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 -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이탈리아 기행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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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늘 생각합니다. 일 년 365일, 명절이나 가족의 생일 같은 날을 제외하고는 변함없이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내 나이 벌써 중년을 훌쩍 넘겼고’ ‘결혼 14년차인데’ ‘나 혼자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조차 없는 걸까?’ ‘때론 과감하게 폭탄선언을 해볼까?’ 하지만 현재의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볼 때 ‘여행’이나 ‘떠남’은 언제나 저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기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생각으로 그치고 맙니다.


<일생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의 손에 들고 한동안 넋을 잃고 표지를 봤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영화와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에서 스쳐지나가듯 마주쳤던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지난밤의 어둠이 물러가는 시각, 그곳에 서 있다면 금방이라도 내 발을 적실 듯 가득 차오른 물 위에 몇 대의 곤돌라가 넘실대고 뾰족하고 그 뒤로 늘어선 둥근 탑을 한 신전 혹은 성당의 모습은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 했습니다. 여긴 도대체 어디지? 이 땅 어디에 이런 곳이 있는걸까?


골목길 사이로 힐끗힐끗 보이는 푸른 회색빛 바다와 몽환적인 안개에 싸여 있어 마치 구름 위에 부유하는 도시를 걷고 있는 착각이 들게 했다. 베네치아를 염세적이고 비현실 세계로 이끄는 것으로 이 새벽길만 한 것이 없는 듯했다. - 33쪽. 


책은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시작으로 북부전원도시인 비첸차, 프리울리, 볼로냐를 여행한 다음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와 인류의 위대한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숨결이 깃든 중부의 매혹적인 도시를 거쳐 ‘역사의 도시 로마’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책을 읽기 전에 품었던 저의 의문은 본문에 들어가면서 금방 풀렸습니다. 베네치아에서도 유명한 ‘동화속의 배’ 곤돌라와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이 도시를 본 사람이라면 그 아름다움에 누구나 감탄하고 매료되지만 저자는 아니었나 봐요. 뭐든지 턱없이 비싼데다 극성스런 모기떼 때문에 크게 감동을 받지 못했다고 하네요. 물론 저자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전 저자가 부러웠습니다.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을 내 시야에 담을 수만 있다면 그 정도의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첸차를 비롯한 북부 전원도시 편에서는 고딕이나 로마네스크 같은 건축양식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학창시절 잠깐 배웠던 것을 다시 떠올려볼 수 있었습니다. ‘국제 그림책 원화전’으로 유명한 볼로냐를 저자는 신혼부부가 피해야할 여행지로 꼽아서 의아했는데요. 그 이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육감적인 몸매와 지성을 겸비한 여성들이 가장 많은 도시’가 바로 볼로냐라는 거지요. 글쎄요. 신혼부부도 그렇지만 그보다 중년의 부부가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탈리아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특히, 토스카나는 사람을 두 번 미치게 한다. 도착할 때 한 번, 떠날 때 다시 한 번. - 5쪽.


책의 초반, 저자는 자신이 이탈리아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발상지이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습니다. 그래서인지 책은 ‘세계 역사상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이자 사건’인 르네상스의 도시인 피렌체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데요. 17~8세기 영국의 귀족층 자제들은 엘리트 교육의 최종단계로 세계문물을 익히는 여행인 ‘그랜드 투어’에 대해 설명하면서 독자에게 그랜드 투어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을 느껴보라고 권합니다. 도시 자체가 르네상스 박물관인 피렌체의 피에솔레 언덕에 올라보고 피렌체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 거대한 붉은색 돔으로 유명한 두오모 대성당(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으로 이끕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서로의 예술적인 시각의 차이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는 일화와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최도성님의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가 이번이 세 번째인데요. 처음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를 읽으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분명 여행서인데도 불구하고, 여행서가 아닌 느낌이랄까요?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유럽을 소개하면서 이름난 명소가 어딘지, 그곳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 지도로 일러주고 피곤한 몸을 누일 숙소와 여행의 큰 재미인 맛난 먹거리를 조목조목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스페인을 만나고 동유럽을 만나고 이번엔 드디어, 이탈리아를 만났습니다. 다음은 어디일까요?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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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 개정판
이덕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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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 닥치는 대로 치닫는 독서지만 때론, 소가 뒷걸음질하다가 쥐를 잡는 것처럼 아주 우연찮게 서로 연관이 있는 책을 연이어 읽을 때가 있다. 그럴 때의 느낌은 정말 특별하다. 더구나 그 책이 내가 몰랐던 것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면 박수를 치고 싶을 만큼 짜릿하다. 최근 서로 관련 있는 책 두 권을 함께 읽었다. 문제의 책은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와 <정조치세어록>. 세자의 자리에 올랐으나 왕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에서 짧은 삶을 마쳐야했던 사도세자와 아비의 억울한 죽음을 힘없이 지켜봐야만 했던 아픔을 간직한 아들 정조.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무엇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읽어서일까. 두 권의 책을 양 손에 쥐고 있으려니 왠지 가슴 한 켠이 찡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영조에서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에 이르는 조선왕실 역사상 가장 비극을 이제야 제대로 접하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책장을 펼쳤다.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이란 부제에서조차 묵직한 슬픔이 베어져 나왔다. 그런데. 순간 당혹스러웠다. 책은 본문에 앞서 실린 ‘들어가는 글’과 ‘프롤로그’가 생각보다 길었다. 자그마치 50여 쪽에 이르는 글에는 저자의 <사도세자의 고백>이 출간된 이후로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 <한중록>을 번역출간한 정병설과의 대립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준다.


그제야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정병설의 <한중록>을 내가 출간된 2010년 그 해에 읽었다는 것이다. 당시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지 않고 <한중록>을 먼저 읽었는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사실 학창시절 수업시간을 통해 <한중록>이 어떠한 내용이란 건 부분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그것도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세자를 뒤주에 가둬서 죽게 한 영조의 행동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남편인 사도세자에게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세손의 아비가 아닌가. 그런데도 남편을 제일 가까이서 보호하지 못했다니. 남편과 친정집안의 정치적 노선이 다르다 하더라도 나로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영조와 홍씨의 친정 집안을 비롯한 노론이 자신과 뜻을 달리하는 사도세자를 기이한 정신병에 걸렸다하여 죽음으로 내몬 것이 아닐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를 읽으면서 의구심이 더욱 커졌다. 저자는 <영조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즉 사도세자가 정신병은커녕 성군의 자질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걸 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당시 집권층인 노론에게는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결국 노론은 사도세자의 성정이 포학한데다 기이한 정신병까지 앓고 있다며 소문을 퍼뜨리고 그것이 영조로 하여금 자신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를 세자를 죽음으로까지 내몰게 한 것이다. 영조 38년(1762년) 윤 5월 13일, 영조는 세자에게 휘령전의 뒤주로 들어가라 명한다. 이에 세자는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아비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뒤주 속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무려 8일 동안 갇혀 있다가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날이 영조 38년 윤 5월 21일이었다.


1776년 3월 10일. 자신의 아비가 억울하게 죽음을 맞는 걸 피눈물을 삼키며 지며봐야 했던 아들은 대신들을 향해 한마디를 선포한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아비의 죽음 이후 하루도 가슴에서 떠나지 않은 한 마디를 내뱉은 임금. 정조였다. 그의 원통함, 애통함이 떠올라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이덕일의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와 정병설의 <한중록>. 서로 상반되고 대립되는 의견을 주장하지만 둘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 판단하는 것은 솔직히 무리다. 하지만 <한중록>이 혜경궁 홍씨의 기록에 의존했다면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는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배경과 실록을 바탕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했다는 느낌이 든다.


언제나 그랬듯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이고 날조된 것인지 후세의 우리는 알 수 없다. 오직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 이것이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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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2-01-09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 역사에서 자주 회자되는 인물이네요. 사도세자를 다른 시각에서 다루었다면 읽어볼만할거라 생각되네요. 생각과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가 뒤집어질수있으니까요
 
한글 박물관 - 글누리의 모음
박창원 지음 / 책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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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큰아이는 불만이 많습니다. 남의 나라 말인 영어를 우리가 왜 배워야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마음 같아선 하루 종일 놀아도 시간이 부족한데 영어까지 공부하자니 너무 힘들다는 거지요. 제가 아무리 ‘세계화’니 어쩌니 말을 해도 아이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저 역시 영어라면 주눅부터 드는지라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모르는 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한글보다 영어공부에 더 열성이라니...정체성이 흔들리는 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영어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강요하기에 앞서 우리의 ‘한글’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먼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글박물관>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섭니다. 우리의 한글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었습니다. 사실 한글이 얼마나 우수하고 과학적인 문자인지 물론 알지요. 하지만 그건 학창시절 수업시간을 통해 들었던 일방적인 교육에 의해서이지 우리가 자발적으로 연구하거나 느껴보지는 못했습니다. 때문에 ‘한글이 세계 어느 나라의 문자보다 우수하다’는 건 우리가 실제로 깨닫기 이전에는 어찌보면 그저 입에 바른 말이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요.


훈민정음은 조선의 4대 국왕인 세종 25년~26년 사이에 완성되었는데요. 이때 세종이 만든 글자의 이름과 그 글자를 해설한 책의 이름을 가리켜 모두 ‘훈민정음’이라고 합니다. 책은 총 4부 15장에 걸쳐 훈민정음, 한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문명과 문화를 발달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시작으로 훈민정음의 창제과정을 살펴보는데요. 흔히 ‘훈민정음’을 세종 혼자서 만들어냈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절반만 맞는 말이라고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의 도움을 받아 창제했다’고 합니다. 훈민정음의 인류의 문자사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요. ‘문자의 창제과정과 창제연도가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책’이 바로 훈민정음이라고 하는군요. 그런 다음 훈민정음의 창제의 의의와 과정에 대해 알려주는데요.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의 생활, 한자를 빌어 쓰면서 겪어야했던 불편함을 비롯해 당시 주변 국가의 문자생활과 함께 훈민정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창제되었는지 짚어줍니다. 이후부터는 창제된 훈민정음을 보급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당시 조선의 사대부와 양반층에서 한자를 쓰던 때여서 한글이 정착하기까지 과거에 시험과목으로 채택되었다가 폐지되기도 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하는군요.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행정도시로 건설 중인 세종시가 국내 최초로 ‘한글도시’로 탄생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도시인만큼 마을 이름, 도시의 곳곳에 들어서는 도로나 다리, 시설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글 이름이 붙여지게 된다는데요.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고 발길이 닿는 곳곳에 한글이름으로 가득한 도시. 생각만 해도 뿌듯해집니다. 어떤 이름들이 선택될까 궁금하고 기대도 됩니다. 이것이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우리 삶의 공간에서 한글이 더욱 사랑받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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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2-01-09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내용을 언급해주신 부분은 제가 알고있던 내용과 똑같네요. 한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은 아니고 기존의 이야기를 정리해놓은 책인것같은데요.. 전체내용을 보면 조금 다를까요?
 
한국의 CSI - 치밀한 범죄자를 추적하는 한국형 과학수사의 모든 것
표창원.유제설 지음 / 북라이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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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난다. 추리나 미스터리 소설를 좋아하는 만큼 영화나 드라마도 범죄수사나 스릴러류를 즐겨봤는데 둘째를 임신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남편이 <CSI>시리즈 같은 범죄수사 드라마가 태교에 좋지 않으니 보지 말라며 태클을 가했다. 그전까지 즐겨 보던 것을 갑자기 보지 말라니 이런 억지가 어딨나 싶었지만 남편의 말이 이해는 됐다. 임산부가 잔인한 범죄와 낭자한 피를 봐서 뭐가 좋겠는가. 끊으라면 끊지 뭐. 그런데 둘째를 낳고 보니 어느새 <CSI>와 같은 과학수사물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과학수사물 붐이 일었는데 가끔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수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드라마에서처럼 미궁으로 빠질 수 있는 사건을 사소한 단서 하나로 해결하는 일이 실제 우리나라도 있을까?


그러다 지난달이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의 국내 1호 ‘프로파일러’으로 알려진 이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괴물,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흉악범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사건동기부터 수법, 원인을 캐내는 게 그의 주된 임무인데 그가 인터뷰한 범죄자만 700여명에 이른다니 놀라웠다. 또 한국 최초 법의학자의 책이 출간되면서 우리나라의 법의학과 과학수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또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이번엔 프로파일러와 과학수사대원이 함께 출간한 책 <한국의 CSI>이 그것이다.


책은 수사의 진행방식에 따라 ‘현장 감식, 모든 수사의 출발점’ ‘지문, 감춰진 범죄자의 흔적’ ‘DNA, 살인자의 또 다른 얼굴’ ‘혈흔 형태 분석, 범죄 상황의 생생한 증언’ ‘미세 증거, 범인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증거’ ‘검시, 사체가 말하는 진실’ ‘화재 감식, 화염으로도 감출 수 없는 범죄’ 일곱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의 파트에 따라 세부적으로 어떤 도구를 이용해서 어떻게 수사를 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범인이 무심코 흘린 휴지조각이나 땀 한 방울, 미세한 지문을 통해 완전범죄에 가까운 사건의 전말이 하나씩 드러난다.


‘한국형 과학수사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에서처럼 책은 과학수사의 모든 것에 대해 알려준다. 드라마와 현실 속의 CSI가 어떻게 다른지, CSI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사건과 실패한 사례, 현장감식이나 지문감식, DNA 분석, 혈흔 형태 분석 등 과학수사의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로 알려진 이들의 이야기도 수록되어 있어서 과학수사 현장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책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인기가수의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에 관해서였다. 과학수사가 개념조차 없던 때에 일어난 사건으로 난항을 거듭하던 수사는 사람들의 입에 화제가 되어 오르내리고 했던 기억이 난다. ‘치과의사 모녀살해사건’과 유사한 ‘만삭 의사부인 살해사건’도 충격적이었다. 의사가족이 살해된 것 외에 여러 부분에서 서로 겹치는 두 사건이지만 16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과학수사도 얼마나 발전하였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 마침 이런 기사가 눈에 띄었다. 열 달 전에 실종된 일가족의 딸로 추정되는 10대 소녀의 유골 2구가 경기도의 한 야산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문제는 부모도 함께 실종됐는데 딸 둘의 유골만 발견되어 부모의 행방을 찾는데 모든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대체 어떻게 된 사건일까? 일가족이 실종된 원인은 무엇이고 딸들의 유골만 발견된 건 또 무슨 의미일까. 의문이 점점 불거진다. 모쪼록 이 사건이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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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 - 오래된 책마을, 동화마을, 서점, 도서관을 찾아서
백창화.김병록 지음 / 이야기나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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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언니가 집에 찾아왔다. 몇 달 만의 방문이라 정말 반가웠다. 그런데 언니는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더 컸나보다. 동생이 그동안 어찌하고 살았나...궁금해서 이 방 저 방 기웃하더니 하는 말 “어머, 집이 왜 이러니. 책 좀 정리해라.” 나만큼 책을 좋아하는 언니지만 책장에 그득하다 못해 집안 여기저기에 무더기로 쌓인 책이 결코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던 듯하다. “이건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책을 모독하는 거야”라고 했을 정도면. 사실 좁은 아파트에 사람보다 책이 차지하는 공간이 더 많으니 불편한 점도 있다. 먼지가 자주 많이 쌓이는 건 물론이고 뭔가를 제때 찾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책에 미련,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언젠가 도서관을 열기 위해서다.


책을 좋아해서, 책이 있는 공간, 책을 이야기하는 책은 그냥 넘기지 못한다.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이 출간되었을 때도 그랬다.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이란 제목과 저자가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는 부부’라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일단 무작정 읽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오래된 책마을 동화마을 서점 도서관을 찾아서’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은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영국에 이르는 유럽을 방문한 기록이다. 그렇다고 여행기라고 하기엔 유럽의 아름답고 빼어난 자연풍광, 예술품은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고 그보다 책이 머문, 책이 함께 하고 있는 공간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책의 구성도 1부에서는 도서관을, 2부 서점, 3부 동화마을, 4부 책마을을 소개하고 있다.


<장미의 이름>을 쓴 소설가이자 철학자,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가 싫어하는 도서관, 좋아하는 도서관’을 보면서 우리의 도서관은 과연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보고 책을 펼쳐놓은 듯한 형태라는 ‘미테랑 도서관’을 상상해보고(사진이 없어서 아쉬웠다)  볼로냐 국제도서전으로 유명한 이태리의 어린이 전문서점을 비롯해 책방골목에 줄지어 선 고서점과 <땡땡의 모험>, 그 유명한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에선 작은 사진 속의 책 제목에 자꾸만 눈길이 머물고 동화가 눈앞에서 펼쳐진 듯한 동화마을에선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와 눈 쌓인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장난꾸러기 피터와 그의 가족을 어디선가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을 통해 작은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되살려낸 책마을도 인상적이었다. 책으로 이야기하고 일상 속에 책과 함께 하는 소박한 여유를 지닌 그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갈 때면 왠지 바쁜 약속도 잊고 머무는 시간이 자꾸만 지체되곤 했는데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어딜 가더라도 책이 머물고 있는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공간, 이야기에 빠져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면서 집안일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쳐두곤 했다. 아이들 키우고 나면, 독립시키고 나면 한적한 마을에 작은 도서관을 열어야지...꿈만 꾸었지 그 이상으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을 보면서 꿈을 조금씩 키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준비되지 않은 꿈은 실현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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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2-01-09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은 도서관을 꿈꾸며 책을 쌓아놓았었어요. 지금은 그 책들의 빛바랜 색이 더 진해지기전에 처분하고 있지만요. 이 책은 저도 꼭 한번 읽어볼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