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0.8.2 일, 사상최대 인구감소에 ‘주름살’  

65살이상 노인비율 최고
“잠재성장률 더 악화될것”  

지난해 일본 인구가 사상 최대 규모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생자수가 제자리 걸음을 하는 가운데 고령 사망자의 수는 늘어났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는 국내 수요 부족으로 장기간 침체에 빠져 있는 일본 경제의 회복에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일본 총무성이 30일 발표한 ‘주민기본대장 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3월 말 현재 일본 인구는 1억2705만7860명으로, 1년 전에 견줘 1만8323명 감소했다. 이런 감소폭은 2006년의 3505명을 뛰어넘은 사상 최대 규모다.

주민기본대장 일본 인구는 2006년3월 집계 때 감소로 돌아섰으나, 최근 2년간은 소폭 증가한 바 있다. 이 인구 집계에는 일본에 실제 거주하는 일본인만 포함하고, 외국인은 제외한다.

출생자와 사망자만을 고려한 자연감소는 지난해 7만3023명에 이르러 인구감소의 핵심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출생자수는 107만3081명으로 2년 연속 줄면서, 1945년 이후 최저치였던 2006년(106만5533명)에 근접했다. 반면, 사망자수는 전년대비 1만1703명 늘어난 114만6105명으로 사상 최대였다. 그나마 국외에서 귀국한 사람이 새로 출국한 사람보다 5만4701명이나 많아, 인구 감소폭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산케이신문>은 “인구감소 경향은 계속되고 있으나 2008~2009년에는 세계적인 불황으로 국외에 나갔던 많은 일본 기업이 철수하면서 귀국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65살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22.68%로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15살에서 64살까지의 생산가능인구는 8118만명으로 10년 전에 견줘 480만명이나 감소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인구감소는 일본의 잠재성장률을 한층 떨어뜨릴 것으로 우려된다”며 “지방정부의 재원 확보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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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매거진 2009.3.16 고령화보다 무서워… 나라 장래 ‘암울’ 

인구 감소의 공포에 떠는 일본 

일본 도쿄의 캐논 본사는 요즘 오후 5시 30분이 되면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야근을 위해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가는 게 아니라 모든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퇴근하는 것이다.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일본 기업에서 ‘칼퇴근’이 가능한 건 회사가 1주일에 이틀을 아예 ‘조기 퇴근일’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일찍 귀가해 더 많은 아이를 낳으라”는 것. “캐논은 회사 차원에서 강력한 출산 계획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조기 퇴근 조치 역시 그 프로그램 중 하나”라는 게 요시나가 히로시 캐논 홍보부장의 설명이다.

일본 기업들이 직원들을 일찍 퇴근시키면서까지 ‘아이를 더 낳으라’고 독려하는 현실은 저출산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일본의 출산율은 여성 1인당 1.34명. 한국(2007년 1.2명)보다는 많지만 현재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 출산율인 2명에 훨씬 못 미치긴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일본 인구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이 연초에 내놓은 ‘2008년 인구동태통계’에 따르면 사망자 수에서 출생자 수를 뺀 자연 감소 인구는 지난해 5만1000명에 달했다. 2005년과 2007년에 이은 세 번째 자연 감소다.

후생성은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로 앞으로도 인구 감소는 계속 확대될 것”이라며 “일본은 본격적인 인구 감소 사회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이는 초고령사회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게 후생성의 지적했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건 시장이 좁아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업들엔 비상이 걸렸다. 특히 내수 업종인 금융회사들의 위기감은 심각하다. 일본의 손해보험업계 2위인 미스이스미토모해상과 4위인 아이오이, 6위인 닛세이도는 최근 합병을 발표했다. 세 회사가 합병하면 보험료 수입만 2조7000억 엔으로, 업계 수위인 도쿄해상홀딩스를 5000억 엔 정도 앞서게 된다.

물론 이 세 회사가 합병을 결정한 건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구 감소와 경기 악화로 인해 국내시장이 축소됨에 따라 생존을 위해 합병한 것이다. 이들 손보 3사의 경영 통합은 손보 업계의 세력 재편을 떠나 생명보험과 은행을 포함한 금융계 전체의 재편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시장 축소라는 현실은 모두 똑같이 떠안고 있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음료 회사나 제약 회사 등이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도 결국 시장 축소 때문이다. 인구 감소로 일본 시장에선 더 이상 매출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중국이나 호주 등 거대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 업체를 인수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 인력 부족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일본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이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내수 위축을 막기 위해 이주 정착을 전제로 한 이민을 받아들이자고 공식 제안할 정도다. 게이단렌은 그간 자체 이민 정책으로 내걸었던 ‘기간을 한정한 외국인 노동자 수용’이라는 방침을 바꿔 이주 이민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다른 페이지에도 있지만 이런 이유로 브라질 이민 2세대들을 대거 받아들였는데, 경기가 어려워지니 이 사람들이 해고 1순위가 돼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2055년 일본의 전체 인구는 지금보다 약 30% 줄어든 9000여만 명. 그중 15세 이상 65세 미만 생산연령인구는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4600여만 명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일하는 인력 1.3명이 고령자 1명을 부양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 재계는 이런 현실에서는 젊은 세대의 부담 증가로 사회보장제도가 파탄에 빠지고 의료나 간병 교육 치안 등 경제사회 시스템이 취약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노노 간호에 지쳐 동반 자살하기도

실제 인구 감소로 인해 일본 국민들은 당장 나이가 들어 받게 될 연금 액수도 줄어들 전망이다. 일본이 현재의 공적연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받는 후생연금의 지급 비율을 단계적으로 줄여 2038년 이후는 현재보다 20% 정도 낮춰야 한다는 분석이 최근 제기됐다. 저출산에 따라 연금보험료 징수액이 갈수록 줄어드는 데다 경기 악화에 따른 적립금 감소로 향후 연금 지급 비율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후생노동성은 향후 연금 정책 전망에서 현재 연금 지급 비율은 현역 세대가 벌어들이는 평균 수입의 62.3%이지만 2038년에는 50.1%로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전망은 일본의 향후 출생률을 1.26(2007년은 1.34)으로 연금의 장기 운용 이자 수익을 4.1%, 현재의 불황이 끝난 2015년 이후의 실질 경제성장률을 0.8%로 잡고 계산한 것이다. 현재 3분의 1인 기초연금의 국가 부담분을 2분의 1로 올리는 것도 전제로 했다.

인구구조의 고령화로 인한 각종 사회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핵가족화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가정에서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세대가 갈수록 늘고 있다. 그 같은 ‘노노(老老)간호’에 지쳐 동반 자살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증가 추세다.(---일본이 문제가 아니라 노인자살률은 한국이 더 문제다.)

일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던 2005년 후쿠이현 오노시 폐화장터의 80대 부부 동반 자살이 대표적 케이스다. 당뇨병으로 걷지 못하는 82세 부인을 간호해 오던 남편은 부인이 수년 전부터 치매 증상까지 보이자 이를 비관해 동반 자살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찰청 집계 결과 지난해 1~11월 ‘간호에 지쳤다’는 이유로 살인 사건(미수 포함)을 저지른 노인은 21명으로 전년 동기 5명에서 4배 이상 늘었다. 간병보험을 받는 세대 중 간호자와 피간호자가 함께 65세 이상인 노노 간호 세대는 2001년 40.6%에서 2007년에는 47.6%로 증가했다.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산교의대가 2002년부터 5년에 걸쳐 현 내 60세 이상 남녀 3000명을 추적해 이 기간 병이나 노쇠로 숨진 381명을 분석한 결과 노노 간호 남성이 건강한 가족과 동거하는 남성에 비해 사망률이 2배나 높았다. 게다가 간호하는 남성이 지팡이를 짚는 등 신체가 부자유한 경우는 사망률이 4배나 됐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파격적인 대책을 동원해 출산 장려에 나서고 있다. 그중 하나가 올해부터 출산비를 정부가 전액 지급하는 것. 젊은 부부들이 출산비를 걱정하지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현재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병원비를 스스로 부담하고 나중에 정부로부터 ‘출산·육아 지원비’로 35만 엔(약 520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환자 본인이 병원비를 낼 필요 없이 정부가 직접 병원에 출산비를 지급한다.

일본 정부는 또 최근 확정한 경기 부양책에서 임신부와 태아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임신부 검진’ 비용을 전액 무료화하기로 했다. 임신부 검진은 현재 5회분까지만 무료이지만 앞으로는 출산 때까지 필요한 14회분을 모두 무료화하기로 한 것이다.

저출산 대책엔 재계도 동참하고 있다. 게이단렌은 최근 ‘가족 주간’을 만들어 회사원들이 집에서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이 자녀를 갖도록 권고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캠페인은 저출산의 원인이 기업에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본의 가족계획 기관이 49세 이하 부부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과중한 업무로 잠자리를 가질 힘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 달간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부부는 2004년 31.6%에서 2006년 34.6%, 2008년 36.5%로 꾸준히 증가했다. 이들은 ‘회사 일이 너무 피곤해서’ 또는 ‘성관계에 흥미를 잃어서’를 이유로 꼽았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일본은 한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업무량이 많은 나라다. 가족계획 기관의 구니오 기타무라 회장은 “같은 방 안에서 TV를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저출산 해소에) 좋은 출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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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도 흉흉하다보니 교직사회에 대한 긍정적 글들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뭐 그렇다고 다 이해하고 좋게 봐달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너무 교사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하지만 밤에 오늘 신문(어찌하다 보니 항상 밤에 오늘 신문을 보게된다)을 보니 한겨레신문 권태선 논설위원의 글이 마음을 짜안하게 적신다. 힘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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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2010.8.2 ‘더 큰 엄마’ 선생님 힘내세

지난 주말 공주 갑사골에는 다른 이들을 돌보느라 고단했던 여성들이 돌봄의 대상이 돼 고단함을 달래고 기쁨을 누려보는 프로그램이 열렸습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날 아침,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프로그램을 주선한 쪽의 일원으로 갑사골로 향하면서 이런 폭우 속에 사람들이 과연 모일까 걱정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로 판명됐습니다. 참가 신청자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빠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최쪽으로선 반가운 일이었지만, 그만큼 우리 여성들의 고단한 삶의 무게가 느껴져 가슴이 짠해 왔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26명의 참가자는 3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나이만큼이나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정말 열심히 살았고, 그러느라 조금씩은 지쳐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선생님들이 유난히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방학이 시작되는 시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우리 선생님들의 삶이 고단하다는 방증이기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들로부터 교사로서의 삶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가 이어졌습니다. 10년차 초등학교 교사인 한 선생님은 ‘축제’였던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숙제’가 돼버렸다고 한탄했습니다. 초임교사 시절 환한 웃음으로 ‘방글이’로 불렸던 그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답니다. 다른 선생님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작 가르쳐야 할 것은 가르치지 못하고 아이들을 시험기계로 만드는 일에 동원되고 있다는 자괴감”을 호소했습니다.

그렇다면 축제였던 교사생활이 삶을 짓누르는 숙제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 교육 현실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선생님들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진 탓이라고 손쉽게 말하진 못하겠지요. 지금 교사들은 사방의 적들에 둘러싸인 형국입니다. 그들은 사교육 집단에 비해서 무능하면서도, 교원평가 등 이른바 개혁정책에 대해서는 반대를 일삼는 고루한 집단이란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교사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학교 당국은 학생 성적이 교육의 알파와 오메가인 양 선생님들을 몰아칩니다. 그렇다고 교사 상호간의 소통이 잘되는 것도 아니어서 고립된 섬이 된 선생님들은 혼자 발버둥치다가 지쳐가거나, 현실에 눈감은 채 이른바 ‘웰빙교사’로 자족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이런 사정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더욱 악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제고사를 비롯해 온갖 경쟁기제를 동원해 몰아치다 보니 학교는 갈수록 살벌한 전장으로 변해가고 그 속에서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병은 깊어만 갑니다. 20년 경력의 윤리 선생님은 주변에서 학교를 그만두거나 그만둘까 고민하는 선생님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참가한 선생님들은 현실에 대한 한탄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았습니다. 40대 중반의 한 교사는 “이 땅에서 살아왔고 살아가는, 나만큼 아팠을, 나만큼 허덕이면서 살아왔을 내 곁의 여성들로부터 내 상처의 더께가 떨어져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프로그램 후기에서 명상과 수다와 산책 따위로 이뤄진 이 소박한 프로그램에는 참가자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온 맘으로 귀기울이고 깊은 공감의 포옹을 할 수 있게 하는 돌봄 이상의 섬김이 있었다며 거기서 충전한 힘으로 ‘더 큰 엄마가 되려는 꿈을 안고서’ 세상 속으로 돌아왔다고 밝혔습니다.

바로 이런 선생님들이 있기에 우리는 아직 한국 교육에 절망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현실이 고통스러워도 공감과 연대만 있으면 선생님들은 내 아이를 넘어 이 땅의 상처받고 고통받는 아이들의 ‘더 큰 엄마’가 될 태세가 돼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런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들의 온전한 아름다움을 키워내는 ‘더 큰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응원의 손길을 내밀 때입니다. ‘더 큰 엄마, 선생님’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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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_언어의 전장 

p.264-267브뤼셀은 플랑드르 지역 안에 있지만, 네덜란드어(플라망어)와 프랑스어를 함께 쓴다. 방금 예로 든 표지판들만이 아니라, 이 도시의 모든 공적 텍스트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두 가지로 표기된다. 두 언어 가운데 하나로 표기된다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두 언어로 병기된다는 말이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이 도시에서 대등하다는 뜻이다. 브뤼셀은 언어사회학자들이 바일링구얼리즘(2개 언어 병용)이라 부르는 현상을 실현하고 있는 드문 도시이다.  

어떤 공동체가 두 개 언어를 쓰는 현상에는 바일링구얼리즘 말고 다이글로시아가 있다. 다이글로시아는 어떤 공동체가 두루 쓰는 언어가 그 사회적 기능과 공적 위세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를 가리킨다. 2개 언어 병용은 대부분 다이글로시아 형태로 실현된다. 이를테면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영어와 스페인어가 함께 사용되지만, 사회적 기능과 공적 위세에서 영어는 스페인어를 크게 압도한다. 

다이글로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이 주류 언어를 모어로 익혔을 때는 다른 언어를 굳이 배우지 않아도 되지만, 그가 비주류 언어를 모어로 익혔을 땐 주류 언어를 배워야 한다. ... 

그런데 브뤼셀은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대등하게 사용되는 바일링구얼도시다. 그래서 프랑스어가 모어인 브뤼셀 시민이든 네덜란드어가 모어인 브뤼셀 시민이든 굳이 다른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 한 통계에 따르면, 브뤼셀 시민 가운데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둘 다 모어처럼 쓸 수 있는 사람은 열에 하나 남짓밖에 안 된다. 제2언어를 배울 때 프랑스어 화자가 꼭 네덜란드어를 고른다거나 네덜란드어 화자가 꼭 프랑스어를 고르는 것도 아니다. 그 가운데 한 언어만 알아도 브뤼셀에서 사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두 언어가 대등하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그렇다는 것일 뿐, 실제로는 프랑스어의 위세가 더 크다. 프랑스어만을 모어로 삼고 있는 브뤼셀 시민이 절반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이것은 브뤼셀 안의 플라망어 공동체어만이 아니라 브뤼셀 바깥의 플랑드르 사람 일반에게도 씁쓸한 일일 것이다. 18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브뤼셀 시민 대다수는 네덜란드어 사용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랑드르 사람들은 브뤼셀을 자신들의 '잃어버린 수도'라고 애도하곤 한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 브뤼셀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으면서 흔들리기 시작한 네덜란드어의 우위는 19세기 내내 잦아들었다. 프랑스어의 문화적, 정치적 위세에 이끌려 네덜란드어 화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식들의 모어를 프랑스어 쪽으로 바꾸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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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트베르펜_키파와 다이아몬드 

p.251-254 전설에 따르면, 로마시대 어느 즈음 스헬데강 하구에 드루운 안티곤이라는 거인이 살고 있었다. 그 시절 스헬데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이 거인에게 비싼 통행세를 내야 했다. 통행세를 내지 않는 사람은 그에게 손이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드루온 안티곤에 대한 사람들의 원망이 쌓일 무렵, 실비우스 브라보라는 로마 군인이 이 지역에 나타났다. 브라보는 드루온 아티곤을 죽인 뒤 그의 손을 잘라 스헬데강에 내던졌고, 그 뒤 이 지역에선 피 흘림이 멎었다. 

이 전설의 핵심은 '던져진 손'이다. 그래서 '손'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한트'와 '던지다'를 뜻하는 네덜란드어 '베르펜'이 합쳐져 한트베르펜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거기서 첫 자음이 떨어져나가 '안트베르펜'이라는 이름이 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안트베르펜 사람들 대부분이 믿고 있는 애기다. 

그러나 브라보 전설을 안트베르펜이라는 이름과 연결시키는 것은 그저 민간어원일 뿐이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사악한' 거인과 '정의로운' 영웅을 대립시키는 이 전설이 역사적 승리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색됐을 가능성이다. 이 전설에서 영웅 브라보로 대표되는 세력은 아마 외래의 정복자였을 것이고, 흉악한 거인 드루온 안티곤으로 형상화된 집단은 스헬데강 하구의 토착 세력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손이 잘린 채 괴로워하고 있는 거인은 힘이 달려 정복당했다는 것 말고는 다른 죄가 없는 이곳의 원주민일지도 모른다. 

한때 유럽 최대의 무역항이었고 지금도 그 지위가 크게 추락하지 않은 이 도시의 엔도님은 안트베르펜이지만, 영어 엑소님 '앤트워프'와 프랑스어 엑소님 '앙베르'도 그 못지않게 널리 알려져 있다. ... 앤트워프는 다른 무엇에 앞서 다이아몬드센터다. 다이아몬드 절삭 산업의 규모가 세계 제일인 도시가 바로 앤트워프다. 중앙역과 이어지는 지하철역 이름이 '디아만트'(다이아몬드)고, 관련업체들이 모여 있는 중앙역 건너편의 서너 블록을 아예 다이아몬드 구역이라고 부를 정도다. 

이 다이아몬드 산업을 주무르는 세력은 유대인들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돌아본 도시들 가운데 유대인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던 곳이 앤트워프다. 그들이 유대인인 줄 어떻게 알았느냐고? 그들이 키파(정통유대교도들이 쓰는 검은 모자, 아르물케라고도 한다)를 쓰고 다니며 자신들이 유대인임을 드러내니 아는 것이지 내게 무슨 인종학적 투시안이 있겠는가. 

내가 앤트워프에서 좋아하는 곳들은 대개 구시가지에 있다. ... 그 구시가의 중심이 흐로트 마르크트라 불리는 광장이다. 그 둘레에 시청과 그 유명한 성모대성당이 있다. 그 유명한? 영화와 애니메이션과 연극으로 수없이 각색된 영국 작가 위다의 소설 <플랜더스의 개>('플랜더스'는 '플랑드르'의 영어식 지명이다)가 바로 이 성당에서 슬프게 마무리되기에 한 말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주인공 넬로가 애견 파트라슈를 껴안고 죽는 곳이 이 성당의 루벤스 그림 아래서다. 기실, <플랜더스의 개>가 앤트워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게 된 것은 이 작품에 반해 성모대성당과 루벤스 그림을 보러 이 도시로 몰려든 일본인 관광객들 덕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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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프_영국 생각, 캐나다 생각 

p.240-241 디에프 해안은 깎아지른 듯 높다랗게 서 있는 흰빛 낭떠러지들로 유명하다. 그런데 바다 건너 도버에도 그런 백악의 해식애가 늘어서 있다 한다. 기원전 5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브리튼섬 침공의 거점으로 도버를 골랐다. 카이사르가 거기서 처음 본 것이 그 흰빛 단애들이었으니, 그가 이 섬을 알비온(하얀 땅)이라 부른 것도 그럴싸하다. 실은 지금의 영국 땅을 이 비슷한 이름으로 부른 것은 그 이전부터고, 그 이름은 켈트어 어원으로 '땅'이나 '세계'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로마인은 대뜸 그것을 제 나라 말 '알부스'(하얀)와 연결시켰다. <박물지>의 저자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와 <지리학>의 저자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를 거치며, 알비온은 고대 세계에서 '흰 땅'이라는 뜻을 담아 브리튼섬을 가리키는 보편적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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