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 - 문정희 산문집
문정희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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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라는 이름. 한국 시단에서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한다. 시인으로서의 삶을 일찍 시작하기도 했고 지금까지 많이 쓰기도 했다. 대외적인 활동도 부지런히 하는 시인이다. 50대에 이르러서까지 시인으로서의 열정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듯 하니 거칠 것 없는 활보는 계속 될 것 으로 예상되는 시인.

그런 시인으로서의 문정희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도끼' 삼아 녹녹치만은 않았을 생을 부여잡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것은 늘 나를 궁금하게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시인 문정희에게 그것은 '문학'이었다. 자신을 자신으로 유지시켜주는 것, 앞에 나타난 장애물을 헤치고 나가게 해주는 수단, 끝까지 놓지 않고 손에 꼭 쥐고 가야하는 물건. 도끼.

책의 내용은 기대만큼 무겁진 않았다 (!). 열심히 활동하는 시인이니 외유의 경험도 많을 터. 거기서 얻은 감상과 나름대로의 깨우침이 얼마나 많았으랴. 책 첫장의 작가의 말에 이 책은 고독과 자유와 방황, 그리고 만남과 감각에 대한 산문이라고 했는데 너무나 뻔한 단어들의 나열이기에 눈여겨 보지 않았다가, 책을 다 읽고 보니 정말 그렇다는 것을 알겠다. 고독의 댓가로 치루어야 하는 자유. 고독하지 않은 동안 인간은 자유를 갈망한다. 자유를 누리는 동안은 고독에 운다. 세계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가진 '만남', 삶이라는 여정 속의 '만남'. 저자에게 그 중 제일은 미당 서정주와의 만남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시인의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져 있으니 절대 지루할 리 없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의견이다. 거침없이, 보통사람들의 감각으로는 힘든 감정의 색깔을 시원하게 터뜨려 주는 저자의 문학성은 대단하지만, 뭔가 익어갈수록 그 표현이 화려하고 시원시원하기보다는 더 절제되고 단순해지는, 깊이 있고 무게가 있지만 결코 장황하지 않은, 그런 멋은 느끼지 못했다. 내가 바라는 문학은, 글은, 그렇게 읽혀지는 문학이고 글인가보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10/10 정도 초감도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시인이 되는 것일까? 남들보다 확실히 더 예민한 수용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을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은 타고난나고들 하지 않나. 그리고 이것을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초감도 감성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표현할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은 이렇게 다른 시인들의 글을 읽으며 해소한다.

"누가 승리를 말할 수 있으랴-극복이 전부인 것을!"

살면서 이런 생각을 안하며 사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렇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릴케 정도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이 너무 스르륵 읽혀서, 기대한만큼만 느낄 수 있었기에, 별점을 세개 주고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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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터는 단 한 가지 방법 블랙 로맨스 클럽
앨리 카터 지음, 곽미주.김은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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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아마존 청소년 소설 베스트셀러
워너 브라더스, 드류 배리모어 감독으로 전격 영화화!"

 

이런 찬사를 받고 있고, 제목도 특이하고, 올라온 평들도 대체로 좋다.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미국에선 2010년에, 우리 나라에서 번역본은 작년에 나왔고, 원제는 Heist society (훔치기 클럽?). 원제이 비해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번역본 제목도 재미있다.

미국에서 명문 기숙 학교에 다니고 있는 열 다섯 살 소녀 카타리나 비숍. 배후 조작에 의해 어느 날 학교에서 빠져나와 어떤 사건에 가담하게 된다. 바로 미술작품을 훔치는 사건이다. 물론 혼자 터는 것은 아니고 고만고만한 다른 아이들 다섯 명과 함께, 그리고 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여섯 명의 아이들의 특징은 모두 가족들이 이미 이런 훔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어릴 때부터 보면서 자라서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일이 새삼스럽지 않고 익숙하다는 것이다.

카타리나 (줄여서 '캣')는 아버지가 훔치지 않은 미술품이 아버지가 훔친 것으로 오해를 받자 그 오해를 풀어주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나의 궁금증. 캣은 아버지가 정말 훔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지. 나는 끝까지 그게 의심스럽던데 말이다. '아버지'이기 때문일까?)

함께 가담하기로 한 다섯 명의 아이들의 구성은 대부분 친척, 그리고 캣에 의해 길거리 캐스팅된 아이가 한명 있다. 십대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이들의 대화가 보통 십대들 같지 않다. 은유, 함축 등의 수준이 웬만한 어른들 뺨 친다고 할까? 번역이 잘 되었더라면 훨씬 더 이런 점을 잘 살렸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사실 번역에 대해 유감이 많다. 두 번역자의 공동 번역인데, 지루한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책에 몰입하기가 참 힘들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같은 부분을 여러번 읽기도 하고 앞 내용을 다시 들춰보기도 하고. 충분히 책장이 휙휙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드류 배리모어가 주인공이 아니라 감독으로 이것을 영화로 만든다니. 책을 읽은 후 영화로 보면 책만큼 재미가 덜 하다는게 보통이지만 이 영화만은 책보다 재미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 번역본 보다는.

마지막까지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비실리 로마니'는 과연 누구일까? 캣의 아버지가 훔치지 않았다는 것을 캣은 어떻게 확신하는가 하는 의문과 똑같은 정도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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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귀신 창비청소년문학 46
남상순 지음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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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남상순 작가는 신인 작가가 아니다. 청소년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도 아니다. 1992년에 문화일보로 등단,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적도 있는 작가이다. 이제는 제목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도 이 작품을 읽기 전, 다른 작가들과 함께 한 단편집에서 그녀의 작품을 처음 읽었고, 나쁘지 않은 느낌을 받았었다.

200쪽이 조금 못되는 장편 소설인데 제목을 보면 심각하고 진지하기보다는 발랄하고 유쾌한 내용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게 한다. '자양로 56길 20번지는 빈 집이다' 라는 첫장의 제목처럼 주인공인 고등학생 여자 아이가 경상도에서 서울로 막 올라와 자양로 56길 20번지를 찾아 다니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앞으로 그림을 전공으로 하고 싶은 이 아이는 서울의 큰아버지댁에 머물며 미술 학원을 다니게 되는데 경상도 사투리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면서 어떤 때는 그냥 사투리를 숨기지 않고 말하는 등, 말하기의 갈등, 다시 말하면 적응의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된다.

여기에 주인공의 심리에 부응하는 배경으로 큰아버지집 동네의 빈집이 나온다. 잘 지어져 한때 한 가족이 살던 이 곳이 빈집으로 버려지기 까지의 과정, 그곳에 산다는 사투리 귀신의 이야기들이 도입되어 사투리와 표준말, 내것과 남의 것, 변화와 적응의 문제들을 연관시켜본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어색하기 그지없다. 왜일까.

뚜렷한 캐릭터를 갖지 않는 인물들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과 또래 친구들은 물론이고, 노란나무 대문집 할머니, 영교, 영교의 동생, 자살한 색시, 수퍼 아줌마, 큰어머니, 큰집의 세 사촌들. 이들이 모두 꼭 필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갸우뚱 하게 된다. 많은 수의 인물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등장한 인물들의 특징을 더 분명히 살려주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주제도 더 잘 드러날 수 있어야 했다. 많이 아쉽다.

또한, 주인공의 사투리가 과연 어느 지방 사투리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경상도에서 올라왔으니 경상도 사투리여야 하는데, 내가 보기엔 전라도, 강원도, 경상도 사투리가 모두 섞인 것 같다.

그동안 한번도 언급이 없었던 '연'을 마지막 결말에 갑자기 등장시켜 모든 문제점의 해결점으로 삼는 것은 또 어찌나 어색한지.

고등학생들의 대화 속에 요즘 아이들의 말투와 단어는 잘 들어가 있다. 작가가 많이 신경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작품 전체의 일관성 없음과 뻥뻥 뚫린 듯한 구성은, 고등학생들의 일기나 에피소드 여러개를 모아 이렇게 저렇게 조합하여 탄생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쪽으로까지 상상하게 한다.

창비에서 나온 작품인데, 작가에게도, 출판사에게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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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앉아 창 밖으로 길 건너 상점들을 내다본다

손님도 없는데 치킨 집 남자는 나름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역시 주인 혼자 지키고 있는 옷가게

그 옆 미장원에만 손님이 앉아 있었다

손님이 없어 쓸쓸해하면 안되는데

생각하다가

창 밖으로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을 내다보고 있는 행위 자체가

쓸쓸함, 그것임을 알았다

 

 

2013.1.17

 

 

 

 

 

 

 

 

 

 

 

 

 

 

사람들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산을 보곤 하는 것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

저 빈 잔디밭을 굴러가는 비닐봉지같이

비닐봉지를 밀고 가는 바람같이 외로운 줄은 알았어도

알았어도

다시 외로운,

새로 모종한 들깨처럼 풀없이 흔들리는

외로운 삶

 

 

 

- 장석남 詩集 <젖은눈>에 실린 '자화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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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1-17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삶은 어찌보면 외로움의 연속일수도......
문득 문득 군중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떠오르고는 합니다.
분주함속의 외로움, 쓸쓸함이여!

hnine 2013-01-18 05:12   좋아요 0 | URL
쓸쓸함을 느끼는게 이상한게 아니라, 말씀하신대로 삶이라는 것이 외로움의 연속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가끔씩 느끼는 충만함과 따뜻한 감정에 더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고독은 정말 군중 속에서 느낄 때가 많지요.
세실님은 쓸쓸함을 너무 오래 끌고 가지 않는 현명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잠깐씩만 느끼면 좋겠어요.

이진 2013-01-1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손님없는 가게를 보면 왠지 측은한 마음이 찾아들곤해요.
장사는 잘 될까, 혹 쓸쓸하시진 않을까...
어쩌면 저를 보는 거 같아서 그런 걸지도요...
나인님 좋은 밤 되세요!

hnine 2013-01-18 05:16   좋아요 0 | URL
좋은 밤 되라고 해주셨는데 4시도 안되어 잠이 깼습니다. 어제 밤 좀 일찍, 10시쯤 아이 옆에서 잠이 들었거든요.
저희 집이 새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에 있다보니 주위에 새로 생긴 상점들이 많아요. 주민 수에 비해 너무 많은 상점들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저 많은 카페들, 저 많은 음식점들, 학원들...잘 되어야 할텐데, 괜한 걱정을 할때가 많지요.
가만 생각해보면 쓸쓸할 때 음악도 찾아듣게 되고, 글도 끄적거리게 되고, 이런 저런 생각도 하게 되고...우리들의 감성은 오히려 풍부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좋은 점도 있구나~ ^^

같은하늘 2013-01-18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워도 좋으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싶어요.
방학중인 두 아들들과 보내는 하루가 참말로 힘드네요. -.-;;

hnine 2013-01-18 05:21   좋아요 0 | URL
우리들 심리가 이렇다니까요. 사람들과 부대낄땐 좀 혼자 있었으면, 막상 혼자 있을 땐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그래도 혼자만의 시간은 꼭 필요해요. 그런데 그게 내가 나서서 만들지 않으면 그냥 주어지지 않더라고요.
아이 하나도 저는 힘든데, 두 아들들 데리고 쉽지 않으시지요. 이제 좀 더 크면 그렇게 엄마를 찾지 않는답니다.

프레이야 2013-01-1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젖은눈, 이 시집을 나인님 소개로 샀던가요, 제가요? 기억이 가물거려요. 암튼 시는 좋아요. 나인님의 단상은 더 좋구요. 손님없는 가게 분주한 주인장, 그걸 바라보는 시선이 전 왠지 따스하네요. 좋은하루 보내세요^^

hnine 2013-01-18 22:34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시집을 한번 페이퍼에 올린 적이 있긴 하지요. 누구 소개로 구입하셨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영광일겁니다 ^^
오늘 서울 다녀왔는데 한강이 꽝꽝 얼었더라고요. 집을 나서면 한강을 건너야 어디든 갈 수 있었던 (집이 한강 중간에 있어서요 ㅋㅋ) 그때에는 아무 느낌없이 보던 한강인데 오랜만에 보니 참 크고 넓다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고요. 추운 날, 글이라도 따스하게 느껴지셨다니 그 말씀이 또 저를 따뜻하게 합니다.

꿈꾸는섬 2013-01-1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오랜만이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잘 지내고 계시죠? 근데 쓸쓸하신거에요? 전 요새 쓸쓸함을 즐기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고 외롭거나 쓸쓸한 마음이 안 드는 건 아니더라구요.^^

hnine 2013-01-18 22:37   좋아요 0 | URL
꿈섬님,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믿고 있었어요. 제 자리에서 모두들 열심히 살고 계시리라, 한동안 안보이시는 서재 친구분들 생각할때마다 그리 생각했지요. 저도 잘 지내고 있었답니다. 쓸쓸한건, 뭐 늘상 느끼는 일이고요. 저의 혈액형은 "쓸쓸형"인가봐요 ^^
독서지도 공부도 계속 하시나요? 읽으신 책도 많으실텐데 시간 나실때 조금씩 조금씩 들려주세요.
 

 

 

 

 

 

오랜만에 아침으로 빵을 구운 날.

버터가 없길래 대신 식용유 대충 넣고, 설탕 양을 줄이고 대신 만들어놓았던 감잼을 넣었다

난 음식을 할때 여유있게, 푸짐하게 하는 편이 아니라, 남지 않게, 한 두번 먹을 분량만 가늠하여 하는 편이다. 저 날도 한 사람당 두개씩 계산해서 딱 여섯개 만들었다. 남편은 나의 이런 습관이 불만이다. 좀 남더라도 많이 해놓으라는데 남편부터 시작해서 우리 집 식구들 입이 짧기도 하고, 나는 음식 남아 버리는 거 정말 못한다. 냉장고 속 음식 재료 '해치운다'는 말도 싫다. 아까운 음식, 귀한 음식인데...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는 어디나 그럴까? 까페 천국이다. 여기도 까페, 저기도 까페.

아줌마 티 내느라 혼자서는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가 고작이면서, 가끔 식구들과는 저렇게 호사를 누린다. 날이 추워서, 집에서 제일 가까운 까페에 갔다. 녹차 아이스크림은 그냥 서비스로 받았는데 씁쓸하다고 아무도 안 먹어서 집에 가져왔다. 다음 날 점심 먹고 내가 디저트로 낼름.

 

 

 

 

자기 먹을 거 다 먹고나자 아이가 좀이 쑤셔하는 것 같고, 남편과 나는 좀 더 앉아 있고 싶고.

가져갔던 카메라를 아이에게 주고 지금 이 장소에서 네가 찍고 싶은 곳을 딱 한장만 찍어오라고 했다. 두장도 아니고 딱 한장. 그래서 아이가 찍어온 사진이다. 찍은 이유를 물으니, 항상 멈춰져 있는 시간이라서 찍었단다.

 

 

 

 

 

나도 한장.

비어있는 자리. 채워지고 싶은 자리.

비어있는 공간은 보는 나의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쓸쓸해보이기도 하고, 여유있어 보이기도 한다.

 

 

 

 

 

집에서 심심해하던 아이가 어느 날 학교에서 배운 것 복습해본다며 바느질을 했다. 박음질, 홈질, 감침질 연습이다. 처음엔 남자가 이런것도 배워야 하냐고 툴툴거리며 시작하더니, 너 진짜 잘 한다고 칭찬을 막 해주었더니 이번엔 이런 걸 만들어온다. 속도 채워서 제법 빵빵하게.

 

 

 

 

 

 

 

남편이 이 사진 보더니 자기에게도 보내달란다.

"이 사진, 탐나요? 갖고 싶으면 오백원!"

썰렁한 개그도 날려보고.

 

겨울은 간다.

방학때 더 바쁜 우리 나라 아이들. 내 아이는 그냥 팡팡 놀리기만 하는, 이게 더 잘난 척 하는거 아닌가 가끔씩 그런 생각도 들지만 그냥 이렇게 가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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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1-1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다린인 뭔가 달라요. 멈춰있는 시간을 눈여겨 보다니, 그리고 저런 이쁜 소품을 바느질하는 솜씨하며^^ 빈 의자가 폭신해보이는 가족풍경이에요, 나인님.

hnine 2013-01-12 17:46   좋아요 0 | URL
늘 좋은 마음으로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느질 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도 나고 제대로 하기나 할까 했는데 생각보다 끝까지 마무리 하더라고요. 저는 학교 다닐때 저런거 잘 못해서 엄마께서 숙제 대신해주고, 그러는 아이였는데 ^^

bookJourney 2013-01-12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스한 풍경이에요. 다린이 마음 씀씀이는 hnine님을 닮은 듯. ^^

hnine 2013-01-12 22:01   좋아요 0 | URL
저런 식의 애교(^^)를 부릴때 제가 잘 받아주니까 서로 그런 면에서는 주고받기가 잘 되는 것 같아요. 마음 씀씀이에 있어서는, 다른 건 모르겠는데 잘 삐지는 것, 눈물 잘 흘리는 것, 그건 닮은 것 같아요.

BRINY 2013-01-12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단 고른 센스도 멋진걸요~
학교때 저런 숙제들, 이모, 엄마, 친구들이 거의 다 해줬어요. 제가 하는 걸 보다 못해!ㅋ

hnine 2013-01-12 22:03   좋아요 0 | URL
원단이 뭐냐하면요, 계룡산 관광기념 손수건 (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파는거 있죠?)이랍니다 ㅋㅋ 다행히 글자 있는 부분이 아니고 무늬가 있는 부분을 오려서 만들었네요.
저도 제가 숙제를 해달라고 부탁하기 전에 엄마께서 먼저 해주시겠다고 하셨던걸 보면 BRINY님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나봐요 ^^

마녀고양이 2013-01-1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어떻게 찍으신거예요?
저도 탐나요, 저 사진... 완전 멋져요.

사실 사진마다, 완전 제 스타일. 시계요, 전 저런 시계 너무 좋아해요.
그리고 첫 사진의 빵두,,, 아아....... ㅠㅠㅠㅠㅠㅠㅠ.
전 손이 커서, 잔뜩 만들구 버리고,, 저희 아파트는 음식 쓰레기 대란 중인디.
언니의 손크기가 저는 너무 부러워요. 배워야징... 아하하.

hnine 2013-01-14 07:26   좋아요 0 | URL
마지막 사진도 다른 사진들처럼 그냥 찍었어요. 마침 아이가 입고 있는 옷 색깔이 검은 색이어서 손과 하트가 도드라져 보이나보네요. 평소에 자주 가는 카페도 아니면서 사진 때문에 특정 카페 선전이 되는 것 아닌가 했는데 뭐, 그냥 넘어갑니다 ^^
제가 만든 빵은 사실 맛이 별로여요. 이것 저것 줄여 넣고 어떤 것은 더 넣고, 몸 생각 한답시고 그래서 말이지요.

블루데이지 2013-01-13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스런 아이와 그런 사랑스런 아이로 키우신 hnine님이 함께 만들어가는 가족이야기가 참 따뜻합니다! hnine님의 일상을 보니 마음이 포근해지네요..많이 행복하시지요?

hnine 2013-01-14 07:29   좋아요 0 | URL
에궁, 불루데이지님도 아시겠지만 어쩌다 보여지는 한 컷일 뿐이지요. 저러고 돌아서서는 바로 큰소리 내기도 하고, 화도 내고, 그런답니다. 아이가 사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키우다 보면 그 아이때문에 속상할때도 많고요. 그쵸? ^^
사진 속의 멈춰진 시계처럼, 잠시라도 시간을 붙들어놓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찍고, 기록에 남기고, 그러고 있었네요.
월요일 하루, 좋은 시작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 서울에 가야하는 일이 있어서 지금 저녁밥 미리 해놓으면서 하던 일 마무리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다락방 2013-01-1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일 첫번째 사진이 좋아요, 나인님. 갓 구워진 빵. 마음이 포근해져요. 훗.

hnine 2013-01-15 00:0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빵 굽는거 한번 배워보세요. 먹기 위해서도 좋지만, 아마 다락방님의 감성과 글솜씨라면 글감이 마구 생겨날지도 몰라요 빵 만드는 과정에서요.
빵 굽는 과정이나, 빵 냄새, 빵 먹는 느낌, 분위기...마음이 포근해지는 것도 맞고요. 무엇보다도 몇g 계량해서 하기때문에, 하라는대로만 하면 실패할 확률이 적어요. 발효빵의 경우엔 또 다른 얘기지만요.

같은하늘 2013-01-17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 굽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듯 해요~~~
우리 아이도 바느질을 배워 낑낑거리며 숙제하겠네요..ㅎㅎ
늦었지만 새해복 만땅~~

hnine 2013-01-18 05:22   좋아요 0 | URL
빵 굽는 냄새라고 하시니 같은하늘님의 고구마 케잌이 생각나네요.
여전히 아이들과 책읽기도 부지런히 하실테고 맛난 음식 손수 만드시며 지내실텐데 그 얘기들 다 어디에 풀어놓으시고 여긴 잘 안오시나욧! ^^
반가와서 투정 한번 부려봤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같은하늘 2013-01-18 00:12   좋아요 0 | URL
그 많은 얘기들 아무데도 풀어놓지 못하고 있으니 안심하세용~~ㅎㅎ
잠시 다른거 하느라 바빴는데, 이것저것 하시면서도 알라딘 활동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참말로 존경스러웠답니다.^^

꿈꾸는섬 2013-01-1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침에 갓 구운 빵이라니 정말 맛있겠어요.^^
다린이의 사진도 좋구요.

hnine 2013-01-18 22:37   좋아요 0 | URL
꿈섬님 불러들이느라고 제가 오랜만에 빵 사진 올렸나봐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