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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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여름. 바람을 타고 싶어서 자건거 페달을 힘주어 열심히 놀렸다. 곧이어 내리막길. 살짝 바람을 탔다. 쓰윽~. 그런데 착지장소를 잘못 택했다. 작지만 톡 튀어나온 돌이 있었는데, 어두운 밤이라 보지 못했다.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한 나와 자전거는 넘어지면서 함께 굴렀다. 청바지에 뻥 하니 뚫린 구멍 속으로 사정없이 깨진 무릎팍이 보였다. 다쳐서 피가 흐르는 다리보다 엄마에게 야단맞을 일이 더 걱정이었다. 여기저기 부서진 자전거를 끌고 들어서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란 엄마에게 서둘러 변명처럼 이런 말을 했다. “어~엄마...이제 다신 빨리 안 달릴게. 절대루...”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인가. 파랑과 하양. 파랑도 그냥 파랑이 아니다. 이름을 모르는 몇 가지의 파랑, 눈이 시리도록 선명한 파랑에서 바닥이 훤히 비춰 보일듯한 옅은 파랑이 솜털같은 하양을 만났다. 거기로 한 대의 빨간 스쿠터. 마치 파도를 뛰어 넘으려는 듯하다. 휙~하니 뒤로 나부끼는 흰색셔츠와 목에 질끈 묶은 스카프에서 바람이 느껴진다. 기분 좋고 시원한 바람이....지그시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면 나도 바람을 탈 수 있을까.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바이바이 베스파>. 이 책에는 짧막한 만화 다섯편이 실려있다. 서랍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몇 장의 사진에서 서툴기만 했던 옛사랑을 떠올리기도 하고(톰과 제리의 사랑), 함께 했던 시간이 오히려 상처가 되어 헤어지게 된 연인이 병든 고양이로 인해 갈등하는 모습(스노우 라이딩), 자신을 밍키라고 믿는 소녀가 마법의 시간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본모습에 당당해지기도 하며(밍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소녀), 무리에서 따돌림을 받던 소녀가 수족관을 찾아 깊은 잠을 빠지기도 하고(그랜드마마 피시), 목술걸고 락밴드 했던 주인공이 기타를 그만두고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애정결핍의 여자친구와도 헤어진다. 전재산을 털어 산 스쿠터 베스파도 팔아버린다. 갑작스레 변해버린 그의 모습이 혼란스러운 친구에게 그는 뭔가 딴 게 돼서 돌아오겠다고 말한다.(바이바이 베스파)




책을 펼치고 채 한시간도 안돼서 다 읽었지만 느낌은 반대로 오래 남았다. 특히 다섯 번째 이야기인 ‘바이바이 베스타’에서 주인공과 친구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난 끈을 하나 잡고 있었어. 그걸 놓치면 보통 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끈이야. 이걸 놓으면 내 의미가 없어지니까 안간힘을 쓰며 끈을 잡고 있는거야....”

“끈들을 전부 놓을거야?”

“응”

“난 좀 혼란스러울 것 같군. 그렇게 되면 내가 아는 네 특징들이 모두 없어져버리니까...”




만약 내 가족이나 주변사람이 주인공처럼 목숨걸고 하던 록밴드를 그만두고 스쿠터를 팔았다면 난 분명 이렇게 말할거다. “그래, 정말 잘했다. 니가 이제야 겨우 철이 드나보네...” 당사자의 마음이 어떨지, 얼마나 굳은 결심을 했을지 생각조차 안했을 게 틀림없다.




“혹시 어른이 되려는 거니?”




사람은 그냥 있어도 늙어간다. 애써 늙음을 재촉할 필요는 없다. 어느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유아 시절의 세월은 기어가고, 어린이 시절에는 걸어가고 청년기에는 뛰어가고 성인기에는 달려가고 노년기가 되면 덧없이 날라 간다."




꼭 쥔 손을 놓아버리면 보통 사람이 되어버리는 끈. 내게도 그런 끈이 있을까. 지금의 난 그 끈을 쥐고 있는건지, 아님 예전에 이미 놓아버린걸까.




어린 아이가 소년(소녀)이 되고 어른이 되는....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던 과정을 <바이바이 베스파> 이 책으로 인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제부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스쿠터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조금은 따스해지지 않을까...그나저나 이렇게 다양한 스쿠터가 있을 줄이야...처음 알았다. 새로이 알게 된 세상, 하나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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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 터커, 나를 찾아서 - 이집트에서 미라 만들기 1 도시락 16
발 와일딩 지음, 김영선 옮김, 마이클 브로드 그림 / 사파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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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타임머신’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누구나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갖는다. 오랫동안 반복되는 이 질문에 어느 과학자가 답을 했다. ‘NO!!’라고. 아니, 지금말고 이담에, 머~언 미래엔 가능하지 않을까? 그에 대한 답도 역시 ‘NO~, NO!!’란다. 왜냐고? 만약 미래에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이미 미래의 사람들이 현재로 찾아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또 왠지...시시하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꿈같은 일은 결국 꿈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건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여기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다녀온 소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토비 터커. 부모 없이 자란 고아였던 그는 새 부모님을 만나 새 집으로 온다. 묵직한 나무 상자만을 갖고. 자신에 대한 어떤 기록도 존재하지 않다는데 실망한 토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무상자를 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찢어진 종잇조각들과 이런 메모를 발견한다.




“이 상자에 든 종이는 너희 집안 족보란다.....찢어진 종잇조각을 붙여 보거라. 그러면 네가 누구이고, 네가 언제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지이.” - 15쪽.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던 토비는 종이 조각을 맞추다 우연히 이름 하나를 맞춘다. “세...티...”. “세티?” 그 순간 토비는 자신의 방에서 뜨거운 황금빛 모래의 나라 이집트로 가게 된다. 세티란 소년이 사는 고대 이집트로...




농장을 소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세티는 두 가지가 늘 불만이었다. ‘왕짜증’이란 못된 수탉에게 발목을 쪼이는 것과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부가 되는 것. 곡식이나 과일, 채소를 가꾸고 가축을 기르는 농사일보다 미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데 아버지에겐 입도 벙긋 못한다. 그에 비해 세티의 사촌 네브는 집안의 가업인 미라 만드는 일보다 농사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세티와 네브는 서로에게 일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기로 약속한다. 나일강이 범람해서 농사일이 적은 ‘아케트’ 기간엔 네브가 세티에게 미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물이 빠져서 농사일을 시작하는 ‘페레트’때는 반대로 세티가 네브에게 농삿일을 가르쳐주자고. 그리곤 맹세의 의미로 행운의 부적인 쇠똥구리를 교환한다.




드디어 세티는 미라 만드는 일을 시작하지만 코를 찌르는 엄청난 냄새와 네브의 아버지가 콧구멍으로 기다란 갈고리를 넣어 뇌를 꺼내는 걸 지켜보면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이 진짜 미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게 되는데....




<토비 터커, 나를 찾아서> 그 첫 번째 이야기인 [이집트에서 미라 만들기] 이 책은 자신을 찾기 위해 고대 이집트로 떠난 소년이 그 시대에서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노력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때 진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집트의 문화나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일강의 범람에 따라 시기를 어떻게 나누는지, 피라미드나 신전을 짓는 일에 인력동원이 어떤 방법으로 이뤄졌는지, 역사 속에서 미라를 왜 만들게 됐으며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선 어른과 아이 모두 맥주를 마셨다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도 있었지만...




찢어진 종잇조각을 붙이면 자신이 누구이고 언제 왔는지 알 수 있다...첨엔 황당했지만 갈수록 궁금해진다. 나무 상자에 수북한 종잇조각을 부지런히 맞춰가면 자신을 알게 될까?




참, 끝부분에 토비가 ‘세티’라고 적힌 메모를 보는 장면, 토비의 오른쪽 손목에 쇠똥구리 문신(?)이 그려져 있다. 그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다음엔 어떤 여행, 어떤 모습의 토비를 만나게 될까...기대가 된다.




“그래! 토비 터커, 너를 찾아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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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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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봄볕이 좋았던 지난 주말, 바닷가를 찾았다. 작은아이와 한참 모래장난을 하다가 큰아이가 날리던 연을 억지로 넘겨받았다. “엄마도 한번 해보고 싶어.” 근데 어려웠다. 연이 잘 날리려면 바람의 흐름과 세기에 따라 얼레를 조절해야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차, 하는 사이에 얼레에 감겼던 실이 몽땅 풀어지면서 연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갔다. 그걸 보던 큰아이가 면박을 준다. “어, 어엄~마! 그게 머야. 나보다 못하네!!”

시를 읽은지 무척 오래됐다. 감수성 예민한 학창시절이나 20대 초반엔 시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한 발짝씩 뒷걸음질 쳤나보다.  어느날 문득 정신차리고 보니 시와 엄청나게 멀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내 맘과는 달리 하늘 저 높은 곳까지 날려버린 연처럼. 손으로 쉽게 잡을 수 없는 거리, 저 먼 곳으로 가버린 시를 어떻하지? 견우직녀처럼 까치와 까마귀를 풀어서 오작교라도 놓아야하나?

그럴때 만났다.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주는 표지의 소녀처럼 어색함에 주춤거리는 내 손을 살며시 끌어주는 시들을. 아름답고 다정하며 구수한 48명의 안내자들을.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이 책은 안도현 시인이 그동안 문학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노트에 옮겨 적었던 시 중에서 특별히 아끼고 좋아하는 시들이 실려있다. 총 4부로 나누어 각 부마다 12편의 시를 선별해서 수록했는데 그 하나하나의 시마다 안도현 시인은 짤막한 글을 덧붙여놓았다. 시인을 소개하거나 그 시에서 느껴지는 정경이나 감상, 더 나아가 저자가 그 시를 좋아하는 이유를  풀어놓아서 시를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또 이 책에는 김기찬 사진작가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는데 흑백이어선지 하나같이 어린 시절의 지나온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에서 여동생을 등에 업고 “똥 푸소~” 놀이를 하는 소녀와 친구들, 온갖 그릇과 병, 깡통, 하얗게 타버린 연탄재까지 모아놓고 소꿉놀이를 하는 단발머리를 한 어린 기집애들, 지게 양쪽에 연탄 하나씩 지고 열심히 나르는 소년, “뻥이요~~!!”하고 큰 소리가 날 듯한 사진,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는 할머니, 우루루 담벼락에 올라앉아 만화삼매경에 빠진 아이들...이런 사진들이 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쩜 이리도 시의 분위기에 꼭 들어맞는지...이 시를 위해서 사진을 찍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촌스러움, 이런 구닥다리, 이런 케케묵음, 이런 한가로움, 이런 퇴행이 오히려 신선하게 뵈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 50쪽.

 

물론 이 책에 수록된 48편의 시를 모두 이해할 순 없었다. 절반은 읽는 순간 가슴에 찌릿...하게 와닿았지만 나머지 절반 가까이는 안개 속을 헤매는 듯했다. 시 한 편에 자신의 인생을 고스란히 녹여낸 시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면 정말 좋으련만...십년 가까이 시를 읽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차 한 잔을 마시듯 매일 시 한 두 편을 읽어보자...아이들에게 소리내어 읽어주고 시를 눈이 아니라 오감으로 느껴보자고 다짐해본다.

불혹이란 인생의 전환점에 만난 의미가 되어버린 이 책 한 권을 조금씩 야금야금 먹고서 가슴에 꼭 안았다. 그래, 이 느낌이야. 가슴 한 켠의 열기가 조금씩 퍼지는 것 같은...이걸 잊지 말자...이번엔 절대 놓치지 말자고 주문을 걸듯 몇 번이고 되뇌었다.

불혹의 첫 봄에 정말 사랑하고픈 풍경을 만났다. 이런 기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한동안 이 책은 나의 선물목록 1호가 될 듯하다.


 

 

<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  /   강윤후>  - 84쪽.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부록에서 맞는 첫 봄이다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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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자 2008-04-19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불혹] 저 시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구요^^;;
부록으로 펼쳐질 제 2의 인생도 멋질 거라는 기대감...전 그런게 있어요.

세실 2008-05-11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불혹을 작년에 끝냈지만 아직도 제 마음이네요.
부록....살짝 서글픈 마음 들지만 뭐 생각하기 나름이겠지요.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좀 있어야 겠다'필이 팍 옵니다. ㅎㅎ

몽당연필 2008-05-11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맘에 들었던 시인데 함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이 책 이번 스승의 날에 선물하려고해요. ^^
 
얘가 먼저 그랬어요! 모두가 친구 9
가브리엘라 케셀만 글, 유 아가다 옮김, 펩 몬세르랏 그림 / 고래이야기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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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먼저 그랬어요!”




어릴때 형제가 많았던 우리집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항상 누구와 누군가가 티격태격 다투고 토라졌다. 그때마다 엄마는 “누가 그랬는데?”하고 물으셨다. 그럼 대답은 당연히...“얘가 그랬어!”




아이는 누구나 마찬가진가보다. 그때의 그 말을 요즘 내 아이에게서 듣는다. 17개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동생이 좀 귀찮게 해도 잘 돌봐주면 좋으련만...늘상 짜증을 낸다. “야,  내 꺼 만지지 말랬지. 부서졌잖아!!” “너, 저리 가!”...그러다가 결국엔 작은애 울음보가 터진다. 무슨 일인가 달려가보면 씩씩거리던 큰애가 말한다, “내가 안 그랬어. 얘가 먼저 그랬어”라고,




고래이야기 출판사의 모두가 친구 시리즈 중 <얘가 먼저 그랬어요!> 이 책은 아이들의 다툼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밤새 잠을 푹 자지 못한 타틴은 아침부터 기분이 나빴다. 잔뜩 화난 얼굴에 팔짱을 꼭 끼고선 길을 걸었다. 걸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봐...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걸어가던 중에 만나는 친구들과 사소한 일로 화를 내고 싸운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어른에게 타틴은 화난 목소리로 친구가 먼저 그랬다고 말한다. 길을 가는 자기에게 친구들이 말을 걸거나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라고 친구탓으로 돌려버린다. 그리곤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때 고양이 친구를 만난다. 얘가 또 귀찮게 하려나...싶어 막 짜증을 내려는 타틴에게 고양이 친구는 초콜렛을 내민다. “무슨 소리야? 하나 먹어봐.”하고.




기분 나쁜 타틴이 별 것 아닌 일에 친구와 화를 내고 싸우고 다투는 모??냥 지나칠 일을 장난감이 부서졌거나 배고픈데 좋아하는 간식이 없을 때, 엄마아빠가 놀아주지 않거나 친구한테 기분 나쁜 말을 들었을 때 아이는 유난히 짜증을 낸다. 장난이나 호의에도 날카롭게 반응한다.




그때 엄마인 내가 아이가 왜 그러는지 얘기하면서 마음을 이해해주고 잘 다독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내가 피곤하거나 힘들면 아이의 얘길 들어주기보다 나도 덩달아 짜증을 냈다. 불끈불끈 치솟는 화를 어찌하지 못해 쩔쩔 맸다. 그런 내 모습이 아이들 눈에 어떻게 비춰졌을지, 내 행동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지...생각하면 덜컥 겁이 난다.




사람들은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누구나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폭력성을 어떻게 관리를 해서 순한 양처럼 만드느냐...하는 거다. 이 책에선 ‘초콜릿’을 내밀었다. 화가 난 아이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캐묻기 전에 일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아이의 마음자리를 이해해주고 감싸주라고.




타틴은 화를 내는 대신 친구가 내민 초콜릿을 집어 먹었어요. 하나 또 하나 먹다 보디 기분이 점점 좋아졌어요. “오물오물 냠냠. 오물오물 냠냠.”우스꽝스런 소리도 재미있었고 초콜릿 범벅이 된 친구 얼굴도 웃겼어요...타틴은 이제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표지에 위로 치켜뜬 짙은 눈썹 때문인지 무척 심술궂어 보이던 타틴의 표정이 끝부분엔 한껏 부드러워졌다. 입가에 초콜릿을 잔뜩 묻히고서 웃고 있다. 초콜릿의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화난 아이에게 백발백중의 효력을 발휘하는 ‘마음의 초콜릿’, 나도 준비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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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삼국지 1 - 한중일 삼국의 바둑 전쟁사 바둑 삼국지 1
김종서 지음, 김선희 그림, 박기홍 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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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에 놓고 싶은 만큼 돌을 올려라. 니가 아무리 많이 올려도 내가 이길 수 있다.”




대학신입생때 바둑을 배우고 싶다는 내게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당시 내가 바둑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내 돌로 상대편 돌을 감싸 들어낸다는 거였다. 바둑판 위에 검은돌을 몇 줄로 주루룩 줄지어 놓곤 ‘이래도 이길 수 있어요?’...하듯 의기양양해했다. 그다음 잠깐 사이,  바둑판 위에 올려놓은 내 돌들이 사라졌다. 무참히 깨졌다. 완전 참패였다. 내게 바둑의 재능이나 소질이 없는 게 분명했다. 그 날 이후로 난 바둑돌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바둑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20년이 훨씬 지난 후에. 모대학교의 평생교육원 강좌에서 만난 언니가 남편과 바둑학원을 한다는 거였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예전 일을 꺼냈더니 내게 만화책 한 꾸러미를 들려줬다. 알고보면 바둑, 참 재밌으니까 읽어보라고. 그게  바로 <고스트 바둑왕>이었다.




정말 재밌었다. 신의 한 수를 찾기 위한 사이의 열정이 히카루에게 바둑의 길을 열어주고 인도하는 과정과 모습은 무척 흥미진진했다. 농구를 모르던 내가 <슬램덩크>란 만화로 농구의 룰을 알게 됐듯 바둑 역시 <고스트 바둑왕>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됐다. 바둑판 위에 백돌과 흑돌이 늘어선 모양이 내겐 꼭 무슨 암호처럼 보이는데...그게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다니. 새로운 발견, 몰랐던 지식을 알게 해준 만화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23권으로 끝난 게 아쉬웠다. 24, 25권으로 계속 이어지길 바랬는데...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고스트 바둑왕>처럼 바둑에 관한 만화가 있었다. 모인터넷 사이트에서 연재중인 만화가 얼마전 책으로 출간됐다. 이름하여 <바둑삼국지>. 이 책은 <고스트 바둑왕>과 기본 구성부터 다르다. 히카루와 사이란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서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면 <바둑삼국지>는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훈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조치훈과 같은 프로바둑기사들의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진행된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1989년 싱가폴에서 열린 제1회 잉창치배 바둑대회의 4국에서 조훈현이 한 집반의 승리를 거두면서 만화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긴장 속에 진행되는 바둑대회로 조훈현은 컨디션 난조로 고생한다. 그리고 마지막 대국을 치르던 중 마치 환상처럼 그의 과거가 떠오른다. 4살이란 어린 나이에 바둑을 알게 된 그가 서울로 상경해 조남철 국수와 첫만남을 갖고 지도바둑을 두게 됐던 일...이런 내용이 1권에 펼쳐진다. 책 뒤편엔 부록으로 바둑의 입문편이 수록되어 있다. 바둑의 용어에서부터 기보해설, 본문에 나왔던 잉창치배 바둑대회 당시의 조훈현 사진 몇 장이 실려있어서 바둑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실존인물과 실화...를 바탕으로 씌여진 만화. 내용은 무척 흥미롭다. 하지만 그림이 아쉽다. <고스트 바둑왕>을 의식해서 성인을 대상으로 해선지 아니면 실존인물이란 사실에 얽메여설까.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이 오히려 만화에 몰입하는 걸 방해요소가 되버린 듯하다. 인물의 특징 두어개만 부각시켜 그려도 충분히 누군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바둑돌을 쥔 손!! 그 엉성한 모양새가 어색하기까지 느껴졌다. 다음권에선 이런 것들이 나아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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