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진로설계 - 부모가 먼저 세상을 읽어라
오호영 지음 / 바로세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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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을 아십니까?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백. 술에 취해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말이 있다’ 음...맞긴 하지만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셨으므로 땡~!! ‘이태백’ 바로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말인데요. 사실 이 말이 생긴 건 십 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모르면 구석기 시대라고 취급 받으셔요. 그럼 ‘이퇴백’은 뭘까요? ‘20대에 퇴직한 백수’라고 합니다.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 보니까 일단 아무 회사에 들어가지만 막상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결국 퇴직해 백수가 된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헐~. 하십니까? 하나만 더. '인구론‘은 뭘까요? ’인구론‘, 이 말은 취업시장에서의 인문계 홀대현상이 낳은 신조어에요. ’인문계 90%가 논다‘는 말인데요. 그냥 웃고 넘기기엔 씁쓸함이 남습니다. 

 

20세기말 IMF를 겪으면서 실업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사람들은 좌절과 불안감에 빠져들었죠.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란 말이 생겨날 정도였으니까요. 사람들의 직업에 대한 생각, 가치관도 조금씩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전의 인기 직업이 수그러들고 새로운 직종들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데요. 그 변화의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지 않으면 그 흐름을 놓쳐버리고 마는데요. 문제는 그런 변화의 영향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겁니다. IMF때 고용불안을 온몸으로 체득한 이들이 부모가 되어 자식들은 자신의 아픔을 겪지 않게, 반듯하고 안정된 직업을 갖게 하기 위해 너도나도 무조건 교육에 올인하는데요.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지금 청소년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때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존재할까요?

 

<내 아이 진로설계>는 ‘목표’에 대해 말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가장 먼저 흐름을 파악하라고 합니다. 지금의 흐름을 알아야 앞으로의 흐름이나 다가올 미래에는 어떤 직업이 유망한지 예측할 수 있다는 건데요.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현재의 취업난이 어느 정도인지 적나라하게 짚어줍니다. 죽을 둥 살 둥 공부해서 대학에 입학하지만 대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점, 5학년으로 차고 넘치는 대학에 의존하려고 하지 말고 생존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대학보다는 전공이, 전공보다는 직업을 최종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거지요.

 

저자는 세계의 초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나라, 중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유망한 직업도 중국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서로 보완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 목표로 삼으라고 하네요. ‘달리는 말과 경주하려고 하기보다 그 등에 올라타는 지혜를 발휘하라’는 건데요. 이처럼 세계적인 사회변화의 10가지 흐름, 경향을 짚어주면서 어떤 직업의 전망이 밝은지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아이의 장래희망을 설계할 때도 어떻게 하면 좋은지 사례를 들어 구체적인 방법들을 설명하고 있어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취업시장에 떠도는 신조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해볼까요? ‘페이스팩’, 뭘까요? 힌트는 얼굴의 ‘페이스’와 ‘스펙’의 합성어인데요. 한번 생각해보시길. 우리 사회의 변화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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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와 드골 - 위대한 우정의 역사
알렉상드르 뒤발 스탈라 지음, 변광배.김웅권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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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양복을 입은 초로의 두 신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소파나 의자가 아닌 건물의 계단 같은 곳에 앉아 열심히 얘기를 하는 사람과 그를 바라보며 경청하는 사람. 그림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표정이나 모습은 생기가 넘친다. 무슨 얘길 저리도 재미나게 하는 걸까. 곰곰이 귀를 기울이면 들리지 않을까 착각이라도 할만큼. 자, 그렇다면 문제를 풀어보자. 책의 제목은 <말로와 드골>. 표지에 그려진 두 사람. 누가 말로이고 누가 드골인가? 두 사람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나로선 ‘찍어볼까?’ 하다가 금방 알아차렸다. 붉은색 글자의 말로와 초록의 드골. 빨강과 초록색 글자로 된 제목과 짝짓기라도 하듯 손에 불붙은 담배를 들고 있는 이는 말로이고 손에 초록색 안경을 들고 있는 사람이 드골이 분명하다. 거기에 ‘위대한 우정의 역사’라는 짧은 문구. 간단하지만 가장 명확하게 주인공과 책 내용을 소개하는 표지가 아닌가. 절묘하다. 멋지다.

 

솔직히 말로와 드골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아는 것이라고는 앙드레 말로가 중국혁명을 다룬 <인간의 조건>을 썼다는 것과 샤를 드골이 프랑스의 대통령이었으며 최근 스캔들로 전세계인의 주목을 끌고 있는 그 누군가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라는 것 정도? 때문에 ‘위대한 우정의 역사’라는 부제가 금방 와닿지 않았다. 이 두 인물이 생전에 어떤 계기로 만났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고나 할까? 의문은 곧 호기심을 불러왔다. 이 둘의 접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 만나보자고. 까짓 거. 작가고 대통령이었다 해도 어차피 할배들 아냐? 모 방송국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짐꾼으로 활약했던 배우만큼은 아니지만 할배들 얘기야 얼마든지 들어주지. 말해보라고. 당신들 우정의 역사를.

 

말로와 드골. 그들은 서로를 가리켜 “그 파시스트!” “그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11년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이만 봐도 그렇지만 예술가와 정치가는 특성상 좋은 조합이 아니다. 허나 그들은 1945년 7월 18일, 첫 만남을 가졌다. 만나자마자 드골 장군은 말로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이에 말로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자신의 정치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스페인 내전과 레지스탕스 운동에 대해, 더 나아가 자신은 프랑스와 결혼했노라고 말하는 말로. 한 시간 정도의 만남에 불과했지만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엔 충분했다.

 

드골 장군과 앙드레 말로는 서로 첫눈에 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25년 이상 동안 그 강도 면에서 한결 같았던 그들 사이의 우정이 시작된 것이다. - 19쪽.

 

이후 책은 샤를 드골과 앙드레 말로의 성장과정을 전하는데 둘은 여러 면에서 대조가 된다. 화목한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하면서도 소양을 갖춘 지도자로서의 어린 시절을 보낸 드골은 열다섯 살 무렵, 군인이 될 것을 결심하고 프랑스의 명문학교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다. 말로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스로가 ‘나는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했던 할아버지와 열정을 지닌 아버지가 말로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지만 그에 비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결코 좋지 않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도 두 사람에게 완전히 상반되는 삶의 궤적을 남겼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포화를 뒤집어쓰며 참혹함을 겪은 드골과 전쟁에 참전한 아버지를 통해 영웅적인 이야기에 젖어있던 젊은 청년 말로. 이후로도 둘은 장교와 모험가의 모습으로 평행선 위를 걷는다. 그러다 1930년대가 되면서 커다란 변화가 시작된다. 파시즘과 나치즘이 유럽을 잠식하려 하자 말로는 탐험가에서 투사로 탈바꿈한다. <인간의 조건>을 출간하여 공쿠르상을 수상을 시작으로 나치의 비리를 고발하는 작품을 발표한다. 당시 드골은 프랑스의 군대를 걱정이 깊어져 <미래의 군대>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전문 장갑부대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강연도 다녔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때 말로가 37세, 드골이 48세였다. 이전까지 줄곧 상반되는 삶의 궤적을 그리던 두 사람이 드디어 접점을 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었다. 인간의 조건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 즉, 인간의 자유, 존엄성, 그리고 환원 불가능성에 대한 의식이 그것이다. - 148쪽.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난다. 서로가 다른 성향과 기질을 지녔고 삶의 경험도 상반되지만 추구하는 가치가 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후 1959년 드골은 대통령이 되었고 말로를 문화부장관에 임명하기에 이른다. 조국 프랑스를 위대한 나라로 만들고 유럽에 민주주의를 다시 꽃피우고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을 빛내는데 함께 손을 잡은 것이다.

 

드골 장군은 앙드레 말로에게서 자신과 같은 높이에 있고 자신에 상응하는 또 다른 자아, 그러니까 그를 포기의 유혹에 대해 경계하게 해준 그런 존재를 만났던 것이다. 그의 앞에서는 드골 장군은 드골 장군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고 행동할 수 있었다. -351쪽.

 

1970년 11월 9일 저녁 무렵, 짧은 산택을 마친 드골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곧 그의 심장도 멈추고 만다. 오래전 처음 만난 이후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고 신념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던 드골의 죽음 이후로도 말로는 자신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지병과 건강악화로 1976년 11월 23일 새벽, 말로는 숨을 거둔다. 태어난 순간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도 달랐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서로 통한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말로와 드골, 그들의 우정은 참으로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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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코치 K 1 - 진짜 얼굴, 가짜 얼굴
이진 지음, 재수 그림, 조벽 외 감수 / 해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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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닥터 프로스트>를 아세요? 주인공은 천재 심리학자인 닥터 프로스트. 그는 젊은 나이임에도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대학의 심리상담소에서 상담교수로 근무하게 됩니다. 심리학 연구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복잡한 심리를 프로스트 교수가 분석하고 치료해 나가는 과정이 그려졌는데요.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취하는 행동과 말을 통해 심리를 유추하고 분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물론 만화이기 때문에 현실의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진 않겠죠. 하지만 재미삼아 보던 웹툰을 통해 때론 제 마음도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감정코치 K>를 만난 큰 아이도 그랬을까요?

 

온라인서점의 신간코너에서 <감정코치 K>를 보자마자 ‘바로 이거다!’ 했습니다. 감수를 맡은 이가 최성애와 조벽, 거기에 만화라니.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지요. 책이 도착하자마자 큰아이에게 건네줬습니다. 2학기 중간고사를 망치고도 태연한 큰아이에게 호통을 쳤거든요. 한바탕 야단을 치고 나서 생각해보니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아직은 애인데 하는 생각에 갑자기 미안해지는 거예요. 아이는 엄마가 이해해주지 않아서 서운한 마음, 전 아이가 노력하지 않아서 속상한 마음을 서로 돌아보고 힐링하자고 말입니다. 만화인데다 쉬운 내용이어서 금방 읽은 아이는 딱 한 마디 하네요. “괜찮네. 재밌고”

 

가출 아동 10만 명. 학업중단 청소년 20만 명. 학교부적응 문제아 178만 명.

학교붕괴의 현장에서 흔들리는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 1권/ 9쪽.

 

책은 우리의 무너진 교육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아이들도, 교사들도 절망하고 괴로움을 느끼는 어느날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정체불명의 스티커가 발견되는데요. 스티커에 적힌 이메일로 고민을 털어놓으면 해결사가 학교를 방문합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불러달라고 요청합니다. ‘감정코치 K’

 

두 권의 책에는 각각 3~4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1권 ‘진짜 얼굴, 가짜 얼굴’편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 서툴러서 혼자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다가 어느새 투명인간처럼 되어버린 재식이, 얼굴이 예뻐야 타인의 인정을 받는다는 생각에 진한 화장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세린이, 항상 웃는 모범생의 얼굴 뒤에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있는 영익이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해 점점 비뚤어진 행동을 일삼는 호철이. 2권 ‘내 안의 불협화음’편은 공부는 전교 1등이지만 꿈이 없는 민영이와 가난한 가정형편 속에 춤을 좋아해서 일찍 꿈을 찾은 순애, 어린 시절의 충격으로 인해 음식에 집착하는 미아, 잦은 전학으로 친구를 제대로 사귈 수 없었던 재우, 우람한 외모와는 달리 소녀 취향의 봉만이...어찌보면 이 아이들이 모두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유형이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는데요.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도되고 또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듣는 이야기를 보면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조금 과장된 면도 있겠지만 요즘 학교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거지요. 다만 책에서는 여러 유형의 아이들을 짧은 분량 속에 다루려고 하다 보니 내용을 좀 더 세밀하게 다루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문제없는 완벽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듯, 문제없는 아이도 없습니다.

다만 ‘어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가 존재할 뿐이지요. - 2권/ 164쪽.

 

감정코치 K는 말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문제인 학생은 없다. 문제행동이 있을 뿐이다. 문제를 일으킨 아이의 감정은 수용하고 행동은 수정하는 것이 감정코칭의 핵심’이라고. 억눌러진 감정, 인정받지 못하는 서운한 마음들이 한계에 달한 아이는 극한으로 치닫습니다. 감정의 폭발이라고 할까요? 그런 순간 취하는 감정코치 K의 행동이 저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부모교육을 받을 때 아이로 인해 화가 치솟을 때 아이와 대면하고 있는 장소를 벗어나서 5초간 심호흡을 하라고 하는데요. 그것과 같은 형식인 것 같아요. 겨우 15초지만 그동안 아이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더군요. 그림에서조차 투명하게 묘사되었던 재식이가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감정은 물과 같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죠. 부모에서 자식으로, 교사에서 학생으로.

어쩌면 세상의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지만 부정과 절망의 대물림만은 끊어내야 하겠지요. - 1권/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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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4-10-2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순식간에 닥터 프로스트를 달렸네요. ㅎㅎ

몽당연필 2014-11-04 01:00   좋아요 0 | URL
닥터 프로스트, 만나보니 어떠셨어요? ^^.
 
관통 한국사 - 모든 역사를 꿰뚫는 10가지 프레임
구완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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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의 전 역사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영어를 지독하게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다른 과목(국사를 비롯한 지리, 생물, 가사)에서 만점을 받지 않으면 점수를 만회할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도 좋지 않아서 참고서가 새까맣게 되도록 줄을 그으며 외우고 지우개로 지운다음 다시 줄을 긋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서야 줄줄줄 외울 수 있었는데요.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외운 것들이 결코 오래가지 않더라는 겁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역사의 재미를 알게 된 건 큰아이가 5살, 지금으로부터 대략 십년 전입니다. 우연히 시립박물관의 박물관 대학을 다니면서부터인데요. 박물관대학은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로 알려진 전국의 유명교수와 학예연구사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 외에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답사인데요. 교과서에서 작은 흑백사진으로 봤던 유적지와 유물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현장에서 설명을 듣는 경험은 정말이지 무척 새로웠습니다. 답사를 인솔하는 학예사의 설명을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보다 확실하게 듣기 위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백발의 노인부터 중년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발을 놀렸습니다. 재미나더군요. 역사는 이렇게 공부해야 되는구나. 새삼 깨달았답니다.

 

지천명을 발치에 두고서 지금이라도 다시 역사공부를 해볼까? 괜한 무리를 하는 건 아닐까? 갈팡질팡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책, <관통한국사>가 출간됐습니다. 역사공부를 다시 하려고 할 때 가장 난관이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중년의 기억력이었는데요. <관통한국사>는 ‘역사는 원래 외우는 게 아니다’라고 하니 어찌나 반가운지. 더구나 저자는 국사학과를 전공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자와 편집자를 거치면서 체험여행에 관한 책도 썼더군요. 역사의 전문지식에 다양한 글을 다룬 솜씨까지 더해졌으니 기대치는 급등!! 저자는 외울 것 많고 헛갈리기 쉬운 한국사를 줄줄 꿸 수 있는 것은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어서 보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어떻게 그게 가능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 책은 온통 외울 것투성이인 교과서 스타일이 아니라, 역사의 필수적인 프레임들을 통해 읽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단군부터 현대까지 한국사를 ‘관통’하는 방식입니다. - 머리말에서.

 

흔히 우리 이런 말 많이 하죠?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 네, 맞습니다. 맞고요. 어떤 일이든 사소하게 하나 하나를 따지기보다 숲, 전체를 아울러 보고 이해하는 게 좋지요. 근데 알고보면 이 ‘전체’라는 게 속을 썩이거든요. 조선시대 전체를 이해하려니 좀 복잡한가요? 왕 이름은 태종태세문단세...로 외운다고 쳐요. 수많은 업적에 세금제도, 주요 문화재, 전쟁은 또 왜 그리도 많은지...숲 전체를 보려고 멀찍이서 두 눈을 부릅 뜨고 있지만 금세 눈은 따갑고 골치도 아프고....에이, 몰라! 아예 포기해버리기 십상인거죠.

 

여기서 ‘프레임’이 등장합니다. 틀, 뼈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떤 시대이든지간에 하나의 프레임, ‘틀’을 가지고 보라는 거지요. 이를테면 제일 먼저 언급된 ‘시대 구분’. 길고 긴 역사에 있어서 시대를 어떻게 구분하고 나눌 것인가! 쉬우면서도 동시대의 세계사와 함께 놓고 생각하면 머리만 복잡해지는...게 바로 ‘시대 구분’인데요. 저자는 우리의 왕조순서로 시대를 구분하면 서양사와 연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서양의 시대 구분을 사용한다고 하는데요. 서양의 시대구분은 어떻게 하느냐? 간단합니다. ‘노예의 존재유무’. 노예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로 나뉘는데요. 이는 ‘고대 - 중세 - 근대’와 일치하기 때문에 ‘고대 노예제 - 중세 봉건제 - 근대 자본주의’라고 시대구분을 한다는군요. 놀랍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서양사의 3분법에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더해져서 ‘선사시대와 초기국가의 형성 - 고대 - 중세 - 근세 - 근대 태동기 - 근대 - 현대’로 나누어집니다.

 

‘전쟁’이란 프레임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어떨까요?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최초의 대규모 전쟁’은 바로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입니다. 고조선이 멸망 이후 한반도는 다시 삼국의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는데요. 저자는 전쟁이 일어난 년도, 장수 이름, 어느 나라가 이기고 패했는지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두 나라가 ‘전쟁’이라는 무력의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이고, 전쟁이 두 나라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요. 마치 강의나 대화를 하듯 글을 풀어내고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지난주에 큰 아이 학교에서 중간고사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자신 있던 수학에서 어이없이 몰락하고 국어는 오직 모국어일 뿐이라는 걸 확인했으며 역사는 오리무중을 헤매고 있더군요. 못난 어미를 닮아 역사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는구나...싶어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역사교과서를 보니 진짜 답답했습니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 전후 관계, 맥락을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생략된 채 중요 부분만 최대한 압축해서 나열해놓은 교과서. 그런데 선생님들은 그러시죠. 교과서만 보면 된다고. 뭐죠? 그럼? 죽자고 외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시작된 가느다란 물줄기가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굽이치며 흘러 강이 되고 바다로 이어진다고 했는데요. 지금 우리의 역사는 어떤가.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쉼 없이 흘러가는 있는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의 역사는 교과서에 갇혀 있습니다. 아이들이 좀 더 흥미를 가지고 배울 수 있기를, 그래서 역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사족]

<관통 한국사>는 하나의 기준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라는 새로운 시도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페이지 표시가 주황색의 작은 원 안에 흰 숫자로 되어 있어 잘 보이지 않더군요. 검은색 숫자로 표시를 하는 게 눈에 더 잘 띄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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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동물 - 파국적 결말을 예측하면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인간의 심리
더글러스 T. 켄릭 외 지음, 조성숙 옮김 / 미디어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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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칼코마니’인가요? 물감을 칠한 종이의 가운데를 접었다가 펼쳤을 때 무늬가 좌우 대칭으로 나타나는 거 말이에요. 검은 옷을 입고 손으로 허리를 짚은 남자의 뒷모습이 좌우대칭으로 서 있는 책 <이성의 동물>을 봤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좌우대칭은 아니더군요. 뒤돌아선 남자의 얼굴 색깔과 그 주변을 둘러싼 물방울이 한 쪽은 빨강, 다른 쪽은 파랑. 정반대의 색깔이었거든요. 같은 모습이지만 정반대의 특성을 보여주는 남자의 모습 위로 드리워진 글, ‘파국적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인간의 심리’. 왠지 모르게 호기심을 자극하더군요. 인간인 나 역시도 모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되었습니다.

 

<이성의 동물>은 진화심리학의 선구적인 학자인 더글러스 T. 켄릭 교수와 마케팅겸 심리학 교수인 블라다스 그리스케비시우스 이 두 명의 심리학자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진화심리학과 경영심리. 이것만 봐도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 기분이 들지 않으세요? 오랫동안 진화를 거듭한 인간에게 당시의 경제적인 욕구, 상황은 어떻게 작용했을까. 인간의 심리는 어떠했을까.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죠?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버트런드 러셀, 오스카 와일드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은 인간이 ‘이성의 동물’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철학자들도 과학자들도 모두 동전의 한쪽에 초점을 맞춰 인간이 이성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들의 논쟁 대부분은 동전의 다른 한쪽인, 이성의 동물에서 ‘동물’ 부분을 간과했다. 이 책은 바로 이 동물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 11쪽.

 

책에는 이성적인 인간의 ‘동물적인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 아홉 가지의 사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비이성적 선택과 케네디가의 저주’인데요. 이 ‘케네디’가 댈러스에서 암살된 바로 그 ‘케네디’냐고요? 아니지만 맞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그 ‘케네디家’거든요. 25살의 나이에 미국 최연소 은행장이 되었고 주식거래로 엄청난 차익을 올려 행운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지닌 그는 모든 일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행운이 자식들에게 이어지지는 못했어요. 미국 대통령이 된 차남 존 F. 케네디를 비롯해서 그의 아들과 딸은 암살이나 전사, 비행기 추락으로 목숨을 잃었는데요. 케네디家의 불행과 비극이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의 손자들 역시 비운의 사고로 죽음을 맞으면서 ‘케네디가의 저주’라고 불리고 되는데요. 두 저자는 여기서 의문을 품습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인가, 아니면 허점투성이 바보인가. 치명적일만큼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담하게 일을 저지르는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심리를 밝히기 위해 하나하나 추적해나가는데요. 그들은 그것이 모두 인간의 뇌가 어떻게 진화를 거쳐 왔는지에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지 이해하려면 뇌가 지금의 특정한 선택을 내리도록 진화해온 이유가 무엇인지 탐구해야 한다. -48쪽.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항해 흑인의 인권운동을 펼친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누구보다 도덕적이라고 칭송받던 그였지만 다른 여성들과 외도를 한 이력이 있다는데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과 반대의 행동을 일삼는 원인이 바로 다중인격에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다중인격, 여러 개의 자아가 존재하는데요. 약 일곱 개에 달하는 자아가 각각이 어떤 상황에서 주도권을 갖느냐에 따라 인간의 결정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최고의 대학, 최고의 두뇌로 통하는 하버드 대학생들도 어려워하는 시험을 아마존 밀림의 한 부족, 그것도 문맹의 원주민들이 통과할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밝혀내는 부분은 우리 인간의 미처 생각지 못했던 허점들을 만날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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