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 개정판
이덕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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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 닥치는 대로 치닫는 독서지만 때론, 소가 뒷걸음질하다가 쥐를 잡는 것처럼 아주 우연찮게 서로 연관이 있는 책을 연이어 읽을 때가 있다. 그럴 때의 느낌은 정말 특별하다. 더구나 그 책이 내가 몰랐던 것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면 박수를 치고 싶을 만큼 짜릿하다. 최근 서로 관련 있는 책 두 권을 함께 읽었다. 문제의 책은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와 <정조치세어록>. 세자의 자리에 올랐으나 왕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에서 짧은 삶을 마쳐야했던 사도세자와 아비의 억울한 죽음을 힘없이 지켜봐야만 했던 아픔을 간직한 아들 정조.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무엇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읽어서일까. 두 권의 책을 양 손에 쥐고 있으려니 왠지 가슴 한 켠이 찡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영조에서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에 이르는 조선왕실 역사상 가장 비극을 이제야 제대로 접하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책장을 펼쳤다.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이란 부제에서조차 묵직한 슬픔이 베어져 나왔다. 그런데. 순간 당혹스러웠다. 책은 본문에 앞서 실린 ‘들어가는 글’과 ‘프롤로그’가 생각보다 길었다. 자그마치 50여 쪽에 이르는 글에는 저자의 <사도세자의 고백>이 출간된 이후로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 <한중록>을 번역출간한 정병설과의 대립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준다.


그제야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정병설의 <한중록>을 내가 출간된 2010년 그 해에 읽었다는 것이다. 당시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지 않고 <한중록>을 먼저 읽었는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사실 학창시절 수업시간을 통해 <한중록>이 어떠한 내용이란 건 부분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그것도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세자를 뒤주에 가둬서 죽게 한 영조의 행동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남편인 사도세자에게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세손의 아비가 아닌가. 그런데도 남편을 제일 가까이서 보호하지 못했다니. 남편과 친정집안의 정치적 노선이 다르다 하더라도 나로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영조와 홍씨의 친정 집안을 비롯한 노론이 자신과 뜻을 달리하는 사도세자를 기이한 정신병에 걸렸다하여 죽음으로 내몬 것이 아닐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를 읽으면서 의구심이 더욱 커졌다. 저자는 <영조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즉 사도세자가 정신병은커녕 성군의 자질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걸 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당시 집권층인 노론에게는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결국 노론은 사도세자의 성정이 포학한데다 기이한 정신병까지 앓고 있다며 소문을 퍼뜨리고 그것이 영조로 하여금 자신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를 세자를 죽음으로까지 내몰게 한 것이다. 영조 38년(1762년) 윤 5월 13일, 영조는 세자에게 휘령전의 뒤주로 들어가라 명한다. 이에 세자는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아비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뒤주 속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무려 8일 동안 갇혀 있다가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날이 영조 38년 윤 5월 21일이었다.


1776년 3월 10일. 자신의 아비가 억울하게 죽음을 맞는 걸 피눈물을 삼키며 지며봐야 했던 아들은 대신들을 향해 한마디를 선포한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아비의 죽음 이후 하루도 가슴에서 떠나지 않은 한 마디를 내뱉은 임금. 정조였다. 그의 원통함, 애통함이 떠올라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이덕일의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와 정병설의 <한중록>. 서로 상반되고 대립되는 의견을 주장하지만 둘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 판단하는 것은 솔직히 무리다. 하지만 <한중록>이 혜경궁 홍씨의 기록에 의존했다면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는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배경과 실록을 바탕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했다는 느낌이 든다.


언제나 그랬듯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이고 날조된 것인지 후세의 우리는 알 수 없다. 오직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 이것이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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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2-01-09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 역사에서 자주 회자되는 인물이네요. 사도세자를 다른 시각에서 다루었다면 읽어볼만할거라 생각되네요. 생각과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가 뒤집어질수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