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것이 전쟁이란 말인가! 적과는 만날 수도 없는데!

1936년 12월 말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으로부터 불과 일곱 달 전이다. 그럼에도 이미 엄청난 거리 밖으로 멀어져버린 시기이다. 뒤에 일어난 사건들이 그 시기를 지워버렸다. 1935년이나 1905년을 지운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하게 지워버렸다. 나는 신문 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으로 스페인에 갔다. 하지만 가자마자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 시기, 그 분위기에서는 그것이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도 카탈로니아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혁명은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중이었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12월이나 1월에 들어서면서 이미 혁명기가 끝나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막 건너온 사람에게는 바르셀로나의 상황이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나로서는 노동 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에 들어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11쪽

1936년, 전세계 젊은이들이 스페인으로 향합니다. 그들은 스페인에서 일어난 내전을 단순히 '스페인' 한 나라만의 문제로 여기지 않았고, 스페인에서 파시즘 세력을 몰아내면 다른 곳에서도 승리할 수 있으며 더불어 세계대전도 막아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지 오웰과 헤밍웨이도 그들 속에 있었습니다.

전쟁의 한가운데서 스페인 내전을 지켜본 그 둘은 각각 엄청난 작품들을 발표합니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 당시 인민전선에 대항한 민족주의자들이 처형되었던 장소인 론다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써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조지 오웰 역시 1936년 12월부터 1937년 6월까지 의용군으로 참전해 직접 경험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지켜본 전쟁은 전쟁이라고 할 수 없었고, 군대도 모든 것이 잘 훈련된 군대가 아닌 오합지졸에 불과했습니다. 총 조차 지급되지 않았고, 그나마 지급되더라도 제대로 된 총이 없었습니다. 수류탄도 불발이거나 엉뚱하게 터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병사들의 군복 또한 제각각이었습니다. 게다가 전선이라고는 하지만, 적과는 만날 수 조차 없었고 총 한번 제대로 겨눠볼 일도 없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전세계 젊은이들이 모두 모였는데, 하는 일이라곤 그저 경계근무, 정찰 근무, 땅파기 밖에 없으니 얼마나 한심하고 시간이 아까울까요. 조지 오웰의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병영 전체는 더럽고 혼란스러웠다. 의용군은 건물을 점령하기만 하면 모두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15쪽

당시의 의용군 대오는 아주 특이해 보이는 오합지졸 집단이었다. 16쪽

의용군 체계 전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병사들은 어중이떠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무렵 자원병은 줄고, 쓸 만한 병사들은 이미 전선에 나가 있거나 죽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몇 퍼센트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들이었다. 20쪽

<공화국>을 수호한다는 자들이 다룰 줄도 모르는 낡아빠진 소총을 가진 이런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 무리라는 사실이 두렵게 느껴졌다. 31쪽

전선을 보고 나자 나는 심한 메스꺼움을 느꼈다. 이것이 전쟁이란 말인가! 적과는 만날 수도 없는데! 34쪽

나는 스페인에 있을 때 전투를 본 적이 거의 없다. 35쪽

그러던 중, 오웰은 '어쩌다가' 총에 맞습니다. 새벽에 보초들에게 교대 준비를 하라고 말하는 도중이었는데, 갑자기 총에 맞습니다. 교전도 아니었고, 자신을 쏜 상대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다만 엄청난 충격을 느꼈고, (대작가인 그 조차)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총을 맞는 경험이 자주 있을 수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나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언젠가는 한 명쯤 쓰러뜨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파시스트를 쓰러뜨리기는커녕, 오히려 파시스트 저격병이 나를 쓰러뜨렸다. 전선에 가서 열흘쯤 있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총알에 맞는 경험은 아주 흥미롭기 때문에 자세히 묘사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238쪽

통증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모호한 만족감을 느꼈다. 아내가 틀림없이 기뻐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늘 내가 부상당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야 큰 전투에서 전사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순간 갑자기 어디를 맞았는지,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궁금해졌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총알이 몸의 앞쪽 어딘가에 맞았다는 것은 의식하고 있었다. 말을 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희미하게 꺽꺽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시도를 하자 어디를 맞았냐고 물을 수 있었다. 목이라고 병사들이 말했다. 들것 담당자인 해리 웹이 붕대와 함께 응급치료 때 쓰라고 준 작은 알코올 병 하나를 가져왔다. 병사들이 내 몸을 들어올리자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뒤에 있던 스페인 병사가 총알이 목을 관통했다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알코올 기운을 느꼈다. 평소 같았으면 엄청나게 따가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상쾌할 정도로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239쪽

나는 제대증을 받았다. 29사단 직인이 찍혀 있었다. <무능>이라고 적힌 의사의 증명서도 받았다. 이제 마음대로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의 몸이었다. 덕분에 나는 이제 비로소 스페인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260쪽

어떻게 지난 여섯 달 동안 그런 것을 보지 못했는지 신기한 일이었다. 제대증을 호주머니에 넣자 다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261쪽

오웰은 목에 관통상을 당해 제대 확인증을 받게 됩니다. 이즈음 상황이 급변해서 오웰과 같은 소속으로 활동했던 의용군들은 단순히 무기를 소지했다는 이유 등으로 체포되고 처형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웰 역시 체포될 위기에 처했고, 스페인 국경을 빠져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제대 확인증이 있어서 아내와 함께 스페인을 무사히 빠져나가게 됩니다.

전투다운 전투도, 군대다운 군대도 없는 곳. 정작 이 전쟁을 왜 하는지 조차 모르는 스페인 사람들. 그는 이런 모습에 환멸을 느껴 하루라도 빨리 스페인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전쟁과 무관한 프랑스와 영국 땅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스페인으로 가고자 합니다.

당신이라면 전쟁중인 나라를 떠나 평화로운 땅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겠는가? 292쪽

이상하게도 불안정한 시간이었다. 폭탄, 기환총,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늘어선 줄, 선전, 음모 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 한적한 어촌에서 우리는 깊은 안도감과 고마움을 느껴야 마땅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스페인과의 거리는 멀어졌을지만, 스페인에서 우리가 보았던 것들이 뒤로 물러나 적당한 비율로 줄어들지는 않았다. 대신 쏜살같이 우리 뒤를 덮쳐, 모든 것이 전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페인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꿈을 꾸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스페인에서 나가면> 지중해 근처의 어딘가로 가서 한동안 조용히 지내며 낚시라도 하자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막상 그런 곳에 오니 따분함과 실망뿐이었다. 날씨는 쌀쌀했다. 바다로부터 끈질기게 바람이 불어왔다. 물은 탁하고 물결은 거칠었다. 항구 둘레를 따라 재, 코르크, 생선 내장이 더껑이를 이루어 돌에 부딪히고 있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는 스페인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아니 오히려 누군가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다해도, 우리 둘 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투옥된 상태이기를 바랐다. 스페인에서 보낸 몇 달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외적인 사건들은 약간씩 기록을 했지만, 그 사건들이 나에게 남긴 느낌은 기록할 수 없다. (…) 바라건대 그들 모두가 여전히 안전하기를. 그들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그들이 전쟁에서 이겨 독일인, 러시아인, 이탈리아인 할 것 없이 모든 외국인들을 스페인에서 몰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역할에 무력함을 느꼈던 이 전쟁은 나에게 대체로 나쁜 기억만을 남겼다. 294쪽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는 환멸을 느꼈을지 모르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적인 매력을 느낍니다. 때론 너무 느긋하고 비효율적이라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열정에는 무한한 애정을 느낍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스페인 사람들의 아량에 대해 '스페인적인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스페인에 대해서 매우 나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쁜 기억이 거의 없다. 285쪽

이 소설(이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에는 카탈로니아에 대한 '찬가'는 없습니다. 반어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찬가'가 아닐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