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램의 선택
제인 로저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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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바이러스의 시대다. 경제적 발전을 이룬만큼 바이러스는 다양하게 변종되어 나타나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한때 중국에서의 사스가 그랬고, 작년엔 우리나라에서 메르스때문에 온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금은 어떤가. 브라질 특히 중남미에의서 지카 바이러스로 인해 감염된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소두증인 아이를 낳는다하여 아이를 거부하는 가족에게 버림받는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이 세상은 결국 바이러스로 인해 멸망하게 되는 것일까.

생화학 테러를 위해 만들어진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져 임산부와 태아만을 공격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모태사망증후군' 즉 MDS에 감염되어 다시는 아기가 태어나지 않아 인류가 곧 멸망에 이르게 된다면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학자와 의사들은 새로운 아이의 탄생을 위해 연구하게 될 것이다.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불임치료를 위해 만들었던 인공수정 배아를 사춘기 소녀들에게 이식하는 것이었다. 나이가 많은 여자들은 불가능하다. 열여섯 살 이전의 소녀라야만이 가능했다. 소녀들에게 인공수정 배아를 이식하고 어미를 죽이며 태어나야 하는 그 아기들 만이 미래의 희망이었다. 즉 잠자는 소녀들을 모집한다고 하면, 자신이 죽음으로써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엿보인다면 할 수 있는 소녀들이 얼마나 있을까.

 

  과학자들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잠자는 미녀 실험에 참가할 소녀들을 모집할 것이고,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인공수정이 가능했다. 열여섯 살의 제시 램은 이 연구 소식을 과학자인 아빠에게서 듣고 부모님 몰래 그 실험에 참여하고자 했다. 자신의 죽음으로 미래를 살릴 수만 있다면. 자신의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해야 했고, 제시는 자신이 인류를 구하는 데에 참여하고 싶었다. 이에 부모는 반대하고 아빠는 그런 제시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그녀를 가두었다. 갇힌 제시는 아빠를 설득하고 자해를 해 도망칠 궁리를 한다.

 

  과연 한 사람이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하지만 제시는 자신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자신이 아이를 낳고, 또 자신의 딸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다보면 수백 명의 아이가 태어날 것이고 인류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제시의 죽음을 반길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제시의 부모는 제시를 설득하고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제시는 수많은 사람의 문제이며 인류의 문제라며 개인보다는 인류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르겠다. 내가 부모의 입장이 되어서인지 만약 내 딸이 제시처럼 행동한다면 나도 제시의 아빠처럼 아이를 가둘지도 모르겠다. 집단은 집단의 문제로 놓아두라고. 몇 사람이 어떻게 인류의 미래를 책임지겠느냐고. 연구를 거듭하다보면 분명히 해결책이 있을거라고. 대리모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안전한 방법이 생길 수도 있을거라고 아이를 설득할지도 모른다.

 

  자식을 위해서 부모는 죽음까지도 무릅쓴다고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부모는 과연 만들어지는 것일까. 타고나는 것일까 의문스러울 정도다. 이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니까. 이처럼 추악한 세상인데도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인류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은 좀 달라질까. 모두다 기피하는 일들인데 고작 열여섯 살의 나이를 가진 제시의 선택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어요. 바로 그거라고요. 그래서 그게 그렇게 멋진 일이고요. 제가 바꿀 수 있어요. (294페이지)

 

  최근에 읽은 SF 문학중 가장 묵직한 질문을 건네는 소설이었다. 한 소녀의 성장, 첫사랑, 부모님의 불화, 친구들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하는 때, 제시처럼 할 수 있을까. 자신을 버리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제시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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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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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만큼 다작을 하는 작가도 없는 것 같다. 그가 작가로 나선지 30년이 되었고 80권의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작가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인 동시에 그의 80번째 책이기도 하다. 그의 작가 생활 30주년의 역작이라는 것 외에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작품이라는 것과 '라플라스의 마녀'라는 제목이 뜻하는 바가 무얼까 궁금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답게 가독성이 뛰어나다. 소설이 끝날때까지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읽던 소설인만큼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었고, 흥미로운 소재의 소설이었다. 

 

  오래전에는 잘 맞지 않던 날씨 예보가 요즘엔 거의 정확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휴대폰 앱에서도 시간대별로 날씨가 예보되어있고 거의 일기예보대로 날씨가 변한다는 걸 알수 있다. 그래서 어딘가로 출타하거나 할때는 미리 날씨 예보를 보고 그에 따른 대비를 하게 된다. 만약 이런게 주어지지 않고도 날씨 등을 예측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꽤 살아가는데 있어 편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삶까지도 예측할 수 있을까. 만약 예측하더라도 그들이 예측한 대로 삶은 흘러가지 않는다고 본다. 알수 없는게 우리 삶이므로. 우리의 미래에 시련이 다가올지, 행운이 다가올지 어떻게 알까. 

 

  소설의 시작점엔 우하라 마도카라는 소녀가 있다. 열 살의 소녀는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댁에 왔다가 토네이도로 엄마를 잃는다. 그리고 한 온천에 들었던 미즈키 요시로가 그의 젊은 아내 치사토와 함께 숙박을 했고 산책을 나갔던 부부중에 요시로가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온천에 있는 화산가스인 황화수소 중독으로 인한 사고사였다. 이후 또다른 온천에서도 한 남자가 역시 같은 이유로 죽은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이 사고가 발생한 신문기사를 본 경찰 나카오카 유지는 미즈키의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편지를 떠올리고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대학교의 지구화학교수인 아오에 역시 온천에 일어난 황화수소에 의한 사고를 조사하는데 도움을 주기로 하고 나름의 조사를 시작했다.

 

  요시로와 결혼한 치사토는 그가 죽기 3개월전에 3억엔이 넘는 보험을 가입했고, 함께 간 온천의 산책길에서 죽었다. 치사토가 누군가와 계획하에 살인을 한 것일까. 그렇다면 두번째로 다른 온천에서 죽은 나스노 고로는 누가 죽인 것일까. 아무도 다니지 않은 산책길에 눈위에 찍힌 발자국이란 나스노의 발자국밖에 없는데. 더군다나 온천 주변에서는 황화수소가 필요이상으로 검출되지도 않았을뿐더러 동물의 사체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 누가 이들을 죽인 것일까. 죽은 미즈키 요시로와 나스노 고로가 황화수소가스로 인한 중독사였다면 이들의 접점은 무얼까.  

 

 

 

  추리소설의 형태는 살인범을 숨겨두고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살인범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이 있는 추리소설이 있는 반면 처음부터 독자에게 '이 사람이 살인범이다'라는 것을 가르켜주고 책 속의 인물들이 살인범을 유추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의 마녀』는 후자의 경우에 속했다. 처음부터 한 남자가 의심스러웠고 그가 살인범일 것이다라는 확신이 생겼다.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고 해야겠다. 이제 살인범이 누구인지 알아챘으므로 그가 왜 무슨 이유로 살인을 저질렀느냐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을까. 그는 어떤 것을 숨기고 있었나. 현재의 살인에서부터 과거 8년 전의 살인 혹은 자살 사건으로 옮겨가게 했다.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나카오카와 아오에 교수는 사건의 핵심으로 점점 다가오고 그들 또한 황화수소 중독 사건을 일으키게 했던 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또한 황화수소 가스 중독 사건을 일어난 곳에서 누군가를 찾는 마도카의 정체와 마도카와 함께 머물렀던 수리학 연구소에서의 한 소년, 그리고 소년의 아버지가 쓴 블로그에서의 이야기까지 진실에 거의 다가서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소설 속에서 언급되었던 '부성 결락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인간 남자나 수컷 쥐를 보게 되면 짝을 지어 새끼나 아이를 낳았던 아버지에게는 부성이 있기 마련,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부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가족을 보호하거나 자식을 보호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부성이 없으면 얼마전에 우리나라에서 크게 이슈화되었던 사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친자식임에도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던, 인간이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사건 말이다. 소설 속에서는 자식이나 가족이 완벽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바꾸어 버리려는 남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몇몇 천재들이나 당신 같은 미친 인간들로만 움직여지는 게 아니야. 얼핏 보기에 아무 재능도 없고 가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중요한 구성 요소야. 인간은 원자야. 하나하나는 범용하고 무자각적으로 살아갈 뿐이라 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내는 거라고.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어, 단 한 개도. (497페이지)

 

  이후 드러나는 진실은 추악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자신의 완벽한 이미지를 위해 가족을 이용하는 것도 모자라 새로운 가족으로 지어낼 수 있는 것인지. 범인의 단순한 이기심. 인간이 저지른 추악한 이기심이 드러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이런 인간들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허탈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물리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지만, 과연 우리의 삶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일까. 우리의 삶은 절대 예측가능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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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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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온 과정을 세세하게 열거하는 타인의 삶의 여정은 어쩌면 지루한 일일수도 있다. 예를들면 어머니 뱃속에서 왼발부터 나오고 오른발을 나중에 내미는 식의 나열 말이다. 날때부터 희귀한 성격을 가진 누나보다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주인공의 삶. 누나의 괴짜같은 행동에 비해 순했던 주인공은 부모님과 주변 인물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아마도 그렇게 해야 부모님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았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삶, 약간은 지루하게까지 진행되는 그의 삶은 훗날 몇십 년이 지난 다음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에 빛을 발하는 효과를 주고 있었다.

 

  그렇다. 1편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약간 지루했다. 이런 소설이 나오키상을 받았다고? 더군다나 일본서점대상 하면 서점 직원들이 뽑는 상이 아니던가. 일본서점대상 수상작을 읽을 때 실망한 적이 없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1권을 읽었다. 2권을 기대하며. 이 책은 2권을 꼭 읽어야 한다. 2권을 읽지않으면 이 책은 아주 지루하고 재미없는 소설이 되고 말테니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2권에 가서야 제대로 빛을 발휘하니까.

 

우리의 '사라바'는 '안녕'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말이 되었다. '내일도 만나자' '잘 있어' '약속이야' '굿 럭' '갓 블레스 유' 그리고 '우리는 하나야'.

'사라바'는 우리를 이어주는 마법 같은 말이었다. (1권, 257페이지)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난 '아유무'는 부모님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으며 태어났다. 이후 아버지의 인사 발령으로 다시 오사카로 오게 되었고, 오사카에서 몇 년 외할머니와 이모들, 그리고 야다 아줌마와 가깝게 지냈던 가족은 다시 아버지의 근무로 이집트 카이로로 향하게 된다. 그곳 일본학교를 다니던 아유무는 그곳에서 이집트 소년 야곱을 만나 어느 누구와도 나누지 않았던 우정을 나누게 된다. 다시 일본으로 가야하는 아유무는 야곱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했다. 이후 아유무의 삶은 부모님의 이혼, 누나의 종교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 스구와도 점점 소원해진다.

 

 

   아유무는 기행을 일삼는 누나에게서, 여러 남자를 거치는 어머니의 삶에서도, 승려같은 삶을 살다가 결국 승려가 된 아버지에게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많은 여자를 만나고 헤어졌고, 어느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다. 잡지에 짧은 글을 기고할 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을 만한 직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의 삶을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토록 아름답던 자신의 외모도 퇴색하고 있었다. 외모 때문에 여자들에게도 인기를 끌던 그였다. 머리가 빠지고 외모에 힘을 잃어가자 그의 삶도 외모처럼 퇴색해져 가고 있었다. 자신의 황금시대였던 때를 떠올릴 때라고는 스구와 대학교때 친구였던 고가미와 함께 있을 때 뿐이었다. 그의 삶은 변화가 필요했다. 종교 소녀였던 누나의 변한 모습과 누나와의 대화에서 그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집트 카이로로 향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변함없이 그곳에 있을 야곱이 그리웠다. 둘이서 '사라바'를 외치던 그 순간들이 그리웠다.

 

너도 네가 믿을 것을 찾아. 너만이 믿을 것을.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면 안 돼. 물론 나하고도, 가족하고도, 친구하고도. 그냥 너는 너인 거야. 너는 너일 수밖에 없는 거란 말이야.

 

네가 믿을 걸 누군가한테 결정하게 해서는 안 돼. (2권, 295페이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던 계기는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만나고부터 였다. 자신의 삶. 자신이 가장 빛났을 때 친구와 함께 외쳤던 그 말 '사라바'라는 말이 있었다.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그는 자기 삶을 살기로 했다. 자신만의 삶을. 자신을 믿을 건 자신부터라는 걸.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우리 자신에게 어떤 믿음이 필요한지를 말하는 작품이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살아있는 이 모든 순간의 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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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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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들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보는 '내가 이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해? 말아?'가 아닐까. 어떤이들은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직장을 다닌다고도 했는데. 참 직장인의 애환이란게 그렇다. 힘들다고,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도 그만둘 수도 없는 입장이다. 다시 또 어딘가를 기웃거리는 것도 힘들고, 직장이란게 내가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요즘 젊은이들, 특히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취준생'이라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면 정말 가슴이 아파온다. 취업을 하고 싶어도 취업문이 좁아 취업을 할 수도 없고, 마냥 준비하자니 힘든 생활의 반복이다. 여기저기 눈치보이고, 경제생활을 할 수 없기에 부모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을 지켜보는 부모들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뿐. 이렇듯 취업하기 힘든 시절에 취업을 떡하니 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신랑이 근무하는 직장에서도 어렵게 합격해놓고도 수습기간에 관두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들어가기도 힘든 직장이지만 정작 자신과 맞지 않으면 할 수 없는게 또한 직장생활이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해도 도저히 버틸 수 없으니 그만두기도 하는 거겠지. 일례로 대학생활을 하다가 휴학을 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 중에 직장에 합격을 하게 되면 대학을 그만둔다고 한다. 어차피 직장을 위해 학교를 다녔으니 굳이 계속할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대학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말이다.

 

  키타가와 에미의 책은 제목부터가 인상적이었다. 잠깐만 회사를 관두고 올게, 라니. 나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그만두지 못하니 타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부럽다고 해야 할지, 속시원하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소설이 무척 궁금해졌다.

 

 

 

 

 

  본격 직장인 소설의 탄생이라고 일컫는 이 소설은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는 진정한 이유를 묻는다. 무엇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나, 누구를 위해서? 오랜 취업 준비를 했고, 마침내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곳의 첫번째로 꼽는 직장은 아니었지만 취업을 하게 되었다고 할때, 모든 열정을 다해 일에 매진하게 된다. 매일매일 열정적으로 임해보지만 입사 반 년 만에 어느새 매일매일 일이 차고 넘쳐 피로에 절여있는 생활을 하는 신입사원 아오야마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동경했던 회사 생활이었지만 어느날 부터 웃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지하철의 승강장에서 떨어질 뻔한 아오야마를 구해준 건 그의 동창이라는 야마모토였다. 야마모토와의 학창시절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를 동창생으로 안 아오야마는 그와 자주 만나며 점점 활기찬 생활을 하게 된다. 비싼 옷은 아니지만 야마모토와 옷을 고르고 넥타이를 고르는등 직장생활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게 된 것이다. 야마모토와의 조언 때문일까. 영업직으로 힘들었지만 조만간 계약도 따낼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다 야마모토 덕분이다. 그렇지만 정작 야마모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전화할때마다 시간을 내어 만나 술도 마시고 밥도 먹으며 마치 여자와 데이트하는 것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어느 날 자신의 문자에 바쁘다는 그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자신과 있을때는 늘 치약 광고의 미소를 지어보였던 야마모토였지만 혼자 있을 때의 그는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공동묘지로 가는 버스까지 탔다.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누구이기에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희망을 불어넣어 준 것일까.

 

간단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간단하면 안 되죠. 저는 이 회사를 너무 간단히 골랐어요. 시간이 걸리는 게 무서웠고, 날 받아 주는 회사라면 어디든 좋았어요. 하지만 직장을 그런 마음으로 결정하면 안 되는 것이었어요. 다음에는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거예요. 시간이 걸려도 괜찮아요. 사회적 지위 따위 없어도 돼요. 설령 백수로 살더라도 마지막에 내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만한 길을 찾아내겠어요. (198페이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진심으로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을 원하는 것인지를 물었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고 가정했을때 가장 슬퍼할 사람은 누구인지, 자신을 구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면 어땠을지. 이런 질문을 하는데 가슴이 찡해져 온다. 보다 궁극적인 자신의 삶을 살라는 말을 해주는 것 같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직장이라면 과감하게 관두는 게 좋지 않을까. 어차피 가족을 위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자신을 위해 직장생활을 하는 것인데, 마음을 다치면서까지 직장 생활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 것이다.

 

  그나저나 나도 하루쯤 무단 결근을 하고 카페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만 나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분 좋은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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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2016-01-2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으로나마 위로받는가봐요!

Breeze 2016-01-28 09:24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책 괜찮았어요. ^^
 
셜로키언
그레이엄 무어 지음, 이재경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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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셜록 홈스에 대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았더니 홈스가 더 좋아졌다. 오래전에  홈스를 읽은 것 말고 내가 홈스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마 셜록 홈스를 연기했던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 때문이 아니었을까.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좋아 그가 나온 영화를 챙겨 보았고, 셜록 홈스를 연기했던 드라마 시리즈도 챙겨보며 셜록 홈스를 더 깊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셜록 홈스가 누구던가.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해 낸 인물로 영국 경찰이 도움을 받을 정도로 사건을 해결하고 추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이는 많은 셜로키언들을 양산했다. 셜로키언이란 셜록 홈스를 실존 인물로 간주하고 셜록 홈스 시리즈를 경전으로 취급하여 각종 연구를 하는 열광적인 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소설에서는 아서 코난 도일이 한때 홈스를 죽이고 난 뒤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사라진 일기를 찾는 과정이 담겨 있다. 사라진 일기는 많은 셜로키언들에게 일기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고, 셜록 홈스를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였다.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스'라는 세계 최고 셜로키언 협회의 신참 회원이 된 해럴드 화이트. 사라진 일기를 찾는 한 셜로키언이 변사체로 발견되고 이 사건을 조사하는 해럴드 화이트의 활약이 2010년의 시간에서 소설의 한 축을 이루고, 셜록 홈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향하는 아서 코난 도일에게 소포 폭탄이 배달되고  배달한 범인을 찾아 나섰다가 의문의 살인사건을 맞는 1900년의 아서 코난 도일의 이야기가 다른 한 축을 이룬다.

 

  과거 아서 코난 도일과 함께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사람이 뮤지컬 「드라큐라」로 유명한 브램 스토커였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또한 아서 코난 도일과 아주 친한 친구였던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언급도 역사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기에 굉장한 즐거움을 주었다. 아서는 일련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 브램 스토커의 도움을 받았고 그를 의지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두말하면 잔소리. 선생은 본인이 쓰는 내용에 너무 길이 들어서 독자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시나 본데, 홈스가 아무리 멋진 싸움 끝에 죽는다 해도 홈스가 죽는 게 싫어요. 홈스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죠. (107페이지)

 

  우리가 드라마나 소설을 볼 때 작가가 주인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때론 즐거워하고 때론 슬퍼하고 또 어떤 캐릭터들을 미워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소설 속 인물에 자신을 투영시켜 다른 삶을 꾸어보기도 하는 상상을 하기 마련이고, 실제 인물인 것처럼 가슴 뛰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내가 한때 보았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 캐릭터처럼 같이 아파하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만약 이 시리즈가 계속 된다면 우리 또한 도민준이라는 캐릭터에 더 빠져 그를 실제 인물처럼 생각할지도 모른다.

 

  영국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건을 형사보다도 더 깔끔하게 추리하며 해결하는 셜록 홈스를 폭포에서 죽여버린 아서 코난 도일을 이해할 수 없어 했다. 영국인들은 셜록 홈스를 위해 장례식까지 거행하는등 그의 죽음을 슬퍼해 검은색 상복을 입고 다니기까지 했다. 자신은 잃어가고 셜록 홈스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셜록 홈스를 만들어낸 이가 바로 아서 코난 도일인데도 말이다. 소설속에서처럼 실제로 아서 코난 도일에게 살인 사건에 대해 자문하고 해결해주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

 

해럴드는 셜록 홈스를 믿었다. 물론 홈스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다. 셜록 홈스를 믿는다는 게 그를 실존 인물로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홈스 이야기가 주장하는 바를 믿었다. 이성의 힘을 믿었고 추리라는 정밀과학을 믿었다. 셜록 홈스는 그걸 할 줄 알았다.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어. 해럴드는 생각했다. (114페이지)

 

  사건이 일어났을때 셜록 홈스처럼 생각하고 셜록 홈스처럼 사건을 추리하기를 즐겼다. 셜로키언들이기에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모든 작품 속에서의 홈스의 말을 기억했고, 셜록 홈스를 믿었던 것이다. 

 

어쩌면요,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뼈져리게 체감한다는 거예요. 원래 시대의 경계는 훗날 시간이 역사가 된 다음에야 정해지잖아요.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당대가 아니라 후대 학자들 몫이잖아요. (333페이지)

 

  제대로 된 셜로키언은 아니지만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셜록 홈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보아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처럼 제대로 된 셜로키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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