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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광 욕 (月 光 浴)

 

달빛에 마음을 내다 널고
쪼그려 앉아
마음에다 하나씩
이름을 짓는다

 

도둑이야!
낯선 제 이름을 들은 그놈들
서로 화들짝 놀라
도망을 간다

 

마음 달아난 몸
환한 달빛에 씻는다
이제 가난하게 살 수 있겠다

 

--  이  문 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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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 갔다가 지하철 역에서 본 시인데, 어느 역이었는지 벌써 기억이 안 난다.
광화문 역, 종로 3가 역, 아니면 고속터미널 역일텐데. 

그냥 아름답다고 하기엔, 마치 스님과의 선문답 같은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자꾸 소리내어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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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꽃 

 

과꽃이 무슨
기억처럼 피어있지
누구나 기억처럼 세상에
왔다가 가지
조금 울다가 가버리지
옛날같이 언제나 옛날에는
빈 하늘 한장이 높히 걸려 있었지 

 

김  영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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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학 최고의 추상적 사고 분야는 시(詩)이고,
자연과학 최고의 추상적 사고를 요하는 분야는 수학(數學)인 것 같다시며
오늘 강의를 하신 분께서 이 시를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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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30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07-30 22:22   좋아요 0 | URL
저도 '높이'가 맞다고 생각하는데, 원본을 그대로 옮기느라 그냥 두었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과꽃, 친숙해요. 노래도 있잖아요 왜. 아시죠? 흥얼흥얼~^^
 

 

책상이나 책꽂이 정리를 하다 보면
여기 저기에 나의 흔적, 나의 조각들이


하던 정리 멈추고
그것들을 다시 만나는 순간
웃다가, 
또는
그 반대 


사랑 한번 제대로 못해봤으면서
웬 사랑시는 그렇게 잔뜩 끌어모아
노트 한권을 다 채웠네 


대학 초년생 나에게 사랑이란
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었나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대신
검정 색 잉크 만년필로
직접 베껴적은 시들 


한장 한장 넘겨 가며 읽다 보니
웃음도 나오고
또는
그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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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언어에는 세계가 빠져 있다 (슬픔의 진화)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먹다 만 흰죽이 밥이 되고 밥은 도로 쌀이 되어
하루하루가 풍년인데
일 년 내내 허기 가시지 않는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기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오랜 기담은 이제 여기서 끝이 난다
(식후에 이별하다)


그때 하늘 아래 벗은 바지 모양
누추하게 구겨진 생은
아주 잠깐 빛나는 페허였다
장대하고 거룩했다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슬픔이 없는 십오초)


빵과 심장은 무엇이 닮았는가
오래될수록 까맣고 딱딱해진다는 점
그러나 누가 아는가
그들에게도 재미나는 사연 하나쯤 있을지
이를 테면 딸아이가 연루된 주먹다짐이나
소풍에 얽힌 유쾌한 에피소드 같은 (빵, 외투, 심장)  

 

(괄호 안은 시의 제목)  


심 보선에게는 '슬픔의 자산가'라는, 시집 뒤의 해설에 나오는 말이 잘 어울린다.
슬픔이 모여 자산이 된다고,
슬픔은 진화한다고,
슬픔 없이 있을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은 십오초 라고 말하는,
시인도 자신의 시를 두고 그건 허구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떠한 형태의 글보다 자기 고백적인 것이 시 아닐까.
그렇다면 어쩌자고 그는 이런 시들을 쓴 것일까
그는 어찌보면 참으로 용감한 사람일지도.
시집 말미의 해설마저 시보다 더 시 같았다. 마치 시인 자신이 쓴 해설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다음 시집이 나오면 그것도 읽어보고 뭐라 말하고 싶다.
그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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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21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란다 창에 빗방울들이 맺혀있는 아침이에요.
슬픔의 자산가, 심보선, 시들 참 좋으네요.
고마워요^^

hnine 2009-06-21 11:05   좋아요 0 | URL
무엇이 이 사람을 그렇게 슬프게 하는걸까 생각하다가, 결국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오랜 동안 슬픔에 젖어 있게 하는걸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이 사람의 슬픔은 오히려 매일을 견디는 힘이고, 불만족의 근거가 되고, 시인으로 탄생시킨 에너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슬픔이 진화한거죠 ^^

웽스북스 2009-06-2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 참 좋아요 hnine님 덕분에 저도 오늘 한 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hnine 2009-06-21 14:07   좋아요 0 | URL
저도 웬디양님 리뷰 읽은 기억이 나요 ^^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空想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오   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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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8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05-28 23:47   좋아요 0 | URL
천사와 악마는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생을 끌고 나가기 위한 인간의 두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산다는 것이 무언가, 새록새록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