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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평점 :
그런데 말입니다.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걸까요?
미친 듯이 웃긴다. 큰 소리로 웃었다. 엄청나게 웃긴다.
먹방계의 빌 브라이슨 ─ 띠지 카피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라는 부제에 이런 카피 문구가 있으니, 게다가 언젠가 한번쯤 가고픈 북유럽에 대한 탐방기라니,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그동안 미뤄뒀던 북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당장이라도 끊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 책의 소감을 띠지 문구처럼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미치겠다. 화가 났다. 엄청나게. 그렇습니다. 저는 '거의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습니다. 귀가 꽤 두꺼운 편이라 홍보문구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 편인데, 요즘들어 계속 눈 앞에 아른거리고 있는 오로라 때문인지 너무 쉽게 속았습니다.
읽고 또 읽어도, '미친 듯이 웃긴' 포인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빌 브라이슨과 비슷한 어조로 말하는 것 같지만 시니컬하기만 할 뿐 재치가 부족해 보입니다. 마이클 부스는 북유럽 5개국 사람들은 꽤 딱딱하고 지루한 타입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자신도 북유럽 5개국 중 하나인 덴마크에 거주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내 때문이지 자신은 영국 사람이라면서 점잔을 떨며 한발 물러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이미 북유럽 사람들에게 동화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 역시 딱딱하고 지루하니까요. '먹방계의 빌 브라이슨'이라는 수식어는 정말 과분할 정도입니다. 사실 그도 억울할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이런 수식어들은 작가 자신이 아닌 편집자나 출판사에서 붙였을테니까요.
꽤 두꺼운 편이지만, '미친 듯이 웃긴' 포인트를 찾아 읽고 또 읽은게 아까워서 꾸역꾸역 읽었습니다. 사실은 이 책에 붙은 수식어를 믿고 첫 장부터 과감하게 밑줄을 긋는 바람에 중고책으로라도 팔 수 없어서, 그게 아까워서 읽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핀란드인이나 아이슬란드인은 스칸디나비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칸디나비아는 원래 바이킹의 나라인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3국을 가리키는 용어다. 하지만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알게 된 바로는 핀란드인은 옛 약탈자 집단에 들어갈지 말지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또 거기에 어울리기도 하지만, 아이슬란드인은 스칸디나비아로 분류되면 길길이 날뛸 것이란 점이다. 엄밀히 말해 다섯 나라를 통칭하면서 사실 '북유럽 Nordic'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 23쪽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라는 부제 때문에 여행기나 에세이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 책은 북유럽의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사진 한 장 실려있지 않은 책으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전반에 걸쳐 냉소적이지만 진지한 어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는 자연 경관이 멋지고 복지가 좋기는 하지만, 그렇게 살기 좋은 곳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살인적인 세금,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아 불편증을 앓고 겨울에는 반대로 해가 뜨지 않아서 만성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 평범하게는 살 수 있지만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의 무덤, 사소한 것까지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는 답답함과 집착,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보다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이 많지 않은 곳. 이 책을 읽고나니 당장 북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끊는 대신 눈 내리는 겨울에 가면 밤만 보게 돼서 덩달아 나까지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주저하게 됐습니다.
살인적인 날씨, 극악무도한 세금, 너무 뻔한 단일 민족 사회, 별 볼일 없는 시민 합의에 대한 숨 막히는 집착, 규범을 벗어난 모든 대상과 사람을 향한 공포, 야망을 불신하고 성공을 멀리하는 태도, 처참한 공중도덕, 돼지고기 비계 부위를 향한 끝없는 식탐, 짜디짠 감초사탕, 싸구려 맥주와 마지팬까지. 하지만 나는 경계하면서도 약간은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덴마크의 행복 현상을 주시했다. 10쪽
'기대'란 참 무서운 것입니다. 만약 '미친 듯이 웃긴'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북유럽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다룬 책이라는 걸 알았다면 이것보다는 볼만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