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겔만 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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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강도단이라고? 그것도 보행기를 밀고 다니는 여든 살이 다 되는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모여 은행을 턴다고?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더군다나 무슨 일이 생겼을때 대처능력도 뛰어나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인데. 아무리 감옥보다 못한 것 같은 노인 요양소라지만 이들은 과연 은행을 털 수 있을까? 일단 흥미로웠다. 강도단이라고 하면 날렵한 젊은 사람들이나 노련한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지않나. 수많은 영화를 보아도 그 어디에서도 노인들이 은행을 털었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이런 가정하에 소설은 시작되었다.

 

 

  79세의 메르타 할머니는 다이아몬드 노인 요양소에 머물고 있다. 어느 날 TV에서 보니 감옥의 생활이 노인 요양소의 생활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간식도 줄어들고 노인에게 필요한 산책도 어쩌다 가끔 한번씩인데 감옥에서는 하루에 한번 꼬박꼬박 산책을 시켜주고 있었다. 이에 메르타 할머니는 함께 합창단을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꼬드겨 감옥에 들어가기위해 은행을 털 계획을 세운다. 아무리 산책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지 노인 요양소보다 감옥이 낫겠다고 생각하다니.

 

  마침 이 책을 읽고난 후 시어머니 때문에 노인 주간보호소를 방문했다. 시골에서 생활하신 분이라 도시의 생활을 무료하게 느끼시는터라 주간보호소라도 다니시면 낫겠다 싶어 방문한 것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 가보니 아직은 추운 날씨라 그런지 가만히 앉으셔서 계신 모습을 보고 참 안타까웠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건강하실때는 집에 계시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머물고 있었던 곳이라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에 비해 메르타 할머니가 머물고 있는 노인 요양소의 친구분들은 어떤가. 합창을 부르는데 열심이었고, 나름대로 관리인 모르게 북극산 오디주를 마시는등 꽤 즐겁게 살아가고 계셨다. 그런데도 이분들은 열정이 넘치는 분들이었다.

 

  일단 노인 강도단을 이끌게 되는 추리소설 광팬 메르타 할머니가 있고, 발명가로 알려진 '천재', 전직 선원이며 정원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갈퀴', 젊었을때 은행에 근무했던 '안나그레타', 수채화를 그리고 벨기에산 초콜릿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스티나'가 그들이다. 이들은 감옥에 들어가기 위해 범행을 계획하고는 최고급 호텔인 그랜드 호텔에 머물며 박물관에 있는 그림을 먼저 훔치기로 했다. 보행기를 끌고 박물관에 가서 이들은 서로가 역할을 나누어 르누아르와 모네의 그림을 훔치게 된다. 훔친 그림에 수채화 물감으로 콧수염 등을 그려넣어 위장해 호텔 벽에 걸어놓았다. 그림값으로 천만 크로나를 달라고 편지를 보냈고, 천만 크로나 중 오백만 크로나를 폭풍우로 인해 잃어버렸고, 호텔벽에 걸어놓은 그림 또한 잃어버렸다. 노인강도단들은 감옥에 나와서 쓰려고 오백만 크로나를 호텔 통풍구에 줄로 매달아놓고 경찰서에 자수를 하러 간다.

 

 

  사실 노인 강도단들이 완벽하게 그림을 훔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한바탕 해프닝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 나의 이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한듯 노인 강도단들은 박물관에서 완벽하게 그림을 훔쳐낸 것이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발명왕 천재와 노인들이 의지하고 다니는 보행기 하나와 그들의 능청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소설이니까 그렇겠지만 소설 속 경찰들도 참 어수룩하다. 뻔히 보이겠고만 도무지 누가 그림을 훔친건지 제대로 수사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수많은 CC카메라가 있고 그들의 행동이 고스란히 찍혔는데도 말이다. 은행 현금 수송차량을 털 때도 마찬가지. 느린 걸음으로 움직일텐데 그들의 현금수송차량 털이할때 뒤따라가면서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이다. 이래가지고 어디 경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노인 강도단들이 그들보다 한수 위다. 그들이 계획한 것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메르타 할머니와 합창단 친구들이 노인 강도단이 될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펴보았을때 우리들에게 노인 복지 문제를 일깨운다. 복지국가라고 알려진 스웨덴에서도 노인 복지 문제는 역시 어쩔수 없는 것이었을까.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보다 노인 인구가 점점 많아져 우리에게도 노인 문제는 낯설지 않은 주제다. 주변에서도 다들 모이면 부모님 혹은 지인들의 부모님의 치매와 병 그로 인한 요양 병원의 빈번한 방문과 가족간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곧 우리에게도 닥칠 일이라는 것이기에 꽤 무거운 주제일 수 밖에 없는데 소설에서 또한 노인 복지의 문제점들이 보였다.

 

  물론 소설은 꽤 유쾌하게 읽힌다. 비록 보행기에 몸을 의지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거침이 없다. 아무 할 일 없이 멍하게 앉아 텔레비젼을 시청하며 무료하게 앉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일단 그들이 일을 꾸밀때 즐거워하니 인생을 좀더 즐겁게 살 필요가 있다는 것도 느꼈다.

 

인생에서 가장 신기한 게 뭔지 알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아무리 늦었어도 희망을 가져 볼 수 있다는 거야.  (204페이지)

 

  이 문장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누구나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는 없고,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하지만 나이를 먹되 젊게 살 필요가 있다는 것.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바베이도스로 떠나는 이 귀여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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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8
도쿠나가 케이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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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든 배달해준다는 가게가 있다면 나는 무슨 배달을 주문할까. 오래전 이십대 시절의 나처럼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다시 한번 신랑의 사무실에 배달해 달라고 해볼까.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뭔가 설렘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처음 이 책을 받아보았을때 전에 읽었던 오야마 준코의 『하루 100엔 보관가게』의 포맷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하루 100엔만 내면 무슨 물건이든 맡아준다는 설정이었다. 어떤 물건을 맡겼든 비밀을 지켜주고 직접 맡긴 사람이 나타날때까지 보관해주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따스한 감동을 느꼈던 작품이었다. 도쿠나가 케이의 작품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본업은 가타기리 주류점인데 주류점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어 물건을 배달해주게 된 즉 부업을 하게 된 이야기의 설정에 기대감을 안고 읽게 되었다.

 

  프롤로그에서의 시작은 7년후의 자신에게 편지를 배달해달라는 주문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난 처음에 주류점에서 단기 알바를 하게 된 마루카와가 주인공이 아닐까 했다. 그곳의 작은 사장이라 불리는 가타기리와 가게를 보는 후사에와 함께 가게를 이끌어가는게 아닐까 했지만 마루카와는 단기 알바로 끝나고 가타기리가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말이 없고 저혈압이 심해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든 가타기리는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가 하던 주류점을 이어 받았을까. 무언가 생각에 잠기는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묵묵히 주문이 들어온 배달을 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배달해주는 건 한 연예인을 좋아하는 열성팬으로부터 음식물을 직접 배달하는 일에서부터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손자에게 자전거를 배달해주는 등 배달권에 들기만 하면 손님이 원하는 물건은 무엇이든 배달해 주었다.

 

 

 

  소설의 중반쯤 되었을까. '악의'라는 소제목의 챕터에 한 회사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여성 요코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회사의 젊은 과장으로부터 아줌마 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무시하자 스트레스를 이기려 컴퓨터로 물건을 주문하다가 무엇이든 배달한다는 가타기리 주류점의 홈페이지를 보게 되었다. 요코는 주문서에 악의라는 것을 주문하고 주류점을 방문하기에 이른다. 요코는 자신을 무시하는 과장에게 해가 되지 않은 한에서 약간의 곤란함을 겪었으면 했다. 이 챕터에서는 가타기리의 사연도 나오는데, 그는 한 바닷가에 서 있었다. 회사를 다닐적 가장 친한 친구가 된 자신이 가야하지만 부품을 배달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고, 자신의 부탁으로 부품을 배달하러 가던 친구가 사고로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갔으면 그 친구는 죽지 않았을테고 친구가 좋아하던 여자랑 결혼도 했을텐데 하는 자책감이 그는 회사까지 그만두게 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주류점의 부업으로 배달일을 하게 되며 그런 생각들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이후 7년후의 자신에게 배달해달라는 주문해놓았던 모치즈키 아이가 방문했고, 가타기리는 모치즈키 아이를 찾기 위해 수소문하게 된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의 사연들을 배달해 주면서,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기원하면서 벗어나는 건 아닐까. 열세 살의 소녀가 어느새  스무 살이 되었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가타기리는 비로소 자신의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점점 발전하는 도쿠나가 케이를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새로운 작가의 발견이랄까.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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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지음 / 예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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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대방을 마주보는 사랑이 아닌 뒷모습을 사랑한다는 것은 굉장히 마음 아픈 일이다. 앞모습을 마주할 수가 없다. 자신에게 뒷모습을 보인 사람은 또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사랑하고 있으므로. 그럼에도 그의 뒷모습이라도 보지 못하면 너무 아플 것이기에 그 마음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마치 숙명처럼 찾아든 사랑, 나를 향해 뒤돌아보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 마음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 이 소설에 있었다.

 

  원래는 이정인의 이야기로 된 짧은 단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한 권의 장편소설로 탄생한 『애인의 애인에게』는 세 여자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사랑이야기이지만 서로 사랑하는게 아닌 누군가의 뒷모습을 사랑한 짝사랑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소설을 보면서 느꼈다. 한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쩌면 이렇게도 다른지를. 각기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쓴 남자 '조성주'의 인상은 소설 속의 화자의 입장에 따라 달리 보였다. 수영을 바라보는 성주. 다른 여자 마리와 살고 있는 성주의 모습들이.

 

  수영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성주의 시선을 본 정인은 성주가 마리와 살고 있었던 집에, 그들이 이별여행을 떠난 한달 동안 세를 들어와 머물게 되었다. 성주와 마리가 머물었던 공간, 그들의 침대, 그들의 부엌과 거실에 걸려져 있는 성주의 사진들이 걸려있는 공간에서 정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성주가 머물렀던 공간을 이렇게라도 갖고 싶었던 것일까. 얼마나 짝사랑하게 되면 다른 여자와 머물렀던 공간에 들어와 한 달간의 시간동안 머무를 수가 있을까.

 

  성주를 바라보는 세 여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소설의 전체적인 느낌은 쓸쓸함이었다. 뉴욕에서 예술적 성공을 거두고 싶어했던 성주. 뛰어난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가 경제적인 수입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는 포르노그래피를 찍었던 것. 그럼에도 자신은 나무 등 자연속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어했다. 자신의 사진에 대해 유명한 갤러리스트인 마리의 평가를 물어보면 늘 좋다라고만 말했다. 마리는 정작 성주의 작품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시아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오리엔탈리즘. 정작 미국인들은 그런 사진들을 원했으니까. 마리는 성주의 사진들 중 차라리 포르노그래피를 더 찍었으면 했다. 성주만의 시각으로 사진들 속의 여자들의 모습을 부각시켰으면 했다.

 

  아마도 성주 본연의 모습을 바라 볼 수 있었던 사람은 마리 일 것이다. 동거를 시작하고 마리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줄 알면서도 성주와 결혼했다. 마리가 가진 영주권, 마리와 헤어지면 임시 영주권이 없어질 줄 알면서도 한번도 자신에게 간청하지 않았던 성주때문에 슬펐다. 실패한 사랑,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뉴욕에 남기위해 자신을 이용하지 않았던 그 때문에 마리는 슬펐다.

 

 

 

 

  아무리 사랑이란 것이 주는 사랑이 좋다고 해도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오래도록 누군가를 짝사랑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에게 오지 않은 사람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은 결국 그 사람에게 내가 주는 사랑의 깊이만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강하기 때문일수도 있다는 것을. 그가 주는 사랑에 목말라하다가 결국은 지쳐버리고 마는게 사랑일수도 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성주를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다가 지쳐버린 마리의 마음처럼.

 

우리는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각자의 갑옷을 입는다. 누군가에게 그 갑옷은 수없이 많은 전시 목록일 수도, 수없이 써댄 책일 수도, 직함이 다른 여러 개의 명함일 수도 있다. 나는 컴퓨터의 모니터를 껐다. 긴 목록들 사이로 그의 사진들이 그림자처럼 흘러가듯 펼쳐졌다.

내 갑옷은 무엇이었을까. (241페이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임에도 사랑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감정들. 그 감정들과 마주한 사람들의 쓸쓸한 사랑이야기였다. 다만 나를 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이야기는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와는 달랐다. 나는 사랑하지 않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데는 시선은 쓸쓸하지는 않으므로. 

 

인간은 각자의 사랑을 할 뿐이다.

나는 나의 사랑을 한다.

그는 그의 사랑을 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할 뿐, 우리 두 사람이 같은 사랑은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너무나 외로워 내 그림자라도 안고 싶어졌다.  (247페이지)

 

  위 문장에서처럼 모두들 각자의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 그 사랑이 상처가 되든 기쁨이 되든 고통이 되든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때로는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향한, 사랑에 빠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작가는 이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실패한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독백들이 여기, 이 소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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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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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영화를 보고 동명의 원작소설을 읽으며 주제 사라마구를 알게 되었다. 주제 사라마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통렬한 비판을 읽었다. 그때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세계를 어느 정도 인식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아주 오랜만에 구약성서의 재해석이라는 그의 신작을 『카인』을 읽게 되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묵시록의 재해석, 『예수복음』은 신약성서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물론 주제 사라마구만의 시각으로 보는 여호와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작품이기도 하다. 

 

  굳이 성서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카인이라고 하면,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의 첫째 아들이며 양을 치는 자 아벨을 죽인 자라고 알고 있다. 똑같이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도 자신보다는 동생인 아벨을 더 사랑한다고 여긴 카인은 동생을 돌로 쳐 죽이게 되었다. 부모로부터, 여호와로부터 도망친 그가 도망자의 땅 방랑자의 땅인 놋의 땅으로 가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가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여호와는 왜 아벨 만을 사랑하셨을까? 똑같이 제사를 지내도 왜 카인의 제사는 거부하셨던 걸까. 여호와는 카인에게 어떠한 형벌과 의무를 주시려고 했던 걸까.

 

  놋의 땅에서 카인은 이름을 묻는 사람들에게 죄지은 자인 카인의 이름을 뒤로하고 자신이 죽인 동생의 이름 아벨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여호와가 자신의 이마에 내준 표식조차 원래부터 있었던 거라며 카인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거부했다. 여호와께 버림받은 카인은 스스로 거짓된 이름으로 거짓된 삶을 살게 되는 걸까.

 

  여호와에게서 거부당한 카인이 하는 일이라고는 많지 않았다. 카인은 정처없이 걷다가 양 두 마리의 줄을 끌고 가는 노인을 만나며 놋의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농사를 짓던 카인은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진흙을 밟는 일 밖에 없었다. 진흙을 밟는 일을 하다가 그 곳의 주인인 릴리스의 눈에 띄어 주인의 숙소로 들어가게 되었다. 주인의 집에서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일까. 그곳에서 카인은 릴리스의 침대 시중을 드는 이, 주인을 지켜주는 일이었다. 그녀에게 쾌락을 선물하고 그녀에게 아이를 갖게 하는 의무가 주어진 것이다. 릴리스의 남편인 노아가 그런 그에게 질투를 느껴 죽이려하자 카인은 또다시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여행길을 나서며 또 양 두 마리의 끈을 잡고 걸어가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 노인의 형상으로 나타난 여호화가 아니었을까.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말 또한 그 나름의 이유와 원인이 있다. 어떤 말은 마치 대단한 일을 할 운명인 것처럼 엄숙하게, 오만하게, 우리를 부르지만 결국에는 너무 가벼워 풍차의 날개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바람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반면 평범하고 습관적인 말, 매일 사용하는 말이 결국 누구도 감히 예측할 수 없었던 결과를 낳아, 그런 목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지만 세계를 흔들기도 한다. (61~62페이지)

 

 

 

  그는 여행 중에 무엇을 보았을까. 한 어린 소년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나님에게 번제할 어린 양을 어떻게 하느냐는 염려섞인 목소리였다.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복종을 시험하는 여호와께 아브라함이 자신의 어린 아들 이삭을 신에게 바치려는 광경이었다. 카인은 아들을 죽이려는 아브라함의 행동을 보고는 신에 대한 비난의 말을 서슴치 않았다. 또한 성의 관습이 느슨한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 또한 신이 시킨 일이었다. 불에 타버린 소돔과 고모라에도 틀림없이 죄가 없었던 아이들이 있었겠지만 죄없는 아이들의 목숨까지 가져간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어했다. 어찌 신으로서 죄없는 아이들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의 행동을 살펴볼 때 그 많은 어두운 면, 그 모든 아름다움, 웅장함, 장엄함이 있는 삶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거야, 한 천사가 대답했다. 그 두 가지는 같은 이야기가 아니야, 두 번째 천사가 덧붙였다. 똑같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거의 같죠. 바로 그 거의라는 말에 차이가 존재하는 거고, 그 차이는 아주 큰거야. 내가 아는 한 우리 인간은 절대 스스로 우리가 삶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묻지 않아요. (190페이지)

 

  신에 대한 카인의 끝없는 의문은 결국 신이 노아에게 지시한 '노아의 방주'에 까지 이르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방주를 짓기 시작한 노아는 인류의 번성을 위해 노아의 세 며느리들과의 교접을 카인에게 권했다. 노아의 가족들만 살리려는 신의 뜻을 거부해 카인은 노아의 아내와 며느리들과 교접을 했을 뿐더러 신이 노아에게 지시한 것들에 대한 거부의 몸짓,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인류를 만드려는 신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의 진정한 얼굴을 보여줄 날이 와야만 했습니다. (206페이지)

 

  성서에 대해 대략적인 이야기만 알고 있는 우리에게 주제 사라마구는 현재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소돔과 고모라를 파괴시켰듯, 노아의 방주로 새로운 인류를 만들려고 했던 신의 뜻에 반해 신과의 논쟁을 즐겼던 카인의 얼굴은 최근의 우리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카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그리고 신과의 대립,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지금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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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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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돈 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혹 어떤 이들은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돈처럼 중요한 것이 과연 있을까. 사랑과 돈에 대한 단상들을 만날수 있는 책을 읽었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그들』이라는 책이었다. 조이스 캐럴 오츠의 책을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좀비』라는 책이었던것 같던데, 작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펴냈다. 『그들』이라는 책이다.

 

  우리는 작가의 시선으로 1937년의 열여섯 살의 소녀 로레타의 모습으로부터 미국인의 한 가정이 어떻게 생겨나고 한 소녀가 여자가 되고 엄마가 되는 과정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두 아이 줄스와 모린의 이야기까지 우리는 미국인의 한 가정이 어떻게 생성되고 파멸해 가는 지, 또는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이야기들을 만나 볼수 있다. 열여섯 살의 소녀 로레타. 많은 꿈들을 가지고 있었다. 좋아하는 남자애도 있었고 그와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다. 짜릿한 하룻밤을 보낸뒤 아침에 일어나보니 남자애는 총에 맞아 죽어있었고, 출동한 경찰은 로레타를 겁탈했고 로레타는 그와 결혼할 수 밖에 없었다.

 

  삶이란 고통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 로레타가 경찰인 하워드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세명을 낳았다. 로레타의 삶은 곧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로레타의 아이 줄스와 모린의 이야기로 소설은 넘어간다. 줄스는 학교를 그만두고 디트로이트의 변두리에서 생활을 시작하고, 모린은 엄마의 재혼으로 엄마가 해야할 일을 대신 해야 했다. 모린이 가장 좋아했던 공간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시간이 가장 좋았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시간은 자신의 마음대로 가질 수 없었다. 새아버지로부터의 폭력에 노출되었고, 엄마의 과도한 요구로 모린은 집에서 탈출을 꿈꾸었다. 오빠 줄스처럼 자립하고 싶어했다.

 

  자립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오빠가 쥐어주는 몇달러로는 자립을 할 수 없었다. 우연히 거리에서 한 남자로부터 차에 탈거냐는 말을 듣고 모린은 낯선 남자의 차를 타게 되었다. 그 낯선 남자가 자신에게 돈을 줄것 같았다. 그처럼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을때, 그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그 방법 밖에 없었을까. 낯선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와 시간을 보내고 온 뒤 책 속 200페이지, 300페이지에 끼워놓은 지폐들을 세워보는 즐거움이라니. 모린에게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어서 돈을 모아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토록 어린나이에 모린이 선택할 것이라고는 그 방법 밖에 없었을까. 그런 모린을 바라보는데 한편으로는 냉정한 시선으로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감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 모린은 엄마의 남편인 펄롱의 폭력에 노출되어 2년 가까이 아무런 의식없이 침대에 갇힌 생활을 하게 된다. 모린 랜들이라는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런 모린에게 안타까운 줄스의 편지가 이어졌고, 오래전에 엄마의 연인을 총으로 쏴 죽였던 엄마의 오빠 브룩에 의해 모린이 깨어났다. 깨어난 모린은 대학에서 강의를 들었고 오츠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내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야간 강의를 듣던 중에 만난 강사를 사랑했고 그와 결혼하고 싶어했다.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세 아이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어떤 사람, 어떤 소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래서 감히 거울을 보지 못한다. 자신의 몸이 무거운 덩치가 되어버린 것 같은 절망적인 느낌이 든다. 몸은 그동안 지나치게 사랑을 받고, 너무 많이 사용되어서 못쓰게 되어버렸다. 몇 달 동안이나 잠에 빠져 있었던 탓에 힘이 없다. 거울에 비치지도 않고, 얼굴도 없다. 목 없는 몸. (427페이지) 

 

  한 가정이 이루어지고 어그러지는 과정은 참 안타깝다. 자신의 최선의 삶을 선택했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바라보는 사람은 다른 삶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꼭 어그러졌다고 보기도 어렵겠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보였으니까.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결국에는 내가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인 삶 그리고 선택. 어느 누구도 빗겨나가지 못한 삶.

 

  이 책의 제목이 왜 『그들』이 되었는지 분명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 이제 대학 강사와 결혼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모린을 줄스가 찾아왔을때 이제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자신만의 삶을 살겠다고 하는 모린에게 줄스가 하는 말은 참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모린, 너도 '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야?' (706페이지)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들과 함께 했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말 같았다.

 

  책의 첫머리에 작가의 말에서 조이스 캐럴 오츠는 소설처럼 구성한 역사 기록이라고 해서 모린 랜들이라는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한 글을 소설화 시킨 것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한 사람의 삶이 기록된 소설이었다. 우리보다 예전 시대에 폭력과 가난에 노출되었던 평범한 가정의 삶을 엿보았다. 가난에 노출된 그들이지만 그들은 나름의 사랑을 했고 돈이 필요해 그에 다른 행동을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토록 도망치고 싶어했던 가족을 사랑했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 나선 그들, 그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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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2-15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제 겨우 겨우 거의 다 읽었어요 아직 70페이지 정도 남았는데... 너무 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