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남자 조카들이 하루에도 열두번 투닥거리고 싸우는 걸 보고
그 녀석들을 키우느라 고생하는 둘째언니가 너무 불쌍했다.

 그래서 난 다짐했다.
"이담에 결혼하면 절~~대 연년생은 안 낳을거야!!"

 결혼한 나는 다행인지 다짐때문인지 연년생을 낳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 차이가 너무 크지 않나...싶을 정도로
첫째와 둘째의 터울은 6년 6개월이다.
그런데...
6살이나 차이가 나는 두 넘들이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현장을 급습!
눈물을 머금고 공개한다.

1라운드 : 첫째, 선방 날리다!

큰애가 돌아서 있는 작은애의 몸을 큼직한 엉덩이와 발로 밀치며

팔꿈치로는 작은애의 머리를 찍어누르듯 가격하다.
 
 





2라운드 : 둘째, 반격하다!

큰애가 오른손으로 연이어 공격을 시도하고 있으나

작은애가 이에 맞서 공격에 나섰다.

양 손과 오른발로 형의 머리, 팔, 허벅지를 동시 공격 하다.

 

 
3라운드 : 반목인가...휴전인가...??

서로 한번씩 주고 받을터라 에너지 소모가 컸던 탓일까?

잠시 휴전상태에 들어간 듯...보인다.보인다. 


 

4라운드 : 감동적인 화해의 물결~ ^^

 엄마 아빠의 애정을 송두리채 뺏겼다고 생각한 큰애,

동생과 손을 잡고 화해를 한다.


그. 러. 나.

옆으로 고개를 돌린 것으로 보아

동생에 대한 감정의 앙금이 아직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폭풍이 휘몰아치기 전의 고요함 같은 느낌....^^;;




5라운드 : 다시 전투가 시작되다!!
 
역시...내 예감은 적중했다.(이 기회에 그냥 돗자리를 펴?)

내가 잠깐 눈 돌린 사이에

그야말로 둘이 치고 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으니....ㅠㅠ

에~이, 이 넘들!

고만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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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09-19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재밌네요. 그림책으로 꾸며도 좋을듯^*^
공갈젖꼭지(맞나요?) 하고 있는 모습 넘 귀여워요~~~ 아 이뿌다!

몽당연필 2007-09-20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었나요? ^^
낮잠 자는 모습들이 어찌나 특이한지...ㅋㅋ
그나저나 울아들들은 잘때 공갈없음 잠을 안자서 큰일입니다. ㅠㅠ
 
이둔의 기억 1 - 제1부 저항군, 제1권 수색
라우라 가예고 가르시아 지음, 고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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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 판타지소설 열풍을 몰고 온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그 뒤를 잇는 새로운 판타지소설이 출간됐다. 판타지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영국이 아닌 스페인의 젊은 작가에 의해 탄생한 <이둔의 기억>.




책표지를 보니 저자는 열다섯살 때 이 작품의 배경인 ‘이둔’을 처음 생각해냈고 오랜 세월에 걸쳐 이야기에 살을 붙여 탄탄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냈다...고 한다. 이쯤되면 안달이 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속알맹이가 궁금해진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잭, 빅토리아, 키르타슈...인데 13살, 12살, 15살의 십대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년, 소녀가 이둔과 림바드, 지구를 오가며 환상적이면서도 위험천만한 모험을 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싹트는 엇갈린 사랑...




모험과 로맨스가 2개의 이야기 기둥을 이룬 이 책은 1.2권을 합하면 700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방대한 양임에도 불구하고 쉽고 빠르게 읽혀진다. 이둔이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 저자의 상상력이 무척 놀랍다. 책표지에 첨부된 이둔의 지도나 이둔연대기를 보면 저자가 이 작품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내용의 전개구조나 주인공들이 엮어나가는 이야기, 사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술하다고 할까....아쉬움이 많았다.




흔히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상상속의 세계를 다루면 모두 판타지 소설이라고 여기는데 그렇지 않다. 저자는 지금까지 어떤 소설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었던 이둔이란 특별한 환상의 세계를 창조했음에도 거기에 완전한 생명력을 불어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데 이 책에선 그런 장치적 요소가 허술했다. ‘림바드’란 이둔과 지구 사이의 중간계적 세계도 출입은 마법사의 ‘마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니...‘마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 않은가! 공간이동할 때마다 “....주변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는 식의 틀에 박힌 표현이 반복되어 재미를 반감시켰다.




또 주변 상황이나 설정을 자세하게 묘사해줘야 할 부분에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알 수 없는’이라든가 ‘....자신만 아는 이상한 공식’, ‘뭔가가’, ‘무언가가’...하는 식의 얼렁뚱땅 얼버무리는 표현이 많았다.




주인공을 한번 보자. 이재복의 <판타지 동화 세계>란 책에 의하면 “고립된 존재인 주인공이 현실공간에서 온갖 어려움과 통과의례를 과정을 거치면서 구원자의 도움을 받아 판타지 세계로 이른다”고 하는데 잭이나 빅토리아의 캐릭터 설정은 좋았다. 주인공의 개성이 문제였다.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 특유의 뚜렷한 개성없이 밋밋한 주인공에게선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아슬아슬 위태로운 한판 모험을 벌여도 모자랄 판에 난데없이 로맨스가 웬말인가. 모험과 로맨스...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친 격이 아닌가...싶다.




세 개의 달과 세 개의 태양이 있고 용과 유니콘이 존재하는 나라 이둔...그 세계를 구하기 위해 전설의 무기를 가진 주인공이 나섰다!! 저자의 기획의도는 정말이지 너무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좀 성급했다는 느낌이다. 10년 정도 후에....저자가 나이를 더 먹어서 성숙해졌을때 이 작품을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랬더라면 좀 더 성숙해진 이둔과 멋진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었을텐데...




하나의 작품을 다른 작품과 비교한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행동인지 알면서도 이 책을 읽는 내내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이 떠올랐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판타지 세계와 살아 움직이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벌이는 모험과 사랑에 밤을 새워가며 책에 몰입했었다. 거기에 비하면 이 책은....




<이둔의 기억>은 출간된 1부 <저항군>에 이어 2부 <트리아다>와 3부 <판테온>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과 아쉬움도 컸기에 갈등이 된다. 마무리를 지켜봐야 하나...그냥 여기서 끝을 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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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나기 전 꼭 해야 할 12가지 풀빛 청소년 문학 4
비외른 소르틀란 지음, 김라합 옮김 / 풀빛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중학생 때였나?...아이들 사이에 이런 소문이 돌았다. 2000년이 되면 3차 대전이 터져서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지금 생각하면 허무맹랑한 그 소문이 그 당시 우리에겐 무척 심각했었다. 2000년이면 내 나이가 몇 살인데...어른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그 때 난 결혼을 했을까? 아이는? 혹시 깐깐한 노처녀로 늙고 있는 거 아냐?...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에, 그래도 젊을 때 생을 마감하는 게 더 멋지고 아름다울 것 같다는 의외의 얘기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소문이 우리곁에 한두달 머문 뜬소문이 되었듯 2000년에 3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첫 아들을 출산했다. 지구가 멸망하는 게 아니라 나의 또다른 삶, 어머니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세상이 끝나기 전 꼭 해야할 12가지> 이 책의 주인공인 테레제는 어느날 갑자기 엄청난 소식을 듣는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기로 했다는 것. 열 네 살의 평범한 소녀에겐 그야말로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소식...




번쩌어어어억! 이게 영화이거나 텔레비전 드라마라면 나는 “안돼에에!”하고 소리치며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재킷도 입지 않고 빗속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그 자리에 뿌리 박힌 듯 앉아 있었다. 음악도 켜지 않은 채로. - 17쪽.




어느날 갑자기 부모님이 이혼을 통보하면서부터 테레제는 세상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언젠가 세상이 끝날거라고, 그 전에 꼭 해야할 일을 찾아봐야겠다고...결심한다. 얼마전에 전학온 푸른 눈의 멋진 소년, 한 눈에 반해버린 얀을 공범으로 삼는데...




하지만 이것만으론 사건이 전개되지 않는다. 여기에 테레제의 자폐증 언니 이레네와 아픈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등장하면서 테레제의 이야기가 한층 풍성해진다.




표지그림만 보면 당돌한 꿈많은 사춘기 소녀의 일상...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실제 속내용은 그렇지 않다. 테레제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적어놓은 일기를 내가 몰래 읽어나가듯 쉽게 읽혀지는 속에 오히려 생각해야할 것들이 숨어있다.




마치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테레제 역시 그 나이 또래의 아이라면 심각하게 여길 지구의 종말과 그에 대비한 목록...결코 가볍게 여길 것만은 아니었다.




이 책에선 할아버지의 전화 속 응원으로 테레제는 자신의 마음을 얀에게 드러내는 것으로 끝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나중이 더 궁금해졌다. 그 다음 테레제와 얀은? 이레네는? 그리고 할아버지는?? 테레제의 고민은 그걸로 해결이 된걸까? 할아버지는 무거운 마음의 굴레를 덜어내셨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닌 걸로 며칠동안 끙끙 고민하는 사춘기 아이의 일상이 무척 순수하게 여겨졌다. 예전의 내 모습을 얼핏 엿본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그리고 나도 목록을 한번 뽑아볼까...생각중이다.




하지만 책 속에 정말 아리송한 대목이 있었다. 




63쪽 5째줄, 9월에는 허리케인 ‘휴고’가 시속 3260 킬로미터의 미친 듯한 속도로 미국 동부 해안을 휩쓸어... --> 시속 3260Km?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허리케인의 5등급은 156(250km)마일 이상의 초강력 허리케인으로 지상에 서 있는 나무는 모두 쓰러뜨리고, 일반 주택과 작은 빌딩을 뒤엎고, 강을 잇는 다리까지도 쓰러뜨린다는데 3260킬로미터라니...오자가 아닐까? 아니면 숫자 0이 추가된 걸지도.....







<마음에 와닿은 대목>




“아, 참, 그리고 여쭤볼 게 있는데요, 사람은 언제부터 어른이에요?”

“자기가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있을 때 어른이라고 할 수 있지.” - 133~134쪽




사랑을 발견하더라도 그 사랑을 결코 세상에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지키기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랑을 지키려고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하고 있다. - 172~173쪽.




“남자들은 뭐가 자기에게 가장 좋은 건지 모른단다. 잘만 하면 한 가지 일로 여러 가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걸 모른단 말이야. 그러니 너무 오래 망설이지마, 테레제. 그냥 입을 맞춰 버려....무엇보다 용기를 내. 언젠가는 너도 죽게 될 테니까 ” - 176쪽.




진실하다는 건 아주 좋은 것이다. 그 반대일 때는 모든 것이 거꾸로였다. 이제 모든 것이 도로 전과 같아졌다. 단지 새로울 뿐. 한순간 나는 내가 깨어있고 준비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것도 좋은 시작. ‘배고픈 물고기만이 건강한 물고기다.’ -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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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1 세계신화총서 6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나의 무식이 드디어 탄로가 났다. 그동안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을 읽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중국에 관해 내가 아는 게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을...이번에 깨달았다.




맹강녀가 눈물로 만리장성을 무너뜨렸다는 중국의 고대 설화를 바탕으로 탄생한 쑤퉁의 장편소설 <눈물>. 요즘들어 그의 작품들이 연이어 번역 출간되고 있는데 내게 쑤퉁은 이 책 <눈물>이 첫만남이다.




“신도군이 북산에 은거할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로 시작한 이 소설은 황제의 숙부인 신도군이 죽음으로 인해 북산이란 곳에 눈물 흘리는 것이 금지되고 만다. 그것은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아기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그 곳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눈물을 흘리는 법을 터득한다. 귀로 울거나 입술 혹은 가슴으로 우는 등 두 뺨 위로는 한 방울의 눈물자국도 남기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비누는 어머니가 일찍 죽는 바람에 눈물을 감추는 비법을 전수받지 못한다. 결국 머리카락을 이용해 눈물을 흘렸는데 그것이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되었고 고아인 완치량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도촌의 마을 남자들과 함께 비누의 남편인 완치량도 사라져 버린다. 바로 북방의 대연령에서 만리장성을 쌓는데 그 노역으로 끌려간 것이다. 여름에 웃통도 벗은 채로 끌려간 치량이 다가오는 겨울에 추위로 고생할 것이 염려스러운 비누는 치량의 겨울옷과 신발을 지어서 대연령으로 떠난다.




그러나 시대가 여자를 하찮게 여기던 때라 비누가 그것도 홀몸으로 치량을 찾아 대연령으로 가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대연령으로 서방이 끌려간 사람이 너 하나뿐이냐...치량이 비누의 혼까지 빼갔다...는 주변 사람들의 비난과 멸시를 비롯하여 사슴인간, 말인간들을 만나고 온몸으로 눈물을 흘리는 비누를 억지로 죽은 남자의 아내로 삼아 관에 묶이는가하면 황제를 시해하려는 자격으로 몰려 철창에 갇히기까지 한다.




말은 없지만 성실하고 자신에게 다정했던 남편에게 일편단심 마음을 쏟았던 비누의 여정을 그린 이 소설은 두 권이란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속도감 있는 쑤퉁의 문장을 만나 쉽게 빨리 읽혀진다.




하지만 신화나 설화가 그러하듯 내용에 있어서 잔인하거나 유치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었다. 또 죽기로 결심하고 먹을 것조차 거부하여 시체나 다름없던 비누가 샤오치란 자객을 만났을 때 계속 수다를 떠는 모습은 앞뒤 정황을 미루어봐서 다소 억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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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산책 - 바람과 얼음의 대륙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고경남 지음 / 북센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넌, 그 상황에서 책이 눈에 들어 오냐?”

달리는 차 안에서, 혹은 밤에 아이 잘 때 옆에서 취침등 켜두고 책을 읽고 있으면 신랑은 내게 묻는다. 그것도 아주 딱하다는 표정으로.  그 상황에서 책이 눈에 들어 오냐고...그럼 난, “어, 지금 아니면 언제 읽을 수 있는데?”하고 대답하지만 사실...요즘 부쩍 눈이 피곤하다. 그다지 시력이 나빠진 건 아닌 것 같은데...괜히 침침해지는 것이...혹시, 노안??

 

그러고보니 나의 가시거리가 엄청 짧아진 것 같다. 거의 100미터 이내의 것만을 보고 생활하고 있으니까...더 이상 눈이 나빠지기 전에 내 시야를 넓혀야겠다. 뭔가 탁, 트인 곳을 바라보고 싶다....

 

서울에서는 한 순간도 멈춰서는 안 될 거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멈춰있지 않았으니까.

잠시라도 멈췄다가는 곧 뒤쳐져서 도태될 거 같았으니까.

그래서 폭풍우 때문에 한 발자국 내딛기 힘들 때조차

앞으로 나가려고 아득바득 헤맸었다. - 40쪽.

 

뒤뚱뒤뚱 펭귄 한 마리가 다가온다. 아니, 자세히 보니 한 마리가 아니다. 세 마리의 펭귄이 마치 거울을 마주 보고 있을 때처럼 줄을 지어 걸어온다. 뒤뚱뒤뚱...거리면서.

 

귀여운 펭귄들이 나를 마중 나오고 있는 듯한 표지의 <남극산책>. 이 책은 소아과 의사인 저자가 남극 세종기지에 1년간 의료담당으로 머물면서 남극의 자연과 생물들을 바라보며 사색하고 체험한 것들을 사진과 함께 기록한 남극 체험기다.



얼마만인가. 아이 그림책을 제외하고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책을 바라본 게... 뒤뚱거리고 멈취서 있는 펭귄의 사진 위로 쓰여진 단 한 줄, “나는 뒤뚱거리거나 멈추어 있었다”는 프롤로그를 보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이 풀어지듯 맥이 탁 풀렸다. 그래, 이제 긴장을 좀 풀자구...하는 마음으로 이 책 앞으로 다가섰다.

평소보다 책을 좀 멀리 두고 이 책을 즐기기 시작했다. 남극의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인 노을과 부산에선 결코 볼 수 없는 눈보라, 블리자드. 잠에 취해 완전히 골아떨어진 해표, 바다에 떠오른 푸른 하늘(저자는 이걸 바다는 푸른색의 거대한 데칼코마니...라고 표현했다. 정말 너무 멋지다!.), 그리고 수많은 펭귄과 갈매기....

 

한국에 있을 때는 새를 잊고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새들이 날 수 있다는 걸 잊고 살았다. 서울에 있는 새들의 절반은 나는 법을 잊어버린 비둘기이고 나머지 절반은 양념통닭 아니면 안동찜닭이니까. 남극에 와서 진짜 새들을 만났다. 그냥 만난 게 아니라 함께 살았다. - 102쪽.

 

사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 남극의 색채는 얼음과 펭귄의 하양와 까망이 전부일거라 여겼다. 하지만 나의 오산이었다. 남극은 흑백이 아닌 다양한 빛깔이 어루러진 칼라의 세계였다. 순백의 얼음 속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갖가지 푸름이 깃들어 있었으며 노을진 하늘은 옅은 주황에서 빨강으로 불타올랐다. 또 펭귄의 빨간 주둥이와 황제펭귄의 금빛 가슴털....


거기에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빙하와 보기만 해도 아찔한 빙벽, 가지각색의 빙산들을 보고 있으니 자연이란 참으로 위대하구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사진만 봐도 이 정돈데 실제로 보면 어땠을까...

 

누구라도 빙벽을 한번 보면 가슴 속에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 한 조각을 간직하게 된다. 빙벽은 세월을 품은 채 바다로 밀려온다. 시간의 아울렛, 빙벽. 그 앞에 서면 30여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내 몸의 유효기간이 유난히 짧게 느껴진다. - 131~132쪽.

몇 년 전 대학원을 졸업한 시동생에게 남극 세종기지의 근무제의가 들어왔었다. 그 곳의 열악한 환경에 우려와 반대의사를 내비치는 시댁어른들 속에 “좋은 기회 같은데요.”...하는 내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그게 지금 너무나 후회가 된다. “적극 찬성!! 절대 찬성이에요!!”하고 목청껏 외쳤어야 하는건데...

남극....그 곳에 가고 싶다. 그 곳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고 싶다. 나도, 저자처럼.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풍경과 장엄함 앞에 나 자신을 비워내고 한껏 낮추면...나 역시 자연의 일부로 녹아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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