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박노해시인과의 대화에 갔다 왔다. 사진 속 시인의 느낌은 별로였는데,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눈매가 매서우면서도 선한 인상이 느껴지는 '이중적' 인상이었다. 언변도 좋고, 또한 목소리도 부드러우면서도 가열차게 말할 땐, 또한 뜨거운 소리를 내는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이어온 그의 삶이 어찌보면 그를 그런 모습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한다. 인터뷰 기사에도 나오지만 그와 동시대의 386세대들은 그를 '변절자', '과거의 영웅'으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나에게 또는 20.30대들은 시인으로 또는 과거 좀 유명했던 노동운동가로 알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오히려 과거의 '박노해'가 아닌 현재의 '박기평'으로 정말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2시간 30분 동안의 대화를 통해 느낀 이상한 점은 개인적으로 '그'와 그가 만들었다는 '나눔문화'라는 공동체에서 뭔지 모를 이상한 기류가 느껴졌는데, 내내 그것이 어떤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근데 이 인터뷰 기사 말미에 나온 '박해받은 예언자'란 말을 보고 '아, 내가 느낀 이상한 느낌이 이거구나!'하고 생각했다. '예언자'. 누구도 예언자일 수는 없다. 물론 아주 짧은 시간에 느낀 점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틀릴 수도 있다. 이건 내 동물적인 느낌이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다.

--------------------------------------------------------------------------

한겨레신문 2010.11.1  박노해 “진보도 후지고 매력 없으면 지는 겁니다”  

[한겨레가 만난 사람] 12년 만에 새 시집 낸 박노해씨
98년 특사뒤 2~3년간 시 못쓰고 고뇌의 삶
5000여편 중 300여편, 젊은층 겨냥 시집 내
“실패한 혁명가가 발로 쓴 목숨 건 희망찾기”
 

» 직접 만나본 박노해는 긍지가 높은 사람이었다. 청년 박기평은 더욱 그러했으리라. 사형선고를 받고 ‘영광입니다’라고 말한 기개에 감동해 그 학생운동가(김병곤)를 찾아가 교유를 청한 것도 ‘노동자’인 그였다. 노해(노동해방)란 필명을 지은 것도, 노동자가 직접 시를 쓰고 시집을 낸다는 발상도 그의 것이었다. 스스로 혁명가의 길로 나아간 자생적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지식인 지인들이 어려운 원서를 번역해 주며 사회과학 이론을 소개해 준 것에 깊이 감사하면서도 ‘누가 박노해를 키웠다’는 식으로 말해지는 세태에 대해 가벼운 혐오감을 표시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노동자 시인’ 박노해가 12년 만에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그의 새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펴냄)는 의식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조용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세계 곳곳의 분쟁과 재난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펼치며 찍은 사진 전시회 ‘나 거기에 그들처럼’을 열었다. 관람객은 거의 대부분 젊은 청년과 여성들이었다.  

304편의 시를 수록한 새 시집은 <노동의 새벽>과 함께 박노해를 이야기할 때마다 빠짐없이 언급될 것 같다. 그만큼 박노해의 ‘문학성’과 ‘사상’의 핵심을 가득 담고 있다. ‘들어라 스무 살에// 혁명가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와 같은 아포리즘은 시대정신을 찾아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강한 흡인력을 지닐 듯하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라는 표제시는 삶의 의미를 좇는 모든 세대의 화두가 됨직하다. 그에 대한 다양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박노해는 여전히 탁월한 시인이었다.

하지만 12년 만에 사상가의 면모까지 갖추고 나타나 ‘새로운 진보’와 ‘희망의 인간’을 외치는 그와 나누고 싶은 대화가 어디 문학뿐이겠는가. 스스로를 ‘실패한 혁명가’라고 말하는 그에게 기자는 묻고 싶었다. ‘당신에게 진보는 무엇이고, 당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땅은 어디입니까?’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새 시집을 내기까지 5000여편을 쓰셨다고요. 어떻게 그렇게 많이 쓸 수가 있단 말입니까?(웃음)

“쌓인 게 많아서 그런 거겠죠(웃음). 1998년 특사로 석방돼 나온 처음에는 시가 써지질 않더라고요. 그래도 매일 독백 같은 뭔가를 꾸준히 썼습니다. 수행하듯이. 시를 찾아 몸부림하기보다 시대를 끌어안고 고뇌하면서 2~3년이 지나니까 조금씩 시가 나오더군요. 그때부터는 하루도 시를 쓰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자평하신다면?

“이 시집은 역사상 초유의 시집입니다. 이 시집의 시공간은 넓고도 깊습니다. 단순히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실패한 혁명가가 인간다운 삶의 길 찾기를 위해 발로 쓴 21세기 지구시대 유랑의 시입니다. 사랑의 순례의 시이자, 목숨 건 희망 찾기의 시입니다. 국경을 넘어 인류 전체의 삶의 문제를 끌어안고 두 발로 직접 현장을 뛰며 지구마을 민초들과 가슴으로 통한 이런 시의 지평은 역사상 일찍이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겪은 모든 한국의 경험을 세계와 소통하며 평화나눔의 실천 속에서 낳은 이 시집에 큰 자부심을 가집니다. 시의 수준은 각자 보기 나름이겠지만요.” 

-좋은 시가 참 많던데요, 수준도 상당히 높습니다.(웃음)
“가슴이 살아 있군요.”

-처음부터 젊은이들을 주 독자로 겨냥해서 편집한 것입니까?

“네, 저는 철저하게 젊은이들만을 바라봅니다. ‘젊은이’라는 것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죠. 10대라도 겉늙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어도 가슴에 시가 살아 있고, 탐험가가, 반항아가, 혁명가가 살아 있다면 그 사람은 젊은 사람이죠. 나이 들수록 기품이 있고 향기가 나는 사람, 그가 젊은이입니다. 5000편의 시에서 300여편을 추려낸 편집자도 제가 아니라 20~30대 젊은이들입니다.”

-시집에 통상 붙는 서문이나 발문, 평문 같은 것이 전혀 없더군요.

“서문은 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안 썼습니다. 그 말들은 2014년 내지 2015년쯤에 출간할 예정인 책에 담을 생각입니다. 삶의 총체적 진보를 지향하는 새로운 진보에 대한 책인데요. 지금 몇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500여쪽 정도로 줄이려고 다듬는 중입니다. 발문은 써 줄 사람이 없어서 안 실었구요.”

-이제 ‘혁명가 박노해’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스스로를 ‘실패한 혁명가’라고 규정하시던데, 무엇을 실패했다는 건가요?

“군사독재 시절에 우리는 사회주의 혁명을 이야기했죠. 사회주의가 인간 해방의 지름길이라고. 거의 대부분이 공감했어요. 그런데 사회주의 체제가 제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붙잡혀 사형을 구형받던 날 무너졌습니다. 대안으로 생각했던 체제의 붕괴를 저는 결국 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혁명가라면 다른 진실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숱한 변절자들이 있었죠. 그렇게 변절한 분들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접니다.

-소련이나 동유럽 사회주의의 실패가 곧 한국 혁명가 박노해의 실패는 아니지 않았습니까?

“그 어법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주의 진영 자체를 일체로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나만은 실패의 대오에서 빠진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사회주의 체제를 희망이라고, 대안체제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사회주의 체제의 실패는 회피하기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사회주의가 가진 인간 중심의 가치는 여전히 인류의 이상이 아니겠습니까?

“돈이 중심이라는 의미의 자본주의라는 말에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영혼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저는 사회주의가 표방하는 가치와 정신만은 영원히 가져갈 것입니다. 그런데 전 이제 ‘주의자’가 아닙니다. ‘위주자’가 되자고 합니다. 한 가지 주의로 갈 수 있을 만큼 사회가, 인생이, 삶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고정된 이념의 틀로서만 사회주의를 얘기한다면, 나는 생태주의, 여성주의, 영성주의자입니다. 전통과 아날로그와 농촌과 작은 공동체들의 삶의 원칙과 도덕가치 같은 존경할 만한 권위를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진정한 보수이기도 합니다.”

-왜 그런 자신의 생각을, 사상을 좀더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나요?

“제가 12년 동안 침묵했던 것은 편승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이명박 대통령을 조지기만 하면 진보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기득권을 누리며 민주정부 10년 동안 안주한 진보의 결과가 과연 무엇인지 반문합니다.”

-‘실패한 혁명가 박노해’가 희망하는 혁명, 대안의 진보는 무엇인가요?

“이 인터뷰에서 그 모든 얘기가 가능할까요? 오해받기 딱 좋겠죠.”

-2014년쯤에 나온다는 책에 박노해의 사상이 집대성되는 건가요?

“그것이 제가 살아남아 있는 이유이고, 많은 옛 동지와 저를 믿고 신뢰했던 분들에게 제가 갚아야 할 역사적 부채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2년 동안 침묵하고 절필한 이유도 실패한 혁명가로서 책임을 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책에 그 답을 담을 겁니다. 지금으로선 내가 살아내지 않은, 경험하지 않은 진리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진리실험을 하고 나서 이야기할 겁니다.”

-그래도 조금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십시오.

“약간 다른 이야기인데, 감옥에서부터 구상해 오고 10여년째 준비해오고 있는 생태적이고도 문화적이고, 영성적이면서도 글로벌한 마을을 만들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쯤이 될까요? 삶의 총체적 대안을 마을 규모로 구현해볼 생각입니다. 문화적으로 아름다운가, 영적인가, 글로벌한가, 자율성과 개인의 다양성이 활짝 살아 있는가, 자급자족하는가, 보편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인가, 이런 걸 기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켜보겠습니다. ‘박노해식 진보’가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새로운 진보는 ‘삶의 총체적 진보’이고,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영적 진보’이고, 사회구조악을 직시하는 사회과학적 진보이고, 자연친화적이고 대지에 뿌리박은 생태적 진보이고, 지구시대를 살아갈 글로벌 진보입니다. 지구 차원에서 가난한 이웃들과 연대하며 문화적 폭을 넓혀가는 것이 또한 최고의 남북통일 준비이기도 합니다.”

-독자들을 위해 좀더 쉽게 풀어주신다면?

“그런 진보를, 생각을 품어내지 못하면 낡고 후진 것이고, 후지면 지는 것입니다. 촛불집회 때 젊은이들을 만나보니 하나같이 ‘이명박 한참 후졌어요’라고 해요. 하도 많이 듣다보니 나중에는 시처럼 들리더군요. ‘후지면 지는 거다, 적을 타도시킬 수 없는 시대에는 낙후시켜라!’ 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지고 매력 없으면 지는 겁니다.

-‘영적인 진보’를 얘기하셨는데요, 박 시인의 사상은 종교적 색채도 띠는 것 같습니다.

“성직자 시스템의 기성 종교, 즉 예수 물산회사나 부처 물산회사는 다 망할 겁니다. 예수가 부처가 종교를 만들었습니까? 저는 어떤 종교도 거부하지만, 예수나 붓다 같은 분들은 제 선배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가 준비하고 있는 책이 출간되면 진보든 보수든 기존 이념 진영과 종교는 물론이고 그 어떤 자잘한 기득권이라도 가진 사람들에게 저는 ‘공공의 적’이 될 것 같습니다. 학교도, 심지어 노동자들에게도요. 저는 젊은이들에게 말합니다. 일자리 기대하지 말라고. 헛된 희망에 매달리지 말고 반쯤 농사짓고 반쯤 예술하며 살아가자고요.”

-(기대한다고 해야 할지, 위험하다고 말해야 할지 잠시 숨을 골랐다.) 박 시인이 이끌고 있는 ‘나눔문화’의 회원이 얼마나 됩니까?

“2000여명입니다. 기존의 진보 패러다임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죠. 어떤 어젠다에 대해서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진정성 있는 사람들과 몇 백 년 가는 숲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제가 박노해를 만난다고 하니 입을 삐죽 내미는 친구들이 있더군요. 진보진영에서조차 박 시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꽤 있다는 걸 아시지요?

“제가 답할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명문대 나온 지식인들은 절대로 모르겠죠… 언젠가 삶이 판단해주지 않을까요? 제발 그렇게 자신이 진보라고 생각하면서 십년, 이십년 끝까지 가주기만 한다면 제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겠지요.”

-진보, 보수를 떠나 한국 지식인사회의 ‘엘리트주의’를 지적하는 건가요?

“종합적인 거 아닐까요?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서 정직하게 (실패했다는) 선언을 하니까 이념적으로 변절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또 제가 만만하잖아요? 무슨 학연이 있습니까, 연줄이 있습니까? 저와 함께 사노맹을 했던 서울대 출신들에게는 어떤 비판도 나오지 않잖아요?”

-어떤 젊은이들에게 박 시인은 상업화된 체 게바라 이미지처럼 낭만적 우상으로 비치고 있지는 않을까요?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두 번의 사진전을 열었는데, 사인을 해드리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는데, 오히려 386 세대들에게 그런 경향이 있지,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들은 (저에 대해) 두려움도 없고, 경외감도 없어요. 있는 그대로 저를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만난 젊은 세대의 그에 대한 ‘평’을 이렇게 전했다. “이것이 진리다, 이것이 옳다, 이렇게 살아라 하고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나와 같이 살자, 진리를 살자고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고요. 아마도 시대의 어른들이 가시면서 텅 빈 마음의 공허, 세상에 믿을 곳 없다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박노해는 누구입니까? 사상의 전파자? 영구 혁명가? 글로벌평화운동가? 위대한 시인? 어떤 얼굴이 가장 박노해다울까요?

“저는 한번도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쓴 것이 아니고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닙니다. 현장에서 너무 절실하고 너무 필요하니까 시를 쓰고 카메라를 들었을 뿐이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계획자는 자신이 아니라 하늘인 것 같습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사람이 계획을 하게 되는데, 큰 역사와 삶 속에서 작은 계획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획은 아주 한정되게 세우고 원칙을 지키면서 사랑과 영혼이 부르는 대로 가다보면 시인이 되기도 하고 사진작가가 되기도 하고 또 그 무엇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내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일이 없기 때문에 매 순간을 불사르면서 살고 있고, 후회도 없습니다. 사형 구형을 받았을 때도, 마지막으로 시원한 맥주나 한잔 마시고, 잠깐 기도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후회 없이 죽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마음엔 변함이 없습니다.”

10월22일 저녁,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났다. 나에게도 박노해는 한 시대의 상징이자 아이콘이었다는 사실을. 그러자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연민이 밀려들었다. 급속한 세상의 변화 속에 내던져진 박노해는 그런 자신의 존재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한때 그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런 그를 지나치게 백안시한 건 아니었는지…. 이제 박노해는 새로운 진보의 전파자로서 부지런히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중인 듯했다. 저렇게 스스로를 가열차게 단련하다가, 추종자들을 이끌고 영성의 바다로 나가는 ‘박해받는 예언자’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 아닌 걱정이 들 정도로. 어느 쪽이 되든 그가 진심으로 희망을 말하고, 인간을 말하고, 사랑을 말하는 한, 우리 사회가 그를 한 시대의 자산으로 소중하게 키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끼고 가꾼다는 것은 사랑과 함께 비판과 감시로 동행하는 것이니, 한때 우리의 눈물이자 희망이었던 ‘노동의 새벽’의 시인도 아주 먼 바다로 나가지는 않지 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0.10.30 11:30  경복궁역 카페 디비 베스에서

위선자 교사 or 위선자이기 쉬운 교사

토요일이다. 학교가는 토요일. 쌀쌀한 아침과는 다르게 점심인 지금 날씨는 너무 화창하다. 떨어지는 낙엽만 없다면 봄같이 느껴질만큼.

며칠 전 1학년 학생 한명이 야간자율학습실에서 PSP와 MP3 player를 잃어버렸다. 자기가 책상위에 엎어져 자는 사이에 책상 위에 놓아둔 물건을 몰래 누군가 가져갔다는 것이다. 생활지도부에서는 너의 과실도 있고 하루 지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 했고, 아이는 우선 담임교사에게 보냈다. 뻔한 일이지만 담임도 뾰족한 수가 없다고 했을거고, 그 아이는 화가 났을 것이다. 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건지, 학생의 일에 대해 교사들이 학교가 너무 무관심하다. 그런 맘을 가졌던 것 같다. 그 아이가.

그리고 오늘 그 아이가 다시 생활지도부에 왔다. 1학년 담당 교사가 불른 듯 하다. 이 아이가 교장선생님한테 가서 또 애기를 한 듯 하다. 그래서 학년 담당 교사가 또 부른 것이다. "너 왜 여기 저기 들쑤시고 다니냐"며 애기를 하는데 내가 너무 답답해서 아이와 장장 1시간(?)동안이나 애기를 했다. 우리 반은 그 덕분에 종례도 늦고. 어떻게 보면 내일도 아니고 끼어들 필요도 없는데...또 끼어들고 말았다. 그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느낀점 두가지는 이 아이는 약간의 '피해의식'이 있는 듯 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어느정도의 피해의식은 가지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누구나 완벽하지는 않으니, 그로 인해 나의 부족함에 의해 내가 무언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느낄수 있다. 나 역시 그렇고. 정도의 문제가 있지만.

학교에 있다보면 아이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설득해야 할지 난감할때가 많았는데,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아이가 잘못을 해서 설득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있는 법이다. 이럴때 나의 존재상황을 배반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두번째는 교사는 참으로 위선적이다, 또는 위선적이기 참 쉽구나 하는 것이다. 그 아이가 나에게 한 말이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자기 물건(물론 그 아이는 교사 개인의 물건이 아니라 교실 열쇠같은 것을 지칭했다) 잃어버리면 애들한테 막 혼내고 추궁하잖아요"하는 것이다. 왜 니들은 그러면서 내가 내 물건 잃어버린 것에 대해 애기하는데 왜 자꾸 니 과실 애기하며 못 찾는다는 애기만 하냐는 것이다. 아이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뻥'했다. "그럴수도 있겠구나!" 아이들의 눈에는 입장에서는 교사의 그런 행동들이 어쩌면 위선적으로 보일 수 있겠구나... 내가 깨달은 것은 오늘이지만 사실 아이들은 오랜 전부터 알고 있었고 교사들만이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학생과 교사는 다르다. 존재 목적과 현실 상황이 전혀 다를 수 밖에 없다. 교사는 교사이다. 그러기 때문에 남다른 도덕성과 지성, 판단력, 세상을 옳바르게 볼 수 있는 눈과  그것을 뒷받침 할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바로 그런 교사의 생각과 행동을 아이들이 보고 배우기 때문에 학생과 교사는 다르며 또한 교사의 역할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의 이 구조는 교사를 그런 교사로 교육시키지도 않고 또한 그만큼의 책임에 따른 권위와 대우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모든 교육 문제의 책임을 교사에게 지우고 있다. 답답하다. 교사에게 많은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한국의 현실 교육이 이 정도 유지되는 것도 어찌보면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교사들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햇빛눈물 > 예수를 닮은 박노해 시인과의 대화

2010.11.2  나눔문화

빨간책 검은 띠줄, 검은책 빨간 띠줄 

 

12년만에 박노해 시인의 시집이 출간되었다. 예전 헌책방에서 <참된 시작>이란 시집을 사 읽은 적이 있어, 직접 시인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시집도 사고 강연회 신청도 했다. 광화문 서쪽에 있는 나눔문화란 곳에서 강연을 하는데, 박노해 시인이 만든 지적 사회 공동체라 한다.

강의실 준비를 하느라 잠시 실외에 있는 옥외 공원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은은한 조명, 장독, 깨진 장독, 장독 뚜껑, 하늘을 덮고 있는 듯한 비닐, 그 비닐에서 스며나오는 연노랑 불빛. 진행자 분이 주신 차 맛 또한 일품이었다. 

 

 

강연장 준비가 끝나 자리를 잡았다. 역시나 난, 맨 뒷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기다리며 시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맨 앞쪽 테이블 위에 전시용으로 쌓여 있는 신작 시집을 본 순간 난 '어, 검은책에 빨간 띠줄이네'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책 디자인이 두 가지인가?"하는 생각을 했다. 빨간책에 검은띠줄, 검은책에 빨간띠줄? 난 왜 착각을 했을까? 또한 그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찌보면 차이가 없다. 또 어찌보면 차이가 있다. 내 눈의 부정확함으로 인해 발생한 순간의 착각일테니, 사실 별일도 아닌 것이다!! 근데 난 왜 이 일에 대해 신경 쓰고 글을 쓰고 있을까?

현실에서 별 일 아닌 이런 착각들이, 오해들이, 아집들이, 편견들이 너무나도 많이 존재한다. 별 것 아닌 것을, 내가 잘못 본 것을,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을, 그럴 수도 있는 것들을 인간들은 자기가 맞다고 옳다고 악다구니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진짜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난 것이다. 아니 알면서 모르는 척 할 수도 있다. 알면서 행동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현실 인간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분쟁과 갈등의 시작이 아닐까? 

박노해 시인의 시 한수와 오늘의 대화 시간이 나에게 이런 착각에서 깨어나게 그리고 그 착각이 착각임을 인식시켜주며 불의한 현실에서 미약하나마 움직일수 있는 행동할 수 있는 하나의 자양분이 된 귀중한 시간이었다. 시인께서 중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소박하고 기품있게" 난 이 말이 내 가슴속에 자연스럽게 새겨졌다. 단순하고 간단하지만 그 속에서 빛나는 살아움직이는 결이 있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다. 

ps : 나눔문화 올라가는 계단의 모습이다. 난 이 모습을 보며, "아 이 공간은 좋은 사람들이 있는 따뜻한 공간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참 좋은 그대'일 수 있기를...갈망한다. 그리고 노력해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녹색연합 월간지에 나오는 글을 일부분 타이핑해 옮겨 놓는다. '재사용', '재활용'에 관한 개념 설명이다.

-------------------------------------------------------------------------------------- 

재사용, 재활용?

재사용(reuse)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버리는 물건이나 물질을 다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헌 옷이나 가전제품, 가구, 책, 장난감을 다시 사용하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재사용도 원래 쓰던 상태 그대로 다시 사용하는 게 있고, 약간 손을 봐서 다시 사용하는 게 있다. 약간 손을 봐서 다른 용도로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요즘 유행하는 리폼(reform)이다. 디아이와이(DIY: Do It Yourself)라고도 한다. 헌 옷으로 토시를 만들거나 가방으로 고쳐 만드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제품을 분해해서 세척을 통해 다시 새것처럼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을 ‘재제조’라고 한다. 자동차 부품, 카트리지, 토너 같은 것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재활용(Recycling)은 물건이나 물질을 원형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원료로 가공하는 과정을 거쳐서 재생원료나 재생제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유리병이 폐기물로 버려지면 다시 녹여 유리병이나 유리제품으로 만든다. 플라스틱이나 고철, 폐지 등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재생원료로 사용을 합니다. 이러한 활동을 재활용이라고 하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물질재활용’이라고 한다. 물질재활용과는 다른 개념으로 ‘에너지 회수’가 있습니다. 폐지나 폐목재, 폐플라스틱과 같이 탈 수 있는 폐기물을 태워서 나오는 열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대체연료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녹색연합 월간소식지 <작은것이 아름답다> 2010.10월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여러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는 어떤 저자의 독서습관을 다룬 책도 있으나, 나같은 경우가 딱 그런 것 같다. 한권을 진득하니 독파하는 것이기 보다, 동시에 여러권을 읽는다. 

 

뭐 내가 이 책에 관심있지도 않고 읽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할 이유는 없지만 간단한 평을 보니 '극과 극'이다. 뭐 내용과 주제상 그럴듯 하다.

지금 읽는 책은 4권이다. 나름 규칙도 있다.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는 존 펄린의 <숲의 서사시>, 학교 공강시간에는 최성각의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퇴근길 버스에서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에로의 도피>, 밤 자기 전에는 니혼게이자이신문사가 펴낸 <인구가 세계를 바꾼다>이다. 

          

     

책을 읽다가 또 다른 책이 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좀 읽다가 말기도 하고 재미있으면 계속 읽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읽고 싶은 주제가 다르기도 하다.

하여튼 읽을, 읽고 싶은 책들은 책상위에 쌓여만 간다. 하지만 부담이라기 보다 즐거움이 더욱더 많이 쌓여가는 듯 하여 즐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