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현재 대한민국은 마이클 샌델 돌풍이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인문사회과학 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최고의 판매고를 올리고 이어서 지나간 샌델의 저서까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내한해 경희대에서 강연까지 했다는데, 엄청난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하버드대에서 그의 유명세는 어디가나 통하는 듯 하다. 마이클 샌델의 유명세와는 무관하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던지고자 하는 의제가 무엇인가 고민해야 할 듯 하다.

한겨레신문 2010.8.21  정의의 잣대로 유전공학을 따지다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는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사진)의 2007년 저작이다. 화제가 된 다른 저작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2년 먼저 출간된 책이다. 이 책에서 샌델은 생명공학·유전공학의 발전으로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생명윤리’ 분야의 철학적 쟁점을 검토한다. 유전학 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은이의 진지한 고민과 답변은 이 질문이 생명윤리 분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임을 보여준다.  



샌델은 자신이 이 주제와 관련해 밀도 높은 경험을 했음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2001년 말 조지 부시 정부가 만든 대통령생명윤리위원회에 위원으로 위촉된 것인데, 이 몇 년 동안 그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 인간 복제, 유전공학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전체 17명으로 이루어진 이 위원회는 최대 쟁점이었던 ‘배아 줄기세포 복제 연구’ 허용 문제에서 10 대 7로 연구를 금지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샌델은 이때 7명의 소수파에 속했다. 인간 복제를 금지하되 줄기세포 연구는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샌델의 주장이었다. 2006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여 줄기세포 연구 지원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샌델은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부시 대통령의 결정에 담긴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부시는 ‘줄기세포 연구 지원에는 반대하지만 연구 자체는 막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지원에 반대하는 이유가 ‘무고한 인간 생명을 앗아가는 일에 돈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배아를 파괴하는 일이 인간 생명을 앗아가는 일, 곧 살인이라면 줄기세포 연구 자체를 금지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줄기세포 복제를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이 책의 핵심 주제인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포함해 좀더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유전공학 자체가 야기하는 윤리학적 문제를 따져보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언제나 그렇듯이 샌델은 이 책에서도 생생한 사례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프리미엄 난자’를 찾는 광고를 소개한다. 하버드대를 비롯해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 학보에 키 175㎝ 이상, 튼튼하고 날씬한 몸매,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 1400점 이상의 여성에게 난자를 받는 대가로 5만 달러를 지불하겠다는 광고였다. “그 광고에는 꺼림칙한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 특정 유전형질을 겨냥해서 아이를 고르는 부모의 행동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샌델의 결론을 먼저 말하면, 우수한 아이를 얻으려고 아이의 유전자를 고르거나 조작하는 일은 ‘선물로 주어지는 삶’이라는 삶의 원초적 조건을 파괴하는 일이다. 탄생의 신비를 정복하려는 부모의 충동은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을 다시 만들어내려는 ‘프로메테우스적 열망’이자 일종의 ‘우생학적 욕망’이다. 샌델은 생명을 부모가 마음대로 조작해서는 안 되는 ‘자연의 선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자신의 역할을 신의 역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 주목할 것은 인간이 ‘행운’을 선택할 수 있을 경우에 생기는 문제다. 자연이나 신이 나의 존재 조건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주는 이점은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샌델은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우스꽝스러운 사태를 가정한다. “농구선수가 리바운드를 놓쳤을 때 코치가 야단치는 것은 선수가 제 위치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어떨까? 유전자 치료 좀 받지, 키가 작아서 리바운드도 못 받는 거 아니냐고 야단치지 않을까?” 불가피한 운명에 좌우되던 존재 조건이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가 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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