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뭐 원채 세상이 겉으로 하는 말이랑 속의 내용이 다르기는 했지만, 지금의 교육과정 개정과 수능과목 축소 논란은 해도해도 너무한다. 내가 지리교사라서 내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책 입안자들의 xxx 속이 궁금하다. 상식적으로 사회탐구 선택과목을 1과목으로 줄인다고 할때, 선택지를 지리는 세계지리와 한국지리 두 권의 책을 봐야 시험을 볼 수 있고, 경제와 한국사는 각 각 한권의 책만 보면 된다면 누가 굳이 힘들게 두 과목을 선택해서 공부한 후 수능 지리 과목을 선택하겠는가? 이건 상식이다. 아니면 의도적이든가...프레시안에 실린 박선미 교수의 글을 스크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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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2010.8.22 "'통섭'의 시대, 과목 칸막이만 높이는 수능 개편안"
[기고] <경제><한국사>에만 몰릴 것…"시대흐름 역행"
최근 몇 년 사이 고3 교실에서는 아랍어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2005년학년도 모의수능에서 제2외국어·한문 영역 아랍어 응시생은 단 1명이었으나 2009년 수능 응시생 중 42.3%가 아랍어를 선택했다. 아랍어를 가르치는 고등학교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랍어가 열풍인 이유는 단 한 가지, 영어나 프랑스, 독일어처럼 능통한 학생이 적어 평균점수가 낮은 탓에 점수(표준점수)를 받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비단 아랍어 뿐만이 아니다. 제2 인기 선택과목은 일어(21.2% 선택). 덕분에 십수년을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가르치던 전국의 수많은 선생님들이 손때 묻은 교과서를 버리고 일본어 학원에 다니며 일본어 선생님들로 변신해야만 했다. 이처럼 수능시험 선택과목을 바꿀 때마다 교육현장은 홍역을 앓는다.
2014학년도 수능 개편안이 발표됐다. '수능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이지만 몇몇 개편 내용은 '교과목 간의 통합적 문제 출제'라는 당초 수능 도입 취지를 훼손해 사실상 학력고사 시대로 돌아가는 내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직 사범대 교수의 문제제기를 싣는다. <편집자>
중장기대입선진화연구회(연구회)가 지난 19일에 발표한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 시안의 핵심은 복수 시행, 수준별 시험 도입, 과목 대폭 축소의 세 가지다. 연구회는 이번 개편이 학생들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부담을 줄인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 주는 결정적 내용은 아마도 탐구영역에서 단 한과목만 선택하도록 한 항목일 것이다. 탐구영역은 유사 분야끼리 시험과목이 통합되고 응시과목수도 한 과목으로 줄어들게 되어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참으로 친절하고 감사할 만한 배려다. 그런데 사회과 교육을 전공하는 내가 볼 때 이 개편안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번 개편안은 사회탐구영역에서 학생들의 선택을 특정 과목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현행 수능은 사회탐구 영역에 해당하는 11개 과목에서 최대 4개 과목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는데 개편안에서는 11개 과목을 경제, 한국사, 지리(한국지리ㆍ세계지리), 일반사회(법과 정치·사회문화), 세계사(세계사·동아시아사), 윤리(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등 6개 과목으로 통합한 후 그 중 한 과목만을 선택ㆍ응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6개 과목의 구성을 살펴보면 「경제」와 「한국사」를 선택할 경우 학생들은 한 과목만 공부하면 되지만 지리를 선택한 경우 「한국지리」, 「세계지리」를, 일반사회를 선택한 경우 「법과 정치」,「사회ㆍ문화」를, 세계사를 선택할 경우 「세계사」, 「동아시아사」를, 윤리를 선택할 경우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등 모두 두 과목씩을 공부해야 한다.
누가 한 과목만 공부해도 되는 「경제」와 「한국사」를 놔두고 두 과목씩 공부해야 하는 과목을 선택할까? 공부 부담이 다른 과목의 절반에 불과한 「경제」와 「한국사」과목을 다른 과목과 동등하게 배치함으로써 연구회는 학생들의 선택을 특정 과목으로 유도하고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임의로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회 구성원들이 아무리 자유시장경제와 민족주의를 선호한다고 해도 원칙도 토론도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특정 과목에 가중치를 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교육은 최소한 그런 방식으로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을 유도하거나 결정해서는 안 된다.
둘째, 유사 과목끼리의 통합을 전제로 한 과목을 선택하도록 한 점도 문제다. 학생들은 사실상 한 영역으로 제시된 두 과목만을 공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지리영역을 선택했다면 「한국지리」와 「세계지리」를 공부해야지, 「세계지리」와 「세계사」를 선택할 수는 없다. 화학영역을 선택한 학생은 「화학(Ⅰ)」, 「화학(Ⅱ)」을 공부해야지 「화학(Ⅰ)」, 「물리(Ⅰ)」를 선택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교육학자들은 단일화 된 지식의 관점으로 구성된 학문이 학생들의 사고를 제한하고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경험을 분리시키며 따라서 학습과 경험을 단절시킨다고 비판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연구회 안은 영역 간 의 넘나듦 자체를 차단함으로써 스스로 비판해 왔던 학습과 경험의 단절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지난 20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저자이자 하버드 대학의 교수인 마이클 샌델의 강의가 있었다. 그의 책은 지난 5월 출간 이후 한국에서 33만부 이상이 팔렸을 정도로 베스트셀러였는데, 벤담, 존 스튜어트 밀, 롤즈,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난해한 논리를 쉬운 사례를 통하여 명쾌하게 다루면서 정치학, 철학, 경제학, 사회학, 지리학의 경계를 쉼 없이 넘나들고 있다. 우리는 '역시 하버드대학의 교수는 다르다'고 말한다. 몇 년 전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 출간된 이래 통섭이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를 강타한 일종의 신드롬이 되었다. 우리가 샌델과 윌슨 같은 교수를 원한다면 여러 학문의 넘나듦을 경험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을 보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소통은커녕 인문사회과학 내에서도 영역 간 칸막이를 더욱 높이고 촘촘히 하여 서로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조차 하지 못하도록 차단시켜 놓았다.
나는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이는 것에는 백번 찬성한다. 하지만 학문 영역 간에 칸막이를 쳐서는 안된다. 연구회는 영역별로 한 과목을 선택하도록 한다는 주장을 통해 한 과목이 갖는 수치적 매력을 놓치고 싶지 않았겠지만 그것이 시간 축과 공간 축으로 인간과 사회를 보다 종합적으로 탐구하도록 하는 사회탐구 영역의 교육적 목적과 치환될 만큼의 가치를 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회가 주장하는 한 과목은 솔직히 두 과목이다(물론 경제와 한국사의 경우는 제외하고). 따라서 영역 간 경계 지움을 없애고 두 과목을 선택하도록 하면 현재 연구회에서 내놓은 안과 비교해도 학습 부담이 증가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의 과목선택권은 더 확대될 수 있다. 즉 사회탐구영역의 경우 경제, 한국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법과 정치, 사회문화, 세계사, 동아시아사,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중에서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과목 두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다.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면서 한국지리와 세계지리만을 선택하도록 강제할 것이 아니라 세계지리와 세계사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는가?
/박선미 인하대학교 사회교육과 부교수
ps : 논리적이고 정리가 잘된 글이다.(나도 언제 이런 글을 쓸 수 있으려나) 올 10월 즈음에 논란에 결정이 난다고 하는데, 부디 기도한다. 글 중간에 박선미 교수가 언급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란 책은 나도 최근에 최재천 교수의 책들을 검색하다 알게 된 책이다. 에드워드 윌슨의 미국 하버드대의 교수를 지냈으며, 세계적인 개미 연구의 대가라고 한다. 퓰리처 상도 두번이나 받았다. 책소개는 이렇다. "책의 원제는 <Consilience>.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귀납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옮긴이는 이를 '큰 줄기'라는 뜻의 통(統)과 '잡다'라는 뜻의 섭(攝)을 합쳐 만든 말, <통섭>으로 옮겨 제목을 달았다. 제목이 단적으로 드러내듯 책은 '인간 인식/지식의 대통합'에 대해 논한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 지식들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것이 주요 주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이지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며, 이해란 본래 통합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지식의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 분과 학문들 간의 벽을 넘어, 다른 학문에 대한 무지로 인한 오해, 한 용어를 다른 학문의 용어로 옮기는데 있어 비롯되는 혼란 없이 전체를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얼핏 어려울 듯한 내용을 여러 학문들을 넘나들며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을 보면 그게 바로 지은이가 말하는 '통섭'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은 세계 이해를 인간 이해를 위해 필요한 학문간 '통섭'을 막고 오히려 시대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평론가 오동진씨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영화 평론가가 되기 위해 영화 책 100권을 읽는 사람은 바보이다. 영화에 대한 전문가가 되려면 영화 책 30권, 사회과학 책 20권, 철학 책 20권, 문학 책 20권, 과학 책 10권을 읽어야 정말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이 말에 100% 찬성한다. 내 자신도 지리 전문가가 되기 위한 독서 습관, 노력은 지리 책만 읽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리 관력 서적보다는 철학, 사회과학, 소설, 시, 인문서적을 더 많이 읽는 편이다. 그럼으로 해서 지리에 관한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교육현실은 절망적이다. 아이들에게 '통섭'과 '이해'를 위한 교육이 아닌 '시대역행'적 교육을 하려 하고 있다. 어찌하면 좋을까?
소주나 한잔 먹어야 겠다.
마저 에드워드 윌슨의 책들을 스크랩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