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하다 - 톤도, 가장 낮은 곳에서 발견한 가장 큰 행복
김종원 지음 / 넥서스BOOKS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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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인 것 같습니다.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다 운명한 이태석 신부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촉망받는 의사로서의 명예와 부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는 성직자의 신분으로 톤즈로 향했습니다. 어둡고 낮은 곳에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택한 그를 사람들은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렀는데요.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톤도를 알게 됐어요. 마을 이름이 톤즈와 비슷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필리핀에서 봉사하고 있는 분에 관한 기사였는데요. 톤도라는 마을이 쓰레기 더미 위에 지어졌다는 것과 전기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곳이라는 대목이 충격적이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행복보다는 남의 행복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봉사자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하다>의 첫 느낌은 솔직히 그닥 별로...였습니다. 아이들이 수줍게 미소 짓고 있는 표지사진을 보니 지구변방의 개발도상국 혹은 빈민국을 다녀온 이의 체험담을 사진과 함께 엮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비슷한 유형의 책은 이미 여러 차례 만난 터라 굳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어령...추천도서’라는 문구도 눈길을 끌지 못했구요. 하지만 어쩌다, 정말 우연히 표지 귀퉁이에 적힌 글을 보게 됐습니다. ‘톤도, 가장 늦은 곳에서 발견한 가장 큰 행복’. 그렇습니다. ‘톤도’. 두 글자로 된 이 마을의 이야기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쓰레기 더미 위에 지어졌다지만 설마 그럴까! 서울의 난지도처럼 쓰레기를 매립한 곳 위에 마을이 형성되었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표지를 넘기고 처음 맞닥뜨린 사진은 정말 쓰레기 천지였습니다. 무언지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쓰레기가 바닥에 넓게 평평하게 깔려있는 그 위에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어딘가를 향해 분주히 움직이는 듯한 아이들의 모습. 뒤를 이어 성인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 충격이었습니다. 두 장의 사진에서 드러난 마을의 열악하고 처참함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 이 두 가지가 매치가 되지 않더군요. 전혀 다른 곳의 모습을 담았다고 할만큼...

 

 

예뻐서, 황홀할 정도로 예뻐서, 너의 모습이 가슴 아프구나.

가난은 그저 그들의 풍경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삶이다.

아이들의 행복은 결코 풍경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가난과 행복은 전혀 상관이 없다.

풍경은 행복의 조건이나 불행의 조건이 아니다. - 50쪽.

 

 

세계 3대 빈민 도시 톤도. 시선을 어디로 향하더라도 쓰레기 무더기가 보이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낡은 넝마로 가득한 곳이지만, 갓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아서 주린 배를 채우기 일쑤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찌들린 가난 속에 꿈이나 희망, 동심이 자랄 수 있을까 싶지만 아이들은 카메라를 향해 너무나 밝게 웃었고 락커의 심볼을 손으로 만들어 보이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빵을 가족에게 내밀었고 친구들과 나눠먹을 줄 알았으며 거리에 돈과 쓰레기가 떨어져 있을 때 모두의 행복을 위해 쓰레기를 주워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밝은 표정을 보면 순간순간 잊게 됩니다. 톤도, 그곳이 필리핀의 최빈곤층이 사는 마을이라는 것도 온갖 벌레와 거대한 쥐가 들끓고 흉악범들이 넘쳐나서 총을 휴대하지 않으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이내 알게 되죠. 일상의 모든 것이 위태로운 처참한 곳에서 태어나서 줄곧,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삶을 떠올리면 수시로 코끝이 시큰해지곤 했답니다.

 

 

가난하지만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삶을 통해 체득한 아이들을 만나고 있을 무렵 이런 기사를 봤어요. 우리나라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OECD 국가들 중에서 최하위를 차지했다는 기사인데요. 문제는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처음이 아니라는 거지요. 수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데다 점수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숙제와 각종 시험, 성적 스트레스가 아이들의 삶을 점점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는데요. 아이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을 괴롭히는 요인들을 줄이거나 없애면 될까요? 그것으로 행복해질까요? 전 아닌 거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아이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려면 가장 먼저 자신이 행복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난 지금 행복한가? 여러분은요? 행복하십니까?

 

 

톤도에서 지내면서 많은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행복에도 특유의 향기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톤도의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면 행복 냄새가 물씬 풍겼다.

동남아 특유의 뜨거운 햇살이 나를 힘들게 했지만,

아이들 덕분에 내 가슴은 봄날처럼 향기로웠다. -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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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진로설계 - 부모가 먼저 세상을 읽어라
오호영 지음 / 바로세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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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을 아십니까?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백. 술에 취해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말이 있다’ 음...맞긴 하지만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셨으므로 땡~!! ‘이태백’ 바로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말인데요. 사실 이 말이 생긴 건 십 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모르면 구석기 시대라고 취급 받으셔요. 그럼 ‘이퇴백’은 뭘까요? ‘20대에 퇴직한 백수’라고 합니다.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 보니까 일단 아무 회사에 들어가지만 막상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결국 퇴직해 백수가 된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헐~. 하십니까? 하나만 더. '인구론‘은 뭘까요? ’인구론‘, 이 말은 취업시장에서의 인문계 홀대현상이 낳은 신조어에요. ’인문계 90%가 논다‘는 말인데요. 그냥 웃고 넘기기엔 씁쓸함이 남습니다. 

 

20세기말 IMF를 겪으면서 실업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사람들은 좌절과 불안감에 빠져들었죠.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란 말이 생겨날 정도였으니까요. 사람들의 직업에 대한 생각, 가치관도 조금씩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전의 인기 직업이 수그러들고 새로운 직종들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데요. 그 변화의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지 않으면 그 흐름을 놓쳐버리고 마는데요. 문제는 그런 변화의 영향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겁니다. IMF때 고용불안을 온몸으로 체득한 이들이 부모가 되어 자식들은 자신의 아픔을 겪지 않게, 반듯하고 안정된 직업을 갖게 하기 위해 너도나도 무조건 교육에 올인하는데요.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지금 청소년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때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존재할까요?

 

<내 아이 진로설계>는 ‘목표’에 대해 말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가장 먼저 흐름을 파악하라고 합니다. 지금의 흐름을 알아야 앞으로의 흐름이나 다가올 미래에는 어떤 직업이 유망한지 예측할 수 있다는 건데요.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현재의 취업난이 어느 정도인지 적나라하게 짚어줍니다. 죽을 둥 살 둥 공부해서 대학에 입학하지만 대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점, 5학년으로 차고 넘치는 대학에 의존하려고 하지 말고 생존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대학보다는 전공이, 전공보다는 직업을 최종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거지요.

 

저자는 세계의 초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나라, 중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유망한 직업도 중국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서로 보완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 목표로 삼으라고 하네요. ‘달리는 말과 경주하려고 하기보다 그 등에 올라타는 지혜를 발휘하라’는 건데요. 이처럼 세계적인 사회변화의 10가지 흐름, 경향을 짚어주면서 어떤 직업의 전망이 밝은지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아이의 장래희망을 설계할 때도 어떻게 하면 좋은지 사례를 들어 구체적인 방법들을 설명하고 있어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취업시장에 떠도는 신조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해볼까요? ‘페이스팩’, 뭘까요? 힌트는 얼굴의 ‘페이스’와 ‘스펙’의 합성어인데요. 한번 생각해보시길. 우리 사회의 변화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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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와 드골 - 위대한 우정의 역사
알렉상드르 뒤발 스탈라 지음, 변광배.김웅권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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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양복을 입은 초로의 두 신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소파나 의자가 아닌 건물의 계단 같은 곳에 앉아 열심히 얘기를 하는 사람과 그를 바라보며 경청하는 사람. 그림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표정이나 모습은 생기가 넘친다. 무슨 얘길 저리도 재미나게 하는 걸까. 곰곰이 귀를 기울이면 들리지 않을까 착각이라도 할만큼. 자, 그렇다면 문제를 풀어보자. 책의 제목은 <말로와 드골>. 표지에 그려진 두 사람. 누가 말로이고 누가 드골인가? 두 사람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나로선 ‘찍어볼까?’ 하다가 금방 알아차렸다. 붉은색 글자의 말로와 초록의 드골. 빨강과 초록색 글자로 된 제목과 짝짓기라도 하듯 손에 불붙은 담배를 들고 있는 이는 말로이고 손에 초록색 안경을 들고 있는 사람이 드골이 분명하다. 거기에 ‘위대한 우정의 역사’라는 짧은 문구. 간단하지만 가장 명확하게 주인공과 책 내용을 소개하는 표지가 아닌가. 절묘하다. 멋지다.

 

솔직히 말로와 드골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아는 것이라고는 앙드레 말로가 중국혁명을 다룬 <인간의 조건>을 썼다는 것과 샤를 드골이 프랑스의 대통령이었으며 최근 스캔들로 전세계인의 주목을 끌고 있는 그 누군가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라는 것 정도? 때문에 ‘위대한 우정의 역사’라는 부제가 금방 와닿지 않았다. 이 두 인물이 생전에 어떤 계기로 만났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고나 할까? 의문은 곧 호기심을 불러왔다. 이 둘의 접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 만나보자고. 까짓 거. 작가고 대통령이었다 해도 어차피 할배들 아냐? 모 방송국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짐꾼으로 활약했던 배우만큼은 아니지만 할배들 얘기야 얼마든지 들어주지. 말해보라고. 당신들 우정의 역사를.

 

말로와 드골. 그들은 서로를 가리켜 “그 파시스트!” “그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11년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이만 봐도 그렇지만 예술가와 정치가는 특성상 좋은 조합이 아니다. 허나 그들은 1945년 7월 18일, 첫 만남을 가졌다. 만나자마자 드골 장군은 말로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이에 말로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자신의 정치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스페인 내전과 레지스탕스 운동에 대해, 더 나아가 자신은 프랑스와 결혼했노라고 말하는 말로. 한 시간 정도의 만남에 불과했지만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엔 충분했다.

 

드골 장군과 앙드레 말로는 서로 첫눈에 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25년 이상 동안 그 강도 면에서 한결 같았던 그들 사이의 우정이 시작된 것이다. - 19쪽.

 

이후 책은 샤를 드골과 앙드레 말로의 성장과정을 전하는데 둘은 여러 면에서 대조가 된다. 화목한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하면서도 소양을 갖춘 지도자로서의 어린 시절을 보낸 드골은 열다섯 살 무렵, 군인이 될 것을 결심하고 프랑스의 명문학교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다. 말로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스로가 ‘나는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했던 할아버지와 열정을 지닌 아버지가 말로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지만 그에 비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결코 좋지 않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도 두 사람에게 완전히 상반되는 삶의 궤적을 남겼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포화를 뒤집어쓰며 참혹함을 겪은 드골과 전쟁에 참전한 아버지를 통해 영웅적인 이야기에 젖어있던 젊은 청년 말로. 이후로도 둘은 장교와 모험가의 모습으로 평행선 위를 걷는다. 그러다 1930년대가 되면서 커다란 변화가 시작된다. 파시즘과 나치즘이 유럽을 잠식하려 하자 말로는 탐험가에서 투사로 탈바꿈한다. <인간의 조건>을 출간하여 공쿠르상을 수상을 시작으로 나치의 비리를 고발하는 작품을 발표한다. 당시 드골은 프랑스의 군대를 걱정이 깊어져 <미래의 군대>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전문 장갑부대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강연도 다녔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때 말로가 37세, 드골이 48세였다. 이전까지 줄곧 상반되는 삶의 궤적을 그리던 두 사람이 드디어 접점을 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었다. 인간의 조건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 즉, 인간의 자유, 존엄성, 그리고 환원 불가능성에 대한 의식이 그것이다. - 148쪽.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난다. 서로가 다른 성향과 기질을 지녔고 삶의 경험도 상반되지만 추구하는 가치가 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후 1959년 드골은 대통령이 되었고 말로를 문화부장관에 임명하기에 이른다. 조국 프랑스를 위대한 나라로 만들고 유럽에 민주주의를 다시 꽃피우고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을 빛내는데 함께 손을 잡은 것이다.

 

드골 장군은 앙드레 말로에게서 자신과 같은 높이에 있고 자신에 상응하는 또 다른 자아, 그러니까 그를 포기의 유혹에 대해 경계하게 해준 그런 존재를 만났던 것이다. 그의 앞에서는 드골 장군은 드골 장군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고 행동할 수 있었다. -351쪽.

 

1970년 11월 9일 저녁 무렵, 짧은 산택을 마친 드골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곧 그의 심장도 멈추고 만다. 오래전 처음 만난 이후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고 신념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던 드골의 죽음 이후로도 말로는 자신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지병과 건강악화로 1976년 11월 23일 새벽, 말로는 숨을 거둔다. 태어난 순간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도 달랐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서로 통한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말로와 드골, 그들의 우정은 참으로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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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코치 K 1 - 진짜 얼굴, 가짜 얼굴
이진 지음, 재수 그림, 조벽 외 감수 / 해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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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닥터 프로스트>를 아세요? 주인공은 천재 심리학자인 닥터 프로스트. 그는 젊은 나이임에도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대학의 심리상담소에서 상담교수로 근무하게 됩니다. 심리학 연구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복잡한 심리를 프로스트 교수가 분석하고 치료해 나가는 과정이 그려졌는데요.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취하는 행동과 말을 통해 심리를 유추하고 분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물론 만화이기 때문에 현실의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진 않겠죠. 하지만 재미삼아 보던 웹툰을 통해 때론 제 마음도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감정코치 K>를 만난 큰 아이도 그랬을까요?

 

온라인서점의 신간코너에서 <감정코치 K>를 보자마자 ‘바로 이거다!’ 했습니다. 감수를 맡은 이가 최성애와 조벽, 거기에 만화라니.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지요. 책이 도착하자마자 큰아이에게 건네줬습니다. 2학기 중간고사를 망치고도 태연한 큰아이에게 호통을 쳤거든요. 한바탕 야단을 치고 나서 생각해보니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아직은 애인데 하는 생각에 갑자기 미안해지는 거예요. 아이는 엄마가 이해해주지 않아서 서운한 마음, 전 아이가 노력하지 않아서 속상한 마음을 서로 돌아보고 힐링하자고 말입니다. 만화인데다 쉬운 내용이어서 금방 읽은 아이는 딱 한 마디 하네요. “괜찮네. 재밌고”

 

가출 아동 10만 명. 학업중단 청소년 20만 명. 학교부적응 문제아 178만 명.

학교붕괴의 현장에서 흔들리는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 1권/ 9쪽.

 

책은 우리의 무너진 교육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아이들도, 교사들도 절망하고 괴로움을 느끼는 어느날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정체불명의 스티커가 발견되는데요. 스티커에 적힌 이메일로 고민을 털어놓으면 해결사가 학교를 방문합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불러달라고 요청합니다. ‘감정코치 K’

 

두 권의 책에는 각각 3~4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1권 ‘진짜 얼굴, 가짜 얼굴’편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 서툴러서 혼자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다가 어느새 투명인간처럼 되어버린 재식이, 얼굴이 예뻐야 타인의 인정을 받는다는 생각에 진한 화장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세린이, 항상 웃는 모범생의 얼굴 뒤에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있는 영익이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해 점점 비뚤어진 행동을 일삼는 호철이. 2권 ‘내 안의 불협화음’편은 공부는 전교 1등이지만 꿈이 없는 민영이와 가난한 가정형편 속에 춤을 좋아해서 일찍 꿈을 찾은 순애, 어린 시절의 충격으로 인해 음식에 집착하는 미아, 잦은 전학으로 친구를 제대로 사귈 수 없었던 재우, 우람한 외모와는 달리 소녀 취향의 봉만이...어찌보면 이 아이들이 모두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유형이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는데요.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도되고 또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듣는 이야기를 보면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조금 과장된 면도 있겠지만 요즘 학교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거지요. 다만 책에서는 여러 유형의 아이들을 짧은 분량 속에 다루려고 하다 보니 내용을 좀 더 세밀하게 다루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문제없는 완벽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듯, 문제없는 아이도 없습니다.

다만 ‘어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가 존재할 뿐이지요. - 2권/ 164쪽.

 

감정코치 K는 말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문제인 학생은 없다. 문제행동이 있을 뿐이다. 문제를 일으킨 아이의 감정은 수용하고 행동은 수정하는 것이 감정코칭의 핵심’이라고. 억눌러진 감정, 인정받지 못하는 서운한 마음들이 한계에 달한 아이는 극한으로 치닫습니다. 감정의 폭발이라고 할까요? 그런 순간 취하는 감정코치 K의 행동이 저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부모교육을 받을 때 아이로 인해 화가 치솟을 때 아이와 대면하고 있는 장소를 벗어나서 5초간 심호흡을 하라고 하는데요. 그것과 같은 형식인 것 같아요. 겨우 15초지만 그동안 아이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더군요. 그림에서조차 투명하게 묘사되었던 재식이가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감정은 물과 같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죠. 부모에서 자식으로, 교사에서 학생으로.

어쩌면 세상의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지만 부정과 절망의 대물림만은 끊어내야 하겠지요. - 1권/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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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4-10-2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순식간에 닥터 프로스트를 달렸네요. ㅎㅎ

몽당연필 2014-11-04 01:00   좋아요 0 | URL
닥터 프로스트, 만나보니 어떠셨어요? ^^.
 
관통 한국사 - 모든 역사를 꿰뚫는 10가지 프레임
구완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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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의 전 역사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영어를 지독하게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다른 과목(국사를 비롯한 지리, 생물, 가사)에서 만점을 받지 않으면 점수를 만회할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도 좋지 않아서 참고서가 새까맣게 되도록 줄을 그으며 외우고 지우개로 지운다음 다시 줄을 긋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서야 줄줄줄 외울 수 있었는데요.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외운 것들이 결코 오래가지 않더라는 겁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역사의 재미를 알게 된 건 큰아이가 5살, 지금으로부터 대략 십년 전입니다. 우연히 시립박물관의 박물관 대학을 다니면서부터인데요. 박물관대학은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로 알려진 전국의 유명교수와 학예연구사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 외에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답사인데요. 교과서에서 작은 흑백사진으로 봤던 유적지와 유물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현장에서 설명을 듣는 경험은 정말이지 무척 새로웠습니다. 답사를 인솔하는 학예사의 설명을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보다 확실하게 듣기 위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백발의 노인부터 중년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발을 놀렸습니다. 재미나더군요. 역사는 이렇게 공부해야 되는구나. 새삼 깨달았답니다.

 

지천명을 발치에 두고서 지금이라도 다시 역사공부를 해볼까? 괜한 무리를 하는 건 아닐까? 갈팡질팡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책, <관통한국사>가 출간됐습니다. 역사공부를 다시 하려고 할 때 가장 난관이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중년의 기억력이었는데요. <관통한국사>는 ‘역사는 원래 외우는 게 아니다’라고 하니 어찌나 반가운지. 더구나 저자는 국사학과를 전공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자와 편집자를 거치면서 체험여행에 관한 책도 썼더군요. 역사의 전문지식에 다양한 글을 다룬 솜씨까지 더해졌으니 기대치는 급등!! 저자는 외울 것 많고 헛갈리기 쉬운 한국사를 줄줄 꿸 수 있는 것은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어서 보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어떻게 그게 가능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 책은 온통 외울 것투성이인 교과서 스타일이 아니라, 역사의 필수적인 프레임들을 통해 읽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단군부터 현대까지 한국사를 ‘관통’하는 방식입니다. - 머리말에서.

 

흔히 우리 이런 말 많이 하죠?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 네, 맞습니다. 맞고요. 어떤 일이든 사소하게 하나 하나를 따지기보다 숲, 전체를 아울러 보고 이해하는 게 좋지요. 근데 알고보면 이 ‘전체’라는 게 속을 썩이거든요. 조선시대 전체를 이해하려니 좀 복잡한가요? 왕 이름은 태종태세문단세...로 외운다고 쳐요. 수많은 업적에 세금제도, 주요 문화재, 전쟁은 또 왜 그리도 많은지...숲 전체를 보려고 멀찍이서 두 눈을 부릅 뜨고 있지만 금세 눈은 따갑고 골치도 아프고....에이, 몰라! 아예 포기해버리기 십상인거죠.

 

여기서 ‘프레임’이 등장합니다. 틀, 뼈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떤 시대이든지간에 하나의 프레임, ‘틀’을 가지고 보라는 거지요. 이를테면 제일 먼저 언급된 ‘시대 구분’. 길고 긴 역사에 있어서 시대를 어떻게 구분하고 나눌 것인가! 쉬우면서도 동시대의 세계사와 함께 놓고 생각하면 머리만 복잡해지는...게 바로 ‘시대 구분’인데요. 저자는 우리의 왕조순서로 시대를 구분하면 서양사와 연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서양의 시대 구분을 사용한다고 하는데요. 서양의 시대구분은 어떻게 하느냐? 간단합니다. ‘노예의 존재유무’. 노예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로 나뉘는데요. 이는 ‘고대 - 중세 - 근대’와 일치하기 때문에 ‘고대 노예제 - 중세 봉건제 - 근대 자본주의’라고 시대구분을 한다는군요. 놀랍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서양사의 3분법에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더해져서 ‘선사시대와 초기국가의 형성 - 고대 - 중세 - 근세 - 근대 태동기 - 근대 - 현대’로 나누어집니다.

 

‘전쟁’이란 프레임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어떨까요?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최초의 대규모 전쟁’은 바로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입니다. 고조선이 멸망 이후 한반도는 다시 삼국의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는데요. 저자는 전쟁이 일어난 년도, 장수 이름, 어느 나라가 이기고 패했는지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두 나라가 ‘전쟁’이라는 무력의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이고, 전쟁이 두 나라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요. 마치 강의나 대화를 하듯 글을 풀어내고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지난주에 큰 아이 학교에서 중간고사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자신 있던 수학에서 어이없이 몰락하고 국어는 오직 모국어일 뿐이라는 걸 확인했으며 역사는 오리무중을 헤매고 있더군요. 못난 어미를 닮아 역사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는구나...싶어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역사교과서를 보니 진짜 답답했습니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 전후 관계, 맥락을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생략된 채 중요 부분만 최대한 압축해서 나열해놓은 교과서. 그런데 선생님들은 그러시죠. 교과서만 보면 된다고. 뭐죠? 그럼? 죽자고 외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시작된 가느다란 물줄기가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굽이치며 흘러 강이 되고 바다로 이어진다고 했는데요. 지금 우리의 역사는 어떤가.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쉼 없이 흘러가는 있는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의 역사는 교과서에 갇혀 있습니다. 아이들이 좀 더 흥미를 가지고 배울 수 있기를, 그래서 역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사족]

<관통 한국사>는 하나의 기준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라는 새로운 시도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페이지 표시가 주황색의 작은 원 안에 흰 숫자로 되어 있어 잘 보이지 않더군요. 검은색 숫자로 표시를 하는 게 눈에 더 잘 띄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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