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길가메시여, 어디서 헤매느냐?

네가 찾는 생명을 너는 결코 찾지 못하리라! 127쪽


마블의 영화 《이터널스》에서 배우 마동석이 캐스팅돼 화제가 된 캐릭터 '길가메시'. 이 '길가메시'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과 같은 캐릭터라고 해서, 꼭 영화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영화는 안 볼 거라서) 이 기회에 그동안 읽기를 미뤄뒀던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은 탓인지) 때마침 현대지성 클래식에서 새롭게 번역된,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오리지널 텍스트를 번역한 완역본이 나와서 더 이상의 고민 없이 읽게 됐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점토판(일명 '태블릿')에 쓰인 인류 최초의 영웅 서사시다.

수메르 땅에 세워진 고대국가 우크르의 왕 '길가메시'는 여신인 어머니로부터 태어났지만 "삼분의 이는 신이요, 삼분의 일은 인간"(129쪽)이라서 신처럼 영원을 살 수 없었다. 게다가 친구이자 하인인 엔키두가 꿈속에서 본 자신의 죽음 때문에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을 본 이후로는 영생의 비밀을 얻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길가메시가 얻은 비밀은,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생의 덧없음이었다. 두려울 것이 없었던 왕이자 영웅이었던 길가메시도 결국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작자를 알 수 없는 신화로, 수많은 사람들의 필사가 거듭되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발견되는 지역과 점토판마다 이야기가 조금씩 다른데, 이 책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모두 실려있어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지금도 이 이야기가 쓰인 점토판이 출토되고 있어서, 점토판이 출토될 때마다 번역을 업데이트해줘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길가메시 서사시』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끊임없이 번역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는데, 이 이야기에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고대 사람들이 양피지나 종이도 아닌 점토판에 한자 한자 (종이나 양피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힘들게 새겨 넣게 했을까.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어떤 기사를 보니 배우 마동석이 '길가메시'와 매우 흡사하다고 했는데 서사시 속 '길가메시'는 (인간 마동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에 가까울 정도로 크다. 책을 먼저 읽게 된다면, (스포일러지만) 영화 속 '길가메시'의 최후가 충격적이지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대의 삶이 이 영웅전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삶과 많이 닮았다! 23쪽


-


을유문화사의 새 완역본으로 만나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내 북킷리스트 중 하나였지만, 어느 버전으로 읽어야 할지 책을 선택하지 못해서 읽지 못하고 있던 책이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변신 이야기』로 대표되는 서양 고전문학 시리즈를 모두 천병희 선생님 번역으로 읽어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역시 같은 출판사 번역으로 읽고 싶었지만(사실은 세트로 깔 맞춤하고 싶었던 욕구가 강했다.)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천병희 선생님은 그리스와 로마 영웅 50인 모두를 다룬 것이 아닌 역사적 전환점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 10인만 엄선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것. 이왕 읽는 거라면 50명 모두를 다룬 책을 읽어야 읽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고민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 을유문화사에서 50년 만에 새롭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펴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어판 완역본이 제일 먼저 나온 곳도 을유문화사였다고 한다.(이 출판사에서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만든 책이라고 생각하니 신뢰감 상승!) 이것은 지금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어라는 채찍질이 아닌가!



"표지 디자인쯤이야 아무려면 어때!" 보통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 책이 세트일 때는 깔 맞춤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 새롭게 나온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대놓고 고전스럽지 않으면서도 책장에 꽂아두면 폼 나게 예쁘다.(특히, 책등 디자인이 그렇다.) 1권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한참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표지 속 인물에 대한 설명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설마 내가 못 찾고 있는 건 아니겠지?)


플루타르코스가 우리 곁으로 데리고 내려온 그리스 ㆍ로마 영웅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46~120년에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로마 시대 철학자 플루타르코스가 20년에 걸쳐서 그리스ㆍ로마 영웅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아미요가 엮은 한니발과 스키피오까지 소개되어 있어 모두 52인의 영웅들을 만날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시대와 번역자에 따라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는데, 옮긴이가 어떤 판본을 번역 정본으로 삼았으며 원문과 다르게 작업한 것은 무엇인지 친절하게 소개해 주고 있다.

옮긴이는 우리에게 낯선 영웅들이 등장하는 이 책의 앞부분은 재미도 없고 지루하다고 했지만, 나는 감탄하며 읽었다. 어떻게 종이도 없던 시절에, 구술로, 이토록 긴 이야기를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 심지어 플루타르코스는 그때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혹은 다른 사람이 쓴 이야기까지 정리해 함께 소개해 주고 있다.(이런 이야기도 있지만, 이건 이래서 생긴 이야기일 테고, 사실은 이랬을 것이다.) 지금이야 검색만 하면 바로 알 수 있는 이야기들(사실 검색해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이지만, 그 당시에는 직접 다 확인해야 했을 테니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겠구나 싶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에는 10명의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이름만 들으면 정말 낯설다. 테세우스, 로물루스, 리쿠르고스, 누마, 솔론, 푸블리콜라, 테미스토클레스, 카밀루스, 아리스티데스, 대(大)카토. 읽으면서도 입에 붙지 않는 이름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어디선가 다른 경로를 통해 접한 일화들이 종종 등장해 반갑다. 가장 먼저 등장했던 테세우스와 로물루스의 일화가 낯설지 않아서 옮긴이의 우려와는 달리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테세우스(신화시대)는 아테네를 건설했고, 로물루스(재위 기원전 753~716)는 로마를 건설했다. 먼저 테세우스의 탄생 설화는 우리 이야기와 많이 닮았다. 테세우스의 아버지는 바위 밑에 칼 한 자루와 신발 한 켤레를 숨겨 놓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만약 아들이 태어나 그 바위를 들어 올릴 정도의 성인이 되면 그 물건들을 징표 삼아 자신에게 보내라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아버지를 찾아간 테세우스, 그러나 아버지의 나라도 엉망진창이었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에게 9년마다 청년과 처녀를 일곱 명씩 바쳐야 하는데, 크레타에 끌려간 청년들과 처녀들은 미궁에 갇혀 있는 미노타우로스에게 잡아먹히거나 출구를 찾지 못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 이 이야기를 들은 테세우스가 스스로 인질로 가겠다고 한다. 만약 살아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면 배에 검은 돛 대신 흰 돛을 달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는 테세우스. 크레타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와 사랑에 빠져, 그녀의 도움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을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기쁨에 젖은 나머지 그들을 흰 돛을 잊고 올리지 않는다. 이것을 본 테세우스의 아버지는 절망한 나머지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는다. 그동안 다른 경로를 통해 각각 접했던 여러 이야기들이 한데 섞여 있어서 정말 흥미롭게 읽었던 테세우스.

로물루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원래 로물루스는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그들을 원치 않았던 왕이 그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명령을 받은 사람이 쌍둥이를 죽이지 않고 강가에 데려다 놓았는데, 늑대들이 찾아와 젖을 물리고 새들이 모이를 물어다 아기들 입에 넣어 주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기원전 9세기에 살았던 입법자 리쿠르고스와 스파르타 사람들 이야기다. 리쿠르고스는 원로원 체계를 확립하고, 토지와 동산을 재분배했으며, 공동 식당을 운영했다. 심지어 혼외 관계를 합법화해 아내까지 공유하게 했다. 그는 자식은 아버지의 소유가 아니라 나라의 재산이며, 그렇기 때문에 최상의 핏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교육도 나라에서 담당했다. 시민들이 공산품을 제조할 수 없게 했고(일은 전쟁 포로들이 하게 했다), 돈이 가치 없는 것이 되어버려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모을 필요도 없어져서 여가생활을 보장받았다. 어떻게 보면 이상적일 수도 있지만, 노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곳이었고 사람을 오직 군사력으로만 파악한 비인간적인 사회이기도 했다.

리쿠르고스와 스파르타 사람들은 짧고 명료한 화법을 추구했는데, 그래서 써먹고 싶은 어록들이 많다. 한 사람이 민주 정치를 요구하자 "가서 그대의 가정에 먼저 민주주의를 이룩하시오."(199쪽)라거나 스파르타에서 누가 가장 훌륭한 인물이냐는 질문에 "그대와 가장 닮지 않은 사람이라오."(201쪽)라는 대답들. 하지만 진짜 어록 부자는 따로 있다. 바로 대(大)카토(기원전 234~149)인데, 그의 삶을 지켜준 것도 바로 웅변술이라고 한다.

"바보가 현자에게 배우는 것보다 현자가 바보에게서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바보들이 저지른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바보들은 현자의 성공을 본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550쪽

"나는 그대가 주는 독약을 마시는 것과 그대의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악독한 짓인지를 잘 모르겠네." 551쪽

"나는 지금 당신과 불공평한 싸움을 벌이고 있소. 당신은 욕을 먹으면서 태연하고 입심 좋게 남을 욕하고 있지만, 나는 욕하는 것도 싫고 욕먹는 것도 싫기 때문이지요." 552쪽

플루타르코스는 이야기 곳곳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는데, 덧붙여지는 플루타르코스의 견해 역시 낡지 않고 날카롭다. 2천 년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아서 놀라울 정도다. 이런 이야기와 어록들이 있으니, 여전히 읽히고 있는 것이리라.

앞부분은 흥미가 떨어질 것이라는 옮긴이의 우려는 정말 기우인듯. 훨씬 재미있게 잘 읽히는 책이다. 이 정도라면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이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는 얼마나 더 재미 있을까. 더욱 다행스러운 건 한니발이 5권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 끝까지 재미있게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

"플루타르코스가 이 책에서 쓰고자 했던 것은 역사에 명멸한 영웅들의 거대한 서사나 역사가 아니었다. 인간의 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위대하고 영웅적인 업적이 아니라 일상의 언행들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의 업적을 나열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사소하고도 인간적인 애증을 얘기하고 있다.

영웅은 우리의 곁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 인물사를 공부한 나의 평소 생각이다. 위대한 영웅의 행적이 우리 같은 필부로서는 따라갈 수도 없고 바라볼 수도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상이거나 종교이지 영웅전이 아니다. 우리의 자식들에게 영웅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들려줌으로써 그들의 꿈을 키워 주는 것이 영웅전의 가치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닮지 않은 영웅에게는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15쪽)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1-11-10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 1권만 샀습니다.
가난해서요 ㅋㅋㅋ

그 다음에 보면서 살까 어쩔까
고민 중이랍니다.

읽다가 말았네요. 로물루스까지
읽었나 어쨌나. 왠지 성경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뒷북소녀 2021-11-10 17:22   좋아요 2 | URL
저도 일단 1권만 소장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가난해서요. 요즘 책장 파먹기 중이거든요.

조금 더 읽으시면 로물루스보다 더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할거예요.
어록 부자도 있구요.

scott 2021-11-11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현재 3권까지 읽고 나서
이 책 저책을 시선을 분산 시켜 버렸습니다 ㅎㅎ

뒷북소녀 2021-11-16 11:12   좋아요 1 | URL
우와! 3권까지라뇨. 대단하세요.
고지가 눈앞에 보이시겠네요.ㅋ

서니데이 2021-11-13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사노트를 쓰시는 군요.
잘 정리된 노트는 나중에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글씨를 예쁘게 쓸 수 있다면 저도 해보고 싶긴 합니다.
뒷북소녀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뒷북소녀 2021-11-16 11:13   좋아요 1 | URL
저도요. 글씨를 예쁘게 쓰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빨강앙마 2021-11-16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뭐랄까 이런 좀 머리아프지만 깊이 있는 독서를 했었던 거 같은데 요즘은 가벼운 책만 찾게 된다는..
그래서 맨날 일본소설이나 피철철이만 읽고있어요..ㅋㅋㅋ
이 책은 관심은 가는데... 내 책장에 있다면 아주..아주 언젠간(?) 읽게될 그런 느낌...

근데 나도 요새 내 책장 파먹기 중이라 이게 은근 재미나고 좋더만요.. ^^

뒷북소녀 2021-11-16 11:15   좋아요 0 | URL
음... 전 뭐랄까요? 나 이런 책까지 읽어봤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책 읽는 걸 좋아해요.
나름 벽돌책이나 고전 부심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ㅋㅋㅋㅋ
저도 요즘 책장 파먹기 중인데... 덕분에 올해 알라딘에서 구매한 권수가 몇 권 안되더라구요.ㅋㅋㅋ
 
버너 자매 을유세계문학전집 114
이디스 워튼 지음, 홍정아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이란 죽음 다음으로 가장 슬픈 것! 236쪽

최근 이디스 워튼의 대표작 『이선 프롬』, 『여름』, 『순수의 시대』를 읽으면서 작품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는데, 그녀가 쓴 작품 수에 비해 국내에 소개된 작품 수가 적어서 아쉬웠다. 그러던 차에 『버너 자매』 출간 소식을 들었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이라니, 당장 읽을 수밖에!

『버너 자매』는 표제작인 「버너 자매」와 단편 「징구」, 「로마열(熱)」이 수록되어 있는 중단편 모음이다.

뉴욕의 쇠락한 뒷골목 지하에 자리 잡고 있는 가게는 「버너 자매」라는 아주 단순한 간판을 내걸고 버너 자매가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버너 자매는 바느질을 해주거나 장식소품을 만들어 팔았는데, 소소한 돈벌이에 만족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버너 자매 앞에 나타난 시계 가게 주인 허먼 래미. 가게 안에서 '한정된 삶'을 살고 있던 두 자매 앞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가게에서 수녀처럼 조용히 지내기만 했던 언니 앤 엘리자 마음에 처음으로 래미가 들어온다. 그러나 래미와 가까워진 것은 언니보다 활발하고 좀 더 넓게 생활했던 동생 에블리나였다. 그런 동생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하는 앤 엘리자, 그런데 래미가 그녀에게 청혼을 한 것이다. 하지만 앤은 '두통' 때문에 다른 건 할 수 없다며 청혼을 거절한다. 그러자 래미는 이내 에블리나에게 청혼한다. (이럴 줄 알았지.)

앤은 에블리나가 떠난 뒤 혼자 남게 될 자신을 걱정하면서도 공동으로 모아둔 돈을 에블리나에게 주며 그들의 결혼을 응원한다. 래미가 다른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떠나게 된 에블리나는 앤에게 편지를 보내 소식을 전하지만 이내 소식이 끊겨버린다. 수소문 끝에 래미가 직장에서 해고됐으며, 이전 직장에서 해고당한 이유도 아편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래미가 원한 것은 앤이나 에블리나가 아니라 결혼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결혼 지참금이었던 것이다.

결국 래미는 다른 여자와 도망을 갔고, 에블리나는 병을 얻어 창백한 망령 같은 모습으로 '버너 가게'로 돌아온다. 에블리나가 급성 폐결핵으로 죽자 가게를 내놓고 일자리를 찾아 나선 앤, 그러나 보통 어리고 센스 있는 점원을 구하는 곳이 많아서 앤에게는 쉽지 않다.

「버너 자매」는 이렇게 끝이 난다. 자매는 욕심내지 않았다. 그저 '한정된 삶'에서 좀 더 행복해지길 원했을 뿐인데, 그런 소소한 행복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앤을 통해 이디스 워튼의 섬세한 감정 묘사가 드러나 더욱 쓸쓸하고 허무했다.

뒷날 돌이켜보니, 앤 엘리자에게 그날 오후의 고독은 무엇인가를 예언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앞으로 내세에서 맛볼 고독의 에센스를 증류하는 것 같았다. (…) 언니는 애정을 동생의 운명에 너무 강렬하게 투사했기 때문에 그런 순간이면 마치 자기의 삶과 동생의 삶, 두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버너 자매」, 75쪽

그들이 '위로'라 믿고 건네는 말들은 그녀에게 빈 껍데기와 같았다. 그녀는 익숙하고 따뜻한 그들의 존재 바로 저편에 '고독'이라는 손님이 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것을 봤다. 「버너 자매」, 88쪽

겉으로 드러난 삶과 실제 삶의 잔인한 괴리

단편소설 「징구」는 독서 모임 '런치 클럽'에서 일어난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모임 회원들은 그들의 독서 모임에 자부심이 있었고, 재미만을 위해 책을 읽거나 책을 읽지 않고 독서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의 지적 영토에 얹혀살아 가고 있다'라며 비난했다. 로비 부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어느 날 이 모임에 작가가 한 명 방문하고, 너도나도 작품에 대해 아는 척을 한다. 특히, 그들이 심취했던 건 '징구'라고 로비 부인이 말하자, 한마디씩 보탠다. 한참 신나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선약이 있어서 먼저 일어난다고 말하는 로비 부인을 따라 함께 일어서는 작가. 사실 '징구'는 로비 부인이 그냥 던진 말이었고, 작가의 작품에는 이 '징구'가 등장하지도 않는다.(심지어 나는 읽다가 '징구'를 놓쳤나 싶어서 책을 다시 읽기도 하고, 사전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로비 부인에게 지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아무말 대잔치를 벌인 것이다. 책을 제대로 읽은 적도 없으면서 지적 허영으로만 가득 찬 사람들에게 널리 널리 읽히고 싶은 이야기다.

책이란 읽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책을 읽었다면 그 이상 무엇을 더 기대한단 말인가? 「징구」, 154쪽

「로마열(熱)」은 아주 짧은 단편소설인데, 아침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린 시절 친한 친구로 지냈던 그레이스 앤슬리와 얼라이다 슬레이드는 각자 딸과의 여행 중 로마의 한 호텔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그들은 얼핏 친해 보이지만, 실제로 친구가 알게 되면 뒷목을 잡게 될 이야기를 감추고 있다. 짧지만 아주 강렬한 이야기다.

세 편 모두 이디스 워튼의 장점, 즉 섬세한 감정 묘사가 잘 드러나서 그 감정들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에 푹 빠져들고 만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라니, 더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발, 제발! 더 많이 출간해 주세요!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자의 흑역사 - 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양젠예 지음, 강초아 옮김, 이정모 감수 / 현대지성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뉴스에서 매일 듣게 되는 단어가 하나 있다. 그날의 코로나19 상황을 들으면서 매일 접하게 되는 'PCR 검사'.

PCR(중합효소 연쇄반응)은 현재 유전 물질을 조작하여 실험하는 거의 모든 과정에 사용하고 있는 검사법으로, 검출을 원하는 표적 유전 물질을 증폭하는 방법(132쪽)이다. 이 PCR 검사를 통해 코로나19 검사뿐 아니라 과거에는 해결할 수 없었던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 생화학자 캐리 멀리스가 처음 PCR 기술을 발견했을 때는 주목받지 못했다. 멀리스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의 특허권을 신청하고 광고지를 제작해 적극적으로 실용적 가치를 알렸고, 1993년에는 이 기술로 노벨 화학 상을 수상했다. "현재 PCR 기술은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는 위험한 전염병의 병원균을 신속히 검사하고, 법의학에서는 혈액, 모발, 정액, 타액, 피부조직 등에서 DNA 샘플을 얻어 분석, 감정하는 데 사용된다. 생물학 연구에서는 PCR 기술이 유전적 변화를 검사하는 유용한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유전자의 특정 조각을 증폭하여 직접적으로 관련된 DNA 구역을 분석할 수 있게 되어 해당 유전체(게놈) 전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이 기술은 계속 개선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생물학 영역에서 통용되고 있다. PCR의 활용도는 점점 넓어지고 있고, 새로운 상업적 기회도 여전히 열려 있다."(134~135쪽)

이렇게 PCR 기술이 이윤을 창출하는 기술로 자리 잡자, 생각지도 못한 우선권 소송이 일어난다. 멀리스는 바이오테크놀로지 회사 '세터스 코퍼레이션'에서 일할 때 PCR 기술을 발견했고, 그 사용권은 세터스 코퍼레이션이 갖게 됐다. 그런데 듀폰 社가 세터스로부터 권리 침해를 당했다며 고소를 한 것이다. PCR 기술은 196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하르 고빈드 코라나가 1970년대 초에 연구한 결과물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며, 듀폰 社는 코로나의 논문에 관한 저작권 양도를 받았으므로 결과적으로 세터스가 듀폰 社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라나는 법정에서 증언을 거부했으며, 법원은 듀폰 社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195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미국 분자생물학자 아서 콘버그는 코라나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는 듀폰 社의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PCR 기술은 콘버그의 연구로부터 파생된 것이며, 누구나 DNA를 증폭해 낼 수 있었지만 멀리스처럼 한가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정말 어이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노벨상까지 수상한 콘버그는 이렇게 자신의 이력에 흑역사를 남긴 것이다.

진지하고 성실하지만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과학자가 있다면, 그는 용기와 개척 정신이 없는 사람이다. 10쪽

놀랍게도 이런 흑역사를 과학사에서 찾는 게 어렵지 않다. 『과학자의 흑역사』는 천문학, 생물학, 수학, 화학, 물리학 부문에서 과학자들이 범한 26개의 실수들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실수들은 이론과 관련된 것들도 있지만, 심리적 혹은 인격적인 문제로 초래된 것들도 있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라도 피해 갈 수 없다. 스티븐 호킹, 아인슈타인도 오류를 남겼다.

지성과 냉철함으로 똘똘 뭉친 과학자들이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대한 발견을 한 과학자는 자신의 업적 때문에 혹은 자신의 명성과 권위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는 그의 실수담이 나오는데, 그는 자신의 실수를 지적한 과학자를 권위로 눌러버렸고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지 않았다. 원자론을 제창한 돌턴은 '원자'를 '분자'로 용어만 바꾸면 원자론의 딜레마를 해결하고 더욱 완벽하게 이론을 정리할 수 있다는 아보가드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로 인해 50년 넘게 원자론과 분자론의 발전은 가로막혔다.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전통적 사고방식 때문에 새로운 발견을 인정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퀴리 부부의 딸과 사위, 즉 졸리오퀴리 부부는 학술적 교류와 이론적 사고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앞두고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인공방사선을 발견해 노벨 화학 상을 받았는데, 자신들이 하고 있는 연구에 좀 더 민감했다면 중성자와 양성자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는 이런 이론적인 문제도 있지만, 심리적인 요인도 있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경쟁자나 제자에 대한 질투는 어쩔 수가 없었다. 험프리 데이비는 질투심과 허영심 때문에 제자 패러데이가 발견한 것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친 것이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데이비 스스로 자신의 가장 큰 발견은 패러데이의 발견이라고 하면서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이 있다. 어떻게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연구할 분야 혹은 대상을 정할 수 있었을까?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392쪽)고 했다. 아마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발견하고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생소한 과학자들과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이론(특히, 수학은)이 가끔 등장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다. 특히,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흑역사'들이 비단 과학자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 과학자 역시 사람이듯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그들처럼 '흑역사'를 남기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21-10-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만으로도 굉장히 읽고 싶네요.
듀폰은 가해자로 피해자로 참 여러 군데 화자되는 것 같아요. ㅎㅎㅎ
다 돈과 권위 이런거 때문인 것 같어요 ㅎㅎ
인간의 흑역사인가 그 책도 잼있던데 ㅎㅎㅎ
소개 감사합니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 도둑 까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태엽 감는 새가 태엽을 감지 않으면, 세계가 움직이지 않아!

태엽 감는 새가 태엽오래전에 문학사상사에서 4권짜리로 나온 『태엽 감는 새』를 본 적이 있는데, 내용은 궁금했지만 도서관에는 언제나 1권이 대출 중이었고 부담스러운 권수에 표지 디자인도 너무 예스러워서 읽어보진 않았다. 바뀐 제목 때문에 긴가민가 했었는데, 『태엽 감는 새 연대기』는 미국 출간을 계기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개고한 문고판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소설 자체가 더 날렵해졌다고 하는데, 표지 역시 매력적으로 바뀌었고 권수도 세 권으로 줄었다. 물론 읽는 분량에는 차이가 없겠지만, 네 권에서 세 권으로 줄어든 것만으로도 권수에 대한 심적 부담감이 줄었다고나 할까.

태엽 감는 새는 실제로 있는 새야.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소리밖에 못 들었어. 태엽 감는 새는 이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서 세계의 태엽을 조금씩 감아. 끼익끼익 하는 소리를 내면서 태엽을 감지. 태엽 감는 새가 태엽을 감지 않으면, 세계가 움직이지 않아. 그런데 아무도 그걸 몰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 훨씬 더 복잡하고 멋들어지고 거대한 장치가 세계를 빈틈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사실은 태엽 감는 새가 온갖 장소에 가서, 가는 곳곳마다 조금씩 태엽을 감기 때문에 세계가 움직이는 거야. 태엽으로 움직이는 장난감에 달린 것처럼, 간단한 태엽이야. 그 태엽을 감기만 하면 되지. 하지만 그 태엽은 태엽 감는 새 눈에만 보여.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253쪽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화자 오카다 도오루는 최근 실직한 이후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잡지사에 다니고 있는 아내 구미코는 급하게 일자리를 찾을 필요 없다며 좀 더 여유를 가져도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중, 이상한 전화가 걸려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로부터 걸려온 다소 음란한 전화, 서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아내가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보라고 한다. 골목 끝에서 본 적이 있다고 해서 나섰다가 만난 소녀 가사하라 메이. 메이에 따르면 고양이들은 소녀의 집 마당을 가로질러 미야와키 씨네 마당으로 간다고 한다. 도오루는 메이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고양이가 지나가기를 기다려보기도 한다. 메이는 도오루를 '태엽 감는 새 아저씨'라고 부른다. 결국 고양이를 찾지 못하자 아내는 도오루에게 점술가 가노 마르타를 만나보라고 한다. 초자연적 능력을 소유한 여자로 무상으로 상담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사라진 고양이에 대한 단서는 얻지 못했고, 대신 그녀의 여동생, 가노 크레타가 도오루의 처남인 와타야 노보루에게 겁탈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때 아내 구미코 역시 집을 나간다.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다며, 이혼을 원한다는 편지를 남긴 구미코. 가족이었던 아내와 고양이는 집을 나가고, 대신 이상한 여자들만 도오루 곁을 맴도는 시기. 심지어 도오루의 의식을 파고드는 이상한 꿈까지 꾸게 된다.

한편, 도오루와 아내는 구미코 집안이 높이 평가하는 점쟁이 혼다 씨를 만나곤 했었는데, 마미야 중위라는 사람이 혼다 씨가 도오루에게 남긴 유품을 전달하러 온다. 하지만 그 유품 박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마미야 중위는 자신과 도오루를 만나게 하려던 것이 혼다 씨의 유품이었다고 추측한다.

혼다 씨와 마미야 중위는 1930년대, 일본이 중국에서 벌였던 전쟁 중에 만난 사이로 그들은 그곳에서 벌어진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도오루는 마미야 중위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고통을 체험한다.

모든 것은 고리처럼 이어져 있고, 그 고리의 중심에는 태평양 전쟁 전의 만주가 있고, 중국 대륙이 있고, 1939년의 노몬한 전투가 있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3』, 277쪽

아내가 사라진 현실의 문제와 마미야 중위의 전쟁 이야기, 그리고 꿈속 이야기가 뒤엉켜 있는 복잡한 구조의 소설이다. 그로 인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전쟁 중에 일어난 사건들의 잔인함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게도 만들지만, 이야기 자체는 속도감 있게 잘 읽힌다.

보통 하루키라고 하면 일본인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상실의 시대』를 가장 먼저 꼽기 마련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부류의 소설보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해변의 카프카』 같은 하루키만의 환상적인 세계관이 반영된 소설들을 더 좋아한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역시 후자의 부류에 속하는 책이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통해 하루키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솔직히 어렵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인생에 길들면, 끝내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그것조차 모르게 돼.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128쪽

우리가 이렇게 보고 있는 광경은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야.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것이 세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사실 세계는 훨씬 더 어둡고, 깊은 곳도 있고.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100쪽

사람은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살아 있는 의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계속 똑같이 살 수 있다면, 누가 사는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겠어요.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15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