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힘 - 지리학, 운명, 세계화의 울퉁불퉁한 풍경
하름 데 블레이 지음, 황근하 옮김 / 천지인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생각지 못하게 서평(너무 거창하다) 비스무레한 글을 쓰게 되었다. 전국지리교사모임에서 나오는 계간지에 지리관련 서적이나 지리수업에 참고할 만한 책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내가 뭐 그런 글을 쓴만한 글재주나 능력이 있지는 않지만, 평소에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쓰게 되었다. 먼저 블로그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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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16  지구는 둥근데, 웬 ‘평평’(flat) 타령?

“공간의 힘에서 자유로워지게 한 변화가 많이 일어났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에게 태어난 곳은 여전히 그들의 삶을 운명 짓는 강력한 요소이다.” 미시건 주립대학 지리학과 교수로 있는 하름 데 블레이 교수의 책 ‘공간의 힘’(The Power of Place) 서문의 일부분이다. 이 한문장에 세계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에 의해 세계 어느 곳에 갈 수 있고 또한 갈 수 없다 하더라도 거의 모든 것들에 관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현재, 혹자들은 세계는 ‘균질’, ‘평평’(flat)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이가 세 차례나 퓰리처 상을 수상했으며,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로 있는 토머스 L. 프리드먼일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화에 의해 수십억 인구와 다국적 기업들이 장소와 언어·문화·종교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에서 주장하고 있다. 예전에 이 책을 구입해 놓고 서문만 읽었다가, ‘공간의 힘’과 관련된 글을 쓰다 다시 서문과 결론 부분만 읽어 보았다. 온통 세계화의 긍정적인 부분만 강조되고 있다. 특히 아웃소싱에 대한 프리드먼의 확신은 너무 과장된 듯 하다. 그 일례로 아웃소싱 컨설턴트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자신의 HP프린터(왠만한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자신이 쓰는 프린터가 고장이 났다고 직접 A/S센터에 전화해서 20여분이나 통화를 하며 수리를 할까? 물론 미국과 한국의 기업가들의 마인드가 차이가 있어서 내가 이해 못할 수도 있거나, 오해할 수도 있지만, 좀 과장된 내용이 아닐까?)가 고장이 나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 인도인 출신의 기술지원팀원과 상담을 하다, 자신이 미국의 소리(VOA : Voice of America)란 방송에서 아웃소싱에 대한 옹호성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이 인도인 출신 HP직원이 옹호, 격려를 했다는 일화를 거론한다. 그런 후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평평한 세계에서는 굴욕감과 수치만이 광섬유를 통해 확산되는 것이 아니다. 자랑과 긍지도 광섬유를 타고 빛의 속도로 확산된다!”라고 애기한다. 인도인 직원이 인도도 아닌 굴지의 미국의 IT기업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인도의 자랑과 긍지란 말인가? 단지 그것만으로 그렇게 애기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 단순화 시키는 것 같다. 억지스럽다!

사실 본론은 ‘세계는 평평하다’가 아니라 ‘공간의 힘’인데, 말이 좀 길어진 것 같다. '공간의 힘'의 차례를 보면 01. 세계인, 지역인, 이동인 02. 제국의 유산, 언어 03. 운명을 결정하는 종교의 지리학 04. 공중보건의 울퉁불퉁한 지형학 05. 위난의 지리학 06. 열린 공간, 닫힌 공간 07. 같은 공간, 다른 운명 08. 힘과 도시 09. 지방의 가능성과 위험 10. 장벽을 낮추기 순으로 되어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예전에 읽었던 부분에서 줄친 부분만 다시 읽으면서 유심히 보니, 챕터 제목이 이상한게 보였다. ‘05. 위난의 지리학’ 부분인데, 대부분의 지리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위난‘의 지리학에 ’위난‘의 뜻을 무엇으로 생각할까? 난 중국의 ’성‘(省)중에 하나로 인식을 했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서 전혀 다른 내용이어서 원서를 아마존에서 찾아(몇몇 책들은 미리 보기 기능이 있어서 목차와 서문 정도는 볼 수 있다)보니 챕터 05 제목이 ’Geography of Jeopardy'로 되어 있었다. ‘Jeopardy'는 ’위험‘을 뜻한다. 물론 ‘위난’(危難)의 뜻도 ‘위험하고 곤란한 경우’이다. 어휘적 의미에서는 틀리지 않았지만, 지리 전공자들에게는 ‘위난’이란 말보다는 쉽게 ‘위험’이란 어휘가 적절한 듯 하다.그러니깐 챕터 05의 제목은 ’위난의 지리학‘ 보다는 ’위험의 지리학‘ 또는 내용상 ’재난의 지리학‘ 정도로 하는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아마도 01. 세계인, 지역인, 이동인. 06. 열린 공간, 닫힌 공간. 07. 같은 공간 다른 운명. 10. 장벽 낮추기 챕터일 것이다. 특히, 블레이는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세계인·지역인·이동인으로 분류했다. 세계인은 중심부에서도 상위층에 위치한 운 좋은 사람들을, 지역인은 가장 가난하고 이동성이 적으며 울퉁불퉁한 공간의 영향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말한다. 이동인은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해 하위층에 자리잡은 이주민들이다. 중심부와 주변부에는 완고한 장벽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서술한 것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다. ‘아파르트헤이트’는 화장실이나 공원 벤치와 같은 개인적 시설물과 같은 미시적 차원이나, 도시·주택지 같은 중간적 차원, 지역·영토같은 거시적 자원 등 모든 차원에서 작동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남아공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저자의 경험에 비취어 볼 때 이 장벽은 자연적인 경계가 아닌 인종차별적인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세력을 잃지 않고 일반 민중들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위적이며 비이상적인 것이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담고 있다.

저자는 지리전공자 답게 각 챕터마다 종교, 언어, 재난, 분쟁, 질병, 평균수명, 도시화율, 여성의 사망률, 여성의 정치참여율 등을 담은 내용과 지도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자료들은 세계의 현실을 좀 더 직시할 수 있는 중요한 지침이 되어준다. ‘공간의 힘’의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소제목은 ‘더 평평한 세상을 향하여’이다. 아마도 이 ‘평평’이란 말은 블레이나 프리드먼 둘 다 같은 뜻을 지닌 같은 어휘일 것이다. 그러나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바로 ‘공간의 힘’의 미덕은 그 차이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인식시켜 준다는데 있지 않나 싶다. 두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서 끝낸다. 어떤 ‘평평’함이 우리에게 더 유의미하고 올바른 선택인지는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일 것이다.

‘세계는 평평하다’의 마지막 부분에 프리드먼은 딸에게 보낸 편지 글로 마무리를 한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세계는 평평하지고 있다. 내가 시작한 것은 아니다. 아무튼 시작되었고, 인간계발이나 너의 미래에 큰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멈추게 할 수 없다. 더 잘 될지 안 될지는 몰라도 적응은 할 수 있다. 더 좋게 되려면 너와 너의 세대는 테러리스트나 내일을 걱정하면서, 알 카에다나 인포시스를 두려워하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 이 평평한 세계에서 너도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상상력과 올바른 동기가 있어야 한다. 9.11은 우리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세계는 네가 9월 11일 보다는 11월 9일(베른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다)이 낳은 세대이기를 바란다. 전략적 사고를 하는 낙관주의자들의 세대, 과거의 기억보다는 미래의 희망이 더 많은 세대, 매일 아침 일어나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는 세대, 그리고 그 상상에 따라 행동하며 매일을 사는 세대이기를 바란다.” 다음은 ‘공간의 힘’의 마지막 부분이다. “오늘날에도, 세계중심부의 세계인들과 주변부의 지역인들의 삶에는 공통점이 너무 적다. 사회적 골은 여전히 빈자와 부자를 갈라놓고 있으며,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다른 운명 속에서 살고”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인 환경과 문화적인 환경 속에서 던져진다. 그 환경이란 온 힘을 기울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는 꿈일 따름인 선택과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여유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대조는 전 세계에서 여전히 존재하며, 다양하고 지속적인 공간의 힘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 장벽을 낮추고 기회를 창출해냄으로써 그 힘에 맞서는 것은 지구를 더 나은, 즉 더 평평한 세계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ps : 기사를 찾다 보니 2009년 2월 토머스 프리드먼이 한국에 와 이명박 대통령과 자신의 최근작 '코드그린-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에서 주장한 친환경 에너지 중심의 경제성장에 대해 대화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이어 "당신의 책은 대부분 봤는데, 그 책을 통해 발 빠르게 그 쪽(녹색성장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며 "인도나 중국도 있지만 미국도 빨리 그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난 이명박 대통령이 프리드먼의 저작들을 읽은 것에 대해 뭐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거기에 추가로 하름 데 블레이의 ‘공간의 힘’도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웃긴 사실은 오바마 대통령은 필독서로서 또는 자신의 읽은 책의 목록으로 프리드먼의 책과 블레이의 ‘공간의 힘’이 포함되어 있다. 애기하고 보니 썩 재미있는 사실은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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