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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ㅣ A Year of Quotes 시리즈 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로라 대소 월스 엮음, 부희령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3월
평점 :
법정 스님의 책을 읽다가 '대자연에 대한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불멸의 고전' 이라는 문장으로 월든(Walden)을 읽게 되었었다. 법정 스님은 "소로우의 생활신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간소하게 살라' 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더 명료해질 것입니다." 라고 소개하며 스님의 『무소유』 와 맞닿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갔었다. 그 당시 '소로우' 로 기억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의 만남이기도 하다. 사실 난 소로의 저서는 「월든」 만 있는 줄 알았다. ( 이는 월든 완독을 여러 번 시도 했던 이유도 크다. )
1년 365일 동안 매일 한 편씩, 시대를 초월하는 소로의 명문장을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된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를 읽으며 발췌된 문장들의 출처를 보다가 소로의 저서가 매우 많았음에 놀랐다. 게다가 들어보았던 제목인데 그 작품이 소로의 작품인 줄 몰랐다는 것에 두번 놀랐다. 소로=월든의 공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The Daily Henry David Thoreau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저,로라 대소 월스 엮음,부희령 옮김
니케북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날짜별로 발췌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그 날의 문장을 들춰보게 된다. 따뜻한 봄날의 기운이 느껴지는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겨울동안 어쩐지 움츠러들어있던 것 같은 사유도 봄과 함께 깨어나는 듯 하다. 소로가 이야기한 것처럼 내 안에 내재한 천재성이 나를 어떻게 이끌어가는지 이번 봄에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따스하고 기분 좋은 날이다. 훈훈한 하늬바람 속에 향기가 섞여 있는 듯 하다. 나는 담벼락 옆에 앉아서 다시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낯설어도 기억에 남을 만한 영향을 받으면 우리는 다시 유연해져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 안에 내재한 천재성이 우리를 조금씩 이끌어 갈 것이다. 녹아서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진 흙처럼. 우리 내면의 겨울이 부서진다. 나에게서 서리가 빠져나가고, 나는 활짝 열린 도로가 된다. 쌓여 있던 얼음과 눈이 녹아내리고, 예상치 않게 열린 통로로 밀물처럼 사유가 쏟아진다. 나는 힘이 나서 다시 한번 지구라는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상징적인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물론 내내 걷고 있었어도 나는 아직 지구의 정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 1853년 3월 21일의 일기
'최고의 책들을 가장 먼저 읽어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읽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 보낸 일주일(1849)' 란 발췌문을 읽으며 엉뚱하게도 사과를 먹을 때 맛있는 것부터 먹는가, 맛없는 것부터 먹는가.. 란 생각을 떠올리며 웃었다. 맛없는 부분이란 뜻은 아니지만 새로 나온 책들을 읽느라 '최고의 책' 으로 분류되는 고전들을 뒤로 미뤄왔던 것을 떠올리기도 한다. 미뤄뒀던 순서를 앞으로 가져와야겠다며 목록을 떠올려보게 된다.
「시민 불복종」 은 이 책 뿐만 아니라 다른 칼럼들에서도 많이 읽었던 내용인데 정작 책 전체를 읽어보지는 못했다. 발췌문만 읽어보다보니 전체 맥락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소로의 책 중 다음 차례에 읽어볼 책으로 '찜'하게 된다.
국가는 인간의 분별력, 지성, 도덕에는 관심이 없고 의도적으로 오직 신체와 감각만을 중요시한다. 뛰어난 재치나 정직함을 내세우지 않고 신체적 힘을 내세운다. 나는 강요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내 방식대로 호흡할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보자. 다수가 지닌 힘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나에게 오직 나보다 더 높은 법에 복종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 시민 불족종(1849)
『월든』 의 경우 문학사에서 평가받는 지점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처럼 소로우의 구도자적인 모습과 정신적인 통찰을 읽어내는 것,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매우 아름답다는 점, 문명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 세속적인 성공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점들이 있다. 그런데 「일기(Journal)」 (국내 번역제목 「소로우의 일기」) 또한 그렇게 다가온다.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에는 소로우의 일기에서 발췌된 부분이 가장 많다. 미국 노트르담대학교 영어과 교수이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연구 권위자인 저자는 비슷한 시기에 쓰인 글이나, 계절과 어울리는 글들을 잘 배치해두었다.
QnA Book 이라는 분류의 책들이 많이 나온다. 매일 주어지는 질문에 대해 일기처럼 짧은 글을 적을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기도 하고, 노트이기도 하다. 테마에 따라 질문들이 달라지는데 문득 이 책으로 소로의 글이라는 테마로 '매일 글쓰기' QnA Book 을 해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다. 본격적인 질문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발췌된 소로의 글을 읽으며 그 문장이 전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혹은 같은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본 것에 대해, 그것도 아니면 필사라도 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은 구성이다. 소리내어 읽어보는 것으로도 좋은데, 필사를 해보면 더욱 좋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