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깜깜한 짙은 어둠 속, 푸른빛 연기가 한줄기 피어오른다. 붉게 활활 타올랐다가 스러지는 게 아니라 금방이라도 꺼질 듯 여리고 가늘지만 오래도록 계속 타오를 것 푸른 연기는 왠지 서늘하게 다가온다.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이 책은 우리에게 <철도원>으로 알려진 아사다 지로의 단편소설집이다.




<인연의 붉은 끈> 즐겨보는 일본만화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 사랑하고 인연이 닿아있는 두 연인의 손을 이어주고 있다...는 대목을 읽은 적이 있다. 여기도 그런 의미의 붉은 끈이 나온다. 사랑하지만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차이 때문에 헤어지게 된 젊은 연인, 그들이 서로를 붉은 끈으로 묶고 동반자살을 계획하지만 여자 혼자 살아남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그런 여인을 사람들은 죽은 사람처럼 대하는 모습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벌레잡이 화톳불>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온가족이 몰래 피신하여 숨어사는 가장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간혹 ‘그건 내가 아냐. 내가 아니라 그자야.’하는 대목은 ‘도플갱어’를 연상시켰다. 전쟁중 부상과 굶주림에 지쳐 죽어갈 때 만난 또다른 자신에 의해 살아날 수 있었다는 그는 결국 ‘나는 그자그자는 나’라며 자신의 가족을 떠나간다.




<뼈의 내력> 깊은 산속의 산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마주 앉았다. 미혼일 줄 알았던 요시나가가 결혼을 해서 부인이 있다니...놀라고 당황한 친구에게 요시나가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외교관의 딸인 사치코와 사랑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던 사랑, 죽음을 뛰어넘는 영원한 사랑을...




이 외에도 <옛날 남자>에서는 한때 도쿄의 명물이었지만 지금은 낡은 병원의 병원장이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앞에 나타나고 <손님>에서는 백중 첫날 주인공 고이치가 우연히 만난 술집 마담을 집에 데리고 와서 ‘마중 불’을 밝히면서 순간 잊고 있던 연인, 임신한 몸으로 철로에 몸을 던진 미나코를 떠올리고 <여우님 이야기>에서는 여우 혼에 씌인 어린 소녀의 슬픔과 끔찍한 최후가 마음에 응어리진채 남았다.




하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원별리>였다.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전쟁터로 끌려온 병사가 죽어서도 아내 요리코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런 남편에게 아내는 꽃다발을 들고 찾아가 얘기한다. ‘요리코 요리코 요리코 요리코’하고 자신을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가 육십 년이 넘도록 들려서 자신은 최고로 행복했다...는 대목에서 울컥하고 눈물이 솟았다.




한줄기 푸른 연기가 위로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흩어져서 주변과 똑똑히 분간하기 어려울만큼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처럼 이생에서의 삶이 끝난 이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방황하는 영혼과 그들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쭈삣쭈삣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섭다기보다 슬프고 안타깝고 또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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