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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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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삶이란 참 알 수 없다. 어디로 흐를지, 어떤식으로 흘러갈지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다. 사람의 삶이 이러니 어떻게 살아가야겠다고 해본들 운명 앞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나 같은 경우는 많은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편인데 자기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책 속에서 나는 자주 느낀다. 물론 주변에서도 굉장한 열정을 가지고 임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100년의 아프리카는 어땠을까. 아프리카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겠지만, 나는 헤닝 만켈의 책에서 아프리카의 아픔과 역사에 대해 조금쯤은 알게 되었다. 작가인 헤닝 만켈이 아프리카의 고통을 세계에 알리려 작품을 썼다고 했는데 이렇듯 내가 아프리카의 고통을 알게 되었으니 어느 정도는 성공한 걸까.

 

  2002년 베이라의 아프리카 호텔. 과거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땔감으로 쓰기 위해 마룻바닥의 판자를 떼어냈고 그 속에 잘 모르는 글씨로 되어 있는 노트 한 권이 발견된다. 한나 룬드마르크라는 이름으로 1905년이라는 년도가 쓰여있고 한나의 일기가 쓰여져 있었다. 과거의 아프리카 속으로, 과거의 한나의 삶 속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추위가 심했던 스웨덴의 북부. 며칠뒤면 열여덟 살이 되는 한나는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내키지 않는 여행을 떠났다. 외삼촌을 찾았지만 이미 외삼촌 가족은 떠나고 없어 보살핌을 받을 수 없었다. 한나를 발렌가로 이끌었던 포르스만의 집에서 베르타와 함께 집안일을 거들다가 선주인 포르스만의 요구로 선상 요리사가 되어 호주로 가는 배를 탔다. 그곳에서 3등 항해사인 룬드마르크를 만나 결혼식을 올렸지만 뭍에 잠깐 내렸던 남편은 열병으로 죽고 만다. 배에서 룬드마르크가 계속 머무는 듯한 느낌에 한나는 아무도 모르게 배를 떠나고 지금의 아프리카 모잠비크인 로우렌소 마르케스의 한 호텔에 묵는다. 호텔이라는 간판을 달았지만 흑인 매음굴이었던 그곳의 주인 세뇨르 바즈와 결혼하고 얼마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후 한나는 갑자기 부자 미망인이 되어 그곳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대체 돌아갈 대상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 삶은 꿈도 꾸지 못했던 방향으로 변해 버렸지않은가? (243페이지)

 

  흑인들만 가득한 그곳에서의 삶이 한나는 두려웠다. 그곳을 떠나려하지만, 목양견을 파는 피멘타의 흑인 아내 이사벨의 살인을 목격하고 그 상황을 이해했던 한나는 이사벨을 구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사벨을 석방하고자 노력을 한다. 그런 한나를 백인들은 싫어했고, 흑인들은 그런 그녀를 그저 침묵으로만 대할 뿐이었다. 한나가 견딜수 없었던게 그들의 침묵이었다. 침묵 속의 소리없는 아우성. 그들의 소리가 침묵의 소리로 크게 다가왔기 때문에 그들의 침묵이 두려웠다.

 

 

 

 

 

 

 

한나는 오직 백인들만이 웃는, 그것도 때로 과장되게 크게 웃는 슬픈 대륙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보통 금세 두려움으로 번질 수 있는 염려를 위장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한나는 또한 알고 있었다. 암흑에 대한, 암흑 속에 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260페이지)

 

  흑인들의 아프리카에 발을 들여놓은 백인들 또한 흑인들을 두려워했다. 비교적 적은 숫자의 백인들에게 흑인들이 해를 가하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흑인들은 암흑 속에서 침묵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달랬다.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고통받았고 백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흑인들은 백인들을 증오했다. 백인 남편을 죽인 이사벨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재판도 받지 않고 지하의 감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이 불가해한 가난의 한가운데서 나는 풍요의 섬들을 볼 수 있다. 존재할 수 없었을 행복, 살아남을 수 없었을 온기. 이것을 통해 온갖 부와 안락에 파묻혀 사는 백인들의 또 다른 종류의 가난을 나는 볼 수가 있다. (454페이지)

 

 

  한나는 아시벨의 구명 운동을 하면서 백인들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 잔인함을 보았고, 그들에게서 흑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런 그녀를 흑인들은 자신들의 주 고객인 백인들이 두려워 한나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한나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침묵의 소리로 응원하지 않았을까. 한나가 흑인을 사람으로 대하며 백인들이 하지 않던 행동으로 흑인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그곳을 떠나고자 매음굴을 매도할때는 그 남은 돈들이 다 흑인들에게 돌아가고자 나눠주었다. 여타의 백인들이 흑인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던데 반해 한나는 그들을 위하며 진정한 자유를 느꼈다. 어찌 한나도 두렵지 않았을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우리의 진정한 삶은 무엇인가. 그토록 두려웠던 자신의 삶에 대해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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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의 달인 기념품 도착.
이웃분들의 사진이 올라오기에 나에게는 어떤 기념품이 올까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나에게도 도착.

달력도
머그컵도
다이어리도
다 마음에 든 기념품이었다.
역시, 알라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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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11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eeze 님 도 도착했네요.
블랙블랙한 고 머그에 시선 똭 ㅡㅎㅎㅎ
역시 블랙이 예쁘네...하며..
축하 놓고 가요!^^
올 한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

Breeze 2016-01-12 11:07   좋아요 1 | URL
네에. 감사합니다.
올 한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1004ajo 2016-01-11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Breeze 2016-01-12 11:0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2016-01-11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eeze 2016-01-12 11:08   좋아요 1 | URL
알라딘 머그컵 이쁘긴 하던디요? ㅋㅋ
알라딘 작은책방 달력 이쁘더라고요.
삼실에 갖다놨어요. ^^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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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할 것처럼 살아간다. 나에게 내일은 늘 다가오는 것처럼. 늘 주어진 것처럼 오늘을 살아간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나의 어제는 그때 뿐이었다. 나의 어제는 더이상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 나의 오늘은 어떨까. 나의 오늘도 마찬가지. 오늘 주어진 순간이 내일 혹은 모레 다시 오지 않는다. 나의 하루는 그저 그 하루에 머물뿐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훗날에 가서야 느껴지는 게 그 때의 하루하루, 내가 살아왔던 순간순간이 굉장히 아름다운 나날이었음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작가의 책에서처럼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는 나에게 작별의 나날이다. 작별의 인사를 해야하는 나의 모든 하루. 나의 모든 하루를 작별의 나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오늘을 더 뜻깊게,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지내게 될까. 어쩌면 예전처럼 다시 그렇게 무심하게 보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서야 후회를 하게 되는 것. 나의 하루를 무심히 보내버렸구나. 나의 소중한 시간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보내버렸구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를 깨닫게 하는 책을 만났다. 프랑스 작가인 알랭 레몽의 자전적 소설인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이라는 책이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어린시절을 이야기하는데, 유년 시절을 추억하게 되며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애틋함, 그리움을 엿볼 수 있다. 유년 시절에 머물렀던 시골집에 대한 풍경, 형제가 하나씩 늘어갈때마다 집을 옮겨갔던 곳의 추억. 유년 시절의 추억은 우리를 과거로 흘러가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 부모님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가족들이 함께 머물렀던 집을 생각할때 그때가 굉장히 좋았던 시절이며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는 걸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우리가 머물렀던 집에 대한 애틋함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살았던 곳을 지날때의 감정이라니. 우리가 머물렀던 흔적이 사라지고 없겠지만 아련한 눈빛으로 내가 살았던 집을 바라보게 된다. 남의 집인데도, '우리 집 잘 있나' 하고 창문을 바라보고, 집안의 풍경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아마 작가도 이런 감정이었으리라. 어제저녁, 이브가 트랑에 들렀다가 우리 집 앞을 지나왔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집에 지금은 누가 살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17페이지)로 시작하는 소설. 갑자기 책의 첫 문장을 읽는데 과거 내가 살았던 집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돌아가신지 몇십 년은 된 증조할머니와 살았던 오래된 집. 할머니와 함께 내다보았던 바깥의 풍경들. 유년 시절의 풍경이 마치 그림처럼, 영화속 화면처럼 펼쳐진 것이다. 누군가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 많이 없다고들 하는데 이상하게 나는 네 살 적 기억들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과거의 기억들은 모두 그리움이며 애틋함인 것 같다. 아무리 아픈 기억이 있어도 현재의 우리에게 기억되는 건 모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인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 유년 시절, 청소년 시절, 청년 시절을 거쳐 지금의 시간까지. 우리가 머물렀던 공간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의 삶을 함께 해왔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생각해보면 늘 그리움이다. 

 

  쉰셋의 작가의 나이. 작가가 열다섯 살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나이가 쉰셋이었다. 아버지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아버지를 사랑했던때,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잠시 시간을 보냈던 때를 그리워하며,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도 몇번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그리운 것이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것을, 아버지를 많이 사랑했던 것을 아주 나중에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삶은 이처럼 흐르는 시간처럼 우리의 감정도 흐른다는 것을.

 

나는 종족을 초월하여, 종족의 그토록 강한 유대를 초월하여 나를 찾고 있다. 나는 나를 닮은 삶, 나라면 선택했을 삶을 찾아내고 싶다. (194페이지,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중에서)

 

  오늘 하루 내가 살아가는 시간. 어제 나한테 소홀히 대했다고 해서 서운하지도 말며,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왔던 집의 추억들. 추억의 시간들. 다시는 가지못할 그리운 기억들. 나는 오늘 아침 하루를 시작하는 인사를 건넸지만 내일이면 돌아오질 시간을 시작하고 있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오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싶다. 돌아오지 않은 유년 시절의 추억들과 한 젊은이였던 때의 시간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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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고전 : 동양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김욱동 지음 / 비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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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자연과 환경에 대한 생태를 문학으로 만난다는 취지 아래 김욱동 교수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녹색 고전』을 한국편에 이어 동양편으로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동양 문학에서도 자연을 생각하고 생태에 대해 생각하는 고전 문학을 만날 수 있는 귀한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구의 환경과 생태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연 환경에 대해서 얼마나 노력하느냐 뒤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우리의 자연과 환경에 대해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것 부터 실천할 수 있다. 종이컵을 되도록이면 덜 사용할 것. 물 낭비를 하지 않을 것. 세제 등을 많이 쓰지 않을 것. 아주 작은 미물이라도 함부로 죽이지 말 것.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우리의 후대에까지 물려주려면 지금부터 아끼고 아껴야 한다는 것.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딸아이가 욕실로 씻으러 갈때면 밖에서 말하기를 물을 아껴쓰라는 말을 잔소리처럼 건네게 된다. 우리가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물부족 국가중 한 나라가 아니던가. 우리가 조금씩만 절약해서 쓰다보면 그래도 덜 부족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긴다. 이런 하나까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 환경전도사 김욱동 교수의 『녹색 고전』을 읽는 일이지 않을까. 김욱동 교수는 '문학 생태학'이나 '녹색 문학' 방법론을 도입하여 현대사회의 생태 의식을 일깨우는 교수로도 유명하다.

 

  동양편에서 처음 만날 수 있는 고전은 노자의 「도덕경」을 만날 수 있다.

우주 안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사람은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사람은 땅의 법칙에 따르고

땅은 하늘의 법칙에 따르며

하늘의 도道의 법칙에 따르고

도는 자연의 법칙에 따른다. (16페이지)

 

라는 글이다. 중국의 경제 발전으로 인하여 공장등이 건설되어 유독가스를 배출하다보니 중국의 경제발전 만큼이나 사막화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내뿜는 황사나 미세먼지가 우리나라나 일본 등에 거쳐와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사용하는 모습들이 종종 보인다. 봄에만 있던 황사나 미세먼지가 겨울이 되어도 그치질 않는 것이다. 우주 안의 가장 작은 존재가 인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잠시 얹혀가는 존재일뿐. 노자의 글에서 우주의 작은 일부일 뿐인 인간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구에서 생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만큼 생물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합니다. 생물 다양성이란 동물과 식물과 미생물 종의 다양성을 뜻하는 것 같지만, 좀 더 넓게는 같은 종 안에서도 유전자가 서로 달라서 나타나는 유전자 다양성, 더 나아가 생물들의 터전인 생태계의 다양성까지도 포함합니다. 다른 생물도 매한가지이지만 특히 인간은 다양한 생물, 다양한 유전자, 다양한 생태계의 덕분에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71페이지)  

 

  점점 천연기념물이 되는 동물들이 늘어가고, 식물 또한 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심코 우리가 버렸던 쓰레기, 함부로 채취한 식물등이 이런 것들을 부채질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다양한 유전자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데 너무 자연 환경에 대해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해 볼 일이다.

 

국화를 기르는

그대는

국화의 노예로다. (164페이지, 요사 부손의 하이쿠)

 

  들이나 산에서 야생으로 자라야 할 국화를 집 안으로 들여다가 키우려면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하거늘, 유달리 병충해가 많은 국화를 키우는 일은 옆에서 보살펴야 하므로 국화의 노예라고 표현한 것이다. 오래전에 친정 아버지께서 난을 키우셨다. 좁은 집에 난실을 만들어놓고 혹시가 마를까 죽을까 엄청 보살피시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난을 캐기위해 주말이면 산엘 다니셨고, 멋지다는 돌까지 수집하기도 하셨다. 저자는 말한다. 자연에 있어야 할 돌들을 집안에 들여다 놓는 것은 인위적인 행동이라고 말이다. 자연 그대로 두고 감상해야 하는데 집안에 두면 돌로서의 존재와 기능을 상실하며 생명을 잃는 셈이라고 말이다. 자연속에 그대로 있으므로인해 더한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말이었다.

 

미워한다고 소중한 생명에 대하여

폭력을 쓰거나 괴롭히지 말며 좋아한다고 너무 집착하여 

곁에 두고자 애쓰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기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증오와 원망이 생기나니

사랑과 미움을 다 놓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14페이지, 「숫타니파타」) 

 

  초기 불교 경전을 대표하는 「숫타니파타」의 한 대목이다. 공지영 작가가 위 대목 중에 제목으로 쓰이기도 해서 마지막 문장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인간에게 미워한다고 소중한 생명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괴롭히는 일은 옳지 않다고 가르친다. 최근 동물 학대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동물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도 많지만 동물에게 학대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동물도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좋을 때는 데리고 있다가 병이 들면 버리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버려진 고양이나 개가 많다는 것. 그래서 예전에는 애완동물이라고 불렸던 말을 이제는 우리 인간에게 친구와 같은 사이라 하여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무심코 사용했던 애완동물이라는 말보다는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가족과 같은, 친구와 같은 반려 동물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도 다시 알게 되었다.

 

  어디 동물들 뿐일까.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들은 동물들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 바람등.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가 사용할때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 고전문학에 이어 동양 고전문학에 깃든 생태학에 대해 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책에서처럼 종이 한 장 쓰는 것에도 자연과 환경을 생각해야 할 일이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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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하는 여자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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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적 내가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바느질하는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말이었다. 바느질하는 여자는 고생을 사서 하며 평생 바느질을 한다는 이야기. 마치 굴레처럼 따라다니던 말이었다. 그래서일까.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바느질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었다고 기억한다. 바느질이라는 게 하루종일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놀려야 하는 일. 어깨는 굳어가고 고개도 가누기 힘들고 손가락 또한 굳어갈지도 모르는 일.

 

  유난히 손재주가 없는 나는 중학교때 배우는 가사 시간이 제일 재미없었다.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고생했고 뜨개질을 배울때도 겨우 목도리 하나만 떴을 뿐이었다. 지금에는 어떤가. 바느질한다는 게 고생은 되어보여도 고급 기술에 속한다. 바느질 하는 사람이 드물기도 하겠지만 공장에서 수백장씩 나오는 옷보다는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가는 정성에 어디 비할까.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은 손바느질로 만든 옷을 구입해서 입을 수도 없을 정도로 수공비가 비싸고 고가의 상품이 되었다.

 

  바느질하는 여자라. 제목에서부터 여자의 인고의 세월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평생 바느질을 해오는 동안 얼마나 힘든 삶을 살까. 바느질을 하며 딸을 키우는 주인공의 삶은 얼마나 버거울까. 서쪽방에서 나오지 않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한 여자의 삶이 오롯이 살아 숨쉬는 소설이었다. 『바느질하는 여자』는. 그간 작가의 작품을 몇 권 읽어오며 작가를 어느 정도 느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작품에서 나는 김숨 작가의 변화를 읽었다. 한 여자의 삶을 이야기하며 작가가 무언가에서 탈피했다는 느낌. 글도 달라졌다는 느낌이었다.

 

  여자의 삶은 숭고한 것 같다. 평생 바느질을 해오는 어머니 수덕을 바라보는 금택. 그리고 화순은 어머니에게서 버려질까 두려워 서로 경쟁하듯이 엄마의 사랑을 갈망한다. 어머니는 두 딸들이 그러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우물집에서 바느질하는 여자인 엄마는 원래 복래한복집 한 귀퉁이에서 누비 바느질을 했었다. 부령할매의 수의집에서 기거하고 있던 금택은 엄마와 함께 기거하게 됐고 이어 두살때 버려졌던 화순을 데리고 이곳 우물집으로 오게 되었다. 주로 금택의 시선으로 바느질하는 어머니를 바라보게 된다. 한복집 골목에서 기거했던 이들에게 바느질하는 여자는 수두룩했다. 바느질을 잘했지만 옷을 짓지 못하는 여자. 평생 삯바느질을 하다 한복집을 낸 사람. 시절이 그랬을까. 바느질하는 여자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모두 한두가지씩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누비 바느질을 하는 어머니의 곁에서 오래 있어서인지 금택은 바느질하는 여자들의 과거 이야기를 많이 주워들었다. 어머니에게서 바늘을 받은 금택과 화순. 금택은 어머니의 바늘을 잃어버릴까봐 늘 옷 속에 품고 있다가 바늘에 찔려 피가 흘렀다. 그에 비해 화순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바늘을 아무데나 놔두고 금택에게 바늘이 어디있는지를 물었다. 자신이 어머니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금택은 늘 불안했다. 어머니에게서 버려질까봐 불안했고, 자신이 어머니의 친딸이었으면 했다. 

 

버스에서 내려 우물집으로 걸어 올라가는 금택의 시야에, 검은 무명실과 흰 무명실이 수십 가닥 풀어지고 엉키면서 허공으로 오르는 광경이 들어왔다. 풀어지고 엉키다 허무하게 사라져버리는 무명실들이 한낱 연기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녀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327페이지)

 

 

 

어머니처럼 되고자 하는 금택의 욕망은 스스로 자랐다. 죽순처럼 무섭게 올라오는 욕망을 그녀는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그것이 불온한 욕망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딸들인 자신과 화순에게 누비 바늘을 건네던 날을 금택은 똑똑히 기억했다. 그녀는 어머니가 단순히 누비 바늘이라는 물건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건넨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어머니는 그러나 정작 딸들에게 누비 바느질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281페이지)

 

  결국 모든 딸들은 엄마의 운명을 그대로 닮아가는 것일까. 어머니가 금택과 화순에게 누비 바느질을 가르치지 않았지만 딸들인 금택과 화순은 누비 바느질을 했다. 어머니와 누비 바느질에서 벗어나고자 대학의 의상학과를 갔던 화순도 어머니의 누비 바느질과 자신과 경쟁하는 금택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결국엔 누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누비 바느질을 배우고 싶었던 금택 또한 어머니의 곁을 지켰지만 어머니 모르게 자기 방에서만 누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화순에게 내주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곁을 지키는게 금택 자신이고 싶어했다. 

 

  바느질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았지만, 바느질을 업으로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던 듯 하다.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바느질이 자신의 삶을 옥죄고 바느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들의 삶 또한 어머니의 삶을 물려 받았기 때문일까. 어머니의 운명, 이어 자신들의 운명의 굴레에 갇혀 바느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일까. 어머니가 만들었던 누비 저고리, 누비 치마, 누비 마고자, 자신의 모든 마음을 담아 한 땀 한 땀 지었을 바느질.

 

 

  금택의 바늘에 대한 집착은 결국 어머니에 대한 집착이었다. 어머니의 친딸이고 싶은. 그래서 어머니의 곁에서 평생 머물고 싶은. 그럼에도 어머니에게서 머물고 싶었던 것 만큼 어머니에게서 떠나고 싶었던 금택. 화순은 그런 금택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바늘을 찾으려 풀숲을 손으로 헤치던 금택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바늘이 아니라 바늘을 잡은 어머니의 손이라는 것을, 엄지와 검지 사이 지네처럼 징그럽게 달라붙어 있는 흉터가 북두칠성같이 생각될 정도로 경탄드러운 어머니의 손이라는 것을. (449페이지)

 

  바느질하는 여자는 우리의 어머니들의 질곡진 인생을 닮았다. 말없이 누비질만 했던 어머니 수덕의 모습에서 과거 여인들의 삶을 보았다. 어머니의 누비 바느질을 말없이 지켜보는 금택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누비 바느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화순의 방황에서도 우리네 어머니들의 고단한 삶이 보였다. 이렇게도 삶은 견디고 살아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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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0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ㅡ박명수식으로 ..덜덜덜 ~~두유 헤브어 썸띵 투 드링?!~달그락 ㅡㅎㅎㅎ (라디오 두시데이트버전)
음 ~스멜~~!

잘 마셨습니다...크....
김숨의 새 소설을 벌써 취하시다뉘...빠른 Breeze님!^^
속도에서 빵빵한 wifi ~(응?)광대역 을 느꼈다고나...

바느질은 느림의 미학 ㅡ아메리칸 퀼트 ㅡ가 문득 생각나서
그들은 웃도 울고 즐거워 보였는데 ㅡ어째서 우리나라에선
이 바느질은 질곡의 삶이 묻어나는 걸까 ㅡ행복보단 ㅡ묵묵한 인고의 세월만 ㅡ짚어지나 ㅡ하는 안타까움 ㅡ
뭐 ...그랬다는 ...

손재주가 아니 손 끝이 야물면 궂은 일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런 일을 두고 천성이 그냥 두고 못지나가니 ㅡ일을 사서 고생을 해 그런 속설이 생긴건 어른의 옛 지혜들이 참 틀린 말 없다는 게 기막힐 뿐 ㅡ이고...

이전의 김 숨 작품은 어떤 걸 읽으셨는지 모르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국수`를 보자면 그 흐름이 크게 바뀐것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아직까지는 ......같은 선상에
있다고 ㅡ봐져요. 아니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죠.. 여자의 삶 속 그 안으로 진정한 자기를 찾는 방편이라면 김 숨은 이해와 포용의 선택을 택한 건지 모르겠어요. 전투적 의지 아닌 수용의 의미로......
김 숨 답다 랄까...나...
뭐 ,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입니다 .

글을 읽어내시는 깊이 너무 좋습니다. 같은 작가를 좋아해서
길게 떠들었는데 실례가 아녔음 합니다.
사진도 좋아서 제가 좀 까불어 봤어요.^^
좋은 오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
저도 곧 김숨의 바느질을 보겠습니다.
한 땀 한땀 이태리 장인 같은 ..?ㅋㅎ
애정을 놓고 가며 ㅡ

Breeze 2016-01-04 12:54   좋아요 1 | URL
이렇게 장문의 댓글을 단 그장소님께 경의를....^^
김숨 작가님을 좋아해 여러 권의 책을 읽었는데, 이 작품이 가장 좋았어요.
뭐랄까, 다른 작품들보다는 마음을 더 열었다고 할까요.
제가 읽은 김숨 작가의 최고의 작품입니다.
감사합니다. ^^

[그장소] 2016-01-04 13:28   좋아요 0 | URL
얼른 읽어봐야겠네요~^^그정도 라니!^^
기대가 무럭무럭 자라는 중입니다!^^

[그장소] 2016-01-04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라진 김숨 ㅡ저도 느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