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1 -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신 클래식 강의
조윤범 지음 / 살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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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표지가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묵직한 검은색 옷을 입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괜히 웃음이 나온다. 뭐가 그리도 심각한지 미간에 세로 주름이 잡힐 정도로 잔뜩 인상을 쓴 남자(저자인 조윤범이겠지?). 한껏 음악에 심취한 듯 보인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앗, 꽁지머리다. 왠지 개성적이다. 저자의 외모가. 점잖게 무게를 잡거나 으스대는 게 아니라 그때의 감정에 솔직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담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엇, 이 책 너무 어려운 거 아냐?...왠지 막 줄을 그으면서 공부해야할 것 같은데...”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주위에선 이런 얘길했다. 어렵다. 외운다. 공부한다. 사실, 첨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고전음악. 클래식을 얘기하는 책인데 아무렇게나 읽을 순 없다고 여겼다. 읽는 틈틈이 노트에 기억해야 할 부분을 적어두곤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건데? 중요한 걸 기록해둔다고 해서 기억에 오래 남는 걸까?...의문이 들었다. 당장 펜이랑 노트를 치워버렸다. 책 읽는 장소도 바꿨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편안한 장소. 하루에 몇 번이고 들락거리며 근심을 풀고 번뇌가 사라지는 곳. 일명 해우소(解憂所)에 두고 읽기 시작했다. 읽는 것도 순서대로가 아니라 마음내키는 대로 펼쳐서 즐겼다. 조금씩 야금야금....




책은 4악장 구성으로 되어있다. 1악장 너무 빠르지 않게, 2악장 빠르고 유쾌하게, 3악장 감정을 담아 느리게, 4악장 힘차고 웅장하게. 이것이 교향곡이나 소나타의 형식인지, 저자가 속한 콰르텟티스트(Quartetist) 현악사중주 악장의 형식인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내용이니까.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를 비롯해 차이코프스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브람스, 슈만...음악에 문외한인 내게도 익숙한 위대한 음악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들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음악가로 거듭나는 과정, 하나의 곡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연인과의 사랑과 그로 인한 아픔이 그들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풀어놓고 있다.




바흐와 헨델은 한 달 간격으로 태어난 동갑이라는 것에서부터 그들이 같은 의사에게 수술을 받은 후 시력을 잃게 됐다는 것,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가 된 이유는 무엇인지, <G선상의 아리아>은 어떤 배경을 갖고 탄생하게 됐는지, 또 4살에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모차르트가 6살 때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청혼한 경력이 있으며 실제 모차르트의 죽음은 영화 <아마데우스>와 다르다는 것, 베토벤이 귀가 들리지 않는 고통 때문에 자살을 결심하고 유서를 쓰기도 했으며 <미완성 교향곡>의 작곡가이자 요절한 슈베르트가 실제론 무척 지저분했다는 것,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원본 악보는 버터 싸는 포장지로 쓰이고 있었다는 것, <볼레로>의 작곡가 라벨이 로마대상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 음악가에게 있어 치명적인 게 아닐까...할 정도의 특이하고 엽기적인 내용도 서슴없이 털어놓고 있다. 마치 회식자리에서 직장상사 흉을 보듯이. 그런데 그게 무척 재밌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저자의 독특한 서술 방식 덕분에 때론 가슴 찡한 감동을, 때론 큭큭큭, 푸하하...터져나오는 웃음을, 때론 표지의 저자처럼 심각하게 인상을 쓰고서 읽기도 했다. 위대한 음악가이기 이전에 그들 역시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끼고 삶에 열정을 지녔던 한 명의 인간이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클래식은 뭔가 특별한 거라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한 달 내내 모은 용돈으로 연주회장을 찾으면서 그 특별한 뭔가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어깨의 힘을 빼고 가볍게,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의 흐름에 맡겨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겉멋만 찾다보니 자연히 음악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짜 음악을 모르기 때문에 클래식이 지겹고 재미없는 걸로 여긴다고. 그래서 진짜 음악, 맛난 음악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하는데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이 느껴졌다. 물론 이 한권의 책으로 고전음악, 클래식이 내게 와락 안기진 않았다.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흔드는 매력이 있는 존재, 알고 보니 익숙하게 알고 있던 존재이기도 한 클래식. 그에게  수줍게나마 손을 내밀어볼까....? 콰르텟티스트가 될 준비를 해볼까?







정말 사소한 뱀꼬리>>




나와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에 이런 곡이 있다. 이원수의 동시에 곡을 붙인 건데 제목은 <이상도 해라>다. 가사의 @@....이게 뭘까요?




<그건 참 이상도 해라. 내 마음을 흔들어 춤추게 하는 / 그건 참 곱기도 해라.  무지개가 물결 되어 흐르듯 하는 / 그건 참 달기도 해라.  향기로운 꿀 속에 꿈같이 녹아드는 / 그건 참 슬프기도 해~  나를 눈물 글썽한 소녀로 만드는 / 천사의 날개 같은 @@은 참 이상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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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2-12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당art채널에서 강의하는데 엊그제 윤이상을 끝으로 땡했어요. 우리 아이들이 열광한 프로였어요. 그래서 대박적립금 들어오면 이 책 삽니다. 땡스투는 님께~` ^^

몽당연필 2009-02-13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서 소개되는 음악과 함께 책을 읽으면 더 좋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순오기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완벽한 결혼을 위한 레시피
케이트 캐리건 지음, 나선숙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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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배경, 눈처럼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앉아있다. 그녀의 무릎 위에 올려진 한권의 책. 그 속에서 마법이라도 부린 듯 갓 구은 빵이 솟아나온다. <완벽한 결혼을 위한 레시피 (원제 ‘Recipes for a Perfect Marriage’)>. 처음엔 이 책이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결혼생활에 대해 즉, 음식이나 살림요령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자기계발서인 줄 알았다. ‘레시피(recipe])’란 음식을 만드는 비법이나 조리법을 뜻하는 용어니까. 그런데 책장을 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판단착오였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책은 엄연한 소설이었다. 그렇다면 왜 ‘레시피’일까. 의문에 대한 해답은 책 속에 있었다.




책의 주인공은 트레사. 항상 변화하고 활기가 넘치는 화려한 도시 뉴욕에서 몇 안 되는 성공한 푸드 저널리스트다. 그런 그녀가 마흔을 코앞에 둔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결심한다. 상대는 광고모델처럼 잘생긴 얼굴의 아파트 관리인 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자신을 세상의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답고 사랑스런 존재라고 여기는 댄의 청혼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서른 여덟살, 마음 속 깊이 뭔가를 믿고 싶었던 그녀는 댄과 결혼하면 ‘그 후로도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거라 여긴다. 결혼식을 앞둔 전날, 트레사의 엄마는 그녀에게 댄이 ‘괜찮은 사람’ 같았으며 ‘외할머니가 마음에 들어했을’ 거란 말과 함께 트레사의 외할머니가 십대 후반부터 적은 인생이야기가 담긴 노트 한 권을 내민다.




혼자가 되는 게 싫어서 결혼한 트레사는 결혼하자마자 자신이 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후회하게 된다. 과연 이 남자와 평생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최악의 선택을 한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싹을 틔우면서 자신이 예전보다 더욱 외롭고 혼자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때 트레사의 눈에 들어온 노트. 거기에서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던 외할머니의 삶을 만나게 된다. 어린 자신의 눈에 서로를 아낌없이 사랑하는 가장 완벽한 부부로 보였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하지만 외할머니에겐 결혼 전에 이미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으며 결혼 후에도 줄곧 잊지 못했다는 것이다. 첫사랑을 가슴속 깊은 곳에 품고 그를 잊지 못하는 아내 버나딘을 외할아버지인 제임스는 변함없는 사랑과 애정으로 그녀의 곁에서 평생을 함께 지냈음을 알게 되는데....




‘화학작용’, ‘타협’, ‘희생’, ‘함께하는 기쁨’, ‘인내’, ‘존경’, ‘수용’, ‘충성’, ‘신뢰’, ‘헌신’, ‘지혜’. 이렇게 11개의 소주제로 구성된 소설은 하나의 주제가 시작될 때마다 거기에 해당되는 버나딘의 요리 레시피가 앞부분에 덧붙여있다. 손녀인 트레사와 외할머니의 결혼시절의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드는 것처럼 서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처음엔 사랑이나 결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출발했지만 곁에서 변함없이 사랑을 전하는 남편에게 결국 감동하고 자신이 남편을 사랑했음을 깨닫게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었다. 솔직히 트레사와 버나딘의 사랑과 결혼생활, 삶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면도 있었다. 그런데도 쉽사리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100% 완벽한 결혼’이란 없다고 여겼다. 서로에게 충실하고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며 고난도 함께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게 가장 올바른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남는다. 얼마후면 결혼 10주년이다.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기다. 앞으로의 결혼생활을 위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내게 필요한 책읽기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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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월 13주 13일 보름달이 뜨는 밤에 독깨비 (책콩 어린이) 1
알렉스 쉬어러 지음, 원지인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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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푸른색의 밤하늘, 보름달,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마녀, 박쥐. 거기에 왠지 불길한 느낌을 주는 숫자 13이 반복되는 제목 <13개월 13주 13일 보름달이 뜨는 밤에>. 음산함이 가득한 이런 깊은 밤에 자매인지 친구인지 알 수 없는 두 소녀가 손을 잡고 걸어간다. 왜? 무엇 때문에?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는데, 나는 언니나 동생이 없다’며 뒤죽박죽 이야기를 시작한  12살의 소녀 칼리. 얼굴 가득 주근깨가 있는데다 빨간 머리, 통통한 체격의 칼리는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특별하거나 이상한 점은 하나도 없다. 주인공치고는 그야말로 지극히 평범한 소녀였다. 다만 칼리에겐 언니나 동생이 없기 때문에 함께 놀 수 있는 특별한 친구를 소망했다.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자 칼리의 반에 메르디스란 아이가 전학을 온다. 칼리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메르디스를 관찰한다. 자신과 단짝친구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메르디스가 크게 나무랄 데는 없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다. 매사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데다 말투도 이상하고 어느 누구와도 게임을 하거나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 거였다.




그러던 어느날 칼리는 메르디스를 데리러온 할머니와 우연히 얘기를 하게 된다. 자신을 그레이스라고 소개한 할머니는 칼리에게 충격적인 비밀을 털어놓는다. 자신이 진짜 메르디스라는 것. 마녀인 메르디스에게 몸을 빼앗기는 바람에 할머니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그레이스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칼리는 당황해하지만 메르디스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그레이스의 말이 진실이란 걸 알게 된다. 이에 칼리는 그레이스가 마녀에게 뺏긴 몸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다가 오히려 자신이 함정이 빠지고 마는데....




오로지 단짝친구만을 바라던 평범한 소녀 칼리가 늙은 마녀의 함정에 빠져 자신의 인생을 도둑맞게 된다는 독특한 내용의 <13개월 13주 13일 보름달이 뜨는 밤에>. 이 책은 이야기의 구성이나 흐름에 큰 무리없이 쉽고 빨리 읽혀진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전형적인 판타지동화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깊게 읽다보면 놀랍고 서글픈 사실을 알게 된다. 12살 소녀에서 어느날 갑자기 노인이 되어버린 칼리의 시선과 말을 통해 노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평소 노인들의 생활이 어떠할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하루하루 조금씩 약해지고 달라지는 자신의 몸에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자신을 쭈그렁바가지라며 쓸모없는 인간 취급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책에서 잘 드러나 있다.




일흔 살의 노인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해마다 나이를 먹을수록 거꾸로 어려지는 운명을 지닌 남자의 삶을 담은 소설도 있지만 소녀에서 노인으로, 노인에서 다시 소녀로 돌아가는 칼리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과 시간의 의미, 소중함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시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거의 마법에 가깝다. 겨울을 봄으로 바꾸고 아기를 아이로 바꾸며, 씨앗을 꽃으로 바꾸고 올챙이를 개구리로, 애벌레를 고치로, 고치를 나방으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삶을 죽음으로 바꾼다. 시간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뒤로 돌아가는 것만 빼고. 그것이 시간이 가진 문제다. 오직 한 방향으로만 갈 수 있다. 시간은 물과 같아서 거슬러 올라갈 수 는 없다.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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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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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유명작가의 저자 강연회에 다녀왔다. 자신이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언제 하게 됐느냐는 관객의 질문에 우선 집안이 책을 읽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6.25때 피난을 가서도 엄마가 장에 갔다가 새로 나온 책이라며 <걸리버 여행기>란 책을 내미셨다는 거다. 그러면서 전쟁이 터져서 피난을 가면서도 인쇄기를 싸 짊어지고 가는 사람도 희한하고 그 책을 사다 주는 사람이나 사다 준다고 또 읽는 사람이나 모두 희한했다며 웃으셨는데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너무너무 부러웠다.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의 저자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읽기 <독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전의 저자 강연회를 떠올랐다. 지금이야 ‘김.열.규.’란 이름 석자는 국문학과 민속학, 한국학의 석학으로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열규 교수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바로 그 삶의 여정이 담겨있다. 김열규 교수가 오랜 세월 동안 공들여 쌓아온 세계, 책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펼쳐진다.




이 책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1부는 ‘서書_ 책, 내게로 오다’는 한마디로 저자의 책읽기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 옛날, 옛날, 그 옛날에...”로 시작되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그에게 듣기의 시작이자 읽기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매일밤 할머니를 스승으로 한 수업, 옛날이야기 몇 개를 번갈아가며 반복하는 일상이었지만 그에게는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또 ‘언문제문’을 낮게 읊조리는 어머니의 음성에서 그는 어린 아이임에도 한의 정서를 느끼고 눈을 뜰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한국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저자는 털어놓고 있다. 낭독을 즐기던 어린 시절을 비롯해 해방과 광복이란  시대적인 큰 변화속에서도 책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그 이후의 한국 현대사 흐름에 그의 책읽기가 어떤 단계를 거쳐갔는지....그의 책과 함께 한 삶이 펼쳐져있다.




2부‘독讀_ 읽기의 소요유(逍遙遊)’에서는 책읽기의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꼼꼼읽기', '클로즈 리딩'이라든가...하는 책읽기의 요령과 ‘속독’으로 책을 읽는 현대인이 무엇을 놓칠 수 있는지, ‘삼단뛰기’와 ‘장애물경주’처럼 읽기에도 비결이 있다고 말하며 읽기의 카타르시스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읽으면서 재미를 찾으라고 조언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시나 소설, 논설문을 어떻게 읽고 그 구조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얘기해놓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 바로 김열규 교수가 자신의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던 고전을 소개하면서 책을 읽는 누구나 자신에게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책,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책을 찾아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거기에 소개된 책의 목록이 정말 굉장했다. 올해로 희수(喜寿), 77세인 김열규 교수가 평생토록 책을 읽고도 미처 못 읽은 책들이 아쉽고 사무치게 그립다는 대목이 가슴에 찡하게 와닿았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나무 앞에 서있는 느낌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체호프의 <내기>,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릴케의 <말테의 수기>,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전기>.




예전에 읽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바람에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책, 차마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책들을 바라보면서 나 자신에게 세 가지 약속을 했다. 하나, 이 책들을 언제라도 꼭 읽어내자, 그래서 내 것이 되게 만들자고. 둘, 나만의 고전, 내 삶의 나침반이 되어줄 책을 찾아내자고. 그리고 마지막 셋,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읽어주자고. 내 유년시절엔 비록 “옛날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에...”하고 이야기나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아이들에겐 내가 듣기의 시작이자 읽기의 시작이 되어주자고...아이들이 금방 사서 펴든 새 책에서 갓 핀 장미의 향을 맡을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하랴!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삶의 책 읽기는 농부의 연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삽과 괭이로 농부가 논밭을 갈 듯, 나는 책을 통해 지식의 논을 가꾸고 마음의 밭을 일궜다. - 서문 중에서. ··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목소리, 언문제문을 읊조리시던 어머니의 목소리. 그 둘은 나의 첫 고전이자, 영원한 고전이다. 내 귀에 들려오던 그분들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내게 글이며, 책이며, 문학은 없었을 것이다. - 17쪽.




읽는다는 것은 '아는 것'도 '아는 짓'도 아니었다. 그건 '되는 것' 이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뭔가가 되는 것, 그렇게 나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걸  실감하곤 했다. - 85쪽.




꽃은 새로울수록 좋고 정은 묵을수록 좋은 것! 책은 양수겸장(兩手兼將)이다. 금방 사서 펴든 새 책에서는, 갓 핀 장미의 향이 난다. 오래오래 읽고 묵힌 책에서는 폴폴 정의 냄새가 끼친다. - 198쪽.




책 읽기와 함께한 지난날을 돌아보니, 그 오랜 자국들이 새삼스럽다. 눈밭에 찍힌 발자국 같아보인다. 이제 눈꽃이라도 필까?...그래도 아쉬움이 있다면, 그건 미처 못 읽은 책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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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4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몽당연필 2008-10-06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세요. 전 아주 좋았거든요. 제가 워낙 내공이 딸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좀 지난뒤에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은 책이었답니다. ^^
 
내 이름은 호프
그레첸 올슨 지음, 이순영 옮김 / 꽃삽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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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말이었다. ‘정신적 고통이 물리적 고통보다 더 심하고 오래 간다’는 기사를 봤다. 미국과 호주의 대학연구팀에서 공동으로 조사했는데 그들은 사람들이 정신적이나 물리적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실험참가자들에게 과거 일정 기간에 벌어진 일 중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무엇이고 어떻게 느꼈는지  상세하게 기록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물리적 고통을 겪은 사람보다 정신적 고통을 겪은 사람의 고통수치가 더 높고 강하게 나타났을 뿐 아니라 일부는 옛 기억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게 단순히 회상만 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정신적 고통이라니 괜히 어렵게 느껴지는데 기사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가 넘어지는 것보다 더 아프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이 기사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굳이 과거 몇 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었다. 바로 그 날 하루만해도 내가 아이에게 얼마나 크고 많은 정신적인 고통을 줬을까, 아마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정도의 충격...이었을 거란 생각에 순간 섬뜩했다.




연두빛 바탕에 만화풍 그림의 표지, <HOPE, 내 이름은 호프> 이 책의 주인공은 열다섯 살의 소녀, ‘호프’이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기의 아이들이 부모와 크고 작은 문제로 갈등을 겪듯 호프도 엄마로 인해 갈등하고 상처를 입는다. 엄마가 무심코 툭툭 내뱉는 말, ‘바보’ ‘멍청이’ ‘네가 없었으면 좋겠어’ 같은 언어폭력으로 인해 호프는 고통스러워한다. 학교에서 하는 야영캠프를 앞두고 호프와 엄마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한다. 호프는 야영캠프에 가고 싶어하지만 엄마는 허락하지 않는다. 이에 선생님은 가정방문을 하는데 그때 호프는 그동안 가슴 속에 꾹꾹 눌러 쌓아두었던 말을 쏟아내는데....




15살의 호프가 엄마의 언어폭력, 언어학대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씩씩하게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세심한 심리묘사와 함께 담은 성장소설 <내 이름은 호프>. 호프는 ‘희망, 소망’란 이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소녀였다. 간혹 실수를 하지만 엄마에게서 ‘불쌍한 낙오자’란 말을 들을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엄마를 바꿀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노력하는 대견한 아이였다. 또 유태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학살당해야 했던 유태인의 모습을 담은 <인생은 아름다워>나 <안네의 일기>를 보며 자신의 삶은 그보다 낫다며 호프가 스스로 위안을 삼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부모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아이들이 얼마나 위축되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나 자신이 예전엔 아이였으니까. 나 역시 엄마의 모진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어 숨죽이고 울곤 했다. 어른이 되면 절대 엄마같은 사람은 안될거라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의 느낌이나 결심을 곧잘 잊어버린다는 거다. 막상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된 지금, 내 모습은 예전의 엄마 와 흡사하다. 소름이 끼친다. 이게 무슨 조화야....




이 책을 읽고 며칠 지나서였다.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최진실이 자살했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여배우로 군림하던 그녀의 자살소식에 온나라가 들썩였다. 한때  너무 가난해서 매일 수제비로 끼니를 때웠다며 웃으며 말하던 ‘똑순이’였던 그녀가 자살을 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무엇이 그녀를 낭떠러지로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말 한마디가 넘어지는 것보다 더 아프다고 했다. 그런데도 오늘 나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것도 아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 좀 봐. 너도 좀 노력해봐!’라고...무심결에 내뱉고 나서 늘 후회하고 미안해한다. 몇 번이라도 좋다. 차라리 귀에 못이 박히더라도 거듭 되새겨야할 말이다. ‘말 한마디가 넘어지는 것보다 더 아프다.’










이렇게 해야 해. 이렇게 해야 해. 이렇게 해야 해. 나는 그 말이 싫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 나 자신이 정말 바보처럼 느껴졌다. - 97쪽.




“언어 학대는 신체 학대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하게 상처를 주는 거예요. 한 마디의 언어 학대를 극복하려면 스물다섯 마디에서 서른 마디의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해요. 언어 학대로 생긴 상처는 신체적인 상처만큼이나 깊게 남아요.” - 135~136쪽.




소리를 지르고 때리는 나쁜 행동은 나쁜 마음씨처럼 엄마에게서 딸로, 손자 손녀에게로 세대를 통해 이어질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도 그 사슬을 만드는 하나의 고리가 될까? 그런 말들이 얼마나 상처를 주고, 빈정거림이 얼마나 큰 아픔을 주며, 쏘아보는 눈빛이 얼마나 목을 메게 하는지 잊지 않기를....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슬의 고리는 절대 되지 않을 것이다. - 229~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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