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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우타코 씨
다나베 세이코 지음, 권남희.이학선 옮김 / 여성신문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오늘 친정아버지의 제사가 있었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제사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사위 2명에, 손자 2명, 딸 4명, 아들 1명...그리고 18년째 홀로 살아오고 계신 친정엄마. 엄마는 해마다 이 날만 되면 애석해하신다. “아이고, 영감아...조금만 더 살지...머가 그리 급해갖고 빨리 가노...” 정말 아버지가 20년, 아니 10년만 더 사셨어도 좋았을 텐데....
10년전쯤인가? 그 엄마에게 목을 메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같은 노인 대학에 다니던 분인데, 하루에도 열두번씩 전화를 하셨다. 나이만 먹었지 철이 없던 난 그 할아버지가 정말 싫었다. 전화를 받으면 잠깐의 침묵 뒤에 들려오는 “...@여사, 계신가?”하는 낮으면서도 왠지 느물거리느는 소름끼치는 음성. 난 전화수화기를 엄마에게 넘겨주면서도 잔뜩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엄마 역시 썩 반기는 눈치가 아니었기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싶다. 그 할아버지는 지금 어떻게 지내실까... 새삼 궁금해서 엄마에게 여쭤봤더니 엄마는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하신다. 지금이라면 좀 더 친절하게 대해드릴텐데...요즘은 통 연락이 없으신 모양이다.
창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살에 반짝이는 티테이블, 티포트에선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런데 잔이며 의자가 하나뿐이다. 왜일까?
<두근두근 우타코씨>의 우타코씨는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아가는 77세의 노인이다. 앗, 홀로 살아가는 노인...이라고 하면 우타코씨가 화낼 듯 하다. 혼자이지만 깨끗하고 바르고 아름답게...살아가는 나이많은 여인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우타코씨는 한창 젊은 나이에 전쟁을 겪으면서도 기울어진 회사를 일으켜 세우고 자식들을 공부시켜 번듯하게 결혼까지 시킨...어미에게 주어진 몫을 충실하게 다 해낸 할머니다. 그런데 그냥 할머니가 아니다. 혼자서 살아도 될 만큼 경제적인 여력이 충분히 뒷받침된 할머니다. 때문에 자신에 대한 투자에도 열성을 보인다. 철마다 새 옷을 맞춰 입으면서 외모를 가꾸는 것뿐만 아니라 영어클럽을 다니고 서예를 가르친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혼자라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데 비해 우타코씨는 오히려 한마디로 혼자여서 더 편안하다고 말한다.
‘중장년은 조화를 추구하되 동화되지 말 것이며, 젊은이는 동화하되 조화를 추구하지 말 것’이다. 노부인은 귀부인이기도 해야 한다. 몰려 있지 말고 홀로 즐길 것이며 그러면서도 모두와 사이좋게, 이것이 좋다. -148쪽.
그런 우타코씨가 77세 희수잔치를 앞두고 결혼전에 사귀었던 우라베 겐지로를 떠올리게 된다. 사별한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가슴이 설레거나 두근대는 일이 없었기에 자신의 희수잔치에서 옛연인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하지만 그 바램은 여지없이 무산되고 뒤이어 호감가는 노인과 의미있는 만남들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남자의 한걸음 뒤에서 남자가 죽으면 따라죽을 것 같은 가냘픈 여인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보다 한걸음 앞에서 남자를 이끌고 가는 전사형의 듬직한 여인 우타코씨. 그녀에게 세상은 온통 ‘왜냐?’하는 의문투성이다. 자신의 가족, 아들과 며느리에서부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잃지 않고 꼿꼿하게 살아가는 우타코씨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도 이담에 우타코씨처럼 꿈꾸는 할멈, 꿈쟁이 할멈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인생의 선배인 우타코씨가 대뜸 내뱉는 말이 내 마음을 고스란히 옮긴듯 가슴에 와닿는 구절에 ‘그렇지!’하고 무릎을 쳤다.
남자는 여자 고생을 해야만 한다....자신의 아내와 고생스럽게 어울려주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내란 자동적으로 자신에게 맞춰주는 존재라는 사고방식 때문에 인격이 진보하지 않는다. -109~110쪽.
반면에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모를 괴리감을 느꼈다. 상류층에서나 누릴 수 있는 생활과 언어들이 즐비한 책 속 우타코씨의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정말 이렇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노년’...꿈꾸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곧 인생의 성공으로 연결되지 않는 게 요즘이니까 말이다.
작년인가? 자녀의 교육에 올인하지 말고 노년을 준비하라...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우리 부부는 노년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타코씨와 같은 세련되고 아름다운 노년’은 아니더라도 가슴 설레는 감성은 잃지 말았으면...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