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읽어도 된다 - 50에 꿈을 찾고 이루는 습관 좋은 습관 시리즈 23
조혜경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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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책을 읽는 습관의 좋은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애써 강조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자꾸 다짐하게 되는 습관이기도 하다. 출근길 대중교통에서 책 읽는 사람은 드물다. 저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다.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는 거야말로 좋은 습관을 기르는데 도움이 될 터인데 우리는 책 이외의 것들에 눈을 돌리고 만다. 물론 책보다 다양한 경로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많다. 어떠한 지식을 유튜브로 배웠다는 경험은 자주 들려오는 소식이기도 하다.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는 요즘, 책을 읽는 사람이 드물어지고 있는 요즘에 공감할 수 있는 책을 만났다. 현재 예스24 블로거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책이다.

 


나이 쉰이 넘어 늦깎이 번역가를 꿈꾸는 평범한 여성의 독서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경험이자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들은 좋은 책을 선별하는 것과 글쓰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물론 나 같은 경우는 순전히 책을 읽는 게 좋아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에 가깝지만 말이다.





 

단순히 읽은 책의 목록과 책의 나열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습관을 기르는 점과 저자가 꿈꾸어왔던 일본 작품 번역가를 향한 노력이 돋보였다. 언어를 잘하는 것과 번역자가 되는 것은 여러모로 다르다. 좋은 작품을 선별해 읽어야 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파고드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저자가 특히 매력을 느끼는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였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소세키의 여러 책을 읽었다. 이른바 전작주의의 시작이었다. 독서를 좀 한다는 사람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좋아하는 작가의 전작을 읽는 거다. 나 또한 제인 오스틴을 비롯해 작가의 전작을 살피는 일이 허다하다. 깊이 빠지고 깊이 사랑하게 된다. 저자의 경험과 함께 전작주의자가 되는 팁이 수록되어 있어 독서의 습관을 기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 살펴보면 좋겠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경험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면 전작주의가 그랬고, 완독의 경험과 실패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었다는 문장 하나에 매력을 느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시작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표현에 압도되어 완독하고야 말겠다는 목표를 가졌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구구절절한 화자의 회상은 읽기는 읽었으되 무슨 내용인지 앞으로 돌아가기를 여러 번이었다. 어떻게든 읽어보겠다고 4권까지 구매했을 뿐 책 읽기도 4권에서 끝났다. 지금까지 기억나는 내용은 마들렌을 먹었던 그 장면뿐이다. 직장에서 해방된 1년 동안에도 끝내 읽지 못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종종 독서의 확장을 경험한다. 교류하는 블로거나 인스타 팔로워의 글에서 관심이 가는 책을 발견하는 것이다. 저자가 건축가 김진애의 글에서 정희진 작가의 여자의 독서를 만나는 부분이 그렇다. 꼭 완독을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어떤 인연으로 만나 책을 읽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경로를 통해 들은 바지만, 집중력을 높이는 독서법 중의 하나가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일이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실행에 옮겨 봤지만 오래도록 이어지지는 않았다. 두꺼운 인문 서적을 읽어야 할 때 소설이나 에세이와 함께 읽는 경험은 해보았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법과 집중력을 높이는 법, 꼬리를 무는 독서법 등 다양한 독서법을 제시했다. 저자의 독서에 도움이 되는 108배 운동법은 특별했다. 책을 많이 읽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운동법이 필요하다. 점심시간 3~40분의 산책이나 일주일에 세 번 요가를 꾸준히 하는 내 운동법과도 비슷해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의 비슷한 습관과 대처법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책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읽으면 된다고 본다. 소설이나 인문 서적을 읽든 말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궁금해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것부터 책을 읽고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에 공감할 수 있어 좋았다. 독서로 시작한 저자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그에 대한 노력이 꼭 결실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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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2-10-31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블루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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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며 내 욕심껏 바라고 다그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았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자 다짐했었으면서 막상 부모가 되니 자꾸 무언가 되길 바랐다. 하나를 잘하면 둘을 잘하기를 바랐다. 그게 내 욕심이었다는 걸 아주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이들이 내 손길을 떠나 자기만의 삶을 향해 나아갔을 때 말이다. 너무 늦었다.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달라졌을까. 달라지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증조할머니의 기억이 떠올랐다. 심윤경 작가의 할머니처럼 쪽진 머리에 마른 체형을 가진 분이었다. 엄마 시집살이를 많이 시켰던 분으로 기억되는데, 아마 작가의 할머니처럼 말을 아낀 분이었다면 그 기억으로 자식들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무관심이 아닌 무심한 이해를 주었던 사람으로 말이다. 자식 일이라면 왜 불안해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마다 각자 개성이 있는데 어느 틀 안에 가두려고 하는가 말이다.




 


작가 할머니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겠다. 마음속으로는 많은 감정이 오갔겠으나, 무심하게 건네는 한마디에서 심사숙고한 할머니의 마음이 엿보였다. 말을 아낄 필요가 있다는 거를 다시 배운다. ‘저런이라니. ‘저런에 담긴 그 모든 마음이 짐작되었다. 염려와 공감의 언어였다. 우리가 하기 힘든 언어들이다. 해가 갈수록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본인 알아서 잘하련만,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하게 된다. 부모의 기대와 염려라고 일컫고 싶겠지만 조바심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작가 친구의 아버지가 했던 말도 배워 실천하고 싶다. 뒤늦게 공부하는 딸에게 등록금을 해주겠다며 했던 말이다. ‘거 뭐 될 필요는 없다.’라는 말. 보통 부모가 하는 말은 열심히 해서 꼭 뭐가 되어라라고 하지 않나. 그 말을 들은 자녀는 부담스러운 마음이 작용할 터다. 방송에서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꼭 뭐가 될 필요는 없다는 말이. 자식 걱정에 자기 밥벌이를 하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꼭 뭐가 되지 않아도 우리는 오늘을 살 수 있다. 충분히 만족할 수 있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에 공부하지 않았던 사람이 대학 졸업 후에도 공부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일의 어떤 순간에도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하지 않아 답답한 마음도 있었지만, 훗날 막막한 일에 맞닥뜨렸을 때 기억나는 건 할머니의 단순하고도 짧은 언어였다. 할머니의 언어를 기억해내고 나의 감정을, 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의 언어를 배울 수 있었다.

 


작가의 작품을 꽤 여러 편 읽었다. 할머니의 애틋한 기억이 떠올랐던지 어렸을 적 저자와 함께 있는 할머니의 사진은 익숙하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할머니의 언어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느낌이다. 작가 또한 수많은 순간에 떠올랐던 할머니의 말을 떠올려 그 기억을 글의 형태로 나타내고 싶었던 것 같다. 작품 속에 빛나는 할머니의 언어가 선물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영원히 남아 있을 언어는 기대와 염려로 가득한 우리에게 무심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만 같다.

 


무심한 듯 이해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대와 염려를 포장한 조바심을 뒤로 하고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을 아끼고, ‘저런처럼 짧은 언어에서 내포하는 수많은 감정을 다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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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0-24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윤경 책이 나왔구나!
얼른 검색해보니까 에세이군요. ^^;;;
 
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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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의미가 크다. 최선을 다하여 일해도 경계선 밖의 끄트머리에서 여전히 헤매는가 하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유유자적한 사람들이 있다. 그 차이의 깊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갑자기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사람의 행동은 다르다. 몇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고 복수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 반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피폐해진 몸을 이끌고 용기를 내 찾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 여성을 보고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 응원하게 된다.

 


정희는 1092일 전, 46개월 12일을 산 아들 경준을 잃었다. 이후 우울증과 신경쇠약,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아이를 잃은 후 남편과는 데면데면했고, 경제 활동을 남편 혼자서 책임지고 있었다. 정희는 일자리를 찾았다. 중고생 수험 참고서를 만들었던 경험으로 수능 모의고사 문제집을 만드는 회사에 지원했다. 면접을 마치고 오랜만에 남편 회사 앞으로 가 기다렸다. 동료들과 나오던 남편이 자기 눈앞에서 실종되었다.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약해진 여성이 남편이 납치된 후 세상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치밀하게 계산된 상황에서 자기의 뜻대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곁에는 의지할 가족 하나 없었다. 남편을 둘러싼 상황들이 점점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한편 정희는 갇힌 세상에서 스스로 빠져나와야 했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우리가 추구하는 돈과 비틀린 욕망에 혼재되어 나타나 전반적인 흐름이 된다. 뉴스에서 떠들썩했던 계곡살인사건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왜 비틀린 욕망으로 점철되었는가 그 이유가 궁금했었다. 자기 눈앞에서 경험한 사건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자기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도 돈을 위한 대상으로 보았을 뿐 다른 사람에게는 냉정한 자였다. 약해빠진 정신으로 슬픔 속에서 허우적댈 거로 여겼던 여성이 한발 한발 다가오자 가차 없이 제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여성이었기에 쉽게 당하지 않는다. 슬픔을 이기는 동류의식이 정희를 강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성을 주체적으로 내세운 작품이 많이 나온다. 여성이 남성 뒤에서만 숨어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드러낸 작품이 좋다. 남자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일하는 것보다 궁금한 것은 자기가 알아보고 그 이유를 알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 단호함을 가지는 게 좋다. 남편이 실종된 후, 남편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 지애의 남편이 찾아오자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희는 강해질 터였다.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울 거였다.

 


테두리 안에 있는 인물들보다는 테두리 밖에 있는 인물들을 그렸다. 돈이 없어 아이의 심장 수술하지 못했고, 탈북자의 힘겨운 삶을 나타냈다는 점이 독특하다. 꿈과 희망을 좇아 한국으로 왔지만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것을 새로 배워 살아야 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정적일 것이다. 북에서 특별한 능력을 지녔더라도 말이다. 누군가의 유혹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속닥거리는 말은 또 얼마나 의심을 났는가 말이다.

 


사람은 때로 자기를 뛰어넘는다. 뭔가에 빠졌을 때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런 말도 하고 저런 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40~41페이지)

 


다양한 인물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간다. 우리 주변에서 울고 웃는다. 인식하지 못했을 뿐,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죽기도 한다는 것을 아프게 바라보게 된다.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이 한없이 울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서 다양한 소재의 작품이 나온다는 건 꽤 반가운 일이다. 새로운 작가를 안다는 것의 묘미가 있고 작품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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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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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딸이 얼마나 있을까. 이해하려고 생각은 해봤을까. 자기 안의 신념에 갇혀 타인의 말이라고는 듣지 않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향해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아버지의 생각을 바꾸려 들지 않았는가 말이다. 자식들이 아무리 이야기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은 게 또한 아버지인 것 같다.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엄마 편에 선다며 서운해하는 아버지. 엄마가 돌아가신 후 그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쩌면 아버지가 주인공인 작품을 일부러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하면 불편한 감정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 아버지 자신만 중요하게 여기고 엄마를 등한시했던 거에 대한 서운함 때문인지, 갈수록 크게 느껴지는 엄마의 빈자리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평생 빨치산의 딸로 살아온 작가가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장례를 치르는 사흘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자기 삶을 살아보지 못하여 반목한 작은 아버지와의 관계, 구례에서 만난 아버지 친구들, 나의 버팀목이자 사랑이었던 아버지와 딸의 관계, 남부군 투사였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가 이웃 사람들의 진언으로 의 기억으로 나타나 새로운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장례식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아버지와의 일화를 이야기한다. 전혀 모르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하기야 자식이 어떻게 부모의 모든 것을 알겠는가. 이름만 알고 있었던 인물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부모 세대가 걸어온 질곡의 현대사를 알게 한다. 마을에서 남부군으로 활동했을 당시 아버지와 반목한 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감옥에서 출소 후 고향으로 돌아와 터를 잡은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군인과 교련 선생으로 한 시대를 살았던 박 선생과의 우정어린 투닥거림, 노란 머리 여자애를 차별 없이 바라봐주어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을 나누었던 것은 아버지가 꿈꾸던 평등한 세상의 한 갈래였다. 열일곱 살의 여자아이와 맞담배를 피우며 아이가 포기했을 미래를 희망으로 이끈 점 또한 에게는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보통의 아버지와는 달랐다. 그가 추구했던 사상만큼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다. 예를 들면, 다랑논에 모심는 날 사고 났다는 전화를 받고 앞뒤 재지 않고 달려갔다. 아픈 엄마가 밤늦게 올 게 뻔한 데도 오죽하면 글겄냐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딸은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고서야 아버지를 제대로 바라볼 준비가 되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평생의 굴레를 준 아버지를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은 아버지를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뒤늦게 아버지를 제대로 보았다. 가족이라고 해도 다 알지 못한다. 몇십 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아는 경우가 있다.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110페이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다시는 마주할 수 없는 아버지를 향한 뭉클함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나도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안부를 물을 때 의무적으로 하지 않고 그리움 가득한 마음으로 하게 될까.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은 감정이 있다. 그 간극을 좁히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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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없는 부부와 고양이
무레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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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말 저녁, 텃밭에 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왔다. 작은 고양이였다. 어린 새끼 고양이는 아니지만 못 먹어서 마른 고양이였다. 우리가 먹던 광어회를 몇 점 던져주었더니 무서워하지도 않고 우리 곁에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거리를 두고 앉아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생선을 주긴 했지만 먹일 게 마땅치 않았다. 집에 있는 고양이가 생각났다. 집안에만 있다 보니 살찐 고양이가 되어 다이어트 사료를 먹이고 있는 우리 집 귀염둥이. 그에 반해 먹을 게 부족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웃거리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당장 마트에 가서 사료를 사 왔다. 매일 가지는 못하지만 갈 때마다 먹이를 챙겨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고양이나 개를 키우며 인생의 즐거움을 깨닫는 이야기다. 동물을 키우기 전에는 이런 감정들을 알지 못했다.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에게 왜 반려라고 말하는지 말이다.





 


아이가 없는 부부와 함께 사는 고양이들, 아내와 황혼 이혼 후 개를 키우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초로의 남자, 어머니가 살던 집에서 함께 기거하게 된 자매에게 찾아온 두 마리 고양이, 홀로 된 어머니가 고양이 다섯 마리를 입양하며 발생하는 여러 일들, 나이 차가 나는 부부에게 찾아온 고양이와 개가 주는 즐거움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것은 아이 하나를 키우는 것과 같다. 거실에는 고양이 장난감과 캣 타워, 터널, 스크래처 등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안방 화장실에는 고양이 화장실이, 부엌과 안방에는 물컵과 음식 용기가 있다. 옷이며 집안 곳곳엔 고양이 털로 가득하고 식탁 의자며 소파는 원목으로 다 바꾸었다. 그럼에도 며칠 집이라도 비울라치면 고양이 생각에 마음이 멘다. 잘 있는지, 혼자 심심해하지는 않은지 걱정에 잠 못 이룬다.

 


두 마리 암컷 고양이가 온 후로 집 안에 활기가 돌고 자매 간에도 대화가 늘어 같이 웃는 일이 많아졌다. 고양이들도 상성이 잘 맞는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서 다행이었다. 히로코는 퇴근하는 게 즐거웠다. (101페이지, 중년 자매와 고양이중에서)


 

무레 요코의 작품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다섯 가지의 형태로 나타냈다. 몇십 년을 사는 인간과 다르게 십오 년 정도 사는 반려동물을 잃은 상실감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친구가 개를 키우다가 잃고 나서 몇 년을 울었던 적이 있었다. 반려동물들도 인간처럼 더불어 살아가기에 슬픔을 가누기 힘들다.


 





우리 집 고양이의 최근 좋아하는 장소는 안마의자 안에 둔 스크래처다. 우리가 출근하면 몸을 동글게 말고 앉아 있다. 삼면이 높아 안식처의 느낌인 것 같다. 누군가 앉을라치면 자기가 먼저 달려가 앉는다. 심심하면 내 발목을 물고 놀자고 한다. 놀아줄 때까지 발목을 물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어느새 고양이 등 반려동물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온다. 책 속의 이야기보다 내 경험을 이야기하기 바쁘다. 전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친구들이 만날 때마다 얘기하면 버거웠는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 휴대폰 속의 사진첩에서 고양이 사진을 꺼내 보여주고 있었다. 그 귀여움을 자랑하고 싶은 거다. 무레 요코의 인물들처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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