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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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서 풍겨지는 건 우리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약처럼 사랑하는 대상에게 쓴 글일 것이다 였다. 김동영이라는 이름 하나만 보고 구입한 책인데, 나중에 읽으려고 자세히 보았더니 정신과 전문의 김병수라는 이름도 있었다. 그제서야 이 책이 무슨 책일까 살펴보게 되었다. 이 책은 김동영이라는 작가가 오랜 세월 우울증으로 힘들어할때 병원에서 진료받았던 기록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한편으로 한 챕터의 글에 정신과 전문의 김병수는 그에 답장이라도 하듯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었다. 김동영이 자신의 마음과 상태에 대한 글을 쓰고 약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감정을 내비치면, 의사 김병수는 김동영의 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답장 형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담아 위로의 글을 건네는 식이다.  

 

  여행에세이 일거라는 내 예상을 깼다. 그의 여행사진이 있을 것이고, 스트레스로 인한 내 헛헛한 마음을 채워줄 여행지에서의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는 내 예상을 깬 것이다. 과연 타인의 병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내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과연 나에게 어떠한 느낌을 줄까 우려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실 그렇잖은가. 우울한 세상,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 읽을 책에서 더 우울함을 느낀다면 아마 당분간 책과 멀어질 수도 있는 일.

 

  공황장애라는 건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연예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인 줄만 알았는데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공황장애를 앓았다는 식의 말을 했다. 주변 사람들을 봐도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우울증이 공황 장애까지 가는 건 아닐까.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다정하고 멀쩡하게 보였는데 사실 우울증을 앓아왔다던가 하는 말을 종종 들었기에 이제 먼 이야기만은 아닌 것도 같다.

 

그래도 나는 글쓰는 일이 좋다. 책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고 책을 쓰고 나면 내가 이 세상에서 그나마 쓸모 있는 인간이 된 것 같아서 나는 멈출 수가 없다. (76페이지)

 

  그에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여행이었고 글 쓰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에게 글 쓰는 일마저 없었다면 그의 삶은 아마 엉망이었을지도 모르는 일. 그리고 그에게는 여행이 있었다. 비록 여행지에서 아파 제대로 병원에 갈수도, 입원할 수도 없었지만 그는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할 때는 오히려 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떠올릴 때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마음일까?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고 자신의 시각에 맞추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자기 마음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죠. 내 생각과 감정이 끼어들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됩니다. (190페이지)

 

  책에서는 여행작가 김동영의 아픈 역사가 나오는데 한 챕터에서는 그의 질병의 역사를 수록했다. 그 부분을 읽는데 분명 아픈 이야기이고 슬픈 이야기 임에도 나는 웃음을 터트릴수 밖에 없었다. 자라오면서 수많은 질병으로 약과 병원에 다니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렇게 아픈 치레를 한 사람을 보고는 마치 소설속 인물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질병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평생 입원해 본적도 없고, 수술을 한 적이 없는 나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아픈 사람도 있구나. 평생 약을 달고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약을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면. 너무나 우울할 것만 같은 그의 삶.

 

  그래서 그는 그렇게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약이 없으면 안되는 사람이기에 여행지에서의 하루하루는 어쩌면 그에게 선물과도 같지 않았을까.

 

나에게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게 해준다. 대부분 나는 괴롭고 고독하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그 와중에 입안에 침이 고이는 달콤함을 느낀다. 그 찰나의 순간 때문에 나는 글쓰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그리고 믿는다. 그 일이 날 특별하게 만들고 지금보다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는 것을. (265페이지)

 

 

  190페이지에 인용된 글에서처럼 김병수 정신과 전문의의 말처럼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려고 할때 나의 마음을 비추어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가끔씩 느끼는 우울함이 김동영이 습관처럼 느끼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며 우리의 마음을 다스린다. 아직은 내가 아프지 않구나. 아프다고 말하면 안되겠구나. 나는 건강한 편이구나. 내가 건강한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겠구나. 이래서 '당신이라는 안정제'가 필요한 것이구나!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줄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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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동품 상점
찰스 디킨스 지음, 김미란 옮김 / B612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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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이렇게 힘든 것일수 밖에 없는 것일까.

 

  한 소녀가 있었다. 넬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였다. 넬은 할아버지와 단둘이 오래된 골동품 상점에서 머물고 있는 아이였다. 어쩐 일인지 할아버지는 밤이면 골동품 상점에 넬을 혼자 두고서 넬이 안에서 문을 걸어잠그는 소리를 듣고서는 상점을 뒤로하고 나갔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손녀라고하고서는 왜 넬을 상점에 혼자 두는 것일까. 누군가 들어오면 어쩌려고 어린 소녀 혼자 상점에 두는 것일까. 할아버지는 도대체 어디를 가는 것일까. 넬이 할아버지의 진짜 손녀가 맞는 것일까.

 

  여러 의문에 들게 한 할아버지와 넬의 관계였다. 진짜 할아버지의 친손녀가 맞는 것일까라는 나의 의문에 답이라도 하듯 할아버지는 넬을 무척이나 아끼며 넬이 조만간 큰 부자가 되어 부족함 없이 살거라고 하는 말을 했다. 이어 넬의 오빠라는 프레드가 나타났다. 할아버지에게 넬은 친손녀딸이 맞는 것이다. 그렇게 넬을 위하고 사랑한다는 할아버지는 밤마다 넬을 홀로 두고 어디에 가는 것일까. 더군다나 난쟁이같은 퀼프로 부터 돈을 빌려가면서까지 말이다. 그것도 자주 돈을 빌렸다.

 

  할아버지는 넬의 미래를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퀼프라는 악당은 할아버지에게로 넬에게로 소리없이 다가오는데 말이다. 그래도 낼에게는 착한 키트라는 소년이 있었다. 넬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소년 말이다.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라고 할 만 했다. 퀼프는 할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오래된 골동품 상점을 한순간에 먹어치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앓아 누운후 자신의 본심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의 본심을 눈치 챈 넬은 할아버지를 설득해 런던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가진 돈도 없이 그들은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그들이 하는 여정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지 않을까. 그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우려와는 달리 넬과 할아버지의 여행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이용하여 돈을 벌려는 사람들도 있었던데 반해 그들을 위해 친절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혹시나 친절을 가장하여 넬과 할아버지를 궁지에 빠뜨리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했다. 그들에게서 넬과 할아버지는 무사할 수 있을까. 퀼프는 그들을 뒤쫓지나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가 자신이 하는 일과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에 비춰 들려준 단호한 교훈들을 결코 자기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인생무상에 대해 누누이 얘기하면서도 자신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런 생각을 하며 교회지기의 솜씨에 놀라움과 경의를 표하고 넬은 그곳을 나왔다. 하지만 생각이 깊고 현명했던 넬은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며 교회지기처럼 내년 여름을 계획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유형이라고 결론 내렸다. (526페이지)

 

  요즘 소설에도 종종 나타나는 것이지만, 왜 예전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부모를 여읜 고아 소년소녀들이 많은 것인지 모르겠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나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도 나타났던 고아 소년들의 모습들을 보라. 『오래된 골동품 상점』의 넬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넬에게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것일뿐. 넬이 조금더 현명했다면 악당 퀼프에 맞서 골동품 상점을 지킬수 있지 않았을까. 빌린 돈이 얼마이기에 아무도 모르게, 단 하나뿐인 친구인 키트에게도 말하지 않고 떠난 것일까. 여러 의문이 들게 했다. 

 

  넬과 할아버지가 돈도 없이 목적지 없는 여행을 계속 하고 있을때 나타난 독신 남자는 과연 누구일까. 누구길래 넬과 할아버지를 찾는 것일까. 넬과 할아버지가 떠난 후 키트는 친절한 노인의 마부로 지내게 되었고, 골동품 상점에서 일했던 키트를 독신 남자가 찾아 왔다. 이제 넬과 할아버지를 찾는 일만 남았다. 돈이 많은 남자이니까 충분히 금방 찾아낼 것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곧 『소공녀』에서처럼 친절한 친척이나 아빠의 친구분이 나타나 넬을 구해줄 거라는 믿음 같은거 말이다. 나의 이런 바람과 달리 찰스 디킨스의 소설은 동화처럼 결말을 내지 않았다. 이런게 우리 삶일 지도 모르는 걸. 우리가 꾸는 꿈처럼 우리 앞에 다가올 일들은 우리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살아가는 건 곧 현실이라는 걸 인식시켜 주었다.

 

  아주 단순한 스토리다. 넬과 할아버지가 퀼프를 뒤로하고 런던을 떠났고, 여행중 그들이 만난 사람들, 이어 넬과 할아버지를 찾는 낯선 독신 남자, 이를 도와 넬을 찾으려하는 키트, 이들을 방해하는 퀼프 일행들의 이야기. 이런데도 꽤 두꺼운 내용의 책이었다. 어쩌면 우리 삶은 넬이 여행중에 만났던 사람들처럼 나에게 친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 친절을 가장해 이용하려 드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에 대처하는 방법은 자신의 현명한 판단뿐이라는 것이다. 넬은 아주 어린 소녀였지만 이렇듯 여행을 하며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되었다. 친절함을 내세우는 사람의 본심을 파악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넬을 상상해본다. 슬플때마다 혼자서 생각에 잠겼던 넬의 삶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슬픔이 차오른다. 할아버지의 목을 껴안고 잠들었던 넬의 모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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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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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보면 어느 작가의 작품에 꽂히게 되고 그의 신작이 나올때마다 관심있게 살펴보고 책 또한 찾아 읽게 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작가라고 일컬을 수 있는 이가 장강명 작가일 것이다. 신작도 많이 나오고, 나오는 작품마다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작가다. 그의 책을 읽어보지 않고서는 요즘 열정적인 독자라 할수 없을지도 모른다. 잘 몰랐던 작가의 책을 최근에 부쩍 읽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의 작품을 몇 권 읽었고, 작품을 읽을때마다 '이 작가 느낌 괜찮네!'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이번 작품 『댓글부대』 또한 신문에서 보자마자 이 작품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장강명 작가의 이력을 보자면 그는 동아일보 기자였다. 기자 출신의 작가여서일까. 읽어본 작품들이 사회성 짙은 내용의 글이었다. 요즘 세태를 파악할 수 있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단면과 이면을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날카로운 필치로 유려하고도 간결한 문장을 사용해 한 편의 르뽀를 보는 듯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기도 했다.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의 불법선거개입 사건의 일환으로 진보적인 인터넷 사이트에 악의적인 댓글을 달았던 사건을 모티프로 한 소설이다. 소설 속 이야기들은 인터넷을 하는 사람이라면 조금씩은 눈치채지 않았을까. 일베 등이 장난삼아 악의적인 댓글을 다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처럼 하나의 업종으로 수천만원을 받고 기획하여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가 너무 무지했었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개봉하면 배우나 감독 외에 영화에 대해 잘 모를때 다른 사람들의 영화 후기를 한번씩 볼때가 있는데, '댓글 알바 그만하라'는 댓글은 읽은 적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알바비 정도의 돈을 받고 할 것이라는 생각했었지만 이런 식의 댓글부대는 생각하지 못했다. 왠지 씁쓸하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처럼 어떤 한 사람을 사회에서 매장시키기도, 어떤 단체 등을 매장시킬수도 있다는 것이니까. 새로운 마녀사냥이지 않는가.  

 

 

  마녀사냥이라는 것이 무엇이던가. 죄 없는 사람을 여러 사람이 한데 모아 새로운 공동체의 희생을 만드는 것이다. 인터넷 상의 문제는 이러한 마녀사냥식 테러를 가하지만 정작 그렇게 만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는 댓글 하나가 수천만 명이 모이면 테러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댓글 테러를 가하고 있으면서도 그사람들이 받을 상처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에서처럼 댓글 테러로 돈까지 버는 신종 직업군이 생겼으니.

 

  소설은 실명의 기업과 실명의 기관을 거론하며 그들의 음모를 가차없이 내비쳤다. 사건 하나를 던져주고 그에 대해 인터뷰하고 회상하는 방식의 소설은 다른 소설에서도 보았지만, 인터뷰를 역이용해 기사를 내게 만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추리소설을 보는 것처럼 짜릿하기도, 안타깝기도 했다. 그들이 하는 공작에 여지없이 당해버리지 않았는가. 누군가를 한순간에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작정하고 공작하려들면 당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소설의 재미와는 다르게 우리가 우려하는 일이기도 해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지금도 여전히 어떤 이들은 소설속의 댓글부대인 삼궁이나 찻탓갓, 01査10처럼 누군가에게 악성 댓글을 퍼붓고 있을수도 있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카페 하나를 초토화시킬수도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 그들은 '두려워하는 걸 건드려야 한다' 고 했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 더 나아가 주변의 사람들이 이렇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두렵다. 소설 속 인물들이 하는 행동들에 분노하면서도 두려움을 느끼는 건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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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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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스스로를 가르켜 활자중독이라고 일컫는데, 이처럼 나같은 사람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오래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에서야 활자중독이라고 표현하지만 다른 표현으로 보자면 책벌레도 맞는 말이다. 하루에 조금이라도 짬이 날때면 책을 펴고,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생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 또한 다른 이들로부터 책벌레라는 말을 듣고 싶기는 하다. 책벌레라는 게 조그만 알갱이처럼 생긴 벌레가 아니던가. 오래된 책장에서 책을 꺼내어 펴보면 조그만 알갱이같은 책벌레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 속의 글자들을 파먹고 사는 벌레, 나도 한낱 미물인 그 책벌레라 일컬어지고 싶다.  

 

  과거 조선시대의 책벌레라고 하면 이덕무를 빼놓을 수 없다. 이덕무라면 온기 하나 없는 차가운 냉골방에서 책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인물이다. 옆집에 살았던 노인은 혹시나 얼어죽지나 않았는지 걱정하고 자신의 마당을 쓸때 이덕무의 마당까지 쓸고 신발까지 눈을 털어 가지런히 놓아주곤 했다는 일화를 보고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방에서 책을 읽는 목소리. 이웃집에서건 이덕무 형제들의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책읽는 소리에 귀기울이며 흐뭇해 했을 것도 같다.  

 

  장서인이라고 할것 까지는 없지만, 나도 한때 책을 구입하면 내 이름이 적혀진 책도장을 꼭꼭 찍고는 했었다. 이 좋은 책이 내 책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아니 나 혼자서라도 내 책이라는 인증서 같은 것이었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책에 대한 사랑때문에 이처럼 장서인을 찍는 경우가 많다. 오래전 우리 고서 속에서도 그랬었다는 걸 이 책으로 인해 알 수 있었다. 저자가 하버드 대학교 엔칭도서관에서 1년 동안 머물때 한, 중, 일의 책자들을 살폈는데, 각 나라마다 장서인을 찍는 경우가 조금씩 달랐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경우, 책을 자신이 가졌을때는 자신의 이름이 있는 장서인을 찍었다가 팔때는 혹시라도 자신의 가문에 누가 될까 자신의 장서인을 도려내고 팔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책을 구입했을때 다른 사람의 이름을 파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장서인을 찍었다는 것. 일본의 경우는 전에 찍혀져있던 책에 대한 인연의 말소라는 글을 새겨넣었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큰 나라답게 이전 주인의 장서인에 손을 대는 법이 없이, 다른 사람의 장서인 옆에 자신의 장서인을 찍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고서에서도 장서인에서 책을 소유한 사람들의 이름이 길게 늘여져 있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학자들이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덕무를 꼽는다는 것이다. 가난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책을 사랑했던 이덕무이기에 그런 것 같다. 가난한 이덕무는 지인들에게 책을 빌려 보았는데,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책 주인에게 책을 베껴써주며 읽었다고도 한다. 책을 베껴쓸때는 책 주인에게 줄 것과 자신의 책을 포함해 두 권의 책을 베껴썼다. 지금의 이덕무를 우러른 것은 아마도 오랜 세월 베껴 써주다가 식견이 풍부해져서 학문의 안목이 열린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베껴 쓰기가 요즘엔 필사로 대신해서 좋은 시詩나 소설을 베껴쓰는 게 유행이기도 했다. 짧은 단편을 필사해본 적이 있었다. 그저 눈으로 책을 읽는 것과 필사하며 책을 읽는 것은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일단 필사를 하게 되면 눈으로는 책을 읽고, 입으로 말하듯 읽으며, 손으로는 글씨를 쓰는 세가지 읽기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가지 읽기법으로 하다보면 그 책에 대한 느낌은 어마어마하다. 깊이 있는 책읽기가 되는 것이다.

 

  또 한가지의 책읽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 중의 하나가 메모의 역할이다. 저자는 『옹기』라는 책과 『독기』라는 책을 소개하며 메모법에 대해 말한다. 경전에 대한 메모와 역사에 대한 메모를 달리해 메모를 옹기에 담았고, 메모가 쌓여 순서를 정해 묶으면 가제본 형태의 책이 된다는 말이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도 메모를 하지만, 보통의 우리같이 책을 쓰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 메모지를 버리거나 책 속에 꽂아 두거나 한다. 책을 다 읽고 난뒤에는 메모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수가 있다. 다산의 위대한 학문 뒤에는 체질화된 다산의 메모의 습관에 있었다고 했다. 수많은 메모가 그의 학문의 자산이었던 셈이다.

 

  이웃분 중의 한 분이 독서를 할때 동시다발적으로 몇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 방법이 참 부러웠다. 집중력이 좋아지는 방법으로 동시다발적 독서가 좋다는 말을 들었으나 집중력이 짧아 시도를 해보았지만 중도에 포기한 적이 있었다. 홍석주의 동시다발적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조금씩 습관처럼 반복하는 책 읽기는 뜻밖의 효과를 거둘수 있다는 말도 했다. 다시 한번 실천해봐야겠다.

 

  마지막으로 이덕무의 구서재 라는 것에 대해 말하여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구서재라는 것은 책과 관련된 아홉 가지 활동이 이루어지는 집이라는 뜻이다. 

 

첫째, 독서. 입으로 읽고, 눈으로 읽고, 손으로 읽었다.

둘째, 간서. 눈으로 읽는 것.

셋째, 초서. 책의 중요한 부분을 베껴가며 손으로 읽는 것.

넷째, 교서.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아 교정해가며 읽는 것.

다섯째, 평서. 책의 인상적인 부분이나 책 전체에 대한 감상과 평을 남기는 일.

여섯째, 저서. 남의 책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제 생각을 펼쳐보이고 싶어지는 것.

일곱째, 장서. 책을 보관하는 것.

여덟째, 차서. 남에게 책을 빌리는 일.

아홉째, 포서. 책에 햇볕에 쬐어 말리는 일.

 

  이덕무의 구서재를 실천한다면 완전한 책읽기가 될 것이다. 이처럼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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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12-0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평 써야하는데~~~

정완기 2016-01-28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서인에 관한 각국의 세태를 알게 해주셨군요. 헌책만이 장서인을 발견할 수 있어 아쉽지요. 홍대입구 서교동 길가에서 헌책을 구입했는데 유명인사의 서명이 적혀있더군요. 혹 도난품이 아니지 의심됐지만 그냥 구입했죠.중년에 장서인을 새겼는데 그것도 게을러져 장서인을 안찍게 되더군요. 전서로 새겨진 장서인이 빨간도장에 찍힌 흔적이 매력적이죠. 첫 댓글에 말이 많았군요,.

비로그인 2016-02-09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읽기에 게을렀는데, 추운 골방에서 항상 책을 읽었다는 학자 이덕무 얘기를 듣고 보니 부끄러워지네요.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소설이라도 부지런히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좋은 문장을 많이 읽다보면 좋은 시들이 써지겠지요. 다독,다작,다상량이 좋은 글과 시를 쓰는데 있어서 하나의 시금석이거든요. 책을 읽으면 메모를 해 두었다가 서평을 남겨야 겠습니다. 하나 하나 쌓이다 보면 필력이 늘어나 있겠지요. 건필하세요 ^^
 
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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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종이약국'일까. 처음엔 심리 에세이인 줄로만 알았다. 사랑이야기였다. 그중에서도 사랑의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문학의 약제사. 이런 말 들어보셨나? 사랑의 상처에 책을 처방해준다.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을 꿰뚫어보고 듣는 사람이 있다. 페르뒤 씨다. 그는 파리의 센 강 위에 배를 띄워놓고 수상 서점을 운영한다.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책을 처방한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책을 처방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 꼭 맞는 책을 처방한다. 맨처음 그 책을 거부했던 사람도 읽고나서는 다른 책도 소개해 달라고도 한다.

 

  우울할 때나 슬플때 연애 소설을 읽으며 함께 웃고 울며 그 감정에서 벗어나오곤 하는데 이처럼 페르뒤 씨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책을 골라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왠지 굉장히 멋진 일을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종이약국' 이라는 표현도 마음에 들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상처 치유라는게 거창한 것은 없다. 소소한 일상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사랑의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치유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걸 책이나 실생활에서 알게 되었다.

 

  수상서점을 운영하는 페르뒤 씨는 어떻게 이런 종이약국을 열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의 괴로움에 처방을 내리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아파트에서 최소한의 가구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종이로 된 약을 처방하지만 정작 페르뒤 씨는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을까. 이쯤에서 궁금할 수 밖에 없다.

 

  페르뒤 씨의 아파트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고 방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 중 20년 동안 문을 닫아놓은 방이 있었다. 라벤다라는 이름이 붙여진 방. 사랑의 상처를 안고 그 방을 봉인해놓은 곳이었다. 갑작스럽게 남편이 떠나고 난뒤 괴로워하는 카트린에게 오랫동안 숨겨놓았던 가구 하나를 건네주고 그녀에게서 편지를 발견했다는 말을 듣는다. 그로부터 그는 20년 전의 연인 마농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 그녀에게 결혼할 약혼자가 있음에도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것.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면서 남긴 편지를 20년 동안이나 뜯어보지 않았다는 것. 그는 마농이 남긴 편지를 읽고 충격에 빠진다. 마농을 잃었다는, 그녀가 자신을 두고 다른 남자에게로 떠났다는 것에 대한 상처를 여태 봉인해두고 있었는데 20년만에야 그 상처의 봉인이 다시 풀린 것이다.

 

 

 

책은 의사인 동시에 약이기도 해요.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죠. 손님이 안고 있는 고통에 맞는 적절한 소설을 소개하는 것, 바로 내가 책을 파는 방식입니다. (39페이지)

 

 

  그는 수상 서점의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것이었던 마농을 향해 떠난 것이다. 배가 움직이고 있을때 한 아파트에 사는 신예 작가 막스 조당이 배에 탔고, 그들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들 뻘인 막스 조당은 더이상 글을 쓸수 없어 괴롭다고 했고, 페르뒤 씨는 5년간 사랑했고, 20년간 봉인해두었던 마농을 찾아 떠났다. 그들이 가는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들 사랑의 상처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었다. 하룻밤 사랑했던 여자를 찾아 평생을 헤매고 있는 쿠에노를 배에 태웠고, 페르뒤 씨가 마농을 잃은 상처에 괴로워할때 힘이 되어 주었던 '남녁의 빛'의 작가 사나리 등을 배에 태웠다.

 

 

독서는 끝없는 여행이다. 기나긴, 그야말로 영원한 여행. 그 여행길에서 사람들은 더 온유해지고 더 많이 사랑하고 타인에게 더 친근해진다. 조당은 그 여행을  시작했다. 이제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세상과 사물과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걸 가슴속에 품게 될 것이다. (172페이지)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중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인해 치유받는 것. 사랑 또한 마찬가지라고 본다. 죽도록 사랑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을 거부하지 않는 것이다.  

 

  남프랑스 프로방스의 풍경이 마치 영화처럼 그려졌다. 치유와 로맨스가 있는 '종이약국'이라는 수상 서점에 한번 타보았으면 싶다. 온통 사랑에 빠져있거나 사랑의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머물다 갈 수 있는 곳. 페르뒤 씨가 나에게 골라주는 책은 어떤 책일까 못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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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1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궁금해요.^^아휴..이 책욕심은 끝이 없다죠!^^;;;
저녁시간 물리고 찾아드는 밤 ㅡ내내 편안하시길.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