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짜창수다

 

 

1.

그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놈은 나를 모른다. 내가 그 녀석의 돈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한다. 그 녀석은 분명 내가 목사인 줄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녀석을 속이는 것은 너무 쉬웠다. 나는 그 녀석에게 내게 돈을 바치면 영생을 주겠노라고 했다. 너무 쉬웠다. 그래서 그 영생을 얻겠다고 그놈은 내게 전 재산을 바쳤다. 이제 이놈에게 내가 만든 영생약을 주면 된다. 그놈과는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2.

나는 하늘에 있다. 분명 그놈에게 영생약을 먹였는데, 내가 왜 하늘에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놈이 내게 물어본 딱 한 마디 한 것이 기억났다.

, 이 약 먹으면 어떻게 돼?”

어떻게 되긴, 영생을 얻지!”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그놈은 그 말을 했고 약을 먹었다. 근데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3.

눈앞에 그놈이 보인다. 그놈도 분명 영생약을 먹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영생약을 먹지 않았는데 왜 여기 있는 것일까. 그놈이 내게 말했다.

덕분에 진짜 영생을 얻었네요!”

미칠 노릇이다. 나 때문에 영생을 얻다니.

목사님, 그럼 목사님도 영생을 얻으신 건가요?”

, , 그렇군요. 환영합니다. 하하하

 

4.

여기가 어디인가. 내 두 손이 뒤로 묶여 있고 눈은 가려져 있다.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돈은 어딨어?”

눈 가리개를 푼다.

나 누군지 알지?”

아니, 전도사님이?”

내가 왜 네 전도사야? 나 전도사 아닌 거 알잖아!”

아니, 그러니까 여기 왜?”

왜는? 돈은 어딨어?”

, 돈은근데, 옆에 있는 분은 누구?”

내 친구야. 이분도 목사님이셔. 근데, 이분은 진짜 목사님이야.”

? 그게 무슨 소리?”

알게 될 거야.”

 

5.

눈을 뜨니, 하늘이 온통 하얀색이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 옆에 누워 있는 뭔가를 보았는데, 고양이다. 이놈은 왜 여기 있는 거지. 너무 평온하게 자고 있는 고양이. 나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어본다.

, 왜 여기있니?”

야옹!”

, 왜 여기 있냐고?”

야옹!”

, 너 왜 여기 있냐고!!!!!!!!”

야옹!”

, 너 진짜 그럴래!!!!”

야옹!”

하늘이 점점 어두워진다.

 

6.

목사님, 영생을 얻으니 어떠신가요?”

영생을 얻으니 좋은데, 여기는

목사님, 지금 어디 계신지는 알고 계신가요?”

왜 벽이 온통 연두색이죠?”

목사님,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그게 무슨

알게 될 거예요

 

7.

하늘이 온통 푸른색이다. 그놈은 내게 여전히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놈에게 말했다.

내게 전 재산을 바쳤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영생을 얻을 걸 믿겠느냐?”

목사님,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시고 계시는 건가요?”

그게 무슨 말이느냐?”

, 지금 갖고 있는 돈이 없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냐?”

집에 두고 왔어요. 돈이요.”

그러하냐?”

목사님께서 돈 없어도 재산을 바치면 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러하냐?”

, 그래서 저의 전 재산인 영생을 바쳤잖아요!”

그러하냐?”

, 그러한대요?”

, 그럼 돈은 어디 있느냐?”

저 집에 있어요. 돈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좀 드릴 수 있는데요?”

그러하느냐?”

하늘에 있는 파란색이 갑자기 맑은 구름으로 뒤덮였다.

영생을 바라는 그놈의 목소리가 맑은 구름 사이로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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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다의 글쓰기 방법 (1) 특별하게 쓴다는

 

이 연재는 그냥 되는 대로 하는 거라, 중구난방입니다. 아마추어인 신다의 입장에서 쓰는 글이므로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대하지 마시고요!

제가 글쓰는 첫번째 방법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인데, 글을 쓸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이 글을 보시고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첫번째 글쓰기 방법입니다.

그 느낌을 좋게 하려고 애씁니다. 저 같은 경우 글을 쓸 때 저의 느낌과 다른 사람이 받을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는데요. 특히, 내 글을 볼 때 다른 사람이 어떤 느낌을 받을가를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요!

 

그래서요, 이 글도 누군가 볼 때의 느낌이 평범하면 안 되니까, 자꾸 특별한 느낌을 받게 되기를 기대하게 되는데요. 그래서, 글을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신문을 볼 때의 느낌을 얘기할 때도, 문장이 내게나 시가 올 때는 등을 얘기할 때도, 생각이 아니라 기존의 느낌과 다른 느낌을 갖으려면 어떻게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특별한 느낌이 제게 전해져 오면, 그걸 글로 옮기게 됩니다. , 신다의 글쓰기 방법은 특별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신다의 글쓰기 방법은 조금은 특별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은 뭔가 특별한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신다의 글은 아주아주 특별하다는...그래서 신다의 글 중에 특별한 날이 있다는 뭐, 대충 그런 결론이....

이상입니다. 신다의 글을 좋아하시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마추어지만, 한번 올려 봤습니다.

 

댓글과 좋아요는 힘이 되는데, 요즘 제가 통 활동을 못하는군요! 그럼, 여러분의 인생에 희망과 행운이 함께하기를...



신다의 글쓰기 방법 (2) 상처 입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신다가 글 쓰는 방법 중 하나는 제 글을 보는 분들의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상처 입히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글쓰기 방법의 하나로 볼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배추를 장사하시는 분이 있다고 합시다. 그 배추를 장사하시는 분에 대한 어떤 무시하거나 비하적인 발언을 한다면, 그 발언이나 글은 배추를 장사하시는 분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어 있습니다

강연이나 글을 쓰시는 모든 분들이 주의해야 할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제 글을 보시는 분은 어떤 분이 될지 모릅니다. 어떤 분이 제 글을 보고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글을 쓰는데 항상 주의하게 됩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입히게 되지는 않을까를 늘 생각하고 주의하면서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혹시라도, 내 글 때문에 상처를 입는 경우를 발견한다면, 그 글은 반드시 수정하려고 노력도 하고요. 그래서 글을 끊임없이 검토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그래서 저는 글 쓸 때, 되도록이면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거나 조금 격한 표현들을 자제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100프로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가급적이면 삼가려고 하지요.

오늘 신다의 글쓰기 방법은 여기까지입니다. 매일 쓰게 될지 며칠에 한 번씩 쓰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 아마추어인 신다의 글쓰기 방법이긴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저의 글을 좋아하실 거라 생각하며 제가 글쓰는 방법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럼, 신다의 글을 좋아하시는 여러분과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께 행운이 있는 인생이 있길 바라며...



신다의 글쓰기 방법 (3) 되는 대로 쓴다

 

 

신다가 글쓰는 방법 중 하나는 그냥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쓰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그냥, 지금 떠오르는 대로 꾸밈없이 진솔하게 쓰려고 노력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문장이 엉망으로 되는 것 같아도 우선은 마구 써놓고 교정은 나중에 보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부담없이 가볍게 써내려 가는 건데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렇게 썼을 때 내가 생각하는 바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쓸 때,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걸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하면서 그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썼을 때, 나중에 제가 쓴 제 글을 확인해 보면, 가장 잘 써져 있더라구요! 그리고, 거기에서 중요한 것이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써내려가려면 나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내가 알아듣게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1)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쓴다.

2) 내가 알아듣도록 나에게 설명한다.

 

그럼,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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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 새끼만 잘 잡으면 돈 벌이 될 수 있다니까잡아다가 그 놈이 어떤 놈인지 잘 활용만 해서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거야"

"그런데그걸 어떻게 하냐고저 놈이 우리 말을 곧이 들어야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이걸 쓰자고."

"주사기"

"이게 바로최면 주사기라는 건데이거만 엉덩이에 콕 박으면 우리 말을 저절로 듣게 되는 거지."

"꼭 엉덩이에 박아야 돼?"

"다른 곳은 치사 위험이 있어서 안돼저놈을 죽여서는 아무런 득이 없잖아"

"그럼 어떻게 저놈의 엉덩이에..?"

"그러니까잘 감시해기회를 잡아 보자고

   

2.

한참 만에 눈을 떴다여기가 어디인가내 양손이 허리 뒤로 묶여 있다그리고 저벅저벅저벅살기가 느껴지는 발자국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그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굵은 음성을 가진 남자의 말소리가 들린다저 녀석인가?. 분명 맞습니다저 녀석이 바로그 악마의 반지를 낀 녀석입니다여기서 탈출할 수는 없겠지전설에 나오는 마법사가 아니라면절대 탈출이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저기서 탈출한다면그건 시간이동이나 공간이동이 가능한 초인이라는 얘기입니다저 녀석은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악마의 반지를 끼고 있다고 해서그런 능력이 발휘되는 것은 아닙니다악마가 저 녀석을 잡아놓기 위해서 끼운 것 같습니다이유는 모르겠습니다저 녀석이 우리의 정체는 알고 있나아마모를 겁니다저 녀석을 어떻게 처리할까요악마의 반지는 어떻게 했나뭔가 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도무지 빠지지를 않습니다대장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안 빠진단 말이지… 아직은 좀 기다려저 녀석에겐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는 건지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도망을 치지 못한 걸 보면우리가 모르는 초능력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야저 녀석이 우리 애들을 죽인 거 확실한가확실합니다그런데어떻게 죽였는지는 모릅니다우리 애들이 죽어갈 때저한테 확실하게 그렇게 말했습니다저 녀석무섭다고요저 녀석 때문에 우리 다 죽었다라고 말하는 걸 분명히 들었습니다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총이나 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어떻게 한 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저도 사실은 저 녀석이 무섭습니다그래서 반지를 빼는 것도 허락을 구한 것입니다그래그렇다면뭔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겠군. “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여기서 벗어나야 한다어떻게 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지그때, “의 머릿속에서 어떤 울림이 나에게 속삭였다생각하지 마그리고 입을 조금만 벌려그리고 너의 몸을 흐르는 대로 맡겨. “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치키치키 축축 치치치치 추추추추 축추축그리고 나는 발을 동동 굴리면서맨 땅을 차기 시작했다이게 무슨 소리지확인해 봐대장님발자국 소리가 내게 가까워질수록 나의 발차기는 더욱 빨라졌고이상한 신음소리는 더욱 더 속도를 더해졌다대장님저놈이 뭔가 하려는 것 같습니다이쪽으로 와 보십쇼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빨라졌다안돼저놈 잡아저놈 뭔가 분명 있어도망치지 못하게 꽉 잡아그게칼이었는지 총이었는지 모르겠다뭔가가 나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고나는 그대로 기절하였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게 아니었다한참 후 나는 잔디가 만발한 어느 공터에 누워 있었고묶여 있던 손이 풀려 있었다어떻게 된 거지주변 사람들이 누워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긴 했지만별 관심 없다는 듯 이내 제 갈 길을 갔다여기는 대체 몇 년도의 어디란 말인가나는 또 무슨 주문을 했던 것인가나는 언제쯤 나의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나는 죽은 것인가죽지 않은 것인가나는 사람인가사람이 아닌가나의 궁금증은 갈수록 더해지기만 했다그러나 어쨌든 지금 나는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고살아있다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그렇다나는 살아있기에 또 다시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돈 한 푼 없지만길을 계속 걷다보면해결책이 나올 것이다지금은 내 두 손이 멀쩡하고아직까지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하자나는 일어나서 바지를 털고다시 걷기 시작했다나에게 씌워진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3.

나의 머릿속의 이상한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초록색 잔디가 아름다웠고 공기도 맑았다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해 보였다내가 찾던 세상이 여기인가하는 생각이 고개 들 때쯤갑자기 어디선가 복면을 낀 사람이 길가를 가고 있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성의 핸드백을 날치기 하는 것이 보였다여자의 비명소리가 공원을 가득 메웠다복면을 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아리송한 사람은 핸드백을 들고 열심히 뛰어가는 중이었다혹시 저것을 제지할 능력도 있을까하면서 내 머릿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길 기대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 남자가 가는 방향을 계속 주시하고 있기만 했다사람들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그녀는 복면 쓴 사람을 열심히 쫓아갔지만 그 사람의 달리는 모습은 너무나 빨랐다빨라도 너무 빨랐다사람의 달리기라고 믿기지 않았다순간 퍼뜩 저 녀석이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났다지옥에서 보낸 악마.

그런데 악마가 고작 하는 짓이 소매치기라어울리지 않았다악마라면 뭔가 더 큰 것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악마는 너야네가 악마야저 사람이 아니라 너야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내가 악마라고내가 왜 악마인지 알 수가 없었다내 반지를 보고 악마의 반지라고 불렀던 생각이 났다이 반지가 악마인가왜 내 반지를 보고 악마의 반지라고 하는지 그리고 그 반지는 왜 다른 사람이 빼면 빠지지가 않는지 궁금했다궁금한 마음에 반지를 잡고 빼 보았다잘 빠진다다시 반지를 낀다잘 끼어진다내가 빼고 껴도 반지는 아무 반응이 없다그냥 평범한 반지길 가다가 우연히 주운 반지가 아니다그녀와 약혼을 하던 그날에 그녀와 언약을 하며 끼운 약혼반지다.

그녀가 생각났다그녀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결혼을 하루 앞두고 그녀는 갑자기 사라졌다그리고 나 역시 내가 원래 있던 세상에서 사라졌다그녀가 사라진 이유를 내가 있는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그녀는 또 어느 세상에서인가 나를 찾아 길을 헤매고 있는 중일 것이다.

복면을 쓰고 소매치기를 한 사람이 경찰에 의해 제지되었다그렇게도 빨리 달리더니 앞에서 불쑥 튀어나온 경찰에 의해 잡힌 것이다미처 앞에서 경찰이 튀어나오리란 생각은 못한 것 같다뒤쫓아왔던 미니스커트의 그녀가 복면을 한 사람에게 발길질을 해댄다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보복이라도 당할까봐 두려워서 자기 짐만 챙겨가지고 가는 것이 보통인데 저 여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맞고 있던 복변을 쓴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공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발길질을 하던 미니스커트의 그녀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그리고 그녀는 그때서야 비로소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한참 때릴 때는 전혀 두려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그런데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 것이다그녀에게 가까이 가 보았다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처음 본 것이 분명하다그런데 내 머릿속에서 또 다시 음성이 들렸다.

사라져서 무서워하는 게 아니야그 사람이 또 나타날까봐 두려워하는 거야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공원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좀전까지 행복하게만 보이던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어두워졌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대체 무엇이 무섭다는 것일까사라져서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니?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무섭게 떠느냐고 물어보았다그러자 그 사람이 나를 위아래로 한참 쳐다보더니 두려움에 떠는 표정이 바뀌면서 환하게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당신이 우리의 구세주이시군요.”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더니 모두에게 크게 외쳤다.

여러분두려워하지 마십시오예언 속의 인물이 나타났습니다이제 우리는 살았습니다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말에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제가 구세주라니요모두들 두려움에 떨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제가 구세주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도 모릅니다진짜 구세주 맞습니다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나의 묻는 말에 대답은 없고 그 사람은 자꾸 내가 구세주라는 말만 반복했다궁금증은 더욱 더 증폭되었다.

당신은 누군지 몰라야 됩니다그리고 우리가 설명해서도 안 됩니다스스로 알아내세요우리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래야 우리를 구해 주실 수 있습니다궁금해 하세요길은 우리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러더니 그 사람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내 뒤로 그 공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따라온다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내 머릿속에서 또다시 속삭임이 들려온다.

따라갈까따라가지 말까따라가야 하나따라가지 말아야 하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머릿속이 갈등하고 있었다이상한 일이다지금까지는 길을 잘 안내해 주더니 이번에는 모호하게 질문만 하고 있었다따라갈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내가 조금 망설이고 있자핸드백을 도난당했던 그 여인이 다가왔다.

제 핸드백을 구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선생님의 도움으로 핸드백을 구했습니다아까 사라졌던 그 사람은 이제 다시 여기 나타나지 못할 것입니다선생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내 도움이 컸다고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그런데 무슨 도움을 주었다는 것일까?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 핸드백분명 도난당했을 것이고 우리들은 다시 불행해졌을 것입니다.”

그 핸드백이 대체 무엇입니까?”

이 핸드백은

 

 

4,

 

"드디어녀석을 소유했군이제 이 주사만 놓으면놈은 우리 손아귀에 들어오게 돼."

"그런데또 사라지면 어떡하지?"

"그놈은 걸어갈 때만 사라져투명인간으로 되었다가 다시 나타나곤 하지그러니까두 손 두 발 다 묶여 있을 때는 사라지지 않아"

"그런데그렇게 잘 사라지던 놈이 왜 우리 손에 잡힌 거지이해가 안 가능력이 사라진 걸까?

"무슨 헛소리야능력이 사라지면우리한테 아무 쓸모가 없잖아그럴리 없을거야"

"그래서..이해가 안 간다는 거야그토록 안 잡히던 녀석이 우리 손에 이렇게 쉽게 잡힐 리가 없잖아."

바람과 바다는 순간 뭔가를 놓쳤음을 감지한다.

"아차녀석을 혼자 뒀어이 주사기에 신경쓰느라빨리 가보자.“

 

 

5.

 

나는 녀석들에게 잡혀 왔다눈이 가려져 있었고 두 손이 묶여 있고두 발도 묶여 있었다나는 왜 잡혀온 것일까이해가 안 된다나는 돈도 없고이렇다하게 원한 질 일을 할 만한 사람도 없다그렇다면..그냥 단순 살인자들일까두려움이 엄습해왔다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함어릴 때 미래가 두려워서그래서 시를 썼다두려운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다그런데그 두려운 미래가 지금 내 앞에 닥쳐왔나 보다그 녀석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 녀석들은 나를 보고 있는 것일까아닌 거 같기도 하고맞는 것 같기도 하다소리를 내어 본다아무 반응이 없다또 다시 큰 소리를 한번 질러 본다역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그렇다면...나를 구원해줬던 소리들힘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주고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를 구원했던 소리들그 소리들은 나를 정신병원에 갇히게 했고그 정신병원에서 나는 과거와 미래를 드나들곤 했다정신병원에선 아무도 그런 나를 신경쓰지 않았다현실에선 사라져도 화장실 갔다 온 줄 알고미래의 정신병원에 가도 내가 병이 있는 놈이니 그런가보다 한다시설은 과거와 현재미래가 전혀 다르지만나는 한 병원에서 시간을 초월하며 살았던 것이다내가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나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과거와 미래현재를 오가는 나이것을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구나그래서 나는 연습했었다미래와 과거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방법을그렇다면혹시 그 녀석들이 나의 이런 상태를 아는 것일까만약 안다면 그 녀석들은 나를 잡으러 보낸 미래의 터미네이터 같은 것일까한참 동안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러다가 다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난다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다행이다손가락은 묶지 않았다나는 손가락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대고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원을 그리면 미래로 가는 것이다그런데 이상하다원래는 세바퀴 반을 돌리면몸이 붕 뜨면서 미래로 가게 되는데이번엔 아니다다시네모를 그려보았다네모를 세바퀴 반 돌리면 과거로 가게 되어 있다이번에도 되지 않는다사라진 것일까그렇다면나는 녀석에게 잡힌 채 이대로 지내야 하는 것일까그 순간내 입에서 저절로 어떤 말이 튀어나온다. "치치치치 차차차차차 쵸쵸쵸쵸춏 츠츷츠츠츷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멈추려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멈춰지지가 않았다나를 보고 있을 줄 알았던 그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린 건문이 딸깍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난 뒤였다이윽고그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녀석 어딨어또 사라진거야?" "거봐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잘 찾아봐그 녀석 투명인간이 되어서 이 방 어딘가에 있을거야문 못 나가게 막고그 소리가 마지막이었다나는 또 어딘가로 소환되고 있었다묶여 있던 손이 풀리고 발도 풀렸다그리고 눈가리개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눈을 뜨려 했으나따가운 햇살이 나를 막았다실눈을 뜨고 천천히 눈을 뜬다그 녀석들이 다시 보인다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뜬다그런데 그 녀석들은 왜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다시 한번 자세히 얼굴을 본다분명그 녀석들이다어떻게 된 거지나는 그 녀석들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그리고 안수기도를 하기 시작한다그러자그 녀석들의 과거가 보이기 시작한다알 수 없는 일이 내게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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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껍데기

 

 

 

 

1

 

애당초, 출판사와 계약을 한 것이 잘못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소설을 쓰겠다고 하면서 나의 생활은 온통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일단, 계약을 하고 나니, 나는 어떻게 소설을 시작해야 할 지 몰랐다. 방안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겨우 몇구절 끄적거린 것은 내 아득한 과거 속에 어떤 남자를 떠올린 것뿐이다. 나는 이 소설을 회고록 형식으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회고록이 되어서는 안된다. 처음에 출판사에선 회고록을 써달라고 했었다. 나는 그것만은 안 되겠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랬더니, 출판사에선 그럼 소설을 쓰되 되도록이면 회고록의 형식을 빌어서 써달라고 했다. 나는 사형장에 끌려가는 참담한 심정으로 소설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 그 남자를 만난 것은 내가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때였다. 나는 그 당시, 공부보다는 나이트와 술집, 혹은 당구장을 다니던 이른바 킹카라고 불리우는 잘 나가는 여자였다. 절대로 하룻밤을 허락하진 않았다. 언제나 열두시 이전에 귀가를 했으며, 그것만이 나를 유일하게 지탱해주던 경제력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통금시간이 열한시 반이었지만, 열두시까지만 들어오면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그것은 학교가 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동네는 밤중에도 그리 한산한 동네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어떤 것이 나를 그곳으로 몰아넣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날은 비가 몹시 내렸지만, 무척 더웠다. 더운 날씨에 소나기가 오면, 모기들은 실내로 들어가 평소보다 더욱 더 날뛰고, 에어컨이 없는 곳에 들어가면, 땀은 삐질삐질 쏟아난다. 나는 친구들에게 그들이 아는 허름한 술집으로 나를 인도해 주기를 바랐고, 그들은 친절하게 나를 그 허름한 술집에 내려다 놓았다. 그 술집엔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몇 대만이 공중에서 돌아가고 있을 뿐이고, 낡은 탁자 주위로는 나무의자가 공원의 벤치처럼 서너 사람이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길게 뻗어서, 그런 나무의자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겐 약간의 경악마저 일으키게 해주었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나,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나, 연예인들 이야기, 아니면, 화장품 이야기 등등 주로 그런 대화들이다. 그런 이야기들엔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내가 지루해 하는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열한시가 아직 못될 무렵,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가봐야겠다고 하며, 오늘 즐거웠다고 하며, 일어섰다. 나는 잊었다는 듯이 술값을 치르고, 더 놀다 가라며 몇 만원을 쥐어주었다. 친구들은 친절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하며 나에게 잘가라고 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그 가게를 나왔다.

 

비는 아직도 많이 오고 있었다. 내가 우산을 펴려고, 가게 문을 서성거릴 때, 어떤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왼쪽 눈을 가린, 우수에 찬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그 남자가 내게 말했다.

현실을 믿나요?”

나는 이건 분명 이단종교이겠니 하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려는데 그 남자는 다시 나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현실을 믿으세요?”

이제 보니, 그 남자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이렇게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마냥 맞고만 있었다.

아저씨, 무슨 말 하려는지 모르지만, 전 지금 바빠요.”

그 남자가 굽히지 않고 나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전 아저씨가 아니에요, 전 당신과 같은 학생이죠. 지금은 재적 당했지만.”

그 말이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어머, 어쩌다가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 운동권 학생이거나, 아니면 폭력집단의 조직원일 것이다.

, 당신을 처음 본 순간 느꼈죠. 제 자신이 더없이 비참해지는 것을. 전 아직도 수양을 더 쌓아야 하고, 그리고 나서야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이건 결코 당신의 동정심을 사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그 말을 믿어달라는 것뿐입니다. 당신은 더없이 맑고 순수해보여요. 그저, 단 한 달만이라도 당신을 알고 지낸다면, 그것으로 저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부탁입니다. 저에게 허락된 단 한순간의 시간, 이 순간을 저에게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 사람 무슨 완벽주의자인가, 아니면 신앙에 미친 사람인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차츰 느낀 건, 그의 눈빛 속에 내가 빨려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남자는 참 순수해 보였다. , 우울해 보였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도, 나는 그와 만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운명적 느낌에 끌려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우스운, 감상에 젖은 낭만적 환상주의라고 비방할지도 모를 그런 운명의 순간 말이다. -

 

다행이다. 여기까지라도 소설을 전개해 나갔으니 말이다. 도무지 현실과 소설의 사소하고 미묘한 틈을 찾을 수가 없다. 소설은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허구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허구는 다시 현실이 된다. 도무지 이 현실에서는 소설적인 필연적 구조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도대체가 현실에서 권선징악의 뚜렷한 성격이 규명되는가? 실체와 허구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이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은 철저하게 현실이고, 허구는 철저하게 허구이어야 한다는 명백한 흑백논리가 아니면 무엇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이런 질문은 애당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고, 이 소설은 나의 회고를 바탕으로 한 소설임이 분명하다. 그것만 분명하다면, 이것은 회고록을 빙자한 소설이 될 것이다. 아니, 소설을 빙자로 한 회고록이 되기도 한다. 그 경계는 분명치 않다. 다만,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니까.

 

- “인간의 모습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죠. 모두들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데, 그것은 근본을 뿌리치고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역사를 보고, 인간의 근본을 보세요. 여성해방운동이라고 하는데, 여성해방운동은 언제든지 전개되어 왔습니다.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치면, 여성들은 그 운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죠.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건 여자뿐입니다. 그것은 신이 창조한 역사의 우둔함이죠. 신이 과연 있었을까요? 신이 있다면, 이따위 근본적인 편견 따윈 없었을 것이 아닙니까? 문제는 현실에 있습니다. 지금 현실이 어떤지 아세요? 모든 우둔한 남자들은 댁과 같이 잘빠지고 예쁜 여자를 원하죠. 그것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죠. 여자들이나 남자들이나 마찬가지로 그들의 대부분은 일단 상대방의 겉모습을 보고, 자신의 순결을 바치고 싶어 하죠. 순결이란 단어는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동일하게 씌어져야 합니다. 아니, 그렇지 않지 않아요. 예를 들어, 겉이 아주 더러운 사과가 있습니다. 그 사과는 껍질 몇 군데가 벗겨져서 길바닥에 굴러 떨어져 있죠. 이 사과는 금방 떨어뜨린 사과인데도,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 그걸 먹으려 하지 않고, 대부분은 쓰레기통에 쳐 박아 버리죠. 그 겉껍질만 벗기면 먹음직스런 싱싱한 사과의 속이 있는데도 말이죠. 그것은 사물에게 통하는 이치가 인간에게도 통한다는 거죠.

겉은 아주 깨끗한 사과가 있답니다.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그걸 베어 먹죠. 그러다가, 속이 썩은 걸 알면 그 사과를 버립니다. 그리고 사과에게 속은 기분이 들어 욕을 하며 쓰레기통에 쳐 박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어차피, 모든 열매는 겉과 속이 동일하지 않으면 버려지게 되어 있다는 거죠. 제 말이 틀렸나요?”

 

그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다른 친구들에게선 전혀 듣지 못하던 이야기였다. 하기야, 공부엔 문외한이던 내가 그 남자의 영향을 받으면서 얼마나 공부에 몰두했던가. 나는 그때 아무런 반박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고, 그런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그 남자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장본인이었다. -

 

나는 여기까지 쓰고,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무엇보다 논문준비로 바빴을 뿐만 아니라, 그가 처음에 내게 한 말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현실을 믿으세요? 거기엔 모방과 역설의 미학이 숨어있었다. 대개의 경우는 운명을 믿으세요? 라고 믿는데 반해 그는 현실을 믿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내게 말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에 의해 나는 이렇게 내 운명이 바뀌게 되었는데, 그는 처음에 현실을 믿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소설에 어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그에게 매혹되었고, 그를 만나면서 내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게 우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떡하랴? 이것은 내가 처한 나의 현실이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고, 현실적인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더 큰 문제는, 내가 그에게 매혹되기는 했지만, 나는 결코 그를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애시당초 소설을 쓰겠다고 나선 것이 크게 잘못한 것이다. 나는 단지 내 인생의 회고록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 남자의 말도 마찬가지다. 기억나는 대로 적다 보니, 말의 앞뒤가 맞지 않고, 뭔가가 텅 빈 느낌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소설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내가 여기까지 쓰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쓰라고 한다면…… 나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상황이다. 나는 다시 내가 쓴 소설을 차근차근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 무엇보다 그 남자에겐 신비로운 곳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 신비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 남자는 자신의 이름도 연락처도 남기지 않았다. 우리의 약속은 항상 전날에 이루어졌고, 그날 둘 중 하나가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연락처나 이름 따위는 묻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서로의 사적인 대화는 절대 묻지 않기로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왜 재적되었는지 그것만은 알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필연성에 대해서 나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단지 당신이 왜 재적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만났을 뿐이라고 말했으며,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그때 그렇게 말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는 날이 우리의 마지막임을 언급했다.

 

그렇다. 무미건조했다. 그러나 색다르다. 그와 나의 대화는 언제나 일방적으로 내가 듣는 쪽이었으며, 그는 경제나 정치, 혹은 그날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나 본 영화 등에 대한 평을 늘어놓았으며, 나는 그의 유창한 말놀이에 진력을 하면서도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매일매일 그런 만남이 계속되었을 뿐, 그는 내게 키스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아니, 내 몸과의 접촉을 오히려 두려워했다는 것이 더 옳은 말일런지도 모른다. -

 

그래,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내가 내 소설을 검토하는 일도 진력이 난다. 이 소설을 쓰게 되면서 나는 그 남자와 다시 만나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소설의 속도도 그 남자를 만나는 날마다 일기를 쓰듯 그런 진전속도가 유지된다. 놀라운 조화다.

 

출판사에선 자주 전화가 걸려온다. 계약상 초고를 갖다 주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난 아직도 이렇게 낑낑대고 있으니, 아무래도, 난 소설에는 자질이 없나보다. 계약금을 다시 돌려주고 안 쓴다고 할까? 그럼,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지?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이미 계약한 건 다시 되돌릴 수가 없는 거다. 난 어쩌자구 이런 계약을 승낙했을까? 차라리, 그냥 회고록이나 쓰겠다고 그럴걸. 왜 내가 소설을 쓰겠다고 빡빡 우겼을까? 그때는 왜 그랬을까? 그저 내 수치스런 과거를 밝히고 싶지 않았을 뿐인가?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한번쯤은 수치스러운 기억들을 갖고 있고, 그것들을 지워버리고 싶어 한다. 그 수치스러운 과거는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머릿속을 부여잡고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심해질수록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간혹, 정신분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 수치스러운 과거는 누군가가 안아주지 않으면 영영 지울 수 없기 마련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이 수치스러운 과거를 지우려 하고 있다. 지우기 위해 영영 기억될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이다. 지우려 하면 할수록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들을 아예 소설이란 허구를 통해 완전히 날려버리고 싶은 것이다.

 

- 그 남자와의 마지막 날은 그와 만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날도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그의 얼굴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수척해 보였다. 그런 얼굴은 그 이후 처음으로 보인 얼굴이었기에, 나는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그걸 알았다. 그는 그때 아무 말도 안하더니, 나를 여관으로 끌고 갔다.

미안해요.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여관방에 들어서며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제 죽음이 가까워졌나보다.

그리고 난, 나의 몸을 그에게 맡겼다.

빗소리가 거세게 들려왔다.

한참 후, 침대 위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다소 당황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으나,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미안해요. 난 당신이……

난 그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가끔 남자들은 여자들의 고통을 모르곤 하죠. 그렇게 억지로 하면 이렇게 돼요. 그보다 오늘이 마지막 날 아닌가요?”

그렇죠. 그 이야기를 해 드리죠.”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다. -

 

그리고 나는 또 소설쓰기를 한동안 멈췄다. 이번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부분을 어떻게 극적으로 요리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출판사에서는 원고독촉이 심해졌다. 나는 정신이 사나워졌다. 내 인생의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 이 부분을 어떻게 극적으로 말할 것인가. 그때, 그 남자는 사람을 죽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행히도 과실치사로 판명되어 몇 년 만에 퇴소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그것은 과실치사는 아니었다고 한다. 누구를 죽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주 태연하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난 잠시 머리가 멍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왜 죽였냐고 물었다. 두 번째 물음 역시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여관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녀가 거부하길래 몇대 패줬다고 한다. 우습지만, 진짜 같다. 그 남자가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다. 멍해져 있는 나를, 그 우수에 찬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더니 여관방을 슬그머니 나가버린 것이다. 그 후로 그는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소설을 이렇게 우습게 끝낼 순 없었다. 좀 더 극적인 장면과 그럴싸한 연극이 필요하다. 그에게 있어 난 결국 무슨 존재였을까? 우습다. 소설을 이렇게 허망하게 끝맺을 순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나아지지도 않을 소설을 붙잡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집어치고 싶다. 빨리 끝내야 한다. 나를 압박하는 순간순간들이 섬찟하게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그 남자의 환영이 떠오른다. 그가 나를 본다.

 

- 사실은 당신도 죽이려고 했었지. 하지만, 당신은 죽일 수가 없었어. 왜냐구?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일만한 가치가 없는 거야. 당신은 오로지 동정심으로만 날 대했지?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았나?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여자라면 그렇게 쉽게 자신의 몸을 내주지 않지. 그래, 넌 죽일만한 가치조차 없는 년이었어……

 

아아, 그렇다. 난 그를 사랑한 적이 없다. 단 한번도. 아니, 그뿐만이 아니고, 난 아직까지 누구도 사랑해 본적은 없다. 우연히 그를 만나 처음으로 한 것이었고, 그것 역시 사랑과는 무관하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쓰는 이 소설을 나는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뚜렷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소설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꿈에서 깨었다. 소설을 쓰던 꿈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또 한편의 소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소설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 다른 꿈이었다. 그 꿈은 그가 꾼 꿈이었고, 거기에 애당초 의 존재는 속해 있지 않았다. 거기엔 한 여자만이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못 견디게 했다. 끔찍한 소설이다.

 

- 그 여자를 만난 것은 비가 몹시도 많이 내리던 어느 날 허름한 술집 앞에서였다. 나는 여느 때처럼 그 여자에게 말을 건다. 특별한 감정이 실린 것은 아니다. 무미건조한 말이었지만, 한번 시도라도 해보고 싶었다. 수십 번 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면, 그 중 한 여자는 나의 이 어설픈 작전에 먹혀 들어간다. 그리고 이 여자도 그 중 하나 걸린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만났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과는 달랐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만난 다른 여자하고는 달랐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여자는 내가 하는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나는 이 여자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알지 않아도 좋다. 어쨌든, 나는 이 여자의 몸을 갖고 싶다. 그 외에 다른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한 달 째 되는 날, 나는 마음먹고 그 여자를 따먹으리라 생각했고, 그 여자는 의외로 쉽게 응해주었다. 운 좋게도 숫처녀다.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이 여자는 아무 감정도 없이 나를 만났고, 아무 감정도 없이 일을 치루어 낸 것이다. 그 여자는 내게 처음으로 두려움을 준 존재다. 여자는 내게 매달리지도 않았고, 나를 차버린 것도 아니다. 그 여자는 감정 그 자체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재빨리 그 여관방을 빠져나왔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그것이 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그녀에게로 향하게 했다. 나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내 감정을 되돌리기엔 그녀에게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 버렸고, 그녀는 너무 메말라 있었다. 그것은 동정심도 아니었다. 차라리, 동정심이라도 있는 여자라면 낳았을지 모른다. 그녀는 그저 호기심으로 나를 대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오히려 내가 당한 기분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

 

대체 누구의 소설에 이따위 말이 전개되는가? 이건 내 소설이다. 내 소설에서 나오는 그의 독백이다. 가능할까? 나는 그에 대한 내 상상력을 동원해, 그의 일기장을 들춰본다. 그렇다면, 나는 그렇게 메말라 있는 여자였을까? 둘 중에 누가 누구를 속였고, 누가 당한 것인가? 나인가, 그 남자인가? 나는 다시 머릿속이 혼란해짐을 느꼈다. 일단, 둘 다 속였고, 둘 다 속은 것은 틀림없다. 나는 그 남자의 말이 모두 거짓말임을 알았었고, 단 한 가지, 여자를 죽인 것만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 남자는 아직도 죽지 않고, 어딘가에서 다른 여자에게 또 다른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겠지? 문득, 나의 껍데기가 궁금해진다. 인간의 복제기술은 이미 옛날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기의 복제까지도 가능하다. 복제가 아닌 것은 없다. 나란 인간도 복제인간이다. 다만, 나는 복제할 때 유전인자의 결핍으로 탄생한 기형아인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 남자가 죽인 것이 또 다른 나였다는 것을 그는 알까? 만약, 이것이 소설이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와 내가 만난 필연적이고 유기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가 그를 그렇게 만났다는 사실조차 말도 안 되거니와, 그로 인해 내가 이토록 성공할 기반이 다져졌다는 것은 더욱 더 어설프고 억지스런 구성이리라. 그래서 나는 회고록을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분명, 그것이 사실이냐며,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을 것이고, 나는 그것이 정말이며, 일체의 허구도 허용되지 않았다며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느라 바쁠 것이다. 그렇게 시달릴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한 것이다. 소설의 형식을 빌면, 그런 사실을 떠벌리지 않아도 좋을 터였다. 꼭 사실을 그대로 쓸 필요는 없다. 필연적 구조로 따져서 적당히 조합하면 아무도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형식엔 사실도 있지만, 유기적인 구조를 필요로 하는 필연적인 사건을 집어넣어야 한다. 그것이 소설의 장점이다.

 

소설을 쓰다 보니, 나는 이 소설은 시작할 때부터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와 나의 만남에서부터 그와 내가 이별하기까지의 구조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우연적일 뿐만 아니라, 그 남자와의 재회, 또 소설의 뒤끝을 매끄럽게 할 수 없는 단점, 그 밖에도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소설을 쓴다는 것은 힘든 일일까? 그냥, 회고록으로 쓸까? 나는 또다시 난관에 부딪힌다. 출판사에서는 여전히 재촉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나는 계속해서 소설출판을 미루어 왔다. 어쩌면, 나는 이 소설을 영영 출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남자와 나의 만남은 영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된다. 그때 또 다른 부분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나의 어릴 적, 회고가 시작되는 부분이었다.

 

- 집안 사정 때문에, 어머니는 직장에 나가시게 되었다. 학교를 끝나고 들어오면, 언제나 어머니는 반갑게 맞아주셨는데, 이제는 집에 와도 별로 재미가 없다. 오빠는 내가 집에 오고 난 후 조금 후에 들어왔다. 문제는 오빠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는 내게 말했다.

, 여자가 뭔지 알고 싶다.”

나는 처음에 그게 무슨 소린지 몰라, 오빠에게 물었다.

오빠, 무슨 소리야?”

오빠는 아무 말도 안하고, 내 방에서 나의 몸을 훑어보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왜 저러나 했지만, 조금 있다가, 나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냥 벗었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리고, 오빠와 나는 한 몸이 되었다. -

 

나는 순결을 두 번이나 빼앗겼다. 오빠에게서, 또 그 남자에게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세상에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 특히, 그것이 소설에서라면, 더욱더 실현가능한 현실이 될 것이다. 문제는 소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은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은 소설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은 소설에서도 없어야 한다. 그 한계란 결코 깨뜨려지지 않을 것만 같다.

 

순결도 자유자재로 조절이 가능하다. 유전의 발달은 이제 구시대의 발상 그 자체를 명확하게 규정지었다.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희박해져가는 시대에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겠다는 다짐은, 어쩌면 불필요한 인자로 여겨진다.

 

그렇다. 나는 순결을 빼앗긴 건 아니다.

 

설명하자면, 그 남자를 만날 때, 나는 이미 순결하지 않았었고, 그 남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남자를 만날 때, 나는 이미 마음의 수술을 했을 뿐이고, 그 남자는 이미 파괴된 나의 순결을 한 번 더 파괴한 것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내 소설에 문제점은 전혀 없다.

나는 그냥 어쩌다가 한 남자를 만났고, 순결을 두 번씩이나 잃은 복제인간일 뿐이고, 우연히 또 다른 내가 그 남자에 의해 죽었다.

 

- 박사님, 아직 원고 멀었습니까? 이거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마감날짜가 벌써 지났는데, 저희 입장도 좀 생각해 주셔야지요? 위에서는 빨리 받아오라고 난리치고, 박사님은 조금만 조금만 하시면, 계약위반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처지에 몰렸습니다. ? , 내일까지 꼭 좀 부탁합니다. 내일은 정말 갖고 나오셔야 합니다. , 내일 어디요? , 직접 오시려구요? , 그럼 오후 2시 안에 꼭 가져오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나는 이미 죽어있는 상태다. 오늘은 밤을 새워서라도 원고를 완성시켜야 한다. 할 수 없다. 소설이 형편없더라도, 일단은 내고 보자. 지금으로선 별 방법이 없다. 나는 어릴 적 회고부분에 살을 붙이고,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 오빠는 그후로도 계속 내게 관계를 요구해왔다. 나는 별 느낌 없이 오빠의 요구에 응해주었다. 그 관계는 오래 가지는 못했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직장에서 일찍 들어온 날, 어머니는 오빠와 한방에서 벌거벗고 뒹구는 우리를 보셨고, 당황한 오빠는 넋을 잃고 어머닐 바라보았다. 물론, 더욱 더 당황한 건 어머니 쪽이었다. 처음엔, 당황한 기색만 보이더니, 나중엔 벌거벗은 오빠를 회초리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오빠는 쫓겨났다. 달랑, 옷 몇 가지를 던져주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다시는 이 집안에 발 들여놓을 생각일랑 하지 말아. 나는 오빠가 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러나 오빠는 그 길로 사라져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지금은 인간의 복제가 가능한 시대라며, 언젠가는 나를 복제하는 것도 가능할 거라며, 가능하면 오빠가 했던 그 일들을 참아보라고 했다. 그 말은 정말 우습게 들렸지만, 나는 어머니 앞에서는 굉장히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단지, 집안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한 연극에 불과했다. -

 

소설을 쓰다 보니,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이제는 구분이 가지 않는다. 내가 소설 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하면, 현실에서도 정말 그렇게 된 거였군, 하고 생각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이 버릇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버릇이 가장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 어머니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다. 임무가 완수된 것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자, 어머니는 사형대에서 돌아가셨다. 22년 동안 미루어왔던 사형을 집행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죽였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이유는 단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펴, 아기를 갖게 했다는 것이고, 그 아기의 복제인간이 나다. 내가 복제되었을 때에는 그 아기는 이미 성장해가고 있었으니, 아버지가 바람을 핀 것이 언제인지는 잘 모른다. 어머니는 몇 년이나 그 사실을 몰랐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그때 마침, 복제기술이 개발되었을 때다. 어머니는 이어, 그 여자를 죽였다. 그러나 그 아이만은 죽이지 않았다. 그 아이를 죽이기 전에 체포되었다. 경찰은 의외로 타협을 원했다. 그것이 나를 탄생시킨 원인이다. 나는 그 사실을 어머니가 사형대에 끌려가기 전에야 알았다. 내가 복제인간이었다는 사실조차도 말이다. -

 

나는 드디어 소설을 마쳤다. 나는 더 이상 이 소설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소설의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현실성이 결여되었다면 결여된 대로, 그것은 내가 실제 겪었던 일이라고 하면 된다. 만약, 현실적으로 그것이 정말 가능한 일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건 소설이지 않느냐? 라고 반문하면 되는 것이다.

 

날이 밝았다. 이제는 출판사에 원고만 갖다 주면 된다. 나는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판사로 갔다. 날은 밝은데, 몹시 피곤하다. 그 피곤함은 별거 아니다. 적어도 그 뒤에 내가 겪은 피곤함에 비하면 말이다.

 

 

2

 

박사님, 의문이 가는 부분이요, 대학 3학년 때에 말이죠, 어머니 수입이 그리 많은 편도 아니었을 텐데, 그렇게 여유가 많았던가요? 그것이 주 수입원이란 말씀은 사창가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박사님, 복제인간이란 것을 아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박사님, 어머님께서 사형이 늦어지신 건 박사님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그 계약이 옳은 것이었을까요? 거기에 대해서, 박사님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예를 들어 말이죠, 이미 22년이나 지난 후에야 사형을 집행한 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어머님께서 당신에게 고마워하셔야 한다고 생각은 안하시는지요?”

박사님, 아기를 낳으실 수 있다고 하는데, 극비리에 연구되고 있었던 사실이라던데요? 박사님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게 사실인가요? 그리고 그걸 어떻게 아셨죠? 박사님 주변에 그렇게 훌륭한 분이 계셨었나요?”

오빠의 소식은 들으셨나요? 궁금하시지 않으세요?”

박사님의 인생은 대학 3학년 때 만난 낯선 남자에서 바뀌게 되는데, 정말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쓴 겁니까? 아니면, 직접 체험하신 걸 그대로 옮긴 건지요? 정말 그 남자가 그렇게 박사님을 대하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그리운 껍데기는 작품의 제목 그대로 껍데기를 그리워하는 한 성공한 여자박사의 개인적인 체험을 소재로 한 형편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언뜻 보면, 그럴 듯하게 비춰지는 구석이 많아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곳이 부분적으로 눈에 띄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 소설의 흠은 눈에 띄게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그 부분을 일부러 드러낸 듯 보이나, 그러나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작가의 무성의함이 부각되는 부분들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과 운명의 남자가 만나는 순간부터 인위적이고 필연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시종일관 이 소설은 회고록을 빙자로 한 우연성을 남발하고 있다.

 

이 소설은 비록, 우연성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긴 하지만, 인간의 내면을 성실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이 소설의 묘미는 오히려, 그 우연성에 있다. 우연이 우연을 낳으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필연이 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그 우연성을 주인공의 심리로 내비치는 데 성공했다는 데에 높은 평가를 살 만하다.

 

-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그리운 껍데기의 작가 모모 박사는 일체의 질문을 모두 거부하며, 가해자의 최대권리인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그 스스로 죄인인 것처럼 발표했습니다. 이에, 기존 문인들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종전까지, 찬반양론에만 치우치던 기존 문인들은 모모 박사의 최근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각자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문제는 모모 박사가 발언한 가해자의 최대권리인 묵비권이란 말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M 뉴스 특별기획 코너에서는 모모박사의 발언이 그리 중대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결론이 이르러, 이만 줄이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가해자의 최대권리인 묵비권?”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럼, 모모 박사가 가해자란 말인가?”

여태 모르셨어요?”

뭘 말인가?”

뉴스에서 쉬쉬하는 이유는 뻔하잖아요.?”

뭔데 그러나? 말 해보게.”

조만간, 모모 박사도 처형될 거래요.”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인가?”

모모박사의 뉴스가 안 나오는 건, 국민적 반감을 우려해서구요,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그 정도는 짐작이 가는 거지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구요. 반란죄인가가 적용된다던데요?”

반란죄? 정말 엉뚱한 말이군. 소설 하나 썼다구, 반란죄로 사형을? 좀 심한데. 뭔가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궁금해 죽겠군.”

 

그러나 아무도 모를 것이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낳을 때도 있고, 알아서는 안 되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감추면 감출수록, 알려고 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껍데기를 벗어버리면 이제는 그 사람을 알았다고 하고 더 이상 알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오만이다.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이 이렇게까지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렵다. 이것 또한 오만으로 비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확하게 말하면, 반란죄의 누명을 쓴 것이다. 나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던 그 남자가 나의 운명을 또다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는 거대한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수놓았던 그 수많은 여자들이 모두 반란죄의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 중 대부분은 풀려났지만, 몇 명은 정식으로 자백을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소설에 불과하다. 그것을 현실과 연관 지을 순 없다. 현실은 그렇게 냉혹한 것이다. 경찰은 나를 핵심간부로 지목한다. 어쩌면, 그것이 진실인지도 모른다. 아니, 진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다. 아니, 정부를 바꾸자는 게 아니다. 정부란 권력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게 질문을 해댄다. 그것 또한 권력의 남용이다. 비평가라는 권위 아래서 내게 질문을 하고, 기자라는 이름하에 질문을 한다. 경찰은 경찰이라는 권리 때문에 질문을 한다. 또 나는, 내 소설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질문하고 답하고……

 

그러면서, 나는 껍데기가 그립다는 생각을 한다. 차라리, 내가 알맹이를 보여주지 않았던들, 그 수많은 질문들이 내게 부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의 글이라는 것이, 이렇게 내 자신을 뒤흔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 나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낙엽이 떨어지고, 내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사형 날만을 기다리면서 난, 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한다.

 

- 대학교 3학년 때 나는 사창가에서 일하지 않았다. 나는 권위 있는 사람과 권력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것이 나의 수입원이었다. 그 중에는 권력이 높으신 양반도, 돈이 많은 양반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그들은 나를 좋아했다. , 담배, 당구, , 대화, 안마, 섹스. 이 일곱 가지 모두에 능한 나에게 누구든 녹아들었다. 어느 날은 두 세 번씩 상대를 바꾸어야 할 때도 있었다. 체력은 자신 있었기에 덕분에 나는 많은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 모든 돈이 권력과 재산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나는 전혀 부끄러움 없이 그런 돈을 벌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아기를 낳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가능했다.

나는 지금, 그 아이가 누군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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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예쁜 천사

 

 

 

─────────────────────────────────────

난 그녀에게 물었다

발가락이 얼마나 귀여운데?

그녀는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또 물었다

발가락이 얼마나 예쁜데?

그녀는 또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또또 물었다

발가락이 얼마나 사랑스러운데?

그녀는 또또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또또또 물었다

발가락이 얼마나 어려운데?

그녀는 또또또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또또또또 물었다

너의 발가락은 얼마나 귀한데?

그녀는 또또또또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드디어 울기 시작했다

────────────────────────────────────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황지우 뼈아픈 후회에서

현재

우리 그만 이혼해요.”

아내의 당당하면서도 약간은 목이 멘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결혼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듣는 소리다. 늘 그렇지만, 그 말이 내게 커다란 충격을 던져 주지는 않았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았을 뿐이다. 이혼을 하면 뭐가 좋지? 아내나 나에게나 이혼을 하는 게 이로울 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해가 될 것도 없다.

그러지 뭐

아내는 그의 커다란 눈을 더욱 더 크게 뜨고, 이맛살을 찌푸린 채 나를 쳐다보았다. 아내의 그런 부라림은 오래 가지 않았다. , 찌푸린 이마를 펴며 아내는 말했다.

아이는 어떻게 할 거죠?”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뭐.”

아내는 나를 흘겨보더니, 방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아내가 나간 방문 쪽으로 잠시 바라보았다. , 여자란.

날이 너무 더웠다. 목욕이나 해야겠다. 혹시나, 아내가 있을까 해서,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혹시라도 아내가 들을까 봐 발소리를 죽여 가며 욕실까지 걸어갔다. 혼자서 즐기는 오랜만의 목욕이다. 물을 받고 있으니, 문득 아내와 결혼하게 된 때가 생각난다. 아내와 나의 결혼은 정말 우습게 이루어졌다.

그것이 과연 우스운 것이었을까. 후후.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2. 과거

- 삶이란 죽고자 하는 무엇인가를

계속 자기에게서 밀어내는 것,

삶이란 우리들에 있어서

허약하고 낡은 모든 것에 대해

무섭고 무자비한 것

- 니체

Kenny-GThe Moment가 집안을 온통 휘젓고 있다. 그의 섹스폰 소리는 나의 휴식을 편안한 길로 가게 해준다. 목욕을 시작하기 전, 창문은 모두 닫고 문은 꼭꼭 걸어 잠근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 혼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킨다.

그때가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선미의 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신촌의 어느 비디오방에서였다. 그때, 우리는 복잡한 거리를 걷다가 문득, 너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은 무언가 행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선미의 대인기피증과 나의 대인공포증은 우리를 어딘가로 숨어들게 만들었다. 그때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비디오의 화면이 진행되는 동안, 긴장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고, 나는 선미의 몸을 더듬는 작업을 마치 항상 하던 일인 양 태연하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을까. 쾌락의 시작은 쾌락의 끝이었고, 팽팽하게 유지되던 긴장감은 영화의 마감과 함께 끊어져버렸다. 경험이 없었던 우리는 쾌락의 절정을 이루지 못했고, 쾌락의 어느 순간에서 그렇게 헤어질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때 이루지 못한 쾌락의 절정을 맛보기 위해 목욕을 준비한다. 쾌락의 절정에 서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절망감. 나는 그 절망감으로 욕실에 물이 넘칠 때까지 한참을 누워서 그녀 생각을 했다.

목욕물이 넘치면 수도꼭지를 잠근다. 피곤해진 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나는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맨손체조, 쿠샵, 자전거 타기 등 스트리킹은 한 시간쯤 계속된다. 땀을 한 바가지쯤 흘리고 나면, 조금씩 식욕이 돋는다. 먹는 건 언제나 나중 일이다.

욕탕에 들어가면, 펄펄 끓던 물이 많이 식어 있다. 텀벙, 몸을 완전히 담근다. , 이 시원함. 온몸에 묵을 때를 벗길 때의 시원함은 마치, 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상징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과거, 사람에겐 얼마나 많은 과거가 있었던가? 과거가 없는 사람은 미래도 없다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 과거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때타월이 나의 때를 벗겨낸다. 나의 과거를 벗겨내고 있다.

동전을 던져 운명을 결정하던 때가 있다. 지희를 만난 것은 내가 학교 신문사 차장으로 한참 바쁘게 지내던 때다. 지희의 집은 우리 집에서 10분쯤 거리에 있다. 수업이 끝나고 지희와 함께 집에 가는 날이면, 나는 항상 지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지희는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여자의 마음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나였던 터라, 지희가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지희에게 지나친 부담을 줄 거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어느 날, 지희와 한바탕 싸우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지희에게 꽃을 선물할까 말까로 한참 고민하던 중, 동전을 던져보기로 했다. 동전을 세 번 던져, 앞면이 많으면 줄 것, 뒷면이 많이 나오면, 안 줄 것. 동전은 뒤쪽이 더 많이 나왔따. 나는 뚜렷이 결정하지 못했다. 에이, 모르겠다. 주자. 내가 지희에게 꽃을 준 뒤로, 지희는 나를 피했다.

그 후 내가 지희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무슨 말을 했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나는 지희에게 끔찍한 말을 해주었고 결국, 지희에게 상처만을 안겨주고 말았다. 그런 상처는 곧 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때부터 나는 동전으로 모든 걸 결정하는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다.

때를 벗기다 보니, 묵은 때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살갗이 빨갛다. 온힘을 다해 때를 벗겨낸다. 지난 기억을 지워내듯이, 내 온몸의 때는 욕탕 속의 물로 흡수되어, 맑던 물을 더럽힌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쭈글쭈글해지기 시작했다. 목이 마르다. 양동이에 담은 물을 몸에 쫙쫙 뿌리고,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은 후,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냈다.

오렌지. 선미는 오렌지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가 오렌지를 좋아한 것은, 그녀가 떠먹지 않는 유일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처음 만나, 커피를 마실 때, 그녀는 커피를 조그만 차 스푼으로 떠서 먹었다. 선미는 그게 더 좋다고 했다. 만약, 그녀가 처음 만날 때부터 그렇게 커피를 떠서 먹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가 나를 싫어하는 걸로 알았을 것이다. 그것은 천성적인 그녀의 버릇이었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고 난 후면, 오렌지주스를 마시거나, 오렌지를 사 먹었다. 그것은 그녀의 기호품이었다.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오렌지가 먹고 싶어진다.

오렌지주스가 내 목을 시원하게 통과한다. 그녀의 신 맛이 떠오른다.

다시 욕탕으로 들어가, 비누칠을 했다. KENNY-G의 테이프 앞면이 다 돌아가고, 뒷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KENNY-G의 섹스폰 연주소리는 언제나, 과거와 현실, 미래의 순간적인 사고들을 온통 뒤죽박죽 만들어 놓으면서, 날 편안하게 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비누칠을 하고 나니, 온몸이 미끈미끈하다. 난 이 감촉이 너무 좋다. 평소에 거칠거칠하던 살결이 비누를 칠하고 나면, 마치, 선미의 살결같이 고와진다.

선미와 전화를 처음 밤을 새던 날이었다. 오빠, 나 무서워. 선미는 무섭다며 전화를 잡고 놓지를 않았다. ? 거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선미네 집은 신촌 부근에 있었다. 몰라, 애들 데모하나봐. 오빠, 전화 끊지 마. 그래, 알았어. 안 끊을께. 나는 그저 선미가 떠는 얘기를 무심코 듣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관심 있는 건 선미의 이야기와 어떻게 하면, 선미와 하룻밤 잘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라디오나 TV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선미의 이야기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미래에 대해서도 관심 없었다. 어떻게 하면, 선미의 고운 살결을 구석구석 더듬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난 선미가 하는 이야기를 밤새도록 들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아침이 왔다.

-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에 있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에 있다

시간이 똘똘

배암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 신동집 오렌지에서

비누칠을 다하고 난 뒷면, 물을 몇 번이고 뿌려주면서 몸 구석구석을 제대로 닦아주어야만 비누는 완전히 닦여져 나간다. 손으로 내 몸을 구석구석 닦아낸다. 이것은 선미의 살결이야. 나에게 주문을 외면서 그녀의 몸을 더듬지 못하는 아쉬움에 대한 대리만족을 한다. 비누는 잘 닦여져 나갔다. 선미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선미와 헤어지게 된 건, 이런 내 욕심 때문이다. 나는 선미에게 말했었다.

선미야, 오늘 집에 들어가야 돼? , ? 저기 저…… 오빠, ? 오늘 나랑 같이 있지 않을래? ? 그냥…… 선미의 안색이 변했다. 오빠! 오빠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날 사랑하긴 한 거야? 오빠가 관심 있는 건, 오로지 섹스, 섹스! 그때 비디오방에서 알아봤어야 했는데! 오빠는 내가 정말 뭘 원하는지 몰라? 실망했어! 선미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놀라 속으로 외쳤다. 선미야……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지희에게 무엇을 실수했는가를.

지희는 내가 그녀를 곧 편안하게 해주길 기대했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편안하게 해주기보다는 그녀를 증오하고, 그녀에게 욕을 해댔고, 그녀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갔다. 결정적으로 그녀에게 상처를 준 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동전던지기를 하지 않았다.

비누를 말끔히 닦아냈다. 수건으로 몸을 닦는다. 목욕을 하고 나면 언제나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제 머리를 감을 차례다. 머리를 감을 때, 샴푸로 감을까? 비누만을 칠할까? 하는 고민은 항상 나를 괴롭힌다.

선미의 머리냄새는 좋았다. 선미와 포옹을 할 때마다 난 선미의 머리냄새에 취하곤 했었다. 선미의 머리냄새가 나는 샴푸를 찾기 위해, 어느 날은 슈퍼에서, 샴푸냄새를 일일이 맡아보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선미의 머리에서 나는 냄새와 똑같은 냄새의 샴푸는 없었다. 난 선미에게 물었다. 머리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좋아. 무슨 샴푸 쓰니? 샴푸 안 써. 나는 놀라 물었다. 그럼? 비누로 감아. 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비누로 머리를 감고 나니, 머리가 까칠하다. 내 머리는 비누로 머리를 감으면 부드러워지지가 않는다. 머리에 묻은 물기를 제거한다. 이제 목욕은 끝난 건가? KENNY-G 테이프 뒷면이 다 돌아갔나 보다. 다시 The Moment가 흐른다. 몸에 묻은 물기를 제거하고, 그 상태로 소파에 털썩 주저 않아 담배를 하나 입에 문다.

선미를 만나면 항상 듣고 싶던 노래였다. 나는 한 번도 선미와 이 노래를 같이 들어본 적이 없다. 선미와는 한 번도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선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선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 한편을 보면, 거기에 대해서 하루 종일 얘기하는 게 선미의 일과다. 책을 한권 읽으면, 내가 알아먹을 때까지 하루 종일을 이야기한다. 분석하고 다시 생각하고 또다시 분석하는 것이 선미의 유일한 낙이었다. 선미는 나에 대해 세밀히 분석했을 것이다. 선미는 나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듯했다. 나는 선미에 대해 잘 모른다. 음악소리가 조금씩 사라져갈 즈음, 초인종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잘못 들었나? 그러나, 조금 있으니 그 소리는 또 들린다.

현관문으로 가서 숨을 죽이고 밖을 내다보았다. 웬 여자가 서 있다. 나는 다시 한 번,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못 보던 여자가 서 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 저기요, 저 지희라고 하는데요…… 갑자기 숨이 탁 막히는 걸 간신히 참았다. 지희…… 지희가 저렇게 변한 건가? 지희는 나를 찾았다. , 난데, 잠깐만…… 난 이렇게 말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깜빡 내가 지금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다는 걸 잊어버릴 뻔 했다. 난 옷을 입으려다가 망설였다. 우리 집엔 웬일일까? 벌써 그녀를 본 건 일 년이 넘었는데. 어쩌면…… 어쩌면…… 나는 옷을 내팽개치고 알몸인 채로 현관문을 확 열어젖혔다. 거기엔, 빨간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바탕에 은빛 나는 별표가 군데군데 새겨진 미니스커트를 입은 화려한 옷차림의 지희가 유혹적인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를 본 지희는 전혀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 웃으며 나의 나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 오랜만이라는 인사가 꽤 매혹적인데요.”

당황할 줄 알았던 내 생각에 찬물을 끼얹은 건 지희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희는 문을 잠그고 들어와, 나를 마루에 눕혔다. 더욱더 웃지 못 할 상황은 그 후에 일어났다. 지희는 나와의 격렬한 섹스를 마친 후, 마치 내가 그녀를 범한 것처럼 혼자서 훌쩍이면서 말했다.

선배, 선배가 그럴 줄 몰랐어요. 나 이제 어떡해. 나랑 결혼 안하면 고소할 거예요.”

지희의 말에 대해, 나는 잠깐 이게 무슨 뜻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을 뿐이다.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누가 뭐 하지 말랬나? 네가 나 먹여 살릴래?”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말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은 이루어졌다.

3. 현재

그대의 것이 아니거든 보지를 말라!

그대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라면 보지를

말라!

그래도 강하게 덤비거든

그 마음을

힘차게 불러 일으키라!

- 괴테 파우스트에서

목욕을 끝내고 지금 나는, 아내와 식사 중이다. 식사 중에도 우리 부부는 별다른 대화가 없다. 늘 조용하다.

밥 좀 더 줘

아내는 말없이 밥 한 그릇을 담아온다.

위자료는 충분히 드리죠

고마워

몇 마디 대화가 오고가지만, 굉장히 형식적이고 틀에 박혀 있다.

이혼은 언제쯤 할 거지?”

지금 이혼수속 밟고 있으니까, 그것만 끝나면 되요. 당신은 이 집에서 살아요, 최소한 1년은 넉넉히 살 수 있을 거예요. 어차피 아이는 당신이 못 키울 것 같으니까 제가 데려가죠. 1년 안에, 당신이 일자리 구하거든 데리고 오셔서 키워도 되구요.”

아니, 그냥 당신이 키워. 난 아무래도 애 키우는데 소질이 없을 거 같애

아니, 애 키우는 것도 소질이 있어야 하나요?”

아내는 또 따지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의례히 그러듯,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데 열중한다. 피곤한 건, 딱 질색이다.

당신은 도대체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아내가 던진 이 질문에 나는 문득 내가 왜 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 나도 잘 모르겠어. 한번 생각해볼게.”

이렇게 말하고, 집을 나왔다.

아내가 던진 그 말이 나를 괴롭혔다. 도대체 내가 왜 살지? 처음에, 아내는 나를 먹여 살렸고, 나는 꼭두각시처럼 그녀가 하자는 대로만 했다. 어느 날 그녀는 술집을 차렸고, 나를 그 술집의 사장으로 앉혔다. 아내는 절대로 그녀 스스로 물건을 사는 법이 없었다. 정작, 돈을 내는 건 그녀이면서도 항상 무언가를 사야 할 때면, 나에게 뭔가를 사달라고 조르곤 한다. 나는 황당해하면서도 그러마고 했다. 그러면, 아내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내 눈앞에선 모두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나 역시, 사람들의 눈에 비취진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때론 우연이란 것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무작정 거리를 걷던 중,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 지나갔다. 나는 어디선가 보았겠지 하면서 지나가는데, 그 여자가 내게 말을 건넨다.

오빠, 저 선미예요! 기억하죠?”

문득, 그녀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에 모자이크 되어 흘러갔다.

선미?”

오빠, 이게 얼마만이에요, 결혼은 하셨어요?”

잠시, 나는 망설였다.

아니, 아직……

그러나 나는 봤다. 선미의 두 손이 뒷짐을 지고, 무엇인가를 하려는 것을. 그 무엇인가가 무엇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선미도 알 것이다.

우리 오랜만에 봤는데, 어디 가서 얘기 좀 하다 갈까? 바쁘지 않지?”

대답은 들을 필요가 없었다. 더 이상 빠지지 않는 반지에 대해서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선미 역시 결혼했을 테고, 이혼을 하려 하는 중이라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선미 역시 거기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선미는 얼른 나의 팔에 팔짱을 끼었고, 해후는 이렇게 나를 다시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었다.

공원에선, 기타를 치는 사람들, 벤치에 누워서 잠을 자는 사람들, 잔디밭을 뒹구는 사람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거리의 광인에 대해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미, 이 사회에선 무관심의 미덕이 존재한다. 그녀와 나의 관계도 무관심의 미덕으로 이룰 수 있었던 만남일지도 모른다. 해가 지고 있다. 집에다 전화를 하려다, 문득 선미생각이 났다. 옆에 있는 선미를 생각하니, 전화를 하는 게 우스워졌다. 선미에게 물었다.

집에다 전화 안 해? 늦었잖아?”

아직도 제가 철없는 스무 살 인 줄 아세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이 오자 우리는, 공원에서 가장 깊숙한 곳 벤치에 앉아, 서로의 살결을 더듬으며, 밤의 싸늘한 바람을 식혔다. 공원 반대편 어디선가, 기타와 하모니키가 어우러진 연주가 우리의 밤을 무르익게 했다.

4. 현재

비록 떠가는 달처럼

미의 잔인한 종족 속에서 키워졌지만,

그녀는 한동안 걷고 잠깐은 얼굴 붉히며

또 내가 다니는 길에 서 있다

그녀의 몸이 살과 피로 된 심장을

갖고 있다고 내가 생각할 때까지

- 예이츠 첫사랑에서

동이 트자, 선미는 말했다.

저 회사 가야 해요? 또 언제 보죠?”

오늘 밤에

선미를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지옥 같은 걸음걸이가 아내를 생각나게 했다. 아내는 외박을 한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오늘, 그 일을 말한다면 아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다. 어쩌면, 아내는 아무것도 묻지 않을지 모른다. 아내는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 테니까. 아니, 애초에 나를 사랑한 적도 없었으니까.

초인종을 눌렀다. 아이가 문을 열어주며,

아빠

하며 반갑게 맞는다.

그래, 엄마는 어디 가셨니?”

몰라요, 어디 잠깐 나갔다 온다고 집 잘 지키고 있으랬어요.”

언제 나가셨니?”

아침에요

다행히도, 아내는 집에 있지 않았다. 한숨 자고 나는 또 선미를 만나러 갈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한참 꿈을 꾸는 중이다. 아내가 불에 타고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무심결에 아내를 살리려고 아내의 몸에 물을 끼얹었다.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나는 빠른 동작으로 아내의 몸에 물을 부었다. 불이 다 꺼지자, 시커멓게 탄 아내가 눈동자를 깜박이고 있다. 그 눈, 잊지 못할 눈이다. 그토록 맑은 아내의 눈은 본 적이 없다. 아내는 보조개를 띠며 살짝 웃었다. 그토록 자연스러운 아내의 웃음은 본 적이 없다. 나는 무심결에 여보……하고 중얼거렸다.

여보, 여보!”

아내였다. 그녀가 나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제 어디 갔었어요? 몸에서 왜 이렇게 열이 나죠?”

지금 몇 시지?”

다섯 시요.”

나는 몸을 일으키고 외출준비를 했다.

여보, 이 몸을 해가지고 어딜 가요?”

남이야, 가든 말든, 이혼 수속은 다 되가나?”

아내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집을 나왔다.

우스운 일이다. 아내가 내 걱정을 다 하다니. 아내는 한 번도 나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다. 물어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아내는 자기 할 일만 하고, 그녀의 허영만 채우면 그걸로 만족했다. 파티에 초대되면, 나는 그녀의 꼭두각시가 된다. 내가 추기 싫어도 그녀가 원하면, 나는 춤을 추어야 했고, 노래도 불러야 했다. 그러면, 파티에 같이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우리를 부러워했다.

아직, 거리엔 어둠이 깔리지 않았다.

선미를 만나려면, 어둠이 필요하다. 누군가 우리를 아는 사람이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을까 겁이 난다. 철저한 어둠에서 우리는 서로를 만나야만 한다. 선미의 회사가 끝나려면, 아직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공원에서 기다리는 동안, 아직 20대의 젊은 연인들이 많이 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보고 있으니, 선미의 남편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의 약속을 깨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가지 방법이 생각났다. 오늘은 선미에게 청혼을 해보는 거다.

이런저런 생각에 시달리다 보니,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걸 발견했다. 내 앞에 선미가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데, 사람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어요?”

, 저기……

뭔데요?”

선미야, 우리 결혼할래?”

순간적으로, 선미의 맑은 눈이 흐려졌다. 그 표정은 금세 거두어지고, 침착한 목소리로 선미는 말했다.

글쎄요……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선미의 손을 붙잡아, 선미를 끌어 당겼다.

어디 가요?”

, 네가 나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 기억나니?”

마지막으로 한 말?”

그래, 네가 그랬었지. 오빠! 오빠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날 사랑하긴 한 거야? 오빠가 관심 있는 건, 오로지 섹스, 섹스! 그때 비디오방에서 알아봤어야 했는데! 오빠는 내가 정말 뭘 원하는지 몰라? 실망했어!”

선미에게선 아무 대꾸가 없었다. 그녀는 내 걸음을 따르지 못해, 종종걸음을 칠 뿐이었다.

오늘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보여줄게. 더 이상 실망하지 않을 때까지.”

그날 밤, 선미와의 결합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선미는 힘들어했다. 나는 힘들어하는 선미를 보고서도, 그녀가 했던 그 말을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고 싶었다. 선미의 출근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그렇게 선미를 괴롭혔다.

내가 그녀를 놓아주자, 선미는 참고 참았다는 듯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회사 안 가?”

절더러 이 꼴을 해서 가라구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아는 체도 안했을 거예요.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 있죠? 절 사랑하기는 하는 건가요? 정말 사랑한다면 이럴 수 있나요?”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정말 사랑하니까 이러지.”

선미의 어이없는 표정을 보니까, 다시금 재미있어진다. 드디어 나는 기회를 잡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남편은 어떤 사람이지?”

선미는 이번엔 다시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남편이라뇨?”

, 결혼 했잖아?”

선미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오빠! 그럴 수가! 정말 그럴 줄 몰랐어요. , 여태껏 오빠가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구요. 제가 오빠를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알기나 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제가 그렇게 떠났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가 있죠? 순간적인 것이었어요. 그때의 기분은 그저 순간적인 것이었다구요. 아무래도, 제가 사람을 잘못 봤나 봐요. 오빠만은 믿었는데……

선미의 말에 머리가 망치에 얻어맞은 듯 아파왔다. 이럴 리가 없는데.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선미의 흐느낌은 이제, 구슬픈 곡조로 바뀌어 있었다. 선미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선미가 그렇게 우는 것을 보니, 내게서도 눈물이 흘렀다. 나에게도 감정이란 게, 슬퍼할 줄 아는 감정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지나온 세월이 억울해졌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창문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있다.

5. 미래

인생의 갈림길에 서게 될 때, 결국 사람들은 한 쪽 길만을 택하게 되어 있다. 몸이 한 개인 이상, 두 가지의 길을 모두 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을 인용하곤 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이미 독충으로 변한 그레고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애초부터 죽음을 향해가는 일방통행로였다. 때로 사람들은, 일방통행만을 고집하기도 한다. 갈림길보단 일방통행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은 걸어가기엔 훨씬 쉽기 때문이다.

선미에게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고는 그녀가 잠든 걸 확인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어디갔다 와요?”

생각해보니, 외박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알아서 뭐하게?”

여자 생겼죠?”

뜨끔했지만, 태연하게 말했다.

이혼수속은 언제 되나?”

이혼은 안할 거예요.”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믿었던 선미와의 결혼이 난관에 부딪히는 말이었다.

?”

저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이상한 말이었다. 아내가 처음 이혼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녀는 말을 꺼내기를 주저했었다. 지금의 아내는 오히려 당당한 말투다. 더 알 수 없는 건, 아내는 지금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내는 절대로 사랑이란 말을 꺼낸 적은 없었다. 아내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아내는 지금껏 나를 사랑해 온 건가? 아니면, 이혼을 하기 싫은 것에 불과할까?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복잡한 문제는 싫다. 아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다시, 선미 생각이 났다. 그럼, 선미는 어떻게 하지?

일방통행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요령 있게 빠져나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쩌면, 내 삶은 동전의 선택이 사라진 때부터 일방통행로였는지 모른다. 지금 나는 선미와 아내 사이에서 갈등한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의 모든 걸 아내가 결정해 주었듯이, 지금 나는 또, 아내가 결정 해주기를 기다려야 했다. 선미는 지금 밤을 지새운 그 여관에서 나를 기다리면서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아내가 내게 대한 그 태도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선미에게, 나는 말할 것이다. 널 사랑한다고. 그렇지만, 나는 이혼할 수가 없다고.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선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미 선미는 그곳에 없었다. 선미가 다닌다는 회사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그런 사람은 근무한 적이 없다는 말 뿐이었다. 선미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인가, 선미를 찾기 위해 허우적대는 나를 발견하고, 아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허우적대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아내의 눈빛은 그 옛날, 내가 그녀를 증오하던 때, 그녀에게 상처 입혔던 마지막 말을 생각나게 했다.

-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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