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23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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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에게 죽음이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자신이 사망할 경우 화환도 추도문도 추도식도 다 생략하고 가장 간소한 장례 절차를 지켜 달라"(154쪽)고 유언장에 남겼습니다. 그래서 그의 무덤에는 십자가나 묘비도 없고 그 어떤 안내판도 없어서 그저 흙더미 위에 풀이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사전 정보가 없다면 분명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을 겁니다.

그에게는 평생에 걸친 두 가지 화두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두 화두를 탐구했습니다. 첫번째는 '문명과 반대되는 자연' 입니다. 그에게 있어 문명이란, 인간이 만들지 않은 거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간단한 도구에서 기술, 과학, 관습, 사회 제도, 종교, 교육, 문화, 예술에 이르는 모든 것"(163쪽)을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며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했습니다. 그의 무덤에 아무런 표식이 없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일지도 모릅니다. 나아가 그는 자연을 넘어서는 것, 즉 "초자연적인 어떤 것, 영혼"을 강조했습니다.

두번째는 '죽음' 입니다. 필멸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죽음. 그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기도 하며, 평생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 탐구했습니다.

삶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미완성 단편작인 「광기의 수기」는 '죽음의 공포'에 대한 톨스토이의 개인적인 체험이 담긴 소설입니다.

『전쟁과 평화』의 성공으로 이반 일리치처럼 성공가도를 달리던 톨스토이는 한 지방에 매물로 나온 영지를 보러 방문한다. 오랜 여행으로 피곤했던 그는 한 여관방에서 하룻밤 쉬기로 하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들 수가 없었고 오히려 어떤 공포를 느꼈다고 합니다. 다음날 자신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새벽 2시였소. 너무나 피곤했소. 자고 싶었고, 피곤하다는 것 말고는 내 컨디션은 완벽했소. 그런데 갑자기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우울감과, 공포,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소. 이 모든 것에 관해서는 나중에 상세하게 알려 주겠소. 이토록 고통스러운 감정은 생전 처음이었소……." 174쪽, 역자해설

「광인의 일기」는 이때의 체험을 쓴 것입니다. 주인공 '나'는 어느 기관에 끌려가 정신 감정을 받는데, "미치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봐도, 유년시절에 발작과도 같았던 울음 두 번을 제외하면 미쳤다고 의심할 부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10년째 되던 해, 유년 시절 이후 처음으로 발작이 일어났습니다. 톨스토이가 겪었던 것처럼, 매물로 나온 영지를 확인하기 위해 떠났던 여행 중에 시작됐습니다. 그는 너무 지루하고 무서운 데다 피곤하기까지 해서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사각형 방을 빌려 하룻밤 머물기로 하는데, 그 방에서 '죽음의 공포'를 대면하고 맙니다.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뭐가 그토록 두려워 도망치려 하는 걸까. 도대체 어디로 도망치려 하는 걸까. 무언가 끔찍한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데, 도망칠 수가 없다. 나는 언제나 나다. 그런데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래, 나다. 여기 내가 있다. 뻰자현의 영지건 그 밖의 어떤 영지건 나한테 무언가를 더해 주지도 못할 것이고 빼앗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내가, 나 자신이 지긋지긋하고 역겨워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 잠 속으로 도피해서 잊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갈 수가 없었다. 나는 복도로 나왔다. (…) 나는 나를 괴롭히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 복도로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득달같이 뒤쫓아 나와 계속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점점 더 무서워졌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기분이 나쁜 거지?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 거지?> "나를 두려워하는 거지." 죽음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여기 있거든."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래, 죽음이야. 죽음이 오고 있어, 바로 여기 와 있어. 하지만 그래선 안 돼. 실제로 죽음이 코앞에 찾아온다고 해도, 그때와 같은 공포는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다가오는 죽음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절대로 그것이 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전 존재가 나는 살아야 한다고, 그럴 권리가 있다고 외치면서 동시에 점점 더 강렬하게 죽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바로 이러한 분열이 가장 끔찍했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공포를 떨쳐 버리려 했다. 청동 촛대에 타다 남은 양초가 꽂혀 있는 게 보이기에 불을 붙였다. 붉게 타오르는 불꽃과 촛대보다 작은 양초 토막은 여전히 같은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삶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 내가 점점 죽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너무나 끔찍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눕자마자 공포가 엄습해 와 벌떡 일어났다. 메스꺼움, 정신적인 메스꺼움, 토하기 직전의 뉘엿거림 같은 일종의 정신적인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끔찍하고 무서웠다. 죽음이 끔찍한 것인 줄 알았는데, 삶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니 끔찍한 것은 죽어 가는 삶이었다. 어쩐 일인지 삶과 죽음이 하나로 뒤엉켰다. 137~138쪽

이런 일을 두 번 정도 겪고 난 그는 자신의 죄를 되새기며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아내에게는 "이 영지의 수익은 사람들의 가난과 슬픔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영지를 살 수 없다"(151쪽)고 말합니다. 교회 앞에 있던 걸인들에게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털어서 나눠줍니다.

소설은 이렇게 미완성으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톨스토이 자신이기도 한 주인공이 죽음의 공포를 대면하는 장면은, 당시 그가 겪었던 공포가 어떤 것인지 충분히 짐작케 합니다.

죽음은 끝났다!

중편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김철수'와 같은 맥락의 이름입니다. 그만큼 러시아에서 '이반'이라는 이름은 흔하고 평범한 이름인거죠. 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가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끔찍하다고 말합니다.

법학대학을 졸업한 이후 승진을 거듭하며 성공의 길을 걸었던 그. 그는 새로 장만한 집을 단장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병을 얻습니다. 겨우 45세였는데, 유능하다고 소문난 의사를 여럿 만나보아도 말로는 나을 수 있다고 하는데 치료에 진척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왜 하필 자신인지, 왜 하필 그날 그것이 그곳에 있어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는지, 반문합니다. 그의 동료들 또한 말합니다. 그런 병에 걸린게 자신이 아닌 이반 일리치라서 다행이라고 말이죠.

이런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를 '환자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환자로서 '연민'을 품어주길 바라는데, 사람들은 곧 나을 수 있을거라는 말을 던지며 그의 고통을 외면합니다. 심지어 그의 가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내 역시 하루종일 아픈 그의 곁에 있으면서 같은 고통을 겪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런 그의 곁에, 오직 환자로만 대해주는 하인 게라심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던 중 고통이 극에 달하고 죽음이 눈 앞에 다가왔을 때, 이반 일리치는 깨닫습니다. 지금까지 자신 또한 부정해왔던 죽음을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라는 것을,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말입니다.

바로 이 순간 이반 일리치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져 빛을 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그래서는 안 되는 삶이었지만 아직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도대체 뭐지?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귀를 기울였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뜨자 아들이 보였다. 아들이 불쌍했다. 아내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입을 헤벌린 채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눈물이 그녀의 코와 뺨을 타고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아내도 안쓰러웠다.

<그래, 내가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어.> 그는 생각했다. <다들 불쌍해. 하지만 내가 죽으면 좀 편해질 테지.>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할 힘이 없었다. <아니야, 뭣 하러 말을 해. 그냥 보여 주면 돼.> 그는 생각했다. 124쪽

이 모든 것들은 한순간에 일어났고 그 순간의 의미는 이후 결코 바뀌지 않았다.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그는 두 시간이나 더 사경을 헤매는 것으로 보였다. 그의 가슴께에서 뭔가 부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뼈만 앙상한 육신이 경련을 일으켰다. 부글거리던 소리도, 쌕쌕거리는 숨소리도 차츰 잦아들었다.

"끝났습니다!" 누군가가 그를 굽어보며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반 일리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죽음은 끝났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죽음은 없어.>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도중에 멈추더니 온몸을 쭉 뻗었다. 그렇게 그는 죽었다. 126쪽

소설 속 인물들은 말합니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혹은 "왜 하필 나인가!"하고 말이죠. 하지만 아무도 죽음을 제대로 직시한 사람은 없습니다. 필멸의 존재라면, 누군든지 죽을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주인공의 이름을 흔하디 흔한 '이반'으로 설정했을테구요.

톨스토이는 90편에 달하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소개된 작품이 몇 작품되지 않는다는게 아쉽습니다. 어디라도 좋으니, 어서 빨리 "톨스토이 전집"을 기획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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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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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전쟁이란 말인가! 적과는 만날 수도 없는데!

1936년 12월 말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으로부터 불과 일곱 달 전이다. 그럼에도 이미 엄청난 거리 밖으로 멀어져버린 시기이다. 뒤에 일어난 사건들이 그 시기를 지워버렸다. 1935년이나 1905년을 지운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하게 지워버렸다. 나는 신문 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으로 스페인에 갔다. 하지만 가자마자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 시기, 그 분위기에서는 그것이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도 카탈로니아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혁명은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중이었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12월이나 1월에 들어서면서 이미 혁명기가 끝나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막 건너온 사람에게는 바르셀로나의 상황이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나로서는 노동 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에 들어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11쪽

1936년, 전세계 젊은이들이 스페인으로 향합니다. 그들은 스페인에서 일어난 내전을 단순히 '스페인' 한 나라만의 문제로 여기지 않았고, 스페인에서 파시즘 세력을 몰아내면 다른 곳에서도 승리할 수 있으며 더불어 세계대전도 막아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지 오웰과 헤밍웨이도 그들 속에 있었습니다.

전쟁의 한가운데서 스페인 내전을 지켜본 그 둘은 각각 엄청난 작품들을 발표합니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 당시 인민전선에 대항한 민족주의자들이 처형되었던 장소인 론다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써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조지 오웰 역시 1936년 12월부터 1937년 6월까지 의용군으로 참전해 직접 경험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지켜본 전쟁은 전쟁이라고 할 수 없었고, 군대도 모든 것이 잘 훈련된 군대가 아닌 오합지졸에 불과했습니다. 총 조차 지급되지 않았고, 그나마 지급되더라도 제대로 된 총이 없었습니다. 수류탄도 불발이거나 엉뚱하게 터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병사들의 군복 또한 제각각이었습니다. 게다가 전선이라고는 하지만, 적과는 만날 수 조차 없었고 총 한번 제대로 겨눠볼 일도 없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전세계 젊은이들이 모두 모였는데, 하는 일이라곤 그저 경계근무, 정찰 근무, 땅파기 밖에 없으니 얼마나 한심하고 시간이 아까울까요. 조지 오웰의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병영 전체는 더럽고 혼란스러웠다. 의용군은 건물을 점령하기만 하면 모두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15쪽

당시의 의용군 대오는 아주 특이해 보이는 오합지졸 집단이었다. 16쪽

의용군 체계 전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병사들은 어중이떠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무렵 자원병은 줄고, 쓸 만한 병사들은 이미 전선에 나가 있거나 죽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몇 퍼센트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들이었다. 20쪽

<공화국>을 수호한다는 자들이 다룰 줄도 모르는 낡아빠진 소총을 가진 이런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 무리라는 사실이 두렵게 느껴졌다. 31쪽

전선을 보고 나자 나는 심한 메스꺼움을 느꼈다. 이것이 전쟁이란 말인가! 적과는 만날 수도 없는데! 34쪽

나는 스페인에 있을 때 전투를 본 적이 거의 없다. 35쪽

그러던 중, 오웰은 '어쩌다가' 총에 맞습니다. 새벽에 보초들에게 교대 준비를 하라고 말하는 도중이었는데, 갑자기 총에 맞습니다. 교전도 아니었고, 자신을 쏜 상대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다만 엄청난 충격을 느꼈고, (대작가인 그 조차)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총을 맞는 경험이 자주 있을 수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나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언젠가는 한 명쯤 쓰러뜨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파시스트를 쓰러뜨리기는커녕, 오히려 파시스트 저격병이 나를 쓰러뜨렸다. 전선에 가서 열흘쯤 있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총알에 맞는 경험은 아주 흥미롭기 때문에 자세히 묘사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238쪽

통증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모호한 만족감을 느꼈다. 아내가 틀림없이 기뻐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늘 내가 부상당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야 큰 전투에서 전사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순간 갑자기 어디를 맞았는지,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궁금해졌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총알이 몸의 앞쪽 어딘가에 맞았다는 것은 의식하고 있었다. 말을 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희미하게 꺽꺽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시도를 하자 어디를 맞았냐고 물을 수 있었다. 목이라고 병사들이 말했다. 들것 담당자인 해리 웹이 붕대와 함께 응급치료 때 쓰라고 준 작은 알코올 병 하나를 가져왔다. 병사들이 내 몸을 들어올리자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뒤에 있던 스페인 병사가 총알이 목을 관통했다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알코올 기운을 느꼈다. 평소 같았으면 엄청나게 따가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상쾌할 정도로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239쪽

나는 제대증을 받았다. 29사단 직인이 찍혀 있었다. <무능>이라고 적힌 의사의 증명서도 받았다. 이제 마음대로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의 몸이었다. 덕분에 나는 이제 비로소 스페인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260쪽

어떻게 지난 여섯 달 동안 그런 것을 보지 못했는지 신기한 일이었다. 제대증을 호주머니에 넣자 다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261쪽

오웰은 목에 관통상을 당해 제대 확인증을 받게 됩니다. 이즈음 상황이 급변해서 오웰과 같은 소속으로 활동했던 의용군들은 단순히 무기를 소지했다는 이유 등으로 체포되고 처형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웰 역시 체포될 위기에 처했고, 스페인 국경을 빠져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제대 확인증이 있어서 아내와 함께 스페인을 무사히 빠져나가게 됩니다.

전투다운 전투도, 군대다운 군대도 없는 곳. 정작 이 전쟁을 왜 하는지 조차 모르는 스페인 사람들. 그는 이런 모습에 환멸을 느껴 하루라도 빨리 스페인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전쟁과 무관한 프랑스와 영국 땅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스페인으로 가고자 합니다.

당신이라면 전쟁중인 나라를 떠나 평화로운 땅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겠는가? 292쪽

이상하게도 불안정한 시간이었다. 폭탄, 기환총,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늘어선 줄, 선전, 음모 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 한적한 어촌에서 우리는 깊은 안도감과 고마움을 느껴야 마땅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스페인과의 거리는 멀어졌을지만, 스페인에서 우리가 보았던 것들이 뒤로 물러나 적당한 비율로 줄어들지는 않았다. 대신 쏜살같이 우리 뒤를 덮쳐, 모든 것이 전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페인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꿈을 꾸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스페인에서 나가면> 지중해 근처의 어딘가로 가서 한동안 조용히 지내며 낚시라도 하자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막상 그런 곳에 오니 따분함과 실망뿐이었다. 날씨는 쌀쌀했다. 바다로부터 끈질기게 바람이 불어왔다. 물은 탁하고 물결은 거칠었다. 항구 둘레를 따라 재, 코르크, 생선 내장이 더껑이를 이루어 돌에 부딪히고 있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는 스페인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아니 오히려 누군가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다해도, 우리 둘 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투옥된 상태이기를 바랐다. 스페인에서 보낸 몇 달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외적인 사건들은 약간씩 기록을 했지만, 그 사건들이 나에게 남긴 느낌은 기록할 수 없다. (…) 바라건대 그들 모두가 여전히 안전하기를. 그들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그들이 전쟁에서 이겨 독일인, 러시아인, 이탈리아인 할 것 없이 모든 외국인들을 스페인에서 몰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역할에 무력함을 느꼈던 이 전쟁은 나에게 대체로 나쁜 기억만을 남겼다. 294쪽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는 환멸을 느꼈을지 모르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적인 매력을 느낍니다. 때론 너무 느긋하고 비효율적이라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열정에는 무한한 애정을 느낍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스페인 사람들의 아량에 대해 '스페인적인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스페인에 대해서 매우 나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쁜 기억이 거의 없다. 285쪽

이 소설(이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에는 카탈로니아에 대한 '찬가'는 없습니다. 반어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찬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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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52
오스카 와일드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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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도, 현실에서도,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

예로부터 어른들이 누누이 하던 말씀이 있습니다. 친구를 잘 사겨야 한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절실히 느끼고 있는 말이기도 한데요, 여기 친구 때문에 나락으로 빠진 청년이 한 명 있습니다. 물론 『파우스트』의 박사처럼 친구 따라 강남을 가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전적으로 친구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아무튼 친구 때문에 눈을 뜬 한 청년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제가 소년이었을 때죠. 당신이 처음 만나서는 저를 부추겼어요. 저의 잘생긴 얼굴을 자랑하라고 가르쳤지요. 그리고 하루는 저를 당신 친구에게 소개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 분은 저에게 젊음의 경이로움에 대해 설명했고, 당신은 그 젊음의 경이로움을 보여 주는 제 초상화를 완성했어요. 바로 그 순간에, 지금도 제가 후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광기에 사로잡혔던 바로 그 순간에 저는 소원을 빌었죠. 아마 당신은 기도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245쪽

화가인 바질 홀워드는 자신이 그린 초상화를 두고 극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린 작품 가운데 최고이며, 이 초상화의 모델 또한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화가의 친구 헨리 워튼 경도 초상화의 주인공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집니다.

초상화의 주인공인 도리언 그레이를 처음 본 순간, 헨리 역시 매력적인 청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레이를 보며 예술의 영감을 떠올린다는 바질의 말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는, "장미 봉오리 같은 청춘과 백장미와 같은 순결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36쪽) 순수한 청년 그레이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합니다. 우리 생에서 '청춘'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가치이니 젊을 때 그 젊음을 깨닫고 누리라는 것입니다.

"아! 젊을 때 당신의 젊음을 깨달으시오. 쓸데없는 것에 귀 기울이거나 희망 없는 실패를 만회하려 발버둥치거나, 아니면 무지한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저속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을 내주면서 당신의 황금 시절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시오. (…) 당신의 삶을 사시오! 당신 안에 있는 경이로운 삶을 살란 말이오! 무엇 하나 잃지 마시오. 항상 새로운 감동을 찾아 나서시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시오……. 또 하나의 새로운 쾌락주의, 이것이 우리 세기가 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당신은 그 쾌락주의의 가시적인 상징일지 모릅니다. 당신의 그 매력 있는 인격으로는 못 할 것이 없어요. 한 시기 동안 세상은 당신의 것이오……. (…) 당신이 인생을 그냥 헛되이 보내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닌가 생각한 겁니다. 이유는 당신의 젊음이 지속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오. 정말 얼마 안 남았소. (…) 우리는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스무 살 때 우리 안에서 요동치던 환희의 박동이 시간이 지날수록 느려집니다. 수족은 늘어지고 감각은 무뎌집니다. 우리는 추한 꼭두각시 인형으로 퇴락해 그렇게 두려워했던 열정과 우리가 담대하게 응하지 못했던 멋진 유혹들을 기억하며 안타까움에 몸부림치게 될 겁니다. 젊음! 청춘! 세상에는 젊음 이외에는 단연코 아무것도 없으니!" 42~43쪽

헨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외모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자신이 얼마나 빛나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던 그레이. 헨리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시간이 갈수록 매력을 잃게 될 자신과는 달리 영원히 아름다움을 간직하게 될 초상화 속 자신이 부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그는 소원을, 아니 기도를 합니다.

"얼마나 슬픈가! 나는 늙어 무섭고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겠지. 그런데 이 그림은 항상 젊은 상태로 남을 것이 아닌가. 6월의 오늘보다 더 늙지 않을 게 분명한데……. 거꾸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영원히 젊은 상태로 있고, 그림이 늙어 간다면! 그걸 위해서라면 ─ 그럴 수만 있다면 ─ 무엇이든 다 줄 텐데! 내 영혼이라도 내줄 용의가 있는데!" 47쪽

"전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것이면 무엇이든 부럽습니다. 제 모습을 그린 당신의 저 초상화도 부럽고요. 제가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을 왜 저 초상화는 계속 가질 수 있는 거지요? 흘러가는 순간순간이 저에게서 중요한 것을 빼앗아 저것한테 주겠지요. 아, 반대로만 되었어도! 그림이 변하고 나는 지금 모습대로 영원할 수 있다면!" 48쪽

놀랍게도 그레이의 소원은 이뤄집니다. 세월이 흐르고, 그가 쾌락에 빠져 악행을 일삼을 때도 그의 얼굴은 변함없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반면, 그의 아름다웠던 초상화는 점점 일그러지고 늙어 추악하게 변해갑니다.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얼굴과 점점 나락으로 빠지는 그레이의 행동을 보며,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추악한 내면을 들킬까봐 초상화를 꽁꽁 숨겨둡니다. 자신이 그 초상화를 보는 것도 두렵습니다. 심지어 바질이 찾아와 초상화를 보여달라고 해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헨리를 소개시켜 준 바질을 원망하며 그를 죽입니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초상화 속 자신의 얼굴을 찌르고 맙니다. 그가 자신의 얼굴을 찌르는 장면 덕분에 이 소설은 아주 인상적으로 마무리됩니다.

방 안으로 들어선 그들의 눈에 벽에 걸려 있는 눈부실 정도로 멋진 초상화 하나가 들어왔다. 그들 주인의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였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젊은 주인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한 사람이 쓰러져 죽어 있었다. 야회복을 입은 그의 가슴에 칼이 꽂혀 있었다. 찌글찌글 늙고 주름살 늘어진 흉측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그가 누군지 몰랐다. 그 사람이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살펴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그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343~344쪽

도덕적인 책이나 부도덕한 책은 없다! 다만 잘 쓴 책과 잘 쓰지 못한 책만 있을 뿐.

도리언 그레이는 내가 되고 싶었던 존재이고,

헨리 워튼 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고,

바질 홀워드는 실제 나의 모습이다.

─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입니다. 그가 이 소설을 발표하자마자 사람들은 "폼 잡고 싶은 얼간이가 쓴 도덕적으로 타락한 위험한 작품이라며 내용의 음란성과 퇴폐성을 높고 혹평"(349쪽)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와일드는 혹평에 굴하지 않고, 이렇게 혹평을 하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이런 평을 한다고 맞섭니다. 그렇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사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게 음란하거나 퇴폐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와일드는 세 주인공 모두 자신의 모습을 담거나 자신이 추구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술에 있어서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바질 홀워드는 당연히 와일드일 수 밖에 없으며, 그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레이는 와일드가 추구했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와일드는 바질의 입을 빌려 예술과 예술가의 삶을 분리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예술가라면 작품으로만 평가받기를 원합니다. 와일드 자신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소설 속 인물이 실제 인물이라고 추측하기 때문에, 이런 당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덕적인 책이나 부도덕한 책은 없다. 잘 쓴 책, 혹은 잘 쓰지 못한 책, 이 둘 중 하나다. 그뿐이다." 7쪽

"예술가는 아름다운 것을 창조해야지 자기 삶을 조금이라도 작품 속에 개입시켜서는 안 돼. 우리는 예술을 자서전의 한 형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어." 26쪽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이것은 오스카 와일드의 성 정체성과 그의 기행을 염두에 두고 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술작품과 그것을 창조한 아티스트의 도덕성을 분리해서 받아들일 수 있나요? 혹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저는 어렵습니다.

사랑에 충실한 사람은 사랑의 사소한 면밖에 알지 못해. 사랑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이라야 사랑의 비극이 무엇인지 아는 거라고. - P28

청춘이라는 게 우리가 지니고 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단 하나의 것이니까. - P40

과연 우리가 심리학을 엄밀하고 확실한 하나의 학문으로 만들어 삶을 이루는 작은 샘물 하나하나를 다 밝힐 수 있는지.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잘못 이해하며, 더욱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은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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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3-28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분히 에피쿠로스적인 사고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작가의 삶과 그가 창조한 예술작품을 분리하는
건 난망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게 인생에 대한 스포일러!

Memento Mori. 그 옛날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행진을 할 때, 노예들에게 이 말을 큰소리로 외치게 했습니다. 라틴어로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인데, 오늘은 승리해서 살아있더라도 언젠가는 너도 죽을 수 있으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에서 행해지던 풍습이라고 합니다.

비록 개선 장군은 아니지만 종종 '죽음'을 떠올립니다. 이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오만가지 감정들이 교차합니다. 견솜한 마음이 떠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밀려오는 두려움과 허무, 회한 때문에 잠 못 이루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종교의 힘이라도 빌려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프롤로그 : 아침에 죽음을 생각한 이들의 연대기』 7~8쪽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저자 김영민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서 얼굴에 비누칠을 하면서 "나는 이미 죽었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 세수할 때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을 보면서 웃어보라고 하는데, (어쩌면 희망찬 하루가 될지도 모르는) 아침 댓바람부터 죽음을 생각하라니. 도대체 이 상충된 조언은 뭘까요?

아침을 열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얼굴에 비누를 가득 칠한 채 중얼거리는 거다. "나는 이미 죽었고 내가 속한 정치공동체도 이미 죽었다"라고. 무슨 말이지? 나는 멀쩡히 살아서 이렇게 세수를 하고, 정부는 어김없이 세금을 걷어가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변함없이 그다지 질이 높지 않은 쇼가 상연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을 열면서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일단 실제로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가 이미 죽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부고는 늘 죽음보다 늦게 온다. 밤하늘의 별이 반짝여도, 그 별은 이미 사라졌을 수 있다. 별이 폭발하기 전에 발산한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우리가 그 별을 지금 보고 있을 뿐. 나와 공동체는 이미 죽었는데 현재 부고가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17~18쪽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인생에 대해 스포일러를 당합니다. 그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죽게될 것이라는 것. 그 순간이 바로 1초 뒤일 수도 있고, 내일 아침일 수도 있고, 어쩌면 100년 뒤가 될 수도 있겠지만 결말은 '죽음'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자는 아침을 시작하면서 '죽음'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절에 아침을 열 때는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첫째, 이미 죽어 있다면 제때 문상을 할 수 있다. 둘째,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다. 넷째, 정치인들이 말하는 가짜 희망에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다. 다섯째, 공포와 허무를 떨치기 위해 사람들이 과장된 행동에 나설 때,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침착함을 가지고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생과 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거다. 화전민이나 프리라이더가 아니라 조용히 느리게, 그러나 책임 있는 정치 주체로 살아보고야 말겠다는 열정을 가져보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열정이란 그 자체로 지나치게 큰 야망처럼 보인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19~20쪽

매일 아침 '죽음'을 생각하다보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먼 미래 대신 지금 당장을 중요하게 여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성공해서, 나중에 부자가 되면 누리게 될 (큰) 행복이 아닌 눈 앞에 있는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끼게 될지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사소한 근심도 즐기게 될 수 있습니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을,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23쪽

이렇게 보면 감정적인 내용의 책 같지만, 사실은 냉소적이고 시의성 짙은 칼럼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 구석구석, 혹은 일상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때론 날카롭게, 또 때론 재미있게 써내려 갔습니다. 특히, 추석 때 결혼은 언제 할거냐,고 묻는 건 위헌적 처사며 콩을 싫어하는데 콩 넣은 송편만 먹어야 한다는 건 자유민주주의에 위배되는 거라고 한 「명절을 보내는 법」라는 칼럼이 인상적입니다. 사실 그가 유명해진 것도 바로 이 칼럼 때문이라고 합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송편 속에 콩을 넣을 만행이 지속되고 있다. 송편을 한입 물었는데 그 속이 꿀이 아니라 콩일 경우 다들 큰 좌절감을 맛보지 않나. 「추석을 즐기는 법 :명절을 보내는 법2」 64쪽

취직은 했느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라고 묻는 친척의 '위헌적 처사'를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보너스를 털어 비행기를 타기로 하자. 기내식 송편에는 콩이 없다. 「추석을 즐기는 법 : 명절을 보내는 법2」 65쪽

게다가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에 당선된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부문 심사를 맡았던 박완서 선생님이 "난 다른 부문 심사위원이었지만, 내가 맡은 부문 글들보다 당신의 글이 제일 좋았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그는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정치사상사를 공부하고 있었으며 논문자격시험을 치르고 잠시 귀국했다가 평론을 써서 응모했는데 당선됐다고 합니다. 학위 때문에 이후 평론가로서 활동은 할 수 없었지만,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놓치지 않았나 봅니다.

우리는 비자발적으로 태어났고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그 사실은 바꿀 수도, 선택할 수도 없지만 적어도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즉 소멸의 방식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소멸해야 할까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멸의 여부가 아니라 소멸의 방식이다. 소멸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 소멸의 방식. 어떤 소명과도 무관하게, 어떤 심미적 흔적도 없이, 지리멸렬하게 소멸해가는 길이 있다. 마치 상한 달걀을 깨뜨렸을 때 비린 냄새를 풍기고 흐물거리며 퍼지는 노른자처럼. 두 번째 소멸의 방식. 스스로 자신의 소명을 설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은 뒤, 그 소명을 달성함을 통해 존재 이유를 잃고, 스스로 소멸해버리는 방식이 있다. 마치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고 나서 검은 우주 속에서 밝게 소멸해버리는 로켓추진체처럼. 「서울대학교의 정체성」 125~126쪽


사람은 두 번씩 죽는다.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 죽음이 온다. 그리고 자신의 장기가 더 이상 삶에 협조하기를 거부할 때 육체적 죽음이 온다.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수명은 전례 없이 연장되고 있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길고 긴 연옥 상태다. 이것은 어쩌면 새로운 관광자원이다. 한국으로 여행 오시면 멸종 위기의 공동체를 구경할 수 있어요, 한국은 사라지는 중이에요, 상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P18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 P22

"또 한 해가 가고 오네요."

"당신 나이가 되면 모든 게 선명해질까요?"

"아니요."

"그럼 더 혼돈스러워지나요?"

"그냥 빨리 흘러가요. 비 많이 왔을 때 흙탕물처럼." 「시간의 흙탕물 속에서」 - P27

그동안은 세상에 대한 분노를 에너지원 삼아 살아왔다지만, 이제 여생을 살기에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원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좋아서 미치겠는 어떤 것 때문에 기운을 쓰면서 살아가야, 제 명에 죽을 수 있지 않겠는가. 「자식에 대한 세 가지 에피소드」 - P54

누가 그랬던가, 휴식의 궁극은 죽음이라고. 쉬고자 하는 욕망의 끝에는 죽고자 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고. 만화책으로부터 우리가 휴식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칫 죽음을 통해서라도 휴식을 취하려 들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만화책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만화책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 P90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게 인생에 대한 스포일러라면, 진리를 결국 다 알 수 없다는 게 학문에 대한 스포일러입니다. 「대학원에 가고 싶은데요」 - P93

어느 시점이 되면, 내가 책을 좋아할 뿐 아니라 내심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죠. 나도 책을 읽으면 행복하지만, 책도 나에게 읽히는 게 분명 행복할 거야, 라는 충족감이 들죠. 그리고 직장인들이 월요일 아침에 허겁지겁 출근할 때, 창문을 열고 ‘월요일이란 무엇인가!‘라고 소리를 지를 수 있어요. 「대학원에 가고 싶은데요」 - P95



왜 해석을 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는가?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쓸쓸해서 해석을 하고, 초조해서 해석을 하고, 울음이 나올 것 같아서 해석을 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불안해서 해석을 한다. 「설원에 핀 장미 아닌 꽃 : 홍상수의 초기 영화」
- P265



글에서 읽고 싶은 것을 읽는 것은 저자가 어찌할 수 없는 독자만의 특권일 터. 책을 출판하면, 독자들이 너무 그럴싸한 메시지를 책에서 읽어낼까 두렵습니다. 전 인생의 확고한 의미에 대해서 설파하는 책이나, 한국을 부흥시킬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책이나, 인류 문명의 향방에 대해 확실한 예측을 하는 책 따위는 읽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많은 것들에 대해 확신이 없지만, 그러한 책들의 주장에는 특히 확신이 없거든요. 그런 책들은 확신할 근거가 없는 것들까지 확신하기에, 그런 책들을 확신할 수 없죠. 「에필로그 : 책이 나오기까지」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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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3-27 0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마저 의미 심장하네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인생을 비관적으로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진지하고 견고하게 한다는 것을 알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저자 말 대로 큰 근심 대신 작은 근심으로 보내는 소소한 일상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고요.
딱 하나 제가 공감못하는 대목은, 저는 꿀 들어 있는 송편보다 콩 들어 있는 송편을 더 좋아하는데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것이요 ^^

뒷북소녀 2019-03-27 12:57   좋아요 0 | URL
저는 매일 죽음을 생각하면서... 우울에 빠지곤 하는데... 저자는 그게 아니라고 해서 놀라웠어요.
저는 콩 들어간 송편을 너무 싫어해서...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말에... 완전 감탄했다죠.
엄마가 콩 들어간 송편을 사놓으면 써먹을려고... 키핑 중입니다.

레삭매냐 2019-03-27 0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멘토 모리 !

누구나 다 알지만, 부인하고 싶은 시츄?

뒷북소녀 2019-03-27 12:58   좋아요 0 | URL
그런데... 부인해도, 억만장자가 되어 불멸의 삶을 꿈꿔도... 어쩔 수 없다는 현실.
 
마녀체력 -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
이영미 지음 / 남해의봄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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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36쪽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갈 즈음,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었지만 체력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인들은 어떻게 미련없이 포기할 수 있었냐고 묻곤 합니다. 그땐 가만히 대기하고 있을 힘 조차 없었고, 취재를 나갈 때마다 입술은 부르텄고, 감기 몸살을 달고 살았었습니다. 늘 이것저것 들고 다녀서 그 무게에 짓눌렸는지 왼쪽 목부터 발까지 마비 증세가 와서 손을 쓸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20대의 열정과 깡으로 버티며 몸을 혹사하는 일도 미련한 짓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직을 했을 뿐, 그것 외에는 제 삶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전만큼 몸을 혹사시키며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이 탓인지, 또다시 스멀스멀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파서 빨리 퇴근하고 싶은 마음 뿐이고,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발바닥은 찢어질 것처럼 고통이 올라옵니다. 발이 아파서 대중교통을 멀리하고 자가용만 타고 다니다보니, 그나마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면서 걷던 시간들 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퇴근 후에 편안하게 책 좀 읽으려고 하면 또다시 목과 허리가 아프고, 눈알은 터질 것 같고, 딱히 피곤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초저녁부터 꾸벅꾸벅 조는 날이 많습니다.

또다시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고, 여러 사람들에게도 귀가 따갑게 듣고 있지만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한데 운동까지 어떻게 하나, 요즘 같은 날씨엔 미세먼지 때문에 운동을 해도 안 좋아, 이런 마음 뿐입니다. 운동을 할 수 없는 핑곗거리는 언제나 차고 넘칩니다.

만약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책상 앞에만 쪼그리고 앉아서, 인생을 헛살아온 것도 모르고 있겠지. 자전거는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다. 65쪽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한데 어떻게 운동하냐며 반문하는 당신에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저자.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열악하다고 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나에게는 육아와 살림의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출판 에디터인 저자 또한 (나처럼) 신체활동 보다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하며(얼마나 책을 좋아하면 운동도 몸이 아닌 글로 배우고 있다), 늘 일에 시달리고 있고, (나보다 더) 작은 체구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그녀가 강철 체력의 소유자만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경기) 13년차라고 합니다. 게다가 운동은 어릴 때부터 해온 것이 아니라 마흔 살 때부터 시작했다고 하니, 아무리 핑곗거리가 많은 사람이라도 더이상의 핑계를 댈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탁월한 사람들이 성취한 경험을 들으면 부럽긴 해도 따라할 생각은 잘 못하는 법이다. 그 사람은 뛰어나고 나는 평범하니까.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조장한다. 천재를 우리와 동떨어진 특별한 존재로 여길수록, 우리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신적인 존재'로 부르면 우리는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 하지만 위층 할머니나 옆집 아줌마가 해냈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쩐지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이 한 일을 나라고 왜 못할까 싶기 때문이다. 게으르고 잘 움직이지 않다가 마흔 넘어서야 뒤늦게 운동이란 걸 시작했다.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강한 체력의 소유자가 된 내 경험이, 나만큼이나 평범한 다른 사람들 마음에 불을 지필 수 있지 않을까.

타고난 저질 체력도 이렇게 달라져서 꽤 멋지고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나보다 훨씬 젊고 웬만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 조금 일찍 운동을 시작한다면, 얼마나 신나고 근사한 가능성들이 펼쳐지겠는가. 10~11쪽

그녀 옆에는 멋진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그녀처럼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아들 운동회 때 각성한 이후로 아내보다 먼저 운동을 시작한 남편. 그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도 용기를 낼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자전거도 탈 줄 몰랐던 그녀에게 자전거를 선물해주며 의지를 불태워줬고, 바다수영을 무서워하는 그녀 뒤에서 함께 수영을 해주기도 합니다. 그녀가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늘 뒤에서 그녀를 지지해주며 한발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힘을 북돋워 줬습니다.

누구나 다 "시간이 없고 귀찮다"고 말하니까요. 그런데 책을 읽는 건 어떤가요? 멋 부리는 건요? 요리를 하는 건요? 모임에 나가는 건요? 혹시 이런 것들도 시간이 없거나 혹은 귀찮아서 못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시간 없어,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던 제가, 어떻게 자다가도 일어나 운동하러 나가는 사람으로 변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끝까지 정독! 83쪽

우리에겐 이렇게 따라다니며 지지해주는 멋진 조력자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 책이 있습니다. 저자 자신이 뒤늦게 운동을 시작해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인지, 처음 달리기를 할 때, 수영을 배울 때, 자전거를 탈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어떻게 내딛어야 하는지 각종 운동 몸치들을 위한 깨알 팁을 알려줍니다. 사실 그동안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어떻게 한발을 내딛어야 할지 몰라서 시작하지 못했던 적이 많은데 이런 팁들은 꽤 유용합니다.

이제 더이상 핑곗거리도 없으니, 심지어 이 책을 끝까지 정독했으니, 날씨가 따뜻해지면 운동화 끈 단단하게 매고 집 앞 운동장으로 뛰쳐나가야겠습니다.

매년 오는 겨울을 대비하여 김장을 하면서도, 언젠가 반드시 오고 말 죽음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 김장에 비하면 죽음이란 먼지와 다이아몬드처럼 비교할 수조차 없는 중요한 인생의 대단원인데도 말이다. 죽는 순간이 아무런 고통도 없이 벼랑에서 뚝 떨어지듯 단번에 오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 의학 덕분에 죽음으로 가는 길은 점점 더 길고도 느린 과정이 되었다. 인갑답지도, 아름답지도 않게 변해 버린 인간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아툴 가완디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 말해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실버스톤 박사의 표현대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는 것'이다." 263쪽

책 속의 책

자전거를 타며 느끼는 자유가 아이를 독립적으로 만든다면, 어른이 되어 자전거를 타면 다시 아이가 된 듯한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자전거를 자주 타는 사람이라면 동감할텐데, 언제든 자전거를 타면 그리운 행복을 불러일으킨다. 무지개, 별똥별, 크리스마스에나 느낄 법한 기분 말이다. 벤 어빈, 『아인슈타인과 자전거 타기의 행복』

여행지에서 그 동네의 길을 달리는 일은 즐겁다. 주변 풍경을 보며 달리기에는 시속 10킬로미터 전후가 이상적인 속도이다. 자동차는 너무 빨라서 작은 것을 놓치기 쉽고, 걷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동네마다 각기 다른 공기가 있고 달릴 때의 기분도 각각 다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길모퉁이의 모습, 발자국 소리, 보도의 폭, 쓰레기 버리는 습관 등도 모드 다르다. 정말 재미있을 정도로 다르다.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자전거 타기를 배우려는 호기심이 67세의 노인을 유혹하는가 하면, 70세에는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판을 미끄러져 나가고, 80세에는 체조를 하면서 날마다 근육을 단련했다. 죽기 바로 직전인 82세에도, 그는 말을 타고 20녀 킬로미터나 질주하곤 했다. 슈테판 츠바이크, 『톨스토이를 쓰다』

어떻게 생각하고, 생활하느냐에 따라 건강 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실제 나이 효과'라고 한다. 즉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느냐는 70퍼센트 이상 당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50세가 되면 생활 방식이 어떻게 늙어 가는가의 80퍼센트를 결정하고, 유전이나 체질은 겨우 20퍼센트 정도밖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마이클 로이젠, 『새로 만든 내몸 사용설명서』


 

수영을 배우면서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 내가 해낸 운동량을 내 몸이 정확히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나는 25미터를 수영한 뒤 꼭 벽에 매달려 멈추곤 했다. 호흡이 가쁘니 잠깐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수영이 잘 늘지 않는다. 내 몸이 딱 25미터 간 거리만큼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50미터를 수영해 내면? 처음엔 힘들겠지만 내 몸은 곧 50미터에 맞는 폐활량을 기억한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체력이 생긴다. 즉 내 몸이 잘 기억하고 익숙해지도록 조금씩 운동량을 늘려 나가면서 꾸준히 강도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깨달은 모든 운동의 기본이었다. - P50

미국의 마라톤 잡지 <러너스 월드>에서는 달리는 사람의 유형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 적이 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달리는 이유가 다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는 멋진 몸매를 유지하거나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 달리는 운동파.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을 앞서고 싶거나 목표로 세운 기록을 단축하고 싶어서 달리는 경쟁파. 세 번째는 나무가 많은 공원이나 호젓한 길을 따라, 달리는 느낌 자체를 즐기는 취미파. 네 번째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달리는 것이 재미있는 사교파. - P66

"로저 배니스터는 1마일을 4분 안에 주파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처음으로 간 사람이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도달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 위업들이 이루어지기 전에, 수많은 사람이 그것을 시도했지만 그 사람들은 다 실패했다. 그런데 한 번 성공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이 그것을 똑같이 해냈다. 왜일까? 뇌는 어떤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그곳으로 가는 대략의 지도를 그린다. 배니스터, 암스트롱, 힐러리는 상식을 거슬러 희망을 품어야 했다. 그들의 뇌에, 목표에 이르는 지도를 그리라고 요구해야 했다. 그들의 뒤를 따른 사람들은 앞서 달성된 위업을 지도로 이용했다." - P77

몰입과 긴장을 반복하며 일하는 정신노동자일수록, 오히려 집중력을 잠깐 내려놓을 수 있는 적당한 혹은 격렬한 육체 활동이 절실한 법이다. 그래야 자기 분야에서 롱런하며 원하는 성과를 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현명한 지적 노동자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닌 비밀‘을 이미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며 탁월한 성취를 이루었다. - P217

뇌과학자 정재승은 한 칼럼을 통해서, 중년으로 접어든 뇌가 가장 ‘절정의 뇌‘라는 연구 결과를 보여 주었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고 반응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 눈이 침침해지고, 심지어 치매 초기 증상과 비슷한 경험을 반복한다. 따라서 그 나이에 리더가 된 사람들은 급격히 자신감을 잃고 나이듦을 억울해 한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뇌의 가장 중요한 여섯 가지 인지 능력인 어휘, 언어 기억, 계산, 공간 지각, 반응 속도, 귀납적 추리 중에서 무려 네 가지가 초절정의 성과를 내는 나이대는 45세에서 53세 사이의 중년이라는 결과가 있다. 나빠진 기억력 때문에 고민이 많은 내게도 희망찬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우리에겐 몸과 마음, 뇌에 이르기까지 아직 많은 가능성과 시간이 남아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몸밖에 없다. 특히 내 자유 의지로 운동을 하면서 서서히 변해 가는 몸을 지켜보는 건 근사한 경험이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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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3-26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의 피로감이 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몸 전체가 다 피곤해지는 것 같아요. 저질 체력 못지않게 걱정되는 게 저질 시력입니다... ㅎㅎㅎㅎ

뒷북소녀 2019-03-26 09:15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맞아요ㅠㅠ저는 눈이 아프면 머리도 아픈 것 같더라구요.

레삭매냐 2019-03-26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라 취재? 기자셨군요 ㅋㅋ
미처 몰랐네요.

웃는얼굴아트센터, 도서관 이름이
멋져 부리네요.

저도 이제 운동해볼라구요...

뒷북소녀 2019-03-26 11:23   좋아요 0 | URL
저희 동네가 스마일 달서구라.ㅋ 아트센터 안에 도서관이랑 문화센터도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라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