 그런 결과를 바라고 계산하여 택한 길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이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나서 검색을 해본 인물이 있다. 전 서울대 교수 최 기 철. 2002년에 아흔의 나이로 이미 작고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중학교때였나 고등학교때였나, 교육방송에서 손주뻘 되는 내 또래 남학생을 옆에 앉혀 놓고 생물의 분류에 대해 설명을 하시는데, 옛날 얘기도 그렇게 구수한 옛날 얘기가 없었다. 그야말로 폭 빠져들어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보았던 기억이 있다. 학교에서 주입식으로 가르쳐 주는, 이것도 외워야 하고 저것도 외워야 하는 '생물'이 아니었다. 내가 그 방송을 보면서 귀가 번쩍, 눈이 번쩍 했듯이, 지금 과학에 관심있는 누군가가 이 책을 읽으며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에 읽은 <탐구한다는 것>이란 책도 참 좋았는데 최재천 교수의 이 책은 그 책보다 더 대중적으로 가깝게 접근했다는 생각이다.
저자의 살아온 행로 자체가 '통섭'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니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