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유안진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18년 1월
평점 :
사람들은 유안진 하면 대부분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글을 떠올린다. 작가의 이름을 알리는데 제일 기여를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1967년 시인으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17권의 시집을 내었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비롯한 다수의 산문집을 내었으며 소설까지 두 작품 발표하였고 이제는 대학 강단에서 정년퇴직한, 칠순을 몇년 남기지 않은 원로작가가 되었다.
그동안 발표한 시집, 산문집, 소설까지 거의 다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신간 소식을 접하고 자동반사적으로 구입하게 되었는데 이 책은 그동안 일간, 주간, 월간 여기 저기 게재되었던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유안진 글의 주제라면 그것이 시이든 산문이든 성찰의 결과로 얻은 깨달음이라는 것인데 관심을 갖고 본 사람이라면 담박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깨달음의 사용 목적이 뚜렷하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가르쳐서 다듬어가는 과정에 기여하게 하는 것이다. 나를 더 원숙하고 깊은 인간이 되게 하려는 자아에 대한 작가의 유난히 큰 욕구랄까. 그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물이나 상황을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고, 나의 종교가 아닌 타종교의 눈을 빌어 보기도 하며 (시집, 다보탑을 줍다), 때로는 현실에 없는 상상의 힘을 빌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품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래서 쉽게 흔들리지 않고, 쉽게 웃고 쉽게 울지 않겠다는 결의가 그녀의 글 여기 저기서 읽힌다. 남이 비웃는 상황이나 처지에 있더라고 당당하고 싶고, 남의 잣대가 나의 잣대를 더 넘어서지 않게하겠다는 결의, 겉으로 보이는 그럴듯함보다 나만은 안으로 얼마나 깊은가를 보겠다는, 그녀의 조용하고도 결연한 얼굴은 말없이 말하는 듯 하였다. 물론 내 개인적인 소감이다.
이번 산문집에서도 그녀의 이런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나이나 연륜 때문일까 새로운 생각이나 발견이 담긴 글 보다는 자서전이나 회고록 같은 느낌이 짙다. 원숙하고 일관된 목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참신한 글을 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149쪽, 나는 내가 창조한다는 말은 간단한 문장이지만 그녀의 조용히 독립적인 성향을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나중에 카톨릭교로 개종하였다. 이 책을 펴낸 곳도 카톨릭 출판사이다.
가끔 아무 맛도 없는 뻥튀기를 사 먹는다. 맛없음의 맛이 좋다. 주님과 함께함도 비슷하지 않을까? 삶이란 이렇게 맛없음의 맛을 누리는 무사함이자 평범한 일상 아닌가 하고. 우린 공짜로 주어지는 무사한 일상의 진가를 모르고 살지 않나. 알면서도 잊어버리고 새콤달콤 매콤한 쌉쌀한 맛을 좇아, 신문과 방송 등에 오르내리는 허황된 뻔쩍임을 성공이라고 착각하면서.
내가 추구하는 믿음이란 것이 아직도 새콤달콤 매콤한 자극적인 기적이나 신비를 기대하는 게 아닐까? 뻥튀기의 맛없음 참맛을 누리듯 이 평범한 일상적 믿음을 믿음으로 인정하기 싫은. (169쪽)
누구나 궁극적으로 바라는 삶은 심신이 평안한 삶일 것이다. 그런데 그 평안한 삶이란 '심심함'이란 모습을 하고 있더라는, 나의 요즘 생각이 위의 구절과 일치하는 듯 하다.
책의 맨 마지막에는 몇년 전 지병으로 남편 (故 김윤태, 전 서강대 교수)을 먼저 떠나보낸 후 망연자실한 자신을 추스리기도 하고, 그보다 더 아버지를 잃은 후 자식들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방향을 잃을까 염려하여 그 뒷마무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는 글을 실었다. 부부라면 둘 중 누구 한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날텐데 남겨진 한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로서 참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