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23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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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에게 죽음이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자신이 사망할 경우 화환도 추도문도 추도식도 다 생략하고 가장 간소한 장례 절차를 지켜 달라"(154쪽)고 유언장에 남겼습니다. 그래서 그의 무덤에는 십자가나 묘비도 없고 그 어떤 안내판도 없어서 그저 흙더미 위에 풀이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사전 정보가 없다면 분명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을 겁니다.

그에게는 평생에 걸친 두 가지 화두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두 화두를 탐구했습니다. 첫번째는 '문명과 반대되는 자연' 입니다. 그에게 있어 문명이란, 인간이 만들지 않은 거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간단한 도구에서 기술, 과학, 관습, 사회 제도, 종교, 교육, 문화, 예술에 이르는 모든 것"(163쪽)을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며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했습니다. 그의 무덤에 아무런 표식이 없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일지도 모릅니다. 나아가 그는 자연을 넘어서는 것, 즉 "초자연적인 어떤 것, 영혼"을 강조했습니다.

두번째는 '죽음' 입니다. 필멸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죽음. 그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기도 하며, 평생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 탐구했습니다.

삶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미완성 단편작인 「광기의 수기」는 '죽음의 공포'에 대한 톨스토이의 개인적인 체험이 담긴 소설입니다.

『전쟁과 평화』의 성공으로 이반 일리치처럼 성공가도를 달리던 톨스토이는 한 지방에 매물로 나온 영지를 보러 방문한다. 오랜 여행으로 피곤했던 그는 한 여관방에서 하룻밤 쉬기로 하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들 수가 없었고 오히려 어떤 공포를 느꼈다고 합니다. 다음날 자신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새벽 2시였소. 너무나 피곤했소. 자고 싶었고, 피곤하다는 것 말고는 내 컨디션은 완벽했소. 그런데 갑자기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우울감과, 공포,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소. 이 모든 것에 관해서는 나중에 상세하게 알려 주겠소. 이토록 고통스러운 감정은 생전 처음이었소……." 174쪽, 역자해설

「광인의 일기」는 이때의 체험을 쓴 것입니다. 주인공 '나'는 어느 기관에 끌려가 정신 감정을 받는데, "미치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봐도, 유년시절에 발작과도 같았던 울음 두 번을 제외하면 미쳤다고 의심할 부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10년째 되던 해, 유년 시절 이후 처음으로 발작이 일어났습니다. 톨스토이가 겪었던 것처럼, 매물로 나온 영지를 확인하기 위해 떠났던 여행 중에 시작됐습니다. 그는 너무 지루하고 무서운 데다 피곤하기까지 해서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사각형 방을 빌려 하룻밤 머물기로 하는데, 그 방에서 '죽음의 공포'를 대면하고 맙니다.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뭐가 그토록 두려워 도망치려 하는 걸까. 도대체 어디로 도망치려 하는 걸까. 무언가 끔찍한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데, 도망칠 수가 없다. 나는 언제나 나다. 그런데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래, 나다. 여기 내가 있다. 뻰자현의 영지건 그 밖의 어떤 영지건 나한테 무언가를 더해 주지도 못할 것이고 빼앗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내가, 나 자신이 지긋지긋하고 역겨워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 잠 속으로 도피해서 잊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갈 수가 없었다. 나는 복도로 나왔다. (…) 나는 나를 괴롭히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 복도로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득달같이 뒤쫓아 나와 계속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점점 더 무서워졌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기분이 나쁜 거지?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 거지?> "나를 두려워하는 거지." 죽음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여기 있거든."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래, 죽음이야. 죽음이 오고 있어, 바로 여기 와 있어. 하지만 그래선 안 돼. 실제로 죽음이 코앞에 찾아온다고 해도, 그때와 같은 공포는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다가오는 죽음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절대로 그것이 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전 존재가 나는 살아야 한다고, 그럴 권리가 있다고 외치면서 동시에 점점 더 강렬하게 죽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바로 이러한 분열이 가장 끔찍했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공포를 떨쳐 버리려 했다. 청동 촛대에 타다 남은 양초가 꽂혀 있는 게 보이기에 불을 붙였다. 붉게 타오르는 불꽃과 촛대보다 작은 양초 토막은 여전히 같은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삶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 내가 점점 죽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너무나 끔찍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눕자마자 공포가 엄습해 와 벌떡 일어났다. 메스꺼움, 정신적인 메스꺼움, 토하기 직전의 뉘엿거림 같은 일종의 정신적인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끔찍하고 무서웠다. 죽음이 끔찍한 것인 줄 알았는데, 삶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니 끔찍한 것은 죽어 가는 삶이었다. 어쩐 일인지 삶과 죽음이 하나로 뒤엉켰다. 137~138쪽

이런 일을 두 번 정도 겪고 난 그는 자신의 죄를 되새기며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아내에게는 "이 영지의 수익은 사람들의 가난과 슬픔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영지를 살 수 없다"(151쪽)고 말합니다. 교회 앞에 있던 걸인들에게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털어서 나눠줍니다.

소설은 이렇게 미완성으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톨스토이 자신이기도 한 주인공이 죽음의 공포를 대면하는 장면은, 당시 그가 겪었던 공포가 어떤 것인지 충분히 짐작케 합니다.

죽음은 끝났다!

중편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김철수'와 같은 맥락의 이름입니다. 그만큼 러시아에서 '이반'이라는 이름은 흔하고 평범한 이름인거죠. 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가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끔찍하다고 말합니다.

법학대학을 졸업한 이후 승진을 거듭하며 성공의 길을 걸었던 그. 그는 새로 장만한 집을 단장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병을 얻습니다. 겨우 45세였는데, 유능하다고 소문난 의사를 여럿 만나보아도 말로는 나을 수 있다고 하는데 치료에 진척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왜 하필 자신인지, 왜 하필 그날 그것이 그곳에 있어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는지, 반문합니다. 그의 동료들 또한 말합니다. 그런 병에 걸린게 자신이 아닌 이반 일리치라서 다행이라고 말이죠.

이런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를 '환자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환자로서 '연민'을 품어주길 바라는데, 사람들은 곧 나을 수 있을거라는 말을 던지며 그의 고통을 외면합니다. 심지어 그의 가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내 역시 하루종일 아픈 그의 곁에 있으면서 같은 고통을 겪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런 그의 곁에, 오직 환자로만 대해주는 하인 게라심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던 중 고통이 극에 달하고 죽음이 눈 앞에 다가왔을 때, 이반 일리치는 깨닫습니다. 지금까지 자신 또한 부정해왔던 죽음을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라는 것을,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말입니다.

바로 이 순간 이반 일리치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져 빛을 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그래서는 안 되는 삶이었지만 아직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도대체 뭐지?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귀를 기울였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뜨자 아들이 보였다. 아들이 불쌍했다. 아내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입을 헤벌린 채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눈물이 그녀의 코와 뺨을 타고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아내도 안쓰러웠다.

<그래, 내가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어.> 그는 생각했다. <다들 불쌍해. 하지만 내가 죽으면 좀 편해질 테지.>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할 힘이 없었다. <아니야, 뭣 하러 말을 해. 그냥 보여 주면 돼.> 그는 생각했다. 124쪽

이 모든 것들은 한순간에 일어났고 그 순간의 의미는 이후 결코 바뀌지 않았다.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그는 두 시간이나 더 사경을 헤매는 것으로 보였다. 그의 가슴께에서 뭔가 부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뼈만 앙상한 육신이 경련을 일으켰다. 부글거리던 소리도, 쌕쌕거리는 숨소리도 차츰 잦아들었다.

"끝났습니다!" 누군가가 그를 굽어보며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반 일리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죽음은 끝났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죽음은 없어.>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도중에 멈추더니 온몸을 쭉 뻗었다. 그렇게 그는 죽었다. 126쪽

소설 속 인물들은 말합니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혹은 "왜 하필 나인가!"하고 말이죠. 하지만 아무도 죽음을 제대로 직시한 사람은 없습니다. 필멸의 존재라면, 누군든지 죽을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주인공의 이름을 흔하디 흔한 '이반'으로 설정했을테구요.

톨스토이는 90편에 달하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소개된 작품이 몇 작품되지 않는다는게 아쉽습니다. 어디라도 좋으니, 어서 빨리 "톨스토이 전집"을 기획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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