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한미주에게 이렇게 갑자기 관심이 쏟아질지 몰랐다.

관심이라고 생각하면 기분 나쁘지 않은데 사람들 눈길이 쏠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지 않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옷도 사 입고, 운동화 같지 않게 색깔이 고운 요즘 유행하는 그 운동화도 사서 신고, 휴대폰이라는 것도 가져보고, 집에다 컴퓨터도 하나 사다 놓고,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에 갈 수 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거의 포기했던 수학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수학여행 얘기를 꺼냈을 때 할머니는 마치 내가 해외여행이라도 가겠다고 한 것처럼 정색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수학여행 같은 소리 하지도 마라. 지금 방세 밀린게 몇 달인지 니 알기나 하나? 열 몇 살씩 먹은기 철딱서니도 없어가지고, 이 늙은이 혼자 아둥바둥 고생한다 아이가. 무신 노미 팔자가 이라노.”

“못주면 못준다고만 하면 되지 뭘......”

기대도 별로 안했지만 물어보지도 못하나? 무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서 말대꾸를 했다.

“저 가시나 지금 뭐라카노? 그만치 키았으면 이제 집안 힝핀이 우찌 돌아가닌지 좀 살피볼줄도 알고 그라야지, 뭐 맨날 해달라고만 하노.”

‘해달라고하면 해주기나 했나 뭐?’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켜야 했다. 내 꿈도 희망도 함께 어디로 삼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미주야~ 전화!”

또 전화가 왔나보다. 우리 집 전화도 아닌데 어떻게들 주인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내게 전화를 하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해가더니 오늘은 어디서 온 전화일까.

반지하 방에서 밖으로 난 계단을 뛰어올라가 주인집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전화를 받았다.“TBS방송 ‘사랑으로’ 프로그램 작가인데요, 한미주 학생인가요?”

또박또박한 여자 목소리는 전화기 밖으로 당장 튀어나와 굴러다닐 것 같았다.

“네......”

“우선 위로의 말씀을 드리겠고요, 그동안 미주학생이 할머니 모시고 어렵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얘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었으면 해요. 한번 방문해도 될까요?”

“......”

어렵지만 꿋꿋하게? 내가 ‘꿋꿋하게’ 사는 것을 자기들이 봤나?

“물론 TV로 방송이 될 거고요, 그러면 여러 곳에서 미주 학생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많이 전달될 거예요.”

방송 작가라는 이분은 내일 당장 여기로 오겠다고 하고 끊었다. 옆에서 전화 통화하는 것을 듣고 있던 주인집 아주머니가 거들었다.

“그래도 다행이지 뭐니. 안 그러면 네가 당장 어디서 그동안 밀린 방세며, 앞으로 먹고 살 거며, 해결을 하겠어. 할머니 돌아가신 건 안됐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러 곳에서 널 생각해주니 그나마 다행인거지.”

사실 주인아주머니 아니면 이렇게 내 얘기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백내장을 치료안하고 방치한 결과 할머니의 왼쪽 눈은 거의 시력을 잃은 상태였고, 역시 치료를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던 당뇨 때문에 할머니 발가락은 온전한 게 없이 까맣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폐휴지를 모아 팔아야, 얼마 안 되는 생활보조금에 보태서 겨우 먹고 살 정도가 된다고 그러셨다. 며칠 전 할머니가 쓰러진 후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병원에 몇 번 들락거리고 나니 집안에 돈은 바닥이 났고 치료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걸러 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하는데도 그랬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옆에 아무도 없이, 마지막 말 한마디 들어줄 사람 없이 돌아가셨다. 며칠 계속 일을 못하시는 할머니를 대신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리어카를 끌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폐휴지를 모으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보통 새벽에 다니셨으나 나는 아침잠이 많기도 하고 학교 갈 시간에 겨우 일어나기도 바쁘기 때문에 어둑어둑 해진 저녁때 집을 나섰다. 주인집 전기선을 끌어 쓰고 있는 우리 방 전기계량기 검침 때문에 반지하 우리 방에 들르셨던 위층 주인아주머니께서 할머니를 발견하셨을 때 이미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더란다.

한 달 전의 일이다. 내가 완전히 고아가 된지 그러니까 이제 한 달 되었다.

 

다음 날, 약속대로 방송국에서 사람들이 왔다. 한사람은 커다란 궤짝만한 카메라를 어깨에 들쳐 메고, 다른 한 사람은 역시 커다란 철가방 같은 것을 들고 카메라를 멘 아저씨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손에 녹음기와 공책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여자분. 질문은 이분이 다 하셨다.

“엄마 아빠 기억은 나요?”

“아뇨. 사진으로만 봤어요.”

“할머니께서 계속 키워주셨군요.”

“네.”

“어떻게 할머니 대신 폐휴지 모으는 일 할 생각을 했어요?”

‘며칠 빠지면 이 구역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지 모른다고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나중에 할머니가 다시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하려면 그동안 나라도 하고 있어야 했어요.’

“할머니 병원에 한번이라도 더 모시고 가려면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할머니가 지금까지 다 돌봐주셨는데, 당장 막막하지 않아요? 기분이 어떤가요?”

‘오랫동안 아프셨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어요.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니 여기저기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이제 정말 혼자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미주 학생에게 할머니는 어떤 할머니셨나요? 두 식구뿐이니 더 애틋할 것 같은데요.”

‘매일 아프다, 돈 없다 소리만 했어요. 할머니가 고생하는 건 알지만 나도 하고 싶은 거 못하며 지냈어요. 빨리 커서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어요.’

“빨리 커서 할머니 병도 고쳐드리고 호강시켜드리고 싶었어요.”

라디오 인터뷰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질문이었고 내 대답도 거의 똑같았다.

마지막 질문만은 달랐다.

“미주는 꿈이 뭐예요?”

‘꿈이요? 당장 방세도 못 내고, 하루에 한 끼는 라면으로 때우고 있는데 꿈이요?’

“사회복지사요. 저나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싶어요.”

방송은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다.

 

라디오에 나왔을 때와 비교가 안되었다. 내 얘기가 TV에 나가자마자 바로 다음 날부터 쌀, 라면, 전기히터, 책, 옷, 그리고 내 앞으로 성금이 쌓여갔다. 할머니가 그렇게 힘들게 일할 때는 안 모이던 것들이,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자꾸만 들어왔다. 이 돈으로 이제 방세 다 갚고도 핸드폰, 컴퓨터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이제 어쩌면 햇빛도 안 들어오는 이 반지하 방에서 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학교에서도 난 유명해졌다.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애들이 좀 짜증나기도 하지만 그런 것쯤은 참아줄 수 있다. 오히려 학교에서 갑자기 선행상을 주는 것이 더 얼떨떨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도와 열심히 생활했다는 것이다. 내가 할머니를 도운 것이 있던가? 마지막 며칠 폐휴지를 모으고 다녔던 것은 솔직히 말하면 할머니를 위한다기 보다 할머니가 계속 그거라도 해서 돈을 벌게 하려고 그런 거 아니었나?

방송이 나가고서 얼마 안 되어서였다. 나에게 자기가 운영하는 원룸건물의 방 하나를 제공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방세 없이 살아도 좋다고 했다. 이제 정말 이 반지하방을 벗어나는 것이다. 드디어.

 

할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시긴 했지만 돌아가시고 난 며칠 동안은 오히려 주위에서 나에 대한 관심이 모여들어서인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실감이 잘 안 났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깨끗한 원룸으로 이사를 간다. 거의 한숨도 못자고 이삿날 아침을 맞았다. 짐이 많지 않다고 했더니 나에게 원룸을 제공해주기로 한 아저씨가 9인승차를 가지고 오셔서 짐을 옮겨 주시겠다고 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박스를 방문 밖으로 끌어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뒤통수에 누군가의 눈길이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았다. 주인집에서 키우는 개가 위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개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 머릿속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보통은 학교 다녀온 후 방에 들어갈 것도 없이 가방을 리어카에 싣고 바로 동네로 향하는데 그날은 그러기에 가방이 너무 무거웠다. 불우 학우 돕기인지 뭔지, 물론 나는 도와주는 쪽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쪽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학교에서 잔뜩 안겨주는 것을 받아 가방에 들어가는 대로 막 쑤셔 넣고 낑낑대고 메고 온 참이었다. 이왕 도울 거면 차라리 필요한 곳에 쓰게 돈으로 주던지, 뭔가 부피가 나가는 것으로 떠안겨야 주는 사람 입장에서 더 뿌듯하기라도 한가? 그날은 수학여행 신청 마감일이기도 했다. 우리 반에서는 나만 못가는 것을 종례 시간에 담임선생님은 아이들 다 있는데서 굳이 확인해야 했을까?

“착오가 있나 해서 그래.”

라고 하셨지만, 선생님이 바로 그 순간 착오를 저지르고 있는 줄 모르시나?

아이들 다 수학여행 가고 나면 나 혼자 할 일 없이 뭘 하며 나흘을 보낼지. 다녀오고 나면 아이들은 한동안 시간 날 때마다 여행 갔던 얘기만 할 텐데 그러면 나는 무슨 얘기인지 몰라 멍하니 듣고만 있어야겠지. 그럴 땐 어떤 표정을 하고 있어야 덜 초라해 보이지? 다른 무엇보다도 나도 이 반지하방 아닌 곳에서 하룻밤이라도 자보고 싶었다. 할머니한테 한번만 더 졸라볼까?

무거운 가방만큼이나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었을 때였다. 컴컴한 방에 할머니가 누워있는 모습이 다른 날과 달랐다. 아니,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져있다고 해야 할 모습이었다. 깜짝 놀라 서있는데 할머니 입에서 신음소리와 함께 아주 작은 소리로 뭔가 말하고 있는 것이 들렸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나보다.

“약......거기, 약......”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할머니는 분명히 비상약을 찾고 있었다. 언뜻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할머니를 보았을 때 할머니 눈동자는 이상하게 돌아가 있었고 손발은 뒤틀리고 있었다. 무섭고 떨렸다. 할머니가 비상시에 먹을 약이라며 둔 곳을 알고 있긴 하지만 나는 얼른 약 있는 곳으로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몸을 뒤틀고 눈이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가 무서웠다. 계속 그러고 서있다가는 할머니가 나 있는 쪽으로 기어 나와 내 발목을 붙잡고 끌고 들어갈 것 같았다. 그러면 나도 할머니 옆에서 그렇게 몸을 뒤틀며 괴로워해야 할 것 같았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싫어! 그러고 싶지 않아 절대!’

다 싫었다. 내가 속한 그 컴컴한 방도 싫고, 거기서 손발을 뒤틀고 있는 할머니도 보기 싫었다. 거기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나는 지금 위급한 상황에 있는 할머니를 본게 아니라 내가 처한 현실, 어둡고 칙칙하고 언제 벗어날지 모를 나의 현실을 확인한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그대로 두고 가방도 그냥 멘 채 방문을 닫고 나왔다.

급한 발걸음으로 얼른 계단을 올라 대문으로 향하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가 그런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올려다보니 주인집에서 키우고 있는 바로 그 개가 나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결국 그날 내가 나가고 없는 새에 돌아가셨다. 폐휴지를 모으러 동네를 한바퀴, 두 바퀴 돌고 집에 왔을 때 할머니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를 붙잡고 학교에서 이제 돌아 오냐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다고 말할 때 나는 아까 집에 들렀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프시긴 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혼자, 갑자기 돌아가실 수 있어 그래? 세상에......”

아주머니는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어이없는 표정은 아마 내가 더했을 것이다. 아까 할머니는 마지막 기력을 다해 약을 찾고 있었고 나는 그런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외면했다. 나의 그 멍한 표정을 아주머니는 내가 심한 충격을 받아서 그런다고 해석하셨는지 나에게 잠시 진정하라고 하시고는 병원으로, 경찰서로, 여기 저기 나 대신 연락을 해주셨다.

구청에서 사람이 다녀가고, 생활보호대상자 혜택으로 어떻게 간신히 장례를 치렀다. 아주머니가 입소문을 내었는지 여기저기서 위로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흔적은 금방 지워지고 그 자리에 위로품 상자가 쌓여가고 있었다.

“미주 학생!”

귀에 익은 목소리가 부르는 소리에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에 왔던 방송국 사람들이 또 찾아온 것이다. 방송이 나간 후 반응이 좋아 후속편을 찍기 위해 새집으로 이사 가는 장면을 잠시 촬영하겠다는 것이다.

짐 실을 차가 오고 보잘 것 없는 물건들이 담긴 짐짝들이 정말 짐짝처럼 차에 실렸다. 방송국 카메라는 뭘 저렇게 찍어대는지.

짐을 싣고 차에 오르려는데 마이크를 들이대며 기분을 얘기해보란다.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요, 열심히 공부해서 꼭 성공하겠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처럼 아프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사 간 방은 내겐 어떤 호화주택 못지않았다. 3층이라 올라 다니기 힘들지 모른다고 주인아저씨는 말했지만 방의 창문을 열자 저 앞 편의점까지 한눈에 다 보였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이런 세상이 있었네.”

들어온 위로물품과 성금 덕에 새 이불, 새 책상에, 옷장, TV, 컴퓨터까지 들여놓을 수 있었다. 꿈만 같았다.

다음 날, 신청기간이 지났지만 선생님께 사정해서 돈을 내고 수학여행 신청을 했다. 못갈 줄만 알았던 수학여행이다. 이제 부러운 게 없다. 내 방이 생겼고, 그 방은 내가 필요한 것으로 꽉 채워졌다. 다른 애들처럼 수학여행도 갈 수 있게 되었다. 다 해결되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 때문이었는지, 배가 아파서였는지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었다. 새벽 3시도 채 안 된 시각이었다. 꿈에서 또 그 개를 보았다. 지난번보다 더 뚫어지게 나를 쏘아보는 개의 눈은 날카로운 창이 되어 내 몸 속까지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몸서리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네가 뭘 알아? 나도 지금 죽을힘을 다해서 살려고 하는거라구!’

내가 지른 소리에 놀라 깬 것 같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배가 쥐어짜는 것처럼 아파왔다. 더워서 자기 전에 평소에 안 먹던 아이스크림을 두 개나 먹은 게 문제를 일으킨 것 같다. 원래도 찬 것 먹으면 배탈이 잘 나서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듣곤 했는데.

‘할머니......’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할머니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여기 없다. 알면서 방을 한번 둘러보았다. 가지고 싶던 것으로 채워진 방, 어떤 부자도 부럽지 않은 방. 그런데 그 순간만은 그런 것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텅 빈 방이었을 뿐이다. 이 방이 내게 찬 것 먹지 못하게 잔소리 하진 않을 것이다. 저 책상에게 내가 투정부리진 못 할 것이다. 배 아프다고 내가 아무리 데굴데굴 구른들 아무도 들어줄 사람 없다. 난, 혼자이다.

거의 기다시피 해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온 몸이 땀으로 함빡 젖었다. 아무래도 약을 먹고 자야할 것 같았다.

‘이삿짐 쌀 때 약을 어디에 넣었더라......’

서랍장의 서랍을 하나하나 빼가며 찾던 중 약보다 먼저 발견한 것은 손수건으로 둘둘 말아놓은 뭉치였다.

“이게 뭐지?”

풀어 보니 돈이었다. 만날 돈 없다고 하던 할머니가 이렇게 돈을 감춰두고 있었나? 세어보니 만 원짜리 여섯 장, 오천 원짜리 한 장, 천 원짜리가 여섯 장, 그리고 종이쪽지에 서툰 글씨로 ‘미주수항여행’ 이라고 쓰여 있었다. 할머니 글씨였다. 수학여행 같은 소리 하지도 말라며 돌아앉던 할머니.

갑자기 마음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세어보니 어차피 수학여행 경비하기에 택도 없이 모자라는 액수의 돈이지만, 방세 독촉을 받으면서 혹시 액수만큼 못 모으면 내가 더 실망할까봐 내겐 말도 없이 이렇게 돈을 모으고 있었나보다.

눈물이 나기 시작하자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눈물 속에 울렁울렁 젖어보이는 방은 썰렁하기만 했다. 방이 아니라 벽이 없는 한데 앉아있는 것 같았다.

눈물을 닦고 풀었던 손수건 뭉치를 다시 처음처럼 싸놓았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 끝 --

 

 

 

 

 (처음 제목은 '비밀과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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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3-1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이라는 이름이 한결 좋아요.
마음에 쌓은 벽이 높아만 가다가
비로소 벽이 와르르 무너졌네요..

hnine 2014-03-17 18:10   좋아요 0 | URL
'벽'이 말씀하신 그런 뜻으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명화 아주머니 (2)

 

 

 

"나 편지 좀 몇자 써줄수 있을라나?"

가끔 아주머니의 부탁에

뭐든 읽고 쓰는걸 좋아했던 나는

얼른 종이랑 볼펜을 들고 왔다

잘 있는가,

난 동상 덕에 잘 있네,

일전에 어쩌구...

두줄 쓰고

"거기꺼정 한번 읽어줘봐"

또 두어줄 쓰고

"뭐라고 썼나 한번 읽어봐"

 

편지 봉투를 쓰는데

받는 사람 이름이 김힝노라신다

이름이 이상하여

알고 보니 김형노

우리 집에 계셨던 8년 동안

참 여러번 써드렸는데

편지 받는 대상은 몇명 되지 않았지만

답장을 받으시는지 그것도 알수 없었지만

정성껏 꼭꼭 눌러 써드렸는데

 

이젠 그럴 일도 없고

내가 아주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도

그것도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주소가 없는 곳에 계시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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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2 2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2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2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3 0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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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2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3 0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3 0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명화 아주머니 (1)


 

자꾸 웃음을 지어내고 있는 것이 어색해보였다

한밤중

아빠가 모시고 온 처음 보는 아주머니

큰 보따리는 아빠가 대신 들고 계셨고

이미 잠자리에 들어있다 불려나온 나와 동생들은

공손히 인사부터 해야했다

엄마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고

할머니보다는 젊어보이는

김명화 아주머니

그날 밤 그렇게 우리집에 처음 오던 날

날 보면서도 웃고

동생들을 보면서도 계속 웃던 아주머니

온지 몇달만에 나가버리던 언니들, 이모들보다

이 아주머니는 웬지 다를 것 같았다

자던 눈 비비고 나왔다가

아주머니 웃음을 분석하느라

열한 살 계집아이는

어느 새 눈이 땡글거렸다

이날 아주머니의 그 헤픈 웃음은

눈물 대신 흘린 웃음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떠나온 고향

두고온 막내 아들

잠시라도 잊고 싶어 만들어내던

정말 힘든 웃음이었다는 걸

 

 

 

 

 

 

 

눈물 대신 흘리는 웃음

더 이상 퍼올릴 웃음이 없을 땐 결국

울기도 하셨지

그때도 눈물은 흘렸을지언정

표정은 웃고 있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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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꽃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3
정연철 지음 / 비룡소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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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때에 비하면 요즘은 거의 안읽고 있다시피 했는데 이 책 소개글을 읽다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언젠가 창작블로그에 올렸던 호두나무 어쩌구 하는 나의 글과 어딘가 공통 부분이 있어보여서였다. 내가 쓴 이야기야 뭐 특별한 서사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나같은 아마츄어 말고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썼을지 궁금해진 것이다.

정연철이라는 이름은 푸른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주병국 주방장>이었던가? 그 작품에서도 아버지와의 갈등이 이해와 화해로 마무리되었던 것 같은데 이 소설에서도 아버지와 주인공 기범이 사이의 갈등이 큰 축을 이루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음주 습관과 가정 내 폭력이 아버지로 대물림 되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점점 커져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결국 집을 탈출하는 주인공. 대학 입시 날, 주인공은 시험장 대신 고향집으로 향한다.

작가의 유년 기억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는 것이 작가의 말을 통해 분명해진다. 아마도 이렇게 작품으로 세상에 내어놓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엉킨 앙금 같은 경험을 이렇게 정리하기 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십여년 동안 고치고 또 고쳤다고 한다. 작가들이 어떤 작품을 쓸때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자신의 경험을 모티브로 하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을텐데 자기의 경험이 소설로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할까. 경험은 작품의 모티브 제공의 수준에서 그쳐야지 작품 전체를 끌고 가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즉, 경험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험 이상의 어떤 창작물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더구나 작가의 유년 시절 이야기는 작가 자신에게는 특별한 경험이겠지만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독자들은 많을 것이라는 걸 예상하면 작가는 좀 더 특별한 사건이나 서사를 입혀야 했을 것이다.

작가의 문장력이나 글을 이끌어가는 솜씨는 기성작가라고 할만큼 되어 보이나 작가만의 개성이나 매력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다.

참고 견디지 않으면 단맛도 볼 수 없는 건가? 아버지와 가난이라는 떫은 맛도 꾹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내게 단맛을 선물할까? (131쪽)

이처럼 6학년 아이의 일기장 내용 많은 부분이 6학년 답지 않아보였던 것이 그 아이의 개성때문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어른의 입장에서 의미를 담으려는 작가의 의도로 보여서 아쉬웠고, 그러다가도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선 여섯 살도 아니고 6학년 아이의 생각이라고 보기 어려울만큼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상황이 우스웠다. 일관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사실에 오히려 쾌재를 부를 정도로 상처가 깊었던 주인공의 마음이 특별한 계기 없이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돌아서게 된 것도 '마법의 꽃'이라는 말 하나로 처리하기엔 부족해보인다. 작가도 많이 고심하지 않았을까 짐작도 해보지만 아무튼 뭔가 개연성이 빠져있다는 느낌이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작품. 많이 지루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억에 남을 감동이 전해지지도 않은 그런 작품.

아쉬움으로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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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에 무얼 구워본지 오래.

일요일 아침으로 뭘 먹고 싶은지 어제 물으니 요즘은 왜 카스테라를 안 해주냐고 그런다.

우유도 없고 꿀도 없고, 그래서 나중에 해주겠다고 말해놓고선.

 

식구들은 아직 자고 있는 오늘 아침, 창 너머로 봄비 오고 있는 것을 내다보고 있자니

카스테라를 만들고 싶어진다.

아무튼 내마음은 이렇게 예측불허, 종잡을수 없단 말이다.

 

우유 없는 대신 그냥 물, 꿀 없는 대신 유자청으로 대치.

오븐 180도 예열부터 시작!

 

1시간 정도 후에 큰 틀로 하나, 미니 틀로 하나가 나왔다.

 

 

 

 

 

 

 

저렇게 단면을 깨끗하게 하느라 깎아낸 가장자리 조각들, 이건 평소 내 차지인데, 이것까지

한 조각도 남김 없이 남편과 아이가 다 먹었다.

만든 사람 입장에서 제일 기분 좋은 경우이다.

완판을 선포하는 쇼핑호스트라도 된 양.

 

설겆이까지 마치고 들어와 책상에 앉았는데

창 밖을 보니 여전히 봄비가 보슬보슬.

맛은 못봤지만 카스테라 맛도 아마 그렇게 보슬보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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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9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4-03-09 12:29   좋아요 0 | URL
기포빼기를 잘 못했는지 구멍이 송송 보이긴 하지만 제 수준에선 저 정도면 준수하지요.
우유가 안 들어가서 덜 부드럽다는 말에, 한번 째려보니 잠잠해지더군요 ㅋㅋ

nama 2014-03-09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스테라하면 떠오르는 옛 일 하나.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는 식구 중에 누군가 몸이 아파서 밥을 잘 못 먹을 때 카스테라를 사다주시곤 했지요. 심지어 기르던 똥개가 몸이 아파 밥을 굶을 때에도 카스테라를 사다가 조금씩 떼어주시곤 했답니다. 그러면 식구도 똥개도 아픈 게 낫곤 했어요. 그렇게 사 먹던 카스테라를 직접 구우시다니...맛이 궁금합니다.

hnine 2014-03-09 15:43   좋아요 0 | URL
카스테라가 보들보들하기도 하고 평소에 안 먹던 것이니 밥이 잘 안 넘어갈때 오히려 입맛을 부를때가 있어서 어머님께서 그러셨나봐요. 뭐라도 먹이시려고...개에게 카스테라 손으로 떼어먹이시는 모습 상상하니 마음이 찡 하네요. 전 식구들 위해서도 그런 정성으로 만들지는 않은 것 같은데...

달사르 2014-03-09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 잘 하시는 분 보면 되게 존경스러워요. 특히나 저렇게 오븐을 이용해서 빵을 만드시는 거는 더더욱요.
ㅎㅎ 군침 도는 포스팅입니다. ^^

hnine 2014-03-09 15:47   좋아요 0 | URL
잘 하지 못해요. 저 혼자 살던 때가 3년 넘게 있었는데 그동안 밥을 직접 해먹은게 열번도 안 되었을 정도니까요. 제가 책임질 식구들이 생기니까 달라지더군요.
카스테라는 계량만 정확하게 하면 발효 같은 과정도 필요없고 재료도 간단한, 아주 간단한 빵이랍니다.
맛있어 보인다고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파는 것과 직접 만드는 것 사이 맛의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빵이 또 카스테라이지요.

2014-03-09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0 0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qualia 2014-03-10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래에 읽어본 알라딘 최고 글 셋 가운데 하나입니다.
알라딘에 글 많이 올라오지만, hnine 님 글 같은 최고는 넘 드물어요.
글 읽고 저도 정말 흡족해지는 거 있죠.
와, 남편 분하고 아드님 최고 좋겠다~
아아 부럽다 부러워~~
저도 옛날에 빵틀에다가 빵 많이 만들어 먹었다는~^^
hnine 서재에서 풍겨나오는 카스테라 향에
옛날 추억에 빠져듭니다.
정말 감사하네요. ^^*

hnine 2014-03-10 05:18   좋아요 0 | URL
qualia님 칭찬에 카스테라를 매일이라도 굽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니지, 너무 자주 굽는것보다 오랜만에 구워주니 식구들이 더 맛있게 먹더라고요^^
달걀, 밀가루, 설탕이 따로 있을 땐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것이, 함께 섞어 구우면 그렇게 달콤하고 기분 좋은 향의 무엇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고 재미있지요.
앞에 댓글 주신 분들도 그렇고 qualia님께서도 그렇고, 카스테라에는 그냥 입으로만 먹을 수 없는 추억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qualia님 빵 많이 만들어드신 경력자라니, 갑자기 위의 사진을 다시 보게 되는데요? 고수 앞에 내어놓기 부끄러운 실력 아닌가 해서요. 언제 qualia님의 빵 얘기도 좀 들려주세요.

아무개 2014-03-10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적 외갓집에서 얹혀 살때
외할머니가 전기 프라이판에 해주시던 노랗고 두툼한 카스테라가 생각나네요.
30년전 그 옛날...강원도 원주 촌할머니가 그런거 만드는걸 어떻게 아셨는지.
역시나 카스테라는 추억을 부르는군요. ^^


hnine 2014-03-10 13:50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남편과 그 얘기 했네요. 옛날에 오븐 없던 시절에 카스테라를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을까 에 대해서요. 그때는 먹기만 했지 만드는 방법을 눈여겨보지 못했고, 물어볼 분들은 이제 안계시니 말입니다. 아무개님은 만드는 과정을 보셨군요. 전기프라이판에... 요즘도 전기밥솥을 이용해서 만들기도 하더라고요. 달걀 휘젓기는 손으로 하셨겠지요? 그거 손 무지 아픈데...
카스테라에 얽힌 추억담 듣는 것도 재미있어요 ^^

하늘바람 2014-03-10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야 넘 맛나보여요 저도 함 도전해볼까봐요

hnine 2014-03-10 13:50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아이들 먹이기에 특히 좋아요. 해보세요. 재료도 간단하고요.

여울 2014-03-10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슬


보슬보슬


보슬보슬....참 좋은 말입니다. 봄에도 입에도...그리고 마음에도

hnine 2014-03-10 13:51   좋아요 0 | URL
보슬빵이라고 부를까요 이제부터? ^^
봄인데 전 왜 여전히 스웨터를 두르고 지내는지...노화의 현상이려니 합니다 ㅠㅠ

세실 2014-03-10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유가 없어도, 꿀이 없어도 카스테라 가능하구나......
나가사키에 직접 가서 먹어본 카스테라, 참 맛있던데요. 왠지 나인님 카스테라도 비슷한 맛 일듯^^

hnine 2014-03-10 13:56   좋아요 0 | URL
박력분이 아니라 강력분으로 만들어 질감은 좀 거친듯 하면서도 더 폭신하게 만드는게 나가사키 카스테라라고 하더군요 (지금 막 검색해본 결과 ^^). 저는 그냥 집에 있는게 박력분이면 박력분으로, 중력분이면 중력분으로, 강력분이면 강력분으로. 그때 그때 가진 재료가지고 만들어요. 어제는 중력분으로 만들었지요. 설탕이 들어가니 꿀은 단맛보다는 달걀 특유의 냄새 잡는 목적으로 넣어주는 것 같아요. 우유도 두 숟가락 양만 들어가도 되어서 가볍게 무시해버렸지요. 카스테라의 미국 버젼이 스폰지 케잌이라네요. 이것도 방금 검색하다가 알았어요. 평소에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카스테라와 스폰지 케잌이 도대체 뭐가 다를까 하고요.

무지개모모 2014-03-1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모양이 빵집에서 파는 빵처럼 예뻐요!
만화 <닥터 슬럼프>에서 음식 사진을 넣으면 그대로 음식이 나오는 밥통이
슬럼프 박사 발명품으로 나오는데 지금 저에게 그 물건이 필요합니다ㅠ.ㅠ

hnine 2014-03-10 22:44   좋아요 0 | URL
이렇게 재미있는 댓글이라니요 ^^
그 만화의 닥터 이름이 "슬럼프"라니 맘에 들어요. 제 이름 하고 싶은데 한발 늦었네요 ㅠㅠ
그건 그렇고 전 지금 언젠가 무지개모모님 서재에서 본 케이크가 눈 앞에 어른거려요.

무스탕 2014-03-10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일단 집에 오븐이 있다는게 신기;;하고
집에서 그 오븐을 이용해서 빵을 만들어 낸다는게 더 신기하고
그렇게 만든 빵을 한 조각도 못 드셨다는 나인님대신 제가 슬퍼요 ㅠㅠ
맛있는건 꼭 뺏어 먹어야 더 맛있는건데 그걸 못하셨다니.. ㅠㅠ
완판을 외치는 쇼호스트라니, 빵- 터졌어요. ㅎㅎㅎ


hnine 2014-03-10 22:48   좋아요 0 | URL
오븐은 이 아파트에 이사오니 전자렌지겸 오븐이라는 물건이 부엌에 강제로(!) 설치가 되어 있더군요.
식구들이 잘 먹어서 제가 먹을게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 즉 아무도 안 먹어서 제가 만들어놓고 저혼자 며칠에 걸쳐 다 먹어는 경우보다 백배는 더 나아요. 얼마나 비참한지 ㅠㅠ (이런 경험도 많아요).
제가 정말 만들고 싶은 빵은 식빵, 즉 발효빵인데 아직도 자신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