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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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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면서 과거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까운 과거 보다는 먼 과거, 우리가 어린아이였을때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픈 기억들마저 아픈 기억들속에서 좋았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픈 기억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스러지고, 우리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오래도록 남는 것 같다.

 

  기억들은 우리가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해도 같은 상황의 기억을 더듬을 때면 함께 있었던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왜곡되어 있기도 하다. 자기의 편의대로, 자기에게 강렬했던 느낌들을 간직하는터라 말을 하다보면 조금씩 다르게 기억하는 것을 느낄수 있다. 만약 과거의 기억들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기억하려해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사랑하는 이와 어떠한 이야기를 했는지. 자신들에게 배우자 말고 다른 가족이 있었는지. 왜 이곳에 머무는지 확실하게 기억을 하지 못한다면.

 

  고대 잉글랜드의 안개 가득한 평원. 액슬과 비어트리스 부부는 토끼굴 같은데서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살고 있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만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없다.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이 부부 뿐만이 아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안개가 가득한 이곳에 생활하면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는 마을에 어스름하게 있는 안개때문에 그들의 자신들의 과거를 망각한채 살아가고 있다. 안개처럼 희미하게 기억나는 기억들에서 자신들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기억을 떠올린다.

 

  기억속의 아들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제법 큰 아들이다. 액슬과 비어트리스 부부는 아들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여행중에 그들은 강을 건너는 뱃사공의 이야기를 듣는다. 한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한후 남편을 강가의 이편에 놔두고 아내를 배에 태워 강의 저편으로 실어다 주었다는 것이었다.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뱃사공의 말을 듣지만 하룻밤이 지나면 곧 잊어버릴지도 몰랐다. 이어서 도깨비들에게 잡혀갔다가 물린 상처를 안고 돌아온 소년 에드윈과 도깨비들을 물리친 전사 위스턴을 만나 여정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던 병사들과 수도사들의 기이한 행동, 낡은 갑옷을 입은 가웨인 경을 만나기도 한다. 

 

 

  희미한 기억을 가지고 아들을 찾아 떠난 이들이 과연 아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기억의 파편들은 흩어지고 말것인데, 아들이 있는 곳을 기억할 수 있을까. 서로 깊이 사랑하여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이 부부에게 아들을 찾아 떠난 여행은 시련이기도 했다. 이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 안주하지 않고 아들에게 향하는 발걸음은 과거의 기억들을 조금씩 생각해 냈다. 

 

그 여자는 이 땅에 망각의 안개가 덮여 저주가 내렸다는 이야기를 계속했고, 그건 우리 두 사람도 종종 말하던 거잖아요. 그때 그 여자가 내게 물었어요. '함께 나눈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당신과 당신 남편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어떻게 증명해 보일 거예요?' 그 후로 나는 줄곧 그 생각을 했어요. 그 생각을 할 때면 너무 겁이 날 때가 있어요. (71페이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이처럼 몽환적인 소설일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선 이들의 이야기일거라 생각했었다. 망각의 안개로 가득찬 곳이어서 일까. 내 머릿속도 안개에 가려지는 듯 혼재했다. 과연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아들에 대한 기억도,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도 정확히 기억을 못하면서 어떻게 아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들의 기억들만 모호한게 아니라 내 머릿속도 망각의 안개에 짙게 가려졌다. 

 

  치매에 걸린 부부들의 이야기를 종종 접한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를, 남편을 보살피며 헌신하는 사람들을. 나는 기억하는데 상대방은 나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가슴아플까. 행복했던 기억들, 고통스러웠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가 함께했던 시간들의 증명일텐데.

 

  시간이 흘러 저절로 잊혀지는 것과 아무리 기억하려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의 차이는 크다. 차라리 망각의 안개처럼 잊고 살았다면 언제나 함께 했을까. 모든 것이 기억났을 때의 고통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사랑했던 모든 순간들. 현재의 우리. 과거의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는 것이 옳은것인지 잊고 살았을 때가 좋은것인지, 문득, 묵직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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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스트레인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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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라 워터스라는 작가의 이름을 인식한건 아마도 영화의 한 홍보글에서였을 것이다. 세라 워터스의 원작인 『핑거 스미스』를 원작으로 박찬욱 감독이 각색한 「아가씨」라는 영화에서였다. 어떤 작품이길래 박찬욱 감독이 영화화를 결정했을까. 영화계에서 자주 보이는 배우진들이 보여 원작인 『핑거 스미스』가 궁금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리틀 스트레인저』라는 작품이 눈에 띄어 세라 워터스의 작품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겠다 싶어 반가웠다. 세라 워터스는 19세기 런던의 삶을 다룬 소설을 주로 펴냈다. 그가 펴낸 소설의 면면을 보자면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런던의 빅토리아 시대라는 점, 상류층 귀족들의 삶을 다루었다는 점, 추리소설의 형태를 띄었다는 점들이었다.

 

  런던의 워릭셔의 대저택 헌드레즈홀. 두 번의 전쟁후 에어즈 가문은 몰락하고 대저택은 붕괴위기에 처해졌다. 옛 영화를 간직한 헌드레즈홀의 마지막 세대인 에어즈 부인과 전쟁에서 공군으로 참전해 부상을 입은 아들 로더릭, 귀족처녀이지만 몰락한 대저택을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딸 캐럴라인, 그리고 마지막 남은 어린 하녀 베티가 헌드레즈홀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과거 헌드레즈홀의 유모의 아들로서 대저택을 동경하고 숭배했던 닥터 패러데이가 헌드레즈홀을 방문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헌드헤즈홀의 하녀로 일하고 있는 베티의 꾀병때문에 전화를 받은 패러데이는 오랜만에 헌드레즈홀을 방문하고 기억속의 화려했던 헌드레즈홀과는 다른 쇠락한 모습때문에 당황한다. 에어즈 부인과 아들 로드릭의 절룩거리는 걸음걸이, 낡은 옷을 입었지만 쾌활해 보이는 캐럴라인과 담소를 나누고 돌아오며 패러데이는 헌드레즈홀의 주치의가 된다. 이후 패러데이는 주치의로서 로드릭의 다리를 치료해준다는 명목으로 대저택을 드나들고 에어즈 부인은 이웃한 랜들 가문의 스탠디시가 런던에서 온 건축가 부부에게 팔려 이사오게 되자 그들을 초대해 조그만 파티를 열게 되었다.

 

  파티가 열리게 된 날 대저택은 오랜만에 활기에 차 있었다. 패러데이 또한 손님으로 방문하며 초대한 손님들이 도착해 파티가 무르익는다. 그 와중에 스탠디시의 저택을 샀던 피터 베이커하이드의 딸 질리언이 캐럴라인이 기르는 개 지프에게 얼굴을 물리는 사고가 벌어진다. 이 사고 헌드레즈홀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들의 시작이었다. 

 

  삼십여 년 전에 대저택의 파티에 왔었던 어린 시절의 패러데이는 헌드레즈홀을 저택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저택의 일부를 갖고 싶어 도토리와 나뭇잎 모양의 가장자리를 장식을 한 벽에서 도토리 모양을 뜯어낸 적이 있었다. 패러데이는 헌드레즈홀을 동경하는 마음이 아직까지도 자리하고 있었을까. 어렸을적 저택의 일부라도 갖고 싶었던 욕망의 발현이었을까. 주치의로서 저택을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패러데이가 순수한 마음으로만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저택이 탐욕스럽다고 했던 캐럴라인의 말처럼 패러데이도 대저택에 대한 탐욕이 자리했을까.

 

  로맨스를 좋아하는 나답게 헌드레즈홀을 동경하는 패러데이와 헌드레즈홀을 지켜야하는 캐럴라인의 러브라인이 그려지자 서로의 필요에 의해 결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었다. 패러데이는 캐럴라인과의 결혼으로 동경하는 대저택에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고, 캐럴라인은 패러데이와의 결혼으로 헌드레즈홀도 지키고 패러데이에 대한 호감도 애정으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패러데이가 애정 표현을 할수록 캐럴라인은 한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귀족처녀답게 사랑하지만 사랑의 표현에 주저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했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가 패러데이라서 우리는 패러데이가 보고 느낀 것들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패러데이의 입장에서 대저택을 바라보고, 캐럴라인을 바라보고, 에어즈 부인이나 로드릭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탐욕스러운 집, 집에 서려있는 사악한 기운. 어느 책에선가 집에 서려있는 기운을 무시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고, 그 책의 내용에 공감한 적이 있었다. 헌드레즈홀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었다. 과거 이 집에서 죽었던 에어즈 부인의 첫째딸의 강한 기운이 대저택을, 이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언젠가부터 대저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사악한 기운만으로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했다. 어느 누군가의 개입이 있지 않았을까. 책 속의 화자인 '나' 패러데이가 의심스러웠다. 추리적 요소를 갖춘 소설이기에 책을 읽는 우리는 누군가를 의심하고, 생각조각들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무엇 때문일까. 누구 때문일까. 여러가지 생각들때문에 책의 마지막을 향해가며 좀처럼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다. 다 읽고나서도 대저택에 사는 에어즈 가의 몰락이 과연 내가 생각하고 결론과 맞는 것인가, 한참을 생각할 정도였다. 세라 워터스의 다른 작품들을 좀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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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5-11-1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도 패러데이가 의심스러워지면서부터 책을 손에서 놓치를 못하겠더라구요. 아 그런데 너무 설명 부족.. 그 모든 게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서 좀 더 탐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Breeze 2015-11-13 17:04   좋아요 0 | URL
캐럴라인때 설명을 조금 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게 가능할까 싶기도 했어요. ^^
 
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황현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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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왕자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책 내용이나 제목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오래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추억을 읽는다는 것. 책의 내용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읽어보면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도 생경한 일이었다. 우리는 읽은 책을 잊어가고 또 읽어도 잊어간다. 우리가 읽은 그 많은 책들을 다 기억한다면 우리 머리는 아마 터지고 말것이다. 이에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몇부분의 문장들만 생각나고 다른 것들은 잊게 된다.

 

  『어린왕자』의 모든 문장들을 기억한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읽어본 문장들은 생경했다. 생경한 문장들을 따라 책 속의 화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그가 처음 모자 속의 보아뱀을 그렸던 어린시절로. 그림을 그려 보여주면 어른들은 모자라고만 했었다. 모자 속에 든 보아뱀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때의 기억들에서 비행기를 타고 사막에 불시착해 고장난 비행기를 고치고 있을때 만난 어린왕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양 한마리를 그려달라는 어린왕자와 오래전 그렸던 모자를 그려주자 모자속에 든 보아뱀 그림은 싫다고 했었던 우리의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무릎도 차지 않는 활화산이 두개, 사화산이 하나인 조그만 소행성 B612이라는 별에 살았던 어린왕자의 여행이야기를 하게 된다.

 

 

 

  어른들은 보이는 것만 보고,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에게는 보이지 않은 것까지 본다. 어른이 될 수록 상상력은 떨어지고 고정화된 생각에 갇혀있는 듯도 하다. 그래서 작가 생텍쥐페리는 한때 어린아이였던 어른들에게 바치는 이 동화를 썼다. 사실 청소년인 아들에게 이 책을 읽혔으나 그다지 좋은줄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초등학교때는 재미있게 받아들였어도 말이지. 아이가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면 우리가 밑줄 그으며 읽었던 것처럼 어른이 된 아이도 밑줄을 그으며 다시 감동할지도 모른다. 우리처럼.

 

  이번에 다시 읽을때도 나는 밑줄 대신 색색의 포스트 잇을 붙이며 오래전에 감동했던 문장들과 새롭게 다가오는 문장들에 표시를 했다. 좋은 문장은 다시 읽어도 늘 좋다. 이상하지.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어린왕자의 스토리가 하나씩 기억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린왕자가 사막에서 여우를 만났을때 여우가 했던 길들이는 것에 대해 말이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

나도 세상에 흔한 여러 여우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한 여우에 지나지 않는거야.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거야. 나는 너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고 .....  (84~85페이지)

 

 

 

 

  영원히 살아 숨쉬는 문장들이다. 또다른 문장들을 볼까.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몇 시에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을 거야...... (87페이지)

 

  번역자 황현산 작가가 말했듯 『어린왕자』에서는 여우의 말 때문에 이 책이 더 빛난다. 어린왕자가 지구에 발을 들였을때 처음 만난 것도 뱀이고, 마지막에 만난 것도 뱀이었는데도 말이다.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길들인다는 것에 대해 말하는 문장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고 노력했었고 실패도 맛보았으니 말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97페이지)

 

  같은 문장인데도 왜 매번 감동을 받을까. 다시 읽으면 다시 읽을수록 그 감동은 배가 되어 돌아 온다. 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책인지 알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시한번 어린왕자를 읽으며 동심으로 돌아가는 나를 발견했다. 어릴적의 나와 만나는 일이기도 하고,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이십 대 시절과의 만남이기도 했다. 다시 오지 않을 우리의 소중한 한때였던 그 시기와의 조우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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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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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초판본을 읽은게 삼 년 전이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때문에 오랫동안 차기작을 기다려왔었고, 반가움에 들떠 읽었던 책이었다. 그 책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삼 년 만에 다시 나왔다. 예쁜 소녀스러운 표지와 뒷면에는 초판본에는 없었던 작가의 말까지 실려있었다. 같은 소설임에도 전혀 다른 소설처럼 느껴졌다. 마치 처음 읽은 것처럼 새롭고 또 생소했다.

 

  우리의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우리가 행복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보다 때로는 아팠던 기억들이 더 선명한 것처럼, 아픈 기억은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자리잡는 것 같다.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잠재의식 속에서는 늘 살아있는 것도 같고. 무심코 기억 속의 장소에 갔을 때 심장을 베인듯 기억속의 아픔이 고통이 되어 다시 떠오르듯.

 

  다시 읽는 『잠옷을 입으렴』은 오래전 먼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책이 귀했던 때 읽었던 동화책의 기억. 시골길의 추억.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 책속의 이야기는 오래전 우리들이 소녀였던 때로 옮겨가 그 시간속을 걷게 한다. 이 책도 그랬다. 외로운 소녀지만 외사촌 수안이 있어 외할머니집에서 마음을 붙일수 있었던 둘녕의 소녀시절과 함께 했다.   

 

  둘녕과 수안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열한 살에서 열여덟 살의 시간을 함께 견뎠다. 함께 책을 읽고 책 속의 이야기를 하고 놀이도 했다. 서른여덟 살의 둘녕이 기억하는 수안과의 시간은 아픔, 그리움, 쓸쓸함, 고통이 함께 했다. 아직도 그 고통을 잊지 못했는지 한밤중이면 잠옷을 입고 맨발에 돌아다니곤 하는 몽유병에 걸렸다. 어릴적 엄마인 소녀 향이와 할머니가 나타나 꿈 속을 지배했다. 둘녕은 무엇을 찾아 밤새 돌아다녔을까. 스러진 수안을 찾아? 과거속 함께 했던 수안과 둘녕의 추억을 찾아?

 

 

   그시절 함께 했던 수안과의 기억들을 소녀적 향이와 함께 찾아다녔던 둘녕의 독백이었다. 꿈속에서도 슬퍼 울었던 둘녕의 나직나직한 고백. 시간은 현재의 시간을 견디는 둘녕과 과거 수안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자주 교차되었다. 과거속 둘녕의 아픔과 현재의 둘녕의 견딤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련한 시간속 수안과의 시간을 추억할때 둘녕은 그시절이 그리웠을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늘 그리운 거니까. 과거의 시간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둘녕은 아파 보였다. 오히려 과거속 시간을 상기하고 있을때가 더 둘녕다웠다고 할까. '실과 바늘'이라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둘녕은 늘 혼자였으므로 무엇보다 외로워보였다.

 

그 순간, 내가 언젠가 이날을 그리워할 때가 있으리란 걸 깨달았다. 고요한 밤의 폐가에서 그와 함께 보냈던 짧은 나날들을. (262페이지)

 

  둘녕이 뜨고 있었던 잠옷. 그리고 오래전 은이 이모가 사주었던 잠옷을 보니 문득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떠올랐다. 일찍 스러진 자식들을 위해 새 내복을 사서 무덤가에서 태워주던 한 할머니의 모습이. 그 영화를 보던 순간 얼마나 울었던가. 그 생각이 나서 또 눈물이 났다. 자신이 뜬 잠옷을 수안이 입어주기를 바랐던 둘녕의 마음이 느껴져서였다. 돌탑가에서 태워졌을 잠옷. 이제는 둘녕이 과거 속의 장소를 가도 아픔이 덜하지 않을까.

 

누군가 힘들 때 그걸 고쳐주는 일은 쉽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는 걸.  (298페이지)

 

  우리의 유년 시절과 함께 했기 때문일까. 둘녕과 수안이 함께 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우리의 추억이 떠오르는 시간들이었다. 모암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던 남자애. 둘녕이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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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 꽃잎보다 붉던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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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먹한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그저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도 가슴먹먹한 삶에 대한 글이었다고 해야할까. 우리는 사람을 만난다. 십대의 풋풋한 시간에도, 이십대의 열정적인 시간에도.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육십대, 칠십대 등. 모든 시간에 걸쳐 사람을 만나고 울고 아프고 고통받으며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찌 이십대의 사랑이 모든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고 믿는 깨닫는 그 시간이 나의 모든 사랑일 것이다. 그 나이가 십대건, 칠십대건. 내가 사랑이라고 믿는 모든 순간이 우리가 사랑을 아는 시간이다. 

 

  아마도 내 나이 때문일까. 사십대의 시간에서 몇년 뒤면 오십대의 시간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일까. 결혼해서 이십 년을 살아온 시간때문일까.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났고, 그 방향이 서로를 향해 있는게 아닌 등을 바라보고 있을때 무너질 가슴은 어찌해야 할까. 작가의 신작 『당신』에서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일컫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상대의 외로 틀어진 시선, 그이의 등을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를 바라봐 달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평생을 삭이며 살아왔을 시간. 나를 잃어버렸을 때에야 비로소 나를 드러낼 수 있다니. 하지만 그마저도 없었다면 여자는 평생 그 남자의 본 마음을 몰랐으리라. 아니 모른척 했겠지. 모른척하며 살다가 끝내 외면하고 자신의 마음을 못알아봤겠지.

 

  소설은 희옥이 사후 경직이 시작된 주호백의 몸을 닦으며 시작한다. 잘 펴지지 않는 오그린 사지를 펴고 검버섯 비늘들로 얼룩진 몸을 닦아내고 있다. 숨이 나갔다고 사람이 이토록 뻣뻣했던가. 몸을 세세하게 닦고 집 마당앞 죽은 홍매를 파낸 자리에 그를 묻었다. 혼자서. 그에게 빨간 넥타이를 매어주고 회색 양복을 입혀 묻은후 홍매를 다시 심었다. 그리고 그가 희옥을 위해 만들어준 소나무로 만든 의자를 다시 놓았다.

 

 

  일흔여덟 살의 윤희옥. 평생 다른 사람을 보고 살았다. 스물 즈음에 만난 김가인이라는 사람을. 시국은 위태로웠고 임신한 몸으로 어디든 가야했다. 희옥이 갈데라고는 호백 밖에 없었다. 호백은 그녀를 받아주었고, 함께 오랜 시간을 살았다. 아픈 아이를 자신의 친딸처럼 키웠고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다. 때로는 자신의 시종같이 모든 수발을 들었다. 그런 그가 치매에 걸렸다. 자신이 살아왔던 기억을 잃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던 호백이 자신을 잃어버릴땐 과거의 일로 호통을 치고 과거의 시간속에서 본마음을 이야기한다. 그이에게 말하고 싶었던 속마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제야 희옥은 과거에 그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체감한다.

 

 

  평생 호백에 대한 마음을 알면서도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가 치매를 앓아 정신을 잃기 시작하고 과거의 시간속에서 머물며 본마음을 이야기할때에야 비로소 그의 마음을 알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몇십 년을 함께 살았어도 마음을 두지 못했는데 갑작스럽게 그에게 사랑을 느꼈다. 희옥이 알아왔던 그가 아니었다. 머리를 치듯 다가온 감정이었다. 그는 그때서야 그를 향해 마음을 기울였다. 오래전 김가인을 사랑했던 마음과는 달랐다. 새로 태어난 듯 했다. 

 

  세 살 아래인 호백은 희옥에게 누나라 불렀었다. 그를 땅에 묻고 그가 비밀의 정원이라 불렀던 다락방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의 일기를 보았다. 자신을 향한 글이었다. 내밀한 마음을 내비친 글들. 꼭꼭 숨겨둔 그의 감정들을 보았다. 자신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다잡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었던 것이다. 일기속에서 '당신'이라고 부르며 쓴 글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그를 묻어놓고도 실종신고를 하러 간 까닭은 평생 자신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딸 인혜와 그가 갔음직한 장소를 여행하며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었고 그가 느꼈을 고통을 온전히 느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달라, 다른 사람이야. 당신은 말하자면 집을 짓고 싶었던 것 같아. 어떤 바람에도 끄덕없는 굳센 당신의 집. (255페이지)

 

당신 가슴속을 좀 들여다보구려. 평생에 걸쳐, 거기, 당신 가슴속에 내가 집 하나를 지었소. 고대광실로다가. 죽은 다음에도 들어가 살 집. 당신 가슴속인데 당신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지어서 미안해요. 미웠던 적은 있었지만, 당신과 헤어지고 싶었던 순간은 한 번도 없었소. 그런 점에서 나는 성공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참, 아무것도 후회하지 말아요. 후회하면 당신 가슴속에 지은 내 집이 무거워질 거요. 아이고, 그 집이 무거워지면 당신, 무슨 수로 걷고 춤출 수 있겠소. 당신은 춤출 때가 가장 아름다운데. (267페이지)

 

  일흔의 노작가가 "나의 '당신'"에게 바치는 소설이라는 말 때문은 아닐 것이다. 노작가의 곁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에 대한 사랑의 찬가라는 걸 알아서일까. 소설의 처음부터 끝날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 우리가 사랑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의 감정들이었다. 희옥과 호백의 삶에서 우리 부모들의 모습을, 작가의 모습을, 우리들의 미래를 본 듯 해서다. 젊은 날의 호백, 죽은 김가인을 향해 부유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희옥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것인가. 마치 참회하듯 그가 머문 시간을 함께 했던 길은 눈물겨웠다.

 

  우리 삶을 관통하는 노년의 쓸쓸함. 사랑에 대한 위로, 그로 인한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는 사랑.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모든 것들. 우리의 젊은 날이 영원할 줄 알았던 시간. 이제 그 시간은 과거로 흘러갔다. 시간을 달리 해 사랑했을 뿐인 과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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