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불행하다
카리 호타카이넨 지음, 김인순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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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출간되는 책의 표지, 보면 참 재밌다.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다. <그 남자는 불행하다> 역시 마찬가지. 제목은 마치 초등학생이 쓴 듯...학급에서 악필로 소문난 울아들도 이것보단 잘 낫겠다...싶다. 게다가 독자를 약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혀를 쏙 내밀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개...불테리어종인가? 내 눈엔 암만 봐도 비호감이다. 그 뒤로 보이는 남자. 차림새가 독특하다. 토끼 슬리퍼에 앞치마를 두른 폼은 영락없는 아줌마인데...망원경으로 뭔가 열심히 관찰하고 있다. 시선을 따라가보니 하늘에 두둥실 뜬 구름 위에 한 채의 집이 있다. 이쯤되면 오호라...알겠다. 고로 이 남자는 구름 위에 뜬 집을 잡으려다 불행해진 거로구먼? 대충 짐작이 간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이 남자가 왜 이토록 집에 집착하는지.




주인공인 마티 비르타넨은 한순간에 가족, 아내와 딸을 잃어버린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아이스하키 경기가 한참 진행중일 때 아내가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3일후 이혼소송 청구와 동시에 6개월간의 별거를 선언하는 편지가 날아든다. 세상에, 이럴 순 없다. 자고로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했거늘, 평생 단 한 번의 주먹질이 이혼사유가 되다니...




억울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조깅을 하던 마티는 단독주택이 모여있는 어느 동네에서 고풍스런 통나무집을 발견한다. 순간 그의 내부에서 뭔가 일어난다. ‘저런 집을 갖고 싶다’ 교외에 멋진 단독주택을 갖는 것이 아내의 소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그녀는 집을 원한다. 나는 그녀를 원한다. 그렇다면 집의 도움을 받아서 내 뜻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 20쪽.




그때부터 마티는 눈물겨운 내 집 마련 투쟁을 시작된다. 집안의 모든 살림살이를 팔고 낮에 직장, 저녁엔 부업으로 마사지를 했는데도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자 다른 방도를 찾아나선다. 아내를 부엌에서 해방시킨 가정전선의 한 남자가 단독주택 한 채 마련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말이 되는가. 무조건 돈을 모으는 것 외에 지름길이 있을 거다...라고 여기고 단독주택 관련 잡지와 책을 보며 연구에 몰입하는데...문제는 우리의 주인공인 마티가 가방끈이 짧은 게 흠이긴 하지만 한번 한다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미의 소유자라는 거다. 그로 인해 모든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봇물 터지듯 벌어진다.




폭력을 행사하다 버림받은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배우자의 삶을 생지옥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여기 이 남자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 사람은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흩뜨려놓는다. - 218쪽.




무슨 수로 집을 산단 말이야? 가진 거라곤 꼴랑 허름한 아파트 하나밖에 없는 주제에. 한편으로는 내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도 풀을 캐낼 사람이다. - 258쪽.




핀란드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카리 호타카이넨, 이 책 <남자는 불행하다>로 핀란디아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고 북유럽 문학상 까지 수상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이 처음이기에 책날개의 소개대로 독창적인지 알 순 없지만 확실히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주인공은 분명히 마티 비르타넨이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일을 벌이고 사건을 터트리고 다니니까. 그런데 이 책에선 여러 명의 ‘나’가 등장한다. 즉, 주인공인 마티 이외에 그의 아내 헬레나, 윗층 사람들, 부동산 중개인, 건넛마을 사람들, 노병, 경찰이 등장하여 그들의 시점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그래서 사건의 흐름이 보다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 융통성 없이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치는 성질의 남자가 오로지 가족을 되찾기 위해 벌이는 나의 집 쟁탈전...그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이 씁쓸하다. 소시민이 내집마련을 위해 들이는 노력과 어떻게든 비싼 값에 집을 판매하려는 업자들간의 밀고 당기는 한판...멀리 핀란드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전혀 남 일 같지가 않다.




큰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집으로 데려오는 친구들 중에 간혹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야....진짜 집 작다”하고 한마디 내뱉는 녀석들이 있다. 또 친구집에 다녀온 아들이 “엄마, 엄마!! @@네 집, 엄청 크더라. 방이(손가락을 쫙 펴 보이며) 다섯 개나 되더라!!”한다. 그럴때...솔직히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 근데 그 친구집도 우리처럼 책이 많아?”하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마음 한켠이 묵직...해지는 걸 느낀다. 식구도 불었으니 지금보다 좀 큰 집으로 이사가는 것...올해도 여전히 작년과 같은 꿈을 꾼다.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그런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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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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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달 후, 일 년 후> 책표지가 무척 차분한 느낌이다. 사진으로 본  저자의 모습, 미모가 뛰어나다. 살짝 곱슬거리는 머리, 우수어린 짙은 눈동자, 미소를 감춘듯 꼭 다문 입술...19세에 발표한 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프랑스 문학비평상까지 받았다는 프랑수와즈 사강...처음 만난 그녀는 똑 소리가 날 정도로 야무지게 보인다.




하지만 책날개 소개글을 보니 의외다. 자유로운 감성과 섬세한 심리묘사로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사강 스캔들’이란 말을 낳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그녀...왠지 더 궁금해진다. 아직 책이나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여주인공인 조제가 사랑한 작가가 바로 프랑수와즈 사강이어서 ‘조제’란 이름도 바로 이 작품에서 따온 것이라니...책장을 넘기는 손이 급해진다.




새벽 네 시가 가까운 시각, 카페에서 베르나르가 조제에게 공중전화를 거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의 아름답고 밝은 면이 아닌 어둡고 축축한 구석진 곳으로 독자들을 사정없이 내몬다. 마치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알기 위해선 사랑의 숨겨진 면도 당연히 알아야한다는 듯이.




이 작품엔 모두 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베르나르는 아내 니콜이 있음에도 조제를 사랑하고 알랭 역시 윤기를 잃은 아내 파니가 아닌 열정적인 베아트리스를 사랑한다. 베아트리스는 알랭의 조카인 에두아르와 잠깐 사랑을 속삭이지만 졸리오의 등장으로 그에게 등을 돌린다.




열정이란 삶의 소금이며, 열정의 지배 아래에서 사람은 소금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113쪽.




남편과 아내, 연인들 사이의 의무나 도리는 접어두고서 오로지 자신의 열정과 감정에 충실한 사람들, 그들이 빚어내는 엇갈린 사랑의 모습들이 혼란스러웠다. 일시적인 바람기나 방황이라 여겼던 것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줄 모르고 깊이 빠져들고 나서야 결국 깨닫고 말다니...




“조제, 이건 말이 안돼요.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한 거죠?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조제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되요.” - 187쪽.




결혼이란 사랑의 완성형이며 아기는 그 결정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생각을 송두리째 흔들면서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결혼이란 결코 사랑의 완성형이 아니며 현재진형행일 뿐이라고. 한 달 후 혹은 일 년 후 사랑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고...




프랑수와즈 사강, 솔직히 아직은 그녀를 모르겠다. <조제, 호랑이...>에서 이름을 따올만큼 <한 달 후..>의 조제의 매력적인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소설 속의 조제가 그녀의 투영체가 아닐까....짐작해보지만 하나의 작품만으로 작가를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다소 씁쓸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고 신문을 펼쳤다. ‘한의사 @@@의 남편 확 끌어당기는 법’ ‘아내 외도로 눈물 흘리는 남자들’ ‘2008 이혼 풍속도’ ‘전직 강남 최고 호스트바 마담이 털어놓은 비화’....오늘따라 일간지 속의 여성지 광고가 눈에 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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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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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드보일드 에그’...‘에그’는 알겠는데, ‘하드보일드’는 또 뭐야?...했는데 친절하게도 책 뒷표지에 떡~ 하니 설명이 되어 있다.




<하드보일드(Hardboiled)는 ‘비정.냉혹’이라는 뜻의 문학용어로, 비정하고 냉혹한 현실에도 감상에 빠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지극히 평범한 두뇌의 소유자인 내가 이것만으로 ‘하드보일드’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무리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하듯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당연히 책 속으로 들어가야지. 서둘러 책장을 펼쳤다.




‘수요일 밤, 아리사가 실종됐다’...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착하지만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리사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탐정 슌페이. 숨막히는 추격전 끝에 아리사를 찾아낸다. 그런데 알고보니 아리사가...고양이???




15살 때 읽었던 챈들러의 소설 속 탐정 '필립 말로'에 반해 그의 모든 행동이 생활의 지표처럼 되어버린 서른 세살의 남자 슌페이. 소설 속의  말로가 고독과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차가운 이성의 멋진 탐정을 꿈꾸지만 그의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모처럼 의뢰가 들어오는 일의 대부분은 실종한 애완동물을 찾는 일이거나 불륜에 관한 것뿐이다.




탐정치곤 영 폼이 안 난다고 여긴 슌페이, 급기야 비서모집 공고를 낸다. 팔등신의 섹시한 미녀 비서를 꿈꾸면서. 그러나 그를 찾아온 사람은 응모한 사진과는 딴판인 여든의 할머니 가타기리 아야였다. “사기야!” “채용취소”를 외치는데도 당당하게 맞서는 아야를 슌페이는 어쩔수 없이 ‘반채용’...며칠만 고용하기로 마음먹는다.




하드보일드한 삶을 꿈꾸는 슌페이. 하지만 그의 생활은 전혀 하드보일드하지 않다. 가타기리 아야의 등장으로 오히려 그의 삶은 하드보일드에서 벗어나 오히려 엉뚱하고 코믹한 만담 같은 분위기를 띄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슌페이는 잃어버린 개 ‘꼬맹이’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우여곡절 끝에 찾아내지만 막상 개 주인집은 이미 이사를 가버린 상태였다. 결국 슌페이는 ‘꼬맹이’를 그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이 운영하는 버림받은 애완동물의 안식처인 ‘시바하라 에니멀 홈’에 맡기는데 그 일로 인해 슌페이는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되면서 자칭 탐정 슌페이와 할머니 비서의 콤비의 코믹하고도 스릴 넘치는 대활약이 시작되는데...




오가와라 히로시, 그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이다. 하지만 왠지 느낌이 좋다. 책의 전반부부터 느꼈던 거지만 작가의 치고 빠지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 음, 앞으로의 내용은 뻔하겠군....싶을때 느닷없이 허를 찌르는가하면 이것으로 끝인가...했더니 웬걸, 이번엔 놀라운 반전으로 독자의 오금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그리고 또다시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




책속표지의 저자소개를 보니 이 책의 후속편이 있다고 하는데...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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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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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리버보이> 이 책의 표지를 평소보다 몇 배나 설레는 마음으로 넘겼다.




1997년 해리포터와 함께 영국 카네기 메달상 후보에 노미데이트 되어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메달을 수상했다...는 홍보문구보다 뒷표지에 실린 ‘<마당을 나온 암탉>과 <연어> 이후로 이렇게 잔잔하고 가슴 먹먹한 소설은 처음이다’는 어느 고교 교사의 추천문구가 다른 어떤 것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제목은 강과 소년이 결합된 ‘리버보이’다. 잔잔한 흐름으로 사색적인 느낌의 강에 호기심과 혈기왕성한 소년이 어떤 모습으로 책 속에 녹아있을지....표지에 보이는 소녀는 어떤 역할을 할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넘쳐나는 의문에 비해 이 책의 스토리는 의외로 간단했다. 수영을 좋아하는 15살의 제스와 그 손녀를 무척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이 책의 주인공인데 할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켜 쓰러지면서 제스의 가정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할아버지는 언제 죽음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향을 찾아가는 계획, 가족휴가의 결행을 고집한다. ‘리버보이’란 제목을 붙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그리고 찾아간 할아버지의 고향...주변에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곳에서 제스는 꿈처럼 신비하고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수영하려고 찾은 강에서 반바지 차림의 소년을 만나는데 몇 번 반복되는 그 소년과의 만남이 왠지 예사롭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제스 자신과 할아버지, 그 사이에 리버보이...그 소년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리버보이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소년의 이미지에 할아버지의 그림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 89쪽.




그즈음 할아버지는 도저히 그림을 완성할 수 없을만큼 건강이 악화되는데...그때 리버보이는 제스에게 말한다. “지금부터는 네가 할아버지의 손이야..” 제스는 리버보이의 조언에 의해 할아버지 최후의 그림 ‘리버보이’를 완성한 다음 강에서 바다로 향해 헤엄쳐가고 할아버지는 또다시 쓰러지는데....




그녀는 다시 그림으로 눈을 돌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림을 살폈다... 거기에는 얼굴이 있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그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불과 얼마 전에 폭포에서 마주쳤던 그 얼굴을.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나의 ‘리버보이’를. - 206~207쪽.




제스는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한없는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지만 지금까지보다 한뼘 더 성장한 자신을 느낀다. 강이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자신에게 놓여진 더 많은 내일을 위해 더 성장하고 리버보이의 흔적을 찾아 더 많이 헤엄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게 된다.




며칠전 큰아이가 내게 호되게 야단맞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다. “엄마,아빠는 좋겠다.” “왜?” “착한 할머니가 있어서...” “?????”




첨엔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알 것 같다. 아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자식을 올바르게 길러야한다는 부모의 의무와 욕심이 아이에게 때론 굴레가 된다는 것을. 그에 비해 할아버지.할머니와 손주 사이엔 긴장감이 없다. 무조건적인 애정이 존재할 뿐.




부모인 내가 당장 코앞에 다가온 문제, 매주 치러지는 받아쓰기 시험에 안달할 때 할머니는 오히려 “애 너무 야단치는 거 아니다”며 날 나무라고 “야야, 할미랑 동네 한바퀴 돌까...”하며 바짝 주눅든 아이의 손을 끈다. 이담에 내가 할머니가 됐을 때도 그럴까...




부모 자식간에서 느낄 수 있는 가슴 저리고 애끓는 사랑이 아닌 할아버지와 손녀의 사랑....모든 것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사랑을 조용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책, <리버보이>. 아이에게 건네기 전에 부모가 먼저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흐른다. 그래도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흘러왔던 그 강물은 결국 다시 흘러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법이니까. - 책의 서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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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우타코 씨
다나베 세이코 지음, 권남희.이학선 옮김 / 여성신문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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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 친정아버지의 제사가 있었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제사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사위 2명에, 손자 2명, 딸 4명, 아들 1명...그리고 18년째 홀로 살아오고 계신 친정엄마. 엄마는 해마다 이 날만 되면 애석해하신다. “아이고, 영감아...조금만 더 살지...머가 그리 급해갖고 빨리 가노...” 정말 아버지가 20년, 아니 10년만 더 사셨어도 좋았을 텐데....




10년전쯤인가? 그 엄마에게 목을 메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같은 노인 대학에 다니던 분인데, 하루에도 열두번씩 전화를 하셨다. 나이만 먹었지 철이 없던 난 그 할아버지가 정말 싫었다.  전화를 받으면 잠깐의 침묵 뒤에 들려오는 “...@여사, 계신가?”하는 낮으면서도 왠지 느물거리느는 소름끼치는 음성. 난 전화수화기를 엄마에게 넘겨주면서도 잔뜩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엄마 역시 썩 반기는 눈치가 아니었기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싶다. 그 할아버지는 지금 어떻게 지내실까... 새삼 궁금해서 엄마에게 여쭤봤더니 엄마는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하신다. 지금이라면 좀 더 친절하게 대해드릴텐데...요즘은 통 연락이 없으신 모양이다.




창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살에 반짝이는 티테이블, 티포트에선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런데 잔이며 의자가 하나뿐이다. 왜일까?




<두근두근 우타코씨>의 우타코씨는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아가는 77세의 노인이다. 앗, 홀로 살아가는 노인...이라고 하면 우타코씨가 화낼 듯 하다. 혼자이지만 깨끗하고 바르고 아름답게...살아가는 나이많은 여인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우타코씨는 한창 젊은 나이에 전쟁을 겪으면서도 기울어진 회사를 일으켜 세우고 자식들을 공부시켜 번듯하게 결혼까지 시킨...어미에게 주어진 몫을 충실하게 다 해낸 할머니다. 그런데 그냥 할머니가 아니다. 혼자서 살아도 될 만큼 경제적인 여력이 충분히 뒷받침된 할머니다. 때문에 자신에 대한 투자에도 열성을 보인다. 철마다 새 옷을 맞춰 입으면서 외모를 가꾸는 것뿐만 아니라 영어클럽을 다니고 서예를 가르친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혼자라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데 비해 우타코씨는 오히려 한마디로 혼자여서 더 편안하다고 말한다.




‘중장년은 조화를 추구하되 동화되지 말 것이며, 젊은이는 동화하되 조화를 추구하지 말 것’이다. 노부인은 귀부인이기도 해야 한다. 몰려 있지 말고 홀로 즐길 것이며 그러면서도 모두와 사이좋게, 이것이 좋다. -148쪽.




그런 우타코씨가 77세 희수잔치를 앞두고 결혼전에 사귀었던 우라베 겐지로를 떠올리게 된다. 사별한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가슴이 설레거나 두근대는 일이 없었기에 자신의 희수잔치에서 옛연인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하지만 그 바램은 여지없이 무산되고 뒤이어 호감가는 노인과 의미있는 만남들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남자의 한걸음 뒤에서 남자가 죽으면 따라죽을 것 같은 가냘픈 여인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보다 한걸음 앞에서 남자를 이끌고 가는 전사형의 듬직한 여인 우타코씨. 그녀에게 세상은 온통 ‘왜냐?’하는 의문투성이다. 자신의 가족, 아들과 며느리에서부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잃지 않고 꼿꼿하게 살아가는 우타코씨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도 이담에 우타코씨처럼 꿈꾸는 할멈, 꿈쟁이 할멈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인생의 선배인 우타코씨가 대뜸 내뱉는 말이 내 마음을 고스란히 옮긴듯 가슴에 와닿는 구절에 ‘그렇지!’하고 무릎을 쳤다.




남자는 여자 고생을 해야만 한다....자신의 아내와 고생스럽게 어울려주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내란 자동적으로 자신에게 맞춰주는 존재라는 사고방식 때문에 인격이 진보하지 않는다. -109~110쪽.




반면에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모를 괴리감을 느꼈다. 상류층에서나 누릴 수 있는 생활과 언어들이 즐비한 책 속 우타코씨의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정말 이렇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노년’...꿈꾸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곧 인생의 성공으로 연결되지 않는 게 요즘이니까 말이다.




작년인가? 자녀의 교육에 올인하지 말고 노년을 준비하라...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우리 부부는 노년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타코씨와 같은 세련되고 아름다운 노년’은 아니더라도 가슴 설레는 감성은 잃지 말았으면...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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