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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서
한호택 지음 / 달과소 / 2008년 8월
평점 :
역사소설이 봇물 터지듯 출간되고 있다.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팩션(Faction)이란 용어가 나올 정도다.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인 팩션(Faction). 그렇게 탄생한 역사소설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실로 매력적이다.
옅은 미색의 바탕에 초록빛 흘림체 ‘연서’라고 적힌 표지는 단순하지만 단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무왕의 사랑과 투쟁’이 어떠하길래 이다지도 고즈넉한가...
<연서(戀書)>.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은 백제 무왕의 탄생과 성장,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장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다. ‘사람들이 물으면 어머니는 웃으며 습지에 살고 있는 용이 아버지라고 했다’라며 주인공인 장의 출생의 비밀로 소설은 시작된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지만 어머니에게서 늘 “넌 큰일을 할 사람..”이란 얘길 듣고 자란 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연인, 첫사랑인 꽃님이가 시집을 가버리자 극심한 방황을 겪는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친구들과 산에 움집을 짓고 지내던 장은 어느날, 자신의 아버지가 백제의 왕이란 뜻밖의 얘길 듣는다. 어머니의 당부대로 지광스님을 찾아가 수련 받는 것을 시작으로 도기공방에서 도자기를 빚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 다스리는 법을 깨우친다. 뒤이어 만난 스승 왕평에게서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을 보살피는 자이며 왕을 도우는 군자의 도리에 대해 배운다. 또 그림공부와 그림을 파는 과정이 사람 사이의 관계나 국가 간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일깨우면서 차츰 영웅으로 성장한다.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비밀리에 붙여진 자신의 존재를 찾고 소서노의 검을 찾기 위해 왜로 건너간 장은 자신의 배다른 형인 아좌태좌를 만난다. 또 신라에서의 여러 문제로 인해 왜로 피해있던 선화공주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고구려와 신라에 밀려 쇠퇴일로에 처한 제국 백제를 일으키기 위해 일어선 무왕의 탄생과 성장, 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실과 허구를 아주 재미있고 빠른 이야기에 담은 이 책은 무척 빠르게 읽혀진다. 하지만 왠지 허전하다. 제목은 분명 ‘연서’인데 운명적인 사랑을 나눌 선화공주가 중반 이후에 나오는데다 둘의 사랑도 그다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나무로 치면 풍성한 잎을 다 떨궈내고 앙상한 줄기만 남은 셈이고 여행에 비유하면 출발지와 종착지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느낌이다. 거기다 결말이 좀 생뚱맞다는 느낌을 줘서 이게 정말 끝인가...책장을 덮고 나서도 계속 의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