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6 - 5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6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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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대화 할 것 없이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기 위한 설명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읽기 진도가 잘 안나가던 15권에 비해 이번 16권은 읽기가 훨씬 수월했다.

서희 나이 이제 48세. 여전히 기품있고 아름답다. 간도로 이주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함으로써 조준구에게 잃은 평사리 땅을 되찾고 조준구에 대한 복수를 해냄으로써 삶의 목표를 이루어낸 서희는 진주로 돌아와 정착하였고 큰 아들 환국은 공부를 마치고 결혼하여 손주까지 보았으며 작은 아들 윤국도 일본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독립 자금을 대주는 일을 은밀하게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일본인들과 좋은 관계도 유지하고 있는 서희이지만 늘 쓸쓸하다. 옆에서 시중드는 사람이야 있지만 길상도 없고 봉순도 없이 살아온 세월이 많다. 봉순은 오래 전에 이미 목숨을 스스로 끊었고 부부이지만 길상과 함께 지내는 시간보다 떨어져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길상 역시 외롭기는 마찬가지. 선택하지 않고 선택당한 결과일까. 자기와 맞는 자리는 따로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이기 때문일까.

 

"아버지는 참 외로운 분 같습니다."

환국이 말문을 열었다.

"관음상을 본 감상인가?"
"네."

"자네 말이 맞네. 원력 (願力: 부처에게 빌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을 걸지 않고는 그같이 그릴 수는 없지. 삶의 본질에 대한 원력이라면 슬픔과 외로움 아니겠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

"그렇게 오랫동안 붓을 들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세월인 게야. 자네 부친의 세월 말일세. 식을 맑게 간직하고 닦아온 자네 부친의 세월. 사람들은 대부분 본래의 때묻지 않는 생명에 때를 묻혀가며 조금씩 망가뜨려가며 사는데 결국 낡아지는 것을 물리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생명은 과연 물리적인 것일까?"

지감은 자신에게 묻듯 말했다. (402쪽)

 

절에서 자랐던 길상의 원래 꿈은 금어 (金魚: 단청이나 불화를 그리는 일에 종사하는 승려) 가 되는 것이었다. 그 길에서 떠나와 살아온지 오래. 하지만 무슨 맘으로 원래의 꿈을 모아 도솔암에 관음탱화를 그리게 되었고, 그것을 와서 본 아들 환국이 도솔암 주지인 지감 스님과 나눈 대화이다.

오랜 원력의 결과, 외로움이 묻어나는 그림을 그린 길상. 그 외로움을 읽는 아들.

길상은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삶이 그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향해가는 토지 읽기. 쓰는 사람도 있는데 읽는 것이 뭐 어려우랴 하며 읽어오고 있다.

아직 네권이 남아있지만  다 읽고난 후 소감은 결국 이것이 되지 않을까 하여 미리 이번 리뷰의 제목으로 써보았다. 다 읽고나서는 물론 바뀔 수도 있겠지만,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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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숲 - 긴팔원숭이 박사의 밀림 모험기
김산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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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숲' 은 비가 많이 오는 숲, 즉 열대 우림을 말한다. 

과학서적? 소설?

동물학자 김산하가 인도네시아 열대 우림에서 긴팔원숭이를 연구한 이야기. 순수과학서적보다 재미있고, 소설 못지 않는 재미와 가독성이 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출판되었을 당시부터 저자 인터뷰를 듣고 알고 있었는데 들으면서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일단 저자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짐작했다. 책을 읽어보니 역시 그렇다.

 

 어릴 적부터 나는 당돌한 인생철학이 하나 있었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말자. 왜 먼 미래 때문에 소중한 현재를 낭비하나? 그냥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피고, 주변 시선일랑 싹 무시하고 하는 일을 즐기자. 학원에서 몇 년 앞을 예습하던 징글징글한 동년배들에 대한 반감의 표시였을까? 뭐가 됐든 나는 동물이 좋고, 좋은 게 당연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적성 검사의 장래 희망을 묻는 칸에는 늘 동물학자라, 서명하듯이 적어 내곤 했었다. 그리고는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다. (43쪽)

 

대학 진학할때 동물에 대한 공부를 하는 곳이면 아무데나 원서를 써달라고 해서 가게 된 자원동물학과.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거기서 배우는 것은 얼마나 동물을 인간에 유리한 자원으로 잘 이용할까에 집중되어 있는 것에 실망했고 그러던 참에 동물학과 최재천 교수가 연구하는 분야를 알게 되어 (동물 행동, 생태) 내가 하고 싶은건 이런거다 싶었다고 한다. 대학원 진학을 동물학과로 했고 지도교수인 최재천 교수로부터 영장류에 대한 연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언젠가 사석에서 나의 이런 연구 주제를 설명한 일이 있었다. 뜬금없이 받은 질문은 대체 이런 연구를 왜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긴팔원숭이가 밀림에서 뭘 먹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그러게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사실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우리에게, 눈앞에 있지도 않고 이 나라에 속하지도 않은 무슨 원숭이의 밥 먹는 얘기는 더할 나위 없이 우리와 무관한다. 내 당장의 일상은 도시의 건물 속에, 내 책상과 모니터에서 벌어진다. 그런 직접적인 의미에서라면 물론 긴팔원숭이와 우리 사이에 상관관계 따위는 없다.

하지만 어린이 책을 들춰 보라. 숲 속의 호랑이가 어흥 포효한다. 예쁜 색깔의 음료수를 골라 보라. 열대의 태양 아래 영근 과일이 상큼하다. 영화관에 가서 앉아 보라. 울창한 정글에 사는 종족이 등장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살펴보라. 열대산 원두의 포장지에 앵무새가 날개를 편다. 가구점에서 원목을 두들겨 보라. 보르네오 한가운데에 섰던 나무일지 모른다. 그냥 리모컨을 눌러 보라. 악어와 아나콘다가 아마존에서 씨름판을 벌인다. 그리고 숲을 깊이 들이켜 보라. 지구의 허파에서 내뿜은 산소의 맛을 보라. (62-65쪽)

 

우리는 주위 많은 것들이 시작은 원초적인 자연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고 산다. 자연에 대해 연구하는 것에 대해 "왜 하느냐"고 묻는다.

실제 생물학과 연구의 대부분은 저자처럼 동물, 식물등 개체를 대상으로 하기보다 생물을 이루는 세포, 그보다 더 내려가 DNA, RNA, 단백질의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저자와 같은 분야를 하는 사람은 아주 아주 드물고 눈길을 받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 저자의 다음과 같은 교감의 순간은 맛볼 기회가 없다.

동물들은 대개 정신없이 자기 일을 하거나, 도망가거나, 무관심하다. 영장류는 쳐다보는 자를 쳐다본다. 대체 넌 뭐 하는 녀석인고? 한심한 듯 묻는 눈초리로 대면하고 응시한다. 노트에는 횟수와 빈도 등의 수치가 기록되지만, 머릿속에는 심상과 기억이 남는다. (113쪽)

 

자기의 연구대상과 눈 맞춤하고 서로의 마음을 읽는 행위란 얼마나 귀한 경험일까.

 

그가 긴팔원숭이 연구를 위해 들어가서 산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열대 우림은 전기도 낡은 물레방아로 돌리는 수력발전기로 겨우 충당하고 오락거리나 장식품, 편의 설비라곤 아무 것도 없는 지역이다.

핸드폰과 인터넷의 디지털 그물망이 쳐지지 않은 녹색 사각지대, 박테리아처럼 번식하는 정보와 고삐 풀린 자기 중계로부터 자유로운 삶의 성소였다. (237쪽)

 

그래서 컴퓨터 화면이 아닌 눈 앞의 세계에 충실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빈 방을 물끄러미 둘러보았고, 벽에 붙여 놓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본 책은 또 보고, 바닥에 떨어진 이파리는 주워서 돌리고 쓰다듬었다. 앞마당에 부는 산들바람에 내 다리털이 흔들리는 것을 보다가 눈을 들어 야자나무 잎의 야성적인 움직임에 감탄했다. 끊임없는 벌레의 이민 행렬을 지켜보았고, 음식을 바라보며 식사하였다. 고양이의 기지개를 따라 하고, 물고기가 첨벙거리며 남긴 동심원을 따라갔다. 햇빛이 빨래를 말리는 속도를 목격하고, 달빛으로 동심원을 따라갔다. 햇빛이 빨래를 말리는 속도를 목격하고, 달빛으로 박쥐 날개의 실루엣을 분간했다. 나는 진짜 삶을 살았다. 현실은 충분했다. 증강 현실도, 가상현실도, 강화 현실도 모두 불필요했다. 풍요와 연결 속의 빈곤 대신 제한과 단절 속의 자족을 누렸다. 그리고 나는 붓과 색연필을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것이었던 그림을 다시 그리시 시작했다. 그림의 세계에서는 따라가기 어려운 긴팔원숭이와 어깨동무도 가능하지 않은가. (239쪽)

 

실제 저자의 그림 실력은 만화가로서도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어서 중간 중간 삽입해놓은 그의 그림은 이 책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동물을 그린다는 것 (사진찍는 것이 비해)에는 실로 여러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그냥 보는 것으로 넘어가는 부분들을 깨알같이 짚어 보게끔 해주고, 채집이나 포획 같은 침해적 행위에 대한 멋진 대안이 될 수 있으며, 동물의 행동과 생태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문 역할을 하며, 사진처럼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동물을 방해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더 자세히 '관찰'하게 해준다는 것은 그림이 가진 덕목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온 후 그는 다양한 연구, 집필, 운동,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생명 다양성 재단의 사무국장으로 야생 동식물 연구와 보전, 환경 운동과 교욱, 생태 예술 등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생명 다양성 재단'은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 최재천 교수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고 나도 작년에 회원으로 가입한 상태라서 반가왔다.

저자의 동생 김한민 역시 형 못지 않게 재미있는 사람. 이 사람의 책도 곧 읽지 않고 못배길 것 같은 예감이다.

 

(개인적으로는 '랩걸'보다 더 재미있었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하루를 못넘기고 다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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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 루브르를 거닐며 인문학을 향유하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안현배 지음 / 어바웃어북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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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미술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미술을 잘 하는 편은 더구나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 싫어하는 과목 1순위였던 체육 만큼은 아니었지만 2순위를 꼽자면 미술을 떠올릴 정도로 미술과 안 친했다. 일단 시간표에 미술이 들은 날은 준비물을 챙겨가야 한다는 것도 귀찮았고, 선생님이 그리라는 것을 찾아 그리기 시작하는 것도 어려운데 완성될때까지 꼼꼼하게 색칠해야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 나, 매우 덤벙거리고 성질 급했던 아이). 수채화 그릴 때는 물감이 다 마를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도 부족해서 물감이 다 번져버리고 말았을 때의 황당함과 암담함. 만들기는 또 왜 그리 서투른지. 결국 나와 미술은 안 친한 것으로 하자고, 그런 줄 알고 살았는데. 그러다가 우리 (미술과 나)의 관계에 변화가 온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후 내가 가족과 친구로부터 떨어져 있게 되었을 때였다. 심심했고 외로웠고 쉽게 잠들지 못해 괴로와 하던 그때 친구 대신 가까스로 발견한 것이 그림이었다.

책 처럼 계속 집중하지 않아도 되었다. 슬렁슬렁 눈으로 그림 도면을 넘겨 보다가 어쩌다가 눈길이 좀 더 오래 머무는 그림이 생겼고 그런 그림은 굳이 제목과 화가 이름을 한번 더 보고 지나가는 정도. 그때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이 꽤 두꺼워서 오랫동안 이 책 한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다가 책에서 사진으로 본 그림을 직접 그 그림이 걸려있는 미술관에 가서 볼 기회가 생겼다. 미술관에 가서 처음 보는 그낯선 그림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그림을 미술관에 가서 볼 때의 느낌이 그렇게 다를 줄은 몰랐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누가 권해준 적도 없이 그렇게 그림과 조금씩 친해진 것 같다.

지금도 미술관 가는 것은 나의 몇 안되는 취미 생활 중 하나이며 그림 관련 책을 보면 가끔씩이나마 읽어보기를 즐겨하고 있다.

 

며칠 전 내가 사는 지역 한 기관에서 상반기 미술사 관련 특강 공고를 보았고 '안현배'라는 이름을 보았다. 강의 신청에 앞서 강의하는 분에 대해 알고 싶어 검색해보다가 이 책을 만났다. 책에 나와있는 소개글을 보니 파리1대학에서 역사학과 정치사 공부를 하였다니 인문학자 맞다. 이어서 예술과 정치를 접목시킨 연구에 참여하였고 나중엔 예술사학과 순수예술사로 방향을 정한 것 같다. 귀국후엔 각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대중 상대로는 미술과 인문학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 에서는 미술관 중에서도 루브르에 있는 그림을 대상으로 하였다. 하루 관람객이 15,000명, 소장 작품만 380,000점인 곳.

아무래도 저자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제일 자주 방문하였던 미술관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용을 4개의 장으로 나누어 신화와 종교를 비춘 미술, 역사를 비춘 미술, 예술을 비춘 미술, 인간을 비춘 미술 이라는 소제목을 달아 설명하였다. 어떤 그림이든지 그 배경에는 신화, 종교, 역사, 예술, 또는 인간 등이 배경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글 한 꼭지는 루브르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 하나에 그와 관련된 배경 (주로 인문학적 배경) 설명으로 구성하였고, 이 설명 중에는 루브르의 해설을 번역하여 인용해놓은 구절이 꼭 포함되어 있었다. 객관적인 설명 뿐 아니라 저자의 주관적인 소감이나 설명에 해당하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서 읽는 사람은 내용 중 어느 부분이 저자의 소견인지, 어느 부분이 루브르 측의 해설에 해당하는지 구분하여 읽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체도 마치 도슨트가 설명해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읽는데 전혀 딱딱하지는 않다. 오히려 쉽고 친숙하게 내용을 전달하려다 보니 약간 산만하고 내용의 깊이까지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

 

루브르에 있는 그림 중에는 작가 미상인 것들도 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모나리자의 후광에 가려 묻혀 있는 그림이라는 문구가 다른 그림 설명에 자주 인용된다는 것은 모나리자 그림의 유명세를 더 강조하는 효과를 주는 것 같았다.

루브르에서 가장 큰 그림으로 소개한 파올로 베로네제의 <카나의 결혼잔치>는 자그마치 666 x 990cm. 르네상스시기 베네치아 미술의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이 그림엔 132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저자가 다 세어본 것은 아니고 루브르에서 제공하는 설명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라이벌 격인 두 도시 피렌체와 베네치아. 피렌체 출신 3대 천재 예술가로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있다면 베네치아 출신 3대 예술가로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제가 있다. 우리에게는 피렌체 출신 예술가 이름이 더 익숙하지만 이 책에서 티치아노가 매우 자주 언급되고 있어 이제 부턴 티치아노라는 이름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래 그림: 티치아노의 <장갑 낀 남자>).

종교적인 그림을 볼때는 어떤 공식적인 것들이 있어서, 십자가를 손에 들고 있으면 그건 따로 설명이 없어도 세례 요한을 가리키며, 여러 화가들이 같은 제목으로 그린 그림 '수태고지' 는 무엇을 뜻하고 누가 등장하는지. 누드화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그려졌으면 용인되었지만 현재 (그당시) 살아있는 실제 인물을 그린 누드화는 금지되었다는 것.

들라크루아는 학살 같은 역사적 사건을 고발 형식으로 그리기 좋아했는데 이런 작품들이 '미술저널리즘'을 연 작품이라는 평이 붙어 있다니 그게 벌써1800년대이다.

그리스·로마는 한묶음으로 소개되는것이 일반화 되어 있을 정도로 두 문화 사이엔 차이가 없어보이지만 조각과 예술에는 각각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스가 작품의 대상을 이상화하고 조화롭고 모범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반면 로마는 그리스보다 훨씬 사실적이라는 점에서이다.

다음은 119쪽에 소개되어 있는, 조각상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방법으로 저자가 알려주는 하나의 팁이다.

조각상에만 적용되는 팁 그 이상인 것으로 보여 옮겨놓는다.

조각상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 하나 알려 드릴까요?

무엇보다 조각상들의 특징을 한 가지씩 포착해서 기억해 두는 것입니다.

<하드리아누스의 흉상>의 경우에는 단연 눈 부위가 되겠지요. 이 작품에 대한 루브르의 해설대로 "찡그린 눈썹 아래 눈동자 부분에 파진 구멍"을 포착해 <하드리아누스의 흉상>의 트레이드마크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도대체 이 조각상이 무엇을 얘기하려는 거지?' 라며 작품 앞에 서 있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길 권합니다. 그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하면 하나의 작품을 통해서 역사와 예술, 심지어 철학까지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드디어 미술관에서 인문학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지요. (119쪽)

 

 

3월부터 있을 저자의 강의를 신청한 것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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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2-21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국의 미술관은 가게 될지 안될지 모르니 그래도 국내에서 개최되는 전시회는 가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참 쉽지가 않네요. ^^;;
미술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나름 관련 책들을 사 모으기도 하고 읽기도 하고 그러기는 하는데... 읽는 것보다는 그래도 보는 게 무엇보다 읽고 나서 직접 보는게 좋은 공부가 되는 것 같긴 해요.
3월부터 듣는 미술사 강의 부럽습니다~ 후기 이런 거 기다려도 될까요? ^^

Falstaff 2019-02-21 16:30   좋아요 1 | URL
외국 유명화가 전시회 있어서 먼 걸음해 가보면 한두 점 빼고 전부 복제화 걸어놓는 만행, 헛심 빠지는 짓이었습니다. 그 다음 부터는 안 가게 되더군요.
차라리 우리나라 화가들 그림 보는 게 마음 편해요. 선입견인지 몰라도 정서에도 더 맞는 거 같고요.

목나무 2019-02-21 16:41   좋아요 1 | URL
그럼 제가 본 것들도 복제화일 가능성이 크겠네요. 그게 복제화인줄 도 모르고 직접 봐서 좋다고 마냥 좋아했네요. ㅎㅎㅎ;;;;
친구랑 인사동에 있는 작은 갤러리들에 가서 구경도 하고 그랬었는데.....요즘은 좀 뜸했네요.
간만에 전시회 나들이 가보고싶어졌어요! ^^

hnine 2019-02-21 22:28   좋아요 1 | URL
순회 전시라면 원화 전시하는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일거예요. 원화 전시라면 그렇다고 크게 선전을 해요. 그만큼 특별한 일이라는 뜻이지요.
우리 나라에도 크고 작은 미술관이 많이 있는데,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서 좀 아쉬워요. 아무때나 지하철 타고 갈 수 있는 곳에 미술관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날 좀 풀리면 친구분이랑 또는 혼자서, 인사동 갤러리 구경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책을 읽을 땐 마음이 진지해지다가 무거워지기 쉽고, 음악을 들을 땐 슬퍼질때가 많은데, 그림을 볼땐 위로가 될때가 많아요. 물론 제 개인적인 얘기입니다만~
3월 부터 듣는 미술사 강의 저도 기대 많이 된답니다. 후기 아마 쓰게 되지 않을까요 ^^

oren 2019-02-21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고전 작품들을 읽으면서 관련 그림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본 적이 여러 번이었는데, 세계 도처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소장된 뛰어난 화가들의 그림들을 책과 연관지어 만나볼 수 있어서 흥미롭더군요. 특히,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쓰여진 작품들이나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들에 나오는 인물이나 풍경들을 그린 그림들은 책 속 내용들을 더할나위없이 생생하게 눈 앞에 드러내주는 것이어서 공짜로 보기에 미안할 정도더군요.

hnine 2019-02-21 22:40   좋아요 1 | URL
oren님께서 미술관에 가시면 얼마나 충만한 감상이 되실까 생각하니 부럽습니다.
이 책에서도 보면 신화를 비롯한 고전을 소재로 한 그림들 얘기가 많이 나와요. 배경지식 모르고서 그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니 역시 인문학과 미술관은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관계가 맞는 것 같아요. 르네상스때 이탈리아 화가들도 영국의 세익스피어 작품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유행하기도 했대요. 그래서 오늘날 세익스피어 문학을 책과 연극뿐 아니라 그림을 통해 감상하는 묘미를 주기도 한다고요.
이 책 저자가 서문에서 그림을 보는 것 뿐 아니라 ˝읽는다˝라고 표현한 의미를 알것 같아요.

oren 2019-02-21 23:26   좋아요 0 | URL
특별히,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화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림 소재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글을 쓸 때 인터넷에서 틈틈이 찾아봤던 그림들만 하더라도 도대체 얼마나 많았던지요.(셰익스피어의 설화시 『루크리스의 강간』을 다루면서 제가 인용했던 그림만 해도 티치아노, 알브레히트 뒤러, 귀도 레니, 루벤스 등이었으니까요. http://blog.aladin.co.kr/oren/9424819)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일부러 그림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책들도 여럿 나와 있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 같은 책들 말이지요. 제가 지니고 있는 앤터니 홀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 그림과 자료로 복원한 셰익스피어의 삶과 예술』이라는 책만 해도 총천연색 컬러 도판이 무려 190여 점이나 실려 있을 정도니까요. 지금은 절판된 그 비싼 책을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커다란 행운이었던 듯합니다.^^

hnine 2019-02-22 04:56   좋아요 1 | URL
<루크리스의 강간>에 대해 쓰신 페이퍼 잘 읽어보고 왔습니다.
티치아노, 뒤러, 귀도 레니, 루벤스. 유명한 화가가 세익스피어의 <루크리스의 강간>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네요. 루벤스는 그 답게 이런 주제 조차도 화려하고 화면이 꽉 차게 그렸어요. 오랜만에 삽입해주신 프로크네와 필라멜라 이야기도 다시 읽어보게 되었고요. 세익스피어의 설화시에서 하이라이트 해주신 부분은 세익스피어의 비유가 참 절묘하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됩니다.

서니데이 2019-02-24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아는 만큼 조금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전시를 자주 보러 가는 편은 아닌데, 가끔 생각했던 것과 다른 느낌도 있고 좋았던 것 같아요.
hnine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유안진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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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유안진 하면 대부분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글을 떠올린다. 작가의 이름을 알리는데 제일 기여를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1967년 시인으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17권의 시집을 내었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비롯한 다수의 산문집을 내었으며 소설까지 두 작품 발표하였고 이제는 대학 강단에서 정년퇴직한, 칠순을 몇년 남기지 않은 원로작가가 되었다.

그동안 발표한 시집, 산문집, 소설까지 거의 다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신간 소식을 접하고 자동반사적으로 구입하게 되었는데 이 책은 그동안 일간, 주간, 월간 여기 저기 게재되었던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유안진 글의 주제라면 그것이 시이든 산문이든 성찰의 결과로 얻은 깨달음이라는 것인데 관심을 갖고 본 사람이라면 담박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깨달음의 사용 목적이 뚜렷하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가르쳐서 다듬어가는 과정에 기여하게 하는 것이다. 나를 더 원숙하고 깊은 인간이 되게 하려는 자아에 대한 작가의 유난히 큰 욕구랄까. 그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물이나 상황을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고, 나의 종교가 아닌 타종교의 눈을 빌어 보기도 하며 (시집, 다보탑을 줍다), 때로는 현실에 없는 상상의 힘을 빌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품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래서 쉽게 흔들리지 않고, 쉽게 웃고 쉽게 울지 않겠다는 결의가 그녀의 글 여기 저기서 읽힌다. 남이 비웃는 상황이나 처지에 있더라고 당당하고 싶고, 남의 잣대가 나의 잣대를 더 넘어서지 않게하겠다는 결의, 겉으로 보이는 그럴듯함보다 나만은 안으로 얼마나 깊은가를 보겠다는, 그녀의 조용하고도 결연한 얼굴은 말없이 말하는 듯 하였다. 물론 내 개인적인 소감이다.

이번 산문집에서도 그녀의 이런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나이나 연륜 때문일까 새로운 생각이나 발견이 담긴 글 보다는 자서전이나 회고록 같은 느낌이 짙다. 원숙하고 일관된 목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참신한 글을 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149쪽, 나는 내가 창조한다는 말은 간단한 문장이지만 그녀의 조용히 독립적인 성향을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나중에 카톨릭교로 개종하였다. 이 책을 펴낸 곳도 카톨릭 출판사이다.

 

가끔 아무 맛도 없는 뻥튀기를 사 먹는다. 맛없음의 맛이 좋다. 주님과 함께함도 비슷하지 않을까? 삶이란 이렇게 맛없음의 맛을 누리는 무사함이자 평범한 일상 아닌가 하고. 우린 공짜로 주어지는 무사한 일상의 진가를 모르고 살지 않나. 알면서도 잊어버리고 새콤달콤 매콤한 쌉쌀한 맛을 좇아, 신문과 방송 등에 오르내리는 허황된 뻔쩍임을 성공이라고 착각하면서.

내가 추구하는 믿음이란 것이 아직도 새콤달콤 매콤한 자극적인 기적이나 신비를 기대하는 게 아닐까? 뻥튀기의 맛없음 참맛을 누리듯 이 평범한 일상적 믿음을 믿음으로 인정하기 싫은. (169쪽)

 

누구나 궁극적으로 바라는 삶은 심신이 평안한 삶일 것이다. 그런데 그 평안한 삶이란 '심심함'이란 모습을 하고 있더라는, 나의 요즘 생각이 위의 구절과 일치하는 듯 하다.

 

책의 맨 마지막에는 몇년 전 지병으로 남편 (故 김윤태, 전 서강대 교수)을 먼저 떠나보낸 후 망연자실한 자신을 추스리기도 하고, 그보다 더 아버지를 잃은 후 자식들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방향을 잃을까 염려하여 그 뒷마무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는 글을 실었다. 부부라면 둘 중 누구 한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날텐데 남겨진 한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로서 참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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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2-2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안진 씨가 최근까지도 책을 냈군요.
80년 대 그녀의 책 한 권쯤 안 읽어 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는데.
저도 두어 권 읽었던 것 같아요.
그때 유안진하고 또 누구하고 쌍두마차였는데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요.ㅠ

hnine 2019-02-20 14:30   좋아요 1 | URL
혹시 신달자 시인이요?
저는 신달자 시인의 글은 저랑 잘 안맞아서 좋아하진 않았습니다만 ^^
 

 

 

 

 

 

 

 

그당시 한국에서도 이 노래가 유행했었는지 모르겠다.

1990년대 말. 하루도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안 나오는 날이 없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나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내 실험만 반복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가사야 어쨌든 리듬이 경쾌해서 그렇게 질리게 들으면서도 싫지 않았던 노래이다.

Don't marry her 다음에 나오는 가사 have me 가 그 당시 내 귀에는 어째서 help me 로 들렸는지.

실험실 동기 남자애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저기서 왜 help me 라는 가사가 나오냐고.

참, 어이 없어서. 앞뒤 가사 문맥상 남자 애에게 물어볼 질문이 아니었다 ㅠㅠ

 

 

 

 

 

 

 

 

 

 

Black 이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하는 이 가수는 독일 태생.

위의 Beautiful south 노래보다 더 이전, 한국에 있을 때 듣던 노래인데 (그러니까 1980년대 말 ^^),

3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그리 오래된 노래 같지 않다.

No need to run and hide, it's a wonderful life 라는 가사가 나온다.

어디로 도망가고 싶은가

어디로 숨고 싶은가

그렇지만 않아도 괜찮은 인생이지.

나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하고 싶은 가사.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도망치고 싶고 숨어버리고 싶은 때가 누군들 없을까.

 

 

 

 

오늘은 새벽부터 추억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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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6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02-16 12:17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아직 마음이 아픕니다. 저의 사소한 불평은 삼키게 되어요.
자리를 지키고 있는다는건 아무것도 아닌 일 같은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저 역시 그동안 이력을 보면 한 자리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닌데 알라딘에는 정이 많이 들어서요. 이 자리만은 지키고 싶네요.

하늘바람 2019-02-16 13:34   좋아요 0 | URL


저는 저 힘듦만 알고 툴툴댄게 부끄럽네요

페크pek0501 2019-02-16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 놀이에 동참하고 싶은 갱년기 여성입니다. 노래 좋네요.
종종 음악 들으러 오겠습니다.

hnine 2019-02-17 04:22   좋아요 1 | URL
지나간 추억놀이는 저절로 될때가 많은데 앞으로 일을 상상하는 놀이는 잘 안되는 것 같아 서운해요. 일부러라도 해야할까요? 100세 시대라니까 ^^
음악 자주 올리지는 않지만 함께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