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밀란 쿤데라 전집 7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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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많되 몸짓은 별로 없다!

'밀란 쿤데라'는 아베나리우스 교수를 기다리면서 맞은편에 있는 헬스클럽의 실내 수영장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수영 강습을 받고 있던 한 부인이 쿤데라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 부인은 예순이나 예순다섯 살쯤으로 보였는데, 수영 강습이 끝나자 수영복 차림으로 풀 가장자리를 따라 수영 강사를 지나쳐 걷다가 강사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짓합니다. 그 미소, 그 손짓이 마치 스무 살 아가씨 같아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쿤데라의 심장까지 졸아들 정도입니다.

나의 심장이 졸아들었다. 그 미소, 그 손짓, 바로 스무 살 아가씨 같지 않은가! 그녀의 손은 눈부시도록 가볍게 날아올랐다. 마치 그녀는 장난하듯 울긋불긋한 풍선 하나를 연인에게 날려 보낸 것 같았다. 비록 얼굴과 육신은 이미 매력을 상실했다지만, 그 미소와 손짓에는 매력이 가득했다. 그것은 매력 잃은 육신 속에 가라앉아 있던 한 몸짓의 매력이었다. 그 부인이라고 해서 자신이 이제 더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테지만, 그녀는 그 순간만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리라. 10쪽

그때 나의 뇌리에 아녜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녜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이름의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 11쪽

그 부인의 미소, 손짓으로부터 『불멸』의 주인공 '아녜스'가 탄생합니다.

만약 우리 지구의 인구가 800억을 넘어섰다면, 그들 각자가 자기만의 몸짓 일람표를 갖고 있다는 것은 있음직하지 않은 일이다. 산술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의 사람 수에 비해 몸짓 수가 비교도 안 될 만치 적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충격적인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즉 몸짓이 개인보다 더 개인적인 것이다. 이를 격언 형태로 얘기하면, 사람은 많되 몸짓은 별로 없다가 된다. 16쪽

『불멸』은 작가 '밀란 쿤데라'가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하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입니다. 소설 속 '쿤데라'는 친구인 아벨리우스 교수를 기다리는 동안 건너편 수영장을 관찰합니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자신의 매력을 미소와 손짓으로 발산하던 한 부인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불멸』은 크게 세 가지 층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장 바깥쪽 이야기는, '밀란 쿤데라'가 화자로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이것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쓰기 작법처럼, 혹은 자전적 에세이처럼 읽힙니다. '나는 이렇게 소설적 인물을 창조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모티프를 얻어 이야기를 구성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안쪽으로 그가 창조한 '아녜스'의 이야기와 불멸의 작품을 남긴 '괴테'의 일화가 교차돼 등장합니다.

쿤데라의 소설 속 '아녜스'는 변호사인 '폴'과 결혼을 해 딸 브리지트를 두었고, 자신보다 8살 아래의 여동생 '로라'도 있습니다. '아녜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비서가 아버지에게 보냈던 미소와 손짓을 목격한 뒤부터 그것을 자신의 몸짓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미소와 손짓은 '쿤데라'가 수영장에서 목격했던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를 모방하기 좋아했던 '로라'가 똑같은 몸짓을 하는 걸 보고는 다시는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로라'는 언니가 사고로 죽은 뒤에 형부인 '폴'과 재혼을 하기도 합니다. '폴'은 '로라'의 몸짓을 보고는 '로라'만의 몸짓이라고, 자신에게만 보내는 몸짓이라고 감탄합니다.

갑자기 그녀가 우리 테이블 쪽으로 머리를 돌리더니, 팔 하나를 허공으로 날렸다. 그 동작이 너무도 경쾌하고 너무도 매력적이고 너무도 잽싸서 마치 금빛 풍선 하나가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날아올라 문 위에 걸려 머무는 것처럼 보였다.

즉시 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더니 그가 아베나리우스의 팔을 꽉 잡으며 말했다. "보았소? 저 몸짓을 보았소?"

(…) "아, 로라! 그녀만의 것이야! 아, 저 몸짓! 그녀의 전부를 함축하는 몸짓!" 542~543쪽

불멸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지 않다!

또다른 이야기는 불멸의 작품을 남긴 '괴테'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미 아내가 있던 괴테에게 한 젊은 부인이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며 그와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 부인의 이름은 베티나, 괴테가 23세 때 사랑했던 여자의 딸이기도 한 그녀는 스스로 '괴테의 딸'이라고 여깁니다. 괴테는 베티나 때문에 (물론 작품도 그러했지만) 사후에도 끊임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불멸'을 누렸습니다.

불멸. 괴테는 이 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 "옷차림이 가벼운 한 인물이 사원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등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에게선 어떤 비범한 구석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선구자 없이, 다른 위대한 모델들에게는 무관심한 채,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불멸을 만나러 걸어간 그는 바로 셰익스피어였다."

물론, 여기서 괴테가 말하는 불멸은 영혼불멸에 대한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다른 불멸, 사후에도 후세의 기억 속에 살아남는 자들의 세속적인 불멸이다. 81~82쪽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누구나 불멸에 이를 수 있으며 모두가 청년 시절부터 불멸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승에서 만난 헤밍웨이는 '불멸'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삶이 힘들어서 혹은 싫어서 권총으로 자살한 헤밍웨이에게는 영원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끔찍할 정도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요. 하지만 자신의 불멸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일단 불멸의 배에 오르고 나면 영원히 내릴 수가 없지요. 나처럼 두개골을 권총으로 쏘아 버려도 자살한 모습 그대로 그 배 위에 머무릅니다. 끔찍한 일이에요. 요한. 정말 끔찍해요. 138쪽

이쯤되니 밀란 쿤데라 자신은 '불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집니다. 분명 그도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속적인 불멸'을 누릴텐데, 그에게 '불멸'은 어떤 의미일까요?

쿤데라는 '불멸'을 두 종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생전에 알고 지낸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작은 불멸'과 생전에 몰랐던 이들의 머릿속에도 남는 '큰 불멸'이 바로 그것인데, 예술가와 정치가는 대부분 '큰 불멸'의 길을 걸었습니다. 셰익스피가 가장 먼저 그 길을 걸었고, 괴테와 헤밍웨이도 그 길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불멸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지"(82쪽) 않습니다. '아녜스'는 죽은 뒤에, '작은 불멸'로 남았습니다. '폴'과 '로라' 모두에게 잊혀진 것 같았지만, '로라'의 몸짓으로 '작은 불멸'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나는 아녜스를 생각했다. 처음으로 그녀를 상상한 게 벌써 이 년 전이다. 그때 나는 클럽의 긴 의자 위에서 아베나리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내가 포도주를 한 병 주문한 것은 그래서였다. 나의 소설이 끝났기에, 첫 발상이 이루어진 곳에서 이를 자축하고 싶었던 것이다. 550쪽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 제목은 이 소설에 붙여야 했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을 쓸 때 '7'이라는 숫자에 집착합니다. 그의 첫 소설인 『농담』을 쓰고 난 후부터 일곱 부분으로 구성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6부로 구상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7부로 나누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소설 역시 7부로 구성되어 있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보여줬던 기법을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6부에서 먼저 엔딩을 보여준 뒤에 7부에서 왜 그런 엔딩이 나왔는지 되짚어줍니다.

제 소설들은 7이라는 숫자 위에 세워진 동일한 건축술의 변형인 셈이죠. 『소설의 기술』 126쪽

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화자 뒤에 살짝 숨어 있었던 '쿤데라'가 『불멸』에서는 소설 앞으로 튀어나옵니다. 그는 『삶은 다른 곳에』를 쓴 작가로 등장하며, 심지어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눠 독자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비교할 수 밖에 없도록 (혹은 읽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6부를 기다리며 안달하네. 새로운 인물이 내 소설에 등장할 걸세. 그 6부가 끝날 때쯤 그는 등장할 때처럼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릴거야. 그는 무엇의 동기도 아니며, 어떤 효과도 낳지 않네. 내 마음에 드는 게 바로 그런 거라네. 소설 속의 소설이요, 내가 써 본 것 중에서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가 될 거야. 자네 역시 그 이야기를 읽고 슬퍼할 걸세."

아베나리우스는 잠시 어색한 침묵을 지키다가 상냥하게 물었다. "그 소설의 제목은 뭔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니, 그 제목은 이미 써먹지 않았는가."

"그래. 써먹었지! 하지만 그때 난 제목을 잘못 달았어. 그 제목은 지금 쓰는 소설에 붙여야 했어." 3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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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
조은 지음 / 로도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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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예쁘고 포근하고 상냥하고 사랑스럽던 '또또'

백영옥 작가의 에세이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에서 '또또'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녀가 발췌해 준 문장만으로도 '또또'가 자꾸 눈에 밟혔는데, 다른 작가의 에세이에서 '또또'를 또 만나게 됐습니다. 평소 (남녀노소가 아닌) 수컷 암컷 대소를 불문하고 개라면 피해 다니기 바빴는데, 희한하게도 '또또'는 자꾸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유일하게 우리집에 잠시 머물렀다 간 강아지 이름과 비슷했기 때문일까요? 그 녀석의 이름은 '뽀뽀'였고, 키울 능력이 부족했던 우리를 만나 6개월 만에 다른 곳으로 보내져야만 했습니다.

사직동에 사는 동안 나는 몸도 건강해졌고, 의식도 성장했다고 느꼈다. 느리고 굼뜬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여러 권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 세월 동안 한결같이 내 곁에 있었던 존재는 상처 받은 채 내게로 왔던 작은 개 또또였다. 사람들과 나누는 마음은 여러 이유로 변덕이 잦았지만, 또또만이 고른 마음으로 내 옆에 있었다. 잡종개였던 또또만이 내가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슬픔도 묵묵히 덜어내 줬다. 또또는 한 번도 내게 싫증을 내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나의 시시한 면면을 누설하지 않았고, 인간을 통해서는 줄일 수 없었던 내 아픔을 조용히 나눠 가지면서도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같이 사는 동안 내게 기쁜 일도 있었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밖으로 나도느라 우리가 같이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으니 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또또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처럼 나는 삶이 내게 주는 무게를 또또를 통해 덜어 내곤 했지만, 같이 사는 동안엔 그 사실을 제대로 의식하지도 못했다. 뒤늦게 그걸 알고 뭉클뭉클 솟구치는 고마움을 느꼈을 때 또또는 이미 폭삭 늙어 버린 뒤라 우리 앞에는 안타까운 시간만 남아 있었다. 10쪽

한번 키워보고 싶다며, 어느 날 동생이 무턱대고 데려온 '뽀뽀'. 하지만 우리에게는 '뽀뽀'를 제대로 보살펴 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떨어져야만 했던 '뽀뽀'는 우리가 떠난 현관 앞에서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하루종일 우리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요? 제대로 보살펴 주지도 않고, 하루종일 집 안에 혼자 두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뽀뽀'를 하루종일 옆에서 지켜봐 줄 수 있는 지인에게 입양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입양 보낸 우리가 어디가 좋다고, 가끔씩 그 지인이 하는 가게를 방문할 때마다 '뽀뽀'는 헤어진 가족이라도 만난 것처럼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줬습니다.

'뽀뽀'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아마도 저였을 거예요. 알레르기도 있고, 강아지도 무서워해서 곁에 두지 않았는데 집에 있을 때면 늘 뒤에서 맴돌고 있었나봐요. (곁에 있는 건 워낙 싫어하니까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책상에 앉아 있다가 의자를 뒤로 뺐는데, 그 순간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의자 바퀴에 작은 발이 끼여 버렸던 것입니다. 동생이 여행을 가고 온전히 혼자 '뽀뽀'를 돌보게 됐을 때는 영양실조에 걸리게 했고, '뽀뽀'를 데리고 이동해야 할 때는 가까이 안아주는 게 아니라 멀찍이 들고 다녔습니다. 저도 제 나름의 사정(알레르기와 공포)이 있었지만, 지인들은 '뽀뽀'가 너무 무서울 것 같다며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뽀뽀'는 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뒤에서 맴돌고 있었죠. 제가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절대 가까이 오지 않았지만 말이죠.

또또는 죽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받은 나쁜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도 편히 자지 못하던 또또를 하룻밤에도 몇 번씩 깨워 악몽으로부터 건져 내야 했던 밤의 기억이 너무도 강해 나는 아직도 그들의 말에 얼른 동조하지 못한다. 그때를 제외하면, 말년의 또또는 평화로웠다.

(…) 상처투성이로 내게로 왔지만, 또또는 내게 어떤 마음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공포감을 다스리지 못해 저도 모르게 나를 물기는 했지만. 물고 나선 곧바로 신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 녀석을 미워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녀석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꽤 오랫동안 안간힘을 썼고, 그동안 녀석의 증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냥 번쩍 들어 품에 안아 줬으면 녀석은 명랑하고 상냥한 태생적 본능을 잃지 않고 예쁘게 살다 죽었을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그랬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평범했을 것이다. 11쪽

원래 '또또'는 조은 시인이 세 들어 살던 개량한옥 주인집의 개였습니다. 십 대 후반의 두 아들과 살고 있는 주인집은 평소에는 너무도 조용하고 강아지도 방 안에서 키웠는데, 가끔씩 이 강아지를 학대하는 장면이 시인에게 목격됩니다. 주인집 아저씨는 강아지를 때리기도 하고, 추운 겨울밤에 목욕을 시킨 후 말려주지도 않은 채 마당으로 쫓아내기도 합니다. 겨우 1만 원짜리 강아지라며 막 대하고, 개 장수에게 줘버린다는 말도 합니다. 이런 '또또'가 불쌍해서 시인이 가끔씩 돌봐주자 '또또'의 안부를 시인에게 묻기도 합니다. 지난밤에 얼어 죽지 않았는지, 새벽에 나가는 걸 봤는데 돌아왔는지 등.

갈색 실꾸리 같은 것이 흩날리는 나뭇잎 사이에 끼어 내 쪽으로 굴러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곧 그것이 둥글게 오므라들며 마른 큼직한 플라타너스 잎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뒤 그 나뭇잎이 회오리치는 바람에 굴러 내 발목에 와닿았다. 열리지 않는 문의 의미를 병적으로 확대 해석하고 있을 때였다. 곧이어 무엇인가가 내 바지를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고, 그 느낌은 계속되었다. 뭔가가 이상해 허리를 굽혀 발치를 내려다보던 순간, 깜짝 놀랐다. 갈색 나뭇잎이거나 실꾸리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너무도 예쁘게 생긴 작은 강아지였다. 나는 그때껏 그렇게 예쁘게 생긴 강아지를 본 적 없었다. 강아지는 상냥하고, 명랑하고, 예쁘고, 포근하고, 사교적이었다.

(…) 강아지는 내가 일찍이 본 적 없이 예뻤지만, 나는 녀석에게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19쪽

사실 시인은 개와 가까워지는 게 두렵습니다. 어릴 때 키웠던 '마루'가 아빠 친구들에게 잡아먹힌 사건 이후로 충격을 받아 더이상 개는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매일 마주치는 이 '또또'를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손이 닿기만하면 물어버리는 '또또', 시인 역시 여러 번 '또또'에게 손을 물렸습니다. 아픈 '또또'를 치료하기 위해 동물병원에 데려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의사는 이런 예민한 성격에, 잘 먹지도 않아서 3년도 못 살거라고 말합니다.

집주인과 공동으로 '또또'를 키우던 시인은 이사를 하면서 아예 '또또'를 데려갑니다. 주인 역시 시인에게 별말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1만 원짜리였으니까요.

또또는 사람이 의도를 갖고 자신을 때리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고통에 강했다. 녀석은 정말이지 죽을 정도로 아파도 조용했다. 내부의 고통을 수용하는 녀석의 태도는 인간인 나도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102쪽

하지만 시인과 '또또'는 무려 17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나중에는 '또또'가 아파도 더이상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았습니다. 병보다는 그런 스트레스가 '또또'에게 더 해롭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예민하고 아팠지만, 신체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견딜 줄 알았던 '또또'. '또또'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진 날, 시인은 동물병원으로 '또또'를 마지막으로 데려가, 편안하게 보내주기로 결심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또또'에게 보내는 시인의 '애도'일지도 모릅니다.

적게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또또는 '저렇게 먹고 어떻게 생명이 유지될까?' 싶을 정도로 적게 먹었는데, 3년을 못 넘길 거라던 수의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17년을 살았다. 135쪽

개들은 정말이지 인간의 속된 감정을 정화시키는 데 더없이 좋은 존재이다. 인간에게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그들의 순저오가 순수함이 주는 위로에 매혹되면, 개와 살면 일생이 평화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혼자 사는 젊은이가 개와 너무 밀착되어 생활하는 것을 조금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세상을 알 만큼 아는 나이 든 독신들이 그렇게 지내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같이 살고 있는 개에게서 얻는 정서적 위안과 평화를 변덕스러운 인간관계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어 그들에게 다시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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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5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희 이모님이 기르시던 댕댕이
이름을 제가 또또라고 지어 주었었는데...

지금 무지개 다리 건너갔구요.

뒷북소녀 2019-02-27 13:03   좋아요 0 | URL
아, 또또...
강아지들은 주로 부르기 쉬운 이름들로 명명되나봐요.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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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도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자신 있게 늙고 있어!

 

마음산책에서 나온 <짧은 소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입니다. 이 책에는 모두 19편의 짧은 소설들이 실려 있는데, 틈틈이 읽을 수 있는 짧은 분량과 감각적인 문장들 덕분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어떤 날에는 모든 것이 괜찮고 제대로인 듯하지만 어떤 날에는 반만 그렇고 또 어느 순간에는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그것이 그의 흔한 아침인 걸까. 선미도 에그머핀을 다 먹지는 못하고 남자처럼 반을 남겼다. 그리고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사람들의 화사한 일상을 SNS로 지켜보았다. 이 도시의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있는 그들의 아침이 이 작고 완전한 프레임의 사진들처럼 온전할지, 그러니까 제대로일지, 혹시 잘려나간 어느 편에서는 울고 나서 맞는 아침은 아닐지 생각하면서.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51쪽

특히, 인상적인 소설은 할아버지에게 선물로 사드린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는 「춤을 추며 말없이」입니다.

어릴적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던 주인공은, 직장을 얻어 서울로 떠나오면서 할아버지에게 저렴이 버전의 인공지능 로봇을 선물합니다. 그는 그것을 '꼴통' 혹은 'B품', 더러는 그냥 '기계', '폐품'이라고도 불렀는데 정식 제품명은 '말로'였습니다. 워낙 저렴이 버전이라 알람처럼 기본 기능만 장착되어 있고, 언어 능력도 현저히 떨어집니다. 알파고나 고가의 인공지능 로봇처럼 스스로 학습해서 진화할 가능성은 제로인 로봇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주인공은 로봇을 집으로 데려오는데, 이 단순한 인공지능 로봇을 통해 '할아버지 곁에 아무도 없던 시절의' 할아버지 일상을 짐작하곤 합니다. 할아버지는 이 로봇과 대화를 시도하며 일상을 함께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로봇도 나름으로 진화해 할아버지가 건네는 대화에 나름의 대답을 하곤합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주인공 또한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로봇과의 대화를 시도하지만,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로봇도 소진되어 버립니다.

나는 하나도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자신 있게 늙고 있어. 「춤을 추며 말없이」 165쪽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갈 수 없었던 주인공이 전화를 걸어 이유를 설명하자 할아버지가 주인공에게 호기롭게 던진 말입니다. 자신 있게 늙고 있다니. 저도도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 나이가 되면요.

 


파리 살롱을 다시 찾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어딘가에서 불현듯 추위를 느끼고 혼자임이 실감된다면 어디든 가장 가까운 곳에 들어가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따뜻한 것, 아주 따뜻한 것을 먹겠다고. 「파리 살롱」 69쪽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지금까지." 「우리가 헤이, 라고 부를 때」 75쪽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문득문득 하는 생각, 대체 지하철의 이 빈 공간들이 어떻게 지상의 압력을 견디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빈 공간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상이 빈 공간을 견디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견디고 있어야 이 도시라는 일상의 세계가 유지되는 것이고. 각별히 애정한, 마음을 준 누군가 우리 일상에서 빠져나갔을 때, 남은 고통이 상대와 유리된 오로지 내 것이 되면서 그 상실감을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상대 역시 견뎌야 완전한 이별이 가능한 것처럼. 「우리가 헤이, 라고 부를 때」 77~78쪽

주용은 어쩌면 아주 어려서부터 영란의 마음은 전혀 다른 멜로디로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문제는 오히려 듣는 이의 관성화된 귀와 마음이 아닐까. 「서로의 기도」 112쪽

그것이 이것보다 어려운가, 이것은 그것보다 쉬운가 하는 삶의 온도차를 재보는 일은 늘 쉽지 않았다. 「온난한 하루」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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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8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너무 짧은 단편들이 산발적으로 흩어뿌려진 느낌이 들었어요 주제를 향한 부각이 좀 필요한데 그럴러면 한번 읽어선 안 될 것 같은데 두번 읽기는 힘들고...저는 그랬습니다 ^^

뒷북소녀 2019-02-08 13:00   좋아요 1 | URL
저도요. 너무 짧은 단편들은 같은 이유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서 기억에 남는 부분만 정리해 두고 넘어가려구요.^^ 갈수록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은데, 이렇게 짧은 단편들까지 일일이 다 기억하기는 어렵네요.

레삭매냐 2019-02-08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가지를 너무 오래 생각하는 건
집착이 아닐까요...

제가 주용이는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대학 동창의 이름이네요 ㅎㅎ

뒷북소녀 2019-02-08 13:01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저는... 사실...어떤 생각에 사로 잡히면 밤새도록 생각하는 경향이 있긴 한데요...
집착을 버려야겠네요. 갑자기 분위기 스님.

공쟝쟝 2019-05-08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금 막 덮었는데 저도 춤을 추며 말없이가 너무 좋았어요!

뒷북소녀 2019-05-08 19:57   좋아요 1 | URL
잘 늙고 있다는 저 문장 너무 좋아요^^♡
 
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지음 / 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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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 것을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드는 그 마음에 대하여

'윤'과 '선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여행을 일주일 앞둔 날, '윤'은 '선'으로부터 HWP 파일이 첨부된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그 메일의 제목은 '플랜A'였고, 그들의 여행 계획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첫날, 오전 아홉시 출발. 목적지까지 두 시간 내지 두시간 삼십 분 소요 예정. 숙소:K리조트, 노선:올림픽대로-춘천고속도로-서울양양간고속도로-양양IC 진출-양양속초간해안도로. (1안: 내린천휴게소 2안: 홍천휴게소)

도착 후 점심식사 (1안: 막국수, 2안: 생선구이, 3안:물회)

그리고 그 밑에는 유명한 막국숫집과 생선구잇집과 물횟집이 각각 서너 개씩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셋째 날까지 선은 속초 여행의 계획을 빼곡히 담아놓았다.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가 올 경우, 날이 추울 경우, 기념품이 사고 싶어질 경우, 커피가 마시고 싶어질 경우, 빙수가 먹고 싶어질 경우……. 「여행의 기초」 68쪽

분명 소설 속 '윤'과 '선'의 여행 계획인데, 그것도 '선'이 일방적으로 짠 여행 계획인데 낯설지 않습니다. 그것이 HWP냐, PPT냐, 문서 양식만 다를 뿐 완벽하게 제 것과 닮았습니다. 변수가 생길 일은 없지만, 혹시라도 날씨 때문에 계획이 틀어질까봐, 그럴 땐 당황하지 않고 바로 다음 일정을 소화할 수 있도록 경우의 수대로 계획을 짜놓는 편입니다.

윤이 경험해본 적 없는 세계였다.

지금껏 윤의 여행들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안 고프면 먹지 않았다. 이 지역에 어떤 맛집이 있을까 찾아본 적은 없었다. 밥을 먹어야 할 때면 주위를 둘러보고 가장 나을 것 같은 곳을 골랐다. 실패할 적도 많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전적으로, 감(感)에 의존하는 여행. 그것이 윤의 방식이었다면, 전적으로 '표'에 의존하는 여행, 그것이 선의 방식이었다. 「여행의 기초」 70쪽

그렇다고 계획대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아닙니다. '선'처럼 계획은 완벽하게 짜지만, 실제로 여행을 할 때는 '윤'처럼 즉흥적인 면도 상당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계획을 짜는 이유는, 낯선 것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계획이라도 완벽하게 짜놓아야 차편을 놓쳤을 때, 태풍을 만났을 때, 문이 닫혔을 때 당황하지 않고 그 계획들 속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는 왜 늘 계획표를 짜?"

"안 그러면 불안해서. 나는 말이야, 계획이라도 잘 세워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왜?"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믿어?"

"야, 아니야! 너는 내가 아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야. 계획표 안에서도, 밖에서도 말이야." 「여행의 기초」 73쪽

혼자일 때도, 여럿일 때도, 저는 늘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간절히 바랍니다. 누군가 이 '계획의 고단함'을 대신 짊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저도 '윤'처럼 말해주는 동행이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무작정인 것과 무작정이 아닌 것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을, 종잇장을 반으로 접어 맞추듯이 분명한 것은 우리 생에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알아가고 있었다. 「안과 밖」 52쪽

『우리가 녹는 온도』는 구성이 독특한 책입니다. 한 타이틀 아래 두 개의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그들은'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짧은 소설일지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정이현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10개의 타이틀 아래 이야기들이 존재합니다.

이 책에는 한동안 실려있던 단발머리의 프로필 사진 대신 좀 더 짧은 커트머리의 사진이 프로필로 실려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도 그런 느낌입니다. 머리를 짧게 잘라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어떤 기분인지 아실겁니다. 한층 가벼워진 것 같지만 세련된 느낌, 그리고 뭔지모를 아쉬움 같은 것 말입니다.

어른 릴리는 저 눈사람을 다시 냉장고 속에 넣지 않을 것이다. 그냥 밖에 놓아둘 것이다. 동심을 잃어서가 아니다. 녹는 것은 녹게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녹아내리다가 마침내 소멸하는 과정을 이제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도 눈사람이 분명 여기에 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사라진 것들은 한때 우리 곁에 있었다.

녹을 줄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눈으로 '사람'을 만든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사는 것처럼.

곧 녹아버릴 눈덩이에게 기어코 모자와 목도리를 씌워주는 그 마음에 대하여, 연민에 대하여 나는 다만 여기 작게 기록해 둔다. 170쪽

 

 

 

일요일 일요일 일요일 다음에

월요일 월요일 월요일 다음에

화요일 화요일 화요일의 기린

두 팔을 쭉 뻗고 내 목을 감싸줘

이호석 노래 <화요일의 기린> 중에서

「화요일의 기린」 15쪽

아무 편도 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 중립을 지키면 나를 지킬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괜찮다고 하는 것이다. 기분이 상해도, 상처를 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 짓는 것이다. 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으면서. 종이필터 밑바닥에 가라앉은 검은색 커피 찌꺼기처럼 갈피를 잡기 어려운 감정이 그대로 남았으면서.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42쪽

나 역시 '괜찮아'를 발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것. 상처를 주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괜찮다고 말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해 미묘한 위로가 되었다. 그것은 적은 월급의 절반을 뚝 떼어 적금을 부으면서, 만기일이 오면 한 방에 세계일주 티켓을 끊어 탕진해버리겠다는 상상을 하는 것과 조금쯤 비슷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43쪽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그렇게 횟수를 쌓아갈 때마다 미리 스스로의 감정을 추슬러둔다. 그러다 더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딱 끊고 돌아선다. 상대의 어리둥절해하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통쾌하거나 시원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입안이 시고 썼다.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44쪽

초행이란 가늠할 수 없어 아득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안과 밖」 59쪽

애초부터 불가능한 사랑을 놓친 것처럼 안도감과 허전함이 동시에 들었다. 놓친 것이 어디 그런 것들뿐이겠느냐마는. 「안과 밖」 60쪽

여행지에서 만난 이와 사랑에 빠졌다가 일상으로 돌아와 이별을 맞은 경우를 여럿 알고 있다. 그 이별엔 또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고 설명되곤 하지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낯설고 매혹적인 시공간을 공유했다는 우연이 둘을 특별한 운명의 관계로 이끌었으나, 시공간이 달라지면 그 마법의 힘이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안과 밖」 61쪽

일상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하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고 해서, 일 년 후의 삶이 까마득한 암흑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그게 모두 '그 사람과의 관계' 탓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내 탓'이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과는 이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과 이별한다. 가장 가까운 옆 사람과 헤어지면 내가 조금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지상의 유일한 방」 93쪽

늘 새기는 말이 있다. 한 권의 책을 백 명이 읽었다면 모두 백 개의 텍스트가 된다는 말. 다들, 따로따로 읽는다. 따로따로 느낀다. 개별적으로 살고, 개별적으로 사랑한다. 이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별에 이르는 과정, 이별을 결심하거나 받아들이는 마음, 이별과 대결하는 태도도 모두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이별이라는 점, 온전히 그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말이다. 「커피 두 잔」 124쪽

그 사람들은 내가 아니니까요. 사람들은 쉽게 말하죠. 너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라고. 완벽해지겠다는 마음을 버리라고요.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에요. 다음에 완벽한 무대를 꿈꾸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제 마음은 다음번이 아니라 지난번에 꽁꽁 묶여 있어요.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 박쥐에 관하여」 133쪽

나는 자주 불안한 사람이다. 이 문장을 입 밖에 내어 말할 수 있게 되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통증의 모양과 형태를 아는 것은 질병을 짐작하는 실마리가 된다고 한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 박쥐에 관하여」 137쪽

'위로'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위로를 하는 쪽이라면 차라리 낫다. 그러나 위로를 받는 일은 번번이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오래도록 나는 위로받을 필요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괜찮은 척하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정말로 곧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눈+사람」 166쪽

사람은 열심히 눈을 굴려서 왜 하필 '사람'을 만드는 걸까? 아니, 눈덩이 두 개를 8자 모양으로 만들어놓고서 왜 '사람'이라고 부르는 걸까? 이목구비를 붙이고, 모자나 목도리도 씌우면서 왜 더 '진짜 사람'에 가깝게 하려고 애쓰는 걸까? 어차피 며칠 지나면 스르르 녹아 없어지고 말 텐데! 인간의 생명은 좀더 길 뿐, 결국 눈으로 만들어진 저 눈사람의 숙명과 다를 바 없다. 눈사람 창조자가 되는 동안 인간은 혹시 그 엄혹한 사실을 잠시 잊고 싶은 걸까? 「눈+사람」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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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30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표지 한 번 기가 막히게 뽑은
것 같습니다 -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SNS부터 에세이까지 재미있고 공감 가는 글쓰기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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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은 에세이 시대의 글쓰기!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는 머릿속에 맴도는 어렴풋한 생각을 글이라는 형태로 끄집어내는 방법을 다룹니다. '이런 거 쓰고 싶어!'라는 마음의 '이런 거'를 문장으로 바꾸는 연습입니다. 본심의 번역작업이자, 타인과의 교류에 필요한 매너의 실천방식이 기도 한 글쓰기입니다. 6쪽

지금은 에세이의 시대, 소확행의 글쓰기 시대입니다.

   분명 독서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너도나도 '작가'라며 제 SNS를 기웃거립니다. 예전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던 '작가'라는 타이틀의 문턱이 확실히 낮아진게 보입니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 모두들 읽고자하는 마음보다는 쓰고자 하는 열망이 더 큰가봅니다. 하긴 읽는 행위는 그렇게 생산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돈이 생기거나 어떤 명예를 얻는 건 아니니 까요), 쓰는 행위는 돈이 생기거나 (비록 그것이 망작이라고 하더라도) '작가'라는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일이므로 훨씬 더 생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열망과 욕망을 반영이라도 하듯 글쓰기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있고, 이 책 또한 그런 트렌드의 반영으로 기획된 것입니다 .

   이다혜 기자는 『책읽기 좋은 날』이라는 서평집을 통해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가장 흔하고 쉽게 쓸 수 있는 글이 리뷰라고 하는데, 저는 이 리뷰를 쓰는 것도 너무 어렵습니다. 특히,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쓸 때는 피고름을 짜듯 쥐어 짜내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첫문장을 쓰려다가 첫 단락부터 주절주절 늘어지고 맙니다. 주절주절 시작은 했으나, 마무리는 더 어렵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내리 비난만 하다가 정말 쌩뚱맞게 동화처럼 마무리를 하거나 권유형의 문장으로 끝내버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비난만 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아무튼, 이럴 때 이다혜 기자는 고민하지 말고 과감히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날려버리라고 말합니다. 진부하거나 교훈적인 마무리보다는 낫다며, 본문 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톨스토이처럼 임팩트 있는 첫문장을 어떻게 쓰냐며, 마지막 문장을 없애고 약간의 여운을 주는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위해 썰을 풀어야 한다고 어디서 가르치는지, '용건만 간단히'처럼 어려운 게 없다. 영화 리뷰를 과제로 내면 극장 가는 얘기부터 쓴다. 책 리뷰를 쓰라고 하면 책을 구매한 과정부터 쓴다. 여행기는 비행기표 구입부터 시작한다. 그 모든 과정은 재미있고 소중하며, 어떤 경우는 정보로서의 값어치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체로 'TMI'다. 투 머치 인포메이션이며, 읽는 사람에게는 하품 나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많은 글은 그렇게 '없어도 좋은' 서두를 갖고 있다. 188쪽

   마무리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한 말이 있다. '교훈적인 마무리'는 지양하자. 황희 정승식 글쓰기랄까. 장점 적당히 늘어놓고 단점 적당히 이어붙이고, "그래서 앞으로 책을 열심히 읽기로 다짐했다"식으로 끝나다니. (······) 뜨뜻미지근한 마지막 문장이라면 그냥 지워보기를 권한다. '마무리가 안 된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마무리가 더 긴장감 있는 경우가 많으며, '마무리된 느낌'은 대체로 진부한 문장일 때가 많다. 189쪽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가장 큰 고민은 첫문장도 마무리도 아닙니다. 기자님, 제가 줄거리 요약은 참 잘하는 편인데(사실 작가는 '참'이나 '정말' 같은 부사도 줄여보라고 했습니다.) 이 책처럼 큰 줄거리없이 병렬식으로 나열된 책의 리뷰는 어떻게 쓰나요? 물어볼 수만 있다면 정말 물어보고 싶습니다.('정말'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쓰는군요. 작가는 이런 부사들은 퇴고를 할 때 모두 삭제해도 된다고 했지만, 잘못된 예시로 남겨두려 합니다.)

   이다혜 기자와 마찬가지로 저 역시 '재미'를 위해 책을 읽습니다. 그녀의 첫 책인 『책읽기 좋은 날』을 재미있게 읽어서 이번 책 역시 제목만큼 설렘 가득한 책일거라 기대했는데, 읽기와 꾸벅꾸벅 졸기를 반복하며 며칠밤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내용이 있어서 (물론 모든 학습에서는 '반복'이 중요하긴 하지만) 집중력이 떨어지고 졸렸나봅니다.

   세상 모든 에세이는 쓸데없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로 이루어지지 188쪽

   처음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첫 문장을 쓸 수 있게 약간의 가이드를 제시해주는 책입니다. 작가는 SNS 친화적인 글들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시대이니, 서툴러도 괜찮으니까 일단 써보라고, 그리고 한 번 시작한 글은 끝까지 써서 완결 짓는게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저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저처럼 非SNS 친화적인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테니까요.

   우리는 다른 사람을 늘 처음부터 완성형으로 가정하고 자기 자신을 미완성태로 바라본다. 어떠한 재능도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지는 않다. 실수하고 배우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자신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결과물이 애초에 원하던 그것일지는 알 수 없지만.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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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9-01-24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뒷북소녀님.. 이 줄거리 요약이 어려운책을 무려 재밌게(!) 요약해내셨네요. 🤗 ‘정말’요약 잘하시는 듯 ^^

뒷북소녀 2019-01-24 21:58   좋아요 1 | URL
ㅋㅋㅋ오늘도 역시나, 주절주절 늘어지는 제 리뷰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