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운이의 하루 -

"엉? 75점??"
학교에서 돌아와 일일학습지를 받아본 겨운이는 눈이 동그래지며 가슴이 철렁해지기까지 했다. 어제 80점을 받은데 이어 오늘은 75점이라니.
매일 집으로 배달 되는 일일학습지를 시작한지는 꽤 되었는데, 어쩌다가 잊고 풀지 않은 날이 생기게 되고, 하루 하루 풀지 않은 학습지가 쌓이게 되자 더 하기 싫어지고, 그건 겨운이나 동생 새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날, 보다 못한 엄마는 표를 하나 만드시더니 왼쪽 칸에는 겨운, 오른 쪽 칸에는 새운의 이름을 적으시고는, 매일 채점되어 온 학습지의 점수를 기록하라고 하셨다. 채점되어 온 학습지가 없는 날은 0점이라고 적어야 하고, 그 달의 마지막 날, 합계를 내어 더 잘한 사람에게 용돈을 두배로 주시겠다고 하셨다.
사실 학습지의 문제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매일 잊지 않고 시간을 내어 한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으면 어려웠지. 성실하고 모범생인 겨운이는 거의 매일 100점, 약간 덜렁거리고 뭐든 빨리 해치우는 것을 좋아하는 새운이는 두 세문제 씩 틀리곤 했다.
어제는 무슨 문제가 틀려 80점인지 다시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오늘 겨운이는 무슨 문제를 틀렸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어제 문제를 풀면서 특별히 어려운 문제가 없었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틀린 문제 중 하나를 다시 읽어보니, 어제 내가 쓴 답이 아닌 것 같았다.
"어, 이상하다. 난 이 문제 답을 분명히 2번이라고 썼던 것 같은데! 그리고 2번이 정답 맞잖아. 그런데 문제지에는 내가 3번을 고른 것으로 되어 있네?"
다음으로 틀린 문제를 보았다. 이 문제 역시 내가 답으로 고른 것과 다른 답이 써있고 내가 원래 고른 답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정답 맞았다.
"가만, 여기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쓴 자국이 있잖아. 어? 그러고 보니 나는 숫자 2를 이렇게 구부려서 쓰지 않는데. 이건 내 글씨가 아니잖아."
그러고 보니 시험지 앞면의 점수 75라는 숫자도 100이라는 숫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쓰여진 것이었다.
아, 겨운이는 이제 알 것 같았다. 그 글씨체는 바로 동생 새운이의 글씨체였던 것이다.
언니 새운이보다 더 점수를 잘 받고 싶었던 새운이는, 언니보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채점되어 배달되어 있는 학습지를 보고는 겨운이의 점수를 자기보다 낮은 점수로 고친 것이다. 점수만 고친 것이 아니라 그 점수만큼 문제의 답도 틀린 답으로 고쳐 놓은 것을 알고 겨운이는 얼굴이 달아오르며 화가 솟구쳤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렇게 까지 하면서 언니를 이기고 싶어하는 새운이가 이해가 안 되었다. 

동생 새운이를 불러 따져 물어야겠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웬지 선뜻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겨운이로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일을 저지른 새운이를 엄마에게 이를 수는 더군다나 없었다. 새운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분노를 삭이며 겨운이가 고작 한 일이라고는 점수를 적는 표를 붙여 놓은 곳으로 조용히 가서는 점수표에 새운이가 고쳐넣기 전의, 원래의 겨운이 점수를 적어 넣은 일 뿐이었다.
그리고는 새운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도 말 할 수 없었다.
겨운이는 자신이 화가 나도 그 화를 겉으로 나타낼 줄은 모르고 있다는 것을 그 때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정작 새운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겨운이를 대하는데, 겨운이는 한동안 새운이 얼굴을 볼때마다 마음이 불편했고, 그러면서도 아무 내색을 못하는 자신에게 오히려 화가 더 났다.
 

-새운이의 하루 -
언니가 나보다 잘 할게 뻔한데 엄마는 왜 이런 시합을 시키실까.
하지만 나는 언니에게 지는게 싫다. 누구에게 지는 것 보다 더 싫다. 금방 비교되니까.
다 맞았을거라 생각하고 문제지를 마쳐도 다음 날 채점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보면 꼭 한 두개씩 틀려 있으니 속이 상하다. 이제 이번 달도 며칠 안 남았는데 이대로 가다간 언니가 나를 제치고 용돈을 더 받게 될 것이 뻔하다. 생각만 해도 견딜 수가 없다.
어제도 언니는 100점, 나는 90점. 색연필을 가지고 언니 문제지의 점수를 80점으로 고쳤다. 80점이 될려면 네 문제를 틀려야 한다. 언니 문제지에서 네 문제를 골라 언니가 쓴 답을 지우개로 지우고 다른 번호를 써 넣었다. 색연필로 표시된 것은 잘 안 지워져서 빡빡 지우개로 지워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는 아무 말이 없다.
오늘은 100점일줄 알았는데 오늘도 나는 85점, 언니는 100점 이었다. 어제처럼 나는 언니 점수를 75점으로 고쳤다. 언니가 알아챌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난 모른 채 하고 있으면 된다. 난 안그랬다.

언니가 알아챘나보다. 언니가 점수표에 내가 고치기 전의 원래의 언니 점수를 적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다고 엄마에게 말하지도 않는다. 나에게도 묻지 않는다. 혼자서 착한 척 다 하고 있다.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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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6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6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6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6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9-04-1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리얼한 얘기에요. 나인님 실화인가요?

hnine 2009-04-17 09:19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그런가요? 그냥 심심해서 써본 픽션이어요.

하늘바람 2009-04-17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정말요? 픽션이에요? 호호 님 너무 재미나네요

hnine 2009-04-17 09:35   좋아요 0 | URL
이름 짓는게 생각보다 어렵군요. 겨우 생각해낸 이름이 겨운이랑 새운이~ ㅋㅋ
 

   
  "연습을 안 하면 노래가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항상 노래연습을 하고 있다."


- 조 용필, 2008. 4. 16일 40주년 기념콘서트 인터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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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며칠 아팠습니다. 앓고 있는 아이가 안쓰러워 아내는 월요일인 어제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러자고 했지만 내심 마음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무리 아파도 학교는 가야지.’라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나 봅니다. 다시 되물어보았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왜 학교를 가야하지?’ 그 근거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일종의 강박관념입니다. 완고하고 비합리적이고 결과적으로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집착이고 틀입니다. 

흔히 강박관념은 지나친 승부욕, 불안, 자기불신과 같은 부정적 정신에너지에서 비롯되어 진정한 삶의 성장을 꺾어놓기 쉽습니다. 하지만 모든 강박관념이 다 안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긍정적 강박관념도 있습니다. 이는 자기완성의 욕구, 열정, 자기신뢰라는 긍정적 정신에너지에서 비롯되어 삶을 성장으로 이끌어주는 긍정적 신념이나 자기철학과 같은 마음입니다. 예를 들면 ‘무대에 올라가려면 만족스러울 정도로 연습을 해야 한다.’는 가수 조 용필의 강박관념, ‘연기를 하려면 자신을 버리고 온전히 그 배역이 되어야 한다.’는 배우 김명민의 강박관념, ‘사진은 나의 열정이고, 진실에 대한 추구는 나의 강박관념이다.’라고 했던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강박관념 등이 있습니다. 이 마음들이야말로 그들의 삶을 옭아매는 틀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더욱 넓게 펼쳐나갈 수 있는 날개가 되어 준 긍정적 강박관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강박관념이 있습니까? 그 생각은 당신을 옭아매는 틀이 되고 있습니까? 혹은 당신의 능력을 펼치는 날개가 되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에게 긍정적 강박관념이 없다면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말을 인용하여 빈 칸을 채워보면 어떨까요?

‘00은 나의 열정이고, 00에 대한 추구는 나의 강박관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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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박관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박관념의 유무, 혹은 그것으로 인한 고민이 아니라,
위와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융통성'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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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4-1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강박관념이 없는 거같아요 그게 오히려 문제인듯^^

hnine 2009-04-15 16:52   좋아요 0 | URL
없으면 좋지요~ ^^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지난 주 동네 장터에서 샀는데 파는 아저씨도 이름을 모르신답니다. 
굳이 이름을 알아야 하느냐는 듯한 아저씨의 심드렁이 웬지 마음에 들었기도 하고, 꽃 피는 모습도 특이하고 해서 3,000원 주고 사다 놓았더니, 오전 다르고 오후 다르다면, 거짓말처럼 들리겠지요?  

 





 

 

 

 

 

 

 

 

 

 

 

 

  

제가 그린 것이 아니니 민망한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를 ^^
제가 30분 정도 방해 안 받고 뭐 좀 할게 있어서 아이보고 옆에서 그림이나 그리고 있으라고 시켰습니다.
부분의 명칭은 물어보는 것은 제가 가르져 줬는데, 다 그렸다고 해서 보니 엉터리 같기도 하고 제법인 것 같기도 하고...

 (갑상선, 후두 등이 이마에 가서 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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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9-04-13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hnine 2009-04-13 23:48   좋아요 0 | URL
저 선인장 이름이 '사보텐'이라고, 사진 보신 어머니께서 알려주시네요 ^^

무스탕 2009-04-1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린이 그림에서 알수있는거라곤 눈코입(eyes, nose, lip) 밖에 없네요 T_T

hnine 2009-04-14 13:44   좋아요 0 | URL
최근에 학교 수업 중에 인체 구조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 있었대요.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인체 그림을 냉장고에 붙여 놓고 오며 가며 보더니 눈에 익었나봐요.

책세상 2009-04-14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하, 잇몸도 gums라고 하는군요. 처음 알았다는 ... ^^;

hnine 2009-04-14 20:47   좋아요 0 | URL
저건 저도 몰라서 사전 찾아보고 가르쳐 줬어요 ^^
 

 

 


 

 

 

 

 

 

 

 

 

 

 

 

 

 

 

 

 


    

 

 



 

 

 

 

 

 

 

 

 

 

 

 

 

 

 

 

 

 

  

 

 

 



 

 

 

 

 

 

 

 

 

 

 

 

 

 

 

 

 

 

 

감사드려요  Turnleft님 

직접 찍으시고,  

서재에 올리시고, 

베풀기 마당을 여시고, 

깜깜한 방에서 독한 약 써가며 직접 인화하시고, 

빳빳한 봉투 구입하시고 (제가 예전에 이력서 여기 저기 뿌릴 때 많이 써봤던 ^^) 

우체국 직접 가셔서,  

우표 값 지불하시고, 

자식 같은 사진 물건너 보내주셨어요. 

이런 선물이 또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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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9-04-13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잘 도착했군요. 저 이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물건 같은데 그 위에 올려 주셨으니 소중한 의미로 받아주신 것 같아 기쁘네요 ^^

근데, 이 사진은 fiber 용지에 인화한거라 종이가 약간 말리는 경향이 있어요. 이미 건조가 끝난거라 크게 휘지는 않겠지만 가능하면 액자 같은데 넣어 주시는게 오래 보관하실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이렇게 쓰니 꼭 액자도 장만하시라고 압력 넣는 것 같아서.. 쿨럭;; 아니면 네 귀퉁이를 벽에 고정시키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

hnine 2009-04-13 16:46   좋아요 0 | URL
남편이 액자 사는걸 좋아해서 집에 액자 많~아요.
도착하고 바로 사진 찍느라 임시로 저기 올려놓았네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프레이야 2009-04-13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인물사진이에요. 흑백이라 더 좋으네요^^

hnine 2009-04-13 16:27   좋아요 0 | URL
멋진 사진들이 많아 고르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저 사진이 제일 맘에 들더라구요. 저 나이가 되어도 저 정도 갖춰 입고 외출해서, 혼자서도 커피를 즐길 수 있고, 읽을 거리를 가까이 둘수 있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여유와 자신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찍으신 Turmleft님은 무슨 마음이셨는지 모르겠지만요 ^^

마노아 2009-04-13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직접 인화하시는 거였어요? 우왓! 정말 전문가군요! 아, 너무 분위기 있어요. 흑백에, 인물, 역시 남다른 감각이에요! 벽에 해골도 걸려있네요.^^

hnine 2009-04-13 21:01   좋아요 0 | URL
ㅋㅋ 해골을 미처 못 치웠네요. 저희 집에 오시면 별거 별거 다 있어요 ^^

무해한모리군 2009-04-13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렇게 해 놓으니 또 멋지네요.

hnine 2009-04-13 23:49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그쵸? 맞는 액자 구해서 잘 끼워놓아야지요~ ^^

Kitty 2009-04-14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사진 너무 멋져요!!!!!!!!!!!
아 이렇게 한 분 한 분 비밀댓글로 고르신 사진이 모습을 드러내네요.
완전 흥미진진합니다 ㅋㅋㅋㅋ 턴레프트님 사진 인화까지 ㄷㄷㄷ

hnine 2009-04-14 06:12   좋아요 0 | URL
전 이 사진이 제일 끌리더라구요. 인물 사진이라는 것도 그렇고, 흑백인 것도 그렇고...아주 맘에 듭니다 ^^

무스탕 2009-04-14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사진 한참을 들여다 봤었어요. 할아부지 멋지네.. 하면서요 ^^
근데 저 이젤은 누가 주로 사용하세요? +_+

hnine 2009-04-14 13:46   좋아요 0 | URL
아~ 무스탕님도 이 사진 기억하시는군요. 반가와요 ^^
이젤은 그냥 폼이어요. 아무도 제대로 사용한 사람이 아직 없답니다.
 

 

 

음악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본다  

 

 

  

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
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 이 성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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