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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패턴 - 루스 베네딕트 서거 60주년 기념, 새롭게 탄생한 문화인류학의 고전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8월
평점 :
몇 년 전이다. 화제의 책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국화와 칼>이란 책에 대해 알게 됐다. 국화(평화)와 칼(전쟁)로 상징되는 극단적인 일본문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인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것으로 안다. 나 역시 그 책을 읽고 싶었지만 매번 기회를 놓쳐서 아직도 읽지 못했다. 작가의 이름은 모른채 그저 <국화와 칼>이란 책만 알고 있다가 최근 <문화의 패턴>이란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두 책의 저자가 같은 인물, 루스 베네딕트였다. 그것도 매력적인 미모의 여자!!
문화인류학의 입문서로 알려진 이 책은 문화가 우리 인간의 삶과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문화의 형태와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세 원시부족을 선정하여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의식과 생활 등 특징을 조사한다.
먼저 뉴멕시코의 푸에블로 부족, 아메리카 중심부에 살아선지 서구 문명에 가장 잘 알려진 원시부족 중 하나인 그들은 개인보다 철저히 단체를 중시한다. 결혼이나 이혼 같은 문제는 개인이 알아서 처리해야 할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버렸고 초자연적인 힘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든 환각을 경험하면 그것을 죽음의 징조로 받아들였다. 또 모계사회인데다 부부도 규칙에 따라 살기 때문에 여자가 새 남자를 맞아들이려면 남편의 물건을 문턱 위에 올려놓는데 남편은 그 물건 꾸러미를 들고 어머니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도부족. 돌이 많고 험준한 화산섬이라 토지가 별로 없고 어업도 하기 힘든 척박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탓인지 과거엔 식인을 하기도 했다. 부족민의 생명이나 권리를 보호해줄 법은 물론 추장이나 정치조직이 없으며 배신을 밥 먹듯이 하고 서로 적대적이었다. 친밀함의 상징인 결혼도 서로의 적대감을 완화시키지 못하고 장모는 사위가 될 남자를 집에 가두기까지 한다. 또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주술에 의존한다. 주술의 도움이 없으면 작물은 자라지 않고 성욕도 일어나지 않으며 경제적 거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술의 소유권이란 게 있어서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가족 간에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밴쿠버 섬의 콰키우틀족. 해안에 거주하는 그들은 물고기나 바다표범, 고래가 풍부해서 원시부족치고는 많은 재산을 소유한 부족이다. 개인의 재산을 철저히 따져서 상속이 이뤄지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귀족 칭호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 우월의식이 지나치게 강해서 주인은 손님 앞에서 자신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자랑하면 다음날엔 거꾸로 상대방 손님이 또 더 많은 재산을 탕진하는 식의 경쟁을 일삼는다. 또 결혼을 통해 신분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죽여서 그의 이름을 비롯한 권리를 얻기도 하는...현재의 상식이나 이성으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책에는 이 세 원시부족의 특징을 서술하는 중간 중간 디오니소스와 아폴로를 거론하면서 디오니소스적 문화니 디오니소스형 인간 혹은 아폴로적 관습, 아폴로형 인간이란 말을 한다. 그것은 니체의 존재의 가치에 도달하는 두 가지 아주 상반된 방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 형이 추구하는 감정에 가장 가까운 상태는 환각이나 술 취한 상태인데 그에 비해 아폴로 형의 인간은 그런 도취의 체험을 이해하지 못한다. 항상 중도를 지키며 파괴적인 심리 상태를 멀리한다.
저자가 살펴본 곳 중 아폴로 형에 속하는 부족은 푸에블로 족인데 그 외 대부분의 아메리칸 인디언이나 멕시코의 인디언들은 아주 열정적인 디오니소스적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물론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그 세 부족 모두 상식의 수준을 벗어나 있다. 하지만 아폴로와 디오니소스 적인 면모를 보이는 그 부족의 모습에서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순간순간 당황스러웠다.
<문화의 패턴> 쉽지 않은 책일거라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원시부족 사람들을 연구함으로써 전통적 관습의 영향 아래 개인의 습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20세기 초 지구의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원시부족의 삶은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문화’가 무슨 뜻인지 찾았다. 문화란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이며 ‘인류에서만 볼 수 있는 사유(思惟), 행동의 양식(생활방식) 중에서 유전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서 소속하는 사회(협동을 학습한 사람들의 집단)로부터 습득하고 전달받은 것 전체를 포괄하는 총칭’이라고 되어 있었다. 순간 혹 떼려다 혹 하나 더 붙이고 말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야!!
<문화의 패턴>은 루스 베네딕트의 서거 60주년을 기념해서 출간됐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구촌은 갈수록 점차 가까워지고 세계 각국의 문화를 접할 기회도 그만큼 많아졌다. 낯선 나라의 낯선 문화에 대해 무조건 거부하기 이전에 그들의 역사를 돌아보며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기를 두고 다시 한번 꼼꼼히 꼭꼭 씹어가며 읽어보고 싶다.
베네딕트는 세 부족을 독립된 문화의 패턴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도부 족 같은 의심, 콰키우틀 같은 과시, 주니 족 같은 달관이 현대인에게는 셋이면서 하나로 종합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다. 가령, 현대인은 어떤 때는 의심에 빠지고, 어떤 때는 과시를 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달관의 태도를 보이는 그런 모순적인 존재이다. 만약 자신이 의심을 많이 하는 현대인이라고 생각된다면, 베네딕트의 가르침대로(그렇게 의심이 많게 된 것은 본인의 성격이라기보다 문화적 조건화에 의한 것이므로) 본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개인의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의 차원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베네딕트는 주장하고 있다. - 403~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