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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평점 :
이방인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이정서 옮김
(주)새움출판사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 울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 알베르 카뮈
이 이야기는 1958년 런던의 Methuen and Co. 에서 발간한 영문판 「이방인」 에 실린 카뮈의 서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서문이 씌어진 시기를, 카뮈가 「반항의 인간(L'Homme révolté)」 의 여파로 논쟁에 휘말리면서 자신의 작품과 사상을 둘러싼 각종 오해와 왜곡, 비난에 대응해야 했던 무렵으로 추정한다. 카뮈는 해당 서문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뫼르소는 거짓말하기를 거부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그리고 특히, 있는 것 이상을,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 관하여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은 말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그런 것은 우리 모두가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삶을 쉽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한편 뫼르소는, 그가 줄 수 있는 외적인 인상과 반대로, 삶을 그렇게 쉽게 살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 자신 그대로를 말하고 자신이 느끼는 바를 과장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곧 그에 의해 위협당한다고 느낀다.
- 알베르 카뮈
뫼르소가 요령을 부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에 처해진 것이라는 카뮈의 이야기는 나도 비슷하게 공감하게 되는 지점이다.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어떤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배척. 사람들은 뫼르소가 법정에서 흔히 말하는 관례적 표현으로 자신의 범죄를 후회한다고 말하기를 요구하는 듯 하지만, 그는 그저 피곤해한다. 그리고 재판장이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냐고 물었을 때 곰곰이 생각한 후 '없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결국 뫼르소는 유죄선고를 받고 만다. 그리고 카뮈는 서문에서 덧붙인다. '아무런 영웅적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사내의 이야기.' 라고.
소설은 뫼르소가 아랍인을 살해한 사건을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다. 1부에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를 치르고, 남은 휴가 기간 동안 평범하면서도 무심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 서술된다. 같은 층에 사는 이웃 레몽과 친구가 되었다가 그의 일상의 흐름에 약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변심한 무어인 애인을 벌주려는 레몽에게 휩쓸려 아랍인과의 싸움에 말려든다. 그리고 흥분한 레몽의 권총을 맡아두었다가 다시 마주친 아랍인이 칼을 꺼내들자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긴다.
2부는 아랍인 살해에 대한 재판과정을 담는다. 뫼르소는 자신이 재판의 당사자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재판을 관찰한다. 아랍인 살해에 대한 쟁점보다는 자신의 어머니 장례 태도에 관한 것이 언급되고, 자신이 영혼에 대한 이야기마저 나오자 이곳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러나 그 모든 장광설, 내 영혼에 대해 말해지던 그 끝없는 시간과 모든 날들 때문에, 나는 그곳이 현기증이 나는, 모든 것이 무색의 물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 p137
법정에서 검사의 시선으로 묘사된 뫼르소를 옮겨본다. 친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 여자와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즐긴 후, 부도덕한 애정관계를 시작했으며, 코미디 영화 앞에서 웃어댄 사람이다. 검사는 또한 사건이 사전모의에 의한 살인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글에서 마주한 뫼르소는 별 이유 없이( 법정에서 뫼르소는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지만 )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였고, 자신을 위해 마련된 형장에서조차, 외롭게 죽기보다는 많은 군중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저를 맞아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는 이다.
엄마의 장례식장, 아랍인을 살해한 해변, 주인공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법정에서 인간들을 압도하고 그들의 머리 위 에서 군림하는 뜨거운 태양. 「이방인」 을 어떤 면에서 뫼르소의 의식과 태양의 대결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프랑스어에서 바다(mer)와 어머니(mère)는 음성학적으로 동일선상에 있고, 바다는 인류의 영원한 모성적 자궁이라는 해석을 바탕으로, 정신분석학자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끌어와 「이방인」을 해석하기도 한다. 즉 어머니(바다)에 대한 사랑, 아버지(태양)의 억압, 아들(뫼르소)의 반항 등이 고스란히 「이방인」 의 테마를 이루고 있다고 말이다. (출처 : 알베르 카뮈 / 살림 지식총서 ) 카뮈가 의도하지 않았었을지언정, 후대에서 다양하게 재해석되는 것을 보면 문학이라는 것은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 그가 확신하는 것 이상으로, 나의 삶과 다가올 죽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
나는 옳았고, 여전히 옳았으며, 항상 옳았다.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아왔지만 다른 식으로 살 수도 있었다. 나는 이것을 했고 저것은 하지 않았다. 내가 저 다른 것을 할 때 어떤 것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것은 마치 내가 이순간과 이 작은 시작을 위해 이 모든 시간을 기다려 왔던 것처럼 나를 정당화시킬 것이다. 아무것도,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으며 나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 역시 이유를 알고 있다. 내 미래의 같은 곳으로부터, 내가 이끌어 온 이 부조리한 삶 내내, 모호한 바람이 아직 오지 않은 수년의 시간을 건너 내게 불어왔고, 그 바람은 자신의 행로 위에서, 내가 살아 있을 때보다 현실적이랄 게 없는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이 내게 강요한 모든 것들을 평탄하게 만들었다.
- p157
「이방인」 으로 시작된 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를 '부조리 문학' 이라고 부른다. 뫼르소가 재판을 받는 과정이나 감옥에서 사제와의 대화를 통해 세상은 이성(사법제도) 이나 전통적 가치관(종교) 같은 것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로 가득차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그 부조리함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것 또한 부조리하다. 카뮈는 뫼르소를 통하여 늘 익숙하던 세계가 돌연 낯설게 바뀌고, 인생이 의미가 없다는 '부조리를 의식하는 인간' 을 소환하면서도, 일종의 반항적인 방향으로 그 삶을 남김없이 불사르며 열정적으로 살아내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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