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선 여행 - 과학의 역사를 따라 걷는 유쾌한 천문학 산책
쳇 레이모 지음,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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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오선여행>은 2003년 가을, 영국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를 방문한 저자 쳇 레이모가 본초 자오선을 따라 떠났던 도보여행의 기록이다.




북위 50도 47분, 경도 0도 0분. 정확히 경도 0도 지점인 그리니치 본초 자오선 바로 위에 선 저자는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그리니치의 자오선이 국제 표준이 된 과정을 얘기한다. 그전까지 세계 주요 국가들은 제각각 각국의 수도를 기점으로 경도를 측정했기 때문에 통일된 지도나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1707년 10월, 영국의 실리제도 근처에서 영국 해군 함대가 암초에 부딪혀 배 4척이 침몰하고 2000명 이상의 병사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벌어진다. 또 철도와 전신의 보급, 제국의 확대로 인해 유럽에서 미국까지 해저케이블로 불과 몇 초 만에 전보를 보낼 수 있게 되자 표준 경도와 표준시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위도의 경우엔 만장일치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문제는 경도였다. 적도의 어느 부분을 경도 0도로 할 것인지, 지도상에 동서의 위치를 표시할 기준점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




그런 가운데 1884년 미국 워싱턴에서 25개국의 대표들이 참석하여 본초 자오선을 결정하는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세계 지도와 시각을 통일할 경도 기준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는 팽팽한 경쟁을 벌인다. 특히 프랑스는 “자국의 지도에 ‘그리니치 기준 동경, 서경’이라고 표시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하게 나왔다. 이에 결국 자오선은 표결에 붙여지고 25개 참가국 중 22개국의 동의로 지구의 행성 주민들은 어떤 개인이나 종족, 나라도 특권을 주장할 수 없는 공간과 시간 개념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게 됐다.




영국 남쪽의 바닷가 작은 마을 피치헤이븐에서 출발해서 본초 자오선을 따라 그리니치 천문대를 거쳐 케임브리지까지 영국 남동부 지역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여정에는 과학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유적지가 많았다.




본초 자오선을 따라 걷다가 만나는 작은 마을 ‘필트다운’은 고고학사에서 무척 유명한 곳이다. 사람의 두개골에 인간의 두개골에 유인원의 턱뼈를 갖춘 ‘필트다운인’은 영국 언론을 열광시켰다. 최소한 10만년 이상, 어쩌면 100만년 전의 것일지도 모르는 그것이 인간과 원숭이를 이어주는 잃어버린 고리가 영국에서 발견된 것은 그야말로 빅뉴스였다. 하지만 그것이 사기극이라고 밝혀지면서 ‘필트다운’은 유명한 동시에 수치스런 장소가 되어버렸다.




또 런던의 남쪽 켄트주에 있는 ‘다운’은 찰스 다윈의 집인 ‘다운 하우스’가 있는데 자오선에서 불과 4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지 칼리지에 있는 아이작 뉴턴의 연구실 역시 자오선에서 그리 멀지 않으며 공룡화석이 발견된 곳으로 알려진 라일리지스 절벽이나 과학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을 비롯해 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린 찰스 라이엘, 살균의학자 창시자인 조지프 리스터의 무덤이 있는 웨스트민스트 사원도 본초 자오선과 가까이 있었다.




‘과학의 역사를 따라 걷는 유쾌한 천문학 산책’이란 부제가 붙은 <자오선 여행> 영국 남부의 피치헤이븐에서 시작해 본초 자오선을 따라 브라이튼, 필트 다운, 케임브리지 등의 도시를 찾아 걸어다니는 저자의 여행을 통해 우리는 천문학과 지리학, 생물학, 지질학, 물리학과 같은 과학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었다. 또 인간과 우주의 관계와 그 속에 숨은 의문들을 풀기 위해 노력했던 과학자들과 수많은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소한 곁다리 : 그리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본문 중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아이의 그림책 중에 <지구 둘레를 잰 도서관 사서>란 책이 있는데, 내용이 <자오선 여행>과 중복되는 부분이어서 읽을 때 많이 참고가 됐다. 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작품 <내 이름은 빨강>이 본문에 잠깐 언급이 되고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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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섬에서 생긴 일 Dear 그림책
찰스 키핑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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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여름, 드디어 찰스키핑을 만났다.




존 버닝햄,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와 함께 영국의 3대 일러스트레이터로 손꼽히는 찰스키핑과 의미있는 첫만남을 가졌다. 계기는 <낙원섬에서 생긴 일>. 도시의 재개발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문제들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그림책이다. 결코 쉽지 않은 책이었다. 평소처럼 한번 쓰윽 읽어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떤 얘길 전하고자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여느 그림책과 달리 어둡고 칙칙한 그림은 더위에 지친 머리를 쉬이 지치게 했다. 에고, 몰라...포기하다시피 책장을 덮어버리길 여러번...




어느날 문득, ‘낙원섬’이란 이름부터 상징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낙원’. 정확한 뜻이 궁금했다.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이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즐거운 곳.’ 혹은 ‘고난과 슬픔 따위를 느낄 수 없는 곳이라는 뜻에서, 죽은 뒤의 세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도대체 누구에게, 누구를 위한 ‘낙원’인건가...




오래되고 낡은 작은 돌다리 난간에 소년이 앉아있다. 무슨 생각하는 걸까. 어딜 바라보는 걸까. 코를 킁킁거리며 다리 위를 지나가는 비쩍 마른 개를 보는 걸까? 시선의 끝을 따라가보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무심해 보이는 표정이 왠지 어둡다.




흙탕물이 흐르는 샛강 한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 섬을 ‘낙원섬’이라고 불렀다. 낙원이라고 할만한 곳은 아니지만 주인공소년 애덤에겐 고향이었고 그 섬에 사는 것이 행복했다. 오래된 점방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가게들에선 갖가지 물건들이 보기좋게 놓여있고 밝은 표정의 주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낙원섬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친다. 낙원섬이 무질서하고 난장판이라고 여긴 육지의 시의원들이 고속도로를 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낙원섬을 ‘진짜’ 낙원섬으로 만들려는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점방거리에 늘어서있던 가게들과 창고, 집들이 불도저에 의해 헐리고 부서진다.




그 와중에 낙원섬에서의 생활이 행복했던 애덤은 친구들과 함께 철거하면서 나온 폐자재들을 모아 습지에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어나간다.

 





자신들에게 고향이나 다름없던 낙원섬을 타의에 의해 떠난 사람들은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작아도 자신의 가게와 집을 갖고 있고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주한 곳에선 대형 슈퍼마켓의 점원이 되버린 모습이나 어떤 특징도 찾아볼 수 없는 공동주택은 삭막하기만 하다. 그에 비해 시의원들의 화려한 집이란....극과 극의 대조를 보여준다.

 





그리고 도로가 완공되어 개통식이 열리는 날, 습지에선 또하나의 작은 축하파티가 벌어진다.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놀이터에서 애덤과 친구들은 여러 동물들과 함께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무질서 속에도 엄연히 질서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을 번듯하게, 보기좋게 하기 위해 억지로 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진정한 개발이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던 책, 찰스 키핑의 <낙원섬에서 생긴 일>.




알록달록 밝은 원색보다 어둡고 칙칙한 갈색계열에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칼라톤의 그림의 왠지 무겁고 혼란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흑백톤이냐, 칼라톤이냐...거기엔 저자의 치밀한 계획이 숨어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집이나 가게들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나온 폐자재들이 처음엔 흑백톤이었지만 나중에 아이들의 손에 의해 탄생한 놀이터에서 아름다운 색깔을 띄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 다리가 개통되는 날 시위대들이 들고 있는 피켓 중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가난한 자를 먹여살리는 것이 성스러운 일이라면, 그들이 왜 가난한지 묻는 것은 혁명이다”... 이 짧막한 문장이 바로 찰스 키핑의 주장,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낙원섬에서 생긴 일>.  이 책은 글보다 그림을 더 세심하게,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꼼꼼하게 들여다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림책 곳곳에 숨겨둔 암호와 상징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퍼즐조각처럼 맞춰보자. 그럼 아마도 찰스 키핑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책의 앞 뒤 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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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아이들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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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린 거리, 냉기가 감도는 벽돌담에 한 아이가 기대어 앉아 있다. 최대한 웅크리고 앉아서 팔로 무릎을 감싸고 고개마저 숙인 소년. 그의 모습이 곧 사라질 듯 테두리만 남아있다. 거기에 소년을 바라보는 것 같은 고양이의 그림자. <사라지는 아이들> 표지만 봐도 암울함이 감돈다. 실낱같은 빛 한줄기조차 비치지 않는 그 모습에 괜시리 울적하고 쓸쓸해진다.




소설은 시작부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곧잘 잊는다. 이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나는 링크다. 물론 진짜 이름은 아니다.’ ‘쉘터. 그거야. 맘에 들어.’ 이 대목을 무심코 넘겼다가 20쪽쯤에서 ‘아니, 이야기 진행이 왜 이래?’하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알게 됐다. 책은 구성이나 진행이 좀 독특하다. ‘링크’라는 소년과 ‘쉘터’란 연쇄살인범이 각각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서술방식이다.




아무개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지극히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낸 링크는 열 네 살 때 부모의 이혼과 새아빠의 폭력으로 인해 어느날 갑자기 차디찬 거리로 내몰린다. 고향을 떠나 무작정 런던에 도착한 링크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직업소개소와 사회보장국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자발적 노숙자’에겐 어떤 혜택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만 듣는다. 주머니엔 잔돈 몇 푼밖에 없는 상황에 그나마 머물던 숙소에서까지 어이없이 쫓겨난 그는 추위와 배고픔에 허덕이며 거리의 구석진 곳을 찾아다닌다. 우연히 진저라는 또래의 노숙자소년을 만나 구걸하는 방법이나 요령을 배우기도 하고 서로 의지하며 지내던 어느날 갑자기 진저가 사라진다.




쉘터. 의학적인 사유로 군대에서 강제 퇴역당한 그는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지 못한 군대에 분노하면서 알콜 중독자나 노숙자로 나라를 더럽히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인간쓰레기가 온 거리를 어지럽히기 전에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대상자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노숙자들을 한명씩 꼬여낸 다음 순식간에 살해하는데 그런 일련의 과정이 마치 정당한 행위인양 ‘근무일지’란 형식을 빌어 노트에 적는다. 더불어 자신의 살인행각, 행동이 오히려 고맙지 않냐고 비웃듯이 되묻는다. 그런 그가 어느날 거리에서 마주친 진저와 링크를 처리해야할 적으로 인식하고 그들을 잡기 위해 철저한 작전을 세우는데....




링크와 쉘터, 가정내의 폭력으로 가출하여 노숙자가 된 소년과 미치광이 연쇄살인범의 얘기가 번갈아 진행되는 방식은 책을 읽는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전해줬다. 특히 진저를 간단하게 속이고 살해한 쉘터가 링크마저 잡으려고 할 때,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자신의 목을 조이려는 손이 시시각각 다가가는데 정작 링크가 눈앞에 있으면서도 눈치채지 못할 때의 아슬아슬함은 스릴 넘치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긴박감이나 스릴이 아니다.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거리를 방황하는 수많은 이들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고 그들의 미래가 어떠할지 한번쯤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그럭저럭 구걸해서 오늘은 버텼지만 그들에게 보장된 내일은 없다. 어떤 희망이나 삶의 의욕도 상실한 채, 버젓이 존재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이들. 그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일까. 끝없이 빠져드는 절망의 늪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책에서 게일이 떠날 때 링크의 손에 돈을 쥐어준 것처럼 돈이 해결책일까?




얘기가 어긋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란 에니메이션이 생각난다. 낯선 동네로 이사가던 치히로의 가족이 길을 잘못 들어 찾아간 곳에서 부모님은 돼지로 변하고 치히로 역시 몸이 사라질 듯 서서히 투명해진다. 그때 하쿠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지만 치히로는 자신의 이름을 잃고 ‘센’이라고 불리며 온천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자신을 줄곧 지켜주고 돌봐주던 부모조차 없는 상황 속에서 치히로는 매사에 심드렁하고 짜증내기 잘하던 소녀에서 서툴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로 거듭나고 결국 부모님도 다시 찾게 되는데...만약 링크에게 ‘하쿠’와 같은 인물, 위기에서 구해주고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링크의 오늘은, 다가올 미래는 이렇게 암담하진 않았을텐데...란 생각이 들었다.




영국 런던의 거리, 어둡고 구석진 곳에서 벌어지는 노숙자들의 삶을 얘기한 160여쪽의 짧은 이 책은 무척 쉽게 금방 읽혀진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한 권의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이나 개운함보다 봐선 안 되는 물건, 판도라의 상자를 몰래 들춰보기라도 한 듯 두려움과 암울함, 깊은 절망감 속에 빠져 허우적댔다. 이야기가 벌어진 장소는 영국 런던이 아니라 대한민국 내가 사는 도시이며  책 속의 미치광이 살인마 쉘터는 바로 나의 또 다른 나였다. 어둠 속에 숨겨진 나의 내면을 마주한 듯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게 끝이 아니란 거다. 책에서 링크가 그랬듯이 나 역시 희망한다. 이 책이 시발점이 되어 내 속에 잠재해있던 겹겹이 쌓인 편견을 벗어던질 수 있길, 지금까지 그들을 외면하거나 차갑게 바라봤던 시선이 조금씩 따스함을 띌 수 있길...






<기억에 남는 대목....>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한 시간, 두 시간. 잠깐씩 졸기도 한다. 아주 잠깐. 너무 춥고 두렵고 또 아파서 결국엔 어서 아침이 오기를 기도한다. 너무 지칠지라도, 내일 또한 어제와 똑같이 가혹할지라도. 무엇보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더욱 힘겹다. --- 72쪽.




몇 년 전만 해도 그 애 역시 어여쁜 아기였겠지....그 애의 부모 역시 한없는 사랑을 베풀었을테고...우리 아기는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까, 뭐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겠지. 그런데 그 예쁜 아기가 자라 비닐봉다리라고 불리며 먹다 남긴 음식으로 연명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버렸지만, 신경 쓰는 이 하나 없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 90쪽.




나는 희망한다. 루이즈와 개빈이 기사를 쓸 때, 진실을 담아 줄 것을 희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사를 읽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편견을 벗고 진실을 바라보기를 희망하며, 조금이나마 현실을 제대로 알게 되는 시발점이 될 수 만 있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 난 그저 내가 아직 이곳에 있을 때, 희망하는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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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8-24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거운 주제군요. 예전에 아이들에게 너희 집 옆에 노숙자 쉼터 같은게 만들어진다고 하면 너희들은 어떤 생각이 들겠니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아이들의 생각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어른들의 생각을 딱 닮았더군요. 위험할 것 같다. 무서울것 같다. 심지어 집값 떨어진다까지... 이 책 주제가 상당히 무거울 것 같지만 관심이 가네요.

몽당연필 2008-08-24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고 금방 읽히는데 비해 읽고나서 무척 무거운 느낌을 주는 책이었어요.
아이들이 어른의 생각을 닮게 되는건 아마도 부모나 주변 어른들의 영향이 아닐까...싶어요. 아이에게 잘못 심어준 편견이나 선입견이 나중에 아이가 성장했을때도 영향을 줄거라 생각하면 순간 아찔해져요. ㅠㅠ;;
 
통통이는 똥도 예뻐! 샘터어린이문고 12
이상권 지음, 정지윤 그림, 김성수 감수 / 샘터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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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큰아이가 1학년때 학교 수업준비물로 <곤충도감>을 챙겨간 적이 있다. 아이의 책은 전집보다 단행본 위주로 구입했던지라 <곤충도감>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도 끌겸 부랴부랴 대형서점으로 뛰어갔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도감들...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이리저리 뒤적이고 있으니 함께 갔던 아이와 남편은 대충 고르고 가자고 성화였다. 아무리 골라도 곤충은 그게 그거고, 거기서 거기....라는 게 남편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버텨서 한 권의 <곤충도감>을 골라 다음날 아이 가방에 넣어줬다.




<통통이는 똥도 예뻐> 이 책을 읽으면서 작년의 일이 생각났다. <곤충도감>을 고르기 위해 뒤적일때 사진속의 곤충들이 어찌나 징그럽던지...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비슷한 책을 계속 반복해서 보니까 처음의 느낌이 조금씩 줄어들고 적응이 되더니 곤충 그 자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단후라는 여자아이다. 5월의 어느 일요일, 아빠와 함께 산을 찾은 단후는 우연히 작은 애벌레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처음엔 애벌레를 어떻게 기르는지도 몰랐던 단후 가족. 그들은 애벌레에게 ‘통통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먹이를 구해주고 생김이 어떤지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조금씩 애벌레와 가까워진다.




단후가족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통통이를 관찰하면서 느낀 점과 이야기들을 만화를 곁들여 재미나게 풀어놓은 책 <통통이는 똥도 예뻐>. 이 책을 통해 바람이 불어도 애벌레가 나뭇잎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애벌레의 배다리가 빨판처럼 생겨서라는 것, 위험이 닥치면 고치 속의 애벌레가 “삐이삐이”하는 소리를 낸다는 걸 알게 됐다.




책에는 ‘나방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까요?’하는 부분이 있는데 나방과 나비가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도 짚어주고 있다. 또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나방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눈이 먼다’는 얘길 해주셨는데, 그 이유가 바로 ‘독나방’ 때문이란 것도 알 수 있었다.




내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자라길 바라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환경, ‘집-학교-학원’으로 꽉 짜여진 일상은 아이들에게 자연의 존재, 소중함, 위대함을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조차 뺏어갔다.




아이의 새끼손가락보다 작았던 애벌레가 한 마리의 유리산 누에나방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이 책을 통해 내 아이들이 ‘생명’이란 무엇인지 그 소중함과 신비함을 느낄 수 있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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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8-18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책이네요. 근데 이거 보고 애벌레 기르자면 어쩌죠? 전에 유치원 숙제땜에 누에랑 달팽이 길렀는데 정말 미치겠더라구요. ㅎㅎ 저부터도 전혀 자연친화적이 못돼니 우리 애들이 뭘 배울라나요? ㅎㅎ
 
내 아이 크게 멀리보고 가르쳐라
문용린 지음 / 북스넛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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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가 여름방학을 맞은 후로 매일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다. 사소한 문제로 걸핏하면 동생과 다투는가하면 부모의 충고나 의견에 황소고집으로 일관하는 아이를 볼때면 매번 한숨이 나온다. 쟤가 왜 저러지?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우리 집만 이런가? 내가 잘못 키웠나? 난 아무래도 부모로서의 자격이 부족한 게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공식이 없는 건 당연하지만 한편으론 답답하다. 아이와 나, 우리의 단추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엇갈리기 시작한 걸까? 도로 위에서 올바른 길을 미리 알려주고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을 때 돌아가는 지점을 알려주는 도로표지판처럼 우리 마음에 그런 표지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아이 크게 멀리보고 가르쳐라> 이 책에서 저자인 문용린 박사는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아이에게 지식보다 마음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부모가 ‘정서지능’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아이의 정서지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하루라도 빨리 모색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한다.




책은 5장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우선 정서지능이란 무엇이며 어떤 위력이 있는지, 똑같은 상황이라도 정서지능의 높낮이에 따라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려주고 있으며 2장에서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위인들, 정조를 비롯한 백범 김구, 신사임당, 마틴 루터 킹, 스포츠계의 스타인 김연아와 박태환 등 최고가 된 사람들의 정서능력에 얘기한다. 3장부터 본격적으로 정서 지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정서 지능의 측정은 언제부터 시작됐으며 어떤 방법으로 이뤄지는지 또 현재 국내에는 유아부터 성인까지 정시 지능을 측정하는 검사가 개발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검사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조언한다. 4장에서는 정서 지능의 높낮이에 따라 삶과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5장은 정서능력을 높이기 위한 5가지 전략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할 것은 정서 지능이 선천적인 면도 있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발달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부모가 먼저 자신의 정서 지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런 모습,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인식하고 다루는 모습과 지혜, 행동들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정서지능이란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절제하고 통제하며, 타인의 감정에 대해 예민하게 느끼고, 인내심을 지속시켜 근심으로 인해 사고 능력이 방해받지 않도록 정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의 상황, 일, 사건을 접한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이 어떤지 정확히 인식하고 이해하며 읽어낸다는 것. 솔직히 정말 어렵다. 나의 컨디션이나 상황에 따라 감정도 들쑥날쑥한데 그것을 통제하고 조절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다른 기분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아이에게 꾸준히 보여줘야 한다니... 아무리 부모라지만 너무 무거운 짐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 건 곧 부모가 자신을 조금씩 갈고 닦아가는 과정이란 걸 알 수 있다. 아이의 정서 지능을 높이는 노력은 바로 아이와 부모,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첫걸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여름방학을 시작할 때 받아온 성적표(?)를 보고 솔직히 실망했다. 그동안 아이에게 학습이나 공부에 관해 어떤 강요도 하지 않았는데 그게 과연 올바른 방법이었을지 줄곧 고민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내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지...아직도 알 수 없다. 안개가 자욱한 길을 더듬거리며 걷는 기분이지만 적어도 허둥대거나 서둘지는 말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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