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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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 동물원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귀여운 곰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한편 있다. 할인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발랄한 20대인 현채는 멋진 로맨스를 꿈꾸지만, 항상 그녀 앞에 나타나는 남자와 사랑은 모두 시시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도서관 화집에서 "이것은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의 시작입니다. 당신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귀여운 곰같이 사랑스럽답니다. 다음엔 이 책을 빌려보세요."라고 적힌 메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메모에 적힌대로 책을 빌려보기 시작하고, 그 메모는 계속되었다. 드디어 그녀가 꿈꾸던 로맨스가 찾아온 것이다. 우리에게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영화는 개봉되기 직전에 제목이 바뀌었다. 그러나 굳이 원제를 밝히지 않더라도 영화의 내용만으로도 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어느 날, 내가 사랑하던 남자가 내게 너무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 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난 싫증을 느꼈다. 답장이 없는 그에게 편지를 쓰는 데도 지쳤고, 내 침대 위에 걸린 그의 사진을 어루만지는 일에도 신물이 났다." (p. 7)

 

스물다섯의 콩스탕스. 그녀는 로맹 가리와 그의 작품을 사랑한다. 그러나 로맹 가리를 마음껏 사랑할 수도, 그의 작품을 마음껏 읽을 수도 없다. 그는 이미 자살한 작가였고, 그의 작품은 모두 서른한 권밖에 되지 않는다. 일년에 한 권씩, 그의 책을 아껴가며 읽더라도 여자의 평균 수명을 고려한다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가 없는 그 이후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그렇다고 그녀에게 달리 사랑할 남자도 없다.  그녀는 잠시 '외도'를 하기로 결심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 회원으로 등록한다. 그녀가 로맹 가리에게 너무 빠져 있었던 탓일까. 여러 권의 책을 빌려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책이 없다. 어떤 책들은 펼쳐보지도 않고 그냥 반납했을 정도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폴리냑의 『오렌지빛』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당신을 위해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노름꾼』. 좋은 책입니다. 그걸 당신에게 권합니다."

그렇잖아도 조언을 구하고 싶었는데, 도스또예프스끼라면 그녀가 좋아하는 로맹 가리와 같은 러시아 사람이 아닌가. 메모를 따라 읽은 『노름꾼』에서 그녀는 또다른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감히 시립도서관 소유의 책에 밑줄을 긋는 남자는 누구일까. 처음에는 그저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연필로 밑줄을 그어 놓은 부분들은 모두 그녀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녀를 향한 그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를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그어놓은 밑줄을 지우개로 지우기도 하고, 그녀의 마음을 밑줄로 그어 전하기도 한다.

 

설레임으로 가득한 대학 신입생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이 책을 발견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시립도서관이나 동네에 있는 작은 도서대여점을 이용했던 나는 그렇게 많은 책이 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책 냄새 폴폴나는 대학 도서관은 나에게 있어서 꿈의 공간이었다. 어릴적부터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은 대부분이 프랑스 소설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프랑스 소설 코너로 발을 옮겼는데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책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밑줄 긋는 남자』였다.

지금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사서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부분은 밑줄을 긋거나 표시도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빌려있는 책에 밑줄을 긋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종종 책의 한 귀퉁이를 접거나 밑줄을 그어놓은 책을 만나게 되면 짜증이 났다. 혹은 낙서를 하거나 이물질이 끼어있는 책을 발견하게 되면 경악을 금치 못하며 그냥 반납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밑줄 긋는 남자'는 달랐다. 그 남자 때문에 콩스탕스의 마음이 콩닥콩닥 뛰면 내 마음도 함께 뛰었다. 다음에는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혹시 이 도서관 안에도 '밑줄 긋는 남자'가 있지 않을까, 도서관 안을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그때의 그 두근거림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였을까. 며칠전 이 책을 서점에서 구입해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 찾아온 것은 두근거림이 아닌 무덤덤함과 실망이었다. 무엇 때문일까? 이 책의 진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때에만 발휘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그때 나는 콩스탕스보다 훨씬 어린, 갓 소녀에서 벗어난 학생이었다. 나 또한 그때는 현채처럼 로맨스를 꿈꾸었었다. 지금은 콩스탕스보다 나이가 많아졌고, 몇 번의 사랑을 거친 다음 더이상 로맨스를 꿈꾸지 않게 되었다. 혹여 도서관에서 '밑줄 긋는 남자'를 만나게 되더라도 살짝 썩소를 날려줄 수 있는 내공이 쌓였다고나 할까. 지금 나는 설레임으로 가득한 그때의 나를 상상하며 웃음을 머금을 수 밖에 없다. 언제 또다시 로맨스를 꿈꾸어 보겠는가.

 

사실 『밑줄 긋는 남자』는 나에게 '로맹 가리'라는 대작가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왜 그토록 콩스탕스가 그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공감했다. 그녀는 31편이 적어서 다른 작가와의 '외도'를 결심했지만, 내가 그를 만날 수 있는 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의 작품이 몇 권 되지 않고, 그나마 출간된 책들도 이미 절판된 책이 많아서 아쉬울 따름이다.

 

2007/10/0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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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0 2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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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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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어와 서술어가 제대로 갖추어진 단문을 좋아한다. 주어는 없이 수식어들만 장황하게 나열되어 있고, 언제 맺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문장을 싫어한다. 그런 문장들을 보면, 마치 머리에는 든 것도 없이 겉모습만 치장하다가 볼일 다 보는 사람 같다. 번역된 외국 문학들은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 문학 속에서 번역체 문장들이 난무하는 것은 도저히 볼 수가 없다. 그럴 땐 정말 책을 집어 던지고 싶다. (사실 말뿐이지, 한번도 그것을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쓰여진 문장이라면 무조건 쉽게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라고 하면 평소에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던 단어들을 무슨 지식의 척도인양 자랑스러워하며 쓰는 사람들, 그 글을 쓴 사람조차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모를 정도로 긴 복문을 쓰는 사람들, 내가 보기엔 그들은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글로 위장하려는 것 같다.

읽기 쉬운 단문으로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김훈을 좋아한다. 어떤 이들은 그의 문장이 너무 건조해서 읽히지가 않는다고 한다. 문장 속에서는 절대 그 누구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그. 극도로 절제된 문장이지만 그 문장을 읽으면서 복받쳐 오름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 지인이 내게 책을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그즈음허삼관 매혈기』의 개정판이 나왔고, 나는 서슴없이 이 책과 김훈의 『강산무진』을 선택했다. 물론 『강산무진』은 단편들을 수없이 곱씹어 가며 읽었지만, 『허삼관 매혈기』는 반대였다. 내가 좋아하는, 읽기 쉬운 단문들로 쓰여져 있었지만 맺음이 없었다. 장면 하나 하나가 제대로 서술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무언 얼렁뚱땅 넘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래도 선물로 받은 책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읽었다. 어느 정도 읽고 나니 그의 문장이 적응이 되었고, 그 어느 문장보다 쉽게 쓰여졌다는 것을 느꼈다. 절대 문장이나 내용의 가벼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위화식의 해학'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허삼관 매혈(賣血)기』,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라는 인물이 '피를 파는 이야기'이다.

초코파이나 문화상품권에 자신의 피를 팔아본 사람이라면 '피를 파는 어려움'을 알 것이다. 정작 나는 팔고 싶어도 무엇이 미달이었는지 한번도 팔 수가 없었기에 그 어려움을 안다. 보통 '전혈'이라고 하는 320 혹은 400cc의 피를 뽑고 나면 2개월이 지나야 다시 할 수 있다. 허삼관도 다르지 않았다. 한번에 400리터씩, 3개월이 지나야 다시 팔 수 있다. 처음에 그는 피를 파는 것이 '건강의 상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를 팔아서 번 35원이 한달동안 노동을 한 대가보다 커서, 그 이후로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팔았다. 35원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한 그는 땀이 아닌 피를 팔아서 번 돈이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한 그는 큰 돈이 필요할 때마다 피를 팔았다. 지금껏 자신의 아들이라 생각하며 키웠던 큰 아들이 사고를 쳐 병원비를 물어내야 할 때, 결혼 전에 마음에 품고 있던 여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후 대가를 치뤄야 할 때, 가족이 가뭄으로 끼니를 거르고 있을 때 등. 그때까지는 3달에 한번이라는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살이는 생각만큼 그리 규칙적이지 않다. 어느날 갑자기 큰 돈이 필요할 때가 찾아오기 마련이고, 또 그런 때가 한꺼번에 겹치기도 한다. 허삼관은 아픈 큰 아들과 둘째 아들 때문에 한달만에 다시 피를 팔고, 또 며칠 만에 거듭해서 피를 팔았다. 예전에는 피를 판 후 몸보신용으로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황주 두 냥'을 꼭 챙겨 먹었지만, 지금은 한두푼도 아쉬워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그는 아들 녀석이 살 수만 있다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허삼관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투박하고 거칠었다. 삶이 고단해서였을까. 툭툭 내뱉는 말에서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허삼관은 자신과 결혼하기 전에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아내도 욕했고, 부적절한 관계로 태어난 첫째 아들도 미워했다. 그러나 부인을 위해, 아들을 위해 피를 팔러 뛰어 다니는 그의 모습에서 어느 누구보다 깊은 정이 느껴진다.

투박함 속에 해학이 있었다. 거친 말 속에는 정이 있었고 따뜻함이 있었다. 마치 대문을 열고 나서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처럼 친근함이 느껴졌고, 그리움이 생겼다. 지금도 어디선가 피를 팔고 반점에서 외치는 허삼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여기 돼지간볶음 한 접시하고 황주 두 냥 가져오라구. 황주는 따뜻하게 데워서 말이야." 

 

2007/10/0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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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vs LG, 그들의 전쟁은 계속된다
박승엽.박원규 지음 / 미래의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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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언론과 광고를 전공한 나는 과제로 기획서를 만들어야 할 기회가 많았다. 기업 자체나 브랜드, 개별 제품 등 다양한 주제의 기획서를 만들었고, 그럴때마다 경쟁사나 경쟁 제품에 대한 분석을 빠뜨리지 않고 보태야만 했다. 우리가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지 간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것이 '삼성'과 'LG'였다. '또 하나의 가족'으로 히트를 치고 있던 삼성의 기업이미지 광고를 분석할 때는 '사랑해요, LG'를 외치는 LG의 이미지광고를 함께 비교해야만 했다. 당시 주부들의 로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디오스' 냉장고에 대한 광고를 만들 때도 경쟁제품인 '지펠'을 분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LG가 삼성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우리집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온 집안이 삼성 브랜드로 도배가 되어 있다. 간혹 '에어컨은 휘센'이라는 것을 인정해서 세트로 나오는 가전제품 중에서 에어컨만 LG 제품을 구매한다던가, 'CD-RW는 LG가 최고'라는 이야기를 듣고 삼성 컴퓨터에 그것만 LG 제품으로 장착을 하긴 했지만 어느 것이 더 나은지 가치판단을 할 수 없을 때는 그냥 삼성 제품을 사곤 한다. 게다가 충성도 또한 뛰어나서 휴대전화가 100만원을 웃돌던 시절 샀던 애니콜 덕분에 재구매를 해야할 때마다 여전히 애니콜만 고집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굳이 삼성의 경쟁 상대를 찾아야 하는 경우라면 LG 말고 또 있을까 생각을 해보지만, 그렇지 않다면 LG가 삼성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전자, 통신, 화학, 금융 등 주요 사업 분야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두 기업의 경쟁 이야기. 비록 전공 때문에 관심은 많았지만 경제나 시장 상황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렵고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생활 깊숙이 삼성과 LG가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소한 기술 이야기가 나와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 그들의 경쟁 구도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조금씩 접해 왔던 것이었고, 이전에 우리가 접한 것이 작은 나무였다면 이 책을 통해서 큰 숲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기술 개발 측면에서의 그들의 경쟁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제품 이미지나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삼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기술 측면에서도 삼성의 승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술 개발 측면에서는 그야말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의 크기 전쟁, VCR과 광디스크 시장에서의 속도 전쟁은 유치할 정도로 심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유치한 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사활을 건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항상 맞불 작전으로 부딪히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대우의 '공기방울 세탁기'가 히트를 쳤을 때처럼 자신들을 위협하는 제3자가 등장하면 합세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 아들과 딸을 교환한 사돈지간이었다. 초창기에 뛰어들었던 방송 사업에서는 함께 출자하여 TV, 라디오 방송국을 세우기도 했다.

 

좋은 라이벌은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들은 경쟁 관계에 있었지만, 서로의 장점들을 모방하며 좀 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때 전세계 1위라는 영광의 자리에 있었던 '소니'를 침체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것은 '소니'를 견제할만한 경쟁 상대가 없었고 그로인해 '소니'를 자만에 빠지게 만든 '소니' 자신이었다. 반면에 삼성과 LG는 서로를 견제하며 끊임없이 기술 혁신을 추구하였고, 덕분에 오늘날은 국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과거 미국의 제약회사들은 지나친 경쟁으로 제 살들을 깎아먹는 과오를 범하며 함께 추락해 갔다. 삼성과 LG는 함께 경쟁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

 

2007/10/0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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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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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여섯번째 사요코』로 데뷔한 온다 리쿠는 불과 2년 전에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지금은 총 19권의 작품이 출간되었다.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책들은 훨씬 많다고 하니, 올해로 데뷔 17년째인 그녀는 분명 다작을 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근 출간된 네 편의 작품 (『구형의 계절』, 『불안한 동화』, 『도서실의 바다』, 『로미오와 로미오는 영원히』) 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면 앞도 뒤도 보지 않고 그냥 사버린다. 그만큼 그녀는 나에게 특별한 작가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자신이 없어졌다. 과연 나는 이 작가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는 것일까? 보통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읽고 나면 그 작가가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지 알기 때문에 다음에 읽는 작품은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예외였다. 그녀의 작품을 열 권 이상 읽고 났을 때, 나는 그녀를 잘 아는 독자라고 자신하며 읽었던 책에서 그만 좌절하고 말았다. 방심했던 탓일까? 한 50페이지 정도를 읽었음에도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아 마음을 다잡고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만 했다. 덕분에 지금은 결코 만만한 마음가짐으로 그녀의 작품을 시작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도입부의 부적응은 어쩔 수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을 꺼린다.
내내 한 사람의 시점에 갇히는 것이 잘 맞지 않는다." (온다 리쿠의 인터뷰 중에서)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 소설을 배울 때면 항상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이 있었다. '이 소설의 시점은 무엇인가?'. 보통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던가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고, 특이하게 2인칭 시점이 한편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즉 대개는 시점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었고, 어쩌다가 시점이 변화하는 부분이 등장하면 반드시 시험 문제로 출제되곤 했었다.
온다 리쿠는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시점의 다각화'를 여러 작품에서 시도하고 있다. 『삼월은 붉은 구렁』, 『라이온 하트』,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등은 다양한 사건과 주인공을 등장시키면서 시점을 바꾸고 있다. 앞서 나열한 작품들이 시도였다면 『유지니아』는 그런 시도들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덕분에 오랫동안 시점이 고정되어 있는 작품을 배우면서 익숙해져 버린 독자들은 그녀의 이런 작품들을 읽을 때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온다 리쿠가 시점의 다각화를 시도하는 이유?
『유지니아』는 오래전에 일어난 대량 독살 사건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중에는 이 사건을 소설로 출판한 작가도 있고, 그 작가가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 할 때 옆에서 도와주었던 후배도 있다. 그 작가와 후배가 증언한 이야기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논픽션? 난 그 말 싫어요.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주장해도, 사람이 쓴 것 중에 논픽션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눈에 보이는 픽션이 있을 뿐이죠. 눈에 보이는 것조차 거짓말을 해요. 귀에 들리는 것도, 손에 만져지는 것도. 존재하는 허구와 존재하지 않는 허구, 그 정도 차이라고 생각해요." (p. 23)

"사실은 어떤 한 방향에서 본 주관에 불과합니다." (p. 82)
 
그렇다. 아무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누군가의 눈을 통해 본 것일테고, 똑같은 사실을 보았지만 다른 사람은 다르게 이해했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온다 리쿠가 시점을 다각화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지니아』에는 결론이 없다. 사건도 있고, 관련된 사람들의 증언도 있다. 범인은 자살했지만 진범은 따로 있다고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몇몇 사람들이 진범을 지목하지만 확실하게 그녀가 진범이라는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똑같은 사실을 두고도 보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증언하고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아직 내 머릿속에는 <The End>라는 자막이 올라가지 않았다.
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가 독자들에게 모든 것을 오픈하고 보여주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복선과 단서는 던져주되 그 이후의 상상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도 있다. 때론 확실한 결말이 궁금하기는 하고 결말이 없어 허무하기도 하지만,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 결론을 상상하는 것도 매우 즐거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온다 리쿠는 독자들에게 상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아직 읽지 않은 그녀의 최근작들은 나에게 어떤 긴장감과 상상의 즐거움을 선사해줄지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2007/10/03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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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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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단에게 납치된 노인이 스스로 유괴단의 리더가 돼서, 범인들을 자기 수족처럼 조종하여 막대한 몸값을 자기 자식들한테 빼앗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요." (p380)
 

워낙 심약한 심장을 가지고 있는 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완전히 물러갈 때까지는 절대 극장가를 서성이지 않는다. 덕분에 개봉한지 꽤 된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이라는 영화를 책에 둘러져 있는 띠지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보통 유괴라고 하면 당연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영화의 제목으로 추측을 해보면 유괴의 대상은 권순분 '여사', 즉 어린이가 아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유괴'가 아닌 '납치'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소설 속 유괴의 대상도 어린이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도대체 어떤 인물을 유괴했길래 '대유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 것일까.

 

큰집 동기동창인 겐지와 마사요시, 그리고 헤이타는 같은 시기에 출소를 하면서 깨끗히 손 씻고 살기 위해 크게 한탕하기로 결심한다. 한탕의 수단은 유괴, 대상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엄청난 재력을 가진 82세의 야나가와 도시 여사, 목표액은 5천만 엔. 오랫동안 할머니 주위를 맴돌던 그들은 산행에 오른 할머니를 유괴하는데 성공한다. 사실 그들은 치밀하거나 악랄하지 않았다. 삼인조의 리더격인 겐지가 모든 범행 계획을 세우고, 마사요시와 헤이타는 그를 형이라 부르며 따라갈 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완전히 '어리버리 삼인조 유괴단'인 것이다.

야나가와 도시 여사는 엄청난 재력 덕분에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 재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고, 그녀는 그곳의 여왕이나 마찬가지였다. 뿐만아니라 그녀에게 은혜를 입은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콩을 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녀를 신봉했다. 자연히 이 유괴사건은 여사의 집안 문제를 넘어서 도시 전체의 문제로 부상했다.  특히 이 사건의 지휘자로 지목된 이카리 또한 여사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사를 무사히 구출해 내는데 전력을 다했다.

아무리 82세의 할머니라지만 만만치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할머니는 유괴단에게 협조적이다. 아니 협조적인 것을 뛰어 넘어 도리어 유괴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은신처는 어디로 삼아야 할 것이며, 협박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까지 유괴단에게 알려주는 친절한 할머니. 게다가 자신의 몸값이 겨우 5천만 엔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버럭 화를 내며 100억 엔으로 올려 달라고까지 한다. 할머니는 마치 자신의 손자들에게 100억 엔이라도 떼주려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한다. 이에 '어리버리 삼인조 유괴단'도 할머니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할머니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 이 '어리버리 삼인조 유괴단'에게 '무지개 동자'라는 판타스틱한 이름까지 지어준다.

결국 사건은 이카리와 할머니가 주도하는 '무지개 동자'의 쫓고 쫓기는 두뇌 싸움으로 이어지고, 다행히도 유괴는 성공하여 100억 엔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게 된다.

 

왜 할머니는 '무지개 동자'에게 그토록 협조적이었을까?

사실 할머니에게는 7명의 자식이 있었지만, 전쟁 때문에 3명의 자식을 잃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자식들도 할머니가 보기에는 변변치 못해 보였고, 할머니가 죽고난 후 엄청난 재산을 유지할 수 있을런지도 걱정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35kg이었던 할머니의 몸무게가 26kg으로 급격히 줄어버렸다. 보통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다 됐다고들 한다. 할머니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던 것이다. 마침 그때 '무지개 동자'가 할머니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할머니는 그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로 대신할 뿐이다. '이건 신이 나를 위해 차려주신 밥상이야.' (p391)

 

소설을 읽는내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특히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의 내용은 모르지만 권순분 여사 역을 맡은 나문희를 떠올리자 캐스팅 한번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미스터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절대로 어둡지 않다. 오히려 웃음이 나올 정도로 경쾌하고 따뜻하다. 1978년, 거의 30여 년 전에 나온 소설이지만 절대 촌스럽지도 않다. 덴도 신, 그가 이미 죽은 작가라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2007/10/0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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