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목표는 100권...이지만 턱없이 부족했던 2020년의 독서결산



코로나와 함께 한 2020년.

코로나 때문에 외출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책을 더 많이 읽게 될 줄 알았다.

처음부터 욕심내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로 시작한 2020년이었지만

2019년과 비교해도 반도 못 읽었다.

역시 독서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과 의지의 문제지.

상반기에는 뉴스 보느라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책을 펼치고 있어도 자꾸 폰으로 실시간뉴스를 검색하게 됐다.

최근에 뉴스 보는 시간을 많이 줄여서

그나마 2020년에 읽은 책들의 반을 최근 2달 동안 소화했다.

그리고 매달 2권씩 읽어야 하는 독서모임 <책중독자>의 힘이 컸던 것 같다.

2월과 5월, 8월에는 읽긴 했지만 한 권도 완독하지 못했다.

모임만 했었더라도 24권은 더 읽었을텐데. 독서모임의 소중함이란.

(2021년이면 독서모임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2020년에도 역시 몇 년 동안 꾸준히 정리하고 있는 민음사 세계문학 캘린더. 민음사 세계문학 캘린더




1. 9번의 일 / 김혜진

2. 불멸 / 밀란 쿤데라 ★★★★★

3.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재독]

4.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 이탈로 칼비노

5. 책그림책 / 밀란 쿤데라 外

6. 정체성 / 밀란 쿤데라

7. 톰 소여의 모험 / 마크 트웨이

8. 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9. 페스트 / 알베르 카뮈 ★★★★★

10.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로날트 D 게르슈테

11.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 파올로 조르다노

12. 마의 산 上 / 토마스 만

13. 사랑 밖의 모든 말들 / 김금희

14. 떠도는 땅 / 김숨

15. 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

16.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17. 당신과 나의 안전거리 / 박현주

18. 공부란 무엇인가 / 김영민

19. 스토너 / 존 윌리엄스 ★★★★★

20.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21. 연년세세 / 황정은 ★★★★★

22. 책, 이게 뭐라고 / 장강명

23. 고양이를 버리다 / 무라카미 하루키

24.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 올가 토카르추크

25. 그림자의 강 / 리베카 솔닛

26. 복자에게 / 김금희

27. 로마제국 쇠망사 1 / 에드워드 기번

28.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 호프 자런

29. 올리브 키터리지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30. 꾿빠이, 이상 / 김연수 ★★★★★

31.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재독]

32. 우리가 날씨다 / 조너선 사프란 포어

33. 디에센셜 : 조지 오웰 / 조지 오웰 [재독]

34.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 조너선 사프란 포어

35.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 김이설

36. 이선 프롬 / 이디스 워튼 [재독]

37. 마더 크리스마스 / 히가시노 게이고

38. 12월의 어느 날 / 조지 실버

39. 화이트 호스 / 강화길

40.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41. 작은 아씨들 / 루이자 메이 올컷

★★★★★ : 추천책

물론 별점 5개짜리 책들은 더 많지만, 누가 읽더라도 좋다고 느낄만한 책을 선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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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1-04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널럴하다고 해서
꼭 책을 읽는 건 아니라는 말쌈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책은 없는 시간을 쪼개서 읽는
것이지요. 사실 그런 점에 아싸라한
맛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난 잠도 덜 자면서 책을 읽겠다!~
뭐 그런 결의랄까...

암튼 신축년에도 열심히 읽어 BoA요.

뒷북소녀 2021-01-04 16:17   좋아요 1 | URL
아, 신축년, 신축년... 들을수록... 뭔가 새롭게 세우기 좋은 해인 것 같아요.
올해는 정말, 없는 시간을 더 쪼개서 열심히 읽고 기록으로 남기려구요.
작년엔 제가 너무 코로나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요...

신축년에도 변하지 않고, 건강하게,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막시무스 2021-01-04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 이쁘게 정리가 잘 되었네요! 이 페이퍼 보기만해도 뿌듯하시겠어요!ㅎ

뒷북소녀 2021-01-04 16:1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리뷰는 그때마다 못 써서요...
이렇게 필사라도 남기려고 해요.
막시무스님, 새해에도 건강한 이웃으로 잘 지내보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1-01-0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소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뒷북소녀 2021-01-04 16:20   좋아요 1 | URL
아, 이렇게 새해 인사를 나누니, 진짜 새해가 된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께서도 건강하시구요... 복 많이 받으세요.^^

scott 2021-01-04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페이퍼 뒷북 소녀님에 독서이력들이
2020년 한해 독서 퍼즐 아카이북 페이퍼처럼 멋지네요. ^ㅎ^



뒷북소녀 2021-01-05 13:2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게으른 제가 유일하게 꼬박꼬박 기록하고 있는 것들이랍니다.
이 맛으로다가요.ㅋ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년 책중독자의 장기 프로젝트였던

밀란 쿤데라 전집(전15권) 함께 읽기에 이어

새롭게 도전하는 프로이트 전집(전15권) 함께 읽기.

그동안 책중독자 모임에서도 여러 번 추천됐던 프로이트지만

늘 책 선정 투표에서 호응이 적어서 함께 읽을 수 없었던 책.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프로이트 전집 시리즈 개정판이 나왔고,

마침 도서를 지원해주는 이벤트가 있어서

정말 프로이트를 읽고 싶어했던 멤버들과 함께

소수 정예로 프로이트 전집 읽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프로이트 책은 이미 몇 권 가지고 있지만

번역도 오래됐고 출판사마다 제각각이라서 소장하는 재미가 없었는데

이번에 나온 개정판은 부분적으로 수정한 것도 있지만

아예 전부를 새롭게 번역한 것도 있어서,

(읽기도 힘든 책을 개정이라니.)

게다가 전집 덕후인 나에게는 딱인듯.

1권부터 차례대로 클리어하고픈 마음이 샘솟는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프로이트 전집의 1번이자 프로이트 입문서로 알려진 『정신분석 강의』

보통 전집들은 1권부터 차례대로 읽는 걸 선호하는데, 특히 이번에는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대학생 때 무엇을 하든 사람 심리를 공부하는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교양수업 외에도 심리학 수업을 몇 번 찾아들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역효과가 나서 심리학에 대한 반발심이 생겼다.

(모르는게 약이었지.)

특히, 프로이트의 이론에 동의할 수가 없었는데

"이 아저씨는 뭔데, 내 마음을 다 안다는거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지금도 어떤 분석 틀을 가져와 나를 분석해준다고 하면 너무 싫다.

그런데 나는 왜 프로이트를 읽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 반발심이 있었기 때문에 읽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도 고전이 된 책인데, 뭔가 있을거야.

"그렇게 자신 있다면, 나를 한번 설득해 보시오."

이런 마음이었던거지.

『정신분석 강의』는 총 28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직 4강까지 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워밍업 같은 느낌의 1강 서론 부분이 가장 좋았다.

(내 강의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지금 빨리 수강 정정하시오. 이런 느낌.)

왜냐하면 나처럼 정신분석에 대해 반발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당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귀를 뾰족하게 세우고 덤빌 준비를 했을텐데,

지금은 그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내 강의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지금 빨리 수강 정정하시오. 이런 느낌.)



정신분석은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두 가지 원칙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주었고,

그로 인해 그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세상 사람들의 지적인 편견과 충돌하고,

또 하나는 심미적, 도덕적 편견과 어긋나는 것입니다.

(…)

이러한 편견들은 정서적인 힘들에 의해서 고착된 것이기 때문에

이들과 싸우는 것은 아주 힘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분석 강의』, 24~25쪽

그는 사람들이 정신분석에 대해 가장 반감을 가지는 이유 두 가지를 꼽고 있다.

1. 우리의 정신 활동이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무의식적이라는 것.

의식적으로 활동하는 것도 사실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2. 성적 충동이 신경증이나 정신 질환을 불러일으키는 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

내가 가장 반감을 가졌던 주장도 바로 이것이다.


여러분이 이제까지 받아 온 교육의 모든 경향이나 여러분의 모든 사고방식은

불가피하게 여러분을 정신분석학에 대한 반대자로 만들어 갈 것이며,

이러한 본능적인 적대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마음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이겨 내야만 하는지

여러분에게 주지시켜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신분석 강의』, 16쪽

그는 일반적인 치료와 달리, 정신분석적인 치료는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지만

편견을 갖지 말고 잘 들어달라고 당부한다.

정신분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가질 법한 의문을 그는 꿰뚫어보고 있었나보다.

심지어 표지 속 그의 눈빛도 그런 눈빛이다.

프로이트가 저런 눈빛으로 계속 지켜보고 있어서 열심히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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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14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프로이트를 읽겠다고
이러저러한 책들을 사모았지만
결국 한 개도 읽지 못했네요...

그리고 앞으로도 읽게 되지 않을
것만 같다는.

그리하야 프로이트 읽는 분을
응원해 보렵니다 빠이팅.

뒷북소녀 2020-12-14 13:36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 사모은 책들이 이러저러한데요...
이번에 아주 깔끔하게 전집 개정판이 나왔더라구요.
개정판이면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개정판이면...
그래서 시작해 보았습니다.
과연 우리가 몇 권까지 읽을 수 있을지...모르겠네요.

공쟝쟝 2020-12-14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오 그런 이벤트라니,!! 저도 언젠가는 도전할테지만 역시 올겨울은 응원으로 만족 할래여 ^.^

뒷북소녀 2020-12-14 13:38   좋아요 1 | URL
네. 개정판 출시기념으로 프로이트 전집 중 한 권을 읽는 모임에게 책을 지원해주는 이벤트였습니다.
계속 읽자고 읽자고 얘기만 했던 책인데, 이벤트를 기회삼아 과감하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일단 출발은 순조로워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cyrus 2020-12-14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로이트전집 공독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비대면 모임도 하는 거예요? 코로나 시대에 이런 모임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비록 모임에 참여하지 못해도 후기를 보는 것만으로 흥미롭거든요. 독서 프로젝트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

뒷북소녀 2020-12-14 14:52   좋아요 0 | URL
흑흑흑. 이 눔의 코로나... 10년 넘게 해오던 모임인데,
올해는 1월 모임 이후 코로나 때문에 독서모임을 한번도 못했어요.
모임을 못하다보니, 완독하는 책들이 별로 없다는 멤버들의 성원으로
온라인으로 모임을 하고 있는데...
온라인으로 모임을 하려니 더 부지런해져야겠더라구요...
몇 권까지 읽을 수 있을지... 감사합니다.^^
 

직접 만든 독서메모지(떡메모지) 나눔합니다!

 

 

 

 

제가 원하는 떡메모지가 없어서 직접 디자인하고 인쇄한 떡메모지 입니다.

소량 인쇄가 안돼서 제작하다 보니, 제가 40년 넘게 써도 다 쓸 수 없을만큼 양이 많아졌어요.

제가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제작업체에 따르면 권당 100장씩이라고 하네요.

1년에 책 100권 정도 읽으시는 분들께 딱인 용량이죠?

 

비접착 메모지구요, 다이어리나 책장에 저처럼 붙여서 사용하실 수 있어요.

특히, 제가 기록하고 싶었던 부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읽었는지, 독서 기간이었어요.

그런데 이 부분이 디자인된 떡메는 없어서 직접 만들게 됐어요.

 

제가 원래 이런 거 소소하게 만드는 거 좋아해서요,

상업적인 목적 전혀 없이 제 사비로 직접 만든 떡메이니, 필요하신 분들은 덧글 남겨주세요.


 

 

단, 두 가지 조건 이 있어요.

우선 저랑 소통하고 있는 서재 친구분들이면 좋겠구요,
제가 나눔한 보람 있게, 받으시고 나서 잘 사용하고 있는 모습 한번만 보여주시면 좋겠어요.

그럼, 기쁜 마음으로 제가 내년에도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어서 나눔해 보도록 할게요.


* 신청은 덧글로 남겨주시면 되세요. (선착순 아닙니다.)

* 발송은 1권씩(100장) 우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택배비는 부담스러워서요.)
* 디자인도용은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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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20-01-10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이런것도 만드셨군요! 전 꼼꼼하지 못해 다른분에 양보하겠습니다 ㅎ

2020-01-11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뒷북소녀 2020-01-11 17:09   좋아요 1 | URL
아, 감사합니다. 정말 별거 아니라서요.^^ 부담 갖지 마시고 받으셔도 돼요. 비밀덧글로 배송정보랑 성함 남겨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2020-01-12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3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雨香 2020-01-18 09: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목요일에 받았고요~ 어떻게 작성해볼까 해서 뒷북소녀님 페이지 다시 들어왔어요.
다시 보니 글씨도 잘 쓰세요 ^^
(갑자기 손글씨 쓰려니 ~ ㅠㅠ )

잘 사용하겠습니다.
일단 시험삼아 사용해 본 내용은 페이지에 남겨 두었습니다.
https://blog.aladin.co.kr/rainaroma/11443585

서니데이 2020-01-1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모지 디자인이 예뻐요. 나누시는 마음도 따뜻합니다.
뒷북소녀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자이온 2020-12-06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지금도 가능할까요?

뒷북소녀 2020-12-07 13:29   좋아요 0 | URL
아, 아쉽게도 모두 나눠주고 지금은 없어요 ㅠㅠ
 
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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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노동(고용)은 사람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가! 내일을 대비할 수 없어서 걱정인 우리들에게!

2020년의 첫 날, 첫 책으로 선택했다. 예전에 읽었던 『딸에 대하여』가 좋은 인상으로 남아서 '김혜진'이라는 작가 이름만 보고 선택한 책인데, 책을 읽으면서 화도 나고, 우울해지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새해 첫 날엔 좀 더 희망차거나 각오를 다질 수 있는 책을 읽고 싶었는데, 주인공과 같은 심정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힘이 쭉 빠져버렸다.

그는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을 일했다. (9쪽) 그러던 어느 날 부장이 불러서 갔더니 명예롭게 퇴직시켜줄테니 이제 그만 사직서에 사인을 하란다. 부장의 말처럼 나쁜 조건은 아니었지만, 그는 계속 다녀보겠다고 했다. 아직 퇴직 이후이 일들을 준비해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직장인들이 그럴 것이다.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다른 일을 준비할 겨를 혹은 여유가 없다.

그에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상하고 준비할 만한 시간이 주어진 적이 없었다. 오늘 해야 하는 일은 많았고 그걸 다 해내면 어김없이 하루가 끝났다. 그의 하루라는 건 처음부터 그의 능력과 노력, 수고에 맞게 잘려져 있는 것이었다. 무언가 말할 수 있다면 그는 겨우 그 정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10쪽

그가 계속 회사를 다닐려면 일정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는 벌써 세 번째 교육 대상자가 됐고, 세 번째 교육이 끝나면 최종 평가서가 나오고 평가 점수에 따라 그의 업무나 업무지가 변경될 수도 있었다. 회사에서 하는 교육이라는 것이,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책을 읽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의 업무와 지정도서 내용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회사가 원하는 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아마도 회사는 처음부터 모범답안이라는 것을 정해 놓았을 것이다. 아니면 그의 보고서 내용이 어떻든 간에 평가점수를 나쁘게 매기기로 작정했는지도 모른다.

평가점수가 좋지 않았던 그는, 그동안 해왔던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타 지역 상품 판매 부서로 발령이 났다. 터미널 근처 거점 판매센터라는데, 말만 '거점'이지 '거점' 삼아서 영업을 할만한 곳이 없다.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면 둘째 달부터는 기본급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어쨌든 자신의 담당 구역을 돌아다녔다. 공단지역이라서 주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았는데, 그는 그들의 편리(예를들면, 인터넷이 안되면 고쳐주는)를 봐주며 조금씩 인심을 얻기 시작했고 둘째 달에는 드디어 상품을 하나 판매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회사는 그의 이런 영업 판매 방식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출장비를 받고 수리를 해주는 직원들과 업무가 겹치게 된다고 말이다.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고, 그동안 돈돈하게 얻어뒀던 인심까지 잃어갔다. 그 외국인 근로자들도 서운했을 것이다. 계약하기 전에는 공짜로 수리도 다 해주더니, 정작 계약을 하고나자 콜센터에 접수하라고 하니.

처음부터 영업이라고는 배운 적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을 영업할 수 없는 곳에 밀어 넣고 어떻게든 뭐든 팔아보라고 다그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런 덫에 걸려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덫이라고 생각하자 정말 그런 것처럼 생각됐고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몸을 떨었다. 83쪽

영업 실적이 나빴던 그는 다른 곳으로 또다시 파견됐다. 이번에는 지방 소도시 시설1팀으로 발령 났다. 1년간 수리, 보수 및 설치 업무를 담당하고, 업무 평가가 좋으면 재고용을 보장한다는 회사의 약속이 있었다.(125쪽) 오랫동안 현장팀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으니, 비록 몸이 힘들더라도 (다른 사람 몫까지 더 열심히) 열심히 일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고객의 나쁜 평가 뿐이었다. 어쩌면 이것도 조작되었을지 모른다. 고객은 아주 사소한 트집을 잡았을 수도 있는데, 회사에서 부풀린 것일지도. 왜냐하면 그는 미운털이니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일방적인 업무 배제였다. 출퇴근 명부에서 그의 이름이 삭제되고, 더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는 대기 발령 상태였다. 하지만 노조에 가입하고 반년이 지난 뒤에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이제 더이상 본사 소속 직원은 아니지만 어쨌든 기존 월급의 80퍼센트를 보장하고 단일 직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하청업체 소송으로 일하다가 현장 업무가 모두 완료되면 본사 소속으로 복귀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새로운 발령지에 도착해서 보니 그가 맡은 업무는 마을 주민들의 반대가 심한 곳에 송전탑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작업을 하는 시간보다는 마을 주민들과 부딪히고 어깨 싸움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무슨 단체에서도 다녀가고 뉴스에 보도되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의 신상이 털리기도 했다.

78구역 1조 9번. 그가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부여받은 소속과 이름이다. 이제부터 그는 '9번'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를 '9번'이라고 부른다. 그도 직장동료들을 '3번'이나 '7번'으로 부른다. 그들에게 진짜 이름은 더이상 필요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존중 받을 수 있는 그들의 역할이나 업무가 없는 것처럼.

그는 지금껏 해온 이 일이 자신의 일이고 그 외에 다른 일은 할 마음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시 처음처럼 어떤 일에 매달릴 자신은 없었다. 그러니까 그가 회사에 기대한 건 마땅히 자신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들이었다. 존중과 이해, 감사와 예의 같은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바란 것뿐이었다. 168쪽

'9번'이 된 그는 달라졌다.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는 일도, 그저 회사에서 시킨 일이기 때문에 진행한다. 노동(고용)이 인간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노동(고용)에 점점 잠식되어가는 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회사는 회사일 뿐이다. 가끔씩 회사(대표 일가)를 상대로 의리 혹은 충성심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보곤 하는데, 회사는 영리를 추구하는 이익단체일 뿐이다. 자신의 영리에 반하는 것은 그냥 두지 않는다. 회사 따위에 의리를 기대하는 우리가 잘못된 것이다. (라고 늘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니 우리를 가족같이 대하겠다는 말도 제발 거둬두길. (쓰다보니 흥분해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새해 첫 날이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며 기운을 얻고자 했는데 영 틀려버렸다. 물론 소설적인 설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왠지 어딘가에는 있을법한 이야기. 이보다 더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고, 무엇과도 연대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부당한 일을 겪고 있을까. (그나마 그는 회사에 노조가 존재해서 명예 퇴직이라도 제안받을 수 있었을텐데.) 게다가 노동(고용)에 사로잡혀 그날 그날의 소확행만 추구하는 내가 그였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암담하다. 직장인들의 가장 큰 꿈이 사직서를 던지는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 사직서를 당당하게 던지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

그가 아는 삶의 방식이란 특별할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어른이 되고, 자신이 자라온 것과 비슷한 가정을 꾸리고,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었다.

만족스러운 삶. 행복한 일상. 완벽한 하루. 그런 것들을 욕심내어본 적은 없었다. 만족과 행복, 완벽함과 충만함 같은 것들은 언제나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짧은 순간 속에만 머누는 것이었고, 지나고 나면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것에 불과했다. 삶의 대부분은 만족과 행복 같은 단어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그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쌓여 비로소 삶이라고 할 만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그는 믿었다. 113~114쪽

해선을 괴롭히는 건 오늘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일들이었다. 내일을 대비할 수 없다는 사실. 대비할 수 없을거라는 걱정. 168쪽

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들이, 삶을 다른 방향으로 놓아둘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그것들을 그냥 흘려보냇다. 스스로에게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자신을 막아서기만 했다.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럼에도 아주 작은 것 하나쯤은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두 가지 마음이 들끊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둔 걸지도 몰랐다. 223~224쪽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는 어떤 일을 발견하게 될 거였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일이 되는 순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지 알게 될 거였다. 그 일을 지속하기 이해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일을 계속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바뀌어버리는지 깨닫게 될 거였다.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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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1-03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노동! 전 존 버저의 신간 노동 3부작을 노리고 있습니다.

뒷북소녀 2020-01-03 15:18   좋아요 0 | URL
음...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다른 제목이 있는건지 못 찾겠어요 ㅠㅠ

2020-01-03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8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TV만화를 보며 그토록 상상하고 고대했던 2020년, 원더키디의 해가 드디어 왔다.

2020년은 엄청 공상과학스러운 시대가 될 줄 알았는데. 조지 오웰은 맞았고 김대중은 틀렸다.

('2020 우주의 원더키디' 원작자가 김대중 님이시다. 이거 DVD 같은 거 내주시면 참 좋겠다. 영원히 소장하게.)

그런 드라마틱한 변화 없이 소소한 소품들을 준비하며 차분하게 2020년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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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준비물

- 새해에 읽으려고 아껴둔 (선물받은) 책들

- 2020년 스타벅스 다이어리

- 올해도 역시 민음사 세계문학 클래식 캘린더 (민음사님, 매년 잘 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꼭!)

- 미니미니한 라이브워크 일력

- 독서기록을 위해 내가 직접 만든 떡메모지 (맘에 드는 떡메모지 없어서 또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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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꼭 읽고 싶은 책들

- (현재 진행 중인) 밀란 쿤데라 전집 시리즈 (총 15권)

- (원더키디의 해를 맞이해 꼭 읽고 싶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총 7권)

- (민음사 온라인 패밀리 데이 때 구매한) 이탈로 칼비노 전집 (총 11권)

- (2019년에는 톨스토이를 모두 읽었으니)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아마도 26권)

- (늘 읽고 싶었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총 6권)

보통 1년에 100권을 못 읽으니, 이 시리즈들만 다 읽어도(총65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이상의 북킷리스트는 추가하지 않는 걸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2021년으로 넘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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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꼭 지키고 싶은 것

- 해마다 다짐하면서도 늘 지켜지지 않는 것. 읽은 책들은 모두 리뷰로 남기기.

올해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다짐해 본다. 더 야무지게 읽고, 더 부지런히 쓰기로.

- 그리고 이왕 읽는 거 좀 더 실용적인 책들을 읽어보기로 했다. (이건 나중에 공개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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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1-02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은 책의 대부분을 허접하게나마
리뷰로 남깁니다. 작년에도 몇 권이
저의 예리한 포위망을 뚫고 나갔네요.

뭐 그렇게 가는 거지요.

올해에도 우리 열심히 달려 보아요.

뒷북소녀 2020-01-03 09:09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리뷰 쓰시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하시더라구요...
저는 정말... 할 수 없는...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는 레삭매냐님.^^

네넵. 우리 올해도 열심히 읽어보아요. 건강하세요^^

雨香 2020-01-1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년 전부터 쿤데라 읽기 계획만 세우고 있습니다. 저 전집 때문에요. ^^
(지금까지 읽었던 책은 3권인데, 전집 버전으로 새로 읽어보려고요, 7권인가 8권인가 이미 준비는 해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