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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귀신 ㅣ 창비청소년문학 46
남상순 지음 / 창비 / 2012년 8월
평점 :
이 책의 저자인 남상순 작가는 신인 작가가 아니다. 청소년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도 아니다. 1992년에 문화일보로 등단,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적도 있는 작가이다. 이제는 제목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도 이 작품을 읽기 전, 다른 작가들과 함께 한 단편집에서 그녀의 작품을 처음 읽었고, 나쁘지 않은 느낌을 받았었다.
200쪽이 조금 못되는 장편 소설인데 제목을 보면 심각하고 진지하기보다는 발랄하고 유쾌한 내용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게 한다. '자양로 56길 20번지는 빈 집이다' 라는 첫장의 제목처럼 주인공인 고등학생 여자 아이가 경상도에서 서울로 막 올라와 자양로 56길 20번지를 찾아 다니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앞으로 그림을 전공으로 하고 싶은 이 아이는 서울의 큰아버지댁에 머물며 미술 학원을 다니게 되는데 경상도 사투리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면서 어떤 때는 그냥 사투리를 숨기지 않고 말하는 등, 말하기의 갈등, 다시 말하면 적응의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된다.
여기에 주인공의 심리에 부응하는 배경으로 큰아버지집 동네의 빈집이 나온다. 잘 지어져 한때 한 가족이 살던 이 곳이 빈집으로 버려지기 까지의 과정, 그곳에 산다는 사투리 귀신의 이야기들이 도입되어 사투리와 표준말, 내것과 남의 것, 변화와 적응의 문제들을 연관시켜본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어색하기 그지없다. 왜일까.
뚜렷한 캐릭터를 갖지 않는 인물들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과 또래 친구들은 물론이고, 노란나무 대문집 할머니, 영교, 영교의 동생, 자살한 색시, 수퍼 아줌마, 큰어머니, 큰집의 세 사촌들. 이들이 모두 꼭 필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갸우뚱 하게 된다. 많은 수의 인물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등장한 인물들의 특징을 더 분명히 살려주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주제도 더 잘 드러날 수 있어야 했다. 많이 아쉽다.
또한, 주인공의 사투리가 과연 어느 지방 사투리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경상도에서 올라왔으니 경상도 사투리여야 하는데, 내가 보기엔 전라도, 강원도, 경상도 사투리가 모두 섞인 것 같다.
그동안 한번도 언급이 없었던 '연'을 마지막 결말에 갑자기 등장시켜 모든 문제점의 해결점으로 삼는 것은 또 어찌나 어색한지.
고등학생들의 대화 속에 요즘 아이들의 말투와 단어는 잘 들어가 있다. 작가가 많이 신경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작품 전체의 일관성 없음과 뻥뻥 뚫린 듯한 구성은, 고등학생들의 일기나 에피소드 여러개를 모아 이렇게 저렇게 조합하여 탄생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쪽으로까지 상상하게 한다.
창비에서 나온 작품인데, 작가에게도, 출판사에게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