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일기
소피 퓌자스.니콜라 말레 지음, 이정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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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건, 늘 무언가를 흘려보낸다는 것이 아닐까. 감정은 흐르고, 순간은 지나가고, 말은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어쩌면 우리는) 기록한다.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잠시나마 머물게 하기 위해.

소설가, 화가, 철학자 등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87인의 일기가 빼곡하게 수록되어 있는 『내면일기』 를 읽으며 나는 내 일기의 모습을 떠올렸다. 책 속의 각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살았지만, 사랑, 애도, 삶의 위기, 고독, 자기성찰, 역사적 사건, 여행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일기로 기록했다. 누군가가 쓴 일기를 읽다 보면 그 사람이 텍스트 너머의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삶을 살아낸 인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무언가를 걱정하고, 기대하고, 다짐했던 그 마음.그 순간의 체온이 문장 너머로 전해지는 『내면일기』 에는 내게 익숙한 유명 작가들뿐 아니라, 이름이 생소한 역사적 인물들의 일기까지 포함되어 있다. 책은 3부로 나뉘는데, 1부는 <내밀함>, 2부는 <시선>, 3부는 <여행>에 관련된 일기들이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부는 주제에 포함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2~3개의 장으로 다시 나뉜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일기는 1부의 1장 <사랑>편에, 프란츠 카프카와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는 1부의 3장 <고독과 자기성찰> 편에 수록되어 있는 식이다.

각 페이지는 작가와 예술가들의 일기에서 발췌한 주요 텍스트와 필사본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한 인물의 일기에서 발췌한 텍스트와 그 인물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글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앤솔로지적 배열의 구성을 취한다. 각 인물들은 서로 직접적인 인간관계나 서사적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일기’라는 형식과, 내면의 경험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일기라는 문학의 의미와 가치를 조명하는 해설이 더해져, 일기라는 장르의 깊이를 생각해볼 수 있게 안내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친숙한 인물들의 일기부터 먼저 찾아 읽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는 필사도 해보면서 문장을 음미해보기도 했다.

인물들은 시대, 국적, 직업, 성별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각 일기는 사랑, 상실, 창작, 고독, 역사적 격변, 자기성찰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일기 형식의 짧은 글들을 통해, 각기 다른 삶의 순간과 감정을 진솔하게 느껴보게 된다. 2부의 <시선> 편은 다양한 시선들을 만나보게 되어 좋았다. 특히 1장의 <일상 예찬>에 포함된 일기들은 내 일상의 시선들을 되돌아보게도 한다. 어떤 일기들을 통해서는 약간의 관음적 호기심을 충족하기도!

3부 <여행> 에 대한 일기들은 모험의 동반자가 된다. 3부의 일기들의 필사본에는 텍스트 뿐만 아니라 스케치들이 포함되어 있는 일기들이 또 다른 매력들을 뽐낸다. 여행 중 낯선 환경에서의 경험, 혹은 일상적인 삶의 소소한 순간들까지 여러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한 이들의 글들을 만난다.

책의 서두에는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와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으며, 필리프 르죈Philippe Lejeune의 해설이 마지막에 실려 있다. 프롤로그에서 책의 의도와 일기라는 장르의 의미를 설명하고, 본론에서 각 인물별로 일기 발췌문과 해설, 필사본 이미지를 보여준 후, 마지막 해설에서 정리한다. 책 속 인물들은 자신과 주변 세계를 관찰하고, 그 속에서 발견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기록했다. 일기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시도의 결과라는 점을 공감하게 되는 지점이다.

“나는 누구였지?” “어떤 감정을 느끼며 이 하루를 버텼지?” 하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그때, 일기 속에 써둔 문장을 읽어본다. 아무도 모르게 적어둔 나의 말. 눈물이 그렁했던 날, 너무 좋아서 말없이 웃었던 밤, 혹은 이상하게 쓸쓸했던 아침. 그 문장을 다시 만나는 순간, 나는 ‘그때의 나’와 다시 연결된다. 그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제대로 통과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내면 일기』 를 통해 책 속 인물들의 삶과 잠시나마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던 이유다.

백과사전처럼 다양한 인물들에 대해 엿볼 수 있지만, 각 인물의 이야기가 짧게 스쳐 지나가 깊이 있는 서사에 목마름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그 인물들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는 선순환이 반복된다. 화가의 그림을, 작가의 책을, 역사가의 역사적 사건들을 찾아보다보면 책이 책을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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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억만장자의 신화 - 배신과 구원으로 얼룩진
벤 메즈리치 지음, 황윤명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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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메즈리치는 페이스북의 창업에 얽힌 비화로 2010년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소셜 네트워크(The Accidental Billionaires)』의 저자로, 그는 이번 책 『비트코인 억만장자의 신화(Bitcoin Billionaires)』 에서 초기 암호화폐 시대부터 세계가 비트코인을 현실로 인식하기 시작한 최근까지, 그리고 비트코인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그것을 기회로 잡은 사람들, 특히 쌍둥이인 윙클보스(Winklevoss) 형제가 비트코인 투자를 통해 억만장자가 되는 여정을 다뤘다. 비트코인 및 다른 가상화폐가 궁금한 사람들이 읽어보면 흥미를 가질 내용들이 가득하다. 원서로는 2019년에 출간되었다.




책은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의 속표지는 알렝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속 문장들을 발췌해놓고 있다. 1장은 "도덕적인 상처는 특이성을 갖고 있다. 상처가 숨겨질 순 있지만 완전히 아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항상 고통스럽고 상처에 닿으면 피가 나려고 한다. 그 상처는 늘 새롭게 벌어진 채 마음속에 남아있다." 로 시작한다.

​윙클보스 형제는 하버드 재학 당시 폐쇄적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컨셉을 가지고 논의했었는데, 마크 저커버그는 그 아이디어를 도용해 페이스북을 만들어 서비스한다. 형제는 마크 저커버그와의 소송에서 이겨 2천만 달러의 현금과 4천5백만 달러 상당의 페이스북 주식을 받는다. ( 이 내용은 작가의 전작 『소셜 네트워크』 와 영화 <소셜 네트워크>로도 확인할 수 있다. )

그들은 합의금으로 받은 자본금을 바탕으로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는 회사를 설립하지만 페이스북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스타트업들이 외면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든 비트코인을 접하게 되는데, '돈이 소셜 네트워크'라는 관점으로 받아들인다. "냅스터와 마찬가지로 이건 P2P입니다. 그리고 이건 모두 공개되어 있습니다. 내부자 정보도, 투자 전략도 없습니다. 모두 오픈 소스이고 민주적입니다. 이 새로운 화폐 체계는 인간이 아닌 수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p99)".

형제가 페이스북과의 소송 이후 겪었던 어려움과 우연한 기회로 비트코인 세계에 입문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 1장에서 독자들은 그들이 비트코인을 접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함께 하며 비트코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된다. 기술에 관련된 부분을 소설처럼 읽기 쉽게 풀어내어 비트코인에 대한 입문서 역할을 해낸다.

2장은 "인생은 폭풍우이다. 당신은 잠시 햇빛에 몸 녹일 수는 있어도, 다음 순간 바위에게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당신을 남자로 만드는 건 폭풍이 왔을 때 당신이 무얼 하는가에 달려있다" 란 문장이 발췌되어 있다. 비트코인의 잠재력에 관심을 가지게 된 형제는 경제적 잠재력과 기술적 측면을 분석하기 시작하고, 초기 비트코이너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비트코인을 구매하고, 홍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트코인을 위한 첫 번째 ETF(상장지수 펀드)를 만들어 기존 은행계에 도전한다.

​3장은 "모든 인간의 지혜는 이 두 단어에 담을 수 있다. '기다림' 그리고 '희망'!" 으로 시작한다. 규제 당국과의 갈등 등 암호화폐 시장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장으로 비트코인의 선구자이자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 중 하나인 비트인스턴트의 설립자 찰리 쉬렘과의 관계가 좀 더 상세하게 풀린다. 비트인스턴트의 주요 투자자가 된 형제는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구입할 수 있는 안전하며 사용자 친화적인 플랫폼 구축을 희망한다. 그러나 찰리 쉬렘은 불법 활동에 연루되며 돈세탁 혐의로 체포된다. 초기 암호화폐 시장을 둘러싼 위험과 그늘진 활동이 강조되는 장면이다.

『비트코인 억만장자의 신화(Bitcoin Billionaires)』 는 단순히 비트코인 운영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내용만을 담고 있지 않다. 실제의 이야기를 뛰어난 상상력과 작가적 구성으로 스토리를 살린 논픽션이기도 하다. 대화와 장면 묘사가 상세하며, 일부는 저자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었다. 덕분에 한 편의 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저자는 암호화폐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 사회경제적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물론 암호화폐가 금융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직면할 도전과 불확실성도 함께 보여주면서 암호화폐의 미래와 돈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나는 윙클보스 형제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 세계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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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마르틴 베크 시리즈 10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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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르틴 베크(Martin Beck)의 마지막 권을 읽었다. 마지막 작품인 『테러리스트』는 박찬욱 영화감독이 마르틴 베크 시리즈 중 가장 아이디어가 풍부한 작품이라고 추천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추천사에서 '세 편으로 나누어 발표했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한 편에 다 넣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따로여도 좋았을 아이디어들이 하나로 얽히니 얼마나 교묘한가. 시리즈 마지막답게 야심적이고 총체적이고 풍부하다.' 라고 했다. ( 추천사 전문은 온라인 서점의 소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이야기에서 마르틴 베크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암살 테러를 일삼는 국제 테러리스트를 추적한다. 





더 이상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표지부터 꼼꼼하게 살펴본다. 표지는 '디자인 소요'에서 맡아 디자인을 했는데, 마지막 표지에 대한 내용이 인스타에 있어 옮겨왔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테러리스트>의 표지 디자인은 시리즈의 클라이맥스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더 강한 대비를 이용했다.


마르틴 베크와 그의 팀이 각 테러리스트들의 음모를 파헤치는 사건에 긴장감과 위기감을 더하는 디자인 요소가 필요했다. 대비가 짙은 조합으로 테러의 위험성과 긴박함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폭발 장면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긴장감을 극대화했다.폭발의 이미지는 책의 핵심 테마를 즉각적으로 전달하고, 파편이 흩어지는 모습은 사건의 파괴력과 혼란을 암시하도록 했다.

- 디자인 소요 인스타 (@design_soyo)


라틴 아메리카에서 장기간 독재정치를 행하던 대통령이 거리 한복판에서 폭탄 테러로 죽임을 당하고, 곧 배후에 있는 암살 조직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최근 그들이 유력 정치인을 대상으로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자행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정상급 정치인이 방문할 예정이다보니 스웨덴 경찰은 국빈 경호를 위한 특별반을 꾸린다. 마르틴 베크는 특별반의 총책임자로 임명된다. 

눈 앞의 임무가 얼마나 문제투성이일지 훤히 그려졌다. 회의가 끝없이 열릴 테고, 거들먹거리는 정치인들과 군인들이 이래라저래라 참견하겠지. 그래도 만약 공식 지시가 떨어진다면 그는 거절할 수 없는 처지였고, 군발드 라르손이 방안을 품고 있는 듯 했다. 

- p182, 마르틴 베크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시리즈 전반에 걸쳐 등장한 캐릭터들의 성장과 관계 발전이 두드러진다. 초반에 앙숙 관계였던 인물들이 호흡이 잘 맞는 팀으로 변모했다. 이전 9권에서 경찰을 그만둔 콜베리가 수사팀에 참여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는데, 마르틴 베크도 콜베리를 그리워한다. 

마르틴 베크는 벅찬 만족감을 느꼈다. 서로에 대한 개인적 의견이야 어떻든, 그들은 훌륭한 팀이었다. 마르틴 베크가 자신의 의도를 좀 자주 설명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점에서 여느 때처럼 콜베리가 그리웠다. 

- p272



시리즈를 통해 활약한 마르틴 베크에 대한 총평이랄까, 그의 수사방식을 서술하는 문장에서는 작가의 애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독자들의 느낌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마르틴 베크가 왜 좋은 경찰관일까 하는 문제를 궁금해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중략>

질투하는 이들은 그가 맡는 사건이 적다는 점, 또한 그 대부분이 해결하기 쉬운 사건이라는 점을 즐겨 지적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의 사건 수는 스톡홀름 경찰의 다른 부서들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중략>

만약 누가 마르틴 베크에게 이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중요한 순서대로 꼽아서 '체계적 사고, 상식, 성실성'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중략>

마르틴 베크가 탁월한 경찰관이 된 요인을 꼽을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좋은 기억력, 이따금 고집불통처럼 보이기도 하는 끈기, 논리적 사고 능력이었다. 또한 사건과 관련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설령 나중에 무의미한 사실로 밝혀지고 마는 하찮은 일이라도 반드시 시간을 내어 확인하고 넘어간다는 점이었다. 그런 사소한 고려가 가끔 중요한 단서로 이어지기도 했다. 

- p314~315


사건과 수사 과정을 통해 전하고 있는 사회 비판적 시각 또한 이 책의 재미 요소 중의 하나이니 놓치지 말 것.

『테러리스트』에서 ‘테러리스트’는 단순히 국제 테러 조직에 속해 있는 자들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타국민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강대국의 정치인들과, 자국민을 억압하고 입맛대로 움직이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들, 즉 ‘국가’와 ‘체제’에 의한 폭력이 테러와 다름없음을 비판한다. 이 책의 서문을 쓴 미국의 하드보일드 스릴러 작가 데니스 루헤인 역시, 『테러리스트』의 서문에서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에게 최대의 적은 “총알이나 폭탄이 아니”며, “스스로에게 불행한 상황을 오히려 치켜세우고 보상하는 관료 기구”라고 지적하고 있다.

- 온라인 책 소개 중에서

폭력은 지난 십 년 동안 서구 사회 전체를 눈사태처럼 덮쳤어. 그 사태를 자네 혼자 막거나 방향을 틀 순 없어. 어떻게 해도 폭력은 증가할 거야. 자네 탓이 아니야 <중략>

마르틴, 자네의 문제는 잘못된 직업을 가졌다는 것뿐이야.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나라에서 잘못된 체제에서.

- p554, 콜베리의 말 중에서


마지막 권인지라 시리즈를 끝맺는 역자의 후기가 실려있다. 시리즈 내내 수사를 방해하는 빌런이었던 '멍청이 순찰조'는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배역이었다는 것을 확인해보기도 하고, 작가들의 최애 캐릭터도 알게 되어 좋았던 마지막 권. 오랫동안 마르틴 베크를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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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문
아쿠타가와 나오 지음, 이진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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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사토는 스트로베리 문이라는 거 알아?"

책을 펼치면 과거의. 한 장면이 프롤로그의 첫 장면으로 펼쳐지고, 페이지를 넘기면 외과 병동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화자의 현재로 옮겨진다. 환자의 입원실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6월 4일, 오늘 밤에 뜨는 보름달은 스트로베리 문..' 이라고 알려주자 주인공은 올해의 스트로베리 문도 6월 4일인 '우연'에 놀란다. 이제 소설의 이야기는 주인공의 고등학교 입학식날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입학식에 살짝 늦은 사토 히나타는 낯선 미소녀를 만나고, 곧 같은 반의 사쿠라이 모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외모에 어울리는 연예인 같은 이름이다. 얼굴도 연예인처럼 예쁘고, 이름도 예쁘다.'(p29) 라며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그녀가 친근하게 대하다 못해, 갑자기 자신을 여자친구로 삼아달라는 말에 당황한다. '어안이 벙벙한 나와 사쿠라이 모에의 연애는 나의 주도권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태로, 천진난만한 그녀가 모두 주도하여 입학식 당일, 이 순간에 시작되었다.'(p47)

사쿠라이 모에는 여름 하지에 볼 수 있는 '스트로베리 문'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프롤로그에 있는 장면이다. 학교 선생님 버전과 로맨틱 버전의 설명이 있다.


학교 선생님 버전의 설명 :


스트로베리 문은 아메리카 선주민이 매달 뜨는 보름달에 붙인 이름 하나야. 달은 달과 태양이 지구를 사이에 두고 거의 정반대에 위치할 보름달이 되는데 여름과 겨울에는 달과 태양이 관측할 있는 높이가 반대가 되거든. 여름이 되면 태양이 높아지고, 해가 길어지는 알지? (p41)


<중략>


겨울에는 밤이 길어지고 태양이 낮아지잖아. 반대로 여름에는 밤이 짧아지면서 보름달의 높이는 낮고, 겨울에는 높아져. 하지 보름달은 지평선 가까이에 위치해. 아침놀과 저녁놀이 빛의 반사로 붉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평선 가까이에 있는 보름달도 시간대나 장소에 따라서는 붉은빛이 감도는 보여. (p42)



로맨틱 버전의 설명 : 



스트로베리 문이란 행운을 부르는 달이라고 . 스트로베리 문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가지가 있어. 하나는 붉고 동그란 형태로 떠오르는 마치 딸기처럼 붉은 같다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다는 . 다른 하나는, 미국에서는 딸기 수확을 6월에 해서 스트로베리 문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야. 


<중략>


스트로베리 문에는 인연을 맺어주는 효과도 있다고 .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보면 영원히 이어진다고 …… 로맨틱한 미신을 믿어 보고 싶어. 앞으로의 인생에서 매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스트로베리 문을 바라보는 거야. 그게 나의 작은 꿈이야. 이상하려나? (p44)


반짝반짝 빛나는 고등학교 생활 속에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은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체육시간에 참여하지 못하고, 쉽게 외출하지 못하는 사쿠라이 모에의 모습이 암시하는 상황이 독자로서 살짝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다.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가 오버랩 되기도 한다.

소설의 후반부, 사쿠라이 모에의 일기를 통해 두 사람의 또 다른 인연을 알게 되면서 독자들은 더욱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그녀를 위한 주인공의 노력은 둘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애틋하다. 사쿠라이 모에의 일기를 읽다보면 저절로 코끝이 시큰해진다.

"사토 히나타는 사쿠라이 모에를 사랑합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마음 그대로 ......"(p281)


이 소설도 영상화 될까? 애니메이션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의 설레임, 두근거림을 소환해야할 때 읽으면 더욱 좋을 듯. 영어덜트 소설로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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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살해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9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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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티타임, 국내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덕분에 원작인 넬레 여사( 넬레 노이하우스 )의 소설을 읽겠다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화제는 북유럽 스릴러 소설에 대한 이야기로 뻗어갔다. 북유럽 소설이 국내에 소개되던 시절 '넬레 여사 파'와 다른 소설가들의 파가 나뉘었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파'라고 썼지만 '팬'이라고 읽어 보자.) 개인적인 호불호기에 이제 북유럽 소설에 입문하는 거면 대표작들을 읽고, 결이 맞는 작가의 시리즈를 읽어보아도 좋을 듯 하다는 생각과 함께. 개인적으로 나는 넬레 여사보다는 '요 뇌스베 파' 였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읽기 시작하게 된 배경에 요 뇌스베가 있었다. 온라인 책 소개에 '요 네스뵈, 헨닝 망켈 등 유수의 범죄소설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리즈, 북유럽 미스터리의 원점' 이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3권 『발코니에 선 남자』 에는 요 뇌스베가 서문을 쓰기도 했다. 


마르틴 베크(Martin Beck) 시리즈도 벌써 아홉권째를 읽기 시작한다. 2024년 2월에 1권인 『로재나』 를 읽기 시작했으니 천천히, 오래 읽었다. 마지막 10권까지 시리즈 완독의 정상이 눈 앞에 보이니 뿌듯하다. 





마르틴 베크는 7권 『어느 끔찍한 남자』 에서 부상을 당하고, 8권 『잠긴 방』 에서 15개월만에 복귀했다. 마르틴 베크와 그의 동료들은 천재적인 추리력을 뽐내는 독보적이고 영웅적인 탐정이 아니라, 정해진 일과와 절차를 따르는 지극히 현실적인 경찰이다. 


스웨덴 남부 스코네 주의 최남단에 위치한 시골 마을에서 한 여성이 홀연히 사라진 사건이 발생하고, 스톡홀름에서 절도범을 추적하고 있던 마르틴 베크와 콜베리에게 사건이 배정된다. 곧장 남부로 향한 그들은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는 자가 과거 자신들의 손으로 체포했던 범인이라는 사실과 마주하고 각자 복잡한 심경에 빠진다. ( 1권 『로재나』 의 범인인 폴케 벵트손이다.) "내가 아는 한, 폴케 벵트손은 확실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학성애, 청교도주의, 여성 혐오가 섞인."(p73) 


또 다른 사건의 범인도 만나게 된다. 군나르손은 이름을 바꾸고, 가석방 감독관이 주선해준 지방지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었던 것. "마르틴 베크는 자신과 콜베리가 과거 사건들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두 사건을 일으킨 두 남자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안데르슬뢰브 같은 곳에서 만난 게 참 얄궂은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147)" ( 이번 9권에서는 1권 뿐만 아니라 2권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의 범인마저 스포하고 있으니 시리즈는 순서대로 읽으시길! )


이미 전과자인데다가 실종자와 마지막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자의 증언에 국가범죄수사국의 국장은 사건을 간단히 정리하라고 독촉한다. 스웨덴 경찰의 고위직이 자신들의 권력과 권위에만 집착하는 모습에 씁쓸해진다. '청장은 질문이나 말대답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싫어하기로 유명했다.(p201)' 라니.. ! 사회고발소설로서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서술 또한 계속 이어진다. 범죄율이 계속 오르고,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사실. 그리고 '선공을 날린 것은 경찰이라는 사실'(p204)을 경찰 수뇌부에는 한 명도 없는 데다가, 이 사실을 이해할 마음조차 없다는 것을 베크가 한탄하는 장면이다. 

경찰은 문제가 많았다.

문제는 대체로 1965년 경찰 국영화와 함께 시작되어다. 이후 경찰은 국가 내의 국가로 발달하기 시작했고, 시민들에게 인기가 없어졌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경찰관이 시민을 대하는 태도도 갈수록 적대적이고 무서우리만치 반동적인 방향으로 변했다. 가령 경찰관 셋 중 한명은 아이를 가급적 어려서부터 때려서 키워야 한다고 믿었고, 엄벌과 체벌만이 자라나는 세대를 제대로 육성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경찰관 열에 아홉은 경찰이 범죄 혐의자를 너무 관대하게 다룬다고 믿었고, 종종 자유재량에 따라 내려지는 법원의 선고가 부적절하다고 여겼다. 

- p204


청장이 답이 뻔히 보인다던 사건은 빈집털이범과 순찰 경관들 사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상황이 변한다. 경찰청은 살인 사건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도주한 '경찰 살해범'을 검거하기 위해 온 경찰력을 동원한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서 그동안 보여주었던 것처럼 언뜻 서로 관계없는 것 같던 사건들이 엮이면서 결말로 향한다. 


렌나르트 콜베리는 경찰의 행동에 크게 실망한다. '덕분에 뭔가 깨달은 것 같아. 어쩌면. 아무튼, 우리 동료라는 자들이 어떤 인간인지(p446)' 그리고 사직서를 쓴다. 그의 사직서는 스웨덴 경찰조직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하며, '저는 이 직업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양심상 더는 수행할 수 없는 상태에 처했습니다' 라고 맺고 있다. 저자들이 전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리라. 콜베리의 사직서는 받아들여질까. 그럼 다음 권에서는 콜베리를 만날 수 없는 걸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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