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힘 - 지리학, 운명, 세계화의 울퉁불퉁한 풍경
하름 데 블레이 지음, 황근하 옮김 / 천지인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생각지 못하게 서평(너무 거창하다) 비스무레한 글을 쓰게 되었다. 전국지리교사모임에서 나오는 계간지에 지리관련 서적이나 지리수업에 참고할 만한 책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내가 뭐 그런 글을 쓴만한 글재주나 능력이 있지는 않지만, 평소에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쓰게 되었다. 먼저 블로그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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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16  지구는 둥근데, 웬 ‘평평’(flat) 타령?

“공간의 힘에서 자유로워지게 한 변화가 많이 일어났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에게 태어난 곳은 여전히 그들의 삶을 운명 짓는 강력한 요소이다.” 미시건 주립대학 지리학과 교수로 있는 하름 데 블레이 교수의 책 ‘공간의 힘’(The Power of Place) 서문의 일부분이다. 이 한문장에 세계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에 의해 세계 어느 곳에 갈 수 있고 또한 갈 수 없다 하더라도 거의 모든 것들에 관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현재, 혹자들은 세계는 ‘균질’, ‘평평’(flat)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이가 세 차례나 퓰리처 상을 수상했으며,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로 있는 토머스 L. 프리드먼일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화에 의해 수십억 인구와 다국적 기업들이 장소와 언어·문화·종교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에서 주장하고 있다. 예전에 이 책을 구입해 놓고 서문만 읽었다가, ‘공간의 힘’과 관련된 글을 쓰다 다시 서문과 결론 부분만 읽어 보았다. 온통 세계화의 긍정적인 부분만 강조되고 있다. 특히 아웃소싱에 대한 프리드먼의 확신은 너무 과장된 듯 하다. 그 일례로 아웃소싱 컨설턴트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자신의 HP프린터(왠만한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자신이 쓰는 프린터가 고장이 났다고 직접 A/S센터에 전화해서 20여분이나 통화를 하며 수리를 할까? 물론 미국과 한국의 기업가들의 마인드가 차이가 있어서 내가 이해 못할 수도 있거나, 오해할 수도 있지만, 좀 과장된 내용이 아닐까?)가 고장이 나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 인도인 출신의 기술지원팀원과 상담을 하다, 자신이 미국의 소리(VOA : Voice of America)란 방송에서 아웃소싱에 대한 옹호성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이 인도인 출신 HP직원이 옹호, 격려를 했다는 일화를 거론한다. 그런 후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평평한 세계에서는 굴욕감과 수치만이 광섬유를 통해 확산되는 것이 아니다. 자랑과 긍지도 광섬유를 타고 빛의 속도로 확산된다!”라고 애기한다. 인도인 직원이 인도도 아닌 굴지의 미국의 IT기업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인도의 자랑과 긍지란 말인가? 단지 그것만으로 그렇게 애기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 단순화 시키는 것 같다. 억지스럽다!

사실 본론은 ‘세계는 평평하다’가 아니라 ‘공간의 힘’인데, 말이 좀 길어진 것 같다. '공간의 힘'의 차례를 보면 01. 세계인, 지역인, 이동인 02. 제국의 유산, 언어 03. 운명을 결정하는 종교의 지리학 04. 공중보건의 울퉁불퉁한 지형학 05. 위난의 지리학 06. 열린 공간, 닫힌 공간 07. 같은 공간, 다른 운명 08. 힘과 도시 09. 지방의 가능성과 위험 10. 장벽을 낮추기 순으로 되어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예전에 읽었던 부분에서 줄친 부분만 다시 읽으면서 유심히 보니, 챕터 제목이 이상한게 보였다. ‘05. 위난의 지리학’ 부분인데, 대부분의 지리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위난‘의 지리학에 ’위난‘의 뜻을 무엇으로 생각할까? 난 중국의 ’성‘(省)중에 하나로 인식을 했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서 전혀 다른 내용이어서 원서를 아마존에서 찾아(몇몇 책들은 미리 보기 기능이 있어서 목차와 서문 정도는 볼 수 있다)보니 챕터 05 제목이 ’Geography of Jeopardy'로 되어 있었다. ‘Jeopardy'는 ’위험‘을 뜻한다. 물론 ‘위난’(危難)의 뜻도 ‘위험하고 곤란한 경우’이다. 어휘적 의미에서는 틀리지 않았지만, 지리 전공자들에게는 ‘위난’이란 말보다는 쉽게 ‘위험’이란 어휘가 적절한 듯 하다.그러니깐 챕터 05의 제목은 ’위난의 지리학‘ 보다는 ’위험의 지리학‘ 또는 내용상 ’재난의 지리학‘ 정도로 하는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아마도 01. 세계인, 지역인, 이동인. 06. 열린 공간, 닫힌 공간. 07. 같은 공간 다른 운명. 10. 장벽 낮추기 챕터일 것이다. 특히, 블레이는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세계인·지역인·이동인으로 분류했다. 세계인은 중심부에서도 상위층에 위치한 운 좋은 사람들을, 지역인은 가장 가난하고 이동성이 적으며 울퉁불퉁한 공간의 영향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말한다. 이동인은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해 하위층에 자리잡은 이주민들이다. 중심부와 주변부에는 완고한 장벽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서술한 것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다. ‘아파르트헤이트’는 화장실이나 공원 벤치와 같은 개인적 시설물과 같은 미시적 차원이나, 도시·주택지 같은 중간적 차원, 지역·영토같은 거시적 자원 등 모든 차원에서 작동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남아공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저자의 경험에 비취어 볼 때 이 장벽은 자연적인 경계가 아닌 인종차별적인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세력을 잃지 않고 일반 민중들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위적이며 비이상적인 것이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담고 있다.

저자는 지리전공자 답게 각 챕터마다 종교, 언어, 재난, 분쟁, 질병, 평균수명, 도시화율, 여성의 사망률, 여성의 정치참여율 등을 담은 내용과 지도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자료들은 세계의 현실을 좀 더 직시할 수 있는 중요한 지침이 되어준다. ‘공간의 힘’의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소제목은 ‘더 평평한 세상을 향하여’이다. 아마도 이 ‘평평’이란 말은 블레이나 프리드먼 둘 다 같은 뜻을 지닌 같은 어휘일 것이다. 그러나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바로 ‘공간의 힘’의 미덕은 그 차이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인식시켜 준다는데 있지 않나 싶다. 두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서 끝낸다. 어떤 ‘평평’함이 우리에게 더 유의미하고 올바른 선택인지는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일 것이다.

‘세계는 평평하다’의 마지막 부분에 프리드먼은 딸에게 보낸 편지 글로 마무리를 한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세계는 평평하지고 있다. 내가 시작한 것은 아니다. 아무튼 시작되었고, 인간계발이나 너의 미래에 큰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멈추게 할 수 없다. 더 잘 될지 안 될지는 몰라도 적응은 할 수 있다. 더 좋게 되려면 너와 너의 세대는 테러리스트나 내일을 걱정하면서, 알 카에다나 인포시스를 두려워하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 이 평평한 세계에서 너도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상상력과 올바른 동기가 있어야 한다. 9.11은 우리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세계는 네가 9월 11일 보다는 11월 9일(베른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다)이 낳은 세대이기를 바란다. 전략적 사고를 하는 낙관주의자들의 세대, 과거의 기억보다는 미래의 희망이 더 많은 세대, 매일 아침 일어나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는 세대, 그리고 그 상상에 따라 행동하며 매일을 사는 세대이기를 바란다.” 다음은 ‘공간의 힘’의 마지막 부분이다. “오늘날에도, 세계중심부의 세계인들과 주변부의 지역인들의 삶에는 공통점이 너무 적다. 사회적 골은 여전히 빈자와 부자를 갈라놓고 있으며,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다른 운명 속에서 살고”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인 환경과 문화적인 환경 속에서 던져진다. 그 환경이란 온 힘을 기울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는 꿈일 따름인 선택과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여유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대조는 전 세계에서 여전히 존재하며, 다양하고 지속적인 공간의 힘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 장벽을 낮추고 기회를 창출해냄으로써 그 힘에 맞서는 것은 지구를 더 나은, 즉 더 평평한 세계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ps : 기사를 찾다 보니 2009년 2월 토머스 프리드먼이 한국에 와 이명박 대통령과 자신의 최근작 '코드그린-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에서 주장한 친환경 에너지 중심의 경제성장에 대해 대화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이어 "당신의 책은 대부분 봤는데, 그 책을 통해 발 빠르게 그 쪽(녹색성장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며 "인도나 중국도 있지만 미국도 빨리 그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난 이명박 대통령이 프리드먼의 저작들을 읽은 것에 대해 뭐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거기에 추가로 하름 데 블레이의 ‘공간의 힘’도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웃긴 사실은 오바마 대통령은 필독서로서 또는 자신의 읽은 책의 목록으로 프리드먼의 책과 블레이의 ‘공간의 힘’이 포함되어 있다. 애기하고 보니 썩 재미있는 사실은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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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20대란 무엇인가? 무엇을 하였는가? 그 누구처럼 "새로운 세계를 향해 뛰쳐나가고 싶은 열망에 싸여 있었"던가? 난 무엇을 했는가? 그래서 난 아직도 미숙한가 보다. 아직 늦지 않았으려니 한다. 지금부터라도 나 자신을 '미운오리새끼'가 아닌 오리 그 이상의 '존재'로 인정하고 헤쳐나갈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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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8.13  무너지면서 가을은 오고…우리는 미숙했습니다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⑦ 
  
 
» 무너지면서 가을은 오고…우리는 미숙했습니다 

책읽고 철학하고 논쟁하였습니다
내 살 네 살 베이는 것 아니면
만나지 말자고 하기도 했습니다
술취해 사고치던 ‘문청’ 미운오리들
우리는 퇴폐적 낭만주의자였습니다  

문학모임 이름을 안데르센의 동화 제목인 <미운오리새끼>(The Ugly Duckling)로 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신동인 선배였습니다. 그는 같은 과 1년 선배였고 실질적으로 모임을 끌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고,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철학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은 그림 이야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신 선배는 모임을 시작하면서 세 가지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일체의 형식을 배제하자는 무형식주의, 사상의 깊이를 다지기 위한 독서와 토론, 그리고 철저한 산문정신, 이 세 가지였습니다.

작품을 쓰기 이전에 문학과 철학 서적을 읽고 토론하고 생각의 깊이를 다지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신 선배는 다른 문학서클에서 글 쓰는 문청들을 보며 “너희는 똥만 누우려 하는 놈들이고, 우리는 밥 먹는 놈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뱃속에 들어찬 게 있어야 나오는 것도 있는 법인데, 든 것도 없이 내놓으려 하니 힘이 드는 거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물고기 대가리와 빵부스러기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살 이유를 가지고 있다. 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롭게 될 이유를 가지고 있다. 삶을 위한 의미와 더 높은 목적을 찾고 추구하는 갈매기보다 더 책임 있는 자가 누구겠는가?” 조너선 리빙스턴 시걸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글이었지만 첫 번째 문학 토론 주제로는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갈매기의 입을 통해 이야기되는 자유는 에리히 프롬의 ‘~으로부터의 자유’와 ‘~을 향한 자유’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고, 사르트르가 실존주의 개념으로 이야기한 자유, 그리고 차라투스트라의 초인, 카뮈적인 반항에 대한 의미로 넓혀져 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과 인간과의 문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로 넘어갔습니다.

도스토옙스키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신 선배의 독서 양과 폭에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악령> <백치>를 이야기할 때면 연신 술만 마셔야 했습니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의 이름이 그 선배의 입에서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와 주눅이 들곤 했습니다. 키르케고르와 사르트르와 카프카와 플라톤으로 이어지는 논쟁은 해를 넘기면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장용학과 손창섭과 최인훈 등 국내 소설로 방향을 틀면서 논쟁에 참여하였지만 마지막엔 술로 만신창이가 되어 끝나는 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무슨 어설픈 검객이라도 된 것처럼 저자거리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논쟁을 하려고 대들었습니다. “내 살 네 살 베이는 것 아니면 만나지 말자”고 하기도 했습니다.  


흔들리면서 가을은 온다.
칼을 보여 다오, 친구여
그대 칼의 눈부심을 보여 다오.
그대가 벤 것을 보여 다오.

무너지면서 가을은 온다.
한 손에 칼을 들고
쓰러뜨린 것들 앞에 서서 돌아보던
풀 하나 흔들리지 않는
벌판을 보여 다오.

무너뜨리기 위하여 가을은 온다.
가을에는
내 살 네 살 베이는 것 아니면
만나지 말자, 가을에는
벌판이 아니면 만나지 말자.
무너지지 않는 한 가을은 가지 않는다
이 가을 한 자루 칼이 되어
네가 오너라, 친구여.

-졸시 <가을 평야>전문


새로운 세계를 향해 뛰쳐나가고 싶은 열망에 싸여 있었지만, 그러나 아직 대학교 3학년인 우리는 미숙하고 서툴고 어설프기 이를 데 없는 문학청년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고독하고 순진한 낭만주의자들이었습니다. 신 선배의 여동생이 중학교 사환으로 있었는데 그 학교 등사기를 몰래 빌려 직접 철필로 쓰고 롤러로 밀어 문집을 찍었습니다. 문집 두 번째 호 머리글에다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미운오리새끼. 태어나서 같은 오리들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엄마 오리에게까지 마움을 받게 된 못생긴 오리새끼는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저는 기어이 넓은 바깥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애초부터 획일적 일상은 우리들의 쾌적한 보금자리가 못 되었다. 모든 사람을 안전하고 간편한 항로로 인도하는 나침반 구실을 하던 인습은 안일한 거점을 제공해 주는 대가로 그 획일적 일상의 늪 안에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며, 우리들의 내적 신세리티의 말살을 강요하는 집념 깊은 폭군이었던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존재이유’를 배워야 했었다. 우린 우리 스스로가 불러들인 불안과 절망과 니힐 앞에 끊임없이 방황하고 모색하고 고민하면서 그 앞에 좌절할 줄 모르는 견고한 ‘자아’를 간직하여야 한다. (…) 미운오리새끼! 지금 우리의 계절은 가을이다. 우린 가을까지 흘러온 어린 나무들이다. 숲의 나뭇잎들이 누렇게 물들고 고동색으로 타며 바람이 심하게 불면 나뭇잎은 빙그르르 돌면서 하늘로 올라간다. 미운오리새끼가 처음 맞는 가을에 그랬듯이 백조의 나라를 동경해 보자. 그리고 우리, 자기의 모든 것을 생명의 가장 안쪽 깊숙한 곳에 침잠시키고, 죽은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일 뿐인 가을 나무의 생리를 배우자. 길이 좁아 찾는 이가 적다는 생명의 좁은 문-그곳이 우리가 갈 길인 것이다.”

그 길을 우리끼리 갔습니다. 의욕만 앞선 채 선장도 스승도 없이 휘청거리며 갔습니다. 차가워오는 광활한 가을 하늘을 우리끼리 막막하게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미운오리새끼는 현실에선 오리일 뿐이었습니다. 일상에선 무능하고 나사못 하나 만들 줄 아는 재주도 없는 문청이었습니다.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시인은 추방되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초 미운오리새끼는 자기를 오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백조가 아니라 그냥 못난 오리로 사는 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살다 죽어 호숫가를 스치는 바람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술 마시게 했습니다. 술 때문에 사고도 많았고 실수도 잘못도 셀 수 없었습니다.

신 선배의 여동생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어린 나이에 힘든 직장생활을 했는데 대학생인 우리는 그 동생에게 돈을 빌려 술 마시곤 했습니다. 문학이란 이름으로 용서받기엔 참 철없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오빠들이었습니다. 술값이 없어 학생증이나 시계를 맡기는 일은 숱하게 많았고, 어울려 다니던 후배의 아버지가 사준 고급 가죽점퍼를 술값 대신 잡히고 온 날도 있었고, 선배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맡기고 술 마시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어떻게 술값을 마련할까 하다가 법대를 다니던 외사촌 형이 법이 바뀌어 쓸모없이 되었다고 밀쳐둔 형법 민법에 관한 책을 외가에서 가지고 나와 책가방에 넣고는 후배들과 술집으로 몰려갔습니다. 술집주인이 방을 드나들 때마다 마치 고시에 떨어져 속상해 술 마시는 것처럼 상황을 꾸며대고는 대취하도록 마셨습니다. 그리고 나올 때 ‘이 책 없으면 난 죽는다, 오늘 이걸 맡기고 가는데 꼭 찾으러 오겠다’고 하고는 술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그 집을 에돌아 다녔습니다.

그해는 해마다 치르던 학생회장 선거가 폐지되고 학도호국단이 만들어져 학생회장과 학생회 간부들을 학교에서 임명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마침 학도호국단이 학보사 기자인 후배를 건드린 일이 생겼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는 학도호국단 사무실로 몰려가 사무실 집기와 책상을 다 뒤집어엎어 놓고 나온 일도 있었습니다. 술이 취해 봉걸래를 어깨에 메고는 세상을 다 청소하겠다고 소리치며 다닌 날도 있었고, 필설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며 살았습니다.

절제되지 않은 감정의 덩어리를 안고,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으로 무작정 가고 있었습니다. 퇴폐적 낭만주의자가 되어, 세상과 유리된 채, 광활한 길을 우리끼리 감동하고, 우리끼리 눈물 흘리며 가고 있었습니다.


도종환 시인, 그림 이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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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부산 해운대에서 이안류에 의해 해수욕을 즐기던 시민들이 바닷물에 쓸려 갔다는 소식이 있었다. 나도 처음 이 기사를 읽었을때 '이안류'가 뭐지 했는데, 다른 기사를 찾다가 관련 기사가 있어 옮겨 놓는다. 근데 이 기사 읽어봐도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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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타임스 2010.8.11  밀려든 바닷물이 되돌아가는 자연현상
 
바다 쪽으로 빠르게 흘러나가는 이안류(離岸流)에 대한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해운대를 비롯한 부산 지역의 해수욕장에서 시작된 이안류 소식이 서해안의 대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해수욕을 즐기던 피서객 수십명이 한꺼번에 바다로 휩쓸려 나가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해안을 무분별하게 개발했기 때문에 생긴 인재(人災)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안류는 낯선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것도 아니다. 해안으로 밀려든 바닷물이 바다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다만 밀려든 바닷물이 해안선을 따라 한 곳으로 쏠린 후에 10∼30미터의 폭을 따라 한꺼번에 빠르게 빠져나간다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 실제로 작년에 부산 지역에서 관찰된 이안류만 하더라도 40여차례에 이른다. 그런 이안류에 대해 우리가 뒤늦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안류는 해안선이 길고 경사가 완만하면서 파도가 자주 밀려오는 곳에서 주로 발생하고, 갑(岬)이나 곶이 있는 곳에서도 발생한다. 서핑에 적당한 지형에서 자주 나타난다는 뜻이다. 해안과 평행으로 하얗게 부서지면서 밀려오는 파도가 끊어진 빈 공간이 바로 이안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이안류가 발생하는 곳과 때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파도, 해저 지형, 바람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이안류 발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안류는 올림픽 수영 선수보다 빠른 초속 2미터 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흘러나갈 수도 있어서 문제가 된다. 그런 이안류가 발생하면 바다 밑의 모래가 떠올라서 부유물이 많아져 바닷물의 색깔이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안류는 바다 쪽으로 100여미터 정도만 흘러나가면 자연스럽게 속도가 줄어들면서 소멸된다. 밀려든 바닷물이 이안류의 형태로 일시에 빠져나가고 나면 더이상 흘러나갈 바닷물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안에서 파도가 칠 때마다 이안류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해안으로 파도가 밀려온다고 언제나 먼 바다의 바닷물이 해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파도는 실제로 바닷물이 상하로 진동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파도가 해안을 향해 밀려오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먼 바다에서 바람 등의 영향으로 발생한 바닷물의 상하 진동이 해안 쪽으로 전달되면서 나타나는 착시 현상 때문이다. 대부분의 파도는 바닷물이 실제로 이동하는 조류나 해일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이안류가 자연적인 것이라고 해서 위험하지 않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수만 명의 수영객이 이안류에 휩쓸려 위기를 넘기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2∼3일에 한 사람 정도가 이안류에 휩쓸려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다만 이안류는 비교적 단순한 흐름이어서 수영객을 바다 밑을 향해 아래쪽으로 끌어당겨 정말 위험하게 만드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 사고는 수영객이 빠른 흐름에 놀라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시로 발생했다가 곧바로 사라져 버리는 이안류를 미리 예방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이안류가 자주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을 확인해서 위험성과 함께 이안류에 휩쓸리는 경우의 응급대책을 충분히 알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안류가 자주 발생하는 해수욕장에는 안전요원도 배치해야 한다. 이안류를 거슬러 수영을 하지말고, 해안선과 평행으로 움직여 이안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손을 들어 구호를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공포'라는 수식어를 남발하면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다행히 우리 해안에서 발생하는 이안류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책을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덕환(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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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SBS에서 방영된 쿠바의사들을 다룬 '맨발의 의사들'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현재 대한민국의 의사들과는 너무나도 다른(일반적으로) 의사들의 모습때문이었다. 그리고 쿠바의 모습때문이었다. 어려운 국가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쿠바의 모든 국민들에게 무상의료 혜택을 주는 나라, 더 나아가 다른 나라의 어려운 현실에 귀 기울여 도우는 나라. 또한 그것이 당연히 해야할 의무이며, 쿠바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휴머니즘이라 이해하는 나라. 부러웠다.  

물론 쿠바란 나라 모든것이 다큐멘터리 내용처럼 이상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분은 그걸 것이다. 배울것은 빨리 배웠으면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큐 중간에 나오는 카스트로의 비 속에서의 연설 장면이다. 정치색을 떠나서 난 순간 저 장면에서 카스트로의 '진심'이 느껴졌다. 왜 그럴까? 단순히 '이미지'때문일까? 궁금한 인물이다. 

 

'피델 카스트로'를 읽어보면 카스트로 이해에 도움이 될 듯하다. 사회학자 이냐시오 라모네와 카스트로와의 대화를 엮은 책이다. 분량이 700페이지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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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 넓은 동네 의사, 내게도 주치의가 있다면… 
[Corée 특집: 건강권 논란 뛰어넘기] 
 
[22호] 2010년 07월  이재호/가톨릭의대 교수  info@ilemonde.com  
 
[사례] 어느 50대 고혈압 여성이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혈압 조절을 하지 않고 지냈다. 등산할 때마다 흉통을 경험해 대학병원 심장전문의를 찾아갔다. 심장혈관 조영검사 결과 심장 내 큰 혈관이 막혀 있어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뒤 경과가 좋아 만족하며 지낼 수 있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뒤, 이 여성은 오른쪽 유방에 덩어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유방암 전문의로부터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대형 대학병원에서 첨단 의술로 심장병 치료를 받아온 이 여성은 결국 유방암으로 임종을 맞이했다.

만일 이 여성이 동네 보건의료, 즉 1차 의료 체계가 튼튼한 유럽 선진국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이 여성에게는 ‘주치의’(1)가 있었을 것이다. 주치의는 고혈압 전(前) 단계부터 혈압 상승 위험을 알렸을 테고, 1차 보건의료 팀원들과 함께 생활습관 개선 등 건강증진 활동을 했을 것이다. 만일 고혈압으로 진행됐다면 체계적인 혈압 관리로 심장병 예방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심장질환이 발생했다면 주치의는 심장전문의와 함께 심혈관질환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면서 아울러 50대 여성의 정기 검진 항목들을 점검했을 것이다. 이 경우 유방암은 초기에 발견돼 국소 절제로도 치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살 수 없었던 이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지표(2009)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순위는 극단에 위치하는 사례가 많다. 의사 1인당 환자 진료 건수는 연간 7251건으로 OECD 국가 중 최고다(OECD 평균은 2543건). 국민 1인당 연간 외래 진료 빈도는 11.8회로 OECD 국가 평균보다 5회나 많다. 연간 자살률은 세계 최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다.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GDP 대비 보건의료비 비중(6.8%)은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치고 있음에도 컴퓨터단층촬영(CT) 스캐너와 자기공명영상(MRI) 장비 등 고가 첨단 장비 보유 대수는 경제 선진국을 훨씬 능가한다. 1천 병상이 넘는 대형 병원 수도 세계 최고다. 이런 비효율적 현상은 보건의료 체계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해방 뒤 우리나라 보건의료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보건의료에서 국가의 역할은 제한적이었으며, 주요 전염병 관리와 가족계획, 그리고 극빈층 의료 지원이 고작이었다. 의료 투자는 주로 민간 부문에 의해 이뤄져, 오늘날 의료기관의 사적 소유 비율(90%)은 미국을 능가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의료기관은 영리를 추구하는 가운데 경쟁적으로 규모를 확대해왔고, 재벌기업까지 이른바 ‘의료시장’에 뛰어들어 자본주의적 경쟁을 가속화했다. 보건의료 인력 양성도 민간 부문에 맡겨 국가 차원의 중·장기 인력 양성 계획을 수립하거나 실행하기가 어려웠다. 오늘날 우리나라 의료 체계가 안고 있는 문제의 상당 부분은 의료기관의 사적 소유가 지배적이고 공공성이 결여된 점에 기인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78년 알마아타에서 ‘1차보건의료’(Primary Health Care) 이념과 실천 전략을 제시했다. 1차 보건의료는 국가 보건 체계의 중심적 기능을 담당하며, 국가 보건과 사회·경제 분야의 핵심 부분을 구성한다. 국가 보건 체계에 개인,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가 처음 접촉하는 단계이며 보건의료를 사는 곳과 일하는 곳에 가능한 한 가깝게 가져다주고 지속적 보건의료 과정의 첫 번째 요소를 구성한다. 단순한 1차진료(Primary Medical Care)만을 의미하지 않고 개인·가족·지역사회를 위해 건강증진, 예방, 치료 및 재활 등의 서비스가 통합된 기능으로서 제도적으로 주민이 보건의료 체계에 처음 접하는 관문이며, 기술적으로는 예방과 치료가 통합된 포괄적 보건의료를 의미한다.

주치의, 보건의료의 관문

한편 ‘1차의료’(Primary Care)는 기존의 1차진료가 1차보건의료의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개념이다. 보건의료 체계가 정립된 국가에서 1차의료는 1차보건의료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하므로 1차보건의료와 동등한 개념으로 쓰인다. 1차의료란 “건강을 위해 가장 먼저 대하는 보건의료를 말한다. 환자의 가족과 지역사회를 잘 아는 주치의가 환자-의사 관계를 지속하면서 보건의료 자원을 모으고 알맞게 조정해 주민에게 흔한 건강 문제들을 해결하는 분야이다. 그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 보건의료인들의 협력과 주민의 참여가 필요하다”(일차의료연구회·2007). 1차의료는 △최초 접촉 △포괄성 △관계의 지속성 △조정 기능이라는 네 가지 핵심 속성을 보유하는 특징이 있다. 질병이나 장기(臟器)에 따라 구분되는 다른 임상 전문 분야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전문 분야다. 동네 보건의료, 즉 1차의료는 보건의료 체계의 토대다. 최근 30여 년간 축적된 연구들에 의하면, 1차의료는 보건의료 체계의 형평성과 효율성에 기여한다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1차의료가 효과적으로 기능하면 빈부 격차에 의한 건강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건강보험도 1차의료의 기반이 부실한 상태에서는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1차의료가 공고한 나라들은 주치의 제도를 잘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이 실시되면서 보건의료 개혁의 주요 쟁점은 보건의료 체계의 접근성과 보장성이었고, 접근성 측면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렇지만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기조와 의료 산업화 논리는 이러한 성과들을 후퇴시키고 있다. 특히 1차의료 부문에서 더욱 그렇다.

의료와 지역사회가 만나야

△의료 공공성 결여에서 비롯된 문제: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경쟁이 치열하다. 의료기관의 규모와 상관없이 환자 유치 경쟁, 시설과 장비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경쟁 속에서 규모가 작은 의원급 의료기관은 영세해지게 마련이다. 그룹 진료는 장비·시설 이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동네 보건의료, 즉 1차의료에서 포괄적인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게 하는데, 우리나라 개원의 90% 이상은 단독 진료에 종사하고 있다. 포괄적 1차보건의료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의원급 의료기관은 1차진료만을 제공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1차의료에서의 조정 기능이 결여됐기 때문에 지역사회 보건 자원을 의료 서비스와 통합해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인력 수급정책 문제: 선진국의 경우 동네 의원에 종사하는 의사는 대부분 제너럴 프랙티셔너(GP·General Practitioner) 또는 가정의이며, 이들은 전체 활동 의사 중 30~60%를 차지한다. 최근 프랑스에 주치의 제도가 도입될 수 있던 것도 전체 의사의 50%가 GP인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원에 종사하는 의사 중 가정의는 10%에도 못 미친다. 모든 임상 분야 전문의가 자유롭게 의원을 개설하는 낭비적 상태가 너무 오래 계속됐다. 국가의 의료인력 양성은 병원에서의 전공의 수요에 맞춰지고 있다.(2) 정부는 의료인력 수급에 관한 국가 차원의 중·장기적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서 의료인력 양성을 시장 기전에 맡기고 있다.

△진료비 지급 체계 문제: 의사의 진료 업무를 보상해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행위별 수가제’는 진료 행위 건당 금액을 정해 보상해주는 체계다. 예를 들어 수술 환자의 비용 계산은 입원 기본 검사, 입원실 사용, 수술 행위, 수액 주사, 주삿바늘, 마취제, 진찰료 등 모든 행위와 검사에 대해 낱낱이 비용을 계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과 면담 등 금액으로 환산이 어려운 행위에 대한 보상이 어렵다. ‘환자당 수가제’는 주치의에게 등록된 환자 수에 비례해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것으로 주치의 제도의 기본 지급 방식에 해당한다. ‘성과급제’는 진료 지표 달성 정도에 비례해 보상해주는 방식이다.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환자당 수가제뿐 아니라 행위별 수가제와 성과급제를 혼합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행위별 수가제만을 고수해오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에서는 의학 행위나 검사 빈도가 많아지며, 과잉 진료가 발생하기 쉽다.

한국엔 1차의료가 없다

주치의 제도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나 표준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1차의료의 체계적 요인을 갖추고 내용적으로 1차의료의 네 가지 핵심 속성을 구현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1차의료의 체계적 요인에 대해서 스타필드(1998)는 의료비 재원 조달 방법, 1차의료 의사 종류, 단과 전문의 비율, 1차의료 의사 소득수준, 1차의료 환자 본인부담금, 환자 명부 보유와 활용, 가정의학교실 지위 등 아홉 가지 평가 항목을 제시했다. 이 중에서 주치의 제도의 가장 기본적 요건은 ‘환자 명부를 보유하고 이를 환자 관리에 이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주치의 제도는 다른 여러 요인들을 균형 있게 갖춰야 가능해진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주치의 제도에 부정적이었다. 게다가 의료 민영화·산업화 정책은 1차의료에 매우 부정적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고령 인구 증가 속도와 국민의료비 증가 속도를 외면할 수는 없다. 현재 체계가 지속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건강보험 재정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상황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주의 관점은 주치의 제도를 주로 비용 절감 수단이나 이용자 선택권 제한 제도로 간주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주치의 제도의 첫 단추는 비용 절감 차원의 ‘문지기’ 기능 도입일 수 있으나 진료비 지급 체계, 의료인 양성 체계, 정보 체계 등의 개편을 수반하지 않으면 성공적인 주치의 제도 도입은 불가능하다.

시장주의자는 손을 떼라

동네 보건의료가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려면 보건의료 학계와 시민사회 진영, 정치권이 힘을 합쳐 정부 내의 분위기를 쇄신시켜야 한다. 보건의료 정책 입안에서 의료 산업화,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하는 시장주의자가 손을 떼게 해야 한다. 의료 공공성이나 국민 건강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계속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주치의 제도 도입을 위한 사회적 여건을 조성해 정책 의제로 상정하는 데 성공해야 한다.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 과정에서 확인했던 그 힘을,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는 데 다시 한번 결집해야 한다. 우리 국민이 자신과 가족의 건강관리를 도맡아 해주는 믿음직스러운 주치의를 동네 의원에서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글•이재호
1차의료 의사(가정의), 1차의료연구회 회장. 보건의료 체계에서 1차의료의 형평성과 효율성 기여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각주>
(1) ‘주치의’란 1차의료 의사(Primary Care Physician)다. 1차의료 의사란 병원을 활동 기반으로 하는 단과 전문의와 구별되며, 지역사회(동네) 1차의료 전문의(Primary Care Specialist)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의대 졸업 뒤 최소 3년의 임상 수련 과정을 마친 GP 또는 가정의를 지칭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2) 최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레지던트 정원을 채우지 못한 과들에 대해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전공과목 전문의가 부족하다고 보기 어렵다. 병원 근무가 적합한 전문의들이 개원해 자신의 전문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ps : 이 기사의 내용의 핵심 중 하나는 '1차 의료'체계 구축일 것이다. '맨발의 의사들'에 나오는 쿠바의 의료 체계를 간략히 나타낸 것이다. 아래 캡쳐화면이다. 이쪽에 전문지식이 없는 내가 보아도 이상적인것 같다. 예전에 민주노동당 정책 자료집같은데에서 이런 식의 '가정의', '주치의'제도를 공약사항으로 내놓은 것을 본적이 있다. 근데 문제는 사람들이 민노당이 이런 공약사항이 있다하면 내용에는 일면 동조하면서도 허황된 '공약'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민노당의 문제일 것이다. 내용은 이해하지만 니네가 하면 안될 것 같다. 아니면 어차피 니네 되지도 않는데 뭐든 좋은애기 못하겠나...하여튼 쿠바는 하고 있다. 관련된 책이 하나 나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같은호에 나온 이 책과 관련된 기사이다. 

쿠바 1차의료, 복지는 정치다  

최근 출간된 <또 하나의 혁명: 쿠바 일차의료>는 1959년 혁명 뒤 쿠바 1차의료 제도의 성공담을 다룬다. 사회·정치적 격변기에 탄생한 이 제도는 ‘예방의료’ 제도를 통해 공정한 보건의료 서비스 이용을 가능하게 했다. 쿠바는 세계보건기구, 유니세프, 미주보건기구 등이 칭송하는 보건의료의 모범 사례로 인정받아왔다. 린다 화이트포드와 로렌스 브랜치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 모델을 고찰했으며, 예방과 형평성을 추구하는 모든 의료제도에 적용될 만한 교훈을 탐색하고 있다. 특히 ‘쿠바의 보석’이라 부르는 지역사회 기반 1차의료 제도에 대한 분석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저자들은 쿠바의 1차의료 제도를 역사적이고 심층적이며 광범위하게 분석함으로써 효과적인 질병 예방을 위해 결코 값비싼 의료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은 쿠바의 의료제도 자체보다는 쿠바의 1차의료에 녹아 있는 핵심적인 철학을 짚어주는 데 초점이 맞춰 있다. 쿠바에서 어떻게 ‘건강 형평성’이라는 개념이 정치적인 것이 되었으며, 이 개념을 제도화해 전세계 유일한 1차의료 제도를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준다. 혁명 전후 ‘지역종합진료소’ 모델에서 ‘가족주치의 모델’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쿠바의 국가 보건의료 체계가 성립되고 공공보건 영역인 모자보건, 감염질환과 전염성질환, 만성질환과 노인의료 분야를 통해 쿠바의 1차의료가 체계화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쿠바의 사례에서 우리는 지역사회 기반 보건의료와 지역 주민의 효과적인 참여가 어떻게 상승작용을 일으켜 건강 증진이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쿠바의 사례는 공공보건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임을 보여준다. 쿠바인의 삶 속에 스민 정치체제와 경제의 모순 사이에서도 1차의료 제도가 굳건히 뻗어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개념들 때문이다. ‘가족주치의 모델’이라는 쿠바의 독특한 지역의료 체계는 1차의료의 핵심이다. 의사는 지역의 일원으로서 자발적 역할을 다하고, 지역민은 자치조직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참여 속에 공공보건의료 모델을 완성한 것이다.

1차의료의 키워드는 △인권 △사회정의 △형평성이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돈이 없어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건의료 산업화와 민간 의료보험 시장의 확대, 의료법인 영리화가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한국의 현실에서 건강은 국민 모두가 공평하게 누려야 할 기본권이라는 1차의료의 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건강 형평성’이라는 개념으로 이룩한 보건의료 혁명, 쿠바 1차의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 간 논쟁이 증폭되는 한국에서 ‘복지는 바로 정치의 문제’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글•이황현아 메이데이출판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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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코너에 이번에 새로 나온 르몽드 세계사2권에 대한 기사를 옮겨 놓는다. 이 책과 관련된 글을 읽을수록 이 책 제목이 맘에 걸린다. 원제목처럼 아틀라스나, 아니면 최소한 아틀라스나 '지리'란 말이 들어갔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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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르몽드 세계사 2 : 세계 질서의 재편과 아프리카의 도전>
2010-08-13  

2년 전 번역돼 좋은 반응을 얻은 <르몽드 세계사> 제1권 '우리가 해결해야 할 전 지구적 이슈와 쟁점들'에 이어서 제2권 '세계 질서의 재편과 아프리카의 도전'이 책으로 나왔다.

원저 <아틀라스(Atlas) 2006>에 이어서 <아틀라스 2009>를 번역한 것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발행하는 <아틀라스> 시리즈는 그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이 '지도'를 곁들여 "우리 눈앞에서 격동하는 복잡한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지침서이다.

과거의 역사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움직이고 변화하는 현재의 역사를 분석하고 전망을 내리는 어려운 작업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복잡하고 딱딱할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아틀라스> 시리즈가 프랑스는 물론 외국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독자가 변화하는 세계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시리즈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복잡한 국제 문제를 그 분야 전문가들이 2쪽의 제한된 좁은 지면에 짧고 쉽게 설명한 글과, 문제를 일목요연하게 뚫어볼 수 있는 지도와 도표를 곁들인 것이 비결이다. 그래서 대학생이나 학교 교사, 세계 문제에 관심 있는 비전문 독자들이 독자층을 이루고 있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자평이다. 

<르몽드 세계사 2 : 세계 질서의 재편과 아프리카의 도전>은 (1) 새로운 국제 역학 관계 (2) 세계를 보는 시각 (3) 에너지의 도전 (4) 계속되는 분쟁 (5) 전환점을 맞은 아프리카라는 다섯 개의 큰 주제 아래 현재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주요 국제 문제 88개를 다루고 있다. 다섯 주제마다 덧붙여진 한국 필자의 글을 포함하면 총 93개의 문제를 포괄한다.

이 책이 프랑스에서 출판된 2009년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고 9·11 테러가 일어난 지 8년, 그리고 미국 금융 위기 1년을 맞아 국제 정치의 역학 관계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던 때였다. 이 격변기를 진단하고 처방을 찾은 책이 바로 이 <르몽드 세계사> 제2권이다. 이 책은 우리도 함께 겪고 있는 격동기를 현명하게 탈출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지침서가 될 수 있으라고 본다.

그 동안 우리가 처해 있는 위기와 처방을 다룬 정보가 그야말로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의 미디어는 대부분 자국 이기주의를 대변하는 정보와 처방으로 세계인이 고민하는 공동의 위기 탈출 해법을 제시하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 정보들도 적지 않았다. 위기의 주범인 월스트리트의 자본주의 입장에서 문제를 봤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의 필자들은 우선 신자유주의자들과는 입장이 다르다. 지적 수준이나 이념면에서 자본주의 무조건 옹호론자보다는 훨씬 신뢰할 수 있는 학자나 저널리스트들이다. 이들을 선정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지금까지의 지적 정직성이 그것을 보증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를 읽은 10여 개 국가 지식인들의 반응이 그것을 방증해 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아틀라스의 필자들도 인간인 만큼 판단에 과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분석이나 전망을 받아들이는 데도 비판 정신은 놓지 말아야겠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의 정직성은 믿어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르몽드 세계사> 제2권을 꼼꼼히 읽고 느낀 소감은 2쪽의 아주 좁은 지면에 문제의 핵심과 해답을 잘 압축했다는 것이다. 건성으로지만 그래도 국제 문제를 반세기 가까이 지켜본 필자도 아틀라스를 읽고 배운 것이 많았고 머릿속의 혼란이 정리되었다. 국제 문제를 아는 사람은 이 책을 통해서 문제의 핵심을 재확인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국제 문제를 공부하기 시작하는 사람은 압축한 문제의 핵심과 전망을 기준으로 새롭게 국제 정치를 보는 훈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압축 요약해서 사용할 줄 모르면 방대한 자료가 자산이 아니라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부피가 큰 자료는 요점과 핵심을 요약하지 않으면 실제로 사용할 수 없다.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반드시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정 탓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긴 문장의 핵심 부분을 100자 이내로 줄이는 훈련을 시킨다. 또 대학 입학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도 긴 문장의 핵심 내용을 발췌 요약하게 하는 시험을 친다. 이 책은 불과 몇 분 안에 세계적인 문제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해 놓아 학생들이 내용을 압축하는 훈련의 모델로 삼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각 항목을 다룬 지면 끝에 참고할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하고 있는 것도 읽은 내용을 확인 보완할 기회를 주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배려다.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제시하는 것은 이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사에 의례 따라붙는 하나의 관행이 돼 있다. 관련 사이트는 짧은 설명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독자가 문제를 좀 더 깊이 천착(穿鑿)하는데 아주 유익하다.

원서에는 지면 말미에 관련 사이트를 소개하고 있는데 번역판에는 그것을 권말의 '참고 문헌'에 한데 모아 놓아 이용하기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트가 프랑스어로 된 것이 많아서 프랑스어를 모르는 독자에게는 별로 소용이 없으리라는 판단에서 그랬으리라고 이해는 하지만, 국제기구의 사이트는 영어로 된 것이 많고 프랑스어 사이트에서도 영문 설명을 추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시리즈는 '지도'가 텍스트 못지않게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흔히 지도라고 하면 우리의 통념상 영토나 땅만을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지도(地圖)라는 말을 그렇게 배워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에서 지도를 뜻하는 아틀라스는 이제 더 이상 땅과 관련된 지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날 아틀라스는 아주 다양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한 사회의 보이지 않는 문화의 정치적 이념적 현상을 눈으로 볼 수 있게 구상화하는데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지도의 새로운 이용에 있어 프랑스는 다른 나라보다 단연 앞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이미 2003년부터 정치사회적 아틀라스를 제작해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사회적 아틀라스"가 차츰 유행하기 시작해서 <지도 밑에 숨겨진 아틀라스>(Atlas dessous des cartes)와 <인간의 아틀라스>(Atlas des peuples)는 수십만 부가 판매됐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이 같은 판매 현황이 아니라 모든 아틀라스 시리즈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이렇게 대중적인 큰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3월호 '눈 땅 지도 제작자' 참고).

첫째 이유는 3개의 사건-1989년 11월 9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 2001년의 9·11테러, 2008년 10월 15일의 금융 공황-이 국제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한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세계적으로 경제, 사회, 정치, 이념 및 군사적 틀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 이전의 세계를 보는 틀을 어떤 것은 부분적으로 어떤 것은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냉전 시대의 양극 체제에서 1990년대의 미국 지배 시대로 이어지고 이제 다시 새로운 다극화 세계로 이전하고 있다. 이런 급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들은 현재 진행 중인 격변을 이해하는 패러다임을 찾고 있다. <르몽드 세계사>가 제시하는 지구적 시각이 아니면 이 격변을 설명하기 어렵다는데 공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둘째, 지금 세계는 정보의 과잉 상태에 있다. 모든 사람은 과잉 정보를 얻고 있다. 양적으로 정보는 계속 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인터넷을 통해 얻는 정보는 뒤죽박죽 상태의 정보이다. 정보 때문에 오히려 혼란스럽다. 이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보의 위계를 설정하고 판단해서 정리하는 틀이 필요하다. <르몽드 세계사> 시리즈가 짧고 간결한 설명과 지도, 도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이러한 뉴스의 위계화와 잔망의 틀을 제공하고 독자들이 이러한 시도에 만족하고 있다.

셋째, 우리는 지금 이미지(image)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지 문화는 가장 젊은 세대가 앞으로 세계를 이해하는데 불가결한 도구 역할을 한다. <르몽드 세계사>의 '지도'는 "슈퍼 이미지"이다. 몇 센티미터의 지면에 많은 정보가 담긴 지도는 긴 글보다 더 효과적으로 쟁점의 열쇠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넷째 이유는 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국한된 이야기이지만 세계를 보는 거시적인 비전에 민감한 동시에 자기 분야의 전문가인 80여 명의 기고가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제작 팀 간에 의견과 토론-때로는 충돌하기도 했지만-을 통해 일관된 공동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 이 책의 분석의 질과 권위를 높여준 것이다.

다섯 째 이유는 '지도'의 영향이다. 저널리스트들은 뜻이 명백한 질문에 대해서 분명한 해답을 내놓기 보다는 우회적인 또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도로는 그런 짓을 할 수 없다. 지도의 선과 색채는 "적당한" 것을 표현할 수 없다. 가부가 분명해야 한다. 지도가 독자의 판단을 분명하게 해주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르몽드 세계사>의 지도 제작자는 글로 쓰인 설명을 기계적으로 선과 색채로 옮기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선의 길이와 굵기 방향 및 크레용의 색채를 통해서 짧은 글로 설명이 충분치 않은 국제문제 해답의 간극을 직감적으로 메워주고 연결해 주는 기술자인 동시에 "예술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총 93편의 글에 지도와 도표가 300개 이상 사용되고 있으며 80여 명의 기고가에 지도 제작자가 7명이나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르몽드 세계사>가 지도의 역할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책을 읽을 때 텍스트 뿐 아니라 지도를 특별한 관심을 읽어야 각 항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해 주고 싶다.

<르몽드 세계사>는 그 분석과 전망에 공감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격변하는 세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길라잡이가 될 수 있는 유익한 지침서라는 생각이다. 
 

/장행훈 언론인  

ps : 다섯째 이유에 '지도'의 영향의 애기는 일부분 맞고 일부분 맞지 않는듯 하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와 히틀러에 의한 지도의 활용을 보면 지도는 일면 독자의 판단을 분명이 흐리게 할수도 또 그렇게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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