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그레이 1~2 세트 - 전2권 -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또 다른 이야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E L 제임스 지음, 박은서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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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그레이 신드롬이 있었다. 이토록 야한 소설이 여성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고,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왠지 안될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작품이었다. 오래전에 여섯 권의 작품을 다 읽고 다시 독자들의 요구에 의해 크리스천의 속내를 알수 있는 크리스천의 입장에서의 이야기를 하는 『그레이』를 읽었다. 같은 내용을 다시 쓴 『그레이』라는 소설이 과연 재미있게 느껴질까.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호기심이 강했다.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망할 것 같은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기대감에 뚜껑을 열어보니 똑같은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다 아는 내용을 다시 읽는 느낌. 물론 같은 내용의 책을 그레이의 입장에서 쓴 것임을 알면서도 기대감에 부풀었었는데 책은 지루하게 읽혔다. 다만 그레이의 입장에서 쓴 소설이기때문에 아나에 대한 마음, 그레이가 꾸는 악몽, 그레이의 과거를 좀더 알수 있었다.

 

  그레이의 그림자는 역시 과거 마약중독자이자 매춘부였던 엄마와의 기억이었다. 그나마 아나스타샤와 함께 있을때는 악몽을 덜 꾸었고 푹 잘 수 있었지만 아나스타샤와 헤어져 있는 동안엔 하루도 빠짐없이 악몽 속에서 깨어났다. 크리스천은 과거의 악몽을 떨치기 위해 달리기를 했고 아나스타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했었을뿐 한번도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오로지 아나였기에 가능했다.

 

 

  아나와는 처음 해보는 것이 많았다. 아나의 첫 남자였고, 침대에서 처음으로 타인과 함께 잘수 있었고, 부모에게 소개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처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여태 몰랐던 것. 아나스타샤로 인해 그는 달라질 수 있을까.

 

  그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단 몇 줄의 글로 이메일로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짧은 문장이어도 이메일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참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최근에 다시 깨닫고 있는데 아나스타샤와 크리스천의 이메일로 대화하는 것을 보는 건 상당히 즐거운 일이었다. 회의중에서 이메일 알림음에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이메일 창을 열어 글을 확인하고 답장을 하는 이들. 이들도 보통의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들만 몰랐을 뿐.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처음 읽었던 때의 짜릿함은 덜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고, 또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영화속에서 그레이와 아나스타샤의 얼굴이 떠올랐기에 상상을 하며 소설을 읽는 기쁨은 덜했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그레이에게 매료되었던 사람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읽지 않았던 독자들은 새로운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이런 짜릿함도 필요하지 않겠나. 물론 남성 독자들은 이런 책에 열광했던 여성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디 남성들이 여성들을 이해할 수 없는게 책 하나 뿐이겠나. 여성들에게도 그레이처럼 남성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50가지 정도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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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느와르 M 케이스북 - OCN 드라마
이유진 극본, 실종느와르 M 드라마팀.이한명 엮음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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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드라마를 챙겨보지 못한다. 평일 저녁엔 아예 보지 못하고 그나마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예능 프로그램만 몇개 챙겨보는 정도다. 한번 드라마에 빠지면 그 시간을 기다리며 계속 보게 되는터라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만 드라마를 못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배우나 관심 있는 분야의 드라마를 한다고 하면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어느새 놓치고 만다.

 

  이런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핏빛의 빨간색의 표지때문에 범죄 드라마일거라는 생각과 잔인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책을 펼쳐보니 TV 채널 OCN에서 했던 드라마 「실종느와르 M」을 꼼꼼하게 분석 정리한 책이다. 먼저 드라마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보는 케이스북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추리물이라 무리없게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에서 실종된 다양한 사람들과 실종된 자들을 찾는 FBI 출신의 길수현(김강우) 팀장과 베테랑 형사인 오대영(박희순), 사이버 안전요원 진서준(조보아), 15년차 부검의 강주영(박소현). 이들이 주축이 되어 실종전담수사반에서의 활동을 다루었다. 총 7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드라마는 다양한 인물들과 각 에피소드만의 특별한 인물들과 이야기를 담았다. 출연진을 보아도 화려하다. 드라마 「미생」과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강하늘를 비롯해 만날 수 있다.

 

  각 에피소드에서 만나는 인물들을 보면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이 실종되어도 누구하나 잘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존속 살해범인 천재 수학자가 보내온 퍼즐 속 여성, 내부 고발자에 대한 것, 정리해고로 인한 자살과 실종자들, 가출 청소년들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가출팸,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자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책 속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과연 정의란 존재하는 것일까를 묻는다. 우리 사회에 정의가 존재하고 있다고 보는가.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법의 테두리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반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의 욕심대로 사람을 죽이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고 있지 못하는 사회의 모습들을 비춰주면서 우리 안에 숨은 욕망을 드러내 보인다. 책 속에서의 드라마 화면, 제작 노트, 작가의 생각들을 글로만 읽어도 그들이 얼마나 많이 준비해 왔는가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캐릭터를 위해 노력하고 준비해왔던 배우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주로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배우 박희순도 나와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이 더 생겼다.

 

  내친김에 어떤 드라마인지 보려고 살펴보니 드라마에 대한 꽤 호의적인 평들이 많았고, 시즌 2를 원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시간을 내어 꼭 한번 보고 싶은 드라마가 되었다. 책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과연 드라마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을지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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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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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작품이길래 '다시 만나고 싶은 복간 희망도서'라고 선정할까. 우리가 읽었던 책 중에서 절판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없는 책이라고 할때 그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수 없다. 어떻게 해서라도 읽고 싶은 간절함이 이 책을 다시 복간하게 한 것 같다. 서술트릭의 대가라고 하는 나카마치 신의 『모방살의』는 이렇게 해서 우리들 손으로 까지 오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반가운 일이다.

 

  초판이 나왔을때의 작가의 말과 나중에 개정판에서 작가의 말을 읽다보니 우리에게 온 이 작품은 꽤 여러번 개작되었으며 처음엔 단편소설로 그 다음엔 장편소설 『신인상 살인사건』으로 출판된 작품이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하게 개작되어 우리들 곁으로 온 『모방살의』는 꽤나 추리소설만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소설은 7월 7일 오후 7시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사카이 마사오라는 추리소설가가 청산가리가 든 음료수를 마시고 죽었다. 세상사람들은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 무명 작가의 신변 비관 자살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사카이 마사오의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의학전문출판사의 편집자로 죽은 사카이 마사오가 추리소설 작가인 아버지의 제자라는 이유로 몇번 만난적이 있었던 나카다 아키코였다. 다른 하나는 사카이 마사오와 안면이 있었던 살인 리포트 작가이자 추리소설 작가이기도 한 쓰쿠미 신스케였다.  

 

  장을 달리해 가며 절대 자살일리 없는 사카이 마사오의 죽음을 파헤치는데 사카이가 죽은 그 시간대에 그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행적을 의심하는 것이다. 나카다 아키코는 사카이 마사오의 집에서 마주쳤던 도가노 리쓰코를 의심하고, 쓰쿠미 신스케는 추리소설 편집자인 야나기사와를 의심해 그들의 알리바이를 파헤치고자 한다. 살인사건이 있었던 시간에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조사를 하는 과정이 나왔다.

 

 

 

  소설을 읽으며 나카다 아키코가 조사하는 사카이 마사오와 쓰쿠미 신스케가 조사하는 사카이 마사오의 모습이 서로 조금씩 달랐다. 같은 이름이되 다른 사람이라고 해야하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아키코와 쓰쿠미가 서로 접점이 되는 부분이 있어야하는데 이마저 서로 다른 시간대의 사람들처럼 접점이 없었다. 과연 그들이 파헤치는 사건의 당사자는 과연 같은 사카이 마사오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사카이 마사오일까.

 

  사람의 이름이 이토록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특히 소설에서라면. 그것도 추리소설에서 이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젠가 동명이인들이 나오는 소설을 읽는데 아주 죽을 맛이었다. 동명이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채 시작된 소설은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아서 나중에는 메모를 하며 그 사람 각자를 파악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렇게 집중해서 읽으면서도 잠시만 다른 생각을 하면 흐트러지는게 또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오래전 김춘수 시인은 이름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비로소 나에게 꽃이 되었다'는 시를 기억해 보시라. 작가가 숨겨놓은 교묘한 장치는 눈치채지 못한 채 이름 하나로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다.

 

  분명히 밀실 살인이라는 것인데, 그는 과연 자살일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타살일까. 만약 타살이라면 누가 살인자일까. 아키코가 의심하는 그 누군가가? 아니면 쓰쿠미가 의심하는 그 편집자가? 작가가 이끄는대로 따라가며 작가가 숨긴 서술트릭에 완전 속아 넘어갔다. 작가의 말에서처럼, 이 책을 읽는 일은 꽤 유쾌한 경험이었다.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서술 트릭의 글에 갑자기 어떤 열의가 마구 생겨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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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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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에 살기 때문에 정작 서울이나 서울 근교, 강원도, 충청도 쪽엔 다니지 못하고 있다. 항상 서울 근교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지 못해 애타고 있던 터에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을 읽으며 그 아쉬움을 달랬다. 그동안 유홍준 교수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답사기로 책을 썼고, 일본 편 4편에 이어 다시 한국편 그것도 남한강 줄기를 따라 답사할 수 있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다루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를 열어보니 내가 다녀보지 못한 곳, 역사서에서만 익히 보아왔던 곳을 다루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저자가 책에서 다룬 남한강 줄기를 따라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쓴 책을 보며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곳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남한강편에서는 영월부터 시작하여 단양, 제천, 충주, 원주, 여주로 이어지는 우리 문화유산을 만나볼 수 있다. 강과 산의 정취를 바라보며 우리 문화유산을 즐길수 있는 코스다. 우리나라에 이처럼 문화유산이 많다는 것에 다시한번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글 뿐일까. 신경림 시인의 시 네 편과 함께 정호승 시인의 시까지 실려 있어 책을 읽는 기쁨을 더했다.

 

  영월 같은 경우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영월이라는 지명만 알뿐. 이번 책 속에서 나오는 영월의 주천강과 숙종의 편액이 걸려있다는 요선정, 법흥사, 관란정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유홍준 교수가 안타까움을 표명한 곳이 있는데 바로 행정구역 자체를 개명한 부분이었다. 동강댐 반대운동이 일어나면서 동강의 아름다움때문에 영월에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영월 서면을 한반도면, 김삿갓 묘소가 있는 하동면을 김삿갓면이라고 명칭 자체를 개명한 부분에서였다. 애칭 또는 별칭으로 부르는 것에 그쳐야 하는데 관광 홍보 효과도 좋겠지만 우리 국토 고유의 품위를 지켜야하지않나하는 저자의 안타까움이었다. 주변의 자연스러운 풍경과 함께 문화유산이 있던 곳이 빛나는 것이지 인위적인 것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덜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외국의 박물관 큐레이터에게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 물었을때 그 서양의 큐레이터는 한국의 정자를 꼽았다 한다. 한국의 산천은 부드러운 곡선의 산자락이나 유유히 흘러가는 강변 한쪽에 정자가 하나 있음으로 해서 문화적 가치가 살아난다며 이처럼 자연과 친숙하게 어울리는 문화적 경관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표정이라고 했다. (131페이지) 나도 나이가 든 탓인지, 아니면 우리 문화유산의 고유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책을 자주 읽어서인지 우리나라의 정자가 있는 풍경을 참 좋아한다. 저자의 말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볼 수 있는 고즈넉한 정자가 보이면 늘 사진을 찍었고, 그곳에서 잠시라도 머물고자 했었다.

 

  이제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단양으로 가볼까. 언젠가 단양에 있는 소백산에 산행을 갔을때 그 아름다움에 반했고, 소백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단양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다음에 며칠이라도 단양에 꼭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약속을 마음속으로 했던 때가 벌써 몇년이 지났다.아직 단양 쪽 여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때에 이처럼 단양에 대한 문화유산과 단양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있노라니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처럼 책으로 먼저 만나고 여행하면 그 여행에 대한 즐거움이 훨씬 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단양 8경의 풍경과 함께 꼭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있는데 영춘의 온달산성이라고 했다. 성안으로 들어가 나무 그늘에 앉아 성벽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남한강 물줄기가 훤히 드러나고 영춘대교 너무로 영춘 옛 고을이 한 눈에 들어와 그 장쾌한 눈맛을 다 표현하지 못할 곳이라는 말도 했다. 또한 제천의 의림지를 답사했다. 호반의 명승지이며 제천 사람의 휴식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아름다운 의림지를 말이다. 사진속에서 바라보는 의림지의 풍경은 역시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었다. 사진에 담고 싶은 풍경, 그곳을 바라보며 거닐고 싶은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몇 년전에 김훈 작가의 『흑산』을 읽었을 때의 그 강렬한 느낌이 기억난다. 소설에서는 신유박해에 대해 이야기했고 소설에서 황사영의 백서 사건에 대해서도 말한 부분이 있어 기억하고 있는데 답사기에서도 황사영의 백서 사건이 있었던 배론 성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황사영이 머물렀던 토굴을 사진으로 바라보는데 저절로 숙연해졌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을 읽고 문화유산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며 저절로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외국의 아름다운 문화유산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숨어있는 우리의 문화유산도 찾아보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일도 굉장히 중요한 것임을 일깨우는 것이다. 더불어 내가 한국에 태어났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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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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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를 읽었던 우리는 동화가 어떻게 변주되던 작가들이 변주해놓은 글들을 즐긴다. 오히려 기대하기까지 한다. 하나의 동화와 동화속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변주된 글을 읽노라면 작가의 생각 조각들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화가 어떻게 변주되던지 우리는 글 속에서 동화를 찾고 동화같은 삶을 꿈꾸기도 한다. 물론 우리의 상상일 뿐이지만. 동화는 우리들의 판타지이므로 우리는 오늘도 동화속 판타지를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구병모의 작품을 꽤 읽었다. 작가가 처음 쓴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부터 『그것은 나만이 아니기를』, 『파과』등등 인터넷 서점에서 작가의 책들을 골라보니 한 권 빼놓고는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그만큼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로서 작가의 나쁜 동화 변주곡은 꼭 읽어야 할 소설로 간주 되었다. 더군다나 동화의 변주곡이라잖나. 『파란 아이』에서 잠시 만난 「화갑소녀전」에서 느낄 수 있었듯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프로 한 소설을 읽으며 이런 식의 소설도 괜찮겠다 싶었었다.  

 

  『빨간구두당』은 그림형제나 안데르센, 유럽이나 러시아 민담 등을 참고로 하여 다채롭게 변주한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다. 청소년과 성인이 함께 읽어도 무방한 소설로 고전 동화의 내용과 현 시대와의 상황을 조화롭게 쓴 소설이었다. 작가의 판타지적 글이 뛰어났고 이 책에서는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빨간구두당」은 제목에서부터 알다시피 안데르센의 『빨간구두』를 새롭게 쓴 글이다. 한 마을에 흰색이나 검은색 혹은 회색 빛깔의 옷만 입고 다니는 곳에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가 나타났다. 죽어가는 늙은 신부가 빨강색을 한번 보고자 해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를 데려왔다.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는 빨간 구두를 신고 계속 춤을 추고 있었다. 팔다리를 움직여 춤을 추는 처녀는 멈출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처녀를 마녀로 몰아 빨간 구두를 신은 발을 잘랐고 빨간 구두를 신은 자른 발은 여전히 춤을 추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춤을 추는 빨간 구두를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을 빨간구두당이라고 불렀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잔혹한 동화다. 동화가 원래 잔혹한 내용을 품고 있었고, 어린이들에게 맞게 순화되어 나온 것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잔혹했다. 춤을 추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고 마녀로 몰아 처녀의 발을 자르다니. 물론 이 동화를 처음 읽었을때 춤을 추는 것을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했을때 발을 자를수 밖에 없었겠구나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서 다시 읽는 동화는 참혹하기 그지 없는 잔혹동화였다. 많은 동화들이 그랬다.

 

  동화들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프로 한 「화갑소녀전」은 또 얼마나 슬펐던가. 성냥을 팔았던 소녀가 몸을 녹이기 위해 화광 공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했던 경비원과 비서, 공장장이 어린 소녀를 어떻게 했는지 보면 현재를 거울로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카이사르의 순무」에서는 죽은 괴한을 땅에 묻었다가 거대한 사람모양의 순무를 캐 왕에게 바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였다. 성경속 구절과 로마신화 속 인물을 예로 들어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삶을 이야기했다. 진실은 어둠속으로 달아나고 전달자에 의해 임의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힘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작품이었다.

 

  단편 소설들 중에서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작품은 「헤르메스의 붕대」라는 소설이었다. 그림 형제의 「유리병 속의 작은 도깨비」의 동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입구가 코르크 마개로 덮인 유리병을 숲속에서 발견하고 병에서 무언가를 꺼내주게 되었다. 그에게서 한 장의 거즈를 받았고, 거즈의 왼쪽 부분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입은 모든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고, 몸을 문지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고열, 내상, 각종 염증을 몸 밖으로 떠나보낼 수 있었다. 신비한 능력을 가진 그에게 진료소의 의사는 그에게 어떤 의심을 했던가.

 

그녀는 바람이 한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 빗줄기의 속삭임을 들었고, 흩날리는 눈발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한 알의 주근깨만 한 초파리의 날갯짓 소리를 듣고도 그것이 다음 순간 어느 자리에 가 앉을 것이며 따라서 언제 일격필살이 가능할지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놀라운 재주를 갖고 있다 한들, 그것이 내일 먹을 곡식을 여물게 하는데 도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181페이지, 「엘제는 녹아 없어지다」 중에서) 

  다시한번 작가의 이야기의 변주에 놀랐고, 작가의 글에 압도되었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우리가 꿈꾸었던 다른 삶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감성들을 글로 만날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는 거. 작가 구병모의 나쁜 동화의 변주곡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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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09-1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