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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적어 놓았던 시를 오늘 아침 페이퍼쓰기로 올리고
댓글을 달면서 한번씩 다시 읽어보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44년 직장 생활을 하신 엄마
고만고만한 우리 남매 셋을 떼어 놓고
매일 하는 출근이건만
엄마가 출근하실 시간이 되면
할머니는 미리 내 손을 붙잡고 나가서 마을 한바퀴를 돌다 들어오셨다
엄마가 출근하시는 모습만 보면 내가 거의 대성통곡을 해대었으므로.
대여섯살 때 일이니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나중에 나도 똑같이 겪었다. 내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놓고 돌아서 나오면
어린이집에서 아주 한참 멀어질때까지 아이가 소리소리 지르며 우는 소리가 들렸었더랬다.)
매일 우는 나를 뒤로 하고 출근하시던 엄마 맘이 어땠을까.

밑의 여동생은 어릴때 손가락을 입에 거의 물고 살았다.
손가락 빠는 버릇이었는데
의사가 애정결핍증세라고 말했다.
막내 남동생은 사춘기 시절을 여러가지 일로 힘들게 보냈다
직장을 포기하고 싶으신 적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새벽에 아직 어둑어둑할때 집을 나가셔서
우리가 다 잠들었을 때야 들어오시던 아빠
무거운 가방을 드시고
꼭 양말을 한켤레씩 더 챙겨가지고 다니시던 아빠
힘들다, 피곤하다, 아예 말씀이 없으셨었다.

오늘 아침의 내가 올렸던 시는
우리네 부모님들의 모습이었다.
지금 내가 살아온 햇수보다 더 오랜 세월 출근길을 묵묵히 겪어오신.

갑자기 울컥 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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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7-13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왜 나이가 들어야만 그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걸까요? 알면서도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자식인 모양입니다.

hnine 2007-07-14 07:42   좋아요 0 | URL
물만두님, 제가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이겠지요. 아직도 제 나이값 못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예전에 생각 못했던 것을 이렇게 깨달아 갈 때도 있네요.
편안한 주말 되세요 ^ ^

세실 2007-07-14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늘 엄마와 대화를 갈망하는 우리 아이들이 그려집니다...요즘 이런 저런 일들로 아이들에게 짜증만 안겨줍니다. 그래서 님은 가정을 지키시는군요.

hnine 2007-07-14 17:30   좋아요 0 | URL
언젠가 보림이와 규환이도 엄마를 이해할겁니다. 아니, 세실님은 지금도 아이들과 잘 소통하고 계시다고 생각되는데요 저는. 그래도 아이들은 엄마의 눈길, 손길을 여전히 고파하겠지만 말이지요.

비로그인 2007-07-14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의 모습을 보며 우리를 대했을 어른을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애를 먼저 생각하는걸 보면 역시 내리사랑인가봐요.
부모님께 안부전화라도 해야겠네요.

hnine 2007-07-15 07:47   좋아요 0 | URL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때가 있었는데, 이제 아이 낳고 키우다 보니, 사람 마음을 참 잘 표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렇게 가끔 하는 부모님 생각이 어디 부모님이 자식들 생각하는 것에 미치기나 하겠어요...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 직접 시청을 해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모 방송국의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 말이다. 우연히 오늘 보게 된 가족은, 일곱살, 네살, 또 갓난쟁이, 이렇게 아이 셋을 둔 전업 주부 엄마와 아빠, 이렇게 다섯 식구. 문제는 네 살 짜리 여자 아이 은혜이다. 떼가 무척 심하여 목놓아 울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의 뜻대로 안 될 때는 바닥에 머리를 쿵 쿵 박는 자해 행위도 서슴치 않는다.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이 심하여, 엄마가 꺼내주지 않아도 싱크대로 기어 올라가 수납장에서 아무것이나 꺼내 먹거나, 냉장고에서 손에 닿는 것은 (심지어 케첩까지도) 다 먹으려고 한다. 엄마가 잠시 안 보고 있는 사이에 칼을 가지고 무언가를 (먹을 것이었던것 같다) 자르려고 하다가 뒤늦게 발견한 엄마에게 매를 맞고 또 뒤집어 지며 울고 소리지르고 머리 박고... 은혜의 얼굴은 눈물 범벅에, 피부는 이미 아토피가 심각한 상태로 진전되어 있었다. 가려우니까 계속 긁게 되고, 엄마는 긁지말라고 야단치고, 방에 가두기 까지 하면서 못 긁게 하지만, 은혜는 참을 수 없으니 나중엔 뾰족한 볼펜으로 자기 피부를 긁기까지 하며, 옷이 다으면 더 가려우니 자꾸 옷을 벗어 던진다. 억지로 옷을 입히려는 엄마...
TV화면에서 도저히 눈을 뗄수 없었다. 우리 나이로 네살이라지만 이제 겨우 32개월 아이 은혜. 엄마의 보살핌과 애정이 아직 필요한 때이다. 몸은 가렵고, 엄마는 야단치고 못하게 하고 소리 지르고...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우는 은혜가 이해가 된다. 한편, 갓난쟁이 등에 업고, 일곱살, 네살 아이들 혼자 돌보는 엄마의 스트레스도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매일 늦게 퇴근하는 남편, 주말에도 컴퓨터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남편. 세 아이를 목욕시키며 좀 도와 달라는 아내의 말에 그저 "잠깐만~"이라는 말로 시간을 끈채 시선은 컴퓨터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이때 엄마에게 달라붙는 은혜에게 엄마는 저리 가라고 소리 지르고.
육아전문가는 말한다. 엄마가 세아이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육아 상식이 부족하다고. "나는 나름대로 잘 해보려고 했는데..." 라고 힘없이 말하며 결국 눈물을 보이는 엄마.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아이도, 엄마도, 아빠도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며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광경이면서도 끝까지 나를 TV앞에 몰입시킨 이유가 있어 마음이 안좋다. 머리를 박는 아이도, 소리 지르며 야단치는 엄마도, 너무나 이해가 되기에 마음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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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07-0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두 이해가 됩니다. 마음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잔소리 하게 되죠....둘째라 더욱 스트레스 받나 봅니다. 그나저나 아빠는 알라딘 하고 있는 걸까요? 헤헤~~

hnine 2007-07-03 22:12   좋아요 0 | URL
TV보면서 제일 야속했던 사람이 바로 아이의 아빠였지요. 왜 육아는 일단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참...
 

아이가 요즘 집을 떠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따라서 외삼촌 집에 가있다. 외할머니 일년에 한차례 가시는 일정에 아이가 따라간 것.

일곱살이란 나이는 이미 엄마를 보고 싶어할 나이에서 벗어난 나이인가, 아이는 엄마 아빠 보고 싶다 소리 안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집에서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오후 2시 무렵부터 계속 엄마하고만 지내다 갔으니, 엄마한테 야단도 종종 맞아야 했고, 계속 엄마랑 상대를 하자니 아이도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엄마가 좀 할 일이 있어서 혼자 놀아야 할 때는 몇 분 간격으로 엄마에게 와서 말을 시키다가 한소리 듣기 일쑤이고...

그러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외삼촌, 외숙모가 있는 지금이 아이에게는 너무 좋은가보다. 상대할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이건 어른들도 마찬가지. 한사람이 좀 힘들면 다른 사람이 또 아이랑 놀아주고, 이렇게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하니 힘도 덜 들고 말이다. 아이들의 에너지는 불가사의 할 정도로 넘치는 에너지라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지치지도 않는다.

집에서 엄마는 이렇게 지치지 않는 아이를 계속 상대하며 놀아주어야 하고, 그러면서 청소도 하고 그날 먹을 식사 준비도 해야한다. 그러니 항상 아이에게 사랑스런 말투로 응답해줄 수 있겠느냐 말이다.

엄마한테 야단 맞은 아이는 갈데가 없다. 방 한 구석에 시무룩하게 앉아 이 책 저 책 들척이면서 엄마 눈치를 본다. 식구가 여럿 있으면 아이는 다른 식구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얘기한다. 자기 역성을 들어달라고. 들은 사람은 아이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타이르고 가르쳐 줄 수 있다.

아이가 엄마 아빠를 굳이 찾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정도의 대가족은 아니더라도 ( ㅋㅋ ),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 이렇게 세 식구 사는 것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숙모 정도의 가족 구성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부부싸움도 더 빨리 종결짓지 않을까? (이번에 남편과 무슨 일로 등돌리고 나서 보름만에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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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6-2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그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요. 비니 너무 귀엽네요. 오빠보다 아무래도 언니가 비니의 하소연을 잘 들어주나 봐요. 어린 아이에게도 하소연할 일이 있고, 하소연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을...

홍수맘 2007-06-2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저희가 집을 못 구해 친정엄마집에 얹혀 산 적이 있었거든요. 제가 편한 건 정말 좋은데 아이들의 응석이 엄청 늘어요. 애들이 금방 눈치채더라구요. 할머니가 엄마보다 세다는걸 ... ^^;;;

hnine 2007-06-27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저희 할머니는 무척 엄하셨거든요. 저희 엄마 역시 엄하신 편이었는데 손주 대하시는 건 저희 어릴 때랑 너무나 다르신거 있죠.

세실 2007-06-2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대가족 속에서 자라는 것도 좋을 듯. 내 편이 많다는건 살아가면서 큰 힘이 되죠~
그런 의미에서 보림, 규환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 듬뿍 받고 자랍니다. 엄마의 부족한 부분까지.... 다행이죠~
다빈이의 빈 공간이 허전하실듯~~ 도서관에 놀러오세용. 좀 멀긴 하지만...헤헤~

hnine 2007-06-2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 보면 내 편을 많이 만드는 것도 그 사람의 능력이더라구요. 줄수 있을 때 많이 주고, 또 도움이 필요할 때는 기쁘게 받을 줄 아는 사람이요. 바쁘신 일정 아는데, 그래도 놀러오라고 해주시니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fallin 2007-06-29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하면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입장이라 은근히 걱정 중이였는데..처음은 어색하고 불편해서 고생이겠지만, 님처럼 생각을 좀 다시 해봐야겠네요^^ 좋은 점도 많이 있을 거 같다는~~^^;;;

hnine 2007-06-2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allin님, 결혼하고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것에 대해 미리 걱정마세요. 너무나 많은 케이스가 있어 뭐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즣은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것은 결혼 이후에 해야할 일이니까 이왕이면 좋은 점을 많이 생각하세요.
 

오늘 본 영화,  바로 이 영화.



 

 

 

 

 

 

 

 

 

 

 

영화의 끝 장면, 전 도연이 자기 집 마당에 앉아 스스로 자기 머리를 자르고, 화면은  머리를 자르는 전 도연에서 마당의 한 쪽으로 옮겨 간다, 그늘을 거쳐 해가 비치는 쪽으로. 물이 고여 있고, 강아지풀인지 잡초의 그림자가 비치고, 다 쓴 세제병이 버려져 있는...

영화의 제목, 밀양 (密陽, secret sunshine) 과 연관시켜 마지막 장면의 의미를 생각하며 영화관을 나오면서 함께 본 옆사람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 영화는 '상징' 이 여기저기 깔려 있는 영화라면서, 주인공이 미장원을 뛰쳐 나와 결국은 스스로 자기 머리를 자기 손으로 자르는 것은 주위의 이런 저런 힘 (종교를 비롯)을 빌려 자신의 상황에서 헤어나오려 해보지만 결국은 홀로 헤치고 나와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 아니겠냐고한다. 마지막 장면의 물 웅덩이, 세제병(막힌 곳을 뚫는데 쓰는 세제), 범인의 딸이 불량배로부터 맞고 있는 장면을 응시하는 주인공등, 그런 맥락이라고 본다고...

이 영화에서 아이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것은 인간이 헤치고 나와야 하는 하나의 굴레, 버티고 살아나가기 위해 딛고 일어서야할 그 무엇이 아니겠느냐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해석하며 보았을까.

집에 와서도 '상징주의'에 대한 얘기를 한동안 나누었다, 깃대와 깃털의 비유를 비롯, 상징주의 영화는 한번 그 장면이 지나가면 의미하는 바를 놓치기 때문에 여러 번 봐야 하고, 볼 때 마다 이전에 찾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내게 되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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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2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심야에 이 영화 보러 가요. ^^
갔다와서 이야기 나누어요, hnine님!
상징들도 잘 보고 올게요^^

hnine 2007-05-26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꼭 리뷰 올려주시기에요~ ^ ^

fallin 2007-05-2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어렵다고 느꼈는데..상징!이였군요^^ 그런 부분만 잘 이해한다면 진지하게 많은 걸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인데... 영화 속 상징을 찾아보는 것도 연습해봐야겠어요~

hnine 2007-05-2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allin님, 맞아요. 어딘가 쉽게 줄줄 넘어가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 영화였지요.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 즐겨 하는 일이 누구든지 있다. 그런데 그 일이라는 것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뀌어 가는 것 같다.

중 고교 시절엔 편지쓰는 것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큰 일이었다. 예전에 같은 학교 다니다가 헤어진 친구, 선생님, 심지어 매일 학교에서 보는 친구에게 까지, 맘에 드는 편지지를 고르고, 그 사람이 막상 옆에 있다면 술술 나오지 못할 말들도 편지지에 한자 한자 적어보내기를 좋아했었다. 심지어는 군인아저씨에게 위문 편지 써오라는 숙제까지도 즐거이 하곤 했으니.

대학에 들어오면서 생긴, 혼자 영화 보기와 연극 보러 다니기. 그리고 무분별 책 읽기. 이미 사람들 입소문으로 알려진 영화보다는 개봉 첫날, 첫회 상영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유별남을 보였고, 그때 모은 극장의 영화 전단지가 상당했으나 역시 여기 저기 주거지를 옮겨다니면서 행방불명 되고 말았다. 연극 보러 나설 때의 정서 모드는 영화를 보러갈 때와 같지 않다. 바로 내 눈 앞에서 혼신을 다해, 연기가 연기처럼 느껴지지 않게 열중하는 연극 배우들을 보며 채워지는 내 안의 에너지, 그리고 거기서 받는 위로에 난 참 많이 기대고 살았었다. 산울림 소극장, 서소문의 이름도 가물가물한 그 조그만 소극장, 시청 근처의 마당 세실, 대학로의 여러 소극장등을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돌아다니곤 했었다. 대학에 입학하여 대학 생활 자체를 즐기지 못하던 내게, 혼자 영화, 연극 보러 다니기와 더불어 이 책, 저 책 닥치는 대로 읽기는, 모르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려는 지극히 소극적인 나 다운 방법이 아니었다 싶다. 소설, 시, 그리고 다른 과의 전공 서적까지 기웃거렸으니. 수강 신청 기간에 전체 대학 종합시간표 책자를 앞에 놓고 다른 과에선 도대체 어떤 과목들을 배우나 일일이 다 들춰보기도 하고, 어떤 과목들이 타과생들에게 개방이 되어 있는지 알아보기도 했었다. 그러고보니, 논리학, 미학, 심리학, 미술사, 음악사 등 참 다양한 과목들을 수강했었다. 그 중 음악사와 미술사는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수업이다.

이후, 타국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친해진 그림 보기. 잠잘때는 거의 늘 미술 화집을 들고 침대속으로 들어가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는 그림보고, 해설 읽고, 또 페이지 넘겨서 그림 보고 해설 읽고...하다가 잠이 들었다. 주말엔 미술관과 박물관 가는 재미로 그 주체할 수 없는 혼자의 시간을 가까스로 채울 수 있었지. 이전까지는 미술이라면 나와 인연이 없는 다른 어떤 세계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의 반전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결혼하고 아이 엄마가 되면서부터는 영화도, 연극도 소원해졌다. 책도 무분별, 잡식성으로 읽기보다는 아이 키우며 나도 크는 그런 류의 책 쪽으로 방향성이 생겨났다. 사실 아이를 키우면서 나에 대해 다시 분석해보고, 개선해보고자 하는 노력을 이전의 몇 배 더 기울이게 되더라. 영화, 연극 등,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서 보여지는 것 보다는 이제 철따라 자연을 보러 나가는 것이 시간날 때마다 내가 즐겨 하는 일이 되었다. 봄에는 벚꽃 구경 여름엔 장미, 물 놀이, 가을엔 단풍 구경, 겨울엔 눈 구경. 철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자연을 보고 느끼는 일. 이전엔 그렇게 철마다 인파에 휩쓸리면서 '나다니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말이다.

어떤 일이든, 나의 숨통을 열어주고, 머리 속을 꽉 채우고 있던 생각들을 잠시 접어 놓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반전' . 모든 일에는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반전의 여지가 있는 법이므로. 좀더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마치 다른 일인 양 바라 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꼭 필요한 법이다. 지금 내가 매달리고 있는 것들이 언젠가는 사소해질지도 모르는 일이고 지금 내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어느 날엔가 반전의 진수를 보이며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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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5-22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일에는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반전의 여지가 있는 법이므로. 좀더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마치 다른 일인 양 바라 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꼭 필요한 법이다"

 님이 품고 계신 문화자산이 부럽습니다. 그러고보면 여유에서 싹을 틔운 소중한 것들이군요. 마음에 여유 가져갑니다. '반전'을 꿈꾸며,

붓꽃맞죠... 감추어도 감출 수 없는.  반전은 그런 것인가요... ...  나만의 몸도, 우리몸도 반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

잘 느끼고 갑니다. 


비로그인 2007-05-22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뭔가에 버닝- 했다가는 급 식어버리곤 했던 기억이 많네요.
그래서 결국은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 셈;;
어떤 것도 아무것도 사소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요즘은요.
뭐든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아야겠다... 예상치 못한 반전에 당황하지 않으려면
그런 생각을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

hnine 2007-05-22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마당님, 지난 주말 수목원 옆 공원에서 찍은 붓꽃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고 정리하다가 적어본 페이퍼랍니다. 영어에 'stay aloof'란 말이 있는데요...전 그 말도 좋아한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체셔고양2님, 예...아무것도, 어느 누구도 사소하지 않지요. 그걸 염두에 늘 두고 살아야 하는데, 자주 잊어요 ^ ^

홍수맘 2007-05-2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전"
정말 어떤 일이든 어떤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져봐요. 긍정적이면서 포옹할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할텐데 하는 바램이예요. 주제와 안 맞나?

hnine 2007-05-2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주제와 안 맞기는요. 바로 그 얘기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