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릴 때 이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첫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부름을 시켰었나?

 

아이들 어릴 때는 강원도 면 단위 벌판에 뚝 떨어진 아파트에 살아 아파트 상가도 없었기에 아마 심부름을 시킨 적이 없을 것이다.

 

대개는 다들 이 책을 읽고 처음 심부름을 보내고 그 감흥을 어딘가에 적고는 하는듯한데.

 

어릴 때 할머니가 미니슈퍼(작은데 크다고 이게 가능해? 라고 늘 생각)라고 쓰여 있지만 실은 구멍가게를 하셔서 가끔 가게를 본 기억이 있다. 그때마다 손님을 상대하여 돈을 주고 받는 게 어쩐지 창피하게 여겨져 정말 싫은 기억이 있다.

 

그래서 순전히 내 기억에 기반하여 아이들이 어릴 때도 자립심 교육에 좋다고들 해도 심부름을 시킨 적이 없다.

 

좀 커서 하게 되는 일은 그때 가서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미취학 초저학년기에도 심부름을 잘 시키지 않아서 주변 엄마들한테 싸고 키운다는 소리도 가끔 들었다.

 

그런데 내 기억 때문인지 애들이 굳이 먼저 가겠다고 자처하지 않는 경우에는 보낸 적이 없다. 딸아이의 경우는 아마 그렇게 해서 간 적이 몇 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말에 갑자기 목감기와 몸살이 제대로 오려는 징조를 보여 딸아이를 편의점에 보내어 판콜에이를 사오라고 시켰다. 편의점은 길도 건너지 않는 가까운 거리여서 보냈는데 시무룩해서 돌아온다. 의약품은 열두 살 이상만 살 수 있다고 하며 돌아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딸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오빠를 눈을 빛내며 보더니 역시 같이 가야겠다고 한다.

 

애초에 난 처음에 아들에게 부탁을 해보았으나 역시 지금은 힘들다, 는 답변이 돌아왔다. 예상했던 답이라 크게 실망하지 않고 둘째인 딸아이에게 부탁을 해 다녀온 것인데 이렇게 된 이상 아들이 출동해야만 하는 시점인 것이다.

 

딸과 아들은 죽가게가 먼저인가 편의점이 먼저인가 심도 깊은 토론을 펼쳤다. 딸아이 주장은 죽가게에 먼저 들러야 한다는 것이고 아들은 약을 사며 사탕을 먼저 사려고 편의점을 먼저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주장만 들어도 뇌구조가 보인다. 어디까지나 본인 편의인 아들. 그래도 나서야 할 때 나섰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담엔 그냥 열두 살이라 해.

동생에게 이런 명언을 남기며.

 

*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이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니

이번이야말로 의미 있는 첫 심부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이제는 누군가에게 충분한 도움이 될 정도로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프기 전에 본 책들

 

<방구석 미술관>은 팟캐스트는 들은 적이 없지만 읽기 시작했는데 작가들의 뒷이야기들로 소소하게 채워져 있다. 난 작가들 작품은 잘 모르지만 사생활은 그래도 어느 정도 아는 편이라 깊이 있게 작품 읽기를 시도한다면 적합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고래>는 아들이 좋아하겠거니 싶어서 빌렸는데 거들떠도 안 본다.

이러면서도 여전히 꿈이 고생물학자인 거니?

올해 내내 <마음의 소리>에만 빠져 있다. 조석 연구가 될 기세.

 

 

 

 

 

 

 

 

 

 

 

 

 

 

 

 

 

내일은 김보통 작가님이 광주에 오신다.

 

앞의 두 작품은 읽었고 <살아, 눈부시게>는 아직 읽지 않았다.

 

집에서 꽤 먼거리이고 저녁시간이라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혹시 갈지도 몰라서 애들아빠에게 휴무를 받아달라고 부탁해두었지만 요즘 몸상태가 영 아니다.

 

 

 

 

 

 

 

 

 

 

 

 

 

 

 

예약해둔 책들

읽고 싶구나.

 

*

 

-요즘은 무언가를 하기에 적절한 때에 대해 계속 생각중이다.

 

그리고 계속 내가 놓치고 가는 건 없는지 생각해본다.

 

일단은 나를 더 섬세하게 챙기고 그 다음이 주변

아니지 그저 쉼

 

챙긴다는 의식 자체가 없는 쉼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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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계속 책정리를 하고 있다. 네 사람이 책을 읽고 있으니 책이 엄청나게 쌓이고 있다.

 

그 와중에 책을 안 사려고 도서관을 가주다 보니 빌린책이랑 집안 책이랑 섞여서 도서관 책만 꽂아두는 칸도 마련했다.   

 

책을 정리하다보니 먼지도 엄청나고 진짜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당분간 진짜 사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게 된다. 사서 다 읽은 것도 아니고 어떤 것들은 굿즈에 낚여 산 것도 있어서.

 

*

 

항상 공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깨끗하고 정돈된. 

 

그래서 우리는 굳이 호텔을 가끔 가고싶어지나보다. 호텔이나 모텔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도 있다. 알쓸신잡 3에서 김영하 작가님은 집은 의외로 상처의 공간이기 때문에 나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고 한다. 집이 제일 안락하다고는 하지만 가끔은 집에서 부딪치고 울고 싸우고 한다. 그리고 작가님 말처럼 집에 있다가 세탁기를 보면 세탁기를 돌려야 할 것 같고 책장 보면 막 책도 정리하고 싶고 갑자기 가스레인지나 전자레인지 묵은 때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그렇게 나가서 카페며 도서관을 다녔나보다. 그런데 공간을 낯선 이와 공유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카페에 혼자 있을 때 누가 떠들면 거슬리고 그냥 조용히 책 보고 싶고, 내가 친한 사람들과 있으면 원래 카페는 담소 나누라고 있는 데 아니야, 하게 되는 이 모순.

 

프랜차이즈는 소란하고 개인 카페에 주인님과 단둘이 있으면 막 어색하다. 또 어느 카페든 단골이 되기는 싫어 한두 번만 가게 된다.

 

그래서 그래도 결국은 역시 집이네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글쓰는 여자의 공간>은 서가에서 제목만 보고 집어들었는데 사진들이 정말 좋아서 일단 사진만 보았다. 앗, 이분도 여성작가셨어, 하고 알게 된 분이 많다.

 

아무리 집에 책이 많아도 이 책은 역시 사야 해.  

 

거트루드 스타인은 저택에 살면서 아름다운 그림에 둘러싸여 글을 썼다. 샬럿 브론테는 자매들과 함께 식탁에서 시를 썼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자신의 작품과 같이 세상을 집처럼 여기고 선실이나 야간열차에서 글을 썼다. 버지니아 울프는 물론 자기만의 방에서 썼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넓은 서재를 두고도 거실, 식당, 책상, 벽난로 선반 등 여기저기에 원고가 쌓여 있었던 것으로 보아 집안 여기저기에서 생각나는 대로 글쓰기에 몰두했던 것 같다.

 

난 주로 어디에서 글을 쓰고 있을까 ㅎ

겨우 온라인에 이렇게 끄적이는 정도인데 대개는 새벽시간에 만화책이 한 면을 차지한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한 컴퓨터 방에 글을 쓰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잡다한 글이 나오게 되나 보다.

 

이 책에는 다양한 공간과 환경에서 글을 썼던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중에는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글을 썼던 여자들도 있다.....하지만 결국 사람은 모두 같은 공간에서 글을 쓰는 법이다. 바로 머릿속이란 공간이다. 무엇인가 머리에 떠오르면 부엌 식탁이든 책상이든 침대든 어디든 앉아 메모를 할 수 있다.                16쪽  

 

역시 일단 머릿속을 비우려면 정리 또 정리뿐이네.

 

주말부터 거실, 아이들 방을 많이 정리했고 이제 안방하고 이 문제의 잡동사니 방만 정리하면 겨울을 잘 날 수 있을 듯하다.

 

 

 

 

 

 

 

 

 

 

 

 

 

 

 

정리하면서 다행히 공공도서관 오디오북에 이 시리즈 몇 편이 있어 잘 들었다.

소장하고 싶지만 참는 중이다.

 

전무송 배우님이 낭독한 문순태의 징소리와 박호산 배우님이 낭독한 김영현의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정말 잘 들었다. 

 

클래식 채널 음악이 바뀔 때마다 내용과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악기와 인간의 목소리가 정말 잘 어우러졌다.

 

그래도 역시나 한번에 두 가지 일을 하니 양쪽 다 온전치 않기는 하다.

 

역시 아래 책에서 조언한 대로 나이가 들면 한번에 한 가지 일을 공들여서 해야지.

 

 

 

100인의 배우, 우리문학을 읽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리 마치고 온전히 집중해서 듣고 싶은 시리즈이다.

 

류배우도 참여했으면 좋았을 텐데.

 

저작 여건이 어찌되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작품을 최근 배우들이 읽어주는 기획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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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 급하게 독서모임 분들과 책빵에 다녀왔다. 책빵은 광주 동구 산수동 산수시장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객이나 주민들이나 다 이용하기 좋을듯하다. 생각보다 우리집에서 멀지 않아서 앞으로도 자주 갈 수 있을듯하다.

 

여름부터 시장 앞 근처 바닥분수도 가고 책빵 가야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폭염이 심해 못 가보고 가을도 한참 지나서야 가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좋아한 구리와 구라

오래 되어 벌써 구리 구라 색이 헷갈린다.

 

 

직접 만드신 걸까

곳곳에 동화책 주인공이 가득

 

 

전체적으로 노랑이와 파랑이의 조화가 참 좋다. 

산뜻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편한 분위기이다.

 

얼핏 보아도 그림책 고르신 걸 보니 내공이 상당하신

 

부인분은 그림책을 쓰고 그리시고 남편분은 빵을 구우신다. 별칭은 그냥 저냥 씨

 

블로그 보고 대강 파악한 내용이다.

 

공들여 직접 인테리어 하시고 꾸준히 주민들 사랑을 받는듯

 

 

 

 

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만쥬 쿠키

 

 

 

지극히 당연한 말씀

 

 

 

 

취향 저격의 책들

 

 

 

 

 

 

 

 

 

 

 

 

 

 

 

 

어떻게 만드신 걸까?

 

 

 

집에서 풀어두고 딸아이 보여주니 무지무지 좋아한다.

아들은 어디서 이런걸 또 ~ 하더니 소시지 빵을 들고 사라진다.

 

 

그래서 파리바게# 초코소라빵 산 거구나.

 

 

속에 크림 치즈가 듬뿍 들어 있다. 

 

생각해보니 푸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구나.

 

최근에야 곰돌이 푸가 실은 여성? 암컷?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푸의 모티브가 된  캐나다 출신 곰 위니가 암컷이라는 뜻 ㅋ

A.A 밀른은 물론 푸를 he라고 지칭했다고

 

여전히 이런 책들이 읽히는 건

다들 너무나 사는 게 팍팍하기 때문이겠지.

 

 

 

 

 

 

 

 

 

 

 

 

 

나도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지만,

정겨운 책과 빵으로 이겨내야지.

 

곰돌이 푸,

행복한 빵은 매일 있어.

 

*

어제 전주동물원에서 실사 곰 보고 대관람차 타고 피곤해 일찍 잠들어 새벽에 깨서는

전주비빔빵을 먹고 있다.   

 

알쓸신잡에 또 낚였쓰.

 

통영꿀빵에 이어 나한테는 안 맞는다.

 

 

*

 

근처에 독립서점 지음책방, 심가네 박씨도 있다

 

심가네 박씨에도 들러 이 책을 샀다.

 

 

 

 

 

 

 

 

 

 

 

 

 

 

 

 

관심은 가는데 잘 모르는 분야여서 정독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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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수요일이 딸아이 생일이었지만 지난 주말에 생일잔치를 했다.

 

평소에는 일정이 맞지 않아 모이기가 힘들다.

 

바쁜 요즘 초등학생들

 

1, 2학년 때는 풍선도 달고 했는데 엄마 힘들다고 달지 말라고 한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아쉬워서 괜한 과일에다가 호작질

 

 

원래 사과로 고슴도치 토끼도 깎았는데

 

돌고래를 제일 좋아해주었다.

 

 

 

 

먹고 놀다가 동네 방방장으로 향하는 길

 

매년 한 명 정도 바뀌고 유지되는 멤버들

 

함부로 사진을 올릴 수 없어 뒷모습만

 

사진 맨 왼쪽 체크바지가 딸아이...

 

도토리 키재기였는데 부쩍 큰아이도 있고 고대로인 아이도 있고 제각각이다.

 

 

 

 

동네 방방장에 도착하니 토요일인데도 한산한 편이다.

 

멀리서 보다가 빠져주는 게 좋을 것 같아 동네서점으로 갔다.

 

 

상 차리고 나름대로 힘들었는지 투썸에서 숙면에 빠져들어 민망했다.

 

카드 고르다 발견한 껌북과 껌북바나나 북촌 서점 !

 

봄에 친구 보러 서울에 가게 되면 가보려고 한다.

 

우왕 이름 좋다.

 

껌처럼 쉬운 책

 

 

 

 

 

 

 

 

 

 

 

 

 

 

멀리 갈 것이 아니라 산수동에도 그림책을 그리며 빵을 굽는 분이 있다고 해서 가보려고 했는데 늦어졌다.

 

산수동 책빵도 구경해보고 싶다.

 

 

 

 

 

사진은 네이버블로거 퍼피러그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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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송 님의 책을 처음 읽고 있다. 제목에 이끌려 오가며 자투리시간에 보려고 했는데 통찰력도 있고 드립력도 마음에 들어 잘 읽고 있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전에 마스다 미리 홀릭 중일 때 읽었다. 마스다 미리나 사노 요코는 한참 보다 어느 순간에 끊게 된다. 자가 복제가 심해서 대표작 정도만 보면 될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열육아기에 역시 잘 읽었다.

 

"하지 않아도 괜찮-"까지만 쳐도 꽤나 많은 책이 뜬다.

 

제일 웃긴 제목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

 

누가 모르겠는가? 앞담화를 할 여건이 안 되니 뒷담화로 속이라도 푸는 거지. 그리고 누구나 성인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 건강하게 감정을 발산해야지.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류의 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무엇무엇 해야 한다는 당위에 둘러싸여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이겠지.

 

어제는 마의 수요일.

 

월, 수는 진짜 수업에도 나가야 하니 그냥 괜히 분주하다. 전일 기간제로 일하던 때는 그나마 수입?이 분주함을 보상해주었지만 시간제 수업 노동자는 참으로 열악하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단점만 모아둔 것 같다.  (이건 왜 그런지 나중에 길게 쓸 생각이다.)

 

어제는 수업 끝나고 한참 지나 저녁시간에  학생 어머님이 아이가 7시가 넘었는데 오지 않았다고 하셔서 이리저리 친한 애들 어머니께 전화해서 행방을 찾아보았다. 물론 이때는 걱정되는 마음이 커서 자발적으로 찾아보았다.

 

그러고 나서 몇분 후 카톡으로 아이 00 학원에서 찾았다며 어머니가 스케줄을 잠시 착각하신 것 같다고.

 

그런데 붙은 ㅋㅋ  많은 것을 함축하는 ㅋㅋ 에 기분이 상했다.

무사히 찾았으니 된 거고 하다가도 그래도 과연 담임 선생님이었으면 저 ㅋㅋ 가 가능할지 괜한 자격지심이 들었다.

 

그러다 역시 나의 과잉 친절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옆에 있던 애들아빠는 그냥 전화 안 받으면 된다고. 시간제로 일하며 과잉이라고.

 

과연 그럴까?

 

그래도 그때 들었던 나의 마음 혹시나 하면서 걱정하며 찾아봐주었던 그 마음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기분 나쁜 지점은 ㅋㅋ 다.

 

만약 내가 그랬다면 제가 착각해서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하네요, 라고 인사를 했겠지만 모두가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머쓱해서 ㅋㅋ 도 가능하니까.

 

*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지난 여성영화제에서 본 다큐멘터리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 (Birthright: A War Story, 2017) 를 보고 새삼 충격을 받았다. 선진국이고 막연하게 여성인권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던 미국에서 최근에 벌어진 일들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모든 전쟁에는 부수적 피해가 따른다"고 다큐 초반에 선언한다. 이어지는 임신과 낙태에 대한 여성들의 증언은 여전히 여성의 몸이 소리 없는 전쟁터라는 것을 드러낸다.

 

"전쟁이나 군사행동으로 인해 민간인이 학살되는 것을 군대에서는 부수적인 피해라고 말해요. 본인들의 윤리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쓰는 말이죠....정치인들이 탁상공론으로  임신중지 관련 법안을 계속 바꾸는 동안 여성이 입는건강 침해와 생명 피해는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됩니다."

(서울 여성영화제 나영 집행위원장)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존중하지 않고 '생명 존중'이라는 대전제를 세워두고 모든 형태의 낙태를 강하게 규제하려고 한다. 수정란 상태의 생명은 지극히 존중하면서도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데도 미국의 어떤 주에서는 낙태나 유도분만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엄마가 임신중에 태아에게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 것이 밝혀지면 아동학대로 수감되어야 한다. 마약 중독이 빈번한 사회라 마련된 법률일 수 있지만 치료 목적으로 복용한 약물 때문에 몸도 추스리지 못하고 감옥에 가거나 범죄기록을 지우려 변호사 비용을 감당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간질 치료 약물을 쓸 수 없어 대마초로 고통을 덜어보려 한 여성도 비난받는다. 사실 대마초는 태아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서 치료용 대마초를 허용한 주로 이사를 가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973년 미국에서는 낙태죄 폐지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로 대 웨이드 사건의 최종 판결이 있었다. 미 연방대법원은 사람으로서 법적 권리가 부여되는 것이 '출생 이후'이며 모든 개인에게 사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로 안 보고도 알 수 있듯이 종교계와 보수파가 들불같이 들고 일어나 곳곳에서 맹렬한 생명존중 운동을 벌였다. 여성들은 내 자궁에 묵주를 들이밀지 말라며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결국 여러 주에서 다양한 형태의 임신중지 반대 정책과 처벌 조항들을 마련한다.

 

 

태아 상태가 좋지 않고 산모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어도 20주가 넘은 태아의 유도분만조차 막아 상태가 진짜 나빠져서 병원에 온 산모가 있다. 낙태죄로 처벌을 받기 싫어 불법시술을 받다가 패혈증 등으로 사망한 사례도 꽤 된다.

 

다큐 후반부에 이르면 낙태 찬반은 결국 종교, 정치, 경제적 이해가 맞물린 지점에 있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나 행복 추구권과는 먼 논의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많은 가톨릭 의료 재단과 보수파의 횡포에 묵주반지를 낀 내 손이 부끄러워서 반지를 슬쩍 빼려다 그만 바닥에 그걸 쨍그랑 떨어뜨리고 말았다.

 

  

영화가 끝난 후 전남대 김경례 ? 교수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자신이 그래도 다른친구보다 이쪽으로는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여전히 자신은 학교에서 낙태된 태아의 발사진, 찢겨 나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아이를 보면서 성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거의 30년이 지나고도 학교는 여전히 순결 교육이구나.

 

실질적인 성교육이 없다, 아이의 아버지인 남성들은 왜 책임을 지지 않는가, 하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야기를 잘 듣고 나오다가 첫아이를 가지고 막달에 임부복 원피스를 입고 지나갈 때 모르는 아저씨의 끈적한 눈길이 따라오던 것이 생각이 난다.  얼굴과 배를 번갈아보며 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비웃더니 엄지 척하고 지나갔다. 그렇게 참하고 조신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너도 결국은 했구나, 하는 시선이었다. 

 

어떤 남성들에게 임신은 섹스와 쾌락의 결과물이고 여성은 그 결과를 애써 감당해야 한다고 여겨지나보다. 물론 임신 중에 남녀노소 막론하고 배려를 베풀어주신 분들이 훨씬 더 많기에 이 기억은 저멀리 묻어둔 것인데 영화 보고 나오는 길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당혹스러웠다.

 

 

*

 

"현재 주요 선진국의 낙태 관련법은 형법으로서 여성에게 모성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보장법으로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동시에 모성을 설득하고 있으며 이것이 태아의 생명존중권과 크게 위배되지 않는다"고 류민희 변호사가 말씀하셨다. 이 의견에 동의한다. 비디오로 본 수정란 상태의 그 미지의 어떤 것보다는 현재 살아 숨쉬고 있는 한 여성의 건강과 그 이후의 삶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낙태죄 폐지를 이야기하면 항상 문란한 성생활과 생명경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이때 문란하고 생명을 경시한다고 비난받는 건 항상 여성 쪽이다. 그러나 낙태를 하고 괴로워하는 여주인공의 심리를 다룬 소설 속 장면은 많아도 남자가 여자친구와 함께 낙태를 경험하고 죄책감에 떠는 장면은 내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다.

 

 

 

 

 

 

 

 

 

 

 

 

 

 

 

독립서점에서 살짝 본 이 책의 저자 홍승희도 남자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고백하고 낙태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몸조리 기간만이라도 곁에 있어주기를 청하는데 거절당한다. 남자친구는 사회학도이고 그의 어머니는 여성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홀로 낙태의 아픔을 감당한다.

 

*

여기부터 살짝 일기, 회고담 바쁘신 분 패쓰!

 

 

내가 내 몸으로 겪은 임신과 출산은 내 인생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고 지금도 양육으로 그 책임을 지고 있는 중이다.

 

소녀시절에는 앞으로 출산할 여성으로서 술담배 하지 않고 남성들 앞에서 조신하게 있을 것을 교육받았다. 특히 성당 주일학교에서 관련 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배경에 강낭콩 같은 태아가 평온하게 떠 있다가 날카로운 도구가 들어오면 요리조리 피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절대로 낙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디오를 보고 나오면 수사님이 잘 보았냐고 하면서 목덜미를 주물렀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지만 한번도 하시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남자들이 말하는 남중남고공대 테크와 같이 여중여고여대 테크를 타고 자발적? 비연애? 로 살면서 페미니즘 서적을 엄청 읽었다. 그래도 현실에서는 연합동아리나 그런 데 가면 무지 쑥스럽고 어색하게 남자들을 대했다. 개인적으로 남자애와 세 번 이상 만나게 되면 뭔가 결정지어야 할 분위기가 부담스러워 연애를 피했다. 사실 생활에 치이기도 했다. 선배언니 소개로 지금의 남편과 만나 싱겁게 첫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졌지만 첫사랑은 따로 있다고 늘 주장한다.

 

결혼하고 3년이 지나 첫아이를 임신하면서 나는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봐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 검진과 출산 과정에서 어쩐지 내가 한 마리 암소같이 느껴졌다. 다들 친절하셨지만 그래도 내진이라든가 여러 굴욕? 자세들을 잊지 못한다. 가정분만이나 그런 걸 알아보다 쉽게 포기한 결과로 모두가 겪는 보편의 경험을 통해 임신 출산 과정이 얼마나 여성친화적이지 않은지 경험하게 되었다.

 

임신부가 커피 마시네, 애낳은 엄마가 나다니네 이런 시선들....

 

바로 옆에 있는 남편조차도 엄마의 육아의 힘겨움보다는 아이에게 바람직한 것만 요구하는 바람에 힘들었었다. 자연분만, 모유수유, 천기저귀에 대한 의지는 남편이 나보다 강했다. 천기저귀를 6개월간 빨아주았지만, 내가 체감하기로는 진짜 기저귀만 빨았다. 그래도 가끔 개주기도 했으니 고마운 건가. 지금도 어디 가면 난 아이 똥기저귀도 빨았다면서 자랑한다.

 

그때 내가 정말 원했던 건 아이를 안아주고 내가 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었는데 모유수유라는 이유로 밤에 아이가 일어나도 분유 한 번 타줄 일이 없고 천기저귀를 해서 보다 감각이 예민한 아이 기저귀 가는 것도 다 나의 일.  

 

그래도 지금은 그때 참 같이 고생했다고, 애들에게도 아빠가 기저귀 빨아준 거 잊지 말라고 한다.

 

아빠는 기저귀 한 장만 빨아도 엄청 좋은 사람인데 엄마는 철인3종경기같이 자연분만, 모유수유, 천기저귀 사용을 해내도 엄마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나는 초보 엄마인 동생이 제왕절개, 분유 수유를 하고 있어 속상하다고 해도 다 괜찮다고 해준다.

 

난다님 가족들은 젖을 말리는 걸 이해하지 못하지만 양이 적어 고생하는 동생에게 혹여 모유를 못먹여도 죄책감 갖지 말라고 해주었다. 다행히 제부가 깨인 사람? 아니 그냥 부인 사랑이 지극해 그런지 같이 분유도 타주고 안아주고 하는 모양이다.

 

 

 

 

 

 

 

 

 

 

엄마라면 이래야지 하는 남들이 말하는 이런저런 부담에 시달리는 동생아,

 

다 하지 않아도 괜찮아.

 

베토벤 높은 음자리표같이 대충 살아.

 

음자리표는 대충 그려도

좋은 곡만 쓰면 되는 거야.

 

 

 

사진은 트위터에 유행하는 대충 살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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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2018-11-2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높은음자리표 보니 제가 저이들보다 잘 그리네요. 높은음자리표만 잘 그리면 뭐한답니까...정말 암것도 모르고 못 하는데..허허
중요한건 높은음자리표가 아니라는 말 기억할게요^^

뚜유 2018-11-23 05:41   좋아요 0 | URL
저도 높은음자리표만 잘 그릴 수 있어요 ^ ^
열정을 다 하되 세부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썼어요.......
추운데 감기 조심하셔요