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비시선 121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최영미 시인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의 시들이 읽고 싶어졌다. 시집을 골랐다. 고르는김에 산문집도 골랐다. 총 3권, <서른, 잔치는 끝났다>, <도착하지 않는 삶>, 그리고 산문집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정신이 없다보니 자연스레 책 읽을 시간이 줄어 들었다. 요즘은 정말 정신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시가 편하다. 아침 버스 안에서 시들의 행간이 유독 눈에 잘 들어온다.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

'선운사에서'를 읽으며 2006년 1월, 나의 선운사를 기억했다. 나 또한 꽃이 피어나고 지듯이 내 속에 피어난 꽃 피고 지는것 순간이었다. 순간... 

또다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화장실 갔다 올 때마다 허리띠 새로 고쳐맸건만
그럴듯한 음모 하나 못 꾸민 채 낙태된 우리들의
사랑과 분노, 어디 버릴 데 없어
부추기며 삭이며 서로의 중년을 염탐하던 밤 

...

해마다 맞는 봄이건만 언제나 새로운 건
그래도 벗이여, 추억이라는 건가

그러나, 나의 지난 날의 꿈은 순간이었고 잊혀졌다고 생각했지만, 시를 읽을 때마다 화장실에 갔다올 때마다 문득문득 튀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하지만 그 과거의 '낙태된 꿈'은 현재의 나와는 단절되어 이어진 벗하나 없으니 결국 나에겐 남은 추억도 없는 것 같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부담없이 새롭게 읽었다. 노골적이면서 솔직하고 담백한 그녀의 고백이 나에겐 꼭 나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의 시는 그의 <시>라는 시처럼 '하느님, 부처님 썩지도 않을 고상한 이름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책갈피가 아니라 지친 몸에서 몸으로 거듭나는 아픈 입에서 입으로 깊어지는 노래'이다. 최영미 시인의 시집은 내 손 가까이에 있을 듯 하다. 한동안은...그때 나의 서른 넘은 잔치는 다시 시작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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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08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서른되던 해에, 집었던 책입니다.
지금도 홀깃 보니 책장에 있네요.
아마 서른 되는 해에, 다들 한번씩 집어드는 시집 아닐까요.
그때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 에만 필이 꽂혔는데
나중에 읽어보니, <선운사에서>에서 마음이 매이더군요.

다시 읽어보니 좋네요, 이밤...
아이디 예쁜 햇빛눈물님, 즐거운 내일 되셔염~

햇빛눈물 2011-03-09 10:08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저도 어찌하다보니 그 즈음에 읽었네요. 저도 한 10년 후에 제 책장에 있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하네요. ㅋㅋ 마고님도 좋은 날들 가득하시길!!

양철나무꾼 2011-03-09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오타요~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요, 근데 '길을 읽어야 진짜 여행이다'가 왠지 더 그럴 듯 한걸요~

전, 최영미가 좀 힘들어요.
너무 누추하고 적나라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새학기가 정신없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군요.
님도 화이팅이요~!!!

햇빛눈물 2011-03-09 10:10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근데 진짜 '길을 읽어야 진짜 여행이다'도 정말 괜찮네요. ㅋㅋ
<도착하지 않는 삶>은 좀 덜합니다. 적나한 느낌이. 저도 처음에는 좀 그랬는데 읽을수록 그녀의 아픔이랄까 하는 부분이 느껴지더군요. 최근에 나온 산문집도 읽고 있는데 그녀의 '나이듬'이 확연히 느껴집니다. 하여튼 재미난 사람같다는 생각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3-09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령화 시대인데 서른에 잔치가 끝나면 너무 허무하죠.서른이라면 잔치준비도 안 해본 사람도 많을 것 같아요.

햇빛눈물 2011-03-10 10:21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십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도 명예퇴임을 하셨는데 나이가 환갑이 조금 넘으셨습니다. 사실 평균수명이 80가까이 되고 앞으로 100살까지 사는 세상이 올텐데 노년을 잘 살기 위한 방법이 고민되네요. 핵심은 건강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