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통 한국사 - 모든 역사를 꿰뚫는 10가지 프레임
구완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학창시절의 전 역사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영어를 지독하게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다른 과목(국사를 비롯한 지리, 생물, 가사)에서 만점을 받지 않으면 점수를 만회할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도 좋지 않아서 참고서가 새까맣게 되도록 줄을 그으며 외우고 지우개로 지운다음 다시 줄을 긋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서야 줄줄줄 외울 수 있었는데요.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외운 것들이 결코 오래가지 않더라는 겁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역사의 재미를 알게 된 건 큰아이가 5살, 지금으로부터 대략 십년 전입니다. 우연히 시립박물관의 박물관 대학을 다니면서부터인데요. 박물관대학은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로 알려진 전국의 유명교수와 학예연구사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 외에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답사인데요. 교과서에서 작은 흑백사진으로 봤던 유적지와 유물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현장에서 설명을 듣는 경험은 정말이지 무척 새로웠습니다. 답사를 인솔하는 학예사의 설명을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보다 확실하게 듣기 위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백발의 노인부터 중년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발을 놀렸습니다. 재미나더군요. 역사는 이렇게 공부해야 되는구나. 새삼 깨달았답니다.

 

지천명을 발치에 두고서 지금이라도 다시 역사공부를 해볼까? 괜한 무리를 하는 건 아닐까? 갈팡질팡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책, <관통한국사>가 출간됐습니다. 역사공부를 다시 하려고 할 때 가장 난관이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중년의 기억력이었는데요. <관통한국사>는 ‘역사는 원래 외우는 게 아니다’라고 하니 어찌나 반가운지. 더구나 저자는 국사학과를 전공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자와 편집자를 거치면서 체험여행에 관한 책도 썼더군요. 역사의 전문지식에 다양한 글을 다룬 솜씨까지 더해졌으니 기대치는 급등!! 저자는 외울 것 많고 헛갈리기 쉬운 한국사를 줄줄 꿸 수 있는 것은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어서 보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어떻게 그게 가능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 책은 온통 외울 것투성이인 교과서 스타일이 아니라, 역사의 필수적인 프레임들을 통해 읽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단군부터 현대까지 한국사를 ‘관통’하는 방식입니다. - 머리말에서.

 

흔히 우리 이런 말 많이 하죠?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 네, 맞습니다. 맞고요. 어떤 일이든 사소하게 하나 하나를 따지기보다 숲, 전체를 아울러 보고 이해하는 게 좋지요. 근데 알고보면 이 ‘전체’라는 게 속을 썩이거든요. 조선시대 전체를 이해하려니 좀 복잡한가요? 왕 이름은 태종태세문단세...로 외운다고 쳐요. 수많은 업적에 세금제도, 주요 문화재, 전쟁은 또 왜 그리도 많은지...숲 전체를 보려고 멀찍이서 두 눈을 부릅 뜨고 있지만 금세 눈은 따갑고 골치도 아프고....에이, 몰라! 아예 포기해버리기 십상인거죠.

 

여기서 ‘프레임’이 등장합니다. 틀, 뼈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떤 시대이든지간에 하나의 프레임, ‘틀’을 가지고 보라는 거지요. 이를테면 제일 먼저 언급된 ‘시대 구분’. 길고 긴 역사에 있어서 시대를 어떻게 구분하고 나눌 것인가! 쉬우면서도 동시대의 세계사와 함께 놓고 생각하면 머리만 복잡해지는...게 바로 ‘시대 구분’인데요. 저자는 우리의 왕조순서로 시대를 구분하면 서양사와 연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서양의 시대 구분을 사용한다고 하는데요. 서양의 시대구분은 어떻게 하느냐? 간단합니다. ‘노예의 존재유무’. 노예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로 나뉘는데요. 이는 ‘고대 - 중세 - 근대’와 일치하기 때문에 ‘고대 노예제 - 중세 봉건제 - 근대 자본주의’라고 시대구분을 한다는군요. 놀랍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서양사의 3분법에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더해져서 ‘선사시대와 초기국가의 형성 - 고대 - 중세 - 근세 - 근대 태동기 - 근대 - 현대’로 나누어집니다.

 

‘전쟁’이란 프레임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어떨까요?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최초의 대규모 전쟁’은 바로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입니다. 고조선이 멸망 이후 한반도는 다시 삼국의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는데요. 저자는 전쟁이 일어난 년도, 장수 이름, 어느 나라가 이기고 패했는지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두 나라가 ‘전쟁’이라는 무력의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이고, 전쟁이 두 나라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요. 마치 강의나 대화를 하듯 글을 풀어내고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지난주에 큰 아이 학교에서 중간고사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자신 있던 수학에서 어이없이 몰락하고 국어는 오직 모국어일 뿐이라는 걸 확인했으며 역사는 오리무중을 헤매고 있더군요. 못난 어미를 닮아 역사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는구나...싶어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역사교과서를 보니 진짜 답답했습니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 전후 관계, 맥락을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생략된 채 중요 부분만 최대한 압축해서 나열해놓은 교과서. 그런데 선생님들은 그러시죠. 교과서만 보면 된다고. 뭐죠? 그럼? 죽자고 외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시작된 가느다란 물줄기가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굽이치며 흘러 강이 되고 바다로 이어진다고 했는데요. 지금 우리의 역사는 어떤가.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쉼 없이 흘러가는 있는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의 역사는 교과서에 갇혀 있습니다. 아이들이 좀 더 흥미를 가지고 배울 수 있기를, 그래서 역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사족]

<관통 한국사>는 하나의 기준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라는 새로운 시도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페이지 표시가 주황색의 작은 원 안에 흰 숫자로 되어 있어 잘 보이지 않더군요. 검은색 숫자로 표시를 하는 게 눈에 더 잘 띄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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